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레니우스의 총괄갱신 신학과 신화(Deification)

by 관리자 posted Mar 24,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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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레니우스의 총괄갱신 신학과 신화(Deification)

 

 

한국교계 내에서 이런 '신화교리'(deification)는 대부분의 성도들은 물론 심지어 목회자들에게도 매우 생소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 진리는 2-3세기 교부시대에는 매우 보편적으로 가르쳐졌던 정통교리였습니다. 그리고 서방교회(로마 천주교)와 종교개혁 후예들의 가르침을 주로 신봉해 온 한국교계 내에서 이 신화교리가 잘 알려지지 않은 것과는 대조적으로, 동방 정교회 쪽에서는 지금도 '하나님이 되는 이 신화교리가 성도들의 구원의 최종목표'로 가르쳐지고 있습니다.


즉 <서방교회>는 '이 다음에 천국가는 것이 구원의 목표'라면, <동방교회>는 '신화 즉 하나님이 되는 것을 구원의 최종 목표'로 알고 그 길을 추구하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비록 일부에 불과하지만, 한국교계 내에서도 '신화교리를 내포하는 이레니우스의 총괄갱신 신학' 등 어거스틴 이외의 정통교부들의 신학에도 관심을 갖는 움직임이 관찰되는 것은 매우 고무적인 일입니다.


아래 <이레니우스의 신화관련 언급 발췌문>은 한국성서대학교 김용국 교수님이 '이레니우스의 총괄갱신 신학'이란 제목으로 역사신학 논총 2집에 발표한 논문을 원출처로 합니다.


참고로 이레니우스는 리용(Lyons)교회 감독이었습니다. 그는 사도 요한의 제자인 폴리갑으로부터 가르침을 받은 정통교부이기도 합니다. 김용국 교수도 "혼란한 2세기의 교회를 정통 신학으로 재무장시킨 이레니우스의 공헌을 높이 평가한다"고 논문에서 적고 있습니다.


한편 '총괄갱신(Recapitulation) 신학'은 이레니우스 신학의 요체로서 영지주의자들의 도전 앞에 '인류의 참된 기원과 그 종착점'에 대해서 사도 바울의 서신서들을 문자적으로 해석함으로 도출된 것입니다. 이 가르침은 '생명과 생명의 성장 그리고 결국엔 사람이 하나님이 되는 것'을 말한 그의 신화교리가 그 핵심 중점을 이루고 있습니다. 이러한 이레니우스의 신화사상은 아타나시우스에게 영향을 주어 그로 하여금 <하나님이 사람되심은 사람이 하나님이 되게 하기 위함이다>라고 담대하게 선포하게 했습니다.


이제 위 논문에서 신화진리와 관련하여 언급한 내용들을 발췌하여 소개드려 보겠습니다.


"이레니우스는 "생명이 없이 존재할 수는 없다. 그런데 이 생명은 하나님에게 참여함으로부터 온다. 하나님께 참여한다는 것은 하나님을 바라보며 그분의 자비하심을 기뻐하는 것이다. 따라서 하나님을 바라보는 사람들은 살게 될 것이고 영원히 죽지 않게 될 것이다. 그리고 심지어 하나님께 도달하게 될 것이다"라고 말하였다"(한국 복음주의역사신학회 엮음, 역사신학 논총 제 2집, 도서출판 이레서원, 2000년, 109쪽).


위 글에서 '생명', '하나님께 참여함', '하나님께 도달함'이란 표현들을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의 성장은 43) 무엇보다도 하나님의 사역이다. 그리고 그것은 그분의 계속적인 창조행위이기도 하다. 그러나 우리의 성장은 또한 우리의 일이기도 하다. 우리는 선택할 수 있는 능력을 부여받았기 때문이다." 각주 43) 이레니우스는 곧잘 구원을 성장의 개념으로 이해하였다. 영지주의자들의 이원론적 구원관을 배격하면서, 구원이란 전인격적이며 전인간적인 것이라는 자신의 신앙을 잘 표현해 주는 단어이기 때문이다.(110쪽)


'이레니우스는 구원을 성장의 개념으로 이해했다', '그러한 성장은 하나님의 계속적인 창조행위'라는 언급 등은 그가 의미한 '성장'의 개념을 이해하는데 좋은 단서입니다.


"또한 그는 그리스도께서 총괄갱신을 통하여 믿는 자들에게 신화화(divinization)의 길을 여셨다고 주장하였다. 이레니우스는 "따라서 그분은 인간을 하나님에게 연합시키셨다.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연합의 교제를 건설하신 것이다. 이러한 방법 즉 그가 우리에게 오시는 것 외에는 어떠한 다른 방법으로도 우리가 영생에 참여할 수 있는 길은 없다"고 하였다."(113쪽)


"각주 61) 이레니우스에게는 신화화와 성장의 개념은 동일한 것이었다. 그에게서 구원은 그리스도의 사역을 통해 불멸성의 회복, 즉 영생을 얻는 것이었다...이레니우스의 총괄갱신은 칭의뿐만 아니라 성화의 개념도 포함하고 있었다. 그는 그리스도의 총괄갱신의 목적은 성도들이 아담의 순수한 상태로 회복되는 것만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에까지 자라나는 것으로 보았다. 이러한 측면에서 신화화, 혹은 성장은 총괄갱신에서 매우 중요한 위치를 점하게 되는 것이다."(114쪽)


이레니우스에게 있어서  '신화화'와 '생명의 성장'은 동일개념이라는 지적을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또한 <총괄갱신>은 <성도들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에까지 자라가는 것>이라는 표현도 이레니우스가 생명과 생명의 성숙을 매우 관심했음을 보여줍니다.


따라서 이레니우스의 이런 신학이 정통신학이라면, 오늘 날에도 <생명>과 <생명의 성숙을 강조하는 신학>이 '정통신학'이요 또한 '성경적인 신학'이라고 말해야 일관성이 있습니다.


"총괄갱신은 현재의 교회에서 유효하다. 왜냐하면 그리스도께서 현재 활동하고 있기 때문이다."(114쪽)


"이레니우스에게 있어서 교회는 현재 시대의 인간과 성육신의 실질적인 만남의 장소인 것이다. 인간은 현재의 성장의 과정 안에서 살아가며, 그의 성장은 그의 죽음과 부활을 통하여 계속될 것이며, 영원의 세계에서 피조물의 종착점에 도착하게 될 것이다. 인간의 갈등과 성장, 이 둘은 오로지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에서만 가능한 것이다"(115쪽, Wingren, Man and Incarnation, 148-9).


"(스미스는) 이레니우스의 총괄갱신의 목표는 피조물을 원상태로 회복시키는 것이라기 보다는 하나님을 닮기 위한 상승 작용이라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는 것이다. 스미스의 이런 주장은 정당한 것으로 보여진다. 왜냐하면 이레니우스에게 있어서 창조, 구원 그리고 완성이 총괄 갱신으로 인하여 단선적으로 연결되어 있다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117쪽).


김용국 교수는 위 논문의 끝 부분에서,


'이레니우스는 당시의 교회에게 특히 구원에 관해 보다 깊은 이해의 길을 열어 주었다'고 평가했습니다(117쪽). 아울러 이레니우스는 구원론과 종말론을 따로 구분하지 않고 '구원을 성경과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계속적으로 하나님께 나아가는 전 과정을 포함한 것'으로 보고 있음을 지적합니다. 또한 김 교수는 이러한 이레니우스의 신학은 "현대의 신학의 구원을 도식화하며 논리화하려는 시도가 위험성을 내포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공헌을 하고 있다"라고 결론 지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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