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트니스 리와 지방교회에 관한 『전문가들의 증언 "서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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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트니스 리와 지방교회에 관한 『전문가들의 증언 "서문"』
"전문가들의 증언"은 1985년 5월 캘리포니아 상급 법원에서 위트니스 리(Lee)와 닐 더디 등과의 재판에서 전문가들이 선서 증언한 것을 기록하고 있다. 다양한 종교적 배경을 대표하고 있는 여섯 명의 전문가들은 위트니스 리와 지방교회들의 가르침과 실행들을 조사하도록 요청 받았다. 전문가들은 또한 영적 사이비 연구소(SCP)가 출판한 "갓멘"이라는 책에 있는, 지방교회들을 반대하여 인쇄된 비난과 비평들을 조사하도록 요청 받았다. 마지막으로, 이들 중 다섯 명은 캘리포니아 상급 법원에서 선서하여 그들의 결론을 제출할 것을 요청 받았다. 여섯 번째 전문가인 가우스태드 박사는 재판에서 증언하지 않았지만, 그의 연구는 논문으로 요약되었고, 이 책에 재 인쇄되었다. 이 책은 위트니스 리와 지방교회들에 관한 전문가들의 증언이다.
소송은 교리적인 차이에 대한 것이 아니라, "갓멘"이라는 책이 위트니스 리와 지방교회들에 관하여 거짓되고, 악의적이며, 손상을 주는 내용을 서술했다고 보았기 때문에, 명예 훼손 문제에 대한 것이었다. 그러나 "사이비"라는 관념을 갖게 한 "영적 사이비 연구소"에 의해 사용된 많은 공격들은 교회들의 믿음과 실행에 관련되어 있다. 그들의 비난은 신학, 심리학, 사회학, 및 "실지" 사건들을 포괄하는 것이었다. 따라서, 교리를 포함하여 이 책의 총체적인 왜곡 현상이 밝혀져야만 한다. "영적 사이비 연구소"가 지방교회들을 판단하는 데 있어서 전문가로 자처했기 때문에, 관련된 분야에 좀 더 자격을 갖춘 몇몇 사람들의 증언은 필수적이었다.
이러한 이유로, 각 분야에서 자격을 갖춘 전문가들을 구했으며, 지방교회들을 연구하고 "갓멘"에 있는 공격들을 평가하도록 요청하였다. 지방교회들과 지방교회들의 비방자들에 관한, 참으로 자격을 갖춘 전문가들의 결론은 "위트니스 리와 지방교회들에 관한 전문가들의 증언에서 볼 수 있다.
왜 지방교회 사람들은 다른 그리스도인들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는가? 그리스도인들 가운데서의 마찰을 해결하는 데 있어서 첫 번째 선택은 물론 법정이 아니다(고전 6). 성경의 권고에 의하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그리스도인 형제들이 취해야 하는 시도는 그리스도인의 교통을 통한 것이다(마 18). 불행하게도, 1970년대 초반부터 "영적 사이비 연구소"의 태도는 결코 다른 그리스도인들로 더불어 진리와 화해를 추구하는 태도가 아니었다. 오히려 처음부터 그들의 태도는 그들이 결코 이해할 수 없는 소위 "영적인 사이비"를 심판하고, 정죄하고, 파괴시키는 것이었다. "영적 사이비 연구소"는 교회들 안에 있는 형제 자매들이 그들의 오류를 지적했음에도 무시했다.
1976년에 "영적 사이비 연구소"에서 나온 원고는 결국 "갓멘"의 초판이 되었다. 결국 또 다른 책이 그 원고에서 나왔는데, 잭 스팍스(Jack Sparks)와 몇몇 사람들은 그것을 "마인드벤더"로 발전시켰다. 잭 스팍스는 "영적 사이비 연구소"의 초기 인도자였는데, 그 당시 지방교회의 분리파에서 온 다른 이전의 동료들과 합류하기 위해 "영적 사이비 연구소"와 관계를 끊으려 하고 있었다. 스팍스는 "영적 사이비 연구소"의 원고 사본을 적의를 품은 분리파 일원에게 제공했고, 그 원고가 "마인드벤더"로 발전되었던 것이다.
따라서, 이 두 책은 1977년에 출판되었는데, 겉으로 보기에는 출처가 다른 것 같지만, 실상은 한 원고를 복제한 것이다. 그것들은 심지어 본래 원고에 있는 인쇄 실수를 다시 반복할 정도로 매우 유사하다. 그들의 주장과 결론이 그토록 유사하다는 것은 그리 놀라운 일이 아니다. 그들이 출판하기 전에 교회 사람들이 두 책에 대해 강한 항의를 제기했었다. 그러나 그러한 항의에도 불구하고 두 책은 출판되었다.
결과적으로, 이 두 책은 지방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에게 극도로 손상을 입혔다. 처음에 지방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은, 그렇게 진리에서 동떨어진 책을 믿을 사람이 없을 것이라고 순진하게 생각했다. 그러나 그러한 책들에 대한 문제 제기가 대중에게는 도달되지 않았기 때문에, 사람들은 그들의 비난을 사실로 받아들였다. 공격들은 매체에 "사실"로서 거듭 활자화되었다.
일 년 안에 지방교회는 세인들의 "사이비" 명단에 올랐다. 일단 지방교회가 사교라 명명되면, 그 반응은 자동적인 것이다. 사람들은 의심과 두려움과 경멸과 회피로 반응했으며, 이러한 반응들을 일소하는 것은 이성의 힘을 넘어서는 것이었다. 잘못을 시정할 수 있는 공청회를 가질 길도 없었다. 어떤 서점도 "사이비교"로 낙인찍힌 집단의 항변을 게재해 주기를 원치 않았다. 지방교회 사람들은 그들의 직장에서 가혹한 어려움을 당하고 견뎌야 했다. 어떤 이들은 직장을 잃기까지 했다. 더욱 심정적으로 쓰라린 것은 놀란 부모들과 친구들이 사랑하는 자들을 "구출"하려고 시도하는 등의 가족 관계에서의 문제였다. 지방교회들이 밖으로 뻗어나감은 강력한 배척에 직면했었다.
1978년에 있었던 조지 타운의 집단 자살은 "사이비교"라는 말에 새로운 공포를 더해 주었다. 이 기회를 잡아서 "갓멘"과 "마인드벤더"를 발행한 자들은 그들의 책이 개정판으로 출간됨을 발표했다. 저자와 발행자들에 대한 지방교회들의 호소는 전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최후의 수단으로 그들은 이 소송을 고려했다. 지방교회들이 대처할 수 있는 다른 어떤 길이 없어 보였다. 그들은 현대의 "가이사에게 호소"(행 25:9-11)하는 것과 같이 소송을 제기하는 것을 고려했다. 이것은 사도 바울이 그 당시 유대 종교인들에게 생명의 위협을 받을 때 행사한 것이었다. 소송의 목적은 대중에게 진실을 알려 끊임없는 핍박을 중단시키려는 것이었다. 삼 년에 걸쳐 중대한 왜곡을 바로잡으려는 시도가 좌절당하고 막대한 타격을 받은 후, 1980년에 명예 훼손에 대한 소송이 자매 책인 "마인드벤더"와 "갓멘"에 대해 제기되었다.
이들 소송은 책들이 주장하는 내용의 사실 여부를 조사하는 토론장이 되었다. 모든 문제들에 대한 상세한 조사와 추적이 이루어졌다. 관련된 사람들의 선서 증언이 조서로 기록되어있다. 이 백 건이 넘는 선서 증언이 이루어졌다. 수많은 문서가 만들어지고, 분석되었다. 모든 명예 훼손의 내용은 물론, 관련된 모든 사람들에 대한 조사가 상세하게 이루어졌다. 저자들과 발행인들은 선서 아래 그들이 비난한 것에 대한 사실을 확증할 수 있는 모든 기회를 가졌다.
즉, 그들은 지방교회들을 위해 증언해 주는 전문가들을 탄핵할 모든 기회를 가졌던 것이다. 후에 그들은 재판 중에 전문가들에게 반대 심문할 기회가 없었기 때문에 결과가 신뢰할 수 없는 것이라고 주장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사실은 그들이 재판을 위해 준비하면서 조서에 대해 삼 년 넘게 조사를 실시했다는 것이다. 그토록 긴 기간을 거치면서 그들의 책은 정당함을 입증 받지 못했으며, 오히려 저자와 발행자들의 동기와 악의와 계획적인 왜곡이 폭로되었다. 여섯 명의 전문가들은 그들이 원하는 어떠한 방식으로든 조사할 권한을 가지고 교회와 중요한 출판물들을 조사했으며, "갓멘"을 저술하는 데 관련된 사람들의 선서 증언을 상당 분 읽었다. 여섯 명 중 일부는 저자들을 지지하도록 임명된 전문가들과 증인들의 증언에 출석했다. 어떤 전문가들은 적대적이고 비판적인 과거 지방교회 교인들의 증언에 대해서도 상세하게 고찰했다. 여섯 사람은 적대적인 반대 심문에 대비하여 모든 쟁점들에 대처하고 그들의 결론을 제출할 준비를 갖추었던 것이다.
여섯 명의 전문가들의 상세하고도 공정한 결론은 위트니스 리와 지방교회의 진실한 믿음과 실행들을 고의로 왜곡한 "갓멘"을 압도적으로 정죄했다. 전문가들은 사이비교라는 비난이 저자들의 날조였음을 발견했다. 그들은 인용된 내용들이 위트니스 리가 의미한 것과 반대되는 어떤 것을 의미하기 위해 거듭거듭 제시되었다는 것을 발견했다. 그들은 "사례 연구"가 의심스러운 동기를 가진 사람들의 확증되지 않은 보고 내용에 기초했음을 발견했다. 그들은 책이 학문적인 분위기를 갖도록 도입된 사회과학의 함정을 발견했다. 그들은 위트니스 리의 가르침을 그들 나름의 기독교인의 관점에서 취하여 "사이비"라는 비난에 걸맞도록 왜곡시켰던 것이다.
삼 년에 걸친 드러냄과 증언이 있은 후에, "마인드벤더"의 발행자들은 위트니스 리와 지방교회들에게 사과하였으며, 그 책을 출판물 중에서 회수했다. 그러한 철회가 그 전역의 주요 신문에 1983년 4월 10일자로 게재되었으며, 이 책 부록에도 실려 있다. "마인드벤더"의 저자들은 또한 처리 협약에 서명했는데, 철회는 그 중 한 부분이었다. 그것은 법적으로 "마인드벤더"의 발행과 배포를 종결시켰다.
1985년 4월에 "갓멘"에 대한 건(件)의 재판이 이루어질 예정이었다. 그러나 재판이 시작되기 다섯 시간 전에 "영적 사이비 연구소"는 파산 법원 보호하의 재산 개편 신청을 냈다. 그들은 광범위한지지 기반을 갖고 있었고, 조사 과정 중에 계속적으로 자금을 조성하였으면서도 재판에 나설 여유가 없다고 주장했다. 이 행동을 취함으로써 그들은 혹시 있게 될지도 모를 큰 손해 배상과 과거 삼 년 동안에 선서 증언에서 그들이 한 일의 동기와 방법을 폭로라는 반대 심문이 있는 재판을 피할 수 있게 되었다.
"갓멘"의 주요 저자인 닐 더디(Neil Duddy)는 자신을 "영적 사이비 연구소"와 분리시키고 덴마크로 이주했다. 그는 재판에 나타나지 않았다. 독일판의 스위스인 발행자 "수엔겔러 벌라그"도 또한 나타나지 않았다. 따라서, 재판은 원고만의 참석으로 이루어지게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이라니온 판사는 사실적인 문제와 전문가들의 의견에 관하여 증인들에게 질문하는 데 있어서 매우 능동적인 역할을 했다. 피고가 출두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사건에 관련된 사실들과 전문가들의 결론은 법정에 제시되었다.
재판에서 나온 삼십 이 페이지의 판결문은 "갓멘"의 총체적인 허위에 대해 유죄 판결을 내린 것이다. 판사에 의해 상세하게 언급된 사실들은 전문가들 뿐 아니라 피고들의 선서 증언에서 나온 것이다.
그러한 사실들은 그 자체로서 자명하다. 법원의 의견은 다음과 같이 시작된다. "이 사건은 정식으로 공판에 회부되었으며, 상대가 없는 재판으로 진행되었다... 상대가 없는 재판이었지만, 법정은 원고들이 역량 있고 신뢰할 수 있는 증거를 제시했음을 느꼈고, 또한 법정은 증언자들의 신분과 자질에 깊은 인상을 받았다. 더 나아가서, 법정은 피고인들이 출두하는 것과 관계없이, 수정 헌법 1조 상의 권리(표현의 자유에 해당) 문제를 다루는 사건에서 요구되는 대로 진실을 확증하기 위해 증인들을 심문하고 반대 심문할 충분한 기회를 가졌다. 법정이 보기를 원하고 묻기를 원했던 것은 빠짐없이 제공되었다. 더 나아가서, 원고들을 위한 증거는 자격 있는 전문 증인들에 의한 독립된 증거로서 확증되었다. 따라서 법정은 미국에서 유포된 "THE GOD MAN"(증거물 1호)이라는 닐 티 더디의 저술과 수엔겔러 벌라그가 출판하여 유럽에서 유포한 책 "위트니스 리와 지방교회에 대한 탐구"(증거물 3호), 그리고 닐 더디와 "영적 사이비 연구소가 인터바시티 출판사(Inter-Varsity Press)를 통해 미국과 영국에서 유포한 "갓멘(THE GOD MAN)"(증거물 5호)의 위트니스 리와 지방교회들에 관한 탐구는 모든 주요 방면에서 거짓되고, 비방적이며, 특권 침해이므로, 명예 훼손임을 판결한다."(캘리포니아 민법 제 45조).
판결문의 전문은 이 책 발행인이 보유하고 있음을 참고하기 바란다. 1억 1천 9백만 달러라는 손해 배상액은 손상 행위에 대한 재판장의 의견 및 책을 쓰는 데에 연관된 악의에 대한 그의 반응을 반영한 것이다. 그러나 그 재판에서 판정한 배상액은 결코 원고에게 지급되지 않았다. "영적 사이비 연구소"는 법원의 감독 하에 재편되었으며, 다시 사업을 시작했다. 법원 결정에 있어서 가장 가치 있는 보상은 이 책에 기록된 증언에 있다.
비록 "갓멘(THE GOD MAN)"과 "마인드벤더(THE MINDBENDER)"는 출판계에서 회수되었지만, 그들이 지어낸 악한 소문은 좀처럼 가시지 않았다. 매번 새로운 사이비교 소동과 함께 케케묵은 정보가 되풀이됐다. 이 책의 증언은 아직도 되풀이되고 있는 그들의 비난에 대한 해독제이다.
여섯 명의 전문가들은 증언하고서 십 년이 지난 후에, 위트니스 리와 지방교회들에 관한 이 책에 있는 그들의 결론이 확고하다는 것을 발견했다. 그들은 모두 이 책이 발행되기 전에 그들의 증언을 재검토했고, 최신의 논평을 할 기회를 가졌다. 멜튼 박사(Dr. Melton)는 1993년에 발행된 그의 저서 "미국의 사이비들에 대한 백과 사전 편람(Encyclopedic Handbook of cults in America)을 이용하여 두 책으로 인해 지방교회가 잘못 분류된 것을 사람들에게 알리는 기회로 삼으려고 애썼다. 불행하게도 몇몇 사람들은 그 책에 있는 지방교회들에 관한 단순한 언급은 그가 생각을 바꾸었다는 것을 의미하며, 지금은 지방교회를 사교로 간주한다고 추정했다. 멜튼 박사는 그 같은 추정을 하는, 일본에 거주하는 한 사람에게 보낸 1995년 7월 3일자의 최근 편지에서 그의 현재 입장을 다음과 같이 분명하게 기술하고 있다.
"1980년대 초반의 짧은 기간 동안에 지방교회와 개인적으로 반목하는 몇몇 사람들이 지방교회를 사교라고 비난했다. 그러나 그러한 비난은 근거가 없다는 것이 입증되었으며, 거의 십 년 간 여기서는 그러한 말이 들려오지 않았다. 내가 강하게 강조하는데, 내 책에 있는 그들에 대한 결론(서문에서 분명히 진술했듯이)은 이 책에서 논의된 다른 단체들과 그들의 유사성을 다만 논박하기 위한 것이었다. 북미에서는 거의 십 년 동안 지방교회가 "사교"임을 암시하는 어떤 문헌도 나타나지 않았다. 그들을 수년 동안 조사하고 나서, 나는 지방교회가 주로 교회론, 경건, 종말론의 문제에서 기타의 교회들과 다른 정통 그리스도인 교회라고 결론지었다. 즉 이러한 문제들에 대해서는 모든 기독교 종파들이 일치되지 않으며 또한 불일치가 허용된다."
마침내 대중은 진정으로 자격을 갖춘 전문가들의 증언을 숙고할 수 있으며, 위트니스 리와 지방교회들에 관한 합당한 결론에 이를 수 있다. 여기서 그 결말은 한 사람이나 한 단체를 단순히 옹호하는 것이 아니다. 지방교회 사람들은 진리를 검토하는 것을 기뻐한다.
얼마의 독자들이 이 땅에서 사람에 대한 하나님의 경륜에 관해 새로운 빛과 영감을 받을 수 있다면, 모든 수고는 헛되지 않은 것이다. 어떤 사람이 믿음의 세부적인 사항에 동의하지 않은 편을 선택했다 할지라도, 지방교회의 참된 신앙이 마침내 보다 분명해졌다는 것을 아는 것으로 여전히 만족하고 있다. 이 책을 여론의 거대한 법정에 맡긴다. 여러분이 읽을 때 진리 안에서만 발견되는 빛과 자유와 기쁨이 있기 바란다.
1995년 10월 26일
캘리포니아 아나하임 댄 토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