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체들의 누림글 모음 장소 ^^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

첨부 1

 

tyulpany-trio-butony-fon-4668.jpg

 

 

종교라고는 사치스런 사람들의 오락쯤으로 여기는
시골 촌에 있는 학꼬방 집에 사는
초등학교 4학년짜리 아이가
한번은.... 잠을 자기 전에 본,
별이 가득한 하늘을 보며 생각하였습니다.


이 우주는 얼마나 넓은 것인가
사람인 나는 죽으면 저 별 어디쯤으로 가는 것일까
언젠가는 죽는 것이 사람에게는 다 찾아올텐데,
그 죽음 뒤에 사랑하는 부모와 가족들 다시 만날 수 있을까...


이상하게도 끝도 없이 시간과 공간을 넘어서 가지는
‘영원’에 대해 한번 생각에 젖기 시작하더니
왜 그렇게 슬퍼했는지 모르겠습니다.
다른 사람들 다 자는 사이 책상 밑으로 기어들어가
밤새도록 울었습니다.
울고 울어도 해결할 수 없는 무엇이
얼마나 가슴을 서럽게 했는지...
참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그 어린 시절 기억은 까마득해져 가서 기억에조차 없어지고
제멋대로 천방지축 좌충우돌하며 사춘기 다 보낸 후
청년 때, 어느 날인가...
주님은 마치 ‘우연’처럼 찾아오셨고
주님을 영접한 지 얼마 지나고 나서야
그 책상 밑에서 혼자 훌쩍거리며 울던 어린 시절,
그 서럽게 울던 그것을 찾았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그렇게 주님을 영접하고 시작한 교회생활은 너무 행복했습니다.
세상 그 무엇으로도 채울 수 없는......
아, 말로 다 표현할 수는 없지만
기이하게도 안식과 만족을 주는 이 행복이란...
그것은 가장 깊은 곳의 갈증을 채워주는 그 무엇이었습니다.
후에 알게 된 것은 그것이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
(eternity in there heart)(전3:11)이었다는 것입니다.

 

 

또 한번은 이런 일도 있었습니다.
학생 때는 별난 것처럼 제법 예배당인가 열심히 나가던 누나가
유교스런 가풍이 있는 집에 시집간 후로는 하나님을 잊고 살았습니다.
그 후 어느 날 폐가 돌처럼 굳어지는 희한한 병에 걸린 누나를
온 가족이 안타깝게 중환자실로 들어가는 것을
바라보고 있을 때가 있었습니다.


그 때 침상에 누워 혹 다시 못나올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는지..
누나가 급하게 제 아내를 부르더니
무슨 말인가를 주고 받았습니다.
나중에 아내에게 전해들은 말로는,
누나가 동생인 나를 위해 기도한 노트가 두 권 있는데,
그것을 나에게 꼭 전해주고 싶다고.... 했답니다.


아, 그 때 저는 깨달았습니다.
마치 ‘우연’을 가장하고 찾아오신 주님이신 것 같았지만,
주님이 나로 하여금 그분을 영원한 생명으로 영접케 한 것은,
한 사람(누나)의 기도가 있었기 때문이었구나...


중환자실에 누워 움직일 수 없는 누나에게
저희 부부는 말씀 테이프를 틀어주고 또 틀어주며 기도했습니다.
누나가 원래 가지고 있는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이 깨어나게 해달라고...


.......그런 환경이 마치 태풍과 같이 지나간 후,
누나는 그 안에 있는 ‘영’이 소생되었고,
그 가정의 행복한 교회생활이 시작되었습니다.

 

 

 

요즘 ‘영’에 관한 말씀과 메시지를 대하면서,
저에게 쓰여진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을 만족시키는
즉, 내 속 깊은 곳에 있는 ‘영을 소생시키는 이야기’가 떠올랐습니다.


그렇습니다.
그분의 택하신 자에게는 어느 순간에든지,
한번쯤은 영원에 대해 진지하게 고려하는 마음이 주어지고
반드시 ‘영’이 소생되는 편지를 새기게 됩니다.
크든 작든, 험하든 험하지 않든, 길든 짧든...

 

어떤 사람들은 ‘영’이란 단어를 말하면
거품을 물고 반대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반대한다 해도... 솔직한 체험에서부터
우리는 우리 속 그 깊은 존재를 시인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아무리 몸을 편안하게 하고, 좋은 옷을 입고,
맛있는 음식과 좋은 집이 있어도
심지어 많이 배워 교양을 쌓고, 문화활동을 해도,
어떤 때는 성경을 대하고 예배당에 출석한다 하여도...
도저히 그 속을 채울 수 없는 그 무엇인가가 반드시 있습니다.


그 공허를 채우지 못하고 그것을 견딜 수 없을 때,
아무리 다른 필요를 다 채워도 자살을 택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몸의 만족과 혼의 만족 외에
그 깊은 곳의 갈증을 채우지 못할 때
견딜 수 없는 그 무엇이 우리 존재 깊은 곳인 ‘영’입니다.


그러므로 솔로몬은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전1:2)”
헛되고 헛됨을 반복하며 그 끝없는 공허함을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입으로 후... 하고 불어낸 비누방울과 같이 오색찬란하게 빛나며
유유히 공기 중을 떠다니다가도 어느 한 순간에 없어져 버리는 허무한 것이
인생임을 솔로몬은 긴 장탄식을 하며 헛됨을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사람 속에 지어진 영은
사람의 영 안에서 필요가 있으며 이 필요는 하나님입니다.
이 필요를 채우고자 하는 마음이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 ‘영원을 갈증하는 마음’입니다.
이것이 우리 눈 앞에 밝혀진 것이 얼마나 감사한지 모릅니다.
‘영’이라는 단어를 오용해서 쓰는 사람들로 인해서
쉬쉬 두려워하며 멀리하고 이단시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성경과 체험은 그 필요를 분명히 말하고 있습니다.

 


‘너희의 허물들과 죄들로 죽었던 너희’(엡2:1)
‘또 너희의 범죄와 육체의 무할례로 죽었던 너희’(골2:13)

죄와 허물은 사람의 영으로 하여금
그 기능과 느낌을 상실하게 만들었고
마치 바람빠진 타이어처럼 아무런 위치를 갖고 있지 않던 어느 날,
그분이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을 불러 일으키시고
사람의 영 안에 들어가시기만 하면 그분은 사람의 영을 소생시키십니다.


아, 그분의 생명을 분배하여
그의 죽어 있는 영을 깨우는 이것이 구원입니다.
오직 생명의 주님, 그 속이 생명과 부활이신 분,
그 영으로서 사람 안으로 들어오시는 분만이
우리의 죽어 있는 영으로 생명을 갖게 하고
소생되게 하시며 하나님을 섬기고 경배하게 하며
우리 깊은 속, 즉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을 만족시킵니다.

 


다른 것으로는 길이 없습니다.
하나님은 영이시요(요4:24) 그 하나님을 경배(접촉)하는 길은
영을 사용하는 길 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영은 영이요, 혼은 혼이며, 혼으로는 영을 대치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이 영 안의 생명만이
하나님께 속하고 신선하게 하고 살아있게 하며,
생동력있게 하며, 능력으로 충만하게 합니다.
밝고 거룩하고 참되고 공허하지 않게 하고
하나님의 임재를 느끼게 합니다.


한마디로, 오직 이 영만이 하나님을 접촉하게 합니다.
백번, 천번을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을 ‘영’입니다.
왜냐하면 그곳에 생명을 주며 변화시키는 영이 되시어
우리의 영과 연합되신 그분이 계시기 때문입니다.
사람 존재 안에 ‘영원’은 '영’ 안에 있습니다.


구원의 시작이 이 ‘영’안에서 이루어졌듯이
구원의 노정도 이 ‘영’안에서 이루어집니다.
영 안에 있지 않으면 영에 관한 것마저
종교 교리로 바뀔 정도로 영은 우리의 참된 실재(reality)입니다.
구원의 길이 오래일수록 ‘영’에 관한 것이
축적된 교리가 되고 경험있는 가르침이 될까... 그것이 가장 두렵습니다.


저는 언제까지나
우리의 영 안에서 하나님의 영의 ‘이야기’를
살아있는 실재의 편지로 새기는 사람이고 싶습니다. 

 

 

글쓴이 : 민하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kakao talk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삭제하시겠습니까?

  • 기도의 주체가 누구인가?
    복음의 핵심과 본질은 '십자가와 부활생명'임을 부인할 수가 없습니다. '내가 아니요 그리스도이지요.' 이 말씀에 대한 체험은 우리의 일생이 걸리는 것 같습니다. 교회생활도 내가 아니요 그리...
  • 참 믿음은...
    믿음이 하나님의 주입하심에 의해 산출되는 어떤 것이라면, 심지어 참 믿음이란 하나님 자신, 곧 우리 안에 주입되셔서 우리의 믿는 능력이 되시는 그분 자신이라면, 하나님의 주입하심 없이 믿...
  • 저희 남편 구원 받았어요!
    형제 자매님들 안녕하세요? 주님께서 저의 긴기도를 들으시고 드디어 저희 남편을 구원시켰습니다. 3월 1일밤 계단에서 넘어져 머리 골절및 부상을 입었습니다. 다행히 수술은 주님의 돌보심으...
  • 하늘이 저렇게 파란데....
    이미 지나간 사건을 객관화 시켜 놓고 보면 저런 바보들이 있나 싶은 일들이 종종 있습니다. 그 중에 하나가 창세기에 나오는 몇몇 이야기들입니다. 얼른 생각나는 것이 소돔과 고모라 성을 멸...
  • 어떤 길을 갈 것인가
    요 며칠 두 분의 자매님들과 이런 저런 교통을 나누었습니다. 두 분 다 교파에 계시고 신학을 하신 분들입니다. 주님의 주권적인 안배를 따라서 이 생명과 건축의 사역, 하나님의 경륜을 이루는...
  • 우리의 문제가 무엇인지 아는가...
    선험되어진 영적 체험의 수준이 높다는 것이다. 그것을 읽고 이해한 것이 결코 자신의 것이 아닌데 그것은 이미 우리의 것이 되었고 그 수준에 미치지 못한 자신과의 괴리는 너무나 깊고 멀다. ...
  • 다 쌓은 다음 한번은 깨끗이 허물음
    사도바울은 주님께 특별히 쓰임받는 그릇이었습니다. 혹자는 그의 박식함과 풍부한 지적용량에 촛점을 맞추어 또는 그의 놀라운 전도의 열정을 들어 그래서 주님이 그를 들어 쓰셨다고 말할지 ...
  • 똑똑똑... 노크하시는 주님
    오늘날은 진리가 열려 있기 때문에 마음만 있다면 진리를 아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예전에는 하나 하나의 진리가 희귀하였으나 오늘날은 주님의 은혜로 그렇지 않은 상황이 되었습...
  • 주님의 다루심이 올 때..
    주님의 다루심이 올 때 자기가 너무 사랑스러워서 우는 사람이 있고 주님의 다루심이 있기 때문에 우는 사람이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자신을 너무 귀히 보고 이렇게 사랑스럽고 귀한 자신이 다...
  • 그대가 다시 돌아오거든
    "그대가 믿음을 잃지 않도록 내가 그대를 위하여 간구하였으니, 그대가 다시 돌아오거든, 그대의 형제들을 견고하게 하십시오."(눅22:32) 주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시기 전, 베드로에게 하신...
  • 마주 이야기
    잘 아시다시피 베드로는 급한 성격을 가진 사람이었습니다. 나서기 좋아하는 만큼 그의 코도 여러 번 깨졌습니다(마14:29, 16:22~23, 17:4, 24 등 참조). 아마 그는 주 예수님을 따라 다니는 동...
  • 잊혀진 시간들
    1. 세상의 범주에서는...어떻게든 자꾸 노출되고 대중에게 각인되어야 여러 가지 기회도 생기게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심지어 '눈 도장'이라는 말도 생겨 났습니다. 요즘은 어떻게든 '튀어야' ...
  • 하나님의 긍휼로 긍휼히 여기기
    이 세상은 긍휼이 없는 세상입니다. 남과 남 사이도 그렇고 혈육간에도 그렇고 가만 보면... 긍휼히 여김이 부족합니다. 다 자기의 어떠함을 기준으로하여 그 기준에 다른 사람이 따라오길 바랄...
  • 시온을 위하여 모리아로 이끄소서
    시온을 위하여 모리아로 이끄소서 예루살렘 안의 가장 뛰어난 봉우리, 빼어난 봉우리 그 이름은 시온 그로 인해 예루살렘 그 이름이 아름다우리 이 뛰어난 봉우리에게 또 하나의 이름이 있으니 ...
  • 물은...
    물은... 물, 그 자체로는 흐를 수 없지만, 더 낮은 곳이 있다면 다만 그 곳을 찾아 갈 뿐입니다. 누구랄 것도 없이 낮은 곳에 가장 가까이 있는 물이 먼저 더 낮은 곳으로 내려갑니다. 그러면 ...
  • 사람 이해하기
    여직원 중에 한 명 이야기를 할까 합니다. 그녀는 늘 세련되게 옷을 입고 외모도 깔끔하여 날씬합니다. 그녀는 처음엔 동료들과 모여서 와와 하며 대화도 하고 점심도 먹지만 여지없이 열흘 정...
  • 교회 안에서 우리는 무엇을 바랄까?
    '하나님의 집에서 어떻게 행하여야 할 지'를 주님 앞에서 또 앞 선 형제님들로부터 배우던 때의 일입니다(물론 이런 배움은 끝이 없습니다만). 그 형제님은 아주 진지하게 '교회 안에서 여러분...
  • 말세에... "무정하며"
    "네가 이것을 알라 말세에 고통 하는 때가 이르리라... 사람들은 자기를 사랑하며 돈을 사랑하며... "무정하며"(without natural affection)(딤후 3:1-3). 아주 오랫동안, 자신이 그런 대로 정...
  • 몰약의 산에서 유향의 언덕으로..
    주님의 목표는 유향의 언덕이지만 그 과정에 몰약의 산이 있습니다. 몰약의 산은 우리의 목표는 아니지만 주님과의 불일치를 느끼는 모든 사람이 갈망하는 것입니다. 거기서 자아는 희생되고 그...
  • 한 방울의 물로써
    어쩌면 커다랗게 보이는 불일치도 그 처음엔 조그만 차이에서 시작되었는지 모릅니다. 어쩌면 한 오리만큼이나 멀어 보이는 간격도 그 처음엔 머리카락 한 올만큼의 균열에서 시작되었는지 모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