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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관련 이슈 - 박만수님의 지적에 대한 간략한 추가 해명


추가해명 1


“'박만수'님과 '등대로'님의 글을 비교하면 '박만수'님의 비판은 크게 3가지며 분설하면 12가지 정도였고 '등대로'님께서 해명하신 부분은 5) 6) 8) 10) 등의 4가지라고 보입니다. 주로 역사나 현황에 대한 구체적 내용은 언급을 하지 않으셨습니다. 입장이 궁금합니다.


박만수 님께서 제기하신 내용을 제가 다음과 같이 요약해보았습니다.


1. 지방교회 역사


1) 중국의 집교회 운동, 지도층의 사도성 문제, 분파적 독선주의로 이단시비
2) 니토생, 이상수, 스테픈 캉, LA 이주후 변형, 비전의복구 비판, 왕중생 문제로 한국교회 갈등
3) 모라비아 교회의 역사는 종교개혁 이전이나, 지방교회는 종교개혁을 기점으로 회복을 정체성”


해명: 우선 박만수님은 주의 회복(타칭 지방교회) 안에서 한번도 신앙 생활을 해본 적이 없는 분입니다. 단지 라이프 스타디를 조금 읽었고, 킹제임스만이 무오류의 성경이라는 입장을 강하게 주장하는 위치에서 자기 소견을 말한 것일 뿐입니다. 이에 대하여 가타부타 말하는 것이 또 다른 분쟁을 가져올 수 있으니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도 있나보다 라고 지나칠 뿐입니다.


참고로 주의 회복 안의 성도들이 이 땅에서 관심하는 것은 오직 두 가지입니다. 첫째는 하나님의 경륜이고(딤전1:4), 두 번째는 그리스도의 심판대입니다(고후5:10). 전자는 우리가 가는 길의 방향과 목표를 제시하며, 후자는 우리가 살았던 행적의 성적표입니다. 지난 소위 지방 교회들의 역사는 길게는 사도행전의 예루살렘 교회(행8:1)로부터이나 워치만 니로부터는 약 90여년을 지나왔습니다. 현재 총공회가 그런 작업을 해 오고 계시듯이 주의 회복도 이미 진작부터 초기부터 자체 내에서 발생했던 기록들을 있는 그대로 다 상세하게 기록하여 책으로 펴냈습니다. 성공과 실패의 역사들을 통해 주님 앞에서 배워야 할 계시와 교훈들을 후대에 알리기 위한 것입니다. 그 많은 내용들을 여기서 다 기록할 수는 없습니다. 만일 참으로 관심있으신 분들은 도합 약 천 여쪽 되는 <역사와 계시>(상,하)(한국복음서원)라는 책자들을 참고해 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원문이 중국어이고 한국어로는 번역이 되었으나 애석하게도 영어 번역이 아직 안 되었습니다. 현재 영문 책자만 인터넷을 통한 읽기가 가능한 상태입니다. 일단 이 부분은 아쉽지만 이런 정도로 해명을 해 두도록 하겠습니다.


추가 해명 2


“2. 지방교회 장점


4) 천주교의 성직계급 거부, 형제 기초의 유기적 교회 형태, 내적 체험 중시의 경건주의”


해명: 있는 그대로 입니다.


추가해명 3


“3. 지방교회 문제


5) 워치만 니와 윗트니스 리의 사도성 인정으로 두 분의 무오류성이 시험대에 올랐고
6) ASV이 원어에 가장 가깝다 하였으나 실제 회복역은 알렉산드리아 사본을 기초했고
7) 성경해석에서 카톨릭의 알레고리해석을 일관하여 경건주의를 넘어 신비주의 늪에 빠짐
8) 양태론 삼일론, 신인합일, 부분휴거, 사후 제3의 훈련소, 말씀먹기, 주의 이름 부르기, 신언
9) 한지방교회론을 두고 '세상 지방자치행정의 단편'을 교회의 절대 교리로 주장
10) 한지방교회론을 두고 워치만 니와 다르고 중국과 대만의 워치만 니 추종자들이 비판
11) 자신들만 참교회고 다른 모든 교회는 지방 입장에 서 있지 않으니 바빌론 포로상태라는 독선
12) 성경보다 더 지나치게 나간 지방입장론 교리를 성경의 수준으로 끌어내릴 필요가 있을 것”


7번, 해명) 알레고리, 신비주의 해석


워치만 니와 위트니스 리는 형제회 배경을 가진 분들입니다. 이 말은 이 분들의 성경해석의 1차적 원칙은 글자 그대로를 받아들이는 문자주의입니다. 그러나 그런 해석이 말이 안 될 때(예를 들어, ‘보라 세상 죄를 지고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이로다’) 2차적으로 영적인 해석을 시도합니다. 이러한 두 단계가 워치만 니와 위트니스 리의 성경해석의 골격입니다. 그외에 특정 성경구절을 해석함에 있어서 나름대로 최선을 다하여 관련 성경구절들을 근거로 해석을 시도하나(회복역 성경 각주들과 관주들이 그 증거), 어떤 이들은 이것을 문자주의라고 비판하고 또 어떤 이들은 정반대로 이것을 알레고리라고 비판합니다. 이에 대해서는 그렇게 비판하도록 자유를 줄 뿐입니다. 또한 생명의 체험과 같은 주관적인 방면들이나 계시로 알수 있는 성경의 깊은 부분들을 본인들이 미처 경험하지 못한 것이고 또한 인간 이성의 기준으로 보면 그것이 ‘신비주의’처럼 보이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 또한 그렇게 말하도록 내버려 둡니다. 모든 비판에 다 반응할 필요는 없습니다.


저희에게는 하나님과 그분의 말씀이 우리에게 주관적으로 계시되고 체험되고 그분의 말씀의 실재를 얻는 것만이 참으로 관심이 있을 뿐입니다.


9번, 해명) 지방 단위의 지역교회


어떤 이들은 자신들이 존경하는 성경교사들을 교회를 구분하는 기준으로 삼습니다(루터교). 또 어떤 이들은 자신들이 절대시하는 교리를 교회 구분의 기준으로 삼습니다(침례교, 장로교, 성결교). 또 어떤 이들은 거주지역을 교회와 교회를 구분하는 기준으로 삼습니다. 만일 앞의 것을 선택할 자유가 있다면 뒤의 것도 그렇게 할 자유를 허락하는 것이 공정할 것입니다. 여기서 주목할 것은 이것들 중 과연 어떤 것이 성경에 그 근거와 사례를 가지고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몸된 교회의 일원이 되는 것은 거듭나야 합니다. 그러나 특정 지역 교회가 되는 것에 있어서 성경 어디에도 특정 성경교사나 특정 진리로 나눈 사례가 없습니다. 그러나 일부 집 교회의 예를 제외하고는 거의 모든 지역 교회들은 도시지역(city) 단위입니다. 서신서의 수신인들이 그러하고 계1:10, 행8:1, 13:1의 사례가 그러합니다. 그렇다면 성경에 사례가 아예 없는 실행보다 성경에 다수의 사례가 있는 실행을 하는 것이 문제가 될 이유가 없습니다. 이것은 많은 분들의 오해처럼 배타적이지도 않습니다. 왜냐하면 그 거주지역 단위 내의 모든 거듭난 사람들을 포함한 개념이기 때문입니다.


또한 ‘지방범위’로 교회를 나누는 원칙은 영원히 절대적인 것은 아닙니다. 새 예루살렘으로 온전히 변화될 때까지 교회시대라는 과도기적인 시기에만 적용됩니다. 계란껍질은 흰자와 노른자가 병아리로 부화될 때까지만 필요하고 그후엔 필요가 없게 될 것입니다. 분열과 거역이라는 옛사람의 본성을 폭로하고 제한하는 역할을 일부 담당하는 것입니다. 주의 회복 안에서도 지방교회는 절차요 과정일 뿐 새 예루살렘만이 영원하다고 가르칩니다.


11번, 해명) 참교회


지방교회 개념에 대한 오해에서 온 것입니다. 워치만 니와 위트니스 리를 귀히 여기는 사람들만 지방교회가 아닙니다.


12번, 지방입장과 성경의 근거


이 역시 지방입장에 대한 오해일 뿐입니다. 성경에서 지역교회를 나누는 기준으로서 지방범위보다 더 성경적인 것이 있으면 그것이 무엇인지 당당하게 제시해야 할 것입니다. 박만수님은 기존의 분열의 기준들에 더하여 참된 성경이라는 이슈를 가지고 참된 믿는 이들을 나누고 있습니다. 그러나 참된 성경이냐 아니냐, 침례냐 세례냐, 장로제도냐 감독제도냐 회중제도냐, 등등은 한 몸을 나누는 ‘절대기준’이 결코 아닙니다. 1. 거듭 났는가, 2. 거듭난 후 어디에 거주하는가? 이 두 가지만이 교회에 관하여 우리가 물을 수 있는 두 가지 질문입니다.


간략하게 보충하여 보았습니다. 미진한 부분이 있으면 말씀해 주시면 시간이 허락되는 대로 또 추가하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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