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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V. 원세호님의 지방교회 「기독론」 비판에 대한 재반박(上)

 

아래 내용은 원세호님의 지방교회 기독론 비판에 대한 재 반박 글입니다. 먼저 1. 서론에서는 과연 원세호님에게 이단감별사로서의 기본 소양이 있는지를 간략하게 살펴 볼 것입니다. 그 다음 원세호님의 지방교회 비판 책자 순서에 따라 2. <그리스도께서 오신 목적> 비판 반박, 3. <예수님의 말씀이 영이란 주장> 비판 반박, 4. <그리스도를 마시려고 그 이름 부름> 비판 반박, 5. <예수그리스도를 먹는 법과 그 목적> 비판 반박, 6. <예수그리스도에 대한 양태론적 주장> 비판 반박, 7. <그리스도에 대한 이상한 주장들> 비판 반박을 차례로 할 것입니다.


1. 서론 글


원세호님은 자신을 한국교계 내에서 이단감별 분야의 권위자 중 하나로 생각하고 있는 줄 안다. 다른 믿는 이들을 이단이라고 정죄하는 일은 매우 엄중한 문제이다. 그러므로 이런 일을 하는 사람은 무엇보다도 신중하게 처신하고 경솔하지 말아야 한다. 자신이 한 일에 대해 무거운 책임을 느껴야 한다. 또한 자신과 자신이 한 일에 대해 하나님과 사람 앞에서 검증 받는 기회를 회피하지 말아야 한다. 이런 취지에서, 독자들과 함께 이단 감별사들이 갖춰야 할 몇 가지 기본적인 소양들을 생각해 볼 수 있다. 첫째는 자신이 먼저 바른 신앙을 가져야 한다. 둘째는 신앙에 맞는 바른 인격을 갖춰야 한다. 셋째는 자기가 한 판단으로 억울한 사람들이 생기지 않도록 철저하게 연구하고 최대한 객관적이어야 한다. 넷째, 연구된 것은 공감이 가는 절차와 방식으로 제시되어야 한다. 이것은 최소한의 요건이다.


이제 이 네 가지 기준으로 원세호님의 이단 감별사 자격여부를 검증해 보기로 하자.


첫째, 원세호님은 바른 신앙을 가졌는가?


장로교 통합교단은 2002년 제 87차 총회에서 원세호님의 <창조론>, <인간론>, <삼위일체론>이 비 성경적이고 이단적이라고 판단하고 이를 공개적으로 발표했다(이러한 예장통합 사이비이단대책위원회 보고서 내용은 http://www.eedan.net/edan1-1.php을 참조). 이 보고서는 아울러 <향후 원세호씨의 그릇된 가르침과 주장에 동조하는 일이 없도록 각 교회에 숙지시켜 주시기 바랍니다>라고 덧붙이고 있다. 물론 원세호님 본인은 이런 결정에 불만을 갖고 있는 줄 알고 있다.


원세호님은 삼위일체 하나님을 <하나님들>이라고 했다. 또한 고후 13:5 '예수 그리스도께서 너희 안에 계신 줄...'이란 말을 <예수 그리스도만 우리 안에 계시고 아버지와 성령은 안 계신>의 의미로 이해한다. 이것은 원세호님이 아버지와 성령은 제외된 1/3 하나님인 <아들만> 성육신 하셨고 또 우리 안에 들어오셨다고 믿는다는 것을 보여 준다. 바로 이것이 삼위의 지나친 분리와 독립을 강조하되, 구별된 삼위의 상호내재 사실을 부인함으로 결국 하나님이 한 분이심을 부인하는 삼신론자들의 현주소이다. 그러나 성경은 그렇게 말하지 않는다. 골로새서 2:9(원문)은 '신격(Godhead)의 모든 충만이 육체로 거하셨다'고 말한다. 이것은 <삼위의 일부가 아닌, 구별되나 상호내재 하시는 삼위 하나님 전부가 예수님 안에서 육신을 입으셨음>을 증거하는 것이다. 이와 다른 원세호님의 주장은 비 성경적이다.


따라서 원세호님은 적어도 <삼위일체론>, <기독론> 등 핵심진리에 있어서 바른 신앙을 가지지 못했다.


둘째, 원세호님은 신앙에 맞는 바른 인격을 갖췄는가?


이 점은 원세호님의 글과 이러한 재 변증 글을 상호 비교한 후, 독자들이 스스로 판단하기 바란다. 다만 여기서는 침례신문(2000. 2. 22.)에 발표된 기침교단의 원세호님의 인격에 대한 공개적인 언급을 객관적인 자료로 제공하겠다(http://www.eedan.net/edan2-7.php).


(원세호님은) <공식 기구의 결의들을 무시: 원세호는 자신이 기독교한국침례회 이단대책위원회의 위원으로서 위원장 선출에서 당선되지 못한 이후 위원회를 탈퇴하여 교단과 상관없이 독자적인 행동을 하였다. 그 자신이 몸 담고 있던 교단의 공식기구인 이단대책위원회, 임원회, 제87차 정기총회이후 제89차 총회에 이르기까지 이와 관련된 교단의 결의들을 무시하고 있다. 우선 원세호를 근신에 처한 것은 어떻게든지 그의 당장 제명을 막아보려는 의장단과 대의원들의 선한 아량과 노력의 결과였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의장단을 포함하여 자기 맘에 맞지 않는 교단의 원로들에 대한 공격을 자제하지 않았다. 근신기간을 통하여 교단은 원세호에게 자성과 회개의 기회를 주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기간 동안 내용증명을 통하여 오히려 교단 결의가 불법이라는 잘못된 논리로 일관하며 비방을 그치지 않았다. 원세호는 무수한 글에서 총회장을 위시한 교단의 학자나 원로들을 이단에 야합한 무리처럼 취급하며 인격 모독행위를 자행하였다.> <법정에 교단을 피고로 세움: 원세호가 교단 결의를 원천무효라 주장하며 기독교한국침례회를 사법기관에 고소하여 피고로 법정에 세운 행위는 용납될 수 없는 것이다>.


셋째는 이단연구 시 억울한 사람들이 생기지 않도록 최대한 객관적이어야 하고 철저한 사전 연구를 해야 한다.


원세호님은 지금까지 자신의 이단 연구 과정에서 최선을 다 했다고 말할 수 있는가? 목회하랴 연구하랴 시간에 쫓겨 건성으로 한 적은 없는가? 자신이 미리 내린 결론에 맞추는 식의 연구는 없었는가? 특정 교단(특정인)을 염두에 둠으로 판단 기준이 굽지는 않았는가? 상대방에 대해 참으로 제대로 알고 판단했는가? 만일 이런 질문들에 대해 원세호님 양심에 조금이라도 거리낌이 있다면 그의 연구물은 믿을만 하지 않다. 객관성이 없다. 공정하지도 않다. 하나님이 함께 한 일이 아닐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다음과 같은 사실들은 원세호님이 이러한 기준에서도 합당한 자격조건을 갖추지 못했음을 보여주고 있다.


1) 통합 측 총회장의 명예를 세워주기 위한 연구동기가 부당함


원세호님이 회장으로 있는 <기독교이단사이비연구대책협의회>는 2002년 9월 19일자로 공개 규탄 성명을 내었다. 그 내용 중에는 현재 재 반박의 대상이 되고 있는 『지방교회의 주장과 성경적 변증서』책자가 지방교회에게 망신당하는 통합측 총회장들의 명예회복을 위해 집필되었음을 밝히고 있는 대목도 있다. 문제의 부문을 인용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7. 오늘날의 이단은 살아남기 위하여 정치와 언론을 사로잡아... 이단이 아니라고 희석시키고 있습니다. 이것이 이단자들의 전략입니다. 통합측에 보낸 내용증명을 공개하여 사실 여부를 밝힐 것...그 이유는 이단시비에서 통합측의 명예를 세우기 위함입니다. 또한 본 협의회 회장 원세호 박사님이 지방교회에게 망신당하는 통합측 총회장님들의 명예는 주님과 한국교회 우리 모두의 명예와 관계된다고 판단하여 『지방교회의 주장과 성경적 변증서』를 집필하여 그 명예를 회복해 준 것 역시 잘 알아야 합니다>.


누가 누구의 무슨 명예를 회복시킨다는 말인가? 이런 어처구니없는 내용은 지금도 원세호님 홈인 http://www.biblicaltruth.co.kr/source/020921_yejangtonghap_gyutan.htm 에 올려져 있다.


2) 검증 안된 자신의 문하생들의 초기연구에 전적으로 의지함으로 부당함


국내 이단 감별사들의 소위 이단연구 방법 중엔 이런 경우도 있는 것 같다. 즉 우선 자기가 이단으로 정죄하려는 상대의 설교 테입이나 책자들을 자신의 문하생들에게 나눠준다. 문하생들에게 테입을 듣거나 책을 읽고 문제 있는 대목을 발췌 요약하라고 지시한다. 일정기간 후 문하생들이 만든 기초 자료를 수집한다. 이 기초자료들을 토대로 이단 감별사들은 소위 연구보고서를 만든다. 이 때 자신이 신학교에서 배웠던 교단신학과 그 동안 이단 만들면서 채득한 '이단공식 노하우'를 적절히 활용한다. 보고서 뒤나 앞에 마치 자신이 직접 다 읽고 참고한 것처럼 생각되도록 문하생들이 읽은 책자들 리스트를 참고문헌으로 첨부한다. 그리고 자기가 전적으로 연구한 것처럼 자신의 이름만으로 발표한다.


이런 과정을 거쳐 만들어진 소위 연구보고서는 참으로 문제점이 많다.


(1) 가장 치명적인 문제점은 이단 감별사들이 비판 대상의 원래 자료들을 직접 대하지 않은 채 부분적인 정보를 근거로 함부로 이단 삼단 하는 것이다. 엄중한 이단 정죄를 단지 문장 표현 이상한 것 몇 개를 추려낸 것으로 할 수는 없는 일이다. 어떤 사람의 중심 신학사상은 그 사람이 쓴 책을 여러 번 차분하게 읽어보아야 알 수 있다. 그리고 때로는 다만 해당 단락 뿐 아니라 그가 쓴 책 전체에서 그 주제가 어떻게 전개되는지도 보아야 한다. 또한 이 책과 저 책간의 비교 분석도 필요할 때가 있다. 이런 복합적인 일을 신학을 갓 배우기 시작한 문하생들이 할 수 없다. 할당된 지극히 부분적인 정보로는 더욱 그렇다.


(2) 이런 방식은 대상자료가 비 성경적인지 아닌지를 1차적으로 문하생들이 판단한다. 그리고 이들의 판단기준에는 자신들이 배운 교단신학이나 개인 생각이 많이 반영되어 있다. 그러나 정작 문하생들의 기준은 검증된 바가 없다. 따라서 이들이 실제로 찾아 낸 것들은 <워치만 니가 겉사람을 파쇄시킨다고 했다>는 식의 피상적인 표현에 대한 트집잡기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고 만다.


(3) 분석대상으로 추출된 자료들이 이런 식이니 이단 감별사들도 심도 있는 연구보다는 말꼬리 잡는 식의 비판을 할 수 밖에 없다. 그야 말로 핵심은 놓친 수박 겉 핥기 식 연구물이 되고 마는 것이다. 따라서 중구난방 식으로 늘어만 놓을 뿐, 글에 논리나 체계가 없는 것은 어쩌면 당연하다. 글쓴이의 원래 의도와 전혀 다른 내용의 엉뚱한 비판이 가해지는 해프닝이 연출되기도 한다. 지방교회 비판자들은 너무 성의 없게 비판 글을 쓰는 경향이 있다.


(실제로 차영배 박사는 최삼경 목사를 두둔하는 자신의 한 변증 글에서 고전15:45에 대한 위트니스 리의 글을 인용한 다음, '아담은 산 영이 되었다고 해서 몸은 없고 영으로 되었다는 말씀이 아니다'라며 장황한 비판을 했다(월간 교회와 신앙, 2001. 10월호, 119쪽). 지방교회 성도들은 사실무근 한 것을 트집잡는 이런 글을 읽으면 '아니 누가 언제 아담이 몸은 없는 영의 존재라고 말하기라도 했는가?' 라는 반문을 한다. 그리고 차영배님은 신학박사로서 위 원문이 '산영'이 아닌 '산혼'(a living soul)이란 사실도 모르는가 하는 의문을 가진다).


그런데 매우 유감스럽게도 위와 같은 부정적인 특징들이 원세호님의 『지방교회의 주장과 성경적 변증서』변증책자에서도 고스란히 발견되고 있다. 원세호님은 자신의 문하생들의 도움을 입었다는 사실을 비교적 솔직하게 자신의 변증책자 결론 글에서 다음과 같이 밝히고 있다.


<...본 연구를 위하여 자료를 수집하고 (자신이 책임자로 있는) 임마누엘 목회 연구원생들에게 2~4권씩의 자료를 배분하고 성경과 상이한 부분을 검토하도록 해서 순종한 분들이 15명쯤 되나 그 이름을 거론치 아니한다. 이는 그들에게 누가 될 수 있을까 함이라. 오랫동안 워치만 니의 제자들인 권신찬, 유병언, 이복칠, 박옥수 라는 여론이 사실로 드러났으므로 한번 '워치만 니'나 '위트니스 리'의 저술을 연구하기를 원했는데 협의회의 의뢰로 연구한 결과 묵인하면 내가 화를 당할 것이라는 두려운 생각이 들어서 일부분이나 전반적인 연구를 하였다...이 연구의 집필은 2001. 7. 1~9. 12 (74일간) 하루 12시간으로 여름을 잊어 버렸고...>.


거듭 강조하건대, 한국교계는 일개 개인들에게 이단을 단정하는 중대한 일을 맡겨서는 안될 것이다. 검증을 거친 책임 있는 기관이 상대방에게도 충분한 의견 개진 기회를 주면서 누가 봐도 납득할만한 판단을 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특정 교단 교리가 아니라 전적으로 성경에 기초한 결정을 해야 한다. 만일 어떤 개인이 주께 받은 사명이라며 비공식적으로라도 이런 일을 계속 하겠다고 한다면 말릴 수는 없다. 그러나 최대한 충분한 시간을 가지고 본인이 직접 연구하도록 해야 한다. 지금처럼 목회도 하고 이단연구도 하는 양다리 걸치는 식은 불가피하게 부실한 목회 또는 부실한 이단연구로 이어지고 만다. 자신의 분량을 바로 알고 처신해야 한다.


3) 원세호님은 지방교회 연구 시 너무 안이하고 느슨하게 접근함이 부당함.


60여 권이 넘는 책이 워치만 니를 저자로 하여 출판되었다. 그는 총 3집이나 되는 자신의 전집을 가진 사람이다. 또한 위트니스 리는 90이 넘게 생존하면서 만 70년 동안 신실하게 성경을 연구한 성경교사이다. 그 결과로 성경 66권 전권에 대한 자신의 주석서를 가지고 있다. 그의 생전에 출판된 그의 저술만도 수 백 권이 된다. 원세호님은 어찌 이런 사람들에 대한 연구비판의 일을 그처럼 경솔하고 안이하게 다룰 생각을 했는가?


원세호님의 안이한 연구태도에 대한 구체적인 증거를 제시해 보자.


원세호님은 자신의 기독론 변증 서두에서 <이미 기독론에 있어서 지방파에 대한 연구를 치밀하게 한 결과 참으로 위험한 자들이라는 것을 발견하게 되었다>고 적고 있다. 원세호님은 참으로 지방교회의 기독론을 치밀하게 연구했는가? 그렇다면 왜 위트니스 리의 기독론을 집대성한 책인 약 710쪽 분량의 <신약의 결론-그리스도>(한국복음서원, 1991)는 읽지 않았는가? 원세호님은 이런 책이 있다는 사실은 알았는가? 독자들은 이 <신약의 결론-그리스도> 책자가 원세호님이 참고했다는 서적 목록에 누락되어 있음을 지금이라도 확인 할 수 있다. 본문에서 인용한 흔적도 전혀 없다. 어떻게 특정인의 기독론을 철저하게 연구 비판하겠다는 사람이 그 사람이 쓴 기독론 교리책자를 연구 대상에서 제외시킬 수가 있는가? 이것이 상식적으로 가능한가? 학문을 제대로 연마한 사람이라면 다른 소소한 자료들은 제켜 놓더라도 바로 이런 책자를 심층 연구하여 자신의 비판자료를 내어놓지 않겠는가?


또 한 가지 예를 더 들어보자.


원세호님은 마치 지방교회측이 기존의 신학들을 모르거나 일반 신학자들이 납득할 수 없는 잘못된 이론체계를 세워 놓은 것처럼 사실을 왜곡시키고 있다. 물론 위트니스 리는 딱딱한 신학논문 같은 책을 쓰지는 않았다. 대부분이 청중을 상대로 한 설교 형식의 글이다. 그러나 위트니스 리 자신도 초대교부들의 가르침이나 성례전 신학, 개혁신학, 형제회 세대주의 신학, 심지어 최근의 신학사조들에 대해 분명한 이해를 하고 있다. 이 점은 그가 쓴 <장로훈련 IV-주의 회복의 실행에 관한 몇 가지 중점들>(한국복음서원, 1994, 17쪽)을 읽어보면 알 수 있다. 원세호님은 자신의 짧은 시간의 연구를 토대로 지방교회 성도들을 신학도 모르는 이상한 사람들로 오도하지 말기 바란다.


지방교회 성도들은 원세호님의 지적처럼 생명과 생명의 체험을 중시한다. 이것만이 주님의 갈망인 그리스도의 몸을 건축할 수 있기 때문이다(마16:18, 요10:10). 그러나 이와 병행하여 그 동안 주님이 보여주신 진리의 빛들을 기존의 신학적인 틀 안에 있는 사람들에게 그들이 납득할 수 있는 논리와 체계와 어휘들로 제시하는 작업도 꾸준히 있어 왔다. 즉 1996년에 창간된 <확증과 비평>(Affirmation & Critique)이 그것이다. 최근호인 2002년 10월 호는 144쪽 전체에 걸쳐 '신화'(Deification)를 특집으로 다뤘다. 이런 자료는 미국 기독교계를 향하여 지방교회 측이 믿는 진리를 신학적인 틀을 갖추어 제시한 것임으로 미국 주요 신학 대학교 도서관에서 참고할 수 있다. 물론 확증과 비평 홈페이지에서도 그 일부 내용을 직접 읽을 수 있다(http://www.affcrit.com/archives/ac_02_02.html). 참고로 이 신학잡지는 1997년 10 월호(Vol. II, No.4)에서 원세호님이 기독론 비판에서 피상적으로 몇 줄 언급한 소위 '공기 같으신 그리스도'(The Pneumatic Christ)에 대해서도 64쪽에 걸쳐 특집으로 다룬 적이 있다(이 부분은 다시 언급할 것이다).


지방교회측은 성경적으로나 교회 역사상으로나 바른 진리를 가르치고 있다.


그러나 그 동안 소위 지방교회 전문가를 자처하는 사람들이 이것을 왜곡 소개해 왔다. 그들은 고작 수박 겉 핥기식 연구를 하고서도 마치 지방교회의 모든 것을 아는 것처럼 처신했다. 그들은 많은 방면에서 사실을 왜곡시켰고 지엽적인 것을 부풀렸다. 유감스럽게도 원세호님도 이점에서 예외가 아니다. 한 가지 증거를 제시해 보자. 원세호님은 워치만 니의 '자아의 파쇄'라는 표현에 우려하며 <이런 사상에 잘못 물들면.. 판단력이 없는 어떤 사람들은 살인이나 자살도 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걱정도 된다>라고 쓰고 있다. 그러나 워치만 니가 쓴 <자아의 파쇄>라는 표현은 마16:24에서 예수님이 말씀하신 <너 자신(자아)을 부인하고>의 의미일 뿐이다. 이것은 그 책의 몇 페이지만 제대로 읽어보아도 알 수 있다. 섣부른 이단 감별사들이 하는 일은 매사가 이런 식이다.


독자들은 이처럼 쉬운 길을 택해 연구하고, 경솔하게 말하는 사람들을 너무 신뢰하지 말기 바란다. 그 대신 참으로 지방교회를 알고 싶으면 지방교회의 모든 것을 알 수 있는 싸이트인 http://www.christianwebsites.org 를 방문해 보기 바란다. 비록 영문으로 되어 있긴 하지만 개괄적인 흐름은 파악할 수 있을 것이다.


4) 원세호님이 기독론의 핵심요점이 아닌 지엽적인 것을 논함이 부당함.


원세호님은 기독론을 다룸에 있어서 전통적인 요점들을 다 누락시켰다. 다만 피상적으로 <표현상의 이견>에 대해서만 왈가왈부 했다. 그리고 이런 내용이 비판 글의 대부분을 채우고 있다. 교회 역사상 주요 이단들은 그리스도의 인격에 대한 오해에서 비롯되었다. 그리고 이런 이단 결정도 특정 개인이 아니라 공교회를 통해서 이뤄졌다. 그 내용을 간략하게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그리스도의 인격에 대한 분별의 역사만 보더라도 '가현적 영지주의자들'(Docetists)(AD 70-170)같은 <그리스도의 인성부인 이단>, '에비온파'(Ebionites)(AD107) 같은 <그리스도의 신성부인 이단> 등 초기 이단을 제외하고 다 교회 공회의 결정에 따라 이단 정죄가 이뤄졌다. 즉 그리스도의 불완전한 신성을 주장한 <아리우스파>에 대해서는 니케아 공회(AD 325)에서, 그리스도의 불완전한 인성을 주장한 <아폴리네리안>에 대해서는 콘스탄티노플 2차 공회(381년)에서, 그리스도의 양성이 분리되었다는 <네스토리안>의 가르침은 에베소 3차 공회(431년)에서, 그리스도의 양성이 하나로 융합되어 제 3의 물질이 되었다는 <유티키안> 가르침은 칼케돈 4차 공회(451년)에서 각각 이단으로 정죄되었다. 그리고 이에 더하여 콘스탄티노플 5차 공회(553년)는 그리스도가 신성과 인성 둘 다를 소유하셨고, 각각 완전하지만 분리되거나 혼돈되거나 새로운 본성으로 바뀌지 않고 한 인격체 안에서 결합되신 분을 믿는 것이 정통 기독론임을 인정했다(위트니스 리, 진리의 변호와 확증, 한국복음서원, 1996, 90-97쪽 요약).


사실이 이와 같다면 원세호님은 기독론 비판 시 자신의 연구대상에 이런 요점들을 당연히 포함시켰어야 마땅하다. 그러나 그렇지 못했다. 그냥 자신의 문하생들이 모아다 준 소위 <문제 있다고 생각되는 표현들>을 단편적으로 평가하는 것에 그쳤다. 그러다 보니 원세호님의 연구물은 학문적인 깊이가 없다. 객관성도 없다. 이것이 원세호님의 자질 문제인지 아니면 성급한 작업일정 때문이었는지는 분명치 않다.


넷째, 연구된 것은 공감이 가는 절차와 방식으로 제시되어야 한다.


가장 중요한 절차는 연구결과를 확정하고 공개적으로 발표하기 전에 상대방이 의견을 개진할 기회를 주는 것이다. 공의회의 결정과정이 그러했다. 그러나 원세호님은 그렇지 못했다. 또한 상대방의 반증이 있으면 양측의 글을 함께 게재하여 독자들이 비교 평가하게 해야 한다. 그러나 지금까지의 과정은 그러하지 못했다. 원세호님이 자신의 연구물에 대해 자신한다면 지금이라도 이런 재 반박글 전문을 현재 자신의 홈페이지에 올려져 있는 문제의 비판 책자와 함께 소개해야 옳다. 원세호님의 이러한 양심적인 후속보완 조치를 기대해 보겠다.


이상에서 보았듯이 원세호님은 이단 감별사로서 합당한 자격에 미흡한 면이 많다. 따라서 독자들도 이러한 점들을 감안하여 사실이 무엇인지를 바로 파악하고 원세호님의 글로 미혹됨이 없기를 바란다.

 


2. 원세호님의 지방교회 <예수 그리스도의 오신 목적> 비판 재 반박


앞에서도 반복해서 지적하였지만 원세호님 비판 글은 체계가 없다. 중복되는 것도 많다. 그러므로 재 반박 글에서는 별도의 번호를 붙인 비판이라도 내용이 같으면 하나로 묶어서 다루도록 하겠다. 이번에도 위트니스 리 등 지방교회 측의 주장을 먼저 소개하겠다. 그 다음에 원세호님의 비판글을 소개하고 이에 대해 반박하겠다.


1) 워치만 니 주장: <① "하나님 아버지와 구별되는 주님 안에서 있는 그것은 예수님께서 사람들과 같이 되셨을 때 받으신 인간 혼이다. 우리 주님은 완전한 사람으로서 혼 뿐 만 아니라 몸도 가지고 계셨다.....그래서 주님께서 혼으로부터 즉 자기 자신의 마음대로 행동을 한다는 것은 가능한 일이었다">(21.(정상적인 그리스도인의 생활) p. 260, 하 6-12).


<원세호님의 비판: ① 예수님께서 인간이 되셨을 때에 '혼'을 받았다고 한다... '혼'은 생명현상 개념이며 실존이 아니다. 영이나 몸은 실존체이나, 혼은 영혼이며 히브리어로 nephesh이고 희랍어로 (퓌슈케)이다. 혼은 영혼의 생명현상으로 정신 목숨 등이나 실존적인 개념으로 영혼은 영과 육체가 결합된 산 사람인 것이다. 그러므로 혼을 받았다는 주장은 거짓이다.>


** 반박: 원세호님의 위 인용문은 '생명의 말씀사'에서 나온 번역본을 참고한 것이다. 번역상 다소 매끄럽지 못한 부분이 있는 것 같다(독자들은 한국복음서원 번역본 p.205의 동일 내용을 비교 참조하기 바람). 아무튼 위 문맥을 보건대, 저자는 <예수님은 아버지 하나님과 달리 사람이 되셨을 때 얻으신 인간 혼이 있다>. <주님은 완전한 사람으로서 혼뿐 아니라 몸도 있으시다>는 것을 말하고 있다. 그런데 원세호님은 이에 대해 <예수님이 성육신 때 인간 혼을 받았다(소유했다)는 말이 거짓이다>라고 비판하고 있다. 이 말은 <예수님에게는 '실존체'로서의 '인간 혼'은 없다>는 주장이다. 과연 그런가?


정통 기독론은 <예수 그리스도가 '온전한 하나님 완전한 사람'(complete God, perfect man)임을 믿는 것이다(http://www.localchurch.kr/731). 이 말은 예수님은 하나님임과 동시에 죄만 없으시지 우리처럼 사람의 영, 사람의 혼, 사람의 몸을 가지신 완전한 사람이시라는 것이다. 그런데 교회 역사상 이것을 부인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즉 '예수님의 사람의 영'은 보통 사람의 영과 다른 <로고스>로 되어 있다고 함으로 예수의 불완전한 인성을 주장한 것이다. 물론 이단으로 정죄 되었다. 이제 원세호님은 예수에게 사람의 혼은 없으시다 고 주장한다. 이것 역시 비 성경적인 주장이다. 성경은 다음과 같이 인간 예수에게 실존체로서의 사람의 영, 사람의 혼, 사람의 몸이 다 있으심을 말해주고 있다.


(1) <예수님의 사람의 영>(요11:33): '우시는 것을 보고 <심령>에 통분히 여기시고...'.


위에서 <심령>으로 번역된 본문은 'he groaned in the spirit' 으로서 <예수님의 사람의 영>이다. 영어성경은 통상 성령은 대문자 '에스'(S)로, 사람의 영은 소문자 '에스'(s)로 구분한다. 위 본문은 소문자 에스(s)이다. 예수님의 '사람으로서의 영'을 언급한 곳은 이외에도 막2:8, 요13:21 등이 있다. 모두 영어 원문은 소문자 에스<spirit> 이다.


(2) <예수님의 사람의 혼>(마26:38): '...내 <마음>이 심히 고민하여 죽게 되었으니'


위에서 <마음>으로 번역된 본문은 'My soul is exceedingly sorrowful..'로서 <예수님의 사람의 혼>이다. 위 'soul' 은 '프쉬케'(5590)로서, 이 구절은 예수님에게 단순한 생명 현상으로서가 아닌 실존체로서 '사람의 혼'이 있으심을 입증하는 성경근거이다. 요 12:27 도 역시 <예수님에게 실존체로서 혼이 있으심>을 말해주는 근거 말씀이다. 즉 '지금 내 마음이 민망하니 내가 무슨 말을 하리요...'의 영어 원문은 'Now is my soul troubled' 이다. 여기서 'soul'은 '마음'(heart) 이 아닌 '혼'으로 번역해야 옳다. 또한 원세호님은 '실존체'와 '생명현상'이란 말을 하면서 우리 사람 안에 영과 몸 두 개의 실존체가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것은 이분설에 입각한 주장일 뿐 성경의 사실을 반영한 것이 아니다. 원세호님은 마16:25, 26, 10:28, 11:29, 요12:25, 벧후 2:8, 살전 5:23 등 혼에 대해 언급한 약 90여 군데의 성경문맥을 잘 살펴보기 바란다(이 점은 인간론 반박 시 상세히 다룰 것이다).


(3) <예수님의 사람의 몸>(요19:34): '...창으로 옆구리를 찌르니 피와 물이 나오더라.' (히10:5): "그러므로 세상에 임하실 때에 가라사대 하나님이 제사와 예물을 원치 아니하시고 오직 나를 위하여 한 몸을(a body) 예비하셨도다".


예수님은 우리와 같은 혈육을 입으셨다(히2:14). 그분은 죄만 없으시나 우리와 같은 육신을 입으셨다. 가현적인 영지주의자들의 주장처럼 실제 몸이 없는 것이 아니다.


이처럼 예수님은 하나님이시면서 사람이시다. 그분은 사람인 면에서 사람의 영과 사람의 혼과 사람의 몸을 가지고 계신다. 그럼에도 원세호님은 혼이 '생명현상 개념이며 실존이 아니다' 는 등의 이유로 예수님이 사람의 혼을 가지심을 부인하는 것은 잘못이다. 이것은 결국 예수님의 완전한 사람되심을 부인하는 것이며 그리스도의 양성을 부인하는 이단사상이 될 수 있다. 성경은 혼(soul)을 사람의 구성부분 중 일부를 가리키기도 하지만 산 사람 전체를 지칭하기도 한다. 창46:27은 야곱의 집사람으로서 애굽에 이른 자가 도합 '70 혼'(soul)이라고 했다. 따라서 원세호님이 <혼은 실존이 아니다> 라고 한 주장은 거짓이다.


2) 워치만 니 외 주장: <② "최초에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권세를 잡게 하였다. 사람으로 사탄을 멸하게 하셨다. 예수님은 곧 그 사람이시다. 그 사람이 지금 보좌 위에 앉아 계시다, 아멘 할렐루야">(15.(교회), 생명의 말씀사, p. 21, 14-18줄). (한국복음서원 번역: "본래 하나님은 사람으로 하여금 권위를 갖도록 하셨고, 사람으로 하여금 사탄을 전복하도록 정하셨는데, 주 예수님이 바로 그 사람이시다. 그 한 사람이 지금 보좌 위에 앉아 계신다! 할렐루야," 거룩하고 흠이 없어라 p.19-20) <⑤ "즉 죄인과 사탄의 문제이다(원본은 '죄'와 사탄의 문제라고 되어 있으나 원세호님이 잘못 인용함). 하나님의 어린양이신 그리스도는 우리의 죄를 치우셨다. 놋 뱀이신 그리스도는 옛 뱀을 멸하셨다(히2:14). 우리는 모두 이렇게 말해야 한다. 할렐루야! 우리의 죄는 치워졌고 사탄은 멸망 받았다. 사탄을 멸하기 위해 그리스도는 뱀의 형태 즉 죄의 육신의 모양을 가지셨으며 육신 안에서 그분은 사탄을 정죄하고 사탄을 멸하셨다">(16.(그리스도를 체험하는 비결) p. 24 ; 13-18줄). <⑩ "하나님이 필요로 하는 바는 바로 사람이다. 만일 하나님이 친히 오셔서 사탄을 처리하신다면 매우 신속히 처리될 것이고 사탄은 단번에 처리될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친히 하시지 않고 사람으로 사탄을 처리하고 피조물을 처리하도록 하신다. 즉 예수님은 사람으로 오셨으며 그 분이 당한 시험은 뭇 사람과 똑같고...">(13.(거룩하고 흠이 없어라) p. 22, 13-17).


(1) <원세호님의 비판: ②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권세를 주어서 사탄을 멸하게 하였는데 그 사람이 예수라는 주장...그 사람이 보좌에 앉아 있다고 주장...이런 주장이 거짓이다. 왜냐하면 위트리스 리는 예수는...오순절 성령 강림 때에 재림했다고 주장했기 때문이다...지방파에서 '마귀를 멸한다'는 인용 성경은 히2:14절인데 여기의 '없이하시며'는 '완전히 쓸모 없게 하다, 헛되게 하다'인 의미이다. 지방파는 '마귀를 멸한다'는 것을 강조하는데 '멸한다' 는 말은 쳐부수어 없애 버리는 것이 아닌가, 그러나 지금도 마귀 사탄이 활동하고 있고(벧전5:8) 계시록20:10절에서 멸하는 것이다. 지금은 마귀의 일을 무효하게 하시는 것이다(1요3:8). 명심할 것은 마귀를 멸한다고 주장해서는 안 된다. 그것은 성경에 없는 말이며...>


** 반박: 원세호님은 지금 대단한 착각을 하고 있다. 예수님이 생명으로 우리 안에 오신 것도 사실이고, 동시에 지금 보좌 위에 앉아 계신 것도 성경이 말하고 있는 엄연한 사실이다. 이 둘은 모순된 것이 아니다. 우리는 둘 다를 믿고 인정해야 한다. 예수님이 사람으로서 보좌에 앉아 계신다. 에베소서 1:20은 '능력이 그리스도 안에서 역사하사 ...다시 살리시고 하늘에서 자기 오른 편에 앉히사' 라고 말한다. 막16:19, 골3:1, 히1:3 등도 동일 내용을 말한다. 그러나 이와 함께 우리 주 예수님은 부활 후 생명주는 영으로서 우리 안에 들어와 생명이 되셨다(고후13:5, 골1;27, 3:4, 요일5:11-12). 이 두 방면 모두 성경 말씀이다. 성경을 다 믿어야 한다. 로마서 8장은 같은 장에서 이 두 가지를 동시에 언급하기도 한다(롬8:10, 34). 그러나 원세호님은 자신의 논리적인 사고만 붙들고 성경의 다른 방면의 사실을 부인하는 죄를 범하고 있다.


지적한 <(마귀를) 멸하시고>는 성경 용어 <destroy him>(히2:14, 요일3:8)의 한국어 번역이다. 시사영어사 한영사전은 이것을 1) 파멸시키다. 2) ...을 멸하다 3) 무효로 하다 의 의미가 있다고 적고 있다. 이희승 국어 대사전에는 '멸하다'에는 '(쳐부수어) 없이하다'의 뜻이 있다고 한다. 개역 성경은 히2:14를 '마귀를 없이 하시며'로 번역했다. 즉 '멸하다' 라는 말에는 '없이 한다'는 의미도 있는 것이다. 따라서 원세호님 주장처럼 이런 말이 성경에 없는 것은 아니다. 위트니스 리는 신약 회복역 주석에서 히2:14 'destroy'를 'bring to nought, make of none effect, ...discard' 라고 각주에서 해설하고 있다(각주 1). 이것은 원세호님의 주장인 '완전히 쓸모 없게 하다, 헛되게 하다'와 크게 다르지 않다. 그러므로 이런 사소한 단어 표현상의 차이를 가지고 지방교회측에 사탄 관련 진리에 무슨 큰 문제나 있는 것처럼 과장할 일이 아니다.


중요한 것은 지방교회측이 '마귀를 멸하셨다'는 말을 '이제 마귀가 지구상에서 사라져서 더 이상 역사하지 않는다'는 의미로 이해하는가 하는 점이다. 이것이 사실이라면 성도의 영적 전쟁도 필요 없게 된다. 그러나 지방교회 성도 중에 이런 식으로 어리석게 생각하는 사람은 없다. 따라서 원세호님은 지금처럼 너무 민감하게 반응하지 말기 바란다.


(2) <원세호님의 비판: ⑤'우리의 죄는 치워졌고 사탄은 멸망 받았다'고 주장하는데 인간의 죄가 치워진(거두어 다른 데로 옮김)것이 아니라 조건부적으로 (1요1:9; 요16:9) 무효화시키신 것이다(1요3:8)....>


** 반박: 역시 위 '마귀를 멸하셨다'와 같은 맥락의 문제제기이다. 아마도 요1:29 의 '죄를 지고 갔다'에 해당되는 'takes away the sin'을 '죄를 치웠다'로 번역했을 수 있다. '죄를 지고 갔다'는 개역 성경 번역도 지금처럼 꼬투리를 잡으려면 오해의 여지가 없는 것은 아니다. 아무튼 이것 역시 지방교회 측이 죄가 치워졌으니 이젠 더 이상 우리는 죄를 짓지 않는다고 믿고 주장하는지가 중요하다. 결론은 '그렇지 않다' 이다. 실제로 위트니스 리는 롬6:6의 '죄의 몸이 멸하여' 중 '멸하여' 에 해당되는 'annulled(destroyed)' 주석에서도 'unemployed, jobless, inactive'로 적고 있다(롬6:6, 각주 5). 이 각주는 이어서 주님이 우리 몸에서 죄를 뿌리 채 뽑는 것이 아니라 옛사람을 십자가에 못박는 방식으로 우리를 죄에서 해방하셨음을 이어서 설명하고 있다. 원세호님의 오해가 풀렸기를 바란다.


(3) <원세호님의 비판: ⑩ 지방파는 사람으로 사탄을 처리한다고 주장하나 이미 사람과 관계없이 처리가 되었으며(겔 28:15-17), 이미 영계에서 하나님의 심판을 받고 땅으로 내어 쫓겼는데 계시록 12:7-10절이 그 근거이다. 악령인 사탄 마귀가(요8:44) 사람 때문에 처리된 것이 아니라 사람이 되신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시기 전에 영계에서 이미 처리하신 것이며...인간의 몸을 입으신 것은 마귀의 '일'을 없이하시기 위함이며 마귀를 멸하는 것이 아니다(1요3:8; 히2:14). 지방파는 성경을 크게 잘못 인식하고 있는 것이다.>


** 반박: 이것 역시 말꼬리 잡기 식 비판에 불과하다. 먼저 '마귀의 일을 멸한다'는 표현 자체를 트집 잡을 일이 아니다. 왜냐하면 개역 성경도 요일3:8을 '하나님의 아들이 나타나신 것은 마귀의 일을 멸하려 하심이라'고 번역하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원세호님 주장대로 예수님이 오시기도 전에 이미 마귀가 모두 처리되었다면, 왜 히2:14는 예수님이 혈육에 속하신 이유는 '마귀를 없이 하시기' 위함이라고 말하고 있는가? 성경은 '죽음을 통해 그분이(through death he..)' 마귀를 없이 하신다고 말하고 있다. '죽음을 통해...' 이런 구절은 원세호님의 주장과 크게 다르지 않은가? 원세호님은 성경을 입체적으로 이해하는 법을 배우면 유익할 것이다. 참고로 지방교회는 아담 창조 이전에 사단이 하나님의 심판 받았음을 부인하지 않는다. 원세호님은 마귀에 대해서 에스겔 28:15-17 뿐 아니라, 요12:31, 14:30, 엡2:2, 롬16:20, 엡6:11, 벧전5:8 등도 읽어보기 바란다.


3) 워치만 니 주장: <③ "주님께서는 오직 목적만을 가지고 일하신다는 것을 분명히 알아야 할 것입니다. 곧 겉 사람의 파쇄 혹은 파괴라고도 할 수 있는 바로 그것입니다">(35. (자아가 죽을 때) p. 24, 1-4줄).


<원세호님의 비판: ③ 주님이 일하시는 목적이 겉 사람의 '파쇄'라고 주장하는 것은 거짓 주장이다. 인간들의 겉 사람은 몸이며 육체인데...거듭난 영이 거하는 집인데 '파쇄'해서 되겠는가? 만일 이 부분을...육체의 소욕이나 육체의 일을 자백을 통해 용서를 받아 의롭게 된다면 몰라도 파쇄나 파괴가 무엇인가? 쓸 수 없도록 때려부수는 것이 아닌가?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목적이...인간의 겉 사람 파괴라니 무엇을 잘못 알고 있다. 이런 사상에 잘못 물들면 (지방파는 그렇게 가르치는 것이 아니겠지만) 판단력이 없는 어떤 사람들은 살인이나 자살도 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걱정도 된다.>


** 반박: 역시 원세호님 다운 비판이다. '자아를 부인하라' 또는 '자아를 부인할 때' 정도의 일반적인 의미를 가진 단어를 가지고도 '이로 인해 자살하는 사람이 생길까 염려된다' 는 식의 글을 쓸 수 있음이 놀랍다. 우선 원세호님이 참조한 책은 한국복음서원 책자가 아니다. 참고문헌 정보에 의하면 <정경사> 발행 <문창수> 번역으로 되어 있다. <겉 사람의 파쇄> 라는 표현은 고후 4:16의 <겉사람의 후패함>에 상응하는 말일뿐이다. 그러므로 '파쇄니 파괴'니 하는 지엽적인 번역 용어에 너무 집착할 일이 아니다. 원세호님이 염려하듯이 이 책자를 읽고 누가 자살했다는 소식은 아직 듣지 못했다. 대신에 믿음 생활에 큰 도움을 받았다고 하는 사람은 많다(한 예로 http://www.bibleforum.org/1999/38_infl.htm 참조).


원래 고후 4:16의 '겉 사람은 후패하나'에서 '후패하나'로 번역된 단어는 '디압흐데이로' (1311)이다. 이 단어 자체에 '완전히 파괴하다, 부수다, 못쓰게 하다, 망하게 하다..'의 뜻이 있다. (동일한 단어가 눅12:33(좀먹다), 딤전6:5(부패하다), 계8:9(깨어지다), 계11:18(망하게 하다, 멸망시키다)에서 쓰였다). 그러므로 '겉 사람의 파쇄' 라는 개념이 성경에 아주 없는 것은 아니다.


하나님은 <거룩하고 흠이 없는 하나님의 장성한 아들들>이 되게 하시려고 우리를 창조하셨다(엡1:4-5). 이것이 하나님의 뜻이다. 그러나 이 뜻을 위해 오신 주님의 역사를 가장 방해하는 것이 <자아>요, <겉 사람>이라는 사실은 생명의 길을 가본 사람은 매순간 절감하며 또 동의한다(http://samonim.org/cgi-bin/NeoBoard/NeoBoard.pl?Db=samo_class2), (http://www.kehcnews.co.kr/news/2000/267/%BB%E7%BC%B3267.htm), (http://www.pray4china.net/words/01-9,10.htm). 위 에베소서 1:4-5 내용인 하나님의 뜻은 이러한 우리의 자아가 부인되고(마16:24-25), 겉 사람이 <후패해 질 때>(고후4:16) 비로소 가능하다. 그러므로 이런 진리 자체를 주목할 일이지, 한 두 마디 표현상의 어색함에 대해 말꼬리를 잡으며 시비할 일이 아니다. 원세호님도 비판만 하지 말고, 이번 기회에 워치만 니의 '자아가 죽을 때'라는 책자를 열린 마음으로 일독해 볼 것을 진심으로 권하는 바이다.


4) 위트니스 리 주장: <④ "그리스도의 잉태에서 두 본질이 있다. 하나는 하나님의 본질이며 다른 하나는 사람의 본질이다. 한편으로 그리스도는 삼일 하나님으로 잉태되었다">(16. (그리스도를 체험하는 비결) p. 21, 하, 1-2).


<원세호님의 비판: ④ 예수 그리스도께서...삼일 하나님으로 잉태되셨다는 주장은 잘못되었다. 어느 성경에도 없는 주장이며 예수님은 하나님(성부가 아닌, 성령도 아닌)이신 영이 성령님의 능력으로 잉태되신 것이다. 예수님의 육체 안에 거하신 영 곧 예수님의 영은 독생하신 하나님인 영이시다(요1:18;14; 1요4:9). 그 영(성령)이 아니다. 성령에 의하여 예수님 영이 잉태되신 것이므로 예수 영은 성령이 아니시다.>


** 반박: 위에서도 원세호님의 삼위를 각각 분리시키는 삼신론적인 사고를 볼 수 있다. 즉 원세호님은 예수님이 성령이나 성부가 아닌 예수의 영으로(성령에 의해) 잉태되었다고 말하고 있다(원세호님은 행16:6-7, 빌1:19, 롬8:9-11 등을 통해 영에 대한 다양한 표현들의 연관성을 잘 연구해 보기 바란다). 그러나 성경 어디에도 예수가 <예수의 영>으로 <잉태>되셨다는 기록이 없다. 마 1:18, 20 본문은 예수님의 잉태가 <성령>(child of the Holy Spirit(18절), which is conceived in her is of the Holy Spirit)으로 인한 것을 말하지, 원세호님의 주장처럼 (성령에 의해) <예수의 영>으로 잉태되었다고 말하지 않는다. 원세호님은 지금 성경 본문의 의미까지 바꾸는 죄를 범하고 있다. 왜 이런 왜곡이 있는가? 원세호님이 예수 안에 <예수의 영>은 있으되 <성령>이나 <성부>는 안 계신다고 믿기 때문이다. 이것 역시 삼위의 상호내재를 부인하는 이단 사상의 산물이다. 그러나 거듭 밝히지만, 골2:9 는 <신격의 모든 충만이 (아들 안에서) 육신을 입었다>고 했지 예수의 영만 육신을 입었다고 말하지 않는다. 1, 3격은 제외된 2격 아들만 육신을 입었다는 생각은 삼위를 분리시키는 악독한 누룩일 뿐 순수한 성경의 가르침이 아니다.


아래 인용문에서 보듯이 위트니스 리는 성경 그대로 예수님이 성령으로 잉태되셨음을 말한다. 또한 이 성령은 아버지, 아들이 구별되나 분리되지 않게 상호내재 하시는 분임으로 이런 의미에서 예수님은 삼일 하나님으로 잉태되셨다고 말하는 것이다. 아래 인용 단락은 원세호님이 인용했던 바로 윗 부분이다.


<완전한 사람 그리스도는 처녀 사람 안에 성령으로 잉태되었다(마1:18, 20, 눅1:35). 어떤 사람의 잉태는 그 사람의 조성이다. 그리스도는 사람 안에서 성령으로 조성되셨다. 지난 메시지에서 우리가 보았듯이 성령은 삼일 하나님이다. 우리가 아버지나, 아들이나, 성령이나, 셋 중 하나를 접촉하면 우리는 삼일 하나님을 접촉한다. 위 성경 구절은 다 우리에게 그리스도가 성령으로 잉태었다는 것을 말한다. 이것은 바로 그리스도가 삼일 하나님으로 잉태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분은 성령으로 잉태되었다....그리스도의 잉태에는 두 본질이 있다>(그리스도를 체험하는 비결, 21쪽).


마1:21에서 보듯이 처녀에게서 나신 예수는 과연 누구이신가? 예수(Jesus)는 히브리어 이름 여호수아와 같은 헬라어이다(민13:16). 그 뜻은 '구원자 여호와(Jehovah the Savior)' 또는 '여호와의 구원(the salvation of Jehovah)'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예수는 사람일 뿐 아니라 여호와이시며, 여호와이실 뿐 아니라 '우리의 구원이 되시는 여호와'이시다. 이 여호와는 다만 아버지, 다만 아들이 아닌 삼위가 서로 안에 상호 내재하시는 한 분 하나님이신 것이다.


5) 위트니스 리 주장: <⑥ "이사야 53장 2절과 3절은 우리에게 그리스도가 슬픔의 사람이며 땅에서 줄기였다는 것을 말한다....그 분의 인생에는 고통 외에 아무 것도 없었기 때문에 이사야는 그 분에게 슬픔의 사람이라는 칭호를 주었다">(16.(그리스도를 체험하는 비결) p. 26, 하 5-11).


<원세호님의 비판: ⑥ 이사야서 53:2-3절에 예수님이 슬픔의 사람이란 증거가 전혀 없다. 거짓 말을 하려고 고의적으로 성경까지 인용했지만 예수님이 슬픔의 사람이 아닌 것이 증거되어 있다.>


** 반박: 원세호님은 영어 성경을 읽을 줄 아는가? 그렇다면 이사야 53:3을 영어 성경으로 읽고 자신의 위 주장을 다시 돌아보기 바란다. 킹제임스 영어성경은 'He is despised and rejected of men; a man of sorrows, and acquainted with griefs: and ...'라고 되어 있다. 여기서 'a man of sorrow'를 원세호님은 한국어로 어떻게 번역하는가?


6) 위트니스 리 주장: <⑦ "사람이신 이 그리스도는 예수로서 이는 여호와 구원자를 의미한다(마1:21; 눅2:11). 여호와는 삼일 하나님이시며 그 분은 예수가 되셨다. 이것은 그 분이 우리의 구원자가 되셨다는 것을 의미한다">(16. p.28,10-12). <⑧ "그리스도는 우리를 위해 죄가 되셨다. 당신은 이렇게 말할지도 모른다. 그렇게 말하지 말라 그러나 바울은 고후 5:21절에서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 그리스도를 죄로 삼으셨다고 말한다. 그리스도께서는 십자가에 달리셨을 때 하나님 보시기에 죄이셨다. 십자가 위에서 하나님은 그리스도를 우리를 위해 죄로 만드셨다. 그리스도는 십자가 위에서 우리의 죄들을 지셨을 뿐 아니라 우리를 위해 죄가 되셨다. 그 분은 육신 안에서 사람이 되심으로 우리를 위해 죄가 되셨다">(16. p.24,하 1-6)


(1) <원세호님의 비판: ⑦ 여호와로 삼일 하나님이 예수가 되셨다...성경 마1:21; 눅2:11을 인용하나 삼일 하나님은 근거 없는 주장이다.>


** 반박: 삼일 하나님의 성육신은 골2:9 이 성경 근거이다. 또한 <삼위는 영원히 구별되나 분리되지 않으신 한 분 하나님>이라는 정통 삼위일체관이 또 다른 근거이다. 원세호님은 삼위를 <마치 세 사람처럼 분리시켜 생각하는> 자신의 삼신론 사상을 버리고 구별된 삼위의 상호내재를 믿는 바른 삼위일체관으로 돌아오기 바란다. 요14:11을 기도로 읽어 보라.


(2) <원세호님의 비판: ⑧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 죄가 되셨다, 죄로 삼으셨다, 죄로 만드셨다' 라는 것은 성경 고후 5:21 "하나님이 죄를 알지도 못하신 자로 우리를 대신하여 죄를 삼으신 것은 우리로 하여금 저희 안에서 하나님의 의(단수)가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이다. 여기에 ..'삼으신'은 실천하다, 실행하다, 여기다 이며 한 번 죄(단수)를 삼으신 것이다. 그러나 지방파의 주장대로 '죄를 만들었다'는 것은 전혀 아닌 것이다. 죄를 삼은 것과 죄로 만든 것은 다르기 때문이다.>


** 반박: 고후 5:21의 '죄를 삼으신'은 영어로 'he had made Him (to be) sin for us'이다. '삼으신'에 해당되는 헬라어인 '포이에오'(4160) 의 제일 처음 의미가 '만들다'이다. 영어성경에서도 이 단어는 'make'이다. 그러므로 '죄로 만들다'는 영어식 표현이고, '죄로 삼았다'는 것은 개역성경 번역일 뿐 그 자체에 무슨 큰 차이가 있는 것이 아니다. 고후 5:21은 롬8:3, 사53:10, 요1:29, 히9:26 등과 함께 균형 있게 해석되어야 한다. 지금처럼 해석상의 표현을 가지고 꼬투리 잡을 일이 아니다.


7) 위트니스 리 주장: <⑨ "그리스도는 그 분의 유일한 죽으심으로 우리의 죄들을 제거하셨고 우리의 뱀의 본성을 처리하셨으며 그 분의 신성한 생명을 해방하사 부활을 통해 우리 안으로 분배하셨다">(32.(주의 회복) p.26,1-4).


<원세호님의 비판: ⑨ 부활을 통해 우리 안으로 분배하셨다는 것은 성경 근거가 없다. 분배가 무엇인가? 몫을 고르게 나누는 것으로, 그리스도 예수님은 하나님이신(요20:28; 롬9:5; 요1:18; 1요5:20) 분이시다. 하나님을 나누다니 무슨 망령된 말인가? 정신을 차리라.>


** 반박: 위 내용은 요12:24에 대한 해설의 일부이다. 즉 한 알의 밀이 많은 밀알이 된 것은 그 원래의 한 알 속에 있던 생명이 다른 많은 밀알들 속으로 분배되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예수님의 죽으심에는 우리의 죄와 죄들을 처리하심이라는 방면과 함께 예수님 (한 알의 밀알) 안에 있는 생명을 우리(많은 밀알)에게 분배하기 위한 방면도 있다는 것이다. 이 대목을 위트니스 리 책자에서 직접 인용해 보겠다.


<예수님 안에 있었던 생명이 어떻게 우리 속에서 생명이 되실 수 있는가? 그 대답은 요한복음 12장 24에 있다. '내가 진실로...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 한 알의 밀알 안에 있는 생명이 많은 밀알들 안에 들어가는 유일한 길은 이 밀알이 땅에 떨어져 죽는 것이다. ...요한복음에서 우리는 주님의 죽으심의 세 방면을 본다. ...어린양...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든 것 같이...세 번째로는 한 알의 밀알로서 땅에 떨어져 그분의 생명을 많은 밀알들 안으로 분배하시기 위한 것이다(요12:24).>(위 책, 25쪽).


'신성한 생명을 분배하셨다'는 말이 '망령된 말'인가? 그렇다면 원세호님은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 함이라'는 요10:10 하반절을 어떻게 체험하고 있는가? 원세호님은 다만 신학교리로 만족하고 있는가, 아니면 주님에 대한 실제적이고 참된 체험을 사모하고 있는가? <사울>은 가말리엘 문하에서 교리를 배워 하나님께 열심이었으나, 그가 실제로 한 일은 하나님의 교회를 잔해한 것뿐이었다(행22 :3-5, 빌3:6, 딤전1:13). 그러나 그가 주님을 참되게 알고 난 이후 <바울>로서 자신이 핍박하던 그 무리 중 하나가 되었다. 그리고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를 참으로 관심하며 그리스도의 몸의 건축을 위해 자신을 헌신한 사람이 되었다(고후11:23-28, 골1:24).


원세호님은 지금의 자신이 <사울(큰 자)>인지 아니면 <바울(작은 자)>인지 밝은 빛 가운데 나아가 자신과 자신의 사역을 점검해 보기를 바란다. 왜냐하면 우리가 다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설 것이기 때문이다(고후5:10, 롬14:1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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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예루살렘 2014.01.11. 04:31
위와 같은 부실한 이단연구를 하던 원세호님은 이미 고인이 되셨지만,
문제는 지금도 이와 유사한 이단연구가들이 유사한 패턴으로 이단아닌 이단들을
만들어내고 있으면서 자신들이 참으로 하나님의 일을 하고 있다고 착각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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