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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의 사역자의 성격―사람을 사랑할 줄 알아야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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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의 사역자의 성격―사람을 사랑할 줄 알아야 함

 

 

주님의 모든 사역자는 형제 자매를 사랑하는 마음을 가져야 할뿐 아니라 사람을 사랑하는 마음을 가져야만 한다. 솔로몬은, 『가난한 자를 조롱하는 자는 이를 지으신 주를 멸시하는 자요』(잠17:5)라고 말했다.

 

사람은 모두 하나님이 창조하셨기 때문에 모두 다 사랑스럽다. 주님을 섬기는 사람, 주님의 일을 하는 사람에게 만일 형제를 사랑하는 마음이 부족하거나 혹은 단지 형제 사랑하는 마음만 있고 사람을 사랑하는 마음이 없다면, 이 사람은 하나님을 섬기는 데에 자격이 없고 조건도 부족하다. 반드시 사람을 사랑하는 마음이 있어야 하고, 사람에 대해 사랑이 있어야만이 비로소 하나님을 섬기는 데에 분별이 있게 된다. 그러므로 사람을 보고서 싫어하거나 번거롭다고 느끼거나 멸시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종이 되기에 합당하지 않다.

 

우리는 반드시 하나님 앞에서 사람은 하나님이 창조하셨다는 것을 보아야만 한다. 사람이 비록 타락했지만, 그러나 사람은 우리 주 예수께서 구속하신 자이다. 사람이 비록 상당히 강팍하지만 성령이 감동시킨 자이다. 주 예수님도 이 땅에 오셔서 친히 사람이 되셨으며 보통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태어나면서부터 점차로 자라 성인이 되셨다. 하나님은 이 땅에 하나의 표준적인 사람, 즉 하나의 대표적인 사람을 세우시기 위해 그분이 가지셨던 계획을 이 한 사람 위에 두셨다. 주 예수께서 승천하신 후에 교회가 있게 되었는데 그러나 교회는 한 새 사람을 이룬 것이다. 구속의 계획은 사람을 높이 들어올린 것이요, 사람으로 하여금 영광을 얻게 하는 것이다.

 

어느 날 우리가 참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이해하게 될 때, 「하나님의 자녀들」이란 말보다 「사람」이란 말의 비중이 더 크다는 것을 인식하게 될 것이다. 우리는 그 속에서 하나님의 계획, 하나님의 선택, 하나님의 예정이 하나의 영광스런 사람을 얻으시는 것임을 보아야만 한다. 당신이 하나님의 계획 안에서 사람을 보게 될 때, 또 사람이 하나님의 계획하신 바의 초점이라는 것과 심지어 하나님 자신이 자신을 낮춰 사람이 되신 것을 보게 될 때, 당신은 사람의 귀중함을 보게 될 것이다. 우리 주 예수님께서는 이 땅 위에 오셨을 때 이렇게 말씀하셨다. 『인자의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막10:45).

 

주님이 여기에서 말씀하신 것은 상당히 분명하다. 인자가 온 것은 사람을 섬기기 위해서이다. 여기의 「사람」은 교회를 가리켜 말한 것도 아니고, 하나님의 자녀만을 가리키는 것도 아니며, 이 땅 위에 있는 모든 사람을 가리켜 말한 것이다. 그분은 또한 하나님의 자녀가 사람을 섬기러 왔다고 말씀하지 않으시고 도리어 사람의 아들이 섬기러 왔다고 말씀하셨다. 하나님의 아들이 사람을 섬기기 위해 이 땅에 인자가 되어 오셨다는 것은 사람에 대한 주 예수님의 태도가 어떠한지를 보여 준다.

 

하나님을 위해 사역하는 많은 사람들에게 있는 가장 큰 어려움은 그들에게 근본적으로 사람을 사랑하는 마음이 없고, 사람을 존중할 줄 모르며, 하나님 앞에서 사람이 가진 가치가 어떠한 것인지를 잘 인식하지 못하는 데 있다. 오늘 우리는 형제 사랑하기를 조금 배우고는 자신이 놀랍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본래 누구도 사랑할 수 없었는데, 오늘 우리가 형제를 사랑할 수 있다고 해서 이것을 굉장한 일로 여긴다.

 

그러나 형제 자매여, 이것만으로는 충분치 않다. 우리는 항상 하나님에 의해 마음이 넓혀져서 사람은 모두 사랑스러우며 모두 가치가 있다는 것을 보아야만 한다. 앞으로의 당신의 일이 잘될 수 있는가 없는가의 최대 관건은 당신이 사람의 가치를 어떻게 보는가에 달려 있다. 당신이 장차 사역을 할 수 있는가의 여부는 바로 당신이 사람에 대해 얼마나 흥미가 있는가, 또 당신이 사람에 대해 흥미를 느끼고 있는가 그렇지 않은가에 달려 있다.

 

우리는 당신이 한두 명의 총명한 사람에 대해 흥미가 있는지 없는지를 말하는 것이 아니며, 또한 한두 명의 특별한 사람들에게 흥미가 있는지 없는지를 말하는 것도 아니다. 그것은 아주 차이가 많다. 우리가 말하는 것은 당신이 「사람」에 대해서 흥미를 느끼고 있는가이다. 이것은 아주 중요한 문제이다. 「인자가 온 것은」이라는 구절이 첫째 의미하는 것은, 주님이 사람에게 지대한 흥미가 있으셨고, 이 지대한 흥미로 인해 그분 자신이 친히 사람이 되셨다는 것이다. 주님은 사람에게 이렇게까지 흥미가 있으셨는데, 당신은 어떤가? 당신은 많은 사람들에게 조금도 좋게 보이려 하지 않고 그들에 대해 어떤 흥미도 없는 사람 같다.

 

우리는 주님이 이런 사람들에 대해 어떻게 보셨는가를 자문해 보아야 한다. 「인자의 온 것은」이라고 주님이 말씀하신 뜻은, 그분은 인자이시며 사람의 아들의 위치에서 사람들 가운데 오셨다는 것이다. 주님은 사람에게 흥미가 있으셨고, 사람에 대해 느낌이 있으셨으며, 사람을 중시하셨다. 사람에 대한 주님의 흥미는 너무도 크셔서, 사람과 동일한 위치에까지 서셨고 사람을 섬기기 위해 오시기까지 하셨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많은 형제 자매들은 사람에 대해 흥미를 느끼지 못한다. 우리는 이 일에 대해 격노해야만 한다.

 

형제 자매여, 당신은 「인자의 온 것은」이라는 말의 뜻을 알고 있는가? 우리는 반드시 하나님 앞에서, 주님이 이 말씀을 하신 것은 그분 자신이 사람에 대해 지대한 흥미가 있었음을 나타내는 것이라는 것을 보아야만 한다. 형제 자매여, 만약 당신이 『나는 보통 사람에게는 별로 흥미가 없다.』라고 말한다면, 그것은 정말로 합당치 않은 것이다. 그러므로 사역하는 사람에게는 생활에 있어서 하나의 기본적인 것이 요구되는데, 그것은 바로 그가 사람에 대하여 흥미를 가지고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그가 많은 사람들 중에서 그가 흥미 있다고 느끼는 사람만을 골라서, 그에 대해 흥미를 가지고, 사랑스럽게 여겨야 한다는 말이 아니다. 이것은 항상 사람에 대한 흥미를 가져야 함을 말하는 것이다. 우리는 반드시 주님께서 사람에 대해 감정과 사랑을 가지셨고, 「인자의 온 것은」이라고 말씀하실 정도로 사람에게 흥미가 있었다는 사실을 주의해야만 한다. 만약 우리가 어느 지방에 가서 사역을 할 때 그 지방 사람들에게 섬김을 받으려 하지 않고, 도리어 그곳 사람을 섬기러 왔다고 말할 수 있다면, 우리의 태도는 옳은 것이요 우리의 그 길과 위치도 옳은 것이다.

 

하나님의 종이 되려는 사람은 사랑을 남겨 두었다가 형제가 왔을 때 비로소 그 사랑을 꺼내어 사용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기억해야만 한다. 주님의 사역자가 만약 그의 사랑은 형제가 와야 비로소 줄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그는 주님의 일을 할 수가 없다. 형제를 사랑하는 것은 나중 일이며, 별개의 문제이다. 당신은 항상 사람을 사랑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어야만 하고 사람을 사랑스럽다고 여겨야 한다.

 

요한복음 3장 16절은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라고 말하는데, 여기서의 이 세상은 누구인가? 이 「세상」은 바로 세상에 있는 사람을 말하며 구원을 얻지 못한 사람과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사람을 포함한다. 하나님께서 사랑하신 것은 바로 세상 사람이다. 하나님은 이 땅 위의 개개인 모두를 사랑하신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하나님은 세상 사람을 사랑하시는데 당신은 그에 대해 흥미가 없고 그가 형제가 될 때까지 기다린 후에야 그를 사랑한다면 당신의 마음은 주님과 다르며, 당신은 하나님을 섬길 수 없다. 모든 사람에 대해 사랑스럽다고 느끼고 모든 사람에게 흥미가 있으며, 그들이 단지 사람이라는 것만으로도 그들을 사랑스럽다고 느낄 수 있을 정도까지 당신의 마음은 응당 넓어져야 한다. 그 때라야 비로소 당신은 하나님을 섬길 수 있다.


 

『인자의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여기에서의 주님의 태도는 언제나 사람에 대해서 선택한 것이 없다. 우리는 마땅히 사람에게 흥미를 가져야 하며, 사람에 대해 사랑스럽다고 느껴야 한다. 또한 우리는 사람에게 이익을 구치도 말아야 하며, 사람에게 섬김을 요구해서도 안 된다.

 

우리는 그들을 어렵게 하고, 그들에게 해를 주는 일을 조금도 해서는 안 되며, 더욱이 그들의 섬김을 받으려 해서도 안 된다. 형제 자매여! 당신은 어쩌면 이미 여러 해 동안 가르침을 받아서 「나와 함께 사람이 된 자」라고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말의 문제가 아니라 느낌의 문제이다. 예를 들어 많은 사람이 당신과 형제가 되었고, 당신에게는 느낌이 있다. 당신은 어떤 사람이 당신의 형제라고 느끼며, 그와 함께 형제가 되었다는 느낌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묻지 않을 수 없다. 여기에 이렇게 많은 사람이 살아가고 있는데 당신에게는, 『나는 그들과 함께하는 사람이다.』라는 느낌이 있는가? 당신에게는, 『그들은 나와 함께하는 사람이다.』라고 말할 수 있는 느낌이 있는가?

 

만약 당신이 그들에 대해 이러한 느낌을 가지고 있지 않다면, 당신은 하나님을 섬길 수 없다.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은 아주 역량이 큰 사람이어서 모든 사람을 그의 품에 포용할 수 있는 경지에까지 이른다. 여기에 하나의 큰 난점이 있는데, 그것은 바로 사역하는 많은 사람들에게는 사람을 사랑하는 이러한 마음이 결핍되어 있다는 것이다. 형제를 사랑하는 마음도 완전히 갖추어지지 않았는데, 더욱이 사람을 사랑하는 마음은 말할 수조차 없다. 우리는 백 명 중에서 어쩌면 단지 한 사람만 선택하여 사랑하거나 만 명 중에서 단 한 사람만 선택하여 사랑할 뿐이다. 만약 우리가 이와같다면, 우리는 사람을 사랑하는 마음을 가지지 않은 것이다. 하나님은 창조주시요 우리 모두는 피조물이라는 사실을 우리는 명심해야만 한다. 그러므로 우리의 마음은 넓혀져서 하나님이 창조하신 모든 사람을 사랑해야 한다. 우리는 그들에게 조금도 해를 입혀서는 안 되고, 그들에게서 이익을 구해서도 안 되며, 그들에게 조금이라도 섬김을 받으려는 마음을 가져서도 안 된다. 인자의 온 것은 곧 사람을 섬기기 위함이지 섬김을 받으시기 위함이 아니다.

 

형제 자매여! 우리는 어떠한 경우라도 사람에게 이익을 취하는 일을 해서는 안 된다. 이 땅 위에서 그리스도인의 생활이 나와 함께 있는 사람에게 조금이라도 해를 입히는 것이라면 이것은 정말로 부끄러운 일이다. 형제에게 손해를 끼치는 것이 잘못일 뿐 아니라 사람에게 손해를 주는 것도 잘못이다. 사람에 대한 우리 주님의 기본적인 태도는 소극적인 방면에 있어서 언제나 사람의 섬김을 받지 않으셨고, 그분 자신을 위해 사람으로부터 어떤 것도 얻기를 원치 않으셨다. 당신은 다른 사람에게 희생이나 손해를 요구하면서까지 이기적으로 그들의 섬김을 받거나 그들의 공급을 받는 그러한 일을 해서는 안 된다.

 

이 땅 위에서 하나님의 자녀는, 주님이 명령하신 연고로 다른 사람에게서 이익을 취해서는 안 될 뿐 아니라, 우리와 세상 사람이 동일한 사람이라고 해서 그들로부터 추호의 이익도 탐해서는 안 된다. 우리는 언제나 하나님 앞에서 사람이 정말 사랑스럽다는 것을 보아야만 한다. 형제 자매여! 당신이 만약 사람에 대해 흥미를 느끼지 못한다면, 당신이 하나님 앞에 무슨 일을 하든지 매우 제한이 있게 된다. 하나님은 그분의 종들이 모두 분량이 넓은 사람이고, 사람에 대해 흥미가 있기를 갈망하신다. 오직 이렇게 될 때에 비로소 은혜가 넘치고, 하나님을 섬길 수 있다.


 

주님은 이렇게 말씀하신다. 『인자의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막10:45). 『인자의 온 것은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려 함이니라』(눅19:10).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요10:10).

 

그분이 오신 것은 모두 사람을 위해서이다. 마가복음 10장은 그분이 오신 것은 사람을 섬기기 위함이며, 목숨을 버려서 대속하시기 위함이라고 말한다. 바꾸어 말하면, 그분이 오신 목적은 사람을 섬기기 위함이다. 섬기는 데 있어서 사람에게 한 가지 필요가 있는데, 그것은 그분이 목숨을 버려서 대속하시는 것이다. 그래서 그분은 목숨을 버리고 많은 사람의 대속물이 되셨다. 대속물이 되는 것은 곧 사람을 섬기는 데 있어서 가장 높고 최종적인 일이다.

 

주님은, 『인자가 온 것은 사람을 위하여 대속하려 함이라』고 말씀하지 않으시고, 『인자가 온 것은... 도리어 사람을 섬기려 하고』라고 말씀하셨다. 그분의 목적은 사람을 섬기는 것이다. 그분은 사람에 대해서 흥미가 있으셨고, 사람이 정말 귀중하고 사랑스러우며 섬길 만하다고 여기셨다. 그분이 사람을 섬기신 것은 사람의 근본적인 필요, 곧 한 분의 구주를 필요로 하는 것을 만족시켰다. 그래서 그분은 목숨을 버리시고 많은 사람의 대속물이 되신 것이다. 만약 우리가 주님께서 대속하신 이 복음을 사람에게 전하기만 하고 사람을 섬기려는 마음을 갖지 않는다면, 우리는 주님의 일을 하기에 자격이 없다.

 

사람은 정말 사랑스럽다. 그러기에 주님은 「하나님의 아들」이 사람을 섬기러 왔다고 말씀하지 않으시고, 「인자」가 사람을 섬기러 왔다고 말씀하신 것이다. 주 예수님은 먼저 사람을 섬기시고 사랑하신 후에야 사람을 대신하여 목숨을 버리셨다. 사랑이 먼저이고 목숨을 버리는 것은 나중이다. 당신이 사람에 대한 사랑 없이 사람들 가운데 가서 주님이 목숨을 버리신 것을 전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당신은 주님의 대속하심을 전하고 그 사람이 주님을 영접한 후에야 비로소 당신이 그를 사랑할 수 있다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만일 당신이 사람에 대해 흥미가 없고, 사람을 귀하게 느끼지도 않으며, 그들과 당신이 모두 하나님에 의해 창조되었다는 것을 느끼지도 못하여 「하나님께서 사람을 창조하셨다」라는 이 사실이 당신에게서 매우 경시되고, 당신 자신도 이 말씀의 뜻을 분명히 알지 못한다면, 당신은 사람에게 주님이 목숨을 잃으심을 전할 수 없다.

 

형제 자매여, 우리는 반드시 먼저 사람을 사랑하고 그런 후에야 그들을 인도하여 주님을 영접하게 해야 한다. 그들이 주님을 영접하고 형제가 된 후에야 그들을 사랑해서는 안 된다. 애석하게도, 오늘날 많은 사람들에게 이런 면이 부족하여 어려움이 있다. 많은 사람들은 언제나 사랑을 저쪽에다 놓아 두고서 사람들이 우리의 형제나 자매가 되어야 비로소 그들을 사랑하기 시작한다. 형제 자매여! 우리 주님은 이렇게 하지 않으셨다. 우리 주님은 먼저 사람을 사랑하시고, 그런 후에야 그들을 대신하여 목숨을 버리셨다. 오늘날 우리는 구원을 전하는 자들이다. 우리도 먼저 사람을 사랑하고, 그리고 나서 그들에게 구속을 전해야 한다. 우리 주님은 먼저 사람을 섬기시고, 먼저 사람에게 은혜를 베푸신 후에 사람을 위해 목숨을 버리셨다. 우리도 먼저 사람에 대해 흥미를 가지고, 그들을 귀중히 여기며, 먼저 그들에게 은혜를 베푼 후에야 주님의 구속을 그들 앞에 내놓아야 한다.

 

만일 우리의 마음이 하나님에 의해 열려져서 우리가 많은 사람들과 동일한 사람인 것을 볼 수 있다면, 사람에 대한 우리의 태도는 완전히 바뀔 것이다. 우리는 모든 사람이 다 귀중하고 사랑스럽다고 느낄 것이다. 형제 자매여! 당신은 반드시 하나님 앞에서 사람이 얼마나 귀중한지를 보아야만 한다. 이는 사람이 하나님에 의해서 그분의 형상대로 지어졌기 때문이다. 오늘날도 사람은 여전히 애초의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어진 것이다.

 

당신은 반드시 사람을 사랑하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그런 후에야 당신은 사람들 속에서 사람을 섬기는 사람이 될 수 있다. 우리는 언제나 하나님 앞에서 사람이 정말 사랑스럽고 가치가 있다는 것을 보아야만 한다. 많은 형제 자매들은 주님의 일을 하는 데 있어서 사람을 대하는 태도와 성격과 기질 등이 근본적으로 옳지 않다. 만약 당신이 사람을 자기 몸의 한 골칫거리, 귀찮은 존재, 무거운 짐 등으로 느낀다면 이것은 근본적으로 틀린 것이다.

 

당신은 하나님 앞에서, 사람은 하나님에 의해 창조되었으며, 하나님의 형상을 지니고 있다는 것을 보아야 한다. 비록 사람이 타락은 했지만 사람의 앞 길에는 여전히 영광이 기다리고 있다. 당신은 사람이 정말 사랑스럽다고 느껴야만 한다. 그러기 위해서 우리는 사람이 우리에게 얽매임이 아니요, 무거운 짐이 아니며 귀찮은 존재가 아니요, 골칫거리가 아니라고 느껴야 한다. 주님은 이런 사람들을 위하여 십자가에 오르셨는데, 그에 비하면 우리의 사랑은 얼마나 작은지! 사람이 주님에 의해 일단 만진 바 되고, 진실로 만진 바 되며 주님께서 왜 이 땅에 오셨는가를 알게 된다면, 그는 즉시 모든 사람에 대해 사랑스럽다고 느낄 것이며 참으로 주님을 아는 사람은 사람을 사랑하지 않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

 

사람은 정말 사랑스럽다. 어떤 사람의 죄악도 용서될 수 있고, 어떤 사람의 연약함도 납득될 수 있으며, 어떤 사람의 혈기도 이해될 수 있다. 우리는 모두 죄인이기 때문에, 사람들이 어떻게 되어 가는지를 안다. 다른 면에서 우리는 사람이 가치 있다는 것을 안다.

 

형제 자매여! 오해하지 말라. 주 예수님은 이 땅 위에 이렇게 많은 사람이 있어서 죽으러 오신 것이 아니다. 목자는 잃어버린 한 마리의 양을 찾아 나선다고 주님은 말씀하신다. 주님은 아흔 아홉 마리의 양을 잃어버려서 그 양들을 찾으러 나서신 것이 아니다. 선한 목자이신 주님은 단 한 마리의 양을 잃어버렸어도 찾으러 나서신다. 바꾸어 말하면 온 세상의 모든 사람이 침륜당하지 않고 단 한 사람만 침륜당했다 해도 그분은 하늘에서 땅으로 내려 오시기를 원하신다는 것이다. 사실 그분은 역사상 이렇게 많은 사람들을 구원하셨다. 그러나 그분의 심중(心中)의 사랑에 대해 말한다면, 그분은 한 사람, 그 잃어버린 한 마리의 양을 위해서 오신 것 같다.

 

성령은 은전 열 개를 모두 잃어버려서 찾아 나선 것이 아니라 은전 하나를 잃어버리고서 찾아 나선 것이다. 아버지가 돌아온 탕자를 받은 것은 그의 모든 아들이 탕자가 되었기 때문에 그들이 돌아온 것을 환영한 것이 아니었다. 아버지는 오직 한 명의 탕자가 돌아와도 환영하신다. 주님은 누가복음 15장에서, 주님의 구속 사역은 단지 한 사람이 필요해도 그분이 이루셨고, 많은 사람이 필요해서 이루신 것이 아니라는 것을 우리에게 보여 준다. 이것은 사람에 대한 주님의 흥미가 얼마나 지대한지를 보여 준다.

 

그러므로 형제 자매여! 여러분이 만약 주님을 잘 섬기고자 한다면 반드시 다른 사람에 대해 흥미를 가지는 것을 배워야 한다. 만약 사람에 대해 흥미를 갖지 못한다면 아무것도 할 수가 없다. 설령 한다 해도 한계가 있다. 왜냐하면 그런 사람은 너무나 역량이 적어서 그렇게 많은 사람을 포용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시간이 흐름에 따라 당신이 사람에 대해서 더욱더 흥미를 갖게 되고, 당신의 마음이 점점더 커져 하나님 앞에서 사람의 가치를 이해하게 되고, 하나님의 계획 안에서 사람의 가치를 분명히 인식하게 될 때에야 비로소 당신은 구속의 의미를 분명히 알게 된다. 그렇지 않다면, 이렇게 옹졸한 우리 사람이 그렇게 큰일을 하려고 생각한다는 것은 완전히 잘못된 것이다. 사람이 어찌 영혼을 사랑치 않으면서 영혼을 구원할 수 있겠는가! 사람이 사람을 사랑치 않고서 어찌 사람을 구원할 수 있겠는가! 이러한 기본적인 문제가 해결되면, 사람에 관련된 많은 문제가 해결될 수 있다. 사람의 지식 없음이 당신의 사랑을 막을 수 없고, 사람의 마음이 굳어 있다 해도 당신의 사랑을 막을 수 없다. 당신에게 사랑이 있다면, 사람을 가벼이 보는 마음이 없어질 것이고 하나님에 의해 당신도 다른 사람과 동일한 위치에 있다는 것을 아는 데까지 이끌려질 것이다.

 

도시에서 자란 어떤 형제 자매들은 농촌에 가서 농부를 대할 때 일종의 가져서는 안 될 감정을 갖는데 그것은 그들이 농부보다 조금 높은 것처럼 행세하는 것이다. 이러한 태도는 정말로 합당치 않다. 주님은, 『「하나님의 아들」이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요』라고 말씀하지 않으시고, 『「인자」의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요』라고 말씀하셨다. 사람에게 복음을 전하려면 인자가 되어야 한다. 그러나 많은 때에, 사역하는 사람은 어느 곳에 가서는 뜻밖에도 자신을 낮추었다고 느낀다. 자신을 낮추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우리는 어떤 사람들 가운데 가는 것이 자신을 낮추는 것이라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만약 당신이 지식에 있어서 그들과 같지 않다고 여겨 자신을 낮춘다면 그것은 결코 낮아진 것이 아니다. 당신의 그런 의식적인 겸손은 자연스럽지 않다.

 

우리 주님이 이 땅에 오셨을 때, 그분은 사람들에게 다만 마리아의 아들로 보여 지셨다. 사람들은 야고보, 유다. 시몬 요셉을 그분의 형제로 알았고, 그분의 자매들도 또한 그들 사이에서 그분을 단지 인자로 알았다. 그러므로 형제 자매여, 당신은 사람 됨됨이에 있어서 사람다워야 한다. 당신은 사람들에게 마치 당신이 그들보다 높은 체한다는 느낌을 주어서는 안 된다. 이것은 그리스도인에게 있어서는 안 될 일이다. 당신이 어떤 사람 앞에 갈 때에는 마땅히 그 사람과 똑같은 것 같아야 하며 그 사람에게 당신이 스스로 낮추어서 거기에 갔다는 느낌을 주어서는 안 된다. 그렇지 않으면 당신은 사람을 섬길 수 없으며, 당신의 그러한 방법은 전적으로 틀린 것이다.

 

우리는 단지 「사람」으로서만 「사람」을 섬길 수 있다. 우리는 다른 사람에게 우리가 줄곧 자신을 낮추고 있다는 느낌을 주어서는 안 된다. 사람들로 하여금 당신이 그들과는 다른 사람이라고 느끼게 해서도 안 된다. 만일 우리가 사람들에게 그러한 느낌을 갖게 한다면, 우리는 하나님의 종이 아니다. 주님을 섬기려 한다면, 진실로 자신을 비천한 데까지 낮추지 않으면 안 된다. 당신이 당신보다 지식이 없는 사람들과 대화할 때에, 만일 당신이 다른 위치에 서서 그들로 하여금 당신을 특별한 사람이라고 여기게 한다면, 당신은 그들의 사람이 아닌 것이다.

 

만일 우리가 비천한 데까지 낮아질 수 없다면, 우리는 하나님을 섬길 수 없다. 우리가 비천한 데까지 낮추었다면, 우리는 자신을 다른 사람보다 더 높다고 생각할 수 없을 것이다. 어떤 형제나 자매도 지식이 적은 사람을 경시할 수 없다. 지식이 적은 사람도 하나님의 창조와 구속과 계획 안에서는 모두 소망이 있으며, 우리와 다르지 않다. 여기에서 우리와 그들의 차이점은 바로 우리는 주님을 알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많은 때 형제 자매들의 태도는 매우 합당치 못하다. 우리 모두는 반드시 이러한 태도를 버리고, 사람은 하나님 앞에서 동등하다는 것을 반드시 보아야만 한다. 우리 주님은 이런 사람들을 위하여 이 땅에 내려 오셨으며 우리도 또한 이런 사람들을 위하여 낮아질 수 있다. 결코 지식이 많고 적음에 따라서 차별을 두어서는 안 된다.

 

어떤 사람은 이렇게 물을지도 모른다. 『지식이 적은 사람에 대해서 나는 그들을 경시하지 않을 수 있다. 그러나 사기꾼이나 범죄자나 방종하는 사람에 대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형제 자매여, 이런 이들에 있어서 당신은 자기 자신을 돌이켜 보아야만 한다. 당신에게 하나님의 은혜가 없었을 때 당신은 그들보다 좋았는가? 당신에게서 주님의 은혜를 제해버린다면, 당신은 그들보다 얼마나 좋은가? 누가 당신이 그들보다 더 성결하다고 말하겠는가? 당신이 은혜 밖에서 자신을 볼 때에, 당신은 당신과 그들의 다른 점을 발견할 수 없을 것이다. 만약 은혜가 당신으로 하여금 그들과 다른 점이 있게 하지 않았다면, 당신은 그들과 무엇이 다른가? 당신은 다만 고개를 숙이고 이렇게 말할 수 있을 뿐이다. 『나는 그와 똑같은 죄인입니다.』

 

오직 은혜만이 당신으로 하여금 티끌 가운데 엎드려 『주여, 당신이 나를 구원하신 것입니다.』라고 주님께 말할 수 있게 한다. 은혜는 결코 당신 자신을 높이지 않으며 당신으로 하여금 당신이 본래 그런 거짓되고 죄 있는 사람과 똑같다는 것을 보게 한다. 당신이 그들과 다르게 가지고 있는 것은 바로 하나님의 은혜이지, 당신 자신이 아니다. 당신이 가진 것이 받은 것이라면 당신이 교만할 것은 무엇인가? 당신이 그들과 다른 것이 당신에게 주어진 은혜로 인한 것이라면 당신은 결코 은혜로 인해 자신을 높일 수 없다. 우리는 은혜를 찬미하고 은혜에 감사해야 할 뿐 자신을 높여서는 안 된다. 당신은 하나님 앞에서, 당신과 그들이 똑같은 사람이며 그들도 마땅히 당신이 사랑할 사람이라는 것을 알아야만 한다. 그들의 죄는 밉지만 그들의 사람 됨은 응당 사랑스러운 것이다. 이처럼 당신은 넓은 마음으로 그들을 주님 앞으로 인도해야 한다.


 

하나님께 쓰임을 받는 사람에게는 모두 그의 특징이 있고 하나님께 쓰임받을 부분이 있다는 것을 기억해야만 한다. 하나님께서 쓰실 수 있는 사람은 또한 사람에 대해 흥미를 가지고 있되, 그것도 아주 깊이 흥미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다. 만약 어떤 형제가 마음이 좀더 넓어져서 사람에 대하여 큰 흥미를 가지게 된다면, 그는 더욱 하나님께 쓰임받을 것이다.

 

그러므로 형제 자매여! 당신은 사람에 대하여 흥미를 가져야만 한다. 만약 사람에 대하여 냉랭하고 흥미가 없다면, 어떻게 나가서 복음을 전할 수 있겠는가? 당신이 나간 것은 사람을 접촉하고 구원받게 하여 얻기 위한 것일진대, 만일 당신이 사람에게 흥미를 느끼지 못한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만약 당신이 사람을 귀찮고 번거로운 존재로 느낀다면, 당신이 나가서 무슨 일을 하겠는가? 어떤 의사도 환자 보기를 두려워하지 않으며, 어떤 선생님도 학생 보기를 두려워하지 않는다. 만약 복음을 전하는 우리가 사람 보기를 두려워한다면, 어찌 이상한 일이 아니겠는가!

 

주님의 일을 하고자 한다면 반드시 사람에 대해 흥미가 있어야 한다. 억지로 나가는 것이 아니라, 당신 자신이 흥미가 있어서 사람을 접촉하고 사람과 교통하는 것이다. 남이 권하기 때문에 나가는 것이 아니라 당신 자신이 흥미가 있어서 사람을 만나고, 그와 교통하는 것이 아니라 당신 자신의 마음속에 사람이 정말 사랑스럽고 귀중하다고 여겨져서 그 사랑을 억제할 수 없어 나가는 것이다. 누가 당신에게 가서 사람을 접촉하고 교통하라고 권해서 나가는 것이 아니라, 당신 마음 속에서 사람이 사랑스럽고 귀하다고 느껴져서 나가는 것이어야 한다.

 

형제 자매여, 우리는 이것을 알기를 배워야 한다. 이렇게 많은 사람들은 모두가 하나님께서 창조하셨으며, 하나님께서 사랑하시고, 필요로 하시는 자들이다. 하나님은 그분의 독생자를 그들에게 주어서 그들로 주님을 믿게 하여 그들에게 생명을 주시기를 갈망하신다. 우리와 그들은 조금도 다르지 않다. 다만 우리가 먼저 믿었을 뿐이다. 우리는 그들이 믿도록 인도해야 하며, 그들에 대해 지극한 흥미를 가져야만 한다. 이렇게 할 때 우리는 사람들에게 나아가 끝없이 일할 수 있고, 하나님의 자비로 유용한 사람이 될 수 있다.

 

형제 자매여, 당신이 만일 하나님을 잘 섬기려 한다면, 이 길을 바르게 걸어가야만 한다. 누구나 하나님 앞에서 한 영을 가지고 있으며, 그 영은 하나님 앞에서 동등하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개개인에게는 모두 영이 있기 때문에, 사람은 하나님 앞에서 한결같다. 그러므로 우리는 영혼을 가진 사람을 대할 때, 그를 사랑해야 하며, 그를 섬기기를 갈망해야 한다. 이렇게 되면 당신이 길을 가다 한사람을 만났을 때, 당신은 이전과는 다른 느낌을 갖게 될 것이다.

 

하나님께 빛 비췸을 받은 사람은 그와 다른 형제가 한 아버지에게서 난 자라는 것을 보게 되고, 형제에 대한 특별한 느낌을 갖게 될 것이다. 사역하는 우리에게는 또한 한 번의 빛비췸이 필요한데, 그것은 바로 사람들과 우리가 동일한 한 하나님에 의해 창조되었다는 것을 보는 것이다. 이러한 빛 비췸이 있으면, 다음에 사람을 만날 때 어떤 특별한 느낌을 갖게 될 것이다. 우리는 형제 자매들 사이에서 어떤 특별한 느낌을 갖는데, 이 느낌은 바로 그가 나의 형제요 자매라고 느끼는 것이다.

 

모든 사람들이 우리와 동일한 사람이며, 개개인 모두 귀중하고 사랑스러우며, 우리의 섬김을 받을 만한 가치가 있음을 볼 수 있도록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빛 비췸이 필요하다. 만일 이렇게 된다면, 이 땅 위에서 우리의 생활은 하나님의 사정을 만질 수 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너무나도 사람을 주의하시기 때문이다. 이러한 사람들은 하나님이 창조하셨고, 우리는 능히 이 사람들을 구원해 내어 하나님의 교회 안으로 이끌 수 있다. 하나님의 목적은 교회이다. 그러나 오늘날 하나님은 여전히 사람을 주의하고 계시며, 사람을 얻기 원하신다. 주님의 사역자가 되려는 사람은 영혼을 가진 다른 어느 한 사람도 경시해서는 안 된다. 만일 당신의 태도나 행위에 있어서 어느 한 영혼이라도 경시한다면, 당신은 하나님 앞에서 그분의 종이 될 자격이 없다. 당신이 정말로 하나님을 잘 심기기 원한다면, 당신은 한 영혼도 경시해서는 안 되며, 아울러 사람의 종이 되는 것을 배우고, 어떠한 일에 있어서나 기꺼이 즐거운 마음으로 사람을 섬기기를 배워야 한다.

 

어떤 사람은 항상 자기보다 조금 못한 사람은 경시하고, 자기보다 조금 나은 듯한 사람에게는 아첨한다. 하나님의 종 가운에서 만일 이와 같은 일이 있다면, 그것은 정말로 부끄러운 일이다. 우리는 소위 우리 아래 있다고 여기는 사람들에 대해 어떠한 경시하는 태도를 보여서는 안 된다.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의 사람의 지위를 보아야 한다. 이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결코 하나님을 섬길 수 없다. 우리는 사람의 가치를 보아야만 하는데, 이것은 매우 큰일이며 또한 즐거운 일이다. 만일 당신이 주님이 어찌하여 그들을 위해 죽으셨는지를 보았다면 당신은 주님이 죽으러 오신 그 성품을 가질 수 있고, 주님의 그 느낌 안으로 들어갈 수 있으며, 사람이 정말 사랑스럽다고 느낄 수 있게 된다. 또한 당신은 사람에 대해서도 흥미를 가질 수 있게 된다. 그렇지 않으면, 당신은 주님의 그러한 느낌을 전혀 이해할 수 없으며 주님의 일을 할 수도 없게 된다.


워치만 니
[워치만 니 전집 52, "주님의 사역자의 성격", 한국복음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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