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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의 생활은 영을 따라 행하는 것의 결과임


로마서 12장에 있는 그리스도의 몸은 로마서 8장에서 영을 따라 행하는 체험의 결과이다. 하나님의 경륜에 관한 바울의 조망에 따르면 그리스도의 몸의 모든 지체들은 영을 따라 행하는 사람들이어야 한다. 원칙적으로 우리가 영을 따라 행하지 않는다면 실행적으로 우리는 그리스도의 몸을 가질 수 없다. 모든 믿는 이들은 그리스도의 몸의 지체들이지만 몸의 실행성은 믿는 이들의 행함에 달려있다. 믿는 이들이 육체를 따라 행한다면 그들은 여전히 그리스도의 몸의 지체들이기는 하지만 그들의 체험 안에는 몸이 없을 것이다. 육체적인 행함으로 말미암아 몸의 생활이 폐해진다. 오늘날 수많은 믿는 이들이 있지만 영을 따라 행하는 이들은 극소수이기 때문에 그들 안에 몸의 생활은 매우 적다. 주님의 긍휼로 주님의 회복 안에 있는 상황은 조금 더 좋다. 그러나 심지어 우리 가운데도 몸의 생활이 부족하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우리는 살아있는 집회도 있고 하나라는 합당한 터 위에 서 있기는 하지만 우리 가운데서 몸의 생활은 충분하지 않다.


몸의 생활은 집회들 안에서 영을 훈련하는 것에 달려있지 않고 성도들의 행함, 곧 매일의 생활에 달려 있다. 집회에서 찬송하고 기도하고 말하기 위해 영을 훈련하는 것은 성도들이 몸의 생활을 살도록 도움을 주기는 하지만 그러한 것들 자체가 몸의 생활은 아니라는 것을 깨달아야 할 필요가 있다. 우리에게 높은 수준의 집회가 있다면 우리에게 몸의 생활이 있다는 생각은 잘못된 것이다. 나는 높은 수준의 집회에 많이 참여해 보았다. 옌타이에서의 부흥의 기간 동안에 집회들은 그 영으로 충만했다. 어떤 집회에서는 그 영께서 참석한 모든 이들을 자연스럽게 눈물을 흘리게 하시기도 헸다. 내가 다니던 대학의 총장이자 자립 중국인 교파의 설립자이기도 했던 한 연장한 형제님이 그 집회들에 참석했었다. 그는 이전에도 우리의 집회들에 오기는 했었지만 그 교파에서 나오지는 않았다. 그러나 그의 자녀들은 옌타이 교회 안에 있었고, 부흥이 시작되었을 때 그들은 아버지에게 그 상황을 와서 보라고 강하게 격려했다. 얼마 후 그가 왔고, 그가 참석한 첫 번째 집회에 수백 명의 성도들이 있었는데 그들 모두가 자연스럽게 눈물을 흘렸다. 이 연장한 형제님이 나중에 증언하기를 자신이 그 집회에 갔을 때 자신도 즉시 눈물을 흘렸다고 했다. 그는 흐르는 눈물을 주체할 수가 없었다. 그 후에 그 형제님은 교파에서 인도자들이었던 자신의 친구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주님의 회복의 길에 들어섰다. 결국 그 형제님은 홍콩 교회의 장로가 되었다. 옌타이에서의 부흥의 기간 동안에 있었던 집회들은 참석한 모든 이들이 그 영을 거부할 수 없을 정도로 능력이 가득했지만, 여전히 그것은 몸의 생활이 아니었다. 몸의 생활은 영을 따라 행한 것에서 온다.


옌타이에서의 부흥이 주님께 속한 것이었음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다. 그러나 부흥이 몸의 생활은 아니다. 부흥은 어느 정도 일시적이지만 몸의 생활은 영속적이다. 1904년에 웨일즈 지역에서 이반 로버츠의 사역을 통해 큰 부흥이 시작되었다. 그 부흥은 웨일즈 전 지역에 영향을 주었지만 곧 끝나고 말았다. 이것은 다시 한 번, 부흥이 몸의 생활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준다. 오늘날 주님은 어떤 부흥을 시작하시는 것이 아니라 몸의 생활, 곧 그리스도의 몸의 실현과 생활을 회복하기 원하신다. 옌타이에서의 부흥 가운데 모든 성도들, 약 팔백 명의 형제자매들은 그들 자신과 가족과 재산을 헌신했다. 그들은 말 그대로 그들의 집문서를 포함한 그들의 재산을 교회에 드리기 위해서 집회소로 가지고 왔다. 그 당시에 우리는 모든 것을 공동으로 소유했다. 그러나 이들 팔백 명의 성도들 중에 거의 절반은 주님의 회복의 길을 떠났다. 오직 영을 따라 행한 이들만이 주님의 회복 안에 남았다.


장로들인 우리는 앞장서서 영을 따라 행하고 그러한 생활을 우리가 섬기는 성도들에게 공급하는 것이 우리의 일이 되어야 한다는 것을 반드시 보아야 한다. 이것이 우리의 일이 아니라면 우리가 하는 모든 것은 공허한 것이 되고 말 것이다. 나는 옌타이에서 가졌던 부흥과 같은 것은 그전에도 그 후에도 본적이 없다. 백일 동안 날마다 집회가 있었고 모든 집회는 살아있고 높았다. 팔백 명의 모든 성도들이 다른 어떤 것도 관심하지 않고 주님의 군대로서 보냄을 받도록 준비되고자 하는 한 가지 갈망만을 가지고 있었다. 그 후에 복음을 위해 칠십 명이 배를 타고 내몽고로 이주했고, 삼십 명은 배를 타고 남만주의 안동으로 이주했다. 그러한 큰 부흥에도 불구하고 오직 영을 따라 행한 이들만이 교회생활 안에 남았다. 그러므로 부흥의 일은 전혀 신뢰할 수 없다. 나는 이 공과를 배웠다.


나는 어떤 종류의 부흥의 일이나 집회에서 영을 해방하는 것도 신뢰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내가 이러한 것들을 귀하게 여기지 않는다는 의미는 아니다. 나는 성도들이 그들의 영을 해방하는 것을 보기를 좋아하지만 그것을 신뢰하지는 않는다. 1968년에 어떤 교회의 네 부부가 집회에서 말씀을 기도로 읽는 실행을 시작하려고 했다. 그러나 교회의 나머지 성도들은 그것을 반대했다. 그래서 나는 그들 네 부부에게 집회에서 말씀을 기도로 읽는 것을 주장하지 말고 가정에서 실행하라고 격려했다. 오늘 그들 중 두 부부는 여전히 주님의 회복 안에 있지만 나머지 두 부부는 떠났다. 말씀을 기도로 읽기, 주님의 이름을 부르기, 찬송하고 찬양하는 것과 같은 실행들은 도움이 되며 부흥도 역시 도움이 된다. 그러나 우리는 이러한 것들을 신뢰하지는 말아야 한다. 집회에서 강하게 영을 해방했던 많은 이들이 주님의 회복 안에 남아있지 않게 되었다. 오직 영을 따라 행했던 이들만이 남았다. 우리는 영을 해방하는 것은 어떤 방식이든 반대하지 말아야 하지만, 이러한 것들을 강조할 필요도 없다. 이것들은 성도들에게 도움이 되지만, 몸의 생활을 하기 위해서 성도들은 반드시 영을 따라 살기를 시작해야 한다. 집회에서 영을 해방하는 것은 영을 따라 행하는 것과 똑같은 정도의 영적 가치나 무게를 갖고 있지 않다. 우리의 일의 목표가 다만 성도들이 집회에서 그들의 영을 해방하도록 분발시키는 것이라면 우리의 일은 공허하게 될 것이다. 집회의 상태는 끊임없이 변하는 날씨와 같다. 나는 집회에서 갖는 외적인 실행들을 신뢰하지 않는다. 어떤 형제가 장로가 될 것인지 아닌지의 여부는 주로 집회에서 그의 상태에 따라 결정되어서는 안 된다. 우리는 그것을 신뢰하지 않는다. 어떤 곳들은 부흥이 필요하다. 그러나 우리는 부흥을 신뢰해서는 안 된다. 부흥은 성도들을 영을 따라 행하는 것으로 안내해야 한다. 로마서 8장과 12장은 오직 그러한 행함만이 우리를 그리스도의 몸의 실행 안으로 인도한다는 것을 계시하고 있다.


성도들이 영을 따라 행하는 것이 교회의 필요임


주님의 회복 안에서 필요한 것은 일생생활에서 영을 따라 행하는 것이다. 신약에는 교회 안에서 사도들과 장로들과 집사들 사이에 어떤 질서가 있다. 그렇지만 모든 성도들이 영을 따라 행한다면 이러한 안배나 칭호들이 반드시 필요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한 안배가 필요한 것은 생명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새 예루살렘에는 사도들도 장로들도 집사들도 없고 오직 보석들만 있다(계 21:19, 비교 벧전 2:5). 어떤 지위나 호칭도 새 예루살렘 안으로 들어가지 못할 것이다. 새 예루살렘에 열두 사도들이 있을 것이지만 그들은 건축을 위한 돌들로서 그곳에 있게 될 것이다(계 21:14,19). 오늘 우리에게는 새 예루살렘의 미리 맛봄이 필요하다. 우리는 모두 그리스도의 몸의 지체들이고 그리스도를 우리의 머리로 가지고 있는데, 만일 우리에게 우리를 규제하는 장로들이 필요하다면 그것은 수치이다. 모든 도시에는 경찰이 있지만, 경찰이 시민들을 직접 통제하는 것은 시민들에게 수치이다. 경찰이 우리의 집에 오는 것은 불명예스러운 것이다. 모든 시민들이 스스로 합당하게 행동한다면 경찰이 필요 없을 것이다. 어떤 지방 교회의 모든 성도들이 영을 따라 행함으로 새 예루살렘의 축소판이 된다면 장로들은 할 일이 많지 않을 것이다. 어쩌면 장로들이 해야 하는 것이라고는 집회 시간에 대해 광고하는 것뿐일 것이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외적으로 규제받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건축을 위해 귀한 보석들로 변화되는 것이다. 장로들은 성도들의 변화를 위해 성도들에게 생명을 공급해야 한다.


교회 안으로 호칭과 지위와 안배가 들어오게 된 것은 생명의 결핍 때문이다. 그러나 요한계시록에는 사도들과 장로들과 집사들이 없기 때문에 우리는 이러한 것들이 하나님의 의도가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요한계시록의 저자인 사도 요한조차도 자신을 사도로 여기지 않았고 다만 영 안에 있는 한 형제로 여겼다(계 1:9-10). 일곱 영이 계실 때, 모든 호칭과 지위들은 사라진다(계 1:4). 요한계시록에서 우리는 사도들이나 장로들이나 집사들이 아니라, 등잔대들인 교회들에게 빛을 비추시는 일곱 영을 본다(계 3:1, 4:5, 1:20). 모든 지방 교회는 장로들에 의해 규제를 받는 것이 아니라, 일곱 영에 의해 빛 비춤을 받는 빛나는 등잔대들이 되어야 한다.


인도하는 이들로서 우리는 외적인 행함이나 통제를 신뢰하지 말아야 한다. 오히려 우리는 충분히 기도하고 영을 따라 행하는 것에 앞장서며 성도들에게 생명을 공급해야 한다. 안배하는 것이 우리의 주된 관심이 되어서는 안 된다. 몇 년 전에 나는 타이베이 교회의 집사실 안에 서류와 문서들이 가득한 것과 모든 봉사자들이 판에 박힌 일들로 바쁜 것을 보았다. 나는 인도하는 이들에게 안배도 잊어버리고, 조직적이고 판에 박힌 일도 잊어버리고, 영과 생명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강하게 충고했다. 그 영이 부족할 때 우리는 판에 밖인 일을 붙들고 마치 세상적인 기업처럼 되는 경향이 있다. 인도하는 이들은 그들의 일이나 안배가 아니라 그 영을 신뢰해야 한다. 오늘날의 기독교는 주로 종교적인 일과 판에 박힌 일과 조직에 속한 것이다. 그러나 교회는 살아 있는 유기체이다. 그러므로 우리의 봉사는 판에 박힌 것이 아니라 유기적인 것이어야 한다. 교회 안에서 판에 박히고 조직적인 일은 바벨탑을 세우기 위해 사람들이 만든 벽돌과 같다. 장로들로서 우리는 사람에 속한 그 어떤 일도 버리고 다만 성도들이 영을 따라 행하도록 돕는데 앞장서야 한다. 주님의 회복은 전적으로 영과 생명에 속한 것이다. 회복의 내용과 실재는 영과 생명이며, 회복의 경계도 역시 영과 생명이다. 어떤 사람이 회복 안에 있는지의 여부는 외적인 모습이 아니라 영과 생명에 속한 내적 실재에 달려 있다. 어떤 것이 주님의 회복 안에 속했는지를 참으로 시험하고 측량하는 것은 일곱 영의 빛 비춤과 살피심이다. 지방 교회들 안에서 순서와 계급은 주님께서 보실 때 참으로 가증한 것이다. 장로는 결코 자신을 다른 이들 위에 있는 권위라고 여기지 말아야 한다. 하나님께서 기쁘게 받으시는 것은 오직 영과 생명이다.


주님의 긍휼로 우리는 그리스도의 몸이 무엇인지를 볼 필요가 있다. 몸을 본다면 우리는 주님의 회복이 무엇인지, 기독교가 무엇인지 보게 될 것이다. 종교는 주로 계급에 속한 것이다. 장로들은 교회를 통제할 수 있는 지위를 갖기를 추구하지 말아야 한다. 우리는 겸손히 자신을 낮추고 “주님, 저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저에게는 아무것도 없으며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주님, 모든 것은 주님에 의해 이루어져야 합니다. 오직 그 영이신 주님만이 사람들에게 생명을 공급하실 수 있습니다. 저는 다만 성도들을 섬기는 노예일 뿐입니다.”라고 기도해야 한다. 사람이 무언가를 다스리고 통제하려고 하는 것이 교회의 하락의 뿌리이며 종교, 곧 조직화된 기독교의 근원이다. 우리가 이것을 보지 못한다면 그러한 부패와 어둠이 우리가 있는 지방 교회 안에 숨어들어오고 큰 손상을 주게 될 것이다. 우리는 뿌린 대로 거둔다. 나는 사랑 안에서 이러한 말을 한다. 그러한 빛을 통해서 도움을 받기 위해서 우리는 폭로되어야 한다. 사랑은 언제나 진리를 말한다.


질문과 답변


질문: 안배와 조직적인 일을 버리고 성도들이 영을 따라 행하도록 돕는 것에 관해서 더 말씀해 주실 수 있습니까?


답변: 약간의 안배는 꼭 필요합니다. 그러나 어떤 것도 개인적인 소유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교회는 세속적인 사업이 아니기 때문에 우리는 결코 사무적인 일에 대부분의 시간을 허비하지 말아야 합니다. 장로들로서 우리의 대부분의 관심과 수고는 성도들을 위해 기도하고 그들을 방문하며 목양하고 그들이 자랄 수 있도록 돕는 것이어야 합니다.


교회의 재정 관리와 같이 꼭 안배해야 하는 일에 관련해서 우리는 그러한 일을 돌보기 위해서는 역량이 있고 신실한 형제들을 최소한 두 명을 항상 두어야 합니다. 두 사람은 우리에게 증거를 주고, 그리고 실행적인 면에서 한 형제가 그 일을 그만두어도 그 일을 지속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종류의 안배는 꼭 필요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조직을 신뢰하지는 말아야 합니다. 우리는 그 영과 생명을 신뢰합니다. 우리는 다른 이들이 자랄 수 있도록 그들에게 그 영과 생명을 공급해야 합니다.


우리에게는 일들을 조직적으로 안배하려는 경향이 있습니다. 따라서 장로들은 때때로 여러 가지 실무적인 봉사들을 돌보도록 그룹들을 안배합니다. 그러한 안배를 할 때 장로들은 다양한 그룹들을 인도하고 그 안에서 봉사하기 위해 어떤 성도가 가장 좋은지를 고려합니다. 그러나 이것은 생명과 관계없는 것이기 때문에 우리는 이러한 조직적인 안배를 피해야 합니다. 어떤 안배들은 꼭 필요합니다. 그러나 우리의 주된 관심은 성도들을 접촉하고 성도들과 교통하고 성도들에게 생명을 공급하며 성도들이 봉사하는 것에 관심과 부담을 갖도록 분발시키는 것이어야 합니다. 이러한 길은 생명을 수반합니다. 성도들이 와서 봉사할 때, 특정한 일들, 예를 들면 그 그룹에서 누가 인도를 해야 할지가 자동적으로 드러날 것입니다. 그럴 때는 봉사가 순조롭게 진행될 수 잇도록, 두 세 사람을 지정하여 인도할 수 있도록 약간의 안배를 하는 것이 필요하게 될 것입니다.


인도하는 이들은 성도들을 충분히 접촉해야 합니다. 주님은 장로들을 인도하셔서 성도들에게 봉사하는 것을 격려하는 메시지를 전하게 하실 수도 있습니다. 그러한 메시지는 봉사의 영과 봉사를 위한 생명을 공급해야 합니다. 그뿐 아니라 인도하는 이들은 최대한 성도들을 개인적으로 방문해야 합니다. 우리의 길은 조직화하는 것이 아니라 생명을 공급하는 것이어야 합니다. 생명의 길은 말하고 방문함으로써 성도들에게 생명을 공급하는 것입니다. 성도들은 생명을 받을 때 분발될 것이고 교회 봉사에 참여하고 싶은 마음을 갖게 될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장로들은 필요가 있을 때 균형을 잡아주고 조절하고 안배하기 위해 봉사를 감독해야 합니다. 장로들이 보기에 어떤 사람이 다른 그룹에서 봉사하는 것이 더 좋을 수도 있습니다. 이렇게 감독하는 것은 여전히 생명을 수반해야 합니다. 장로들은 그들이 감독하는 것이 조직에 속한 것이라는 인상을 성도들에게 주지 말아야 합니다. 모든 봉사 그룹은 그 분야의 봉사에 참여하기를 위하는 모든 이들에게 열려있어야 합니다. 율법적인 의무나 규제는 성도들을 죽입니다. 경계선은 조직이 아니라 영과 생명이라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위트니스 리
[영을 따라 행함으로 그리스도를 사는 것의 중요성, “7장 몸의 생활을 삶(1)”, 한국복음서원]



위트니스 리(Witness Lee)

위트니스 리 형제님의 글을 모아 둔 게시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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