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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대안은 무엇인가?”(유동근 목사)에 대한 지방교회 측의 간략한 비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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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대안은 무엇인가?”(유동근 목사)에 대한 

지방교회 측의 간략한 비평

 

 

최근에 유동근 목사가 지방교회 측을 비판하는 유튜브를 계속 올리고 있다는 소식이 있습니다. 한때 몸 안의 한 형제로 불리던 사람이 기독교 목사이자 전직 총회장 혹은 신학 박사로 불리기를 좋아하는 길을 선택한 것은 본인의 자유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우리가 어떤 길을 가든 모두 장차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설 것이고, 자신의 말과 행위에 대해 그날에 “낱낱이 진술”하고 “대갚음을 받게” 될 것을 경고합니다(롬 14:12, 고후 5:10). 먼저 이 글은 이러한 빛 아래 쓰였음을 밝힙니다.

 

유동근 목사는 해당 유튜브에서 기독교를 거쳐서 소위 “세대주의 계열(지방교회 포함)”에 몸담았다가 나왔거나 나오려는 이들에게 대안을 제시했습니다. 그런데 그 대안이라는 것의 핵심 내용 중에 모호하거나 사실 왜곡이 있는 몇 가지를 지적하고자 합니다. 그러나 참된 것을 알아서 서로 조율하는 교제의 차원에서 그리할 것입니다.

 

첫째, 유동근 목사가 주장하는 ‘복음’은 불신자에게만 해당되는가, 아니면 사도 바울처럼 이미 거듭난 사람에게도 여전히 복음 전파가 필요하다고 보는가?

 

만일 전자라면, 유 목사가 전하는 복음은 사도 바울이 전한 복음과는 다른 복음입니다. 사도 바울은 로마서에서 이미 “부름받은 성도가 된” “로마에 있는 여러분”에게도 복음을 전하고자 했습니다(롬 1:7, 15). 그런데 유 목사는 유튜브에서 “진짜 쌩자배기”에게 복음 전한 것과 계시록 마지막의 “값없이 생명수를 받으라”는 말은 강조하면서, 정작 복음의 완성인 그 앞의 새 예루살렘경시하는 듯한 미심쩍은 태도를 보이고 있습니다.

 

만일 후자라면, 유 목사가 전한 복음의 내용에 주님의 몸인 교회와 (교회의 완성인) 새 예루살렘이 포함되는지를 솔직히 밝혀야 할 것입니다. 복음은 “하나님의 아들”에 관한 것입니다. 그러나 만일 그분의 머리이신 방면만 전하고 그분의 교회인 방면을 뺀다면, 반쪽 복음일 뿐입니다. 유 목사 말처럼 로마서 전체가 복음이므로, 이 복음 안에는 당연히 ‘맏아들과 같은 형상을 이룸’과 ‘몸의 건축’ 등이 포함되어야 합니다(롬 8:29, 12:5).

 

유 목사는 ‘대안’으로 1) 복음 전파 2) 달음질(상 얻음) 3) 선한 싸움을 말했습니다. 그러나 시간의 거의 대부분을 할애하여 소개한 복음개념대상모호하고 불충분합니다.

 

둘째, (이겨서 상을 얻으려고) 달음질하는 것이 단지 더 많은 불신자에게 열심히 복음 전하는 것인가, 아니면 사도 바울이 빌립보서 3장 7-12절을 배경으로 14절에서 말한 그 상을 얻는 것인가?

 

만일 전자라면, 유 목사는 사도 바울이 가르친 상(reward)의 개념을 충분히 소화하지 못한 것일 수 있습니다. 바울이 말한 상은 타인을 향한 복음 전파보다는 우리 존재의 내면에서 옛 창조가 제해지고 새 창조물이 되어가는 “뛰어난 부활”(exanastasis) 과정의 결과입니다. 이런 맥락에서 볼 때, 그 ‘상’ 혹은 ‘푯대’는 그리스도를 가장 충만히 누리고 얻는 것입니다(14절 각주 2, 3:8). 따라서 사도 바울은 ‘남들에게 전파하면서 자신이 시험을 견디지 못할 수 있음’을 경고합니다(고전 9:27). 우리는 이 말의 의미를 곰곰이 묵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셋째, ‘한 사역’을 “단독 사도를 주장하는 것”이라고 함부로 단정하는 것은 심각한 사실 왜곡이자 악의적인 거짓말이다.

 

지방교회 측이 말하는 ‘한 사역’은 “사도들의 가르침”(행 2:42) 혹은 바울이 말한 “이 사역”(단수)(고후 4:1) 입니다. 따라서 특정인이 주님 품에 가더라도 ‘한 사역’은 계속됩니다. 참고로 사도들의 가르침은 신약 전체인데, 요약하면 ‘신격의 모든 충만인 그리스도’(골 2:9)와 ‘그 그리스도의 충만인 그분의 몸인 교회, 즉 새 예루살렘’입니다(엡 1:23, 계 21:9-10). 이것이 우리의 ‘헌법’입니다. 모든 사역자는 이 ‘헌법’의 통제 아래 있어야 합니다. 만일 유 목사도 바울이 말한 ‘이 사역’에서 벗어났다면, 더 이상 신약의 사역자가 아닙니다.

 

넷째, 선한 싸움은 불신자 구령 때뿐만 아니라 주님의 몸인 교회를 건축할 때 더 치열하다.

 

이것은 “내 교회”‘음부의 문들’의 전쟁을 말씀한 것에서 쉽게 알 수 있습니다. 바울도 주로 다른 가르침으로부터 성도들을 보호하는 문맥에서 ‘복음의 변호와 확증’이라는 표현을 썼습니다(빌 1:7). 따라서 분명한 교회론이 정립되는 것이 영적 싸움에는 필수입니다.

 

끝으로, 유동근 목사가 불신자 복음 전파에 수고한 세월은 귀하고, 주님께서 보상하실 것입니다. 또한 이처럼 진리 방면 혹은 사실 확인은 얼마든지 서로 교제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진리와 무관한 다른 지체들의 약함을 공개적으로 드러내는 것은 매우 조심해야 할 것입니다. 어떤 명분을 내세우든 하나님의 사랑의 본성에 어긋납니다(고전 13:5, 7). 우리 모두를 불쌍히 여겨주사, 행여 마귀에게 쓰임 받지 않고 함께 주님을 기쁘게 하기 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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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 : 지방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