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극적인 사례를 통해 배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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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가라 하는 요한"
"수일 후에 바울이 바나바더러 말하되 우리가 주의 말씀을 전한 각 성으로 다시 가서 형제들을 방문하자 하니 바나바는 마가라 하는 요한도 데리고 가자 하나 바울은... 데리고 가는 것이 옳지 않다 하여 서로 심히 다투어 피차 갈라서니 바나바는 마가를 데리고... 구브로로 가고 바울은... 형제들에게 주의 은혜에 부탁함을 받고 떠나... 교회들을 굳게 하니라"(행15:36-41)
위 사례를 통해 다음 두 가지를 배웠습니다.
1) 교회 생활에서 혈연(학연, 지연)의 처리 문제
교회 생활 초기에 있었던 일입니다. 우연히도 주변에 같은 대학 출신 형제님들이 많이 계셨습니다. 누구의 주선에 의해서 모임(단합대회?)이 있었고, 영적 생명이 어렸던 저는 그런 대로 좋았습니다. 그런데 다른 형제님들은 아마도 영이 편치 않으셨던 모양입니다. 그후로 15년이 지난 지금까지 그런 모임은 다시 없었습니다. 세상에서는 동향, 동문, 친척 사이에는 알게 모르게 오고가는 끈끈한 뭔가가 있습니다. 그러나 옛 창조를 십자가에서 끝낸 영역인 교회 생활(부활영역) 안에서는 그런 것들이 씻어내야 할 티나 주름일 뿐임을 나중에 알게 되었습니다(엡5:27).
바울과는 대조적으로 바나바는 "조카"인 마가(골4:10)를 데리고 자기 "고향"인 구브로로 간 이후, 성경의 기록에서도 영원히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이 어떠한 경고입니까?
2) 실패한 젊은 동역자에 대한 배려 문제
마가라 하는 요한은 어머니 집에서 옥에 갇힌 베드로를 위해 기도집회를 가질 정도로 경건한 가정에서 자랐습니다(행12:12). 그래서 바울과 바나바가 헌금을 예루살렘 교회에 전달하고 오는 길에 그를 동역자로 데려 왔고 함께 전도여행도 다녔습니다. 그러던 중 요한은 마음 상한 일이 있었던지 여행 도중에 고향집으로 돌아가 버리는 일이 발생했습니다(행12:25, 13:5, 13 ). 이런 철없는 젊은 형제를 바나바가 또 데리고 가자고 하니까 바울이 반대했고, 결국 두 사도가 크게 싸우는 원인 제공자가 되고 말았습니다. 상식적으로 볼 때 이런 형제는 몸 안에서 더 봉사할 수 없을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계속 마가에 대해 말합니다. '나(바울)와 함께 갇힌... 바나바의 생질 마가도 너희에게 문안하느니라' '네가 올 때 마가를 데리고 오라 저가 나(바울)의 일에 유익하니라' '또한 나(바울)의 동역자... 마가가 문안하느니라'(골4;10, 딤후4:11, 몬24절). '교회가 너희에게 문안하고 내(베드로) 아들 마가도 그리하느니라'(벧전5;13). 이 어떠한 아름다운 그림인지요!!!
글쓴이 : 갓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