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교회 변증자료를 나누기 위한 게시판입니다.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미국 CRI의 지방교회측 인도자들과의 방송 대담-후편

첨부 1

 

미국 CRI의 지방교회측 인도자들과의 방송 대담-후편

 

 

사회자: 지방교회들과 관련된 이러한 추가 자료를 위하여 우리와 함께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이 자료는 ‘바이블 앤서 맨’(Bible Answer Man) 방송 후에 녹음된 것입니다. 행크 씨는 지금 지방 교회측 인도자인 앤드류 유 씨와 크리스 와일드 씨와 함께 있습니다. 그럼 지금부터 ‘바이블 앤서 맨’ 프로그램 진행자이신 행크 해나그래프(Hank Hanegraaff) 씨를 소개하겠습니다.


행크: 지난 생방송에서 우리는 지방교회 운동에 관한 몇 가지 특징들에 대해서 다뤘습니다. 제가 생각할 때 대화 중에 일관되지 못했던 것 중 하나가 워치만 니와 위트니스 리 그리고 지방교회 운동인데, 그것을 ‘지방교회’라고 불러야 합니까? 아니면 ‘지방교회 운동’이라고 부르는 것이 좋은가요? 귀하가 소속된 전통에 따르면 둘 중 어떤 것이 이 운동을 설명하는데 적합한 표현인가요?


크리스: 그것은 늘 어려운 문제입니다. 아시다시피 제가 기억하기로는 이 프로그램 서두에서 행크씨가 중국의 초기에 대해서 언급했을 때 흔히 사용되던 표현을 썼었는데, 그것은 워치만 니가 ‘작은 무리’(the little flock) 운동을 설립했다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는 행크씨가 무엇을 말하고자 하시는지 알고 있고 누구도 그것에 대해서 예외가 없습니다. 그러나 가장 좁은 의미에서 본다면, 아마도 워치만 니라도 귀하의 그런 언급에 대하여 아마 교정하려고 했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만일 귀하가 ‘작은 무리’ 또는 ‘지방교회’ 또는 ‘다른 그리스도인들과 분리시키는 특징을 갖는 어떤 이름’을 취한다면, 즉 ‘나는 이런 종류의 그리스도인이다’ 라고 한다면, 그것은 바울이 초기에 고린도 교회에 관해 분열이라고 말했던 범주에 빠져버리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귀하도 알고 있듯이 그들 중 일부는 베드로에게 속했다고 하고, 어떤 이는 바울에게 속했다고 하고, 어떤 사람은 심지어 분파적인 의미에서 자신들이 그리스도께 속했다 고 말하기 때문이지요. 그 모든 것들은 자신들을 다른 이들로부터 별도로 분리시키는 태도에서 파생된 것이지요.


행크: 배타주의이지요.


크리스: 그렇습니다. 배타주의입니다. 지방적 교회 또는 지방교회들이라는 개념은 그러한 배타주의에 반대하는 반 작용이고, 교회는 하나이고, 우주적으로 하나이며, 우주적인 방면에서는 어떤 경계선도 없고, 1세기 이후의 모든 믿는 이들이 한 몸 즉 “우주적인 한 교회의 지체들”이라는 이론을 설명하는 지배적인 원칙으로 인정하고 받아 들이는 그런 것입니다. 따라서 이것에 대한 우리의 이해는 포괄적인 의미에서의 우주적인 교회가 땅, 달리 말하자면 시간과 공간을 만났을 때, 본질에 있어서는 변한 것이 없이 여전히 하나이지만 지리적인 관점에서 땅을 만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이해하기로는 믿는 이들을 참되게 분리할 수 있는 유일한 기준은 지리적인 것 뿐입니다. 워치만 니는 이것을 연구하는데 많은 시간을 보냈고 그것을 그의 저술들과 글들에서 발전시키다가 1930년대에 ‘정상적인 그리스도인의 교회생활’(The Normal Christian Church Life)이라는 제목으로 출판했고, 후에 ‘교회의 길’(Further Talks on the Church Life) 이라는 책도 펴냈습니다. 그는 성경적으로 인정 되는 유일한 분리 기준은 ‘지리적인 것’ 이라는 이해를 발전시켰습니다. 따라서 ‘에베소에 있는 교회’(the Church in Ephesus), ‘서머나에 있는 교회’, ‘버가모에 있는 교회’, ‘두아디라에 있는 교회’ 등이 있게 됩니다. 즉 교회의 범위가 믿는 이들이 사는 도시의 경계와 동일시되었습니다. 또한 귀하도 말씀하신 것처럼, 계시록 2, 3장의 아시아에 있는 일곱 교회들처럼, 한 지역(region)이나 도(道)를 가리킬 때는 ‘교회들’ (복수)이라 불렀습니다. 그런 식으로 믿는 이들은 지방적으로 하나였습니다. 또 그런 관점에서 ‘지방교회’는 대문자 L과 C (Local Church)가 아니고 소문자 l과 c (local church) 입니다. 


행크: 이것은 정말 흥미있고 통찰력이 있습니다. 왜냐하면, 앤드류 씨, 지방 교회들에 대한 주된 비판들 중 하나가 여러분은 여러분의 교회만이 어떤 지방 안에서 그리스도의 실재적이고 옳바른 동일시 내지는 표현이고, 어떤 이가 지방 교회에 속하지 않으면 그 사람은 교회(the Church)의 일부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라는 것입니다.


앤드류: 저희는 우리가 ‘그 유일한 교회’의 일부라고는 말하겠지만, 우리가 '유일한 그 교회다'라고 말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또한 우리는 심지어 천주교회를 포함한 모든 종류의 기독교 단체들 안에도 참된 믿는 이들이 있음을 인정합니다. 하지만 오직 하나 뿐인 참된 교회가 있는데,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 즉 그리스도의 몸입니다. 그러나 하나의 그룹으로서 우리는 그 유일하고 참되고 진정한 한 교회의 선하고, 합당하며, 참되고, 영적인 표현이 되고자 합니다. 우리는 우리 자신을 그렇게 부르고 또 그렇게 알고자 하는데, 그것은 하와가 아담으로부터 나온 것처럼 우리는 그리스도로부터 나온 하나의 영적인 교회 즉 그리스도 자신의 생명으로부터 나온 모든 것을 소유한 그런 교회의 간증이 되고자 합니다. 그것이 우리가 모든 지방들 안에서 유지하려고 분투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단지 침례나 머리에 수건 쓰는 것 또는 어떤 특별한 교리를 주장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대신에 우리는 교회가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인 것과 같은 그런 교회이기를 바라고, 침례를 주장하는 교회 또는 어떤 특별한 교리나 가르침을 주장하는 교회가 아닙니다. 귀하는 기본적으로 이것이 저희의 교회론 즉 교회가 무엇인가 에 대한 우리의 믿음이라고 보셔도 좋습니다.


행크: 귀하가 교회론 심지어 종말론을 언급한 것이 흥미롭습니다. 귀하와 제가 토론한 영역이 많이 있었는데 일치된 의견에 이르지 못했습니다. 우리는 동일한 종말론을 갖고 있지는 않지만, 철이 철을 다듬는 것처럼, 서로 대화를 많이 나눴고 우리가 불일치하는 부분은 그리스도인의 본질적인 교리가 아니라 비 본질적인 것들에 대한 것이었습니다. 본질적인 것들에 있어서 우리는 일치합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에 대하여 말할 때,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육신을 입으신 부활을 믿고, 믿는 이들의 육신의 부활을 믿습니다. 우리가 삼위일체에 관하여 말할 때, 우리는 하나님께서 영원히 구별되시는 세 인격 안에 계시되신 한 하나님(0ne God)이심을 믿습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의 육체되심 또는 믿는 이들의 재-창조에 관하여 말할 때, 그 사람들이 그리스도 안에서 새 창조인 이유는 그들이 다른 의, 즉 율법을 지킴에서 나온 자신의 의가 아니라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받은 의로 인한 것입니다. 또는 우리가 종말론 즉 우리의 주님께서 장차 다시 오실 사실에 관하여 말할 때 우리는 완전히 동의합니다. 그러므로 본질적인 것들에 대해 우리는 일치합니다. 비록 우리가 그러한 본질적인 것들에 대한 표현 방법에는 차이점들이 있을지 모르나, 우리는 그런 본질적인 것들에 대하여 확고합니다. 그러한 본질적인 것들이 그리스도의 왕국과 이단의 왕국 사이의 경계선입니다. 우리는 비 본질적인 것들에 관해서 활기있게 논쟁하지만 그런 것들로 분리하지는 않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모든 것에 있어서 사이비 종교 집단 안에 있는 사람들에게도 사랑을 표현하기를 원합니다. 우리는 정직함과 진리의 영 안에서 그들과 대화하고자 합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비록 그들의 믿음에 동의하지는 않을지라도 그들의 믿음을 잘못 전달하고 싶지는 않기 때문입니다.


이제 다시 지방 교회들로 돌아가서, 저는 여러분이 가지고 있는 어떤 것들에는 비록 동의하지 않지만 본질적인 것들에 대하여 우리는 같은 입장을 취합니다. 그리고 지방 교회 운동, 특히 환 태평양 국가들에 속한 지방교회 운동에서 제가 체험한 것 중에 아주 흥미있는 것이 있습니다. 저는 거기에 서양에 있는 교회들에게 아주 가치있는 기여를 할 수 있는 몇 가지 특징들을 발견했습니다. 예를 들어 여러분이 하고 있는 실행 중에 하나는 ‘말씀을 기도로 읽는 것’(pray-reading)입니다. 적지 않은 사람들이 그렇게 생각하거나 최소한 지금까지 그렇게 말해온 것은, 지방 교회 운동의 말씀을 기도로 읽는 것은 성도들을 ‘최면 상태’(an altered state of consciousness) 에 빠지게 하여 그들이 실재와의 접촉을 끊게 하고 결국 기이한 것들 또는 심지어 단지 현세의 것들을 믿게 만드는 수단이라는 것입니다. 신자들은 더 이상 비평적으로 생각하지 않게 되고 그들은 자신들의 비판적인 사고력을 상실하게 되고, 이제 그들은 어떻게 돌아가든 체험만을 중시하는 종교 형태 속에 있게 된다고들 말합니다. 저는 런던과 한국과 중국과 미국에서 여러분들의 집회에 직접 가서 본 후, 기도로 말씀을 읽는 것에 대한 위와 같은 비판들은 전혀 사실이 아니라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사실은 여러분에게 있어서 말씀을 기도로 읽는 실행은 사람들을 최면 상태로 들어가게 하는 것과는 아무 상관도 없었고 오히려 정 반대였습니다. ‘기도로 말씀 읽기’는 무엇을 위해 고안된 것입니까?


크리스: ‘말씀을 기도로 읽는 것’(prayreading)은 궁극적으로 하나님의 말씀에 계시된 살아 계신 주님 즉 그리스도의 산 영을 접촉하기 위하여 참되게 나아오는 우리 모두를 돕기 위하여 구상된 것이지, 그분의 말씀 안에 있는 진리로부터 어떤 식으로든 동떨어진 어떤 상태에 들어가게 하기 위한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와의 체험적인 어떤 관계를 갖는 것도 물론 중요하지만, 그러나 그것은 항상 성경과 연관된 체험과 관계이어야 한다는 점도 똑같이 중요합니다.


행크: 마치 명상과도 같군요. 동양의 명상은 목표 지향적이지 않습니다. 그것은 다만 생각을 비웁니다. 그리스도인의 묵상은 하나님의 말씀에 초점을 맞춥니다. 여러분이 하는 ‘기도로 말씀 읽기’도 원칙적으로 같은 것이군요. 즉 그것은 항상 성경과 연관되게 하는 것이군요.


크리스: 네, 그렇습니다. 귀하가 앞에서 언급하셨던 고린도 전서 14장에서 바울이 말한 ‘모든 사람이 신언할수 있다’(all can prophesy)고 한 그 문제로 잠시 되돌아가 보도록 하겠습니다. 글쎄요. 이런 실행은 워치만 니가 초기에 깊이 위임 받았던 것입니다. 그는 이 문제를 보았고, 실행하기를 원했고, 또 실행하려고 시도도 했으나 실패했습니다. 그 당시 중국 내에서의 워치만 니의 사역기간 동안에는 결코 이루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똑같은 이상과 부담이 위트니스 리에게 전달 되었는데 그도 그것을 다시 실행해 보려고 여러 차례 시도했었지만 큰 성공을 거두지는 못했습니다. 그러나 그가 깨닫게 된 것은, 제 생각에 이것이 정말 핵심입니다만, 믿는 이들 개개인이 말씀을 통해 체험가운데 주님과 진정한 접촉을 갖지 않는다면, 일어나서 하나님을 위해 혹 하나님을 향해 말하고자 할 때 다른 사람들에게 그리스도를 생명으로 나누어 줄 수 있는 역량을 가질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들이 그저 일어나서 무언가를 말할 수는 있겠지만, 그것은 실제로는 아무 것도 아닙니다. 참된 공급은 믿는 이들이 지속적이고 규칙적으로 매일 말씀 앞으로 나아오는 실행과 훈련을 통해 나오는 것입니다. 그것은 다만 지적 능력을 사용하거나 공부하는 방식이 아니라 에베소서에서 바울이 말한 것처럼 성령을 통해 계시된 말씀에 따라 그리스도를 체험하는 것을 훈련하도록 기도로 말씀을 읽으며 모든 기도와 함께 말씀을 취하는 것에 중점을 두는 것입니다. 그런 취지로 말씀을 기도로 읽는 실행이 시작되었고 위트니스 리는 이런 실행을 신언을 위한 하나의 도구로 보았던 것뿐입니다. 그것은 우리가 맞서 싸워야 할 것도 아니며 그것때문에 다른 그리스도인들과 분리되어야 할 것도 아니며 그것은 단지 그리스도인의 또 다른 실행일 뿐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믿는 이들을 말씀과 주님께로 연결시켜 주는데 매우 가치 있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다른 사람들이 저런, 저 사람들은 훈련이 안되었군, 자격이 없어 라고 했던 사람들도 바울의 표현을 빌려 말하자면 온전히 장비되고 온전케 되는 길입니다.


행크: 유사한 이야기인데요, 앤드류 씨, 어느 면에서 명상은 성경을 호흡해 들임과 효과적인 기도생활 사이에 연결고리가 빠진 것이지요.


앤드류: 그렇습니다. 귀하가 기도로 말씀 먹기를 고려하실 때, 다만 그것은 글자 그대로 기도이고 또한 말씀 읽기다 라고 보시면 됩니다. 기도하는 것 그리고 기도가 다만 주문을 외우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접촉하는 것임을 반대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기도는 하나님과 살아있는 접촉을 갖는 것입니다. 우리는 성경을 읽는 것도 마치 신문 읽듯이 하지 않고 세워주기 위하여 읽고, 우리의 영이 공급을 받기 위하여 읽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기도로 말씀 읽기를 한다고 말할 때 그것은 지난 2000년 동안 그리스도인들이 실행해 온 것을 하는 것입니다. 사실 우리는 지난 과거에 위대한 성도들과 하나님의 종들이 성경 읽는 것과 기도의 영을 함께 섞는 이러한 실행에 대한 사례들을 열거한 책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것은 성경을 우리의 기도 안에서 하나님과 교제하고 탄원하는 수단으로 사용하는 것입니다. 기도로 말씀을 읽는 것은 아주 뛰어난 방법입니다. 저는 사실 그리스도를 참되게 추구하는 모든 분들에게 매일 이 방법을 실행할 것을 권유하며 추천하고 싶습니다. 제가 성경을 이러한 방법으로 처음 읽기 시작했을 때 말씀이 나에게 매우 살아있게 되었음을 발견했던 것을 기억합니다. 그렇다고 해서 제가 귀하가  말씀하신 것처럼 생각하는 기능이 완전히 뿌리채 뽑혀서 최면 상태에 들어간 것은 아니었습니다. 저는 무엇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완전히 인식하고 있었고 더 나아가서 말씀이 저에게 더욱 살아 있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될 때 저는 사람을 만나거나 교회 집회에 올 때 무언가 할 말이 있게 됩니다. 그것이 바로 어떤 사람들은 하나님을 위해 말하는 것이 매우 어렵다고 느끼거나 하나님에 대해 아무 할 말도 없게 되는 한 이유입니다. 여러분은 뭔가를 흘려 내보내기 전에 먼저 자신 안에 채워 넣어야 합니다. 성경이 엠마오로 가는 길에서 두 제자에게 열렸고 그후 그들이 제자들을 만나게 되었을 때 많은 할 말을 가지게 되었던 것처럼 우리에게도 그렇게 열려야 합니다. 그들이 일단 그들과 집회를 시작했을 때, 그들은 주님이 그들에게 성경을 어떻게 열어 주셨는지에 대하여 자신들의 체험을 신언했습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말씀을 기도로 읽는 것에 대한 우리의 체험입니다. 그것은 참으로 그리스도인이 교회생활 뿐 아니라 각자의 개인 생활 안에서도 진보하게 하는데 매우 건강하고, 세워주며, 영양분이 있는 체험일 것입니다.


행크: 저는 다시 한 번 방향을 바꾸어서 잠시 동안 환태평양 지역의 나라들 안에 있는 교회에 관하여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제가 중국과 한국에 머물렀을 때 느꼈던 것은 서양권에 있는 교회들이 동양권에 있는 교회들로부터 배울 것이 많다는 것입니다. 큰 박해 속에서도 착실히 전진한 교회의 성장은 많은 때 사역의 일에 있어서 몸의 지체들 모두가 참여하는 것이 아니라 목사와 일부 무대 연출자들에게만 전적으로 의존하는 형태인 서양권에 있는 우리들에게 오늘날 무엇인가 말해 줄 것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제가 동양권 교회 안에서 볼 수 있는 지체들 간의 상호 목양과 몸의 사역을 주시해 볼 때, 제 생각으로는, 앤드류 씨, 다음 세대에는 환 태평양 지역의 나라들이 서방 세계로 선교사를 보내게 될 가능성이 높다는 것입니다.


앤드류: 저는 동양권 안에서 교회가 배웠던 것은 무엇이든지 몸 전체에게 축복이 될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제가 생각하기로는 한 30년 전쯤 부터 우리들 안에서 전해 내려오는 말이 있는데요, 그것은 그리스도인의 속 생명은 그의 일상 생활을 그리스도인처럼 살게 하기 위한 것이고, 그리스도인답게 사는 매일의 삶은 곧 교회 생활을 위함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매일의 삶을 위하여 속 생명을 소유해야 하고, 그러한 개개인의 일상 생활은 교회 생활을 위한 것이어야 합니다.  그리고 교회를 세우려고 노력할 때, 우리는 교회가 하나의 조직이 아니고, 위원회와 의장과 그런 것들을 조직함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대신에 그것은 각각의 세포 또는 지체들을 살아 있게 하고, 영 안에 있게 하고, 주님과 하나되게 함으로 이뤄집니다. 그러나 그렇게 되려면 그들은 우리가 말하는 매일 아침 부흥되고 매일 이기는 합당한 생활을 날마다 가져야만 합니다. 매일 아침 그들이 일어날 때, 그들은 주님을 접촉해야 하고 새창조를 살아야 합니다. 그런 다음 그들은 날마다 영 안에서 행하는 것을 배워야 합니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 그들은 끊임없이 원천이신 그리스도 그분 자신께로 돌이켜야 합니다.  그것이 바로 우리가 기도와 기도로 말씀읽기와 주님을 부르는 것과 날마다 영 안에서 행하는 것을 그토록 강조하는 이유이지요. 이것이 우리가 신언할 수 있고, 교회의 모임들과 봉사를 포함한 모든 방면에서 기능을 발휘할 수 있는 기초가 됩니다. 이러한 것이 가능해지면, 거의 대부분이 기능을 발휘하지 않기 때문에 제도를 만들어 내야만 하는 조직화된 종교가 꼭 필요로 하는 많은 외적인 번잡한 절차들은 더 이상 필요가 없게 될 것 입니다. 그리고 이것은 참으로 또 다른 길이라고 말할 수 있는데, 저희는 에베소서 4장에 따라 성도들을 장비시키고 있습니다. 그것은 단지 그들을 신학교나 성경학교로 보내어 소수만을 온전케 하는 식이 아니고, 모든 성도들을 장비시켜 그들 모두가 합당한 그리스도인의 삶, 이기는 삶이 가능하게 되도록 하는 것이지요. 또한 단지 은사방면 만이 아니라 생명의 성장  방면에서도  모든 성도들이 이런 식으로 장비되게 하는 것이 우리의 최우선적인 부담이자  열망이고 도전입니다. 그리고 영적 생명의 성장도 그 영과 분리되거나 격리될 수가 없습니다. 또한 그것은 말씀과도 분리될 수 없지요. 이 두 가지는 그리스도인 생활의 기초입니다. 따라서 이것이 우리가 느끼기에 귀하와 제가 이야기하고 있는 교회생활의 전체적인 강조점이자 요점입니다.


행크: 앤드류 씨, 청취자들이 중국의 정세를 이해할 수 있도록 좀 도와 주시지요. 중국 내에서 등록된 교회와 지하교회의 차이점은 무엇이며, 오늘날 그러한 호칭이 적절한 것인지요? 


앤드류: 역사적으로 볼 때, 거기에는 큰 차이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정부 당국은 공인된 교회만을 인정하였었고, 공인되지 않은 교회는 자동적으로 불법이 되어 박해를 받았습니다. 지금도 조직이나 그 이름에 있어서 여전히 차이가 있습니다. 하지만 실제적인 차이점들은 갈수록 점점 흐려지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제가 생각하기로 중국 정부는 모든 종류의 종교적 활동을 허락하는 방향으로 점점 온건한 태도를 보이고 있습니다. 그래도 거기에는여전히 차이가 있습니다. 여러분은 ‘이 교회는 삼자교회로서 정부 당국에 등록된 교회이다’ 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사실상 등록되지 않은 교회 중 일부는 등록된 교회들처럼 자유롭게 활동하기도 합니다. 그리고 등록된 교회들 중 일부는 등록되지 않는 교회들의 경험을 빌려다가 활용하기도 합니다. 정부 당국도 특별한 정치적인 간섭없이 양측 모두가 자신들의 믿음의 방향대로 추구하도록 허락해 왔습니다.


행크: 제가 중국에 갔을 때 주목했던 것 중 하나는 현재 중국에서는 믿을 수 없을 만큼 도시화가 진행되고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중국에 한 번도 가 본 적이 없는 많은 사람들은 오늘날 중국이 실제로 어떠한지 거의 알지 못합니다. 예를 들면 여러분이 상하이에 가면 오천 개의 고층 빌딩을 볼 수 있습니다. 이와 대조적으로 뉴욕은 사백 개 정도의 고층 빌딩이 있습니다. 상하이는 마치 스테로이드를 먹은 뉴욕처럼 보입니다.


크리스: 예, 저도 행크 씨가 정확하게 보셨다고 생각합니다. 중국이 무엇을 하려고 노력해왔는지 그 일면을 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이해한 바로는 중국은 올림픽 경기를 계기로 외부 세계에 중국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를 보다 정확한 그림으로 제시하려는 것 같습니다. 물론 행크씨도 아시다시피 중국 내에서도 우리가 방문했던 도시들은 매우 도시화된 동부 연안에 위치했습니다만, 중국 내륙 지방은 매우 낙후된 농촌 지역이며, 상하이와 북경, 그리고 몇몇 거대하게 현대화된 도시들에서 우리가 본 것과는 커다란 격차가 존재합니다. 현대화된 도시들은 마치 다른 별에 있는 도시같습니다. 상하이는 많은 면에서 너무나 현대화되어 있을 뿐 아니라 거의 미래 도시화 되고 있어서 여러분을 깜짝 놀라게 합니다. 그러나 중국 자체적으로는 연안 지역의 도시화와 최근 지진으로 여러분이 알게 되었듯이 많은 내륙 지방에서는 여전히 가난과 저개발된 상태가 존재함으로 이러한 양 극단을 어떻게 조화시킬 것인가 하는 엄청난 도전에 직면해 있습니다. 한 면에서 접근하기 어려운 농촌 지역이 있으며, 거기에서 인류 역사상 유례가 없는 빠른 속도로 믿기 어려운 변화들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또한 그들은 그러한 변화를 따라잡기 위해 고심하고 있으며, 심지어 중국 사람들 안에서도 내적인 변화가 일어나고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이런 점이 기독교계의 지대한 관심을 불러 일으키고 있습니다. 제 생각으로는 이것은 ‘이보 전진을 위한 일보 후퇴’인 것같습니다. 왜냐하면 여전히 어렵고 다루기 어려운 상황이 있으며, 많은 지역에서 지금도 여전히 사람들이 체포되는 사례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전반적으로 볼 때, 중국은 변하고 있다 라고 말하는 것이 맞을 것입니다. 그리고 제가 보기에 비록 드러나는 방식은 완전히 다르지만, 그것은 우리가 1990년에 보았던 (구)소련에서 일어난 변화와 같은 종류의 변화입니다. 이러한 변화들이 매우 빠르고 예상할 수 없게 일어나고 있기 때문에 우리는 이러한 변화 뒤에 계신 하나님의 손길을 인식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저는 분명 중국에서 일하고 계시는 주님의 손길을 인식해야만 한다고 생각합니다. 얼마나 빨리 중국의 문이 열릴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물론 우리는 모르더라도 누군가는 알지도 모르지만, 그러한 일이 일어나고 있다는 것입니다.


행크: 많은 서양의 그리스도인들이 이해하지 못하는 흥미로운 것 중 하나는 중국 정부가 왜 그렇게 기독교계를 의심스러운 눈으로 보기 시작했느냐 하는 것입니다. 일례로 시간을 거슬러 아편 전쟁을 이야기해 볼까요. 


앤드류: 아편 전쟁은 중국인들에게는 커다란 고통이었습니다. 그것은 19세기 내내 서양이 어떻게 중국을 침략하여 식민지화 하고 아편 전쟁을 통해 중국에서 이득을 취했는지를 말해줍니다. 아편 전쟁은 중국에 깊은 상처를 남겼습니다. 그리고 불행하게도 선교 활동이 그러한 제국주의적 기업활동과 복잡하게 뒤섞이는 바람에, 20세기 초에 중국에서 일어난 젊은 공산주의자들은 서양에서 들어온 것은 제국주의의 도구라고 생각했고, 그들은 서양에서 들어오는 것은 무엇이든지 증오하는 국수주의자가 되었습니다. 여러분이 이러한 점을 이해한다면, 외국 것에 의해 중국이 침해 당하는 것에 대한 그들의 두려움을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최근에 할리우드와 자본주의가 중국을 침식하는 것을 보면, 전 세계는 다만 하나의 지구촌이라고 생각하는 실용적인 관점도 있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점점 더 그런 두려움은 그다지 크지 않게 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저는 중국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그리고 앞으로 어떤 일들이 일어날 것인지에 대한 두려움도 있다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제 생각에 저는 지금 저의 한계를 조금 넘어서서 말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제 관심은 사실 교회에게 있고 경제에 대한 관심은 그다지 많지 않습니다. 그러나 중국 경제는 성장하고 있으며, 그것도 매우 빠르게 성장하고 있기 때문에, 그럴 경우 중국이 세계의 강대국의 하나로서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에 직면하게 됩니다. 그리고 경제와 종교와 믿음 이 모든 것이 함께 갑니다. 그러한 측면에서 저는 다소 낙관적으로 전망합니다. 물론 저는 하나님께서 모든 것의 통치자이시라는 것을 알기 때문에 궁극적으로는 낙관주의자입니다.


행크: 제가 중국에서 가졌던 귀한 체험들 중 하나는 중국인 그리스도인들에게 성경 구절을 인용했을 때 하나님의 말씀이 주시는 음성에 그들의 눈이 밝아지는 것을 볼 기회가 있었다는 것입니다.


앤드류: 그렇습니다. 사람들이 물질적 풍요를 누리지 못하게 될 때 그런 환경이 오히려 영적인 진리에 대한 사랑을 강화시킬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이런 저런 성경 구절들을 인용하는 행크씨를 보았을 때,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 안에 조성되어 있어서 그처럼 하나님 말씀이 사람의 입을 통해 흘러 나올 수 있다는 것에 대하며 정말 기뻐했었지요. 그리고 우리도 그런 모습에 정말 감동되었었습니다. 행크씨께서도 약자표기 쓰시는 것을 아주 좋아하시는 것으로 압니다만, 아시다시피 우리에게는 약어표기가 있는데, 우리는 그것을 ‘피에스알피(PSRP)’라고 부릅니다. 그것은 말씀을 대하는 우리의 태도를 간결하게 정리해 표현한 것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P는 ‘기도로 말씀을 읽기(Prayreading)’를, S는 ‘말씀 추구(Studying)’를, R은 ‘말씀 암송(Reciting)’을 그리고 P는 ‘신언(申言)하기(Prophesying)’를 가리킵니다. 다시 말하면, ‘피에스알피’(PSRP)는 음식을 섭취하는 전 과정과 같습니다. 즉 처음에 우리는 우선 음식을 잘 씹어 삼키고, 다음에는 그것을 우리 안에서 섭취되고 동화되게 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먼저 말씀을 기도로 읽음으로 그것이 우리 영 안에 들어가게 하고, 그후 그 말씀들을 연구함으로 그것이 우리의 생각과 이성의 영역 안으로 들어가게 하고, 그 다음에 그렇게 이해된 말씀들을 암기해서 우리 기억 속에 남아 있게 하고, 최종적으로는 그렇게 내면화 된  말씀들을 신언(申言)으로 말해 내는 것입니다. 우리가 그것을 말해 내고 우리의 말로 표현함이 없이는 그것은 참된 우리 것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모든 실행과 집회에서 우리는 성도들에게 ‘피에스알피’를 하도록 격려하고 강조합니다. 저는 행크씨도 다른 사람이 말씀 암송하는 것을 잘 도와 주시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만, 우리가 바라는 것은 성도들이 그런 실행 안으로 뛰어드는 것입니다.


행크: 우리가 지방 교회 또는 주의 회복에 관해 이야기할 때 부득불 워치만 니와 위트니스 리의 책들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는데요. 제 생각엔, 아마 많은 사람들이 품고 있는 의문들 중 하나는 위트니스 리의 글들이 오늘날 각지 지방 교회에서 과연 어떤 역할을 하는가 하는 점이 아닐까 싶습니다.


앤드류: 우리는 워치만 니 형제님과 위트니스 리 형제님의 책들을 읽습니다만, 또한 다른 그리스도인들의 책들도 읽습니다. 우리는 워치만 니 형제님의 사역을 사랑하고 또한 위트니스 리 형제님의 사역을 사랑하며, 저는 제가 그분들의 제자이고 그분들께 많은 것을 배웠다는 것을 숨기지 않습니다. 그렇게 말함에 있어서 그들은 어떤 면에서 배타적이지 않으며, 우리는 우리들 중 누가 어떤 다른 사람들의 책을 읽는 것을 막지 않습니다. 제 생각에 언젠가 우리가 레스토랑에 있었을 때 제가 이 점을 그레첸 여사에게 설명드린 적이 있습니다. 그 때 제가 이렇게 말했습니다. 저는 위트니스 리 형제님을 정말 존경하는데, 왜냐하면 그 분이 저의 스승이었고 성경 진리를 제게 열어 보여 주셨습니다. 이것은 사람들이 자신들의 단체에 있는 그들의 스승을 존경하는 것과 같습니다. 그러나 저는 결단코 그리스도의 머리되심을 그런 것으로 대치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그리스도는 영원토록 우리의 스승이시고 그분은 영원토록 우리가 있게 된 우리의 근원이십니다. 심지어 우리가 아주 존경하는 워치만 니 형제님과 위트니스 리 형제님 조차도 우리 마음 속에 내주하시며 우리 마음을 주재하시는 그리스도와는 결코 비교될 수 없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저는 다른 사람들에게 제가 위트니스 리 형제님을 따른다고 말함에 있어서 어떠한 문제도 없다고 말했습니다.


행크: 물론 그리스도를 자신이 추종하는 사람과 대체시키는 것은 이단들이 하는 행태의 일종이지요. 제 말씀은, 가령 몰몬교 같은 이단이라면 불가피하게 조셉 스미스(Joseph Smith) 란 교주를 예수 그리스도 대신으로 우상화하게 된다는 겁니다.


앤드류: 정말 그렇습니다.


행크: 심지어 그들은 조셉 스미스가 (장차 올) 심판에도 관여할 것으로 이야기 합니다.
 

앤드류: 맞습니다.


행크: 이것은 귀하가 주의 회복 운동의 태동기에 관련되었던 사람들과 함께 가졌던 지위는 아닙니다. 우리가 주의 회복에 대해 말할 때 그것은 서방 기독교계 다수에게 특히 사이비 종교를 연구하는 사람들에게 일종의 경계심을 갖게 하는데, 왜냐하면 여러분이 주의 회복을 이야기할 때 그것이 다른 사람들의 생각에  ‘교회는 지구 상의 믿음 위에서 존재하기를 그쳤다, 그래서 교회를 개혁하는 문제가 아니라 더 이상 존재하기를 그쳤던 교회를 회복하는 문제이다’ 라고 조셉스미스가 말한 것과 같은 것인듯 한 인상을 갖게 합니다. 여러분이 주의 회복 운동에 대해서 말할 때, 여러분이 잃어버렸던 진리들을 회복하고 있다는 그런 어떤 것을 말하는 것으로 인해 사람들의 생각 속에 그늘을 갖게 하는 면이 있습니다.


크리스: 제 생각에 이 내용은 중요한 문제입니다. 우리가 귀하와 CRI의 다른 분들과 모임을 갖게된 계기들 중에 하나는 여러분들의 이야기 안에 뛰어 들어 그것을 풀어 가고자 하는 의지와 열정이었습니다.


행크: 이야기를 풀어보자는 것이지요.


크리스: 예 맞습니다. 귀하가 이미 조셉 스미스를 그 전형적인 예로 제시하신 것처럼, 우리가 의미하는 것이나 의미하지 않는 것들이 잘못 이해되거나 해석될 수 있는 위험을 늘 갖고 있다는 것을 우리도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이해로는, 우리가 이 단어를 사용할 때 그것은 주의 회복이 1922년 워치만 니에 의해 비로소 시작되었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주의 회복이라는 말의 정확한 의미는 사실 약간 모호합니다. 우리가 알기로는 교회 역사에서 모든 진리들이 암흑시대를 거치는 동안, 교황 제도나 기타의 것들의 남용으로 인해 희미하게 되었다는 것이며, 이런 상태가 결국 마르틴 루터가 근본진리인 이신칭의의 기본적이고 중요한 이해를 회복하기 위해 일으켜질 때까지 계속되었다는 것입니다. 


행크: 비록 교회의 존재 자체가 중단된 것은 아니라는 말이지요.


크리스: 당연히 교회가 존재를 중단하게 된 적은 없습니다. 그러나 성경의 빛은 암흑시대를 거치면서 크게 흐려졌고, 하나님은 분명하고 특별하게 회복의 일을 시작 하셨습니다. 귀하가 그 때가 시작이라고 말하든지 혹은 그 사람 이전이라고 말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여기서 중점은 모든 성경의 빛은 회복되어야 한다는 것이고, 또한 그러한 빛의 회복은 계속되고 있고 계속되는 과정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성경 자체에 진보가 있다는 의미가 아니라 진리에 대한 우리의 이해와 판단에 있어서 그렇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주의 회복은 특정한 그룹이나 특정한 주의 종에 의해 시작되거나 종결되는 것이 아니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우리가 말해야 하는 것은 주님은 지난 500년 동안 중요한 항목들을 조금씩 회복하셨는데, 귀하도 아시는 것처럼 그것은 그분의 모든 백성의 진리, 실행, 이해, 빛비춤들입니다. 우리가 믿기로는 우리는 우리 앞에서 이 길을 갔던 모든 사람들의 어깨 위에 서 있다는 것이고, 우리 가운데 진정으로 회복된 참된 그 모든 것들에 관해서 다른 사람들이 우리의 어깨 위에 서서 우리보다 더 전진하기를 소망하며 기대한다는 것입니다.


앤드류: 저는 거기에 한 가지를 덧붙이고 싶습니다. 우리는 풀러신학교 분들과 대화했고 그중에 재침례교 배경을 가진 하워드 로웬(Howard Loewen)박사는 자신은 우리가 무엇을 말하는지를 잘 이해할 수 있었다고 말했습니다. 개신교 역사에 있어서 교회 역사 속에서 한 때 잃어버렸던 진리의 어떤 방면들을 자신들이 회복하고 있다고 믿고 있는 단체들이 있습니다. 재침례교와 형제회도 물론 거기에 포함됩니다. 물론 워치만 니도 수 많은 형제회의 책들을 읽었는데, 그는 형제회가 교회 전체가 하락의 상태에 떨어졌고 그러므로 그런 상태에서 하나님의 권익을 위하여 서 있는 사람들이 필요하게 되었다고 믿고 있는 것을 알았습니다. 워치만 니의 가르침들 중 일부는 그 안에 포함된 그런 메시지들이 담겨있습니다.  크리스 형제님이 말했던 것에 조금 덧붙이자면, 우리는 매 시대마다 하나님은 마치 한 흐름이나 하나의 강처럼 그분의 소유하고 계신 것 위에 끊임없이 건축하고 계시고 또한 잃어버렸던 것들을 회복하고 계신다고 믿습니다. 또한 ‘우리가 주의 회복이다’ 라고 말할 때 그것은, 마치 우리가 교회다 라고 했을 때 그것이 우리가 그 유일한 교회다 라고 말하는 것이 아닌 것과 같습니다. 즉 우리가 주의 회복이다 라고 말할 때 그것은 우리가 회복되고 있는 유일한 것이다 라고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행크: 그러니까 귀하는 역사적 교회가 존재하기를 그쳤다가 1922년에 재차 존재하게 되었다고 말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는 뜻인가요?


앤드류: 예. 그런 뜻이 아닙니다.


행크: 귀하는 여러분들만 회복의 과정에 독점적으로 연관되었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교회는 항상 참된 신약 교회로 되 돌아가고자 한다는 점을 말씀하고 계신 것인가요?


앤드류: 맞습니다. 제 말은 우리가 그러한 흐름의 일부라는 것, 즉 우리가 늘 움직이고 계시는 하나님을 의미하는 그런 흐름의 일부라는 것입니다.


행크: 또한 여러분은 그리스도의 몸 안의 다른 표현들 안에 있는 형제 자매들을 보고 계십니다. 즉 감리교단 내에도 참된 믿는 이들이 있고, 로마 천주교 내에도 예수님을 유일한 길로 믿는 참된 믿는 이들을 볼 수 있습니다.


앤드류: 그렇습니다. 그것도 하나님이 회복하시는 것 중 일부입니다. 귀하도 아시듯이, 그리스도의 몸에 적극적으로 공헌하는 것이면 그것이 무엇이든 주님의 회복의 일부입니다.


행크: 그러니까 귀하는 여러분 자신들만 교회라고 배타적으로 보는 것은 아니지요? 다시 말해 귀하는 여러분 자신들만 기독교의 유일한 표현이라고 보지는 않는 것이지요? 여러분은 그리스도의 몸의 더 넓은 부분을 보고, 또한 그러한 더 큰 몸과도 교제하고 교류하기를 바라는 것인가요?


앤드류: 그렇습니다.


크리스: 제가 듣기로 행크씨, 귀하가 어느 날 방송 중에 귀하의 프로그램을 듣고 누군가가 전화로 우리에 대하여 질문했고 분명히 그들은 귀하가 한 말을 들었던 것으로 보입니다만 그들은 CRI가 입장을 바꾸었고, 대화가 진행되고 있다는 것을 듣고 귀하에게 질문을 했고, 제 기억으로는 귀하가 교회에 관한 바로 이 주제에 대하여 우리 동료 중 한 분으로부터 우리의 대화 중에 들었던 어떤 부분을 인용하셨는데요, 그것은 간단히 말해서 우리는 우리가 ‘그 유일한 교회’(the only Church) 라고 말하지 않는다, 대신에 우리는 ‘다만 교회다’(only the Church)라고 말한 것입니다.


행크:  둘 사이에에는 현저한 차이가 있지요.


크리스: 거기에는 큰 차이가 있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참되게(genuine), 그리스도에게서 난 그 어떤 사람도 배제시키지 않습니다.


행크: 그리고 거듭말하건대, 참되게(genuine)라는 말은 본질적인 교리에 해당되는 것을 붙드는 사람들을 의미합니다.


크리스: 그렇습니다. 본질적인 그리스도인의 교리, 참되게(Genuine)라는 말은 그들이 우리 (지방 교회)와 함께 모이거나 우리에게 동의하는 것을 가리키지 않습니다.


행크: 우리는 본질적인 것들에 있어서는 통일성을, 비 본질적인 것들에는 자유를, 모든 것에 사랑을 이라는 금언으로 마무리 할 수 있겠지요.


크리스: 사랑입니다.


행크: 크리스씨, 저는 지방교회 운동이 신약 기독교계의 진정한 표현이라고 굳게 믿기때문에 여러분을 지지함으로 다소 곤란한 입장에 놓이게 되었습니다. 제가 지방교회 운동 내에서 만났던 여러분들의 아내들과 그 밖의 사람들처럼 여러분들도 주님 안에 참된 형제들이라고 저는 확신 합니다. 저는 우리가 지방교회 운동이 단지 사회학적으로나 교리적으로나 결코 이단이 아니라고 말하는 것만이 아니라 더 나아가 극심한 박해의 용광로 속에 있는 이 운동이 서방 기독교계에게 기여할 어떤 것을 가지고 있다 라고 말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믿고 있기 때문에 다소 어려움에 처해 있습니다.


크리스: 아시겠지만 행크씨, 귀하의 말이 맞습니다. 귀하는 분명한 입장을 이미 취하셨고 그로 인해 다소 곤란한 상태에 있어 왔습니다. 우리가 방송 서두에서 말했던 그레첸 여사도 그러 하십니다. 홍콩에서 한 성경 심포지엄이 있었는데, 그레첸 여사가 대부분의 청중들이 신학자들, 신학교 교수들, 강사들, 홍콩에 있는 개신교 전체 교단 대표들로 이뤄진 수백명 앞에 서서 그 이야기를 인정했습니다. 제 말은 그들(부부)이 그런 일에 관련이 있었고 지방교회측을 비난했던 그런 과거의 일들은 잘못된 것이었음을 인정했다는 것입니다. 귀하와 그레첸 여사 그리고 우리가 지난 수년 동안 만났던 다른 많은 분들이 하신 그런 지지하는 유형의 말들은 이것이 반드시 해야 할 바른 것이었음을 확증해 주었습니다. 그리고 어느 정도는 제가 지난 수년동안 관련되어 해 왔던 많은 일들, 즉 사람들을 찾아가 말하고, 그들의 말을 듣고, 우리는 우리의 신앙들을 바꾸지 않았다, 우리는 우리의 실행들도 바꾼 적이 없다, 우리가 바꾼 것은 다른 믿는 이들이 우리를 정확하게 이해하도록 돕고자 하려는 우리의 자발적인 태도였다 등을 설명한 것이었습니다. 또한 여러분들이 우리를 비판하고 정죄하려면, 최소한 이미 만들어진 고정관념보다는 우리가 참으로 어떤 사람들인지 좀 더 알아보라고 말해 왔습니다. 그것은 하나의 도전이고 쉽지 않은 일이지만 귀하와 또 CRI 측 몇 분 그리고 그레첸(Gretchen)여사와 그 밖에 많은 분들이 우리에게 보였던 그러한 긍정적인 반응은 이것이 주님의 지혜였다는 것을 참으로 확신케 했습니다. 이제는 우리가 보다 더 큰 기독교 커뮤니티들이 좀 더 낫고 합당한 이해를 갖도록 노력해야 할 때입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단지 우리 자신들 만을 위하지 않고 모든 이들이 유익을 얻을 수 있게 되도록 주님이 우리에게 주신 요소들과 항목들이 우리에게 있다고 확신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제 생각으로는 기도로 말씀 읽기에 대하여 앤드류 형제님이 설명하고 간증한 것이 하나의 좋은 예입니다. 제 말은, 우리는 오늘 우리가 실행하는 것 자체를 광고하자고 여기에 있는 것이 아니라, 전체 몸에게 기여할 뭔가를 우리가 가지고 있다고 느낀다는 것입니다. 물론 우리는 우리 자신 또한 배워야 할 것이 많다는 것을 이해하고 또 깨닫고 있습니다.


저는 우리의 교회론, 우리의 교회관련 실행, 우리가 어떻게 교회를 보고 있는지, 그것에 대한 우리의 이해와 가르침은 어떤지 등을 대화하기를 원했었습니다. 저 혼자 말이고 그 밖에 다른 분들에게 감히 말하고 싶지는 않지만, 우리는 그것이 하나님이 그분의 모든 백성들을 위하여 가지고 계신 성경적이고 참된 진리라고 믿고 있지만, 우리가 우리 마음 안에서 또 실제 행동 안에서 그런 우리가 믿는 수준에까지 미치치 못할 때, 그 때는 우리도 비평하는 사람과 마찬가지로 정죄를 받습니다. 그런 일이 있게 될 때, 우리는 날마다 우리가 지은 죄들에 대하여 그렇게 하듯이 그것을 시인하고, 자백하고, 용서를 구한 다음 계속 전진합니다.


행크: 앤드류 형제님, 방금 크리스 형제님이 말씀해 주신 것은 여러분의 운동이 상당한 의미가 있는 것이긴 하지만 완전한 것은 아니라는 뜻인가요?


앤드류: 예, 완전한 것이라 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행크 씨, 우리는 우리가 그리스도의 몸 전체에 무언가 기여한 것이 있다고 느낍니다. 그리고 그것을 함께 나누고 싶습니다. 아시겠지만 그것은 다음과 같습니다. 우리는 항상 우리의 이상이 그리스도와 교회라고 말해 왔습니다. 하지만 우리의 원함은 그리스도가 믿는 이들의 일상 생활에서 적용되는 분이 되게 하는 것입니다. 또 교회가 실제적으로 살아 계신 하나님의 교회가 되게 하는 것입니다. 아시겠지만 마르틴 루터는 모든 믿는 이들의 보편적 제사장 직분이 회복될 필요가 있다고 말했습니다. 우리가 실행하고 있는 것이 바로 그것입니다. 곧 모든 믿는 이들의 보편적 제사장 직분이 교회 모임에서 실행되게 하는 것이죠. 저는 성경은 절대적으로 바뀔 수 없다고 믿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교회 생활을 실행하는 방식은 바뀔 수 있습니다. 모든 가능성이 열려 있습니다. 중국이나 아프리카를 방문해보면 그곳 성도들이 실행하는 교회생활이 우리가 여기서 갖는 것과는 아주 큰 차이가 있음을 보게 됩니다. 그들은 심지어 교회당 건물도 없고 강대상도 없을 수 있습니다. 특별한 예배 프로그램이 없을 수도 있습니다. 실제 그렇습니다. 하지만 그 교회는 바울이 세웠던 교회와 다를 바 없는 하나님의 교회입니다. 우리는 바로 그것을 관심합니다. 그런 관점으로 보면 그들에게서도 무엇인가 배울 것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중국이나 다른 나라를 방문할 때마다 하나님께서 그곳 상황에 맞게 하신 일을 보고 배우고자 하는 마음으로 갑니다. 그것을 위해 먼저 주님께 그리스도인의 기본 미덕인 겸손을 제게 더하시기를 구합니다. 곧 제가 마음을 열고 하나님께서 그리스도의 몸의 다른 부분에서 하신 일을 그분께서 그리스도의 몸 전체에 하신 일로 받을 수 있기를 구하는 것입니다.


우리 가운데 기도로 말씀을 읽는 실행과 주님을 부르는 실행과 모든 성도들이 집회에서 신언하는 실행과 모든 성도들이 나가서 사람들을 방문하는 실행이 있습니다. 방금 네 가지 실행을 말했는데 또 다른 네 가지 실행이 있습니다. 곧 ‘복음을 전파하는 것’과 ‘믿는 이들을 양육하는 것’과 ‘믿는 이들을 가르치는 것’과 ‘그들을 건축하는 것’(세우는 것)입니다. 사실 방금 말씀드린 네 가지 실행은 믿는 이들을 장비하는 네 가지 단계라 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이 네 가지 실행이 특정한 단체만이 아닌 모든 믿는 이들이 수행해야 할 실행이라고 믿습니다. 교회 역사를 살펴볼 때 복음 전하는 실행을 복음 전파자만의 일로 여기는 경향이 있었습니다. 사실 그렇습니다. 복음 전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 모두가 복음 전도자의 일을 해야합니다. 성도들을 온전케 하고 가르치는 일도 마찬가지입니다. 귀하도 아시겠지만 가르칠 수 있는 사람이 단지 한 두 명인 것은 정상이 아닙니다. 우리는 모든 이들이 가르칠 수 있기를 바랍니다. 하지만 그것은 상당한 댓가를 드려야 함을 의미합니다. 넘어야 할 장벽이 상당함을 의미합니다. 그렇지만 그게 바로 우리의 목표입니다. 이런 맥락에서 저는 우리가 결코 완전하지 않다는 크리스 형제님의 말씀에 동의하는 것입니다.


우리 중 어느 누구도 우리가 완전하다고 주장하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는 모두 다만 아시아의 일곱 교회들에게 주신 말씀에서 보듯이 이기는 이들이 되고자 수고할 따름입니다. 곧 우리 자신을 비롯해 우리 주변의 모든 하락을 이기는 것이죠. 매일 자신을 이기고 그럼으로써 흠 없고 티 없는 그리스도의 완전한 신부가 될수 있도록 노력하는 것입니다. 저는 이런 이상과 갈망을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공통적으로 소유하고 있다고 믿습니다. 그런 맥락에서 보면 우리는 차이가 없는 셈이죠. 저는 이런 교제가 더 지속되어 주님께서 우리에게 보여주신 모든 것들이 그리스도의 몸이 공동으로 누리는 자산이 되기를 고대합니다.


행크: 제가 마음에서부터 참되게 말씀 드릴 수 있는 한 가지가 있습니다. 곧 저의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성장은 상당부분 두분 형제님들과의 교제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삶에서 제가 지속적으로 발견할 수 있었던 한가지 특징은 겸손이었습니다. 우리 모두가 본 받아야 할 미덕이지요. 참으로 여러분과 여러분의 사역과 여러분이 기여한 것이 귀하게 여겨집니다. 이제 귀하가 기여할 수 있는 또 한 가지가 있는데 그것은 기도로서 이 프로그램을 마치는 것입니다.


앤드류: 예. 감사합니다. 이 말씀을 듣는 모든 분께 은혜와 사랑이 가득하길 바랍니다. 주여, 이 말씀이 치유의 말씀이 되게 하소서. 잘못 이해한 어떤 것이 있다면 그것을 불식시키는 말씀이 되게 하소서. 당신의 모든 자녀들에게 격려가 되게 하소서. 당신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행크: 아멘. “바이블 앤서 맨(Bible Answer Man)” 프로그램에 참석하여 귀중한 시간을 함께 해 주신 크리스 와일드와 앤드류 유 두 분께 다시 감사를 드립니다. 지방 교회에 관련된 방송은 이곳 http://equip.org 에서 적어도 다시 한번 방영할 예정입니다.


사회자: 지방 교회에 관련한 특집 방송에 참여해 주신 여러분께 감사합니다. 지금까지의 대화는 행크 씨께서 지방 교회 인도자들인 앤드류 유 씨와 크리스 와일드 씨와 함께 한 “바이블 앤서 맨(Bible Answer Man)” 이 방영된 후 녹음된 것이었습니다(끝).

 


- 라디오 방송 저작권 관련 -

© Copyright 2008, Oneplace.com. All rights reserved

© Copyright 2008, equip.org. All rights reserved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kakao talk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