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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역과 사역자들” - 유동근 목사의 심각한 진리 왜곡을 바로잡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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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역과 사역자들”

- 유동근 목사의 심각한 진리 왜곡을 바로잡음

 

 

위 제목의 유튜브에서 드러난 유동근 목사의 복음관, 사역관은 하나님의 뜻을 따라 세워진 사도 바울의 그것과 크게 다릅니다(고전 1:1). 아마도 이 점이 현재 양측 갈등의 핵심 원인일 수 있습니다. 그는 복음 전하는 것이 곧 사역이고, 그 외에 무슨 사역이 있겠느냐는 식의 주장을 하고 있습니다. 문제는 그가 말한 복음불신자 구령만을 의미한다는 점입니다.

 

이와 달리, 사도 바울은 불신자는 물론이고 이미 부름받은 성도들에게도 복음을 전했습니다(롬 1:15). 즉 그가 쓴 로마서 전체가 곧 그의 복음이었습니다. 따라서 바울의 복음에는 죄인들이 구속을 통해 의인 되는 유 목사식 복음의 내용 외에도 맏아들형상본받음과 우리 모두가 한 몸이자 서로 지체들이라는 내용도 있습니다. 또한 사도 바울이 쓴 열네(열세) 서신 전체도 복음 전파이자 그의 사역이었습니다. 그런데 그가 쓴 모든 서신들, 곧 복음 전파는 그 대상이 각지 교회 혹은 디모데와 빌레몬 같은 그의 동역자들입니다. 죄인들 구령을 주된 목적으로 쓴 서신은 단 하나도 없습니다.

 

이러한 근본적인 결함 때문인지는 몰라도 유 목사가 길게 말했지만 성경적인 사역 혹은 사역자들이 무엇인지 명쾌하게 밝히지는 못했습니다. 대신에 자신의 불신자 구령한 자랑, 혹은 남을 비판하는 잡다한 이야기만 풀어놓은 듯한 인상을 주고 있습니다. 이제 관련된 몇 가지를 더 다뤄보겠습니다.

 

첫째, 성경이 말하는 ‘사역’의 의미

 

사도 바울은 주님께서 어떤 사람들을 사도, 신언자, 복음 전하는 이, 목자 및 교사로 주셨는데, 그들이 “성도들을 온전하게 하기 위함”이라고 말씀합니다. 그리고 그 온전하게 하는 목적은 “그 사역의 일” 곧 “그리스도의 몸을 건축”하기 위함이라고 덧붙입니다(엡 4:11-12). 이것은 성도들을 온전케 하여 몸을 건축하는 일련의 일들이 모두 사역이고 불신자 구령만 사역이 아님을 잘 말해주고 있습니다.

 

둘째, 성경이 말하는 ‘사역자들’의 의미

 

또한 바울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새 언약의 사역자들이 되기에 충분한 자격이 있게 하셨다”라고 말합니다(고후 3:6). 그리고 조금 뒤에서 “우리가 긍휼을 받아 이 사역을 받았다.”라고 ‘사역’을 단수로 말합니다(4:1). 이것은 비록 사역자들은 많지만, 이들 모두는 주님의 피로 제정된 ‘새 언약’을 집행하는 한 가지 일을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참고로 새 언약의 핵심 내용은 주로 ‘우리의 생각마음에 그분의 (생명의) 새겨 넣는 것’입니다(히 8:10-12). 이것은 생각이 새로워져서 변화되는 영적 생명의 성장 과정이자 치열한 영적 싸움이 수반되는 몸인 교회의 건축 과정이기도 합니다(엡 3:17, 고후 10:4-5). 그런데 이와 다른 불신자 구령만이 사역이라는 유 목사의 잘못된 사역관은 성경 이해를 왜곡시키고, 지금처럼 다른 믿는 이들을 함부로 틀렸다고 정죄하는 부작용을 낳고 있습니다.

 

셋째, “사역에 있어서 복음이 없어 그럼 사역이 없는 거죠”?

 

유 목사는 위 유튜브에서 자신이 40여 권의 해설서를 썼는데, 뭘 쓰든지 그리스도인들을 타깃으로 하지 않고 늘 믿지 않는 사람을 염두에 두고 썼다고 고백합니다. 그리고 “(불신자 구령의) 복음을 떠나서는 전 사역이 없어요”라고도 했습니다. 그는 아들이 오신 것은 복음, 곧 “멸망하는 죄인들을 구원하고자 한 거”라고 말합니다. 그는 또한 “사역 사역 하는데 사역이 무엇을 위해서 사역하는데, 복음 사역이 아니면 무슨 사역이 있는데.”라고도 했습니다. 이처럼 그는 복음과 사역을 불신자 구령에 제한시키고, 그 이상의 것을 가르치면 “사역을 너무 이렇게 성경하고 달리 생각을 한다.”라고 비판합니다. 그는 자신이 이 점을 바로 잡으려고 이런 유튜브를 만들고 있다고도 했습니다.

 

넷째, “나의 이름을 부인하지 않고”와 “인내의 말씀을 지킨 것”(계 3:8-10)이 불신자 구령 과정?

 

유 목사는 주님께서 빌라델비아 교회에게 하신 위 말씀도 불신자 구령 과정에서의 체험을 말한다는 식으로 주장합니다. 그는 이러한 자신의 잘못된 복음관으로 ‘교회생활을 잘해서 이기는 이가 되라는 문맥’으로 이해하는 이들을 조롱하고 정죄합니다. 그는 심지어 “복음(불신자 구령)이 아니면 인내할 필요가 없어요”라고까지 함부로 단언합니다. 이것은 이미 복음을 받고 거듭나 교회 성도가 된 이들이 인내로 모든 교회 하락이기고, 그분의 이름임재가 있는 빛나는 금등잔대의 간증을 유지하라고 격려하시는 주님의 의도를 완전히 왜곡하는 말입니다.

 

다섯째, 위트니스 리가 워치만 니를 존중하지 않는다는 주장에 대하여

 

이것은 두 주님의 종을 이간시키는 간교한 거짓말입니다. 위트니스 리는 책이나 생전의 집회 중에 워치만 니가 자신의 사역의 뿌리임을 여러 번 공개 시인한 것을 참석자들은 다 듣고 보았습니다.

 

결론적으로, 유동근 목사는 복음과 사역 개념을 불신자 구령에만 국한시켰습니다. 그러다 보니 복음을 받은 이들이 몸 된 교회로 건축되어 가도록 돕는 과정은 복음도 사역도 아니라며 배척하고 심지어 정죄합니다. 이것은 위에서 보았지만, 사도 바울과는 다른 가르침입니다. 그렇다면 유 목사 스스로 좁아진 것이 이런 갈등의 주된 원인은 아닌지요! 이런 상황에서 바울은 이렇게 권합니다. “여러분의 속내로 말미암아 좁아진 것입니다. … 여러분도 마음을 넓히십시오”(고후 6:1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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