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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 탐방(27) - 예수님의 십자가 형벌 고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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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 탐방(27) - 예수님의 십자가 형벌 고찰

 

 

(신 21:23) ...나무에 달린 자는 하나님께 저주를 받았음이니라


(요 19:18-32) 거기서 그들이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았고, 그분과 함께 다른 두 사람도 양편에 못 박았으니, 예수님은 가운데 계셨다. (28) 그 후에 예수님께서 이미 모든 일이 이루어졌다는 것을 아시고, 성경 말씀이 이루어지도록 하시려고 말씀하셨다. “목마르다.” (29) 거기에 신 포도주가 가득히 담긴 그릇이 놓여 있었으므로, 사람들이 신 포도주로 듬뿍 적셔진 해면을 우슬초에 꿰어 예수님의 입에 갖다 대니, (30) 예수님께서 신 포도주를 받으시고 말씀하셨다. “다 이루었다!” 그리고 그분은 머리를 숙이시고, 영을 넘겨드렸다. (33) 그러나 그들이 예수님께 와서는 이미 죽으신 것을 보고 다리를 꺾지 않고, (34) 군인들 중 하나가 창으로 그분의 옆구리를 찌르니, 즉시 피와 물이 나왔다.


<요 19:30 - 다 이루었다!>


십자가에 못 박히실 때에도 주님은 여전히 일하고 계셨으며, 십자가에 못 박히심을 통해 모든 것을 포함한 죽음의 일을 다 이루셨다. 이로써 그분은 구속을 성취하셨고, 옛 창조물을 종결시키셨으며, 하나님의 목적을 이루는 새 창조물을 산출하시기 위해 그분의 부활 생명을 해방하셨다. 그분은 죽으시는 과정에서 그분께서 생명이시라는 것을 대적자들과 그분을 믿는 이들에게 증명하셨다. 죽음의 두려운 환경은 그분을 조금도 놀라시게 하지 못했으며, 오히려 그와는 정반대로 그분께서 생명이시고 죽음의 영향을 조금도 받지 않으신다는 것을 분명하게 증명하도록 해 주었다. 그러므로 주님께서 여기서 이루신 일은 구속을 성취하심, 옛 창조물을 종결시키심, 부활 생명을 해방하심, 죽음의 영향을 받지 않는 생명이신 그분 자신을 나타내심 등을 포함한다.


<요 19:34 - 피와 물>


주님의 찔린 옆구리에서 두 가지, 곧 피와 물이 나왔다. 피는 구속을 위한 것으로 죄들을 처리하며(요 1:29, 히 9:22) 교회를 사기 위한 것이다(행 20:28). 물은 생명을 나눠 주기 위한 것으로 죽음을 처리하며(요 12:24, 3:14-15) 교회를 산출하기 위한 것이다(엡 5:29-30). 주님의 죽음은 부정적인 것을 처리하는 면에서 우리의 죄들을 없애며, 긍정적인 것을 이루는 면에서 우리 안으로 생명을 나눠 준다. 그러므로 그것은 두 방면, 즉 구속의 방면과 생명을 나눠 주는 방면을 가지고 있다. 구속의 방면은 생명을 나눠 주는 방면을 위한 것이다. 다른 세 복음서의 기록은 주님의 죽음의 구속의 방면만을 묘사하지만, 요한복음의 기록은 구속의 방면뿐 아니라, 생명을 나눠 주는 방면도 묘사한다.
 

십자가 형벌


십자가형에 대하여 로마의 키케로(Cicero)는 가장 잔인하고 혹독한 형벌이라고 언급하였다. 십자가형은 고대 동방(신 아시리아, 페니키아, 페르시아)에서 생겨난 형벌이었으나, 로마제국은 기원전 1세기 말에 식민 통치의 방법으로 광범위한 규모로 십자가형을 적용하였다. 처음에는 노예들을 나무에 묶어 놓고 고통을 주는 체벌이었지만 기원 후 1세기부터 로마 제국에 대항하여 폭동이나 반란을 선동한 자들에 대한 처형방법으로 바뀌었고, 로마의 시민권을 가지고 있지 않은 노예들과 피지배자들에게만 이 처형 법을 사용하였다.


유대 독립전쟁 동안에 수천 명이 십자가형에 처해졌으며, 2차 유다 독립항쟁 당시인 하드리아누스 황제(117-138년) 때에는 하루에 500여명이 십자가형에 처해지기도 하였다. 역사학자 요세푸스에 따르면 '더 이상 십자가를 세울만한 공간과 나무 십자가를 구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십자가형에 처해졌다고 한다.


십자가형은 사형수를 발가벗겨 인간적인 수치심과 조소의 대상이 되게 하는 한편, 육체적인 고통을 가장 오랫동안 가하면서 죽어가게 하는 형벌이었다. 십자가형은 죄인에 대한 극도의 고통을 줄 수 있는 형벌일 뿐만 아니라 보는 이로 하여금 강한 경고의 메시지를 전할 수 있는 형벌이었다. 또한 사형수는 사형을 언도 받은 후, 자신이 십자가에 못 박힐 나무(십자가의 가로부분)를 짊어지고 형장까지 십자가의 행렬을 하였는데 이것은 제국에 대항하는 도전에 대한 대가가 어떠한 것인지 경각심을 일깨워 주는 메시지이기도 하였다. 일반적으로 십자가의 세로 부분은 형장에 미리 세워져 있었다. 예수님은 아침 아홉시에 십자가에 못 박혔고, 오후 세시에 숨을 거두셨는데 예수님이 이렇게 빨리 숨을 거두신 것은 혹독한 채찍질에 의하여 이미 기력이 쇠약해져 있었기 때문일 가능성이 높다. 쇠와 뼛조각으로 만들어진 채찍에 맞아 죽는 죄인들도 있었다고 한다.


십자가형이 성서고고학을 통해 설명된 것은 1968년 이후이다. 1968년 예루살렘의 북쪽에 있는 마을에서 발견된 26살 가량의 남자 유골을 발견 하면서부터이다. 유대인들의 장례법에 의하면 사람이 죽으면, 바위를 파서 만든 바위무덤에 시신을 안치했다가, 탈골되면 유골함에 모시는 방법으로 장례를 치렀는데, 유골함에서 유골의 발뒤꿈치 뼈에 철제 못이 박혀 있는 것이 확인되면서, 십자가형으로 죽은 사람의 유골을 처음으로 발견하게 된 것이다. 유골의 손목 뼈에는 날카로운 흠집(그림)이 있어서, 십자가형이 사형수의 손과 발이 아닌, 손목과 발뒤꿈치에 못을 박는 방법으로 집행되었다는 것이 확인되었다. 그리고 무릎 아래의 두 개의 정강이뼈가 부러져(그림) 있음을 발견한 학자들은 십자가형을 집행한 자들이 해가 지기 전에 시신을 거둬 매장하기 위해서 사형수의 다리를 부러뜨린 증거로 추정한다. 실제로 요한의 복음서에 따르면 예수와 함께 십자가형을 당한 두 강도들도 안식일이 되기 전 시체를 거두기 위해 다리를 부러뜨렸다(요한 19:31-33).


십자가의 형벌은 4세기경 콘스탄티누스 황제에 의해서 완전히 폐지되었다. 그리스도교에서는 예수님이 이 십자가형으로 죽음을 당한 뒤 부활했기 때문에 십자가를 인류의 속죄를 위한 희생제사, 죽음과 지옥에 대한 승리, 또는 그리스도를 따름으로써 겪어야 하는 고난의 상징으로 사용하고 있다. 십자가에 대한 공경은 4세기 초 그리스도교가 공인된 뒤부터 시작되었는데, 성녀 헬레나(Helena)가 십자가를 발견하고, 이를 안치할 십자가 성당과 부활성당이 예루살렘에 건축되었다. 335년 9월 14일이 양 성당의 헌당식 축일로 제정되자 십자가는 그리스도교의 공경 대상으로 인정되기 시작했고, 그레고리오 대교황 때엔 로마교회에도 전해졌다. 그 뒤 692년 트룰라눔(Trullanum) 교회회의를 통해 십자가 공경은 강화되었고 787년 제2차 니케아 공의회에서 공식적으로 인정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예수님의 십자가의 고통


구레네 시몬에게 십자가의 가로목을 내려놓으라고 명령하고 로마의 군인들은 재빨리 예수님을 낚아 겉옷을 벗기고 땅에 놓인 그 나무 위에 눕힌 예수님의 양 팔을 그 나무에 맞게 펼치고 손목을 잡았다. 그리고 손목을 마치 생선을 도마 위에 올려놓듯 놓고 육중하고 사각진 쇠못을 놓고 망치를 내려쳤다. 쇠못은 그 손목을 관통하여 나무에 깊이 박혔다. 그들은 그 쇠못의 머리가 손목을 끊고 지나가 버리지 않도록 약간의 여유를 두는 것을 잊지 않았다. 그들은 재빨리 다른 손으로 옮겨 가서 그 쪽 손을 잡고 조금 전과 같이 못을 망치로 박았다. 약간의 느슨하게 해 두는 것을 잊지 않고 그리고 이 가로목에 양 손이 박힌 예수님을 이미 형장에 세워 놓은 세로목에 매달았다.


군인들은 예수님의 무릎이 너무 뻣뻣하지 않고 약간 굽은 정도의 여유를 두면서 왼발 위에 오른발을 포개 놓고 발톱이 아래로 향하도록 잡아 당겼다. 오목하게 된 두발의 포개진 발등 위로 사각지고 육중한 쇠못 하나를 망치로 내려박았다. 이로서 십자가의 못 박은 작업은 끝났다. 몸이 늘어지면서 몸무게가 양 손목의 못 박힌 곳에 쏠릴 때 마다 격렬하고 살과 뼈를 깎는 아픔이 손끝과 팔을 타고 뇌를 작열 시키고 있다. 손목에 박힌 못은 팔을 관통하는 신경을 강하게 건드리고 있기 때문이다.


예수님은 몸이 앞으로 쏠릴 때 오는 고통을 피하려고 그는 몸을 위로 곧게 세우려 했고, 그렇게 되면 그의 온몸의 무게가 못 박힌 발에 쏠리게 되었다. 다섯 개의 발등 뼈 사이에 놓인 신경을 관통해 있는 못 때문에 인두로 지지는 듯한 통증을 느껴야 했다. 고통은 이것만이 아니다. 또 다른 고통이 따른다. 팔이 지쳐서 쥐가 나는 현상이 생기게 되며 근육의 산소 공급의 부족으로 근육경직현상이 생기며 무지막지하고 쥐어짜는 듯한 통증이 온몸을 파도 치듯 엄습한다. 이 고통 때문에 그는 목을 위로 세울 수가 없었다.


공기가 폐 속으로 들어오나 내뿜을 수 없었다. 예수님은 호흡무력증에 빠지게 되고 한 모금의 호흡이라도 하려고 사투를 하고 있다. 폐와 혈중에 탄산가스가 쌓여가고 쥐어짜는 듯한 통증이 다시 엄습한다. 혼신의 힘을 다해 몸을 세워 숨을 내쉬어 한 모금의 산소를 마시고자 싸움을 계속할 수밖에 없었다. 시시각각으로 찾아오는 찢어지듯 뒤틀리는 통증과 몸을 위로 고쳐 세울 때마다 나무에 스치는 터진 등에서 오는 통증이 수 시간 계속 된다.


또 다른 고통이 따른다. 심장에 혈장이 서서히 축척 되어 심장을 압박함으로 가슴에 엄청난 통증이 생기기 시작한다. 이제는 모든 것이 끝나가고 있다. 체내의 수분상태는 낮아지고 위험 수위를 넘어 서고 있다. 압박 받는 심장은 박동을 위해 마지막 안간힘을 다 하고 있다. 피의 혈청과 혈장이 분리되어 수분의 혈장은 심장 속에 축척 되어 심장에 압박을 가하고 피는 뻑뻑해져 혈관을 흐르기에 무리가 있는 상태가 되어 있다. 폐에도 물이 차기 시작하여 작은 양의 공기를 받아들이기에도 너무나 큰 힘을 써야 했다. 예수님의 육체는 이제 모든 것이 끝난 상태에 와 있고 그는 죽음의 냄새가 그의 몸 속에 스며들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이로써 구원의 사명은 완수 되었다. 그는 이제 고개를 떨어뜨리고 마지막 숨이 끊어지고 운명하셨다.


<Davis의 저서 “crucifixion of Jesus”를 번역함>


예수님의 십자가 고통, 의학적으로 알아본다


©크리스찬투데이 US


최후의 만찬 후에 예수님은 제자들과 함께 올리브산의 겟세마네 동산에 올라가셨다. 그 곳에서 땀이 핏방울이 되도록 밤새 기도하셨다. 예수님은 앞으로 겪어야 할 고통이 얼마나 큰지 잘 아셨기 때문에 엄청난 심리적 스트레스를 받고 있었다.


스트레스 심할 때 땀이 핏방울로


땀이 핏방울이 됐다는 것은 의학적으로 혈한증이라고 불리는 상태이다. 흔히 일어나는 일은 아니지만, 정신적 스트레스를 아주 심하게 받을 때 일어나는 현상이다. 심하게 고민하면 땀샘에 있는 모세관을 파괴하는 화학 성분이 나온다. 그 결과로 땀샘으로 소량의 피가 흘러 들어오게 된다. 그리고 땀을 흘릴 때 피가 섞여서 나오는 것이다.


무시무시한 채찍으로 채찍질 당함


로마 군인들은 예수님께 태형을 가했다. 로마의 태형은 무시무시하게 잔인한 형벌로 알려져 있다. 채찍은 보통 39개의 가닥으로 이루어져 있다. 하지만 병사의 기분에 따라 그보다 훨씬 가닥수가 많을 때도 자주 있었다. 그 채찍은 많은 가죽으로 되어 있었고 그 안에는 쇠 구슬이 박혀 있었다. 채찍으로 몸을 때리면 구슬들 때문에 깊은 상처나 멍이 생겼고, 채찍질을 계속하면 상처 난 곳이 벌어지기 시작한다. 또 채찍에는 날카로운 뼛조각들이 박혀 있었기 때문에 채찍질을 하면 살이 심하게 찢겨져 나갔다. 특히 등이 심하게 찢겨져 나가기 때문에 어떤 경우에는 척추의 일부가 드러나기까지 했다. 채찍질은 어깨에서부터 시작해서 그 아래에 있는 등과 엉덩이 그리고 정강이까지 계속된다. 정말 끔찍한 형벌이다.


로마의 태형을 연구한 한 의사는 이렇게 말했다. “태형이 계속되면 피부 밑에 있는 골격 근육까지 찢겨지게 되고, 찢겨진 살은 피범벅이 된 채로 리본처럼 덜렁덜렁 매달려 있게 된다.” 3세기의 역사가였던 유세비우스는 태형에 대해 “태형을 당하는 사람의 정맥이 밖으로 드러났고 근육과 근골 그리고 창자의 일부가 노출됐다”고 적었다. 많은 사람들이 십자가에 달리기 전에 태형만 당하고서도 죽었다. 죽지 않더라도 희생자는 극도의 고통을 느끼게 되고 저혈량성 쇼크(hypovolemic shock) 상태에 빠진다. 저혈량성 쇼크란 어떤 사람이 많은 양의 피를 흘리고 나서 고통을 겪는 상태를 의미한다.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의 가로 들보를 지고 갈보리 언덕으로 비틀거리면서 올라가셨다. 그 때 예수님은 이미 저혈량성 쇼크 상태에 있었다. 결국 예수님은 넘어지셨고 로마 군인들은 구레네 사람 시몬에게 십자가를 대신 지라고 명령했다. 복음서에 보면 예수님께서 “내가 목마르다”라고 말씀하시는 장면이 나온다. 그러자 사람들이 예수님께 신 포도주를 한 모금 드린다. 예수님께서는 끔찍한 채찍질을 당하셨기 때문에 손과 발에 못이 박히기 전에 이미 위독한 상태에 빠져 있었다. 예수님은 처형장에 도착해 눕혀진 후에 십자가의 가로 들보 위로 팔을 뻗친 상태에서 못 박혔다. 이 가로 들보는 패티볼룸(patibulum)이라 불렸고 십자가의 수직 기둥(스티패스)과는 분리되어 있었다. 수직 기둥은 땅에 단단히 고정되어 있었다.


로마 군인들은 12cm-18cm 정도 되는, 끝이 가늘고 뾰족한 대못을 사용해서 손목에 박았다. 일반적으로 손바닥에 못을 박은 것으로 알고 있지만, 사실은 다르다. 손목에 못을 박아야 손이 단단하게 고정된다. 만약 손바닥에 못이 박히면 몸무게 때문에 손바닥이 찢겨나가서 십자가에서 떨어져 버린다. 당시의 언어는 손바닥과 손목을 구별하지 않았다. 손목도 손바닥에 속했다. 못이 손목에 박힐 때의 고통은 펜치로 척골(팔굽뼈) 신경을 잡고 비틀어서 뭉갤 때의 고통과 비슷하다. 사람이 그 고통을 이겨내기란 불가능하다. 그래서 그들은 새로운 말을 만들어 내야했다. 그 단어가 바로‘고문하다’(excruciating)란 말이다. 문자적으로 고문은 ‘십자가로부터’라는 뜻이다. 십자가에 달려 있을 동안 겪는 고통이 얼마나 심했으면 그 고통을 표현할 말이 없어서 새로운 단어를 만들어야 했겠는가. 그런 다음에 가로 들보를 들어 올려서 수직 기둥에 부착시켰다. 그 다음에는 예수님의 발에 못이 박혔다. 또 다시 발에 있는 신경이 완전히 으깨졌고 손목에 못이 박혔을 때와 비슷한 고통을 느꼈을 것이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렸을 때, 무엇보다도 먼저 팔이 늘어난다. 아마 15cm 정도 늘어났을 것이다. 그리고 양어깨가 탈골된다. 이는 구약성경 시편 22편의 “내 모든 뼈는 어그러졌으며”라는 예언의 성취이다.


손바닥 아닌 손목에 못 박히고


일단 희생자가 십자가에 수직으로 매달리게 되면 질식하면서 서서히 고통스럽게 죽게 된다. 질식하게 되는 이유는 근육에 충격이 가해지면서 횡경막이 가슴의 상태를 숨을 들이쉬는 상태로 만들어 놓기 때문이다. 숨을 내쉬기 위해서는 십자가 위에서 발을 세워야 한다. 그래야 근육이 잠시 동안 이완될 수 있다. 그러나 이렇게 하면 발에 박혀 있는 못이 발을 점점 깊이 찌른다. 결국에는 못이 발 근육에 붙어 있는 뼈를 고정시키게 된다. 간신히 숨을 내쉰 후에는 세웠던 발을 내리고서 잠시 쉴 수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서는 다시 숨을 들이마시게 된다. 그러면 또 다시 숨을 내쉬기 위해 발을 세워야 하고 동시에 십자가의 거친 나무 결에 피 묻은 등이 긁히게 된다. 완전히 지칠 때까지 이런 식으로 계속하다가 결국 발을 세울 수 없게 되고 더 이상 숨을 쉴 수 없게 된다. 호흡수가 점점 줄어들기 시작하면 희생자는 소위 호흡 산독증에 빠지게 된다. 이렇게 되면 결국 심장 박동이 불규칙적으로 되며, 죽음이 임박하게 된다. 예수님께서는 심장이 불규칙적으로 뛰기 시작했을 때 죽음이 임박했다는 사실을 아셨을 것이다. 그래서 “아버지여, 내 영혼을 아버지 손에 부탁하나이다.”라고 말씀하실 수 있으셨다. 그리고 심장이 정지되면서 돌아가셨다.


예수님의 다리를 꺾지 않은 이유는 예수님이 이미 돌아가셨다고 확신했기 때문이다. 또 그 사실을 확인하기 위해 창을 사용했다. 로마 군인들은 사람을 죽이는 일에 전문가였다. 사람을 죽이는 것이 그들의 직업이었고 실제로 사람을 잘 죽였다. 그들은 그다지 어렵지 않게 사람이 죽었는지를 판단할 수 있었다. 혹시라도 죄수가 탈출하면 책임지고 있던 군인들은 대신 목숨을 내어놓아야 했다. 따라서 십자가 위에서 희생자를 끌어내릴 때 그가 죽었는지를 꼭 확인했다.


<2008년 우건형 기자 / 크리스찬투데이 US>


십자가형에 대한 고고학적 발견


A. 십자가형이 성서고고학을 통해 설명된 것은 1967년 이후이다. 1968년 여름, 예루살렘 옛 성에서 북쪽으로 그리 멀지 않은 유대인동네인 기브앗 하미브타르에서 1세기 당시의 무덤과 매우 가치 있는 유물이 발굴되었다.


1. 당시 발굴된 것은 AD 1세기 전형적인 유대인 가족무덤이며, 8개의 석관 가운데 17구의 유골이 발견되었는데, 이는 유대인들의 장례법에 따른 것이다. 유대인들은 BC 8세기 이후 페르시아의 영향으로 부활신앙을 갖고 있었기 때문에, 사람이 죽으면 바위를 파서 만든 바위무덤에 시신을 안치했다가, 유골이 되면 유골함에 모시는 방법으로 장례를 치렀다. 신약성서에서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숨을 거두시자 아리마대사람 요셉이 바위무덤에 모셨다는 이야기가 나오는 것도 그러한 이유에서이다.


B. 그런데 이중 한 유골의 발뒤꿈치 뼈에 철제못이 박혀 있는 것이 확인되면서, 십자가형으로 죽은 사람의 유골임이 밝혀졌다. 유골의 손목뼈에는 날카로운 흠집이 있어서, 십자가형이 사형수의 손과 발이 아닌, 손목과 발뒤꿈치에 못을 박는 방법으로 집행되었다는 것이 확인되었다. 이것은 십자가형에 대한 고고학적인 유일한 증거이다.


C. 십자가에 못 박힌 유골은 유골함에 새겨진 이름에 따르면 요하난 벤 하그콜, 즉, 하그콜의 아들 요하난이다. 요하난은 24-28세의 젊은이로, 그를 죽음에 이르게 한 십자가형을 받게 된 죄목은 알 수 없지만, 십자가에 못 박혀 죽은 것은 확실하다. 석관에서 나온 오른발 뒤꿈치 뼈에 큰 쇠못이 박힌 것이 그 확실한 증거이다.


D. 매우 굵고 커다란 쇠못이 박혀있는 발뒤꿈치 뼈도 있었다. 발뒤꿈치 뼈에 대장장이가 불에 달궈서 망치로 두들겨 만든 굵고 기다란 쇠못이 박혀있었고, 이 못에 붙은 나뭇조각들을 살펴본 결과, 못이 나무에서 빠져나가지 못하도록 못의 뒤끝이 안쪽으로 구부려져 있었다. 십자가 자체는 올리브나무로 만들어져 있었으며 못은 죄수의 발등이 아니라 발뒤꿈치 옆 복사뼈 밑에 박혀 있었으며, 아카시아나무 조각이 죄수의 발을 받치고 있었다.


E. 십자가에 못 박혀 죽은 후 요하난의 시신을 장사 지내는데 문제가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요하난의 발에 단단히 박힌 쇠못을 빼내는 일이 문제였다. 나무에 깊이 박힌 쇠못을 빼려다 잘못하면 그의 뼈를 으스러지게 할 수 있어, 가족은 하는 수 없이 십자가형 틀의 나무 일부와 쇠못이 뼈에 박힌 채 그의 시신을 무덤에 안장하였다. 그리고 유대인의 장례절차에 따라 시신을 무덤에 안장한 지 1년이 되는 날, 가족은 그의 무덤을 찾아 오른발 뒤꿈치에 쇠못이 박힌 채 뼈를 석관에 담았다.


F. 요하난의 석관은 1968년 여름에 발견되었다. 그러나 기브앗 하미브타르 동네에 위치한 요하난 벤 하그콜의 무덤은 건물 재건축 과정에서 사라지고 없었으며 그의 석관은 현재 이스라엘 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다. 그리고 쇠못이 박힌 요하난 벤 하그콜의 뼈는 똑같이 복제된 후, 간단한 장례 절차를 거쳐 영구히 매장되었다.


예수님의 물리적 죽음


A. 로마인들이 인식한 십자가 형벌 - 로마의 법률가 율리우스 파울루스가 편찬한 『형법』이라는 저서는 로마시대에 행해진 세 가지 가장 잔인한 형벌을 다루고 있다. 첫째, 십자가형(十字架刑), 둘째, 화형(火刑), 셋째, 교수형(絞首刑)이다. 그리고 짐승에게 찢기는 형은 잔인한 형벌로서 교수형을 대신하여 종종 행해졌다. 십자가에 해당하는 범죄자들의 목록은 다음과 같다. 적에게 투항하는 자, 비밀 누설자, 반역 선동자, 살인자, 통치자의 번영에 대하여 불길한 예언을 하는 자, 야간에 음란한 행위를 하는 자, 마술을 행하는 자, 절박한 상황에서 변절한 자 등이다. 십자가형은 그 형벌의 가혹함 때문에 항상 하류 계층에게만 적용되었다. 나사렛 예수가 십자가형을 받은 것은 당시 그분의 사회적 지위를 말해준다. 이를 통하여 그분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당시 사회의 하류 계층에 속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상류계층에게는 보다 인간적인 형벌이 적용되었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이 이러한 잔인한 형벌에 의하여 죽으셨다는 것은 우리들에게 그분의 낮아지심과 대속적 죽으심의 사랑과 헌신을 깨우쳐 준다.


B. 수치스러운 죽음 - 십자가형은 처형당하는 자를 벌거벗겨 눈에 띄는 장소, 네거리, 극장 안, 높은 언덕, 범행장소에 공개적으로 드러낸다. 그럼으로써 십자가형은 내면적인 차원에서도 처형당하는 자에게 최대의 수치를 드러내었다. 십자가형은 인간을 희생의 제물로 드리는 고대세계의 사상과 연결되어 있다. 십자가형은 처형한 자를 대부분 매장하지 않는다는 사실 때문에 더욱 처참하게 평가되었다. 처형당한 자는 매장을 거절당하고 그의 시체는 맹수들과 시체를 뜯어 먹는 새들의 먹이로 주어졌던 것이 그 전형적인 예이다. 이처럼 십자가형은 처형당하는 당사자에게 완전한 굴욕과 수치를 가져다 주었다.


C. 사회적으로 비난을 받은 십자가에 처형된 자 - 로마 시대에 십자가형은 사회의 안전을 깨뜨리는 위험한 범죄자들과 사회적 지위가 가장 낮은 천민계층에게 실시되었다. 이들은 사회를 구성하는 법 테두리 밖에 있는 자들이거나 인간으로서 권리를 박탈당한 노예들이었다. 이들은 당시 로마가 법과 질서를 유지하기 위하여 온갖 수단과 방법을 총동원하여 억압해야 했던 집단들이었다. “팍스 로마나(로마의 평화)”(pax romana)라는 슬로건 이면에는 체제에 저항하는 자들을 응징하는 잔혹한 형벌과 이를 실시하는 엄청난 군사력이 있었다. 이러한 체제에 대한 반란자를 잔인하게 응징한 결과로 로마는 사회적인 안정과 법적인 평화를 이룩할 수 있었다. 그러므로 일반 군중들은 예수와 같이 십자가에 달린 자들이란 응당 사회적으로나 윤리적인 면에서 반국가적 내지 흉악한 범죄를 저질렀다고 생각하였다. 십자가에 처형된 자들은 사회적으로 비난의 대상이 되었다. 예수님께 판결된 십자가형이란 그 당시에 가장 수치스러운 형벌이었다.


D. 십자가의 어리석음 - 그리스인들과 로마인들에게 있어서 실재하는 신들은 영원히 죽지 않는 자들로 간주되었다. 이러한 자기들의 신들에 대한 관념과 비교하여 볼 때, 이들은 참되고 유일하신 하나님의 선재(先在)하는 외아들이 갈릴리의 이름없는 유대인 가운데 태어났다는 사실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거기다 예수가 자신을 메시아라고 하여 정치적으로 선동했다가 범죄자로 몰려 십자가에서 처형당했다는 사실은 이들에게 “어리석음”내지 “미친 짓”으로 간주되었다. 고린도교회에 보내는 서신에서 바울이 언급한 “십자가의 말씀이 멸망하는 사람들에게는 어리석은 것”(고전 1:18上)이라는 말은 당시의 십자가형에 대한 사람들의 일반적인 인식을 표명하고 있다. 십자가라는 말의 거리낌은 십자가에서 당하는 고통에 필적한다. 그러므로 바울이 전한 복음을 들은 그리스도인들은 십자가의 말씀을 좀처럼 인정할 수 없었다. 왜냐하면 그들에게 있어서 십자가라는 단어에는 잔혹한 수치와 멸시와 미련함과 무시가 동반되었기 때문이었다. 고대 세계의 종교적 이상과 비교하여 볼 때 기독교의 메시지는 로마시대 역사가 수에토니우스의 용어인 “해로운, 새로운 미신”으로써 서술될 수밖에 없었다. 소위(所謂)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예수가 십자가에 처형되었기 때문이었다. 십자가는 수치스러움의 상징(히 12:2)이었다. 그러므로 그 시대 사람들은 예수를 하나님의 아들로 받아들일 수 없었다. 그리스인들이나 로마인들은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자는 죽을 수 없고, 가장 잔인한 처형으로 죽을 수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E. 유대인들이 인식한 십자가 처형 - 더욱이 로마인들이 팔레스타인에 세운 십자가를 자주 볼 수 있었던 유대인들은 제자들이 증거한 십자가의 말씀을 더욱 인정할 수 없었다. 유대인들에게는“나무에 달린 자들마다 저주받은 자(신 21:23)”로 간주되었기 때문이다.


십자가형의 고통


2000년 전 로마인들의 사형집행 방법 중 가장 잔인한 방법이었던 십자가형에 의해 돌아가신 예수님은 어떻게 죽어가셨을까?


A. 현대 의학자들은 예수님의 십자가의 고통을 제대로 파악하기 위해서는 예수님께서 재판을 받고 십자가를 지기 이전인 겟세마네 동산에서의 기도 때부터 시작해야 할 것이라고 주장한다. 성경은 심한 고통 속에 아버지께 기도하며 피땀 흘리시는 예수님의 모습을 상세하게 묘사하고 있는데(눅 22:39-46), 이는 정서적 상태가 극에 달했거나 극심한 정신적 혼란을 겪고 있는 사람들에게서 발생하는 혈한증(血汗症)으로, 바늘이 살을 찌르는 듯한 고통을 수반한다고 의학자들은 말한다.


B. 예수님께서는 이어 유다의 배반으로 체포되어 대제사장과 총독 앞에서 수 차례 심문을 받고 태형과 함께 십자가형을 선고받았다. 당시 로마는 모든 형을 집행하기 전에 죄수를 기둥에 묶어두고 죄수의 등에 태형(채찍질)을 가했는데, 이 채찍은 보통 39개의 가닥으로 되어 있었고, 가죽끈에 작은 공 모양의 철이나 날카로운 양의 뼈를 붙여놓았다. 채찍으로 몸을 때리면 구슬들 때문에 깊은 상처나 멍이 생겼고, 채찍질을 계속하면 상처 난 곳이 벌어졌다. 또 채찍에는 날카로운 뼛조각들이 박혀있기 때문에 채찍질을 하면 살이 심하게 찢겨져 나갔다. 태형이 계속되면 피부 밑에 있는 골격 근육까지 찢겨지게 되고, 찢겨진 살은 피범벅이 된 채로 덜렁덜렁 매달려 있게 되었다. 태형을 당하는 사람은 정맥이 밖으로 드러났고, 근육 및 창자의 일부가 노출되었다. 많은 사람들이 십자가에 달리기도 전에 태형만 당하고서도 죽었다고 한다.


C. 이어 예수님께서는 당시 로마의 관행에 따라 양쪽 어깨에 십자가를 지고 양팔이 묶인 채 처형장소로 걸어가 십자가에 못 박혀 죽게 되었는데(눅23:26-49), 이때 예수님께서 진 십자가는 단지 횡목(파티불룸)뿐이었고 그 무게는 30㎏ 정도였다는 것이 고고학자들의 공통된 증언이다. 주 예수님은 가로들보(파티불룸)를 지고 빌라도 법정에서 골고다 언덕까지 약 800m 되는 거리를 지고 올라가셨다. 물론 성경에는 도중에 구레네 시몬이 자꾸 쓰러지는 예수님 대신 십자가를 지게 했다고 기록되어 있다. 가로 들보는 땅에 단단히 고정되어 있는 십자가의 수직 기둥과는 분리되어 있는 것이었다. 수직기둥은 그 무게가 40kg이다, 합하면 70kg 정도이다. 처형장에 도착했을 때, 예수님은 십자가의 가로 들보 위에 눕혀진 후 팔을 뻗친 상태에서 못 박혔다.


D. 학자들은 예수님께 사용된 못은 길이가 12.7-17.8㎝, 지름 1㎝ 정도의 날카로운 철 대못으로, 예수님의 손바닥이 아니라 팔뼈 끝 부분과 손목뼈 사이를 관통했을 것으로 본다. 왜냐하면 예루살렘 근처에서 발견된 예수님시대 유골에서 이런 흔적이 공통적으로 드러나고 있고, 손바닥에 못을 박았다면 몸무게를 지탱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성화를 보면 예수님의 손바닥에 못이 박혀있지만, 사실 손바닥에 못이 박히면 몸무게 때문에 손바닥이 찢겨져 나가서 십자가에서 떨어져 버린다. 그러므로 손목에 못을 박아야 손이 단단하게 고정된다(당시의 언어는 손바닥과 손목을 구별하지 않았다.) 그러므로 그림과 같이 중추신경이 지나가는 위치에 못이 박혔다. 그 신경은 손으로 나가는 가장 큰 신경인데, 못이 그곳을 내리칠 경우에 신경은 완전히 파괴된다. 그것은 마치 펜치로 그 신경을 잡고 비틀어서 뭉개는 것과 같은 수준의 고통이라고 한다.


E. 그런 다음 가로 들보를 들어올려서 수직 기둥에 부착시켰다. 이때 예수님도 함께 끌어 올려지셨고, 그 다음에는 예수님의 발에 못이 박혔다. 발은 겹쳐진 채 십자가의 수직기둥 정면에 고정되었고, 못은 발 중앙의 둘째와 셋째 뼈 사이에 꽂혔다. 이때 또 다시 발에 있는 신경이 완전히 으깨졌고, 손목에 못이 박혔을 때와 비슷한 고통을 느꼈을 것이다. 심하게 신경이 손상되는 것 이외에도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님께는 십자가에 달리심에 따른 부수적인 고통이 추가적으로 발생한다. 무엇보다도 먼저 그분의 팔이 늘어난다. 아마 15cm 정도는 늘어났을 것이다. 그리고 양쪽어깨가 탈골된다. 이것은 십자가 사건이 일어나기 전에 그에 대해 예언한 시편 22편의 내용, ‘내 모든 뼈는 어그러졌으며’라는 예언의 성취라고 할 수 있다.


F. 의학자들은 못에 박혀 쭉 뻗은 팔과 어깨를 끌어내리는 몸무게로 인하여 예수님께서 숨을 들이쉬는 것 보다 내쉬는 것이 훨씬 어려웠을 것이고, 이로 인한 이산화탄소 과잉, 근육경련 현상들은 그분의 호흡을 한층 더 방해했을 것이라고 말한다. 십자가에 못 박히셨을 때, 그분의 근육에 충격이 가해지면서 횡경막이 가슴의 상태로 숨을 들이쉬는 상태로 만들어 놓는다. 이런 상황에서 숨을 내쉬기 위해서는 십자가 위에서 발을 세워야만 한다. 그래야 근육이 잠시 동안 이완될 수 있는데, 이것은 발에 박혀있는 못이 발을 점점 깊이 찌르게 한다. 이 동작은 못 박힌 발에 몸무게 전체를 싣게 하므로 고통은 극에 달하게 된다. 결국에는 못이 발 근육에 붙어있는 뼈를 고정시키게 된다.


G. 먼저, 저혈량성 쇼크는 예수님께서 죽기 전에 심장 박동수를 지속적으로 빠르게 만들었다. 이것이 심장을 정지시킨 원인 중의 하나였다. 그렇게 되면 심장 주위에 있는 막 조직에 액체가 고이는 심낭삼출이 일어난다. 그리고 폐 주위에도 액체가 고이는데 이것은 늑막삼출이라고 한다. 로마 군인들은 예수님이 죽으셨다는 것을 알고서 예수님의 오른쪽 옆구리를 창으로 찔러 확인했다. 성경 묘사를 볼 때 아마도 오른쪽 옆구리 갈비뼈 사이였을 것이다. 창은 오른쪽 폐와 심장을 꿰뚫었다. 그래서 창을 뺄 때 물처럼 보이는 액체인 심낭삼출액과 늑막삼출액이 나왔을 것이다. 요한이 복음서에서 증거하고 있는 것처럼, 물처럼 투명한 액체가 흘러나온 다음에 많은 양의 피가 쏟아졌을 것이다. 요한에게 왜 피와 맑은 액체가 같이 나오는지에 대한 의학적인 지식은 없었을지 몰라도, 그의 서술을 통하여 그가 현장을 직접 목격했다는 사실은 믿을 수 있다. 요한복음 19:34에는 ‘피와 물’이 나왔다고 했는데, 고대 헬라어에서는 단어의 순서가 반드시 사건이 일어나는 순서대로 배열된 것이 아니라 두드러진 사건일수록 먼저 나온다. 요한의 말은 물보다는 피가 더 많이 나왔다는 것을 의미하고, 이것은 의학적으로도 맞다.


H. 지난 80년대 중반 미국 의학협회지에 실렸던 이러한 내용은 상상으로만 가능했던 예수님의 십자가 고통과 죽음의 원인을 현대의 의학적인 접근을 통해서 생생하게 풀어 설명하고 있다. 살이 찢기는 아픔, 팔과 다리에 느껴지는 고통, 호흡곤란으로 점점 조여오는 가슴, 숨을 쉬기 위해 몸을 들어올리면서 느껴지는 손과 발의 극심한 통증 등은 예수님을 몇 시간 안에 죽음으로 몰아갔다.


 

사진2.jpg


그림 1과 A 그리고 팔목에 붉게 칠해져 있는 곳이 바로 위쪽 그림의 A에 해당하는

부분으로 못이 관통한 부분이다.

 

 

사진3.jpg


못박힌  복숭아 뼈 재구성한 그림(이스라엘 박물관 보관)

 

 

사진4.jpg


위 부러진 다리뼈는 안식일이 되기 전에 시체를 거두기 위해 죄수가 도망가지 못하도록

다리뼈를 부러트린 것(그림 1과 2. 그림B 부분에 해당)으로 추정한다. 그림 A는 못을 박은 위치

 

 

사진5.jpg


위 사진은 십자가형에 처해진 26살 가량의 남자 발 뒷꿈치이다.

 

 

사진6.jpg


못박힌 손목 단면도

 

 

사진7.jpg


태형 상세도 

 

 

사진8.jpg


채찍 모형도

 

 

사진9.jpg


십자가 위의 호흡곤란 상태의 흉부근육상세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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