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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답변1에 이어지는 추가 답변입니다.



청신호: “이런 이해를 바탕으로 하여 보면 <정상적인 그리스도인의 믿음>이란 책에서 발견되는 아래의 표현들은 개신교의 삼위일체 이해와는 약간 다른 혼돈을 줄 수 있지 않나 생각해 봅니다.  숫자는 페이지이며  특별히 오해의 소지가 있는 부분은 밑줄 쳤습니다.


종래  “나와 아버지는 하나이니라"는 말을 한 사람이 없었다. 그러나 여기 한 사람 나사렛 예수는 말했다. 나와 보이지 않는 그 하나님은 하나다. 내가 곧 그요 그가 곧 나다  88


보이지 아니하는 분은 하나님이시요,보이는 분은 바로 나다. 92


예수(그)가 곧 하나님이요 하나님이 곧 그이다 93


이 두 표현은 삼위성의 구분을 아주 모호하게 하는 듯 합니다. 夫婦일체라는 말이 있는데 남편과 부인, 엄마와 아버지가 뜻이 하나라는 말이지 엄마가 곧 아버지고 아버지가 곧 엄마 라는 의미는 아니라고 봅니다.  예수님이 내가 곧 그요 그가 곧 나다고 말씀하신 곳이 성경에 있는지요?”



새예루살렘: 위 청신호 님께서 질문하신 부분에 대해서 우선 세 가지로 원론적인 면에서 답변을 드리고, 뒤에서 구체적인 문맥을 검토해 가면서 추가로 지적하신 부분들에 대해 설명을 드리는 것으로 하겠습니다.


첫째, 워치만 니는 위 문맥에서 아버지와 아들을 <보이지 않으시는 분>과 <그 보이지 않은 분을 나타내시는 분>으로 구별합니다. 즉 위 책 89쪽에서 워치만 니는 본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되 아버지 품 속에 있는 독생하신 하나님이 나타내셨느니라고 말씀한 요한복음 1장 18절에 근거하여, “예수는 여기에서 자기를 가리켜 보이지 않는 아버지나타내는, 아버지 품 속에 있는 독생자라고 했다”라고 말함으로 두 위격들을 구별하고 있습니다. 이 점이 간과되지 않기를 소망합니다.


둘째, 청신호 님이 지적하신 위 표현들은 이러한 구별을 전제로 하는 것으로 이해하시면 어떨까 합니다. 예를 들면, 이처럼 위격들을 동일시하는 표현들은 삼위께서 ‘동일 본성’을 공유하시는 특성을 가지시는 방면에서 설명이 될 수도 있고, 혹은 특정 위격은 1/3 하나님이 아니시고 다른 두 위격들을 포함한 온전한 하나님이시므로, 성자도 그 온전한 하나님이시고, 성부도 다름 아닌 그 온전한 하나님이시다 라고 말하는 방법으로 설명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만일 ‘성부는 성부이고 성자는 성자일 뿐 두 분은 전혀 다른 위격들이시니 위격의 동일시를 암시하는 표현은 어떤 경우에도 있을 수 없다’라는 방면만을 고집한다면, 주 예수님께서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거늘 어찌하여 아버지를 보이라 하느냐?(요 14:9)라고 말씀하신 것은 그야말로 “삼위성의 구분을 아주 모호하게” 하는 표현이 되고 말 것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주 예수님의 말씀 자체에 의문을 제기하거나 그분의 말씀이 틀렸다(혹은 양태론이다)고 단정할 수는 없지 않겠습니까? 혹시 위 말씀에 대해서 개혁신학 쪽은 어떻게 설명하고 있는지 청신호 님이 소개해 주실 수 있으신지요?


셋째, 삼위일체는 어떤 유비로도 설명이 충분하지 않지요. 특별히 청신호 님이 소개해 주신 ‘부부관계’이든 혹은 ‘세 사람들의 관계’이든 시공의 제한을 받고 있고 각각이 분리된 인격체들인 사람의 경우는 상호 내주하시는 삼위 하나님의 관계를 설명하기에는 ‘위격간의 분리’라는 치명적인 약점을 내포합니다. 예전에 최삼경 목사님도 삼위의 관계를 세 사람 비유로 설명하신 적이 있는데 이런 사상적인 기저가 결국 한기총 등으로부터 삼신론 쪽으로 평가를 받게 되는 결과를 가져왔지요.



이제 지적하신 세 인용문에 대해서 간략하게 설명 드려보도록 하겠습니다.


“종래  “나와 아버지는 하나이니라"는 말을 한 사람이 없었다. 그러나 여기 한 사람 나사렛 예수는 말했다. 나와 보이지 않는 그 하나님은 하나다. 내가 곧 그요 그가 곧 나다  88쪽”


해명: 우선 이 말은 “나와 아버지는 하나이니라”고 하신 요한복음 10장 30절 말씀을 근거로, 아버지와 아들을 설명하는 문맥에서 나온 것입니다. 워치만 니는 청신호 님이 소개해 주신 위 밑줄 친부분 바로 뒤에서 “하나님은 보이지 않는 아버지시다. 나는 보이는 아들이다. 아들과 아버지는 함께 있다.”라고 덧붙여 설명하고 있습니다.


즉 워치만 니는 두 위격을 ‘보이지 않는 아버지’ ‘보이는 아들’로 구별하여 말하고 있고 또한 두 위격을 말하면서 ‘함께’라는 표현을 써서 삼위의 복수성을 나타내었습니다. 이것은 ‘나도 그 하나님이고 아버지도 그 하나님이시다’라고 그분의 아버지와의 동일 신성을 나타내되, 여전히 두 위격들이 구별되심을 겸하여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이것은 ‘세 위격들이 한 동일 본성을 공유하신다’는 삼위일체의 명제 안에 머문 표현입니다.



“보이지 아니하는 분은 하나님이시요,보이는 분은 바로 나다. 92쪽”


해명: 위 문맥이 담긴 부분을 조금 더 넓게 인용해 보고, 그 후에 간략한 해명을 해 보겠습니다.


“그 당시에 유대인들은 그분이 무엇을 말하고 있는지 알지 못했다. 그들이 안 것은 다만 예수가 자신을 하나님과 동등하게 삼는다는 것뿐이었다. 그 뜻은 바로, “하나님은 내 아버지요, 나는 하나님의 표현이다. 보이지 아니하신 분은 하나님이시요, 보이는 분은 바로 나다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유대인들은 그 말을 듣고 그분을 죽이려고 한 것이다. 이 특별한 사람을 우리는 과연 어떻게 말해야 하는가?(91-92쪽)


워치만 니의 위 인용은 자신의 관점을 설명했다기보다는 본문에 근거하여 유대인들이 어떻게 생각하고 있었는지를 설명한 것입니다. 즉 요한복음 5장 17절에서 예수님께서 “내 아버지께서 이제까지 일하시니 나도 일한다”라고 하시자, 유대인들이 “하나님을 자기의 친아버지라 하여 자기를 하나님과 동등으로 삼으심이러라”(18절)라는 본문에 근거하여 유대인들의 관점을 소개한 것이지요.


그러나 위 인용문 자체만 보더라도 성경에서 크게 벗어난 것은 아닙니다. 왜냐하면 성경 자체가 요한복음 1장 18절에서 아버지를 ‘보이지 않으신 분’으로 아들은 ‘그 보이지 않는 분을 나타내신 분’으로 말씀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그)가 곧 하나님이요 하나님이 곧 그이다 93쪽”


해명: 위 인용문은 워치만 니가, “그들이 예수님께 “그대의 아버지가 어디 있습니까?라고 물으니, 예수님께서 대답하셨다. “여러분은 나를 알지 못할 뿐만 아니라 또한 나의 아버지를 알지 못합니다. 여러분이 나를 알았더라면, 또한 나의 아버지를 알았을 것입니다”라고 한 요한복음 8장 19절을 설명하는 문맥 안에서 소개되었습니다. 즉 아버지와 아들이 누구인지를 말하는 문맥에서 유대인들이 “네 아버지가 어디 있느냐?”고 묻자 예수님께서 “너희가 나를 알았더라면 내 아버지도 알았을 것이다”라고 답변하신 것은 “예수(그)가 곧 하나님이요 하나님이 곧 그이다”라고 말씀하신 것과 같다는 것입니다.


이런 워치만 니의 설명은 빌립이 ‘아버지를 보여달라’고 요청하자, “내가 이렇게 오랫동안 여러분과 함께 있었는데도, 그대가 나를 알지 못하십니까? 나를 본 사람은 아버지를 본 것인데, 어떻게 아버지를 보여 달라고 하십니까”(요 14:9)라고 말씀하신 것과 맥을 같이 한다고 봅니다.


그렇다면 왜 하나님의 아들이신 주 예수님과 유대인들 혹은 예수님과 빌립 사이에 아버지의 이해에 대한 이러한 불일치가 생기는 것일까요? 그것은 유대인들이나 빌립이 생각하는 아버지(성부)는 저 하늘 어디에 아들과 따로 떨어져 존재하시는 분이라는 관념이 있기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최 목사님도 지방교회 측과의 지상 토론 시 ‘아들의 지상 사역 시 성부는 아들 안에 계시지 않았다 (저 하늘에만 계셨다). 그렇게 말하면 양태론이다’라는 취지의 발언을 하신 적이 있습니다. 자꾸 최삼경 목사님을 인용해서 죄송한데, 과거에 쌍방 토론에서 어떤 쟁점이 있었는지를 소개하여 독자분들이 객관적인 판단을 할 기회를 드리기 위한 것일 뿐 다른 의도가 없으니 오해하지는 말아 주시기 바랍니다. 어찌 보면 최 목사님만이 아니라 대다수의 분들이 이런 생각을 하고 있다고 여겨집니다.


그러나 주 예수님은 위 빌립의 질문에 대해 자신을 본 것이 아버지를 본 것이라고 답변하신 후 그 근거로 “내가 아버지 안에 있고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시는 것” 즉 ‘페리코레시스’ 관계를 제시하셨습니다. 이어서 만일 이것이 이해가 안 되면 ‘다만 믿으라’고 강하게 말씀하십니다(10-11절).


따라서 성부와 성자께서 저 하늘과 이 땅에 각각 분리되어 존재하시는 분인지, 아니면 존재론적으로는 영원부터 영원까지 서로 안에 내주하심으로 분리되실 수 없는 하나(한분)이신 분인지(그러므로 아들이 지상에 내려오셨을 때 다른 두 위격 또한 그 안에 내주하신 것인지)에 대한 심도 있는 고찰이 필요할 수 있습니다. 특히 후자는 인간 이성으로는 잘 이해가 안 되는 하나님의 존재 양식에 관한 방면임으로 이것을 바로 깨달으려면 주님의 긍휼이 필요하고 아버지의 계시(조명)해 주심이 필요한 대목이라고 생각됩니다(마 11:27, 요8:43, 58-59).



결론적으로, “예수님이 내가 곧 그요 그가 곧 나다고 말씀하신 곳이 성경에 있는지요?”라는 청신호 님의 질문에 대해 답변을 드린다면 저는 ‘나를 본 사람은 아버지를 본 것인데, 어떻게 아버지를 보여 달라고 하십니까?”라는 요한복음 14장 9절을 제시하고자 합니다(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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