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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서체로 노크해주세요

  • 민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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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서체로 노크해주세요"

 

어느 사무실 문 앞에 써 있는 문구인데.. 굳이 해석해주지 않아도 알 듯 합니다. 궁서체는 가장 전통적이고도 예의바른 글씨체이기 때문입니다. 즉 '예의바르게 노크해 달라'는 의미일 것입다. 

 

이러한 것은 시각과 청각이라는 두 개의 다른 감각을 합해 놓은 공감각적 문장입니다. 공감각(synesthesia)이라는 말을 위키백과에서 찾아보니, ‘함께’라는 뜻의 그리스어 ‘syn’과 ‘감각’을 의미하는 그리스어 ‘aisthesis’에서 온 용어라고 합니다. 예컨대 글자에서 색을 보거나 소리를 들으면 맛이 나고 냄새를 맡으면서 독특한 질감을 함께 느끼는 현상을 말한답니다. 

 

 

 

에베소서 4장 19절은 믿지 않는 이들을 '감각이 없는 사람'이라고 말하는데, 이 말씀은 믿는 이들에게는 믿는 않는 이들과 달리 어떤 감각이 있다는 의미입니다. 이것은 생명의 느낌인데 이러한 생명의 느낌은 어떠한 생명이든지 갖고 있습니다.

더 높은 생명일수록 느낌이 강합니다. 신성한 생명은 가장 강하고 높은 생명이기 때문에 가장 풍성하고 가장 강하며 가장 예리한 느낌을 갖고 있습니다(엡4:18).

 

이처럼 영원한 생명이 주는 느낌은, 믿는 우리를 인도하고 다루시고 통제하고 지시해야 합니다. 믿는 이들에게는 도덕성과 선한 행실이 믿는 이들의 삶의 기준이 아니라, 우리 안의 생명의 느낌이 인도와 지시이어야 합니다.

문제는, 많은 때 우리는 이러한 생명의 느낌을​ 무시하거나 느끼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분명히 우리의 생명이 되신 그리스도(골 3:4)는 가장 높고 신성한 생명이기 때문에 우리에게 많은 느낌을 줍니다. 그러나 우리의 강한 자아로 인해 자신의 감각에만 집중할 뿐, 우리 안에 다른 생명이 주는 느낌에 감각이 없다는 것입니다.

감정을 포함한 우리의 감각들은 부활 안에서 여전히 유용합니다. 그러나 우리 안에 또다른 생명이 주는 느낌들에 대해 함께 할 수 있는 것이 없다면, 전혀 무익하다는 것입니다. 신성한 생명이 주는 느낌들과 함께 하지 않는다면, 우리의 감각들은 썩어질 우리 자신만을 표현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우리 안의 생명의 느낌을 감지하고 그 느낌을 따라 표현해야 합니다. 우리 안의 신성한 생명이신 그리스도께서 기뻐하면 우리 또한 기뻐하는 것이고, 우리 안의 신성한 생명이신 그 영이 슬퍼하시면 우리 또한 슬퍼하는 것입니다. 믿는 우리야말로 가장 공감각이 왕성한 사람들이어야 합니다. 

신체기관이 노쇠하기 시작하면 감각부터 잃게 됩니다. 몸이 병들면 손끝 발끝의 감각부터 무디어집니다. 혀끝이 살아 있어야 음식 맛을 즐길 수 있습니다. 손끝 발끝의 감각이 살아 있어야 맛을 알 수 있습니다. 믿는 이들의 감각은 전적으로 우리 안에 있는 신성한 생명에 대해 열려 있어야 하고, 함께 해야 참된 누림이 됩니다.  

 

  

우리가 그 생명의 느낌에 전적으로 열려 있을 때, 즉 그 생명의 느낌과 우리의 생명이 공감각이 될 때 우리는 그분을 온전히 표현하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이것이 우리가 육체 안에 살고 있는지 아니면 영 안에 살고 있는지 알게 하는 바로미터가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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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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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별이 2021.02.12. 06:06

아멘~공감각적인 생명의 느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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