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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잔잔한 시내 | 우리가 건축하는 것은.. 1
    생명의 길을 가지 않으면서 생명의 길 안에서만 알 수 있고 생명의 길 안에서만 가능한 일들을 해 보려고 한다면 본래의 의미를 우리가 알고 있는 천연적인 의미로 이해하고 그것을 영적인 실재로 여겨 추구한다면 우리가 건축하는 것은 모방의 성 비슷하지만 동일하지 않은 또 하나의 종교적인 체계가...
    오직은혜 | 2021-03-16 04:54 | 조회 수 274
  • 잔잔한 시내 | 생명의 길을 가게 될 때.. 1
    모르리라고 생각할지도 모릅니다. 알려고 하지도 않고 스파이처럼 조사하지도 않으니까요. 다만 하늘에 속한 이상을 따라 모든 사람들을 완전한 이들로 여겨 그들을 사랑하고 감상할 뿐입니다. 그런데 생명의 길을 걸어 온 만큼 우리는 알려고 하지 않아도 사람들을 알게 되어 있습니다. 그들이 누구이...
    오직은혜 | 2021-03-16 04:49 | 조회 수 239
  • 잔잔한 시내 | 부드럽게 부딪히는..
    타고난 사람은 정치를 하느라 부드럽게 부딪히지만 생명의 체험의 세번째 단계를 통과하고 네번째 단계의 합당한 인성까지 갖출 때 우리는 강하면서도 부드럽게 부딪힐 수 있습니다. 교통과 동역에서.. 어쩌면 세번째 단계에서는 부담은 가장 강하지만 너무 강하기 때문에 그리고 합당한 인성의 미흡함...
    오직은혜 | 2021-03-16 00:50 | 조회 수 228
  • 잔잔한 시내 | 주님이 내려가라고 하실 때..
    신성의 산의 정상에 오른 후에 너무 일찍 내려간다면 다시 천연적인 인성일 수 있습니다. 우리는 혼생명을 보존하기 위해 가장 좋은 어떤 부분을 남겨두려는 유혹을 받을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신성의 산의 정상에 올라 주님이 다시 내려가라고 하실 때까지 그곳에 머무는 것이 필요합니다. 그곳에서 ...
    오직은혜 | 2021-03-15 15:19 | 조회 수 203
  • 사역의 흐름 | 감추인 만나 - 기도로 말씀을 읽음으로 영과 생명을 만짐 1
    관리자 | 2021-03-15 12:37 | 조회 수 271
  • 잔잔한 시내 | 가장 인간적인 한 사람으로..
    생명의 체험의 세번째 단계 정점에 신성하지만 가장 덜 인간적일 수 있습니다. 어쩌면 그만큼 인간적임을 희생했기에 그렇게 신성할 수 있었는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네번째 단계 안으로 들어가고 나서 이제는 그는 여전히 신성하지만 조금씩 다시 인간적이게 됩니다. 신성함을 희생하는 것은 아니지만...
    오직은혜 | 2021-03-14 05:00 | 조회 수 197
  • 잔잔한 시내 | 몸의 이상을 보게 되는 때는.. 1
    생명이 자랄수록 자신과 다른 지체들의 간격을 느낄지도 모릅니다. 사람들의 상태가 눈에 들어오고 사람들의 약함이 보이고 이것이 어느 정도 정점에 이를 때는 아마도 생명의 체험의 세번째 단계 끝일지도 모릅니다. 어쩌면 가장 강한 청년의 생명 때 심지어 교회의 연장한 이들도 약하게 보이는 사람...
    오직은혜 | 2021-03-14 00:33 | 조회 수 294
  • 잔잔한 시내 | 주님이 산출하신 하나는..
    획일적인 하나는 하나처럼 보이지만 사람이 만든 것이고 본질은 여전히 분열로 가득합니다. 주님이 산출하신 하나는 생명의 자유로움과 다양성이 있지만 몸의 하나의 조화와 통일성이 있습니다. 서로 안의 생명을 주의하고 그 생명 안에 한 머리되심을 주의하지만 그들은 자연스럽게 일치되고 같은 것...
    오직은혜 | 2021-03-12 20:36 | 조회 수 391
  • 잔잔한 시내 | 독립적임에 대한 메시지를 너무 일찍 적용하게 되면.. 3
    너무 일찍 독립적임에 대한 메시지를 적용하면 생명이 자라지 못하고 오히려 죽게 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독립적임에 대한 메시지는 몸의 이상 안으로 이끌어 주기 위해, 생명이 어느 정도 자랐지만 그렇기 때문에 단독적인 사람들에게 생명의 체험의 네번째 단계 안으로 이끌어 주기 위한 목적이 ...
    오직은혜 | 2021-03-12 06:02 | 조회 수 454
  • 잔잔한 시내 | 독립적임을 더 정죄하는 이유는? 2
    야고보는 혼합된, 자기를 함양하는 길을 갔고 많은 사역자들은 독립적인 길을 갔습니다. 이 두가지는 생명의 체험과 관련하여 우리가 빗나갈 수 있는 두가지 길인데 우리는 어쩌면 자기를 함양하는 것보다 독립적인 것을 더 정죄할지도 모릅니다. 왜냐하면 일과 실제적인 지방교회 생활에 있어서 자기...
    오직은혜 | 2021-03-10 16:50 | 조회 수 43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