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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성한 사람과 어린아이

 

장성한 사람과 어린아이

 


우리 주변에는 비록 육신의 나이가 어려도 어른스러운 경우가 있고, 그 반대도 있습니다. 그런데 성경은 이런 육신과 혼의 방면 외에, 영적으로  ‘어리다’ 거나 ‘성숙하다’고 하는 곳이 있습니다.


전자는 엡4:14(더 이상 어린아이가 되지 않고), 고전3:1(그리스도 안에 있는 갓난아이들), 13:11(말하는 것이 아이와 같고, 깨닫는 것이 아이와 같았으나), 후자는 엡4:13(온전한 사람 , 충분히 성장한 사람), 히5:14(단단한 음식은 장성한 자들의 것이니), 고전14:20 (깨닫는 일에는 어른이 되라) 등이 있습니다.


영적으로 ‘어리다’ 또는 ‘장성하다’다고 할 때 육신의 나이나 예배당을 오고 간 세월은 중요한 변수가 아닐 수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최소한 하나님의 아들을 생명으로 영접하여 하나님의 자녀로 거듭난 적이 반드시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다면 그는 어린 아이는 고사하고 ‘시작’ 자체가 없는 것입니다.  주 예수님이 ‘시작’이십니다(계22:13).


또한 “말과 지식이 뛰어나고”, “어떤 은사에도 뒤쳐지지 않은 사람” (고전1:5, 7)도 젖이나 먹는 그리스도 안에서의 갓난 아이일 수 있습니다(고전3:1-2). 바울이 고린도 교회 성도들에게 말한 해당 구절들은 지식이나 은사는 생명과 무관할 수 있음을 암시합니다.


그렇다면 영적으로 장성한 것의 의미는 무엇일까요?


성경 여러 곳 특히 골2:19을 근거로 정의해 보자면, 생명의 장성함은 거듭난 이후 그 안에서 '하나님이 증가하신 것’(increased with the increase of God)이 상대적으로 많은 것입니다. 하나님이 증가한다는 말이 얼른 듣기에는 이상하나 성경 자체가 그런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더 평이한 말로는 생명이 성숙하다는 말은 ‘생명을 얻고’ ‘ 더 풍성히 얻었다’는 것입니다(요10;10하).


즉 사도 바울처럼 그리스도 자신이 생명과 진리(실재)이심을 본후 자기에게 유익하던 것뿐 아니라 모든 것을 배설물로 여기고 그리스도를 얻고 더 풍성히 얻어가는 사람이 장성한 사람입니다(빌3:8, 요10:10하).


그런데 이러한 자람은 각각 흩어진 개인이 각자 알아서 그리스도를 얻는 것을 말하지 않습니다. 대신에 모든 일에서 머리이신 ‘그분 안으로’ 자라야 합니다. 즉 한몸의 지체로서 몸 안에서 몸을 위하여 자라야 정상적인 성장입니다(엡2:21-22). 이러한 자람은 머리를 붙드는 것은 기본입니다. 그외에 각 마디(joint)의 공급을 향해 열려 있어야 합니다. 또한 각 지체(part)가 몸을 위하여 분량대로 기능을 발휘해야 합니다. 즉 영적인 자람은 주님의 몸에 대한 합당한 계시와 몸 안에서의 유기적인 연결됨과 깊은 연관이 있습니다(엡4: 13-16).


마지막으로 생명이 자라려면 잊지 말아야 할 한 가지는 날마다 생명의 떡이신 그리스도를 먹는 것입니다 (요6:35, 57).


장성한 사람의 반대인 영적으로 어리다는 것은 거듭난 이후 위와 같은 생명의 성장을 게을리한 사람들입니다. 바울이 했던 것과는 정반대로 ' 배설물’을 관심하고 정작 ‘그리스도 자신’은 무관심하면 신앙의 연륜이 오래 되었어도 영적으로 여전히 어린아이일 가능성이 있습니다.


이들의 특징은 ‘육신에 속한 자’라는 것입니다. 또한 그들 중에 ‘시기와 다툼과 분열’이 있습니다(고전3:3). ‘간교한 술수’나 ‘(각종) 교리의 풍조에 이리 저리 밀려 다닙니다(엡4:14). ‘오직 사랑 안에서 참된 것(진리)만을 말하고자’ 함이 부족합니다.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모름으로, 잡다한 것을 붙들면서 시간을 허비합니다(엡5:16-17).


하나님께서 생명의 씨앗을 땅에 심으신 목적은 싹이 난 후 이삭 안에 알찬 곡식으로 여물어 수확하시기 위함입니다. 막4:26-29는 이 전 과정을 하나님의 왕국과 동일시 합니다. 그리고 계시록 14:4는 먼저 익은 곡식을 '첫열매'라고 부릅니다. 그런데 거듭난 모든 이들이 다 이 첫열매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계시록 14장은 첫열매를 언급한 후 짐승과 그 형상에게 경배를 강요하는 시기를 기록하고 그후에 추가적인 땅의 수확물을 수확하는 것을 기록하고 있습니다(15-16절). 이 대목은 추후 좀더 시간을 들여 심도있게 연구해 볼 가치가 있습니다. 이 글을 읽으시는 분 모두가 다 첫열매로 수확될 수 있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아멘


끝으로 한 가지 사족을 붙이고자 합니다.


하나님께서 그리스도를 보내사 이루신 구속과 구원은 이미 성취된 ‘사실’입니다. 그러나 그것이 각 개인에게 ‘적용’되는 과정은 믿음의 분량에 따라 사람마다 차이가 있습니다. 따라서 이 ‘사실’과 ‘적용’은 구분되어야 합니다. 또는 객관적인 성취와 주관적인 체험을 나누어도 좋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성경의 기록이나 사람의 영적 상태를 분별할 때 혼란이 올 수 있습니다. 가장 안전한 것은 우리가 위에서 다뤘던 것처럼 [생명(있고 없고, 어리고, 장성하고)의 관점]에서 보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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