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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의 생각

 

사람의 생각

 


거듭난 이후의 영적인 삶 속에서 우리가 생각을 어디에 두느냐, 즉 무엇을 생각하는가에 따라 영적인 상태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게 될 때가 많습니다. 즉 스위치를 올려 전기가 들어오게 하거나 반대로 내려서 나가게 하는 식입니다. 이 글에서는 거듭난 사람의 생각을 언급하고 있는 몇 구절들을 살펴보려고 합니다.


먼저 롬8:6은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니라’고 말합니다. 이 말씀은 영적인 사망과 생명을 좌우하는 변수가 거듭난 사람의 생각임을 보여 줍니다.


실제로 베드로는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다’라고 고백하여 칭찬을 받은 후, 오래지 않아 주님께 ‘사탄아 내 뒤로 물러가라 너는 나를 실족케 하는 자다’라는 말을 들어야 했습니다. 그런데 그 이유가 “하나님의 일을 생각(프흐로네오. 5426)하지 않고 사람의 일을 생각했기 때문”이었습니다(마16:23). 어떤 생각에서 어떤 말이 튀어나왔습니다.


그렇다면 거듭난 우리가 마땅히 생각해야 할 ‘하나님의 일’ 또는 ‘위엣 것’(골3:2)은 과연 무엇일까요?


골로새서 3장 전체 문맥에 의하면 그것은 죽음을 거친 어떤 것들, 즉 부활 후에 하늘 우편에 계시면서 동시에 우리 안에도 생명으로 계시는 <그리스도 자신>과 그분의 충만인  그리스도의 몸 즉 <새사람>을 가리킨다고 볼수 있습니다. 반대로 그와 반대되는 것들 즉 옛 사람과 그 행위들에 속한 모든 것들은 다 땅에 있는 것들이며 또한 사람의 일들입니다.


사람은 대개 자신이 관심을 갖고 가치를 두는 것을 생각하게 마련입니다. 그러므로 롬8:5는 “육신을 좆는 자는 육신의 일을, 영을 좇는 자는 영의 일을 생각한다”고 말합니다. 따라서 어떤 이들은 구원받은 후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고 살므로 그 존재와 삶이 하나님의 일인 그리스도의 몸(금, 은, 보석)을 세우는데 쓰임 받습니다. 반대로 자아를 부인하지 못하고 육체의 욕심을 따라 살다보면 오히려 건축에 방해가 되는 결과들(나무, 풀, 짚)을 산출할 수 있습니다(고전3:12). 이것은 ‘하나님의 성전을 더럽히는’(고전3:17) 유형들 중 매우 큰 비중을 차지한다고 생각합니다.


성경은 거듭나지 않은 불신자의 생각은 그가 아무리 교양있고 배운 사람이라고 하더라도 사탄 마귀의 영향력 아래 있다고 말합니다(고후4:4, 엡2:2-3). 거듭나지 않는 철학자들, 거듭나지 않은 신학자들의 말과 논리 또한 그럴듯해 보여도 거의 대부분 사탄의 영향 아래 있다 고 볼 수 있습니다. 거듭나지 않은 문학하는 분들의 생각의 산물 또한 그러합니다. 이들의 특징은 그 안에 그리스도가 없다는 것이고, 사람들을 그리스도께로 참되게 이끌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오히려 그 반대로 그 고상한 것으로 그리스도를 대치함으로 하나님을 대적합니다.


또한 위 베드로의 사례에서 보듯이 심지어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의 생각 조차도 상당부분 낡아 있습니다. 새롭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이 땅에 살면서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생각들은 거의 대부분 이 땅에 속하고 자기를 위한 것일 때가 많습니다. 물론 영을 따라 사는 사람들(롬8:14)의 생각은 예외입니다.


거듭난 이후 자신의 생각이 천연적이고 낡아 있어 하나님의 일 또는 기름부음의 인도를 거스릴 때가 많다는 것을 아는 것도 주님의 긍휼입니다. 보통은 베드로처럼 많은 실패를 통과하면서 빛가운데 자신의 자아의 실상(마16:23-24)을 체험적으로 알게 됩니다. 이런 과정을 거쳐 본 사람은 아래와 같은 권면이 자신의 존재 깊숙히 뼛속까지 스며드는 말씀으로 다가옴을 느낄 것입니다.


“이 시대를 본받지 말고, 생각(mind, 3563)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으라”(롬12:2).


“너희의 생각의 영이 새롭게 되라”(엡4: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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