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인가, 나인가?
- 새예루살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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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인가, 나인가?
우리가 거듭난 이후 누가 주체가 되어 믿음 생활을 해 나가는가 하는 문제는 성경에서 매우 중요하고 민감한 주제입니다. 물론 이 문제에서 주체는 당연히 하나님 또는 그리스도이십니다. 여기에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없습니다. 그런데 그렇다면 <예수님과 함께 죽고 함께 부활한 나>(새나)는 그리스도가 주체인 삶에서 어떤 역할을 하는 존재인지가 여기서의 핵심 쟁점입니다. 이제 성경은 이것을 어떻게 말하고 있는지 보도록 하겠습니다.
골로새서 1:29
(각 사람을 그리스도 안에서 완전한 자로 세우려 함이니) 이를 위하여 나도 내 속에서 능력으로 역사하시는 이의 역사를 따라 힘을 다하여 수고하노라.
위와 같이 말한 사도 바울이 정통 그리스도인임은 분명합니다. 그런데 그는 위 성경 본문에서 각 사람을 그리스도 안에서 온전케 세워주려고, ‘힘을 다해 수고한다’고 말합니다. 문제는 여기서 수고한다는 헬라어 동사인 ‘아고니조마이’(75)는 <애를 쓰다, 힘쓰다>의 뜻이 있다는 것입니다.
칼빈주의자들 눈에 이렇게 애쓰는 바울은 마치 하나님의 견인과 보장과 언약도 모른 채 인간의 노력으로 무엇을 이루려는 자처럼 보일 것입니다. 그들의 눈에 이런 바울은 성경 진리에서 빗나간 자입니다. 그가 안에서 능력으로 역사하시는 하나님에 의해 그리한다고 해도 마찬가지입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하나님이 다 하시는데도 애를 쓰고 있는 그 자체를 문제 삼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이 대목에서 바울을 인간 노력으로 무엇을 이루려 한다고 정죄하는 칼빈주의자 들이 옳은지, 아니면 그들과 충돌하는 바울이 옳은지를 판단해야 할 것입니다. 정답은 당연히 사도 바울이 성경적이다 라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바울처럼 <애쓰는 사람들>을 정죄하는 쪽이 간과하는 것은 과연 무엇일까요? 간략하게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갈라디아서 2:20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혔나니 그런 즉 이제는 1내가 산 것이 아니요 내 안에 2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 이제 3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위 성경 본문 중 굵게 표시한 것 1, 2, 3을 따라 말하자면, 위 본문은 <내가 산 것이 아니다. 그리스도가 사신 것이다. 내가 사는 것이다>로 압축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칼빈주의자들은 1, 2까지만 볼 뿐, 그 뒤에 있는 3인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이라는 성경 본문을 간과하거나 오해합니다. 즉 성경은 (새)나(new I)가 여전히 산다고 말함에도, 그들은 하나님이 다 하신다며 내가 산다는 표현 자체를 거부하고 공격합니다.
왜 이런 모순과 성경에 대한 오해가 생겨날까요?
그것은 성경은 갈2:20에서 두번째 언급된 ‘나’에서 볼 수 있듯이 (예수와 함께 죽고 부활한) 나와 그리스도는 유기적으로 연합된 ‘공존하는 존재’임에도, 칼빈주의자들은 이것을 하나가 있으면 다른 하나는 없어져야 하는 ‘대체하는 존재’로 봄으로 이런 오해가 생기는 것입니다. 이 부분에 대한 참 진리가 그들에게 더 열릴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는 아무 역할도 없이 단지 그리스도에 의해 피동적으로 움직이는 로보트가 아닙니다. 대신에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창조된 새사람>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