지체들의 누림글 모음 장소 ^^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주여 나를 내 자아와 육에서

  • 유진 유진
  • 4932
  • 0
첨부 1


beautiful-book-wood-piony-purple-peony-flowers-vintage-1.jpg



몸의 건축을 위해 적절한 기능 발휘에 이르는 것은 쉽지 않은 문제입니다(엡 4:16). 우리에게 생명의 성장이 부족하다면, 기능 발휘에 있어서 부족함이 있게 되고 은사와 은혜가 있지만 처리가 부족하게 될 때 종종 우리의 분량을 넘어서 지체들을 밟게 됩니다(고전 12:14-27). 우리의 기능 발휘는 어떻게 하면 부족하지도 않고 지나치지도 않는 지점에 이르게 될까요? 우리는 어떻게 하면 적극적임과 드러나지 않음이 조화되는 지점에 이르게 될까요? 둘 다 몸의 건축이라는 한 초점을 위해…



1. 주여 나를 내 자아와 육에서 구원하여
성도들과 건축되어 영광 나타내게 해



『생명의 체험』이라는 책을 통해서 볼 때 생명의 성장은 기나 긴 처리의 과정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레 14:8-9). 첫 번째 단계에서는 과거를 일소하는 처리의 과정이 있고, 두 번째 단계에서는 우리가 자신을 헌신한 후에 죄들과 세상과 양심을 처리하는 과정이 있습니다. 그런 외면적이고 행위적인 방면의 처리의 결과 우리는 기름부음을 체험하게 되고 하나님의 뜻을 인식하게 됩니다(요일 2:27, 엡 5:17, 골 1:9).


그리고 세 번째 단계에서는 육체와 자아와 타고난 성분과 성령의 징계 및 영의 처리를 통과하는 것이 있습니다. 우리가 이러한 내면적이고 존재적인 방면의 처리를 모두 통과할 때 성령 충만에 이르게 되며 네 번째 단계에서는 더 이상 주된 면에서 처리는 없게 됩니다. 우리가 이 시점에 이를 때 비로소 기능을 발휘하는 면에 있어서 부족하지 않게 되며 지나치지도 않게 됩니다.



나의 악한 성질 교만 단독에서 구원하여
나를 주 순종케 하여 안식처 삼으소서



우리가 생명 안에서 어느 정도 성장하게 될 때 한 가지 어려움은 나와 아직 어린 지체들 사이에 차이점을 느끼는 것입니다. 그는 자신의 기능 발휘를 감상하게 되며 그보다 못한 지체들에 대해 그들이 자신과 다르다는, 그들이 아직 약하고 어리다는 느낌을 갖게 됩니다. 이러한 느낌이 존재하기 때문에 그는 쉽게 단독적이 되며 개인주의적인 성향을 띄게 됩니다.


그러나 우리가 주님의 긍휼로 요단강을 건너게 될 때, 우리가 생명의 체험의 세 번째 단계를 통과하여 네 번째 단계 안으로 들어가게 될 때 몸을 보게 되고, 이전과는 다른 느낌을 갖게 됩니다. 그는 여전히 지체들의 약함과 어림을 알고 있지만 동시에 그들이 자신과 다르지 않다는 동질의 느낌을 갖게 됩니다. 이 느낌에 도달하게 될 때 우리는 비로소 몸을 본 것입니다.



2. 흐르는 생명 공급이 자라고 변케하네
나의 위치에서 힘써 성도들 온전케 해



우리는 모든 순간에 악한 자의 유혹으로 교만에 빠질 수 있지만 어쩌면 몸을 보기 직전에 가장 교만할 수 있습니다. 그 때는 우리에게 어느 정도의 처리가 이루어진 시점이고 외적으로 어떤 연약함이 없는 시점이며 기능 면에서도 어느 정도 주도적으로 기능 발휘를 하고 있는 시점일 수 있습니다. 그는 어떤 면에서 많은 지체들이 감상하는 그런 지체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아직 몸을 보지 못했기 때문에 그는 다른 지체들과 그가 동일하다는 동질감의 느낌이 없게 됩니다. 그는 자신의 기능을 더 감상하고 그에 미치지 못하는 지체들의 연약함에 대한 느낌만이 강하게 들기 때문에 분별의 느낌은 강할지 몰라도 모든 지체들을 사랑하는 느낌은 약하게 됩니다. 결과적으로 개인주의적이고 교만을 피할 수 없게 됩니다.



다른 사람 밟지 않고 내 본 것 아는 모든 것
주 위해 다 바쳐 일해 주님의 몸 건축해



어떤 미덕은 어쩌면 생명의 체험의 네 번째 단계 안에서 몸을 보는 것을 통해 비로소 완성되는지도 모릅니다. 사랑은 어쩌면 몸 안에서 존재하는 미덕일지도 모르며 모든 미덕들 역시 몸을 보는 것이 없다면 피상적이고 붙잡을 수 없는 미덕들일지 모릅니다. 몸 안에서 몸을 보는 것을 통해 우리는 비로소 시기가 없게 되고 나를 잃어버리게 되고 모든 지체들을 주님이 사랑하시는 것처럼 동일하게 사랑하게 됩니다.


요셉은 형제들을 사랑하였지만 눈멀지도 않았습니다. 그는 형제들을 다루고 온전케 했지만 그들을 비밀스럽게 사랑하였습니다(창 42:25). 그의 다룸의 동기는 사랑이었으며 과거에 형제들이 했던 행동에 대한 보응이 아니었습니다. 우리가 몸을 아는 지점에 이를 때 우리는 비로소 주님을 대표하여 다스릴 수 있게 될 것입니다.



3. 머리를 붙듦으로써 상합하고 연합해
그리스도 풍성 누려 주의 풍성 충만해



우리가 이 시점에 이를 때 비로소 영을 사용하는 것의 온전한 지점에 이르게 됩니다(갈 5:25). 영 안에서 주님이 주시는 느낌에 더 분명하고 예민하게 되며 이러한 느낌으로 인해 언제 기능을 발휘해야 될지 언제 잠잠해야 될지를 구분하게 됩니다(요 7:6). 그는 기능 발휘에 있어서 부족하지도 않게 되고 지체들을 밟는 것도 없게 됩니다.


다만 이 시점에 이를 때 승천의 위치에서 영적 전쟁에 참여하게 됨으로 그의 영에 직접적인 공격이 있을 수도 있습니다. 그가 영적 전쟁 가운데 중압감이나 영의 봉쇄 등과 같은 상태에 있게 될 때, 예외적으로 기능 발휘에 있어서 제약이 있게 됩니다. 그러나 주님의 군사로서 전투 경험이 늘어나면 늘어날수록 영적 전쟁에서 승리하게 되며 멜기세덱의 계통에 따른 제사장이신 주님으로부터 더 많은 떡과 포도주를 공급받게 될 것입니다(창 14:18).



온전한 사람 이루어 장성한 분량 차도록
넓고 긴 주의 사랑은 측량할 수 없도다



주님의 갈망은 그분의 배필로서 그분을 표현하고 대표하는 한 단체적인 사람을 얻는 것입니다(창 1:26, 엡 1:23, 엡 5:26-27). 우리 모두가 생명 안에서 성장하고 성숙하여 생명의 체험의 네 번째 단계에 도달할 때 자연스럽게 우리의 모임, 집회를 통해 그러한 성숙의 분량이 표현되게 될 것입니다(엡 4:13). 그러한 상태는 주님이 그분 자신과 동일시 할 수 있는 그분의 몸의 표현과 나타남입니다.


이것이 주님이 목적으로 하신 그분의 구원의 최고 정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 안에는 더 이상 육체가 없으며 자아가 없으며 타고난 성분이 없으며 단체적으로 나타난 주님의 표현만이 있습니다. 우리가 이 지점에 이를 때 교회는 건축될 것이며 성막과 성전 안에 주님의 영광이 가득하였듯이 주님의 영광이 우리를 통해 충만하게 나타나게 될 것입니다(마 1:18,출 40:34-35, 왕상 8:11, 대하 5:14, 겔 43:2-5). 오 영광스러운 그분의 몸이여!



기도: 주님의 은혜로 이 은혜의 시대에 외적이고 내적인 모든 처리의 과정을 통과하게 하소서. 몸을 보고 몸을 아는 생명의 체험의 네 번째 단계 안에 이르게 하소서. 더 이상 개인주의적이 될 수 없고 단독적이 될 수 없는 그 지점에 이르게 하소서. 주님의 몸의 건축을 위해…



* 이 찬송은 한국복음서원 찬송가 606장입니다. 가사는 위트니스 리 형제님에 의해 지어졌고 곡은 Henry Brinley Richards에 의해 붙여졌습니다.


* 성도들의 영적 생명이 아직 어리다면 어떤 은사는 교회 생활에 여전히 유용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성도들의 영적 생명이 어느 정도 자라게 될 때 그러한 은사는 조금씩 성도들의 기능을 억압하고 심지어 ‘밟는’ 것이 될 수 있습니다.


* 성도들이 어떤 은사를 필요로 하고 아직 감상하고 있다면 어떤 의미에서 성도들의 영적 생명은 누군가를 필요로 하는 아직 어린 상태입니다. 그러나 그러한 은사의 기능 발휘가 자신 안의 부담을 해방하지 못한다고 느끼게 될 때 성도들의 영적 생명은 어느 정도 성장한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 은사는 영 안의 느낌에 따라 그러한 느낌과 부합되는 방식으로 기능 발휘를 하는 것이 아닌 어느 정도 제한 없이 기능 발휘를 할 수 있기 때문에 어느 시점에는 성도들의 기능 발휘를 억압하고 대치하는 것이 될 수 있습니다.


* 주님의 갈망은 모든 은사가 생명에 속한 사역이 되게 함으로 성도들의 기능 발휘를 대치하는 것이 아닌 지지하고 함양하고 온전하게 하는 것이 되기를 원하십니다. 몸의 건축을 위해…



출처 : 성경진리사역원 http://www.btmk.org/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kakao talk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삭제하시겠습니까?

  • 더 이상 껍질이 아닌..
    • 유진
    • 조회 수 5397
    • 16.05.24.14:29
    어떤 사람이 어떤 방식으로 어떤 것을 누리게 되어 있습니다. 비록 주님의 긍휼로 작은 계시가 있고 작은 누림이 있어 어떤 방향으로 방향성이 정해졌다고 해도 그러한 존재가 한 번에 변화되는...
  • 더 이상 자신을 구원하려고 하지 않게 될 때에...
    때로 우리는 너무도 자신을 구원하려고 하기 때문에 주님께 어려움이 됩니다. 우리는 강한 열정과 추구하는 마음으로 우리의 구원을 향해 달려갑니다. 그러나 사실 주님의 목표는 자신을 구원하...
  • 돌 이야기
    며칠전 울타리 전정 작업을 하고 있는데 뱀이 큰 것이 한마리가 기어 달아나고 있었습니다. 모르면 몰라도 놔두면 안되고 사택이나 교실로 들어 가기 때문에 무조건 잡아 죽여야만 합니다. 사람...
  • 돌과 스폰지
    우리의 마음이 돌같이 딱딱할 수도 있고 스폰지와 같이 부드러울 수도 있습니다. 돌 위에는 아무리 많은 물을 뿌려도 그 물들이 다 흘러 내려갈 뿐 돌 안으로는 흡수될 수 없지만, 스폰지는 그 ...
  • 동역
    • 유진
    • 조회 수 16000
    • 13.11.22.11:52
    우리가 아무리 생명 안에서 성장하고 일에 있어서 능숙하게 된다 할지라도 여전히 아주 작은 부분은 우리의 역량 밖의 일로 남겨두실 것입니다. 그것이 아주 작은 부분이라 할지라도 그러한 부...
  • 동역하여 생명의 길을 가고 싶습니다.
    교회생활 초기에 '생명'에 대하여 참으로 알고 싶었습니다. 어느날 선악지식이 아닌 또 다른 영역을 알았을 때 정말 기뻤습니다. 언제든이 이 (부활의)영역 안으로 옮겨질 때면 주님의 ...
  • 두 가지 갈림길 안에
    계시록에서 주님이 일곱 장로를 부르지 않고 일곱 별을 부르신 것은 교회가 정상적이지 않게 되었다는 의미이다. 서머나 교회의 특징은 박해였는데 유대교의 유대인들에게 뿐 아니라 하나님을 ...
  • 두 가지 비밀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바울로서는 밤송이만큼이나 껄끄러운 것이겠지만, 또한 그로서는 피해갈 수 없는 주제이기도 했습니다. 그렇다고 디모데나 다른 동역자들이 대신해 줄 수 있을 만한 것도 아니었고 반드시 바울 ...
  • 두 극단
    언젠가 이상수 형제님이 워치만 니 형제님에게 하셨다는 말씀.... 형제님이 회복의 길을 가지 않는다 해도 저는 회복의 길을 갈 것입니다. 이 교통이 의미하는 바는 무엇인가.... 사람을 한 일 ...
  • 두 생명 가운데...
    • 유진
    • 조회 수 12903
    • 13.10.21.12:21
    우리에게 주어진 두 생명 가운데 어느 생명으로 사느냐는 어느 일이 옳으냐 못지 않게 크리스챤에게 중요한 문제입니다. 어떤 사람은 비록 옳지만 자신에게 주어진 처음 생명으로 살 수 있고 어...
  • 두고두고..
    화창한 햇살 아래 혼연히 피어나는 꽃들을 바라보니 생명에 대한 찬사가 절로 납니다. 부드럽고 신선한 그러면서도 눈에 선뜻 띠지 않는 강렬함. 빨강색, 노란색, 하얀색, 분홍색, 보라색.........
  • 두려움이 필요한 시대
    마냥 '오냐 오냐 하고 키운 자식'은 버릇이 없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 결과 할아버지 수염을 잡아 뜯는 어처구니 없는 일이 생기게 됩니다. 엄중한 권위에서 오는 제한이 있을 때 사람의 타락한...
  • 둘이 걷는 연습 중입니다.
    보통 사람들은 자기가 하고 싶은 대로 하고 삽니다. 그런데 살다보면 부득이 하게 남을 위해 자신이 제한받아야 할 때도 많습니다. 이런 경우 어떤 이는 불평과 불만으로 이런 환경을 받습니다....
  • 드라마보다 더 드라마 같은
    1) 에스더서를 흠뻑 누리고 있습니다. 에스더서는 그 어떤 드라마보다도 더 드라마틱합니다. 하나님은 등장하지 않지만, 하나님의 역사는 분명합니다. 숨어계시는 그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사람...
  • 듣고 싶은 기도..
    • 유진
    • 조회 수 15849
    • 14.01.20.10:08
    주여 더 이상 사람의 갈망 보다는 우리 안의 주님의 갈망을 듣기 원합니다. 더 이상 사람만이 하는 기도가 아닌 주님이 우리 안에서 우리와 함께 하시는 기도를 듣기 원합니다. 그 기도가 우리...
  • 들을 수 없는...
    • 유진
    • 조회 수 17734
    • 14.10.15.11:14
    어느 지점에 이르기까지 우리의 영은 가장 약한 기관 능력이 있고 강력한 우리의 생각과 감정과 의지가 기꺼이 그 영의 느낌에 굴복되지 않는다면 우리는 주님을 나타내고 표현할 수 없는.. 교...
  • 디르사
    초기 북 왕국 이스라엘의 도읍지로 정해질 만큼 쉽게 정복할 수 없는 요새요 난공불락의 성 디르사 아가서에서 이 디르사를 신부의 아름다움에 비유한 것은 솔로몬의 연인인 술람미의 순결성을 ...
  • 딸기송(頌)
    정말로 섞이고 싶은 "OO 교회"와의 섞임에 가지도 못하고-감기 때문에- 고요하게 기도하며 오늘 저녁에 "헐몬의 이슬과 복합 관유"가 넘치고 더욱 넘치길 기도하면서 이 글을 씁니다. 딸기 열매...
  • 때론 순한 양처럼..때론 엄위한 군대처럼.
    교회 안에서 우린 강한 자아에 대해 많은 교통을 들었고 그런 자아로 인해 주님이 역사하시지 않음에 대해 많이 통탄해 왔습니다. 자아란 무엇인지 생각해 보게 됩니다. 자아를 부인한다는 것이...
  • 떡 줄 생각은 안하고
    예수님이 많은 병자들을 치유하심을 듣고 봄으로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께로 몰려들었습니다. 사람들이 큰 무리로서 자기에게로 오시는 것을 보시고 한 아이가 가진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