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가지 성경 진리를 나누는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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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관련 이슈 - 무엇이 근본적인 문제일까요?

 

우선 저는 C 형제님이 아님을 밝히고 이 글을 시작하려고 합니다(저는 예전에 구 안티오크 게시판에서 박만수 형제님과 토론을 한적이 있는 형제입니다).


저는 이런 논의가 일어나게 된 근본원인이 무엇일까를 잠시 생각해 보았습니다. 그리고 다음과 같은 잠정 결론을 얻었습니다.


1. 어떤 사람인가가 중요합니다.


여기에 이런 저런 다양한 이슈들이 거론되고 또 토론되고 있긴 합니다. 그러나 그 색깔과 논조와 내용은 그 말한 사람의 구체적인 나타남에 불과합니다. 즉 어떤 사람은 그런 식으로 말하고 주장할 수 밖에 없습니다. 내용에 있어서나 말하는 태도와 매너에 있어서 그렇습니다.


저도 적지 않은 세월동안 비록 인터넷 세계를 통해서지만 박만수님을 지켜보고 있습니다. 장점도 많으시고 성경도 많이 아시고 제가 배울 것이 많으신 분임을 인정합니다. 어떤 환경의 시련을 거치시는 동안 전보다 더 깎이고 원만해지신 면도 너무 보기 좋습니다.


그러나 다른 면에서 말씀드리자면, 오랫동안 세월을 지나면서 조성된 존재 자체는 금방 딴 사람으로 확 바뀌는 것이 아님을 역시 보게 됩니다.


외람되게 말씀을 드린다면 박만수님의 현재의 최대의 약점은 실제적으로 대등한 수준에서 동역하거나 이끌어 주고 조언해 주고 때론 책망하고 교정해 줄 수 있는 보다 더 성숙한 스승 내지는 영적 선배가 없다는 사실입니다(이 말은 성경이나 역사상 과거 인물로부터는 그런 도움을 받지 못한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그러므로 본인은 비록 진리의 영님의 인도와 도움을 받아서 전진하신다고 하지만 어떤 부분은 진리의 영님도 어쩌지 못하시는 부분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환경의 압력과 좌절과 주변 지체들의 걸리적거림과 성가시게 함 등등이 있는 것입니다. 이런 일종의 가시들은 박만수 님을 공격하거나 괴롭히려거나 사역을 방해하려고 달려든 세력들이 아니라는 것을 보셔야 할 것입니다.


다시 말씀드리자면 실제적인 교회생활 안에는 아비도 있고, 청년도 있고, 영적 어린아이도 있으되 박만수 님이 스스로 그렇게 만드신 교회생활 환경 속에서는 박만수 님을 능가하는 영적 선배가 없으십니다(서울교회나, 영월이나 이곳 안티오크 홈을 찾는 분들은 박만수 님의 도움과 공급을 받는 분들일 것입니다).


그렇다면 왜 이런 상태가 되었을까요?(지금부터가 제가 하고 싶은 말입니다)


주님의 몸 안에 박만수 님 만한 다른 지체가 없어서 일까요? 박만수 님을 온전케 할 영적 스승이 없어서 일까요? 그렇지 않을 것입니다. 저를 박만수 님과 견줄 수는 없겠지만 주님의 긍휼로 저는 그리스도의 몸 안에서 또 실제 생활 중에 저와 동등한 입장에서 동역하거나 저를 영적으로 이끌어주고 온전케 해 주실 적지 않은 몸의 지체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왜 박만수 님 주변에는 그런 분들이 없을까요?


그것은 아마도 박만수 님이 자기를 도울만 하려면 예수님 정도로 완벽한 사람이어야 한다는 높은 기준이 있기 때문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즉 아무리 몸 안에서 영적으로 성숙했다 할지라도 모든 방면에서 완벽하지 않고 조금이라도 흠이나 헛점이 있다면 가차 없이 그것을 지적하고 공격하여 무시하고 거리를 두시다보니(박 형제님은 이것이 자신의 은사라고 까지 표현하셨지요), 결국 자기 혼자만 달랑 남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 자신을 그래도 좋아하고 귀히 여기는 따르는 분들이 있을 수는 있겠지요.


이것은 박만수 님의 일종의 '날카로운 분석력'과 '판단력' 그리고 '끊고 맺는 것을 분명히 하는 좋은 기질'의 결과일 수 있습니다. 거기다가 박만수님은 문장력까지 있으시지요. 그러나 분명한 것은 그런 것들이 십자가의 죽음을 통과한 새 사람의 성분은 아직 아닐 수 있다는 것입니다. 제 개인적인 관찰에 의하면(틀릴 수도 있습니다만) 여전히 <박만수님의 똑똑한 옛사람>(롬6:6)에 불과할 수 있습니다.


모세에게도 이런 모습이 있었으되(행7:22), 그것만으로는 하나님의 뜻을 이루지 못하며, 다만 사람을 죽이고 사람들과 갈라서는 결과만 가져올 뿐이었습니다(출2:12, 15). 지금까지 호의를 가지고 박만수 님 주변을 맴 돌다가 사라졌던 수 많은 분들이 계셨던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만일 박만수님이 그렇게 된 것은 그분들에게만 문제가 있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하신다면 여전히 어둠가운데 계신 것입니다. 만일 자신에게도 문제가 있을 수 있다면 그것이 과연 무엇이겠습니까? 어쩌면 주님은 박만수 님의 이런 (천연적으로) 똑똑한 방면들을 '광야 40년의 허비'로 다 아무 것도 아닌 것이 되게 하신 다음에야 다시 그것을 들어 귀하게 쓰실 수 있으실지도 모르겠습니다. 몸 안의 생활에서 참된 영성은 다른 지체들과 하나로 건축되고 동역할 수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대다수의 소위 영적 거인들은 다 이러한 참된 동역에 실패 했습니다. 그런 면에서 저는 <워치만 니와 위트니스 리의 관계>를 귀하다고 여깁니다.


그러나...지금 상태로는 박만수 님은 매사에 너무 자신감이 넘치십니다. 그리고 너무 자기확신(독단)이 강하십니다. 예리하시고, 논리적이고, 상대방의 약점을 단번에 잡아내고 자신을 공격하는 것에 대해서 순발력 있게 반박하는 능력이 탁월하십니다. 아마도 토론이나 말싸움에서 남에게 밀려보신 적이 거의 없으실 것입니다. 이런 것이 사람 눈에는 참으로 좋은 장점입니다. 그러나 환도뼈가 부러진 사람의 모습이 아닌 것은 분명합니다. 그러나 박만수 님에겐 지금의 이런 모습보다 야곱(이스라엘)의 절름발이의 모습(창32:31)이 더 성숙한 모습일 것입니다.


이런 권면을 제가 할 수 있는 자격이 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저도 한 몸의 지체로서 서로 권면하고 받는 특권을 누리기를 소망합니다. 매우 죄송합니다. 저도 여전히 이런 말을 할 때 주님의 보혈을 힘 입어야 하는 약한 자에 불과합니다.


2. 현안이 된 진리항목들에 대해


현재 '사도문제'나 '지방입장' 이런 것들이 이슈가 되어 그외에 불 필요한 영역까지 얽혀든 것 같습니다. 저를 포함해서 여러 사람들이 이런 저런 말들을 쏟아내고... 왜 그렇게 되었을까요?


만일 저라도 '워치만 니에 대해서 무엇이 문제냐'라는 질문을 공개적으로 받았다면 어떤 자신의 관점을 말했을 것입니다. 또 각자가 자기 관점이 있게 마련이고 워치만 니도 그냥 주 안에 한 형제임으로 얼마든지 어떤 평가 아래 놓일 수 있습니다.


다만 진리나 사실만을 말하고 자신의 주장을 절대화 해서 남을 지나치게 폄하 한다는 인상을 주지 않도록 조심해야 할 것입니다(제가 이런 말을 할 자격이 있나요?).


즉 1) 사도문제는, <나는> 워치만 니와 입장을 달리해서 계시록의 사도요한을 끝으로 더 이상 사도는 없다고 생각한다. 2) 지방입장에 대해 워치만 니는 매우 강조했으나 나는 그런 지역교회는 불 필요하고, 거듭난 모든 성도들을 다 포함한 우주적인 교회(마16:18)면 족하다고 본다. 정도면 족할 것입니다.


그러나 박만수 님은 이에서 더 지나쳐서 우주교회 지방교회를 나눈 것은 (1) (성경엔 근거가 없고) 다만 '워치만 니의 아이디어'일 뿐이다. (2) 그런 구분은 필요도 없고, (3)오히려 그렇게 구분하면 위험하다 는 식으로 몰고 갔습니다.


그러면서도 서울에 몇 개의 교회가 있느냐는 저의 질문에 대해 하나의 교회가 있다고 답변했습니다. 그렇다면 서울에 둘이나 셋이 아니라 단 하나의 교회가 있다는 박만수님의 답변은 어디에 근거한 것이란 말입니까?


또한 박만수 님은 자신이 '서울성경교회의 장로'라고 하셨는데 그 의미는 자신이 서울에 하나 뿐이라는 그 교회의 장로란 뜻인지, 그렇다면 그런 서울교회 내에 또 다른 장로는 누구 누구인지 답변할 수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객관적으로 볼 때는 박만수 님은 '서울성경교회'라는 이름으로 지칭되는 그 무리의 장로이실지는 몰라도, 서울에 하나뿐인 그 서울교회의 장로는 아닐 수 있습니다. 이 차이를 곰곰히 생각해 보다면 박만수님의 주장과 논리가 사실과 다른 기초에 근거하고 있음이 금방 드러나고 맙니다. 즉 박만수 님의 공급아래 있는 '서울성경교회'가 사실상의 하나뿐인 '그 서울교회'와 동일개념이거나 만일 그것이 아니라면 박만수 님은 서울에 하나뿐인 그 서울교회의 장로가 아닌 것입니다. 둘다 성경의 가르침이나 사례와 어긋난 실행에서 온 필연적인 결과입니다.


(이렇게 자기 확신에 근거하여 상대방을 불필요하리만큼 코너로 몰아부치는 식의 글쓰기가 반복되는 것은 박만수님의 오랫동안의 천연적인 조성이 그러하기 때문이라고 저는 보고 있습니다. 늘 님의 그런 처신이 상대를 자극하고, 상하게 하고, 마음을 닫게 하고, 마침내 등을 돌리게 하고 있음을 박만수 님만 그렇게 심각하게 깨닫지 못하고 계신 것으로 보입니다. 이런 부분만 잘 다듬으실 수 있다면 참 좋겠습니다).


그래서 제가 지켜 보고 있다가 1) 사도문제는 여전히 다툼이 있는 주제 라는 정도로 놔 두면 어떤가? 2) 교회와 지역교회들 구분은 성경의 이곳저곳에서 발견되는 성경의 사실들이지 어느 개인의 아이디어가 아니다. 또한 그렇게 우주교회와 지역교회를 구분해야 할 이런 저런 필요가 있다 고 반론을 제기했습니다(이런 과정에서 박만수님을 실례로 들은 것이 지나쳤다면 용서해 주시기 바랍니다).


만일 이것이 일리가 있는 주장이라면 저는 지금이라도 이 문제는 이 정도에서 마무리 하기를 희망합니다. 다시 말씀 드리지만 <사도>니 <지방입장>이니 하는 것은 우리에게 "유일한 중심진리"가 아닙니다. 즉 여러 분들이 오해하시듯이 소위 지방교회가 그 진리에만 집착하는 사람들이 아닙니다. 표현이 좀 그렇지만 그것들은 중요하되 지엽적인 진리입니다.


오히려 '하나님의 경륜' '분배' '그리스도' '그분의 인생, 죽음, 부활, 승천' '생명주는 영' '그리스도의 몸' '왕국' '일곱영(이기는자들)' '새 예루살렘' '생명' '생명의 성장' '참되게 그리스도의 몸을 건축하는 실제적인 길' '신언'....이런 것들을 아주 많이 관심합니다.


이곳에 계신 분들은 남들이 악의적으로 묘사한 '지방교회'나 본인들이 잠시 단편적으로 체험한 '지방교회'가 '그 지방교회의 전부'라고 생각하시니까 대화에 간격이 있는 것 같습니다. 오 주님, 어떻게 하면 이런 간격이 제해질 수 있을런지요? 당신을 앙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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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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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예루살렘 2013.11.23. 11:07
박만수님의 최근 근황은...영월 예밀리 김삿갓마을에 거주하면서 포도농사도 짓고 하다보니 포도주 제조해서 파는 일을 구상하고 있는 모양입니다. 그를 비판하는 사람들(예전에 그를 돕다가 상처받고 돌아선)은 성경번역에 일생을 바치겠다고 하더니 어떻게 술 파는 사람이 되었느냐고 다그치고 있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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