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단감별사 최삼경 목사(빛과소금교회)가 삼신론 논란과 월경잉태 이단사상 등으로 큰 물의를 빚고 있다. 최삼경 목사의 삼신론 논란은 과거 최 목사가 이단으로 정죄한 지방교회와의 지상논쟁 가운데 촉발됐다. 최 목사는 90년대 말 그가 현재 상임이사로 있는 '교회와신앙'에 지방교회와 12차례 이상 신학적인 논쟁을 펼쳤고, 그 과정 가운데 삼신론자임이 들통나 논란이 거세지자 일방적으로 지상논쟁을 접었다. 본지는 당시 최삼경 목사의 삼신론 논란이 어떻게 촉발됐는지 이해를 돕고자 지상논쟁 전문을 개제한다. 마찬가지로 최삼경 목사가 자신에 대한 변론과 반론을 더 원한다면 본지는 언제든지 수용해 독자들에게 전달할 방침이다.


지방교회와 논쟁 중 드러난 최삼경 목사의 삼신론(1)

 

"위트니스 리와 지방교회에 대한 최삼경 목사의 잘못된 시각을 바로 잡는다"

 

“아그립바가 바울더러 이르되 너를 위하여 말하기를 네게 허락하노라 하니 이에 바울이 손을 들어 변명하되 아그립바 왕이여 유대인이 모든 송사하는 일을 오늘 당신 앞에서 변명하게 된 것을 다행히 여기옵나이다”(행 26:1-2).

 

진리토론을 시작하면서

 

먼저 이단연구의 객관성을 유지하기 위해 모든 그리스도인들에게 토론의 문을 열어놓은 최삼경 목사의 용기에 감사드리며, 함께 수고하는 <교회와 신앙> 편집진들께 감사 드린다.

 

이 글은 지난 8월호에 실린 지방교회에 대한 예장통합측의 ‘연구보고서’와 지난 호 최 목사의 글에 대한 지방교회측의 반증이다. 아울러 우리는 이 글의 끝에 최삼경 목사에게 본 토론 주제와 관련된 몇 가지 질문을 드렸다. 최 목사의 진지한 답변을 기대해 본다.

 

이단판정의 상대성

 

교회역사를 볼 때 한 단체가 다른 단체를 ‘이단’이라고 판정한다는 것은 지극히 상대적인 일임을 알 수 있다. 즉 누가 이단이고 누가 정통이냐 하는 것은 무엇을 기준으로 보느냐에 달린 것이다.

 

현재 지구상에 존재하는 3개 대형 교파(교단)를 든다면 그것은 로마천주교, 개신교, 동방정교회일 것이다. 그리고 그들은 서로를 이단으로 판정하기도 했다. 예를 들면, 로마천주교는 프로테스탄트 운동의 확산으로 인한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 소집된 트렌트 공의회(1545-1563)에서 루터, 칼빈, 쯔빙글리의 개신교 교리를 이단으로 정죄했다. 반대로 개신교의 일부 신학자들은 성경과 고대공의회(500년 이전)를 기준으로 삼아 로마 가톨릭을 “실제적 이단(real heresy)"으로 평가하기도 한다(교회와신앙, 94년 1월호, 108-109쪽, 교회론에 나타난 이단사상).

 

그렇다면 과연 누가 이단인가? 개신교인가? 아니면 로마 천주교인가? 이단판정의 기준은 또 무엇인가? 누가 소위 ‘정통교회’인가에 대해서도 사람과 교단에 따라 시각이 다를 수 있다.

 

우리는 이단이냐 정통이냐의 기준은 성경 자체이어야 한다고 본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거룩한 말씀만이 사람의 양심을 향해 참된 것이 무엇인지를 말할 수 있기 때문이다. 종교개혁시 교리나 신조와 비교할 수 없는 하나님의 순수하고 균형잡힌 말씀이 루터의 양심을 사로잡아 말씀 위에 굳게 서게 하지 않았는가!

최 목사는 지난 호 기사에서 인신 공격을 피하고 교리 논쟁에 초점을 맞추자고 제안했다. 우리는 그것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따라서 최 목사 자신도 그리스도인에게 있어서 최대의 인신공격인 ‘이단’이라는 단어의 사용을 토론이 진행되는 동안에는 자제해 줄 것을 요청한다.

 

이번 토론을 통하여 양 측이 믿고 있는 진리의 전모를 다 제시한 후 이것을 지켜본 독자들이 ‘정통성’이 어느 측에 있는지 판단하게 하자. 이것이 합당한 그리스도인의 태도라고 생각한다.

 

위트니스 리의 신앙관은 정당하게 평가되어야 한다

 

믿는 이들 사이에서 어떤 사람의 신앙을 판단한다는 것은 두렵고도 떨리는 일이다. 왜냐하면 우리가 다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설 것이기 때문이다(롬 14:10).

 

위트니스 리는 거듭남을 체험한 이후 지금까지 약 70년을 성경 연구에 일생을 바쳐 온 주 안의 신실한 형제이다. 그가 워치만 니와 25년간 가장 친밀하게 동역하며 영적 공과를 배웠다. 또한 그는 21년에 걸쳐 신구약 전체의 주석을 쓰기도 했다.

 

그리고 그의 신앙을 구성하는 핵심 진리는 근본적이고 정통 노선 안에 있다는 것이 일반적인 평가이다. 예를 들면, 미국의 저명한 신학자이자 목회자인 고든 맬튼 박사는 위트니스 리가 쓴 책들을 깊이 연구한 후 이렇게 말한 바 있다.

 

“지방교회의 신앙고백은 그 핵심적인 요소에 있어서 완전히 정통적입니다. 또한 그리스도인들이 서로 허용하듯이, 신앙과 생활에 관한 덜 중요한 요점들에 대해 의견을 달리할 수 있는 특권을 그들에게도 허용하기를 제안합니다.”(J.G.Melton, An Open Letter Concerning the Local Church Witness Lee and the God-Men Controversy p. 27 미국종교문제연구소).

 

맬튼 박사는 그가 쓴 종교백과사전(1993년 제4판, 539쪽)에서 그는 지방교회를 플리머스 형제회와 함께 “독립적인 근본주의 계열”(Independent Fundamentalist Family)로 분류하고 있다.

 

또한 1970년대 후반, 성경 출판으로 유명한 토머스 넬슨사는 위트니스 리의 신앙관을 오해하여 비판한 한 권의 책을 출판한 적이 있었다. 그러나 지방교회측의 ‘강력한 항의’로 토마스 넬슨사는 지방교회를 이단으로 정죄한 것을 공식 사과하고 문제의 책을 미국내 전 서점에서 회수한다는 광고를 83년 4월 10일자 미국내 18개 주요 일간지에 게재한 바 있다.

 

월간지 <현대종교>는 84년 4월호에서 이러한 내용을 자세히 소개하였고, ‘지방교회에 대한 이단시비는 일단락 되었다’고 보도한 바 있다.

 

‘현대종교는 또한 1989년 6월호에서, 워트니스 리의 한국 방문의 기회를 이용하여 탁명환 소장과 위트니스 리와의 장문의 대담기사를 전부 게재하기도 했다.

 

그러므로 위트니스 리의 신앙관에 대한 한국내 일부 부정적인 시각은 공정한 결론으로 볼 수 없는 것이다. 그의 신앙관은 성경적 기준과 지방교회측이 토론시 제시하는 객관적인 내용을 통해 장로교단 내에서 재평가되어야 한다.

 

최삼경 목사가 의미하는 신인합일주의는 위트니스 리와 무관하다

 

우선 우리는 최삼경 목사가 위트니스 리의 글을 읽을 때 자신의 신학적인 틀이나 선입관을 벗어나서, 읽은 내용을 성경 말씀과 대조해 볼 것을 주지시키고 싶다.

 

최 목사가 말하는 신인합일주의는 비성경적일지 모르나, 위트니스 리가 말하는 ‘하나님과 사람의 연합의 사상’은 성경적 사실이다. 만일 이러한 사실마저 진심으로 부정한다면 그 사람은 그리스도의 성육신을 부정하는 것이 되므로 참으로 어둠 가운데 있다는 지탄을 받을 것이다. 왜냐하면 성육신된 예수님은 신성(하나님)과 인성(사람)이 비밀한 방식으로 연합한 분이라는 것이 정통 기독론의 핵심이기 때문이다(박형룡, 기독론, 34 쪽).

 

오해하지 말아야 한다

 

최 목사는 ‘위트니스 리의 이단성은 신인합일주의에서 비롯되었다’고 전제하고 ‘위트니스 리의 신관, 기독관, 인간관, 교회관 등을 끌고가는 핵심사상도 신인합일주의’라고 주장하고 있다.

 

그런데 이러한 주장은 최 목사가 위트니스 리의 글을 자세히 읽지 않고 자신의 신학적인 관점에 따라 내린 성급한 결론임이 다음에 말하는 처음 두 가지 이유에 의해 드러난다.

 

첫째, 위트니스 리가 말하는 ‘하나님과 사람의 연합’은 하나님의 생명과 본성 안에서의 연합(요 3:16, 1:12, 벧후 1:3-4)을 말하는 것이지, 사람이 경배의 대상이 되는 신격에 있어서 하나님이 된다는 뜻이 아니다.

 

위트니스 리의 어느 책을 보아도 사람이 경배받는 하나님이 된다는 언급이 없다. 이것은 마치 어떤 사람의 몸과 머리가 같은 생명과 본성을 가졌다고는 말할 수 있지만, 몸이 곧 머리다라고는 말할 수는 없는 것과 같다.

 

피조물인 사람은 경배받는 위치인 신격(Godhead)(골 2:9)에는 영원히 참여할 수 없는 것이다. 이것이 ‘통합측’이 언급한 창조주 하나님과 피조물인 인간 사이에 결코 뛰어 넘을 수 없는 엄격한 차이인 것이다.

 

둘째, 위트니스 리가 말하는 하나님과 믿는 이들의 연합은, ‘한 편의 본질이 다른 편의 본질에게 삼키워져서 더 이상 두 인격으로 남아 있지 않는다’라는 바이젤(Weigel) 등의 주장과는 무관하다(박형룡 박사, 교의 신학-구원론, 109쪽).

 

셋째, 위트니스 리가 사용하는 성경적 용어(레 2:4)인 ‘연합’(mingling)이라는 말에 대한 오해는 지면상 다음의 ‘기독론’ 토론시 자세히 반박할 것이다.

 

하나님과 사람의 연합

 

성경적 사실

 

성경은 하나님과 사람이 서로 연합할 수 있다는 것을 여러 곳에서 보여준다. 성경 속의 하나님은 멀리 계셔서 다만 경배받는 객관적인 하나님이 아니다. 그분은 사람에게 다가오신, 체험할 수 있는 분이시다. 최삼경 목사도 한국의 그리스도인들이 ‘성령충만 받기를 원한다’는 것을 시인한 바 있다. 이것은 그들도 교리적이고 멀리 계시는 하나님이 아니라 주관적인 하나님을 원한다는 말이 아닌가?

 

성경은 사람이 하나님께로서 태어나서 그분의 자녀가 될 수 있다는 것을 분명하게 가르친다.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이는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서 난 자들이니라”(요 1:12-13).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 육으로 난 것은 육이요, 성령으로 난 것은 영이니”(요 3:5-6).

 

이러한 출생에 의해 우리는 영원한 생명을 얻는다(요 3:16). 우리는 또한 “아들이 있는 자에게는 생명이 있고”라고 말하는 요한일서 5장 12절 말씀에 따라 하나님의 아들을 소유한다. 만일 그리스도께서 우리 안에 계시지 않는다면, 우리는 믿음에 관하여는 버리운 자이다(고후 13:5).

 

그리스도를 영접하고, 거듭나고, 영생을 얻는 이 모든 진리는 하나님과 사람의 연합을 분명하게 보여준다. 사도 바울도 그리스도가 우리 안에 사시고, 자라시며, 형상을 이루고 계심을 분명하게 말하고 있다(갈 2:20, 엡 4:16, 갈 4:19). 이러한 사실들은 그리스도인의 생활에 있어서 너무나 기본적인 것이기 때문에, 참된 그리스도인이라면 이러한 성경적 사실에 동의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우리는 또한 성령이 우리 안에 사시고(롬 8:11), 우리가 주님과 합하여 한 영이라는 것을 성경에서 볼 수 있다(고전 6:17). 또한 아버지께서도 우리 안에 계시며(요일 2:23, 엡 4:6), 우리 안에 그분의 거처를 만드신다고 성경은 말한다(요 14:23, 20).

 

이러한 하나님과 사람의 주관적인 연합이 없다면 기독교는 단지 형식적인 종교에 불과한 것이다. 우리는 다만 하나님을 믿을 뿐 아니라 더 나아가서 그분의 신성한 성품에 참여한다(벧후 1:4).

 

역사적 근거

 

역사적으로 많은 신실한 믿는 이들이 하나님과 사람의 연합에 대해 말했다.

 

첫째, 초대 교회의 많은 교부들이 이러한 교리를 가르쳤다. 초대 교부들 중 하나인 알렉산드리아의 클레멘트(Clement, AD 155-220)는, “그리스도인들은 위대한 금, 곧 성령과 연합된 사람들이며 … 이 연합은 마치 포도주를 물에 섞는 것과 같다”고 했다(‘알렉산드리아의 클레멘트’, 2권 242-243, 467쪽). 또한 아리우스 이단을 대적하여 정통신앙을 수호한 것으로 잘 알려진 아타나시우스(Athanasius)와 폴리갑의 제자인 이레니우스(Irenaeus)도 같은 사상을 말했다(박형룡, 기독론, 140쪽).

 

둘째, 종교개혁 이후의 하나님의 종들도 이런 진리를 가르쳤다. 말틴 루터(Martin Luther, AD 1483-1546)는 그의 갈라디아 강해에서 이렇게 말했다; “그러므로 순수하게 믿음을 배워야 한다. 즉, 믿음으로 당신은 그리스도와 완전히 연합되어서 그 분과 당신은 한 인격이 되었다. 그 결과 당신은 담대하게 ‘나는 이제 그리스도와 하나입니다’라고 말할 수 있다.”(말틴 루터, 갈라디아 강해, 168-170쪽).

 

캘빈(John Calvin)도 그의 걸작인 “기독교 강요”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그러므로 그분이 우리의 머리이시며 많은 형제들 중 맏아들이더라도 또 한 면에서 우리는 그분 안으로 접붙여져야 하고 그분으로 옷입혀져야 하며 내가 이미 말했듯이 우리가 그분과 하나되기 전에는 그분이 소유한 모든 것들이 우리와 아무 관계가 없다”(위 책 1권, p. 463, 1973, Eerdmans Publishing Company).

 

이외에도 “천로역정”으로 유명한 존 번연, 속생명 무리의 인도자였던 마담 귀용, 중국 내지 선교회의 창시자인 허드슨 테일러, 형제회의 인도자였던 존 넬슨 다비(J.N. Darby), 아돌프 사피어(Adolph Saphir), 앤드류 머레이(Andrew Murray) 등도 하나님과 사람의 연합을 가르쳤다.

 

이상의 근거를 통해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위트니스 리가 말하는 ‘하나님과 사람의 연합’은 명확한 성경적, 역사적 근거를 가진 진리라는 것이다.

 

반대로 최 목사의 시각처럼 ‘하나님과 사람의 연합’이 이단적 가르침의 핵심사상이라면, 위에서 열거한 모든 하나님의 말씀과 교부들을 비롯한 하나님의 종들의 가르침이 틀렸든지, 아니면 그렇게 보는 사람의 신앙관에 문제가 있든지 둘 중의 하나일 것이다.

 

하나님의 뜻은 하나님과 사람의 비밀스런 연합을 통해 이루어 질 수 있다

 

바울은 에베소서에서 하나님 아버지께서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선택하시고 예정하신 것은, 죄인이요 하나님의 원수였던 우리들을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는 것이라고 말한다(엡 1:3-5, 11, 2:1-10).

 

여기서 “아들들”은 그리스도의 몸을 이루는 믿는 이들을 가리킨다. 또한 여기서 “아들들”은 어린 상태의 자녀가 아니라 맏아들이신 그리스도의 형상을 본받은, 장성하여 하나로 건축된 아들들을 가리킨다(갈 4:5, 롬8:29, 엡 4:13-16).

 

어떻게, 죄인들이며 하나님의 원수였던 자들이 그분의 아들들이 되며 장성할 수 있는가? 그것은 생명이신 그리스도를 먹고(요 6:57), 성령을 마심(고전 12:13)으로 우리 안에서 이뤄지는 유기적인 연합의 증가, 곧 골로새서 2장 19절의 원문 표현처럼 ‘하나님의 증가되심’(increaseth with the increase of God, KJV)으로 가능하다.

 

한국 장로교회의 정통 신학자로 알려진 박형룡 박사도, “특히 개혁파 신학에서 그리스도와의 신비적 연합은 참으로 구원의 교리 전부의 중심적 기초적 진리니 … 과연 구원의 전과정은 그리스도와의 연합의 한 방면에서 기원되고 다른 방면에서 실현되는 것이다” 라고 말한다(박형룡, 교의 신학 - 구원론, 98쪽).

 

위트니스 리의 삼일 하나님에 대한 관점은 성경적이며 균형잡혀 있다

 

삼일 하나님에 대한 진리는 깊고도 비밀스럽다. 또한 제한된 지면 안에서 이것을 만족스럽게 설명하는 것은 누구라도 쉬운 일이 아닐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글에서 위트니스 리가 양태론을 믿지 않고 정통적인 신관을 가지고 있음을 말하는 것에 초점을 두고자 한다.

 

우선 개념상의 혼란을 피하기 위해 우리가 사용하는 “삼일 하나님”이라는 단어의 뜻부터 설명하고자 한다. “삼일”(triune)이라는 단어는 라틴어의 “트라이우누스”(triunus)에서 기원하며 그 뜻은 단순히 “셋-하나”이다. 그러므로 “삼일 하나님”은 라틴어의 “셋-하나 하나님”을 문자 그대로 번역한 것이다. 또한 왜 위트니스 리가 “삼위 일체”라는 말보다 “삼일”이라는 표현을 주로 쓰는지는 아래 그리피스 토마스의 말(경고)을 참고하기 바란다.

 

삼일 하나님에 대한 잘못된 가르침들

 

삼일 하나님에 대해서 말할 때 가장 중요하고도 기본적인 개념은, 하나님이 한 분이시라는 것이다. 그린데 그에게는 셋의 면이 있으시다. 2세기 이후 한 하나님이 어떻게 세 위격들(아버지, 아들, 성령)이 되실 수 있는지를 설명하려는 많은 시도들이 있었다.

 

삼일 하나님에 관한 비밀은 근본적으로 사람이 이해할 수 없기 때문에 그에 대한 논쟁 또한 무의미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이 이 비밀을 이해하려고 노력한 결과 많은 잘못된 가르침들이 생겨났다. 그 중에서 대표적인 잘못된 가르침이 삼신론과 삼위양식론(양태론)이다.

 

첫째로, 삼신론(Tritheism)이란 무엇인가?

 

삼신론은 아버지, 아들, 성령이 분리된 세 하나님이라고 주장하는 것이다. 심지어 오늘날도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잠재의식적으로 이런 관점을 가지고 있다. 만일 어떤 사람이, ‘아버지는 하늘에 계시고, 아들은 아버지 우편에 앉아 계시며, 성령은 내 안에 계신다’라고 분리적인 의미로 생각한다면 이것이 바로 삼신론적인 관점이다.

 

신격(The Godhead)의 세 위격(Person)이 분명히 구분되지만 너무 과도하게 구분할 때 삼신론에 빠질 염려가 있다. 위격(Person)이라는 용어에 대해, 달라스 신학교의 설립자이며 신학자인 그리스피스 토마스(W.H.Griffith Thomas)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인간의 모든 언어와 마찬가지로, (이 단어는) 불충분함과 심지어는 긍정적인 오류로 인하여 비난받기 쉽다. 분명히 (이 단어를) 너무 강조해서는 안된다. 그렇지 않으면 삼신론으로 빠질 것이다. 우리가 신격 안에서의 구별의 의미로 그 용어를 사용하지만 그것은 본질적인 상호 내재(essential mutual co-inherence) 또는 포함을 의미하는 구별이다.”(Griffith Thomas, The Principles of Theology, 31쪽).

 

그러므로 하나님이 세 분이라고 가르치거나 잠재적으로라도 그렇게 생각해서는 안된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오직 한 분이시기 떄문이다.

 

둘째, 삼위 양식론(양태론,Modalism)이란 무엇인가?

 

삼위 양식론은,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은 영원하지 않고 동시존재하지 않으며 그 셋은 한 하나님의 연속적인 나타남일 뿐이다’라는 가르침이다.

 

삼위 양식론은,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이 모두 영원하심과 동시 존재하심을 믿지 않는다. 그들은 아버지가 아들이 되어 땅에 내려오셨으므로 아버지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고 아들은 성령이 오셨으므로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고 가르친다.

 

그러면 왜 삼신론과 삼위 양식론이 나타났는가? 그것은 사람들이 진리의 양면성에 대해 무지했기 때문이다.

 

신성한 진리에는 항상 양면이 있다. 만일 양면 중 한 면만을 지나치게 강조할 때 하나님의 말씀을 벗어나 극단에 치우칠 가능성이 있다. 예를 들면, 한 면에는 영원 속죄가 있지만(히 9:12) 다른 면에서는 매일 매일 회개하고 죄를 사함 받아야 한다(요일 1:9). 한 면에서 믿는 이들은 영원한 구원을 받았지만(히 5:9) 또 한 면에서는 두렵고 떨림으로 구원을 이루어야 한다(빌 2:12).

 

삼신론은 삼위의 ‘셋’의 방면을 지나치게 강조하여 극단으로 치우쳤다. 삼위 양식론은 ‘하나’의 방면을 지나치게 강조하여 반대 방향의 극단으로 치우쳤다. 삼일성에 대한 성경의 진리는 양 극단의 어느 편에도 속하지 않고 그 중앙에 서서 진리의 양면성을 보여주고 있다.

 

물론 위트니스 리도 삼일하나님에 관해 이러한 균형잡힌 성경적인 관점을 취한다.

 

위트니스 리의 삼일 하나님에 대한 관점

 

위트니스 리의 삼위일체관의 특징을 간단히 말한다면 두 가지이다.

 

첫째는, 성경 기록 그대로를 다 믿고 받아들이되 그것을 체계화하려고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둘째는, 삼위일체의 본질적인 면을 인정하면서 삼위일체의 경륜적인 면을 강조하는 것이다. 이러한 특징은 그의 책인 ‘신약의 결론-하나님 편’(1991년 한국 복음서원 발행)에 잘 나와 있다. 그 내용을 핵심만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1) 하나님은 오직 한 분이심(신4:39, 사 45:5, 46:9, 시 86:10, 고전 8:4, 딤전 1:17, 2:5).

 

2) 하나님은 삼일(triune)이심(창 1:1, 26, 사 6:8, 마28:19).

 

3) 아버지, 아들, 성령은 모두 하나님이심(엡 1:17, 벧전 1:2, 롬 9:5, 히 1:8, 행 5:3-4).

 

4) 아버지, 아들, 성령은 모두 영원하심(사 9:6, 히1:12, 7:3, 13:8, 히 9:14).

 

5) 아버지, 아들, 성령은 모두 동시 존재하심.

 

성경은 아버지, 아들, 성령 모두가 동시 존재하심을 계시한다. 예를 들면, 마태복음 3장 16절과 17절은 물에서 세례받는 아들과, 하늘에서 말씀하시는 아버지와, 비둘기처럼 강림하시는 성령이 동시 존재하심을 보여준다.

 

요한 복음 14장 16절과 17절은 보혜사를 보내시는 아버지와, 제자들에게 말씀하시는 아들과, 보내심을 받는 보혜사(성령)가 동시 존재하심을 보여준다. 이외에도 에베소서 3장 14절부터 17절까지와 고린도 후서 13장 13절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동시존재를 보여준다. 그러므로 세 위격은 결코 승계하시지 않고 동시 존재하신다.

 

6) 삼일성의 세 위격은 구분되나 분리되지 않음.

 

세 위격이 구분되지 않는다면 왜 그 분을 아버지, 아들, 성령이라고 부르겠는가? 그러나 삼일성의 세 위격은 분리되지 않는다. 왜냐하면 세 위격이 상호내재하시기 때문이다. 아들은 아버지 안에 계시고 아버지는 아들 안에 계신다(요 10:38, 14:10-11).

 

이러한 세 위격의 상호내재는 대부분의 그리스도인들에 의해 무시되고 있지만, 이것은 모든 믿는 이들이 하나되는 근거이다(요 17:21).

 

7)그는 삼일성의 본질적인 면과 경륜적인 면을 다 인정함.

 

이상과 같은 관점은 삼신론이나 양태론의 양 극단을 피한 지극히 균형잡히고 성경적인 삼위일체관이다.

최삼경 목사는 위트니스 리가 양태론을 가르친다고 비난했다. 그러나 어떤 형태의 양태론이든지 신학 역사상 세 위격의 영원성과 동시존재를 인정하는 양태론자는 과거에도 없었고 현재에도 존재할 수가 없다. 왜냐하면 그것은 서로 모순되는 개념이기 때문이다.

 

이상의 내용을 근거로, 위트니스 리가 양태론을 가르치지 않는다는 사실이 분명해졌다. 그렇다면 최 목사가 위트니스 리가 양태론을 가르친다고 말한 근거는 무엇인가? 우리는 그것을 다음과 같은 두 가지 면에서의 무지 또는 오해 때문이라고 본다.

 

최삼경 목사는 삼위일체의 경륜적인 면을 인정해야 한다

 

역사적으로 삼위일체 교리에는 본질적인 면(Essential Aspect)과 경륜적인 면(Economical Aspect)이 있다. 전자는 그분의 존재하심을 위한 삼일 하나님의 본질을 가리키고, 후자는 사람을 구원하시기 위한 움직이심(또는 역사하심) 안에 계신 삼일 하나님을 가리킨다(H.C.G. Moul, Outlines of Christian Doctrine, p. 24).

 

그런데 양태론자인 사벨리우스는 한 본질 안에 세 위격이 구별되나 분리되지 않은 채 존재한다는 삼위일체의 본질적인 면을 무시하고 삼위일체의 경륜적인 면만을 지나치게 강조함으로 이단이 된 것이다(Philip Schaff, history of the Christian Church, vol,Ⅱ, p582, 583).

 

반대로 삼위일체의 본질적인 면만을 강조하고 경륜적인 면을 무시할 때 불가피하게 삼신론의 이단에 빠지게 된다.

 

그러므로 터툴리안이나 이레니우스 같은 초대 교부들은 이러한 삼위일체의 양면을 모두 수용하는 균형잡힌 관점을 취함으로써 삼신론자 또 양태론자라는 비난를 무력화시킨 것이다(Philip Schaff, history of the Christian Church, vol,Ⅲ, p. 674).

 

따라서 삼위일체의 본질적인 면을 인정하면서 동시에 경륜적인 면을 말하는 위트니스 리의 삼일 하나님에 대한 관점은 지극히 성경적이고 또한 초대교부들과 같이 신학적으로도 균형을 이루는 정통 신앙인 것이다.

 

그러므로 최삼경 목사는 사람의 구원과 관련된 삼위일체의 경륜적인 면을 강조하는 위트니스 리의 글을 오해하여 경솔히 말해서는 안 될 것이다.

 

최삼경 목사는 삼위일체를 설명함에 있어서 비유의 한계를 인정해야 한다

 

보이지 않은 비밀하신 하나님을 눈에 보이는 물질 세계로 비유하여 설명한다는 자체가 근본적인 한계를 갖기 마련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초대 교부 중 한 사람인 터툴리안도 삼위일체를 좀 더 쉽게 설명하기 위해 많은 비유들을 생각해 내고 그의 책에 소개했다(차영배, 삼위일체론, p. 116, 총신대 출판부).

 

위트니스 리가 그의 책에서 삼일 하나님을 설명하기 위하여 ‘수박 비유’를 포함한 몇 가지 비유를 든 것은 사실이다(위트니스 리, 하나님의 경륜, 55쪽). 그러나 그 책의 문맥을 함께 검토해 보면, 그 중점이 하나님이 사람 안에 들어오시는 과정을 설명하는 데 있다는 것을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이러한 비유들은 위트니스 리가 삼일성의 경륜적인 면을 설명하고 강조하는 문맥에서 주로 발견된다. 그러므로 이러한 비유만을 따로 분리해 내어 ‘양태론적’이라고 오해하지 말기를 바란다.

 

최삼경 목사님에게 드리는 질문

 

끝으로 이번 호에 양측이 다루는 주제와 관련하여 최 목사님에게 몇 가지 질문을 드리고자 한다.

 

첫째, 최 목사님은 그리스도인들이 삼일 하나님과의 합당한 연합을 체험할 수 있음을 부인하는가?

 

둘째, 최 목사님은 그리스도께서 당신 안에 사시는 것을 믿는가?

 

셋째, 최 목사님은 성령이 또한 당신 안에 사시는 것을 믿는가?

 

넷째, 믿는 이들은 어떻게 그리스도를 영접하는가? 만일 부활하시고 승천하신 예수 그리스도가 믿는 이들 안에 사시는 것을 믿는다면 어떤 경로로 영접하게 되는지를 설명해주기 바란다.

 

다섯째, 최 목사님은 예수님의 지상 사역시 아버지 하나님이 예수님 안에 계셨다는 것을 믿는가? 만일 그렇게 믿지 않는다면 요한복음 10장 38절, 14장 10절 20절, 17장 21절에 기록된 그리스도의 분명한 말씀을 설명해주기 바란다.

 

여섯째, 최 목사님은 삼일성의 경륜적인 방면을 부인하는가? 그렇다면 그 이유는 무엇인가?

 

일곱째, 8월호에 소개된 지방교회와 관련한 예장 통합측 77차 총회 연구보고서는 최삼경 목사님이 직접 쓴 것인가?

 

이러한 질문과 답변은 서로 간의 본 토론에 임하는 기본 입장을 분명히 드러내어 줌으로써 독자들의 이해의 판단을 도울 것으로 믿는다.

 

Daniel Towle/ 캘리포니아 플러톤교회 목회자
조 동욱/ 캘리포니아 플러톤교회 목회자

 

출처 : 믿음을 위한 싸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