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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적인 교회관 소개와 HJ 님의 교회관 비판 (9)


지난 번 저의 반박글에서 이미 밝혀 드렸지만 HJ 님의 6번째 글부터는 제 1차 반박글에 대한 HJ 님의 재반박입니다. 그러므로 새로운 내용은 거의 없으며 단지 서로 간에 의사전달 과정에서 약간의 오해가 있는 부분이나 좀 더 심화해서 토론할 내용들을 중첩적으로 다룬 것에 불과합니다.

 

HJ 님은 신약에서 4회에 불과한 '00 집에 있는 교회'라는 성경 구절들을 근거로 한 지방 안에 그 지방을 포괄하는 하나의 교회가 있을 뿐 아니라 그 지방 교회 안에 포함된 복수의 집교회들이 있을 가능성(가설)을 계속 주장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가능성이나 가설에 불과할 뿐 한 지방에 하나의 교회를 명확하게 말해주고 있는 여러 성경 구절들이 말하는 바를 뒤집지는 못할 것임을 누차 지적했습니다.

 

그리고 <집 교회 개념>은 장로들을 선임하는 범위나 치리의 범위 같은 현실적인 문제들과 연관지어 보면 더 비 현실적임을 강조했습니다.

 

이제 이하에서 HJ 님이 추가적으로 문제 제기한 것들을 다룰 가치가 있는 것을 선별하여 재차 반박 또는 변증해 보고자 합니다.

 

 

HJ 님 7번글에 대한 P 의 반박임

 

(HJ)

 

저의 주장의 요지를 다시 요약합니다. 앞에서도 같은 주장을 해 왔습니다. 지역교회 실행론의 성경적 원리는, "한 그리스도 한 교회"론뿐이다. 다른 원리는 없다. "한 그리스도 한 교회"론의 이 원리로, 각 상황과 문화와 지역에 따라서, 어떤 경우는 가정에, 어떤 경우에는 도시에, 어떤 경우에는 도시 이상의 행정단위에도 '교회"라는 용어를 사용할 수 있고, 그것이야말로 성경의 실행이라는 것입니다. 증거구절들은 이미 제공되었습니다.

 

반박: 소위 '한 그리스도 한 교회론'은 그 모임에 그리스도가 있다면 그곳은 교회라는 것입니다. 이 이론의 치명적인 약점은 그 모임에 그리스도가 있는지 없는지를 누가 판단할 것이며 또 어떻게 알 수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즉 예를 들어 <장로교 00교단 소속의 서울에 있는 갑 교회>에 등록된 신자 중에서 자신이 거듭난 성도라는 확신이 있다고 응답한 사람이 70퍼센트 뿐이고 나머지는 거듭났는지 잘 모르겠다고 한다면 그 갑 교회에 그리스도가 있는지 없는지를 어떻게 규정지을 것인가 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가 있고 없고는 각 개인의 거듭남의 확신에 달려 있거늘 HJ 님은 지금 그것을 개인이 아니라 특정 단체 단위로 판단하는 것이 성경적인 교회론이라는 주장을 굽히지 않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성경 어디에도 근거가 없는 주장입니다.

 

 

(HJ)

 

여의도순복음교회와 런던의 양무리교회를 성경적으로 나누는 기준이 그렇게도 어렵습니까? 여의도순복음교회에 그리스도가 있습니까? 그렇다면 무어라고 불리워지든지 상관없습니다. 여의도순순순순복음교회라고 해도 상관없습니다. 런던의 양무리교회에 그리스도가 없습니까? 그렇다면, 아무리 순진짜참양무리교회라고 해도 소용이 없습니다.

 

반박: 여의도순복음교회 등록자이면 다 그리스도가 있거나 다 없을 수가 있습니까? 그 중에는 아직 구원의 확신은 없으나 여러 가지 사정으로 교인으로 등록을 해 놓은 경우가 있을 것입니다. 양무리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개인이 죄사함과 거듭남의 확신을 따라 그리스도가 있고 없는 것이지 개 교회 단위별로 그리스도 유무를 따지려는 것은 현실적이지도 않고 성경에 그런 예가 없습니다.

 

 

(HJ)

 

저의 견해를 간단히 말합니다. 1)그런 실행이 성경에서 발견되고 있다고 제가 수차 말씀드렸습니다. 라오디게아교회의 실행(골4:16), 에베소교회의 실행(고전16:19), 로마교회의 실행(롬16:5) 등 그외에도 제가 또 말씀드린 구절들을 대상으로 저의 견해를 직접 비판하시기 바랍니다.

 

반박: 소위 집 교회에 대한 신약에서의 4차례의 언급은 그 지역에 지방교회의 초기 단계이거나 그 서신서를 쓸 당시에 그 집에서 모이는 성도가 그 지역 전체 성도일 뿐 그 지방교회와 별도의 교회이거나 그 지방교회 내에 있는 별도의 집 교회들이 아닙니다. 성경 어디에도 특정 지방에 복수의 집교회들이 있었다는 기록이 전혀 없습니다. 거듭 말씀드리지만 어떤 가정에서 집회를 정기적으로 가졌다는 것만으로 그 집 교회가 되지는 않습니다. 예루살렘에 수 많은 가정들 안에서 모임이 있었으나 성경은 그 모든 것을 다 합해서 <예루살렘에 있는 교회>(행8:1)라고 했습니다. HJ 님 주장처럼 예루살렘에 다수의 집교회들이 있었다면 성령님은 <예루살렘에 있는 교회들>이라고 기록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3)칼빈의 교회관도 저의 관점과 별로 다를 것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저의 견해와 칼빈이 다른 견해를 주장한다는 증거가 있다면 저에게 가르켜 주십시오.

 

반박: 칼빈의 가르침이 님의 가르침과 동일하다는 것을 증명해 보시지요. 저는 칼빈의 교회론 어디에서도 님처럼 가르치는 것을 보지 못했습니다. 칼빈은 1) 가시적, 불가시적 교회론을 주창했고, 2) 장로제도를 전제함을 부인하는 님과 달리 교직자들이 그 지역교회 안에 있음을 전제로 옳은 말씀선포와 성례의 집행을 주장했고, 3) 님처럼 한 지역 내에 그것이 순복음이든 양무리이든 그리스도만 있으면 아무 상관없다는 것이 아니라 구체적인 지역교회 내에서는 교리가 일치해야 함을 강조했습니다. 이외에도 수 많은 차이가 발견되지만 이 정도만으로도 HJ 님이 현재 주장하는 것은 개혁신학적 교회론 또는 칼빈의 가르침과도 크게 다릅니다. (오토 베버 지음, 칼빈의 교회관, 풍만출판사, 1985 참조)

 

 

(HJ)

 

"한 그리스도 한 교회"의 영적 원리 외에 다른 대안은 없습니다. 이것이 탄력적인 "지역"개념과 적용되어서, 혹은 가정교회로, 혹은 도시교회로, 혹은 도 이상의 단위에 적용되기도 한다는 것이 저의 주장입니다. 성경이 또한 그렇습니다. 다른 것을 찾는 것은, 바로 신기루를 좇는 것입니다.  

 

반박: 여러 번 지적해 드렸지만 님의 주장은 우주교회론은 될지 몰라도 복잡다단한 지역교회들을 성경적으로 구분하는 기준은 될 수 없습니다. 그리고 백보 양보해서 님이 만일 가정 혹은 도시 혹은 도 단위 이상의 범위에 기초한 지역교회론을 주장하시려면 그외의 사람 중심, 민족 중심, 특정 교리중심 교회론 실행을 허용하지 말아야 말이 일관될 것입니다. 둘 다 인정하는 것은 '지역'을 탄력적으로 적용하는 것이 아닙니다. 사람중심, 교리중심, 민족중심은 지역중심과 양립이 가능하지 않습니다.

 

 

HJ 님 8번 글에 대한 P 의 반박임

 

 

(HJ)

 

P 님은 "아굴라와 브리스가의 집에 있는 교회"라는 표현을 통해서 제가 마치, "에베소라는 지역 전체를 포괄하는 교회와 상이한 별도의 교회"라고 주장하는 것처럼 왜곡하고 있습니다. 저는 전혀 그렇게 주장한 바가 없습니다. 저의 글을 다시 보시기 바랍니다. 저는, '아굴라와 브리스가의 집에 있는 교회"가 에베소시전체의 교회와 "별도"의 교회가 아니라, 바로 에베소시에 '안'에 있는 '교회'임을 주장해 왔습니다. 그 근거를 저는 물론 제시하지 않았습니다.

 

반박: 집 교회가 그 지방 전체를 포괄하는 하나의 교회와 다른 별도의 교회(들)이라는 님의 주장은 어떻게 말하든 교회 범위가 중첩됩니다. 즉 갑이라는 성도는 특정 집 교회 구성원임과 동시에 또 그 지방전체를 범위로 하는 지방교회의 구성원도 된다는 것이 님의 주장아닌가요? 그러나 그런 교회는 성경에 없다는 것입니다. 교회와 교회는 아무리 그 규모가 다르더라도 행정에 있어서 각각 하나님 앞에서 책임을 지는 것이며 어느 것이 어느 것에 예속되거나 중첩되지 않습니다. 계시록의 일곱 교회는 일곱 금등대였습니다. 교회는 각각이 하나의 금등대입니다.

 

(HJ)

 

그것은, "브리스가와 아굴라의 집에 있는 교회"가 "에베소교회" 자체라고 하는 것처럼 또한 추측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저는 이렇게 질문했었습니다: "먼저에베소에 있었던 12명의 제자들(19:1-6)....바울이 2년여 동안을 두란노서원에서 강론하면서 세워졌던 교회는...주 예수의 이름을 높이고 믿은 사람들이 많이 와서 자복하여 행한 일을 고하(19:14-18)였다고 하는데, ...에베소에 믿은 사람들이 "많았다"고 하는데(행19:14-18), 그 많은 사람들이 모두 다 "브리스가와 아굴라의 집에 있는 교회"에 모였겠는가 하는 것을 판단하는 것은, 바로 이 글을 읽는 이들이 판단할 몫입니다.

 

반박: 에베소 교회가 영구적으로 브리스가와 아굴라 집에서만 모였습니까? 아니면 그들이 타 지방으로 이주한 후에는 더 이상 에베소에 '브리스가와 아굴라 집에 있는 교회'는 없습니까? 어떤 지방에 처음 복음이 전해질 때는 헌신 된 한 가정에서 모임을 가질 수 있고 이곳 저곳에서 살지만 그 집으로 예배를 드리러 올 수 있을 것입니다. 그 시점에서는 그 지방교회를 그 집에 있는 교회라고 말해도 아무 문제가 없습니다. 그러나 차츰 인수가 증가하여 그 집에 모이기가 힘들거나 아니면 그 집사람들이 타 지역(예를 들어 로마) 으로 이주할 경우 그 지역에 여전히 성도들이 있지만 그 집에 있는 교회의 의미는 상실되고 더 전진된 장소에서 모이는 그 지방의 교회가 될 수 있습니다. 이것은 심지어 요즘에도 볼 수 있는 지극히 정상적인 현상입니다. 상식적으로 충분히 이해가 되는 문제들입니다.

 

 

(HJ)

 

워치만 니의 견해는, 전혀 HJ 가 예상하고 있는 답변이 아니다. 그리고 HJ 가 가지고 있는 질문에 전혀 대답하지 못하고 있다. HJ 는, 12명의 제자들이 '브리스가와 아굴라의 집에 있는 그 교회"에 모였겠는가 질문하고 있다. HJ 는, 바울사도가 두란노서원에서 강론하면서 2년여 이상을 전도하면서 모았던 교인들이 "브리스가와 아굴라의 집에 있는 그 교회"에서 모였겠는가 질문하고 있다. HJ 는, 에베소도시에 "믿은 사람들이 많았다"고 한 그 많은 사람들이 바로 이 "브리스가와 아굴라의 집에 있는 이 교회"에 다 모였겠는가 질문하고 있다. 워치만 니는 이런 질문들에 전혀 답변하지 못하고 있다.

 

반박: 이미 위에서 충분히 설명드렸습니다.

 

 

(HJ)

 

저는 분명하게 가설인 것을 가설이라고 합니다. "고린도에 있는 하나님의 교회"라는 말도 그 "교회"안에 하나의 지역교회만 있었는지 아니면 하나 이상의 교회를 염두에 두고 "교회"라고 하는지는 검토해 보아야 할 가설입니다. 그런 가설을 가설이라고 해야지, 님처럼 "사실"이라고 하는 것은, 독단적입니다.

 

반박: 문제는 가설을 근거로 분명한 성경적인 근거가 있는 주장과 실행을 '해체되어야 한다'는 표현을 사용하며 공격하는 것입니다. 가설은 증명되기 전까지는 아무 것도 아닙니다.

 

 

(HJ)

 

저는 "온 교회의 식주인 가이오"라는 표현을 현실적으로 이해해야 한다는 전제에서 하나의 가설을 세운 것이고, 헨드릭슨이라는 성경주석학자의 견해를 빌려왔습니다. P 님은 그 표현을 막연하게 이해하고서는 자신의 신학적 전제를 기초로 해서 이 "온 교회"는 고린도도시 전역의 교회일 것이라는 가설을 갖고 있습니다. 그 가설을 P 님은 사실이라고 착각하고 있고, 저는 이 가설을 가설이라고 생각하면서 검토하고 있습니다. 

 

반박: 사실은 선입관을 갖지만 않는다면 온 교회 식주 가이오라는 말은 지역교회나 가정교회 문제와 아무 관련도 없음을 알게 될 것입니다. 누구든 자신의 가정을 열어서 성도들을 접대하는 일을 할수 있고 또 그럴경우 사용할 수 있는 표현에 불과한 것입니다. 온 교회 식주라고 했다해서 진짜 모든 성도들이 매주 그집에 와서 밥을 먹는다는 표현일까요? 그것은 지나친 것입니다. 저는 온 교회 식주 가이오처럼 종사하는 분들을 여러 번 보았습니다. 그러나 그 집이 교회의 단위가 되거나 온 교회 성도들이 다 그 집에 가서 끼니를 해결하는 의미가 아니라는 것은 상식입니다. 어떤 개인적인 선호없이 온 교회를 향하여 가정을 열 때 충분히 그런 명칭으로 불릴 수 있는 것입니다.

 

 

(HJ)

 

바울사도가 이 구절 앞까지, 고린도교회 자체의 문제를 두고 이야기해 왔었습니다. 그러다가 하는 말이, "모든 성도의 교회에서 함과 같이"라면서 "여자는 교회들에서 잠잠하라"고 합니다. 이것은, 바로 이곳의 "여자'는 일차적으로 "고린도"의 여자를 말한다는 것입니다. 한국여성들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다가, "모든 세상의 여성들처럼', "여성은 강하다"는 말을 했을 때의 그 "여성"은 당연히 "한국"여성이라고 해야 자연스러운 이치와도 같습니다. 문맥을 통한 의미론적 접근입니다.

 

여러 다른 지역들의 교회들의 성도들이 그렇게 하는 것처럼, 너희 고린도교회의 여자들은 각각의 교회들에서 잠잠하라는 권면으로 이해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문맥상 자연스럽습니다. "한 도시 한 교회"라는 신학적 편견없이 본다면, 바울사도가 여기서도 "교회"라는 용어를 아주 탄력적으로 사용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반박: 만일 HJ 님 주장처럼 고린도 지방 내에 복수의 교회들이 있었다면 바울은 고전 1:2에서 고린도에 있는 하나님의 교회들이라고 복수를 사용했어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고린도에 있는 하나님의 교회(to the Church of God in Corinth)라고 분명하게 단수로 씌여 있습니다. 위 영어 본문을 잘 보시기 바랍니다. 고린도라는 분명한 지역범위, 정관사가 붙은 단 하나의 교회...무엇이 더 필요하겠습니까? 

 

한 지역내에 하나의 교회가 있고 또 그 안에 여러 교회들이 있을 수 있다는 가설만 내려 놓는다면 성경본문에 대한 이해는 그리 복잡하지가 않습니다. 그러나 어떤 색안경을 쓰고 그것에 꿰어 맞추려고 하다보면 모든 구절들이 다 자신의 주장을 지지하는 것처럼 보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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