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체들의 누림글 모음 장소 ^^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몸 안에서 분열이 없이

첨부 1


ulica-trava-gorod.jpg


아침에 성경 읽기 진도를 따라 여호수아서를 기도하며 읽었습니다. 비록 22장 안에 ‘그리스도의 몸’이라는 말은 없었지만, 읽어나가면서 받은 인상을 통해 신약 용어인 ‘몸 의식’(Body consciousness)이 무엇인지를 깊이 생각하게 합니다. 그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 땅에서 하나님의 산 간증을 짊어진 유일한 선민이었습니다. 그러나 신약 시대인 요즘은 “내면적 유대인들”이자(롬2:29) 단체적인 “아브라함의 씨”(갈3:29)인 그리스도의 몸이 그리스도의 간증을 책임지고 있습니다. 성경은 예전에 이스라엘 백성이 경험한 것은 우리에게 본보기이며, “시대의 끝에 살고 있는 우리”에게 “경고”(고전10:11)가 되어야 한다고 말씀 합니다.


이스라엘 민족이 가나안 땅을 정복하는 과정에서 르우벤 지파와 갓 지파와 므낫세 반지파는 요단강 저편 야셀 땅과 길르앗 땅이 가축 기르기에 적당함으로 다른 지파들보다 먼저 그곳을 분깃으로 취합니다(민32:1-5). 그 후 그들은 모세에게 굳게 약속한 대로 처자와 가축은 일단 그곳에 남겨 두고, 용사 4만 명이 요단 강을 건너 가나안 정복 싸움에 참여합니다(수4:12).


여호수아 22장은 약 7년 가량 이어지던 가나안 1차 정복 전쟁이 마감된 후에(수11:23), 두 지파 반이 여호수아의 허락과 축복의 말을 듣고 자기 장막으로 돌아간 후에 일어난 한 사건을 다룹니다(수22:6). 즉 그들이 소유지인 길르앗으로 돌아 간 후 요단 언덕 가에 큰 단(altar)을 쌓은 것이 야기한 쌍방의 갈등을 다루고 있습니다.



“르우벤 자손과 므낫세 반 지파가 가나안 땅 요단 언덕 가에 이르자
거기서 요단 가에 제단을 쌓았는데 보기에 큰 제단이었더라
(수22:9-10).



단지 제단 하나 쌓았다고 내전까지 불사할 기세로 긴장이 촉발된 상황을 놓고 주님 앞에 묵상할 때 몇 가지 마음에 떠오르는 것이 있습니다. 또한 오늘날도 마땅히 분열에 대해 이러한 즉각적인 반응이 있어야 함에도 전반적으로 감각이 많이 무디어져 있는 것 같아 주님께 죄송한 마음이 있습니다.


첫째, 몸 안에서 교통의 부족은 갈등을 가져 옴: 이스라엘 자손은 두 지파 반이 예루살렘 외에 또 다른 제단을 쌓은 것은 결과적으로 여호와를 거역하려는 움직임이라고 보았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이 실로에 모여서 그들과 싸우러 가려고” 했습니다(수22:12). 그러나 막상 실상을 알고 보니 그 단은 훗날 세월이 흐른 후에 이스라엘 회중의 후대들이 강 저편에 있는 자신들의 후손들을 배제시킬 것을 우려하여 모두가 한 백성임을 상기시키는 증표로 삼으려고 한 것이었습니다. 따라서 쌍방의 오해는 풀렸고, 그것은 “이스라엘 자손을 즐겁게 했습니다”(33절).


이 대목을 묵상할 때 비록 좋은 취지로 어떤 것을 실행하지만 충분한 교통이 없을 때 몸 안에서 불필요한 오해와 염려를 가져올 수 있음을 봅니다. 오 주님, 몸 안에서 어떤 것을 추진할 때 순간순간 멈추어 서서 다른 지체들과 교통하는 법을 더 배우기를 얼마나 사모하는지요.


둘째, 주님의 몸은 공동 운명체임: 강을 건너 따지러 간 측이 두 지파 반 쪽에게 제시한 논리는 “세라의 아들 아간이 온전히 바친 물건에 대해 범죄하므로 이스라엘 온 회중에 진노가 임했고 그의 죄악으로 멸망한 자가 그 한 사람만이 아니었다”(20절)는 것이었습니다. 즉 “브올의 죄악”(17절)의 사례에서 보듯이 일부가 죄를 죄어도 이스라엘 백성 전체에게 화가 임하는데, 당신들이 죄를 지어 우리 전체가 망하게 되는 것을 가만히 보고 있을 수는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광야 생활이나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 원주민들과 싸우는 과정에서 자신들이 여호와 앞에서 공동 운명체임을 깨닫게 된 많은 일들을 겪었습니다. 즉 미리암이 육신의 동생인 모세를 비난하다가 문둥병이 걸려 정결케 되는 칠일 동안, 미리암 개인만이 아니라 이스라엘 백성 전체가 진행을 멈추고 그녀가 정결케 되기를 기다려야 했습니다(민12:15-16). 위 아간의 죄 역시 특정 개인이 저지른 것이었지만 그러한 개인의 숨은 죄악이 이스라엘 백성이 아이(Ai)성 전쟁에서 패배하게 된 숨은 원인이 되었습니다.


이러한 사례들은 오늘날의 하나님의 백성들인 우리가 처한 현실을 돌아보게 합니다. 1054년 동서방 교회의 대분열 이전에는 참된 교회의 ‘통일성’을 깨는 분열은 지금과 달리 매우 심각한 문제였습니다. 그러나 대적에 의해 한번 분열이 있게 되자 그 후 분열에 분열을 거듭해 왔습니다. 따라서 이러한 시대적인 흐름의 반 간증으로 서 있는 주의 회복이 이 분열의 문제를 심각하게 다루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고린도 교회의 예에서 보듯이 교회 안에 온갖 추악한 문제들은 이 분열이 근본 뿌리입니다.


셋째, 세대 교체에서 오는 위기 관리: 저들이 요단 강가에 단을 세운 것은 향후 다음 세대끼리 있을 수 있는 갈등을 미리 고려한 조치였습니다. 우리가 신앙 생활하는 외부 환경이 급격히 세속화 되고 또 적 그리스도화 되는 현재와 같은 상황에서 변함없이 하나의 간증을 유지하면서 믿음의 선진들이 전해 준 고귀한 신앙 유산들을 후대에까지 이어가는 문제는 결코 소홀히 할 수 없는 과제입니다.


넷째, 몸 안에서 자기 유익을 먼저 구한데서 오는 부작용: 사실 이런 모든 문제들은 두 지파 반이 이스라엘 백성 전체의 필요보다는 자신들의 필요를 먼저 고려한 것에 그 뿌리를 두고 있습니다. 이처럼 영적인 세계에서 조차도 주님의 몸의 필요보다도 자신의 필요를 먼저 고려하는 것은 흔히 보는 일입니다. 사도 바울도 “모두가 자신의 일만을 관심하고”, “그리스도 예수님의 일은 관심하지 않음으로” “자기와 같은 혼이 되어” “빌립보 교회를 진심으로 돌볼 사람”이 디모데 밖에 없다(빌2:20-21)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런 묵직한 주제들을 주님 앞에서 묵상할 때 여호수아 22장은 더 이상 구약의 이야기가 아니었습니다. 대신에 현재 우리가 처한 상황을 폭로하고 투명하게 비추는 엑스레이와도 같이 다가옵니다.



오 주 예수님, 우리의 핏속에 녹아 있는 이런 개인주의와 자기중심적인 생활 방식에서
철저하게 구원받기 원합니다.
좋은 땅이신 만유를 포함한 그리스도를 온전히 누릴 수 있도록
우리 모두가 한 백성, 한 몸, 하나의 우주적인 교회로 서 있게 하여 주옵소서!



글쓴이 : 갓맨

출처 : 성경진리사역원 http://www.btmk.org/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kakao talk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삭제하시겠습니까?

  • 모리아 산으로...
    주님이 우리에게 모리아 산으로 오라고 손짓을 하십니다. 내가 가지고 있는 가장 귀한... 지금까지 누려왔던.. 그 분에 대한 추구와.. 얻은 빛과.. 체험인 이삭을 데리고... 오라.. 오너라... ...
  • 목
    1. 목이 ‘곧은’ 사람과 목이 ‘곧바르지’ 않은 사람 '목이 곧은' 사람이라는 말은 자기 뜻대로 행하는 완고하고 교만한 사람을 가리킬 때 쓰는 말입니다. "내가 너희의 패역함과 목이 곧은 것을 ...
  • 목동이 된 임금님
    에브라임 산자락엔 여기 저기 포도원과 무화과 과수원이 있습니다. 그 중에서도 바알하몬은 솔로몬 임금님의 포도원이 있는 고장이었습니다. 그 바알하몬에서 술람미 가족은 임금님의 포도원을 ...
  • 목마름을 위한 기도
    주여 내마음에 당신을 향하여 갈급함과 목마름을 항상 주소서... 잠시잠깐의 목마름이 아니고 당신이 오실때까지 그리고 당신이 오신후에도 영원한 생수를 누리도록... 끊임 없는 목마름을 주소...
  • 목양은..
    • 유진
    • 조회 수 53448
    • 14.02.21.09:16
    우리가 성령의 통제를 거친 만큼 우리는 다른 사람을 알 수 있습니다. 다만 주변 사람의 말을 들어서 아는 것도 아니고 그 사람의 말을 들어서 아는 것도 아니고 그 사람의 말을 통해 흘러 나오...
  • 목회자 세미나를 마치며..
    야고보서를 마지막으로 2009년 전반기 목회자 세미나가 끝났다. 이제부터 두 달 동안 방학 기간이지만, 광주서는 참석자들의 요청으로 방학 동안에도 ‘하나님의 복음’ 결정연구를 유기적인 방식...
  • 목회자들과의 RSG
    두달 전부터 현직 여목사 1, 전직 여목사 1, 현직 여전도사 2명, 우리 자매들 4명이 RSG를 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회복역 추구모임은 토요일 오전 10시에 우선 아침 겸 점심을 먹고 (가정을 여...
  • 몰약의 산에서 유향의 언덕으로..
    주님의 목표는 유향의 언덕이지만 그 과정에 몰약의 산이 있습니다. 몰약의 산은 우리의 목표는 아니지만 주님과의 불일치를 느끼는 모든 사람이 갈망하는 것입니다. 거기서 자아는 희생되고 그...
  • 몸 안에서 분열이 없이
    아침에 성경 읽기 진도를 따라 여호수아서를 기도하며 읽었습니다. 비록 22장 안에 ‘그리스도의 몸’이라는 말은 없었지만, 읽어나가면서 받은 인상을 통해 신약 용어인 ‘몸 의식’(Body consciou...
  • 몸 안에서 좁은 길을 갈 수 있길...
    얼마 전에 개량 한복을 입은 아주 씩씩해 보이는 아줌마는 아니고... 그렇다고 어린 처녀는 아닌 거 같은 상황을 짐작키 어려운 여인이 와서 차와 샌드위치를 먹고 가서는... 좀 전에는 일단의 ...
  • 몸을 보지 못했기 때문..
    • 유진
    • 조회 수 14855
    • 14.11.19.10:33
    사람이 몸을 위할 수 없는 이유는 몸을 보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몸을 위해 무엇을 할 수 없는 이유도 몸을 근본적으로 보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보지 못한 어떤 것을 위해 우리...
  • 몸을 의식함..
    • 유진
    • 조회 수 18203
    • 14.11.07.14:20
    그리스도의 몸을 의식할 수 있다면 개인이 한 많은 일들이 사실은 몸이 한 것임을 알게 됩니다. 개인이 한 많은 수고가 사실은 몸이 그 지체를 통하여 한 것임을 알게 됩니다. 우리가 몸을 의식...
  • 몸의 거부하는 본성
    정상적인 몸은 어떤 것을 받아들이는 본성이 있을 뿐 아니라 또한 거부하는 본성이 있습니다. 우리 몸은 음식을 받아들이지만 음식 안에 섞여 있는 돌을 받아들지는 않습니다. 받아들이는 본성...
  • 몸의 손
    몸의 지체인 나는 손입니다. 손, 손, 손, 왜.. 나를 손이라고 하였는지 모르지만 나를 강조하면 할수록 내 이름이 어색해집니다. 왜냐하면 나는 몸을 떠나서 스스로 생각해 본 적이 없기 때문입...
  • 몸의 이상을 보는 것은..
    • 유진
    • 조회 수 20334
    • 14.05.01.10:47
    몸의 이상을 보는 것은 나는 다만 부분이라는 것을 보는 것입니다. 나는 지체로 인해 완전할 수 있고 나는 지체로 인해 일을 할 수 있으며 나는 지체로 인해 기능을 발휘할 수 있음을 보는 것입...
  • 몸의 이상을 본 사람은..
    • 유진
    • 조회 수 15069
    • 13.11.07.13:54
    우리가 하는 모든 일이 이상 가운데서 나온 행동일 수도 있고 이상이 결여된 단지 믿는이로서의 행동일 수도 있습니다. 외면적으로 같은 미덕과 같은 행동이, 그 내적 이유에 있어서는 차이가 ...
  • 무덤덤한 병
    어제는 평소보다 두어 시간 일찍 잠자리에 들었습니다. 두어 시간 일찍 잠에서 깨었습니다. 업치락 뒤치락하며 주님을 부르며 주님께 자신의 질병을 진단해 주실 것을 아뢰었습니다. 도대체 무...
  • 무리(無理)하신 하나님
    오른편 뺨을 치거든 왼편도 돌려 대며. 속옷을 가지고자 하는 자에게 겉옷도 가지게 하며. 오리를 가게 하거든 십리를 동행하고...(마5:39-42) 주님! 그건 상식이 아닙니다. 그건 순리가 아닙니...
  • 무언가를 하면 할수록
    무언가를 하면 할수록 더욱 건축되어야 하는 것은 그리스도의 몸입니다 그러나 무언가를 하면 할수록 높아진 사람이 나오고, 너무 높아져서 다른 사람들은 따라갈 수 없는 지경에 이르는 경우를...
  • 무엇을 보았느뇨?
    무엇을 보았느뇨? 사도 바울이 회심 후 받은 첫 번째 명령은 ‘그 눈을 뜨게 하라’는 것이었습니다(행26:18). 물론 이것은 영의 눈, 마음의 눈이 떠지는 것을 말합니다(엡1:18). 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