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교회 변증자료를 나누기 위한 게시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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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방 교회들에 대한 이인규님의 거짓말(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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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방 교회들에 대한 이인규님의 거짓말(7)

 


지방교회의 구원론(이인규님의 원글 제목)


성경이 말하는 구원은 여러 방면들을 포함한 용어입니다. 우선 사람의 외부에서 이뤄지는 구원의 방면으로서, 1) 구속 곧 죄사함(엡1:7)과 2) 홍해를 건넘으로 애굽에서 나오는 것의 실재인 침례를 통한, “어그러진 세대(세상)로부터의 구원”(행2:40) 받는 방면이 있습니다. 또한 사람의 내부에서 이루어지는 구원의 세 방면인 3) 사람의 영의 거듭남의 구원(요3:6), 4) 사람의 혼의 변화로 인한 구원(롬12:2, 벧전1:9), 5) 사람의 몸의 변형을 말하는 몸의 구속(롬8:23)이 있습니다. 이처럼 구원의 방면이 다양하고 시점도 다름으로 성경은 구원을 말할 때 과거시제(엡2:8), 현재 혹은 현재 진행형(빌2:12), 그리고 미래시제로 표현되기도 합니다(롬13:11, 엡4:30).


이러한 구원의 방면들과는 조금 다른 각도에서 성경은 또한 믿는 이들이 단체적으로 그리스도의 몸으로 건축되는 방면을 말합니다(마16:18, 엡2:21-22). 이것은 한 몸의 지체들이 생명의 성숙을 통하여 주님의 몸 혹은 하나님의 거처로 지어져가는 것을 가리킵니다.


이 두 방면들(구원, 건축)은 다 전적으로 성경이 말하는 내용들입니다. 그럼에도 이인규님은 이런 것을 성경대로 가르치는 지방 교회측을 ‘단체구원을 주장하니 구원론에 있어서 이단이다’는 등 터무니없는 거짓말을 여기 저기 유포하고 있습니다. 아래 지방 교회측의 해명은 이인규님의 구원론이 얼마나 편협하고, 교리적이며, 심지어 비성경적인지를 폭로해 줄 것입니다.

 


(이인규님) ”혹간 어떤 사람들은 워치만 니의 책을 읽고 은혜를 받았다고 하며, 그가 이단이냐고 묻는다. 지방교회를 조금 안다고 하는 어떤 사람들은 지방교회는 신론과 인간론만이 조금 다르다고 이야기하는 경우도 있다. 또 S 출판사에서는 워치만 니의 책을 발행하고 있다.


그러나 지방교회는 신론과 인간론과 함께 구원론도 기독교의 것이 아니며, 종말론, 교회론, 천국관, 재림관, 성경관도 전혀 다르다. 그들은 위트니스 리의 고백과 같이 기독교가 아닌 것이다. 앞에서 지방교회의 신론과 인간론, 신일합일에 대한 주장과 함께 그들의 비성경적인 해석도 살펴 보았다. 이제 지방교회의 구원론에 대해서 위트니스 리와 워치만 니의 책을 인용하며 살펴보자.


지방교회가 말하는 구원의 정의:


1) 단체구원: 지방교회는 단체구원을 주장한다. 그들에게 있어서 구원의 조건은 믿음이 아니기 때문이다.”


근거없는 거짓말입니다.


이인규님이 인용 소개한 위트니스 리 형제님 1차 본문에 대한 간략한 평가


# '한 사람을 하나님의 구원의 단위로 생각한다' 이런 종류의 생각은 하나님의 경륜, 하나님의 계획에 반대된다. 하나님이 정하신 길은 개인들만이 아니라, 가정을 얻는 것이다. 하나님은 구약에서도 그 분의 구원의 단위를 계시하셨다. 하나님은 홍수로부터 단지 노아와 그의 아내만 구원하지 않으셨다. 그분은 또한 그들의 아들들과 며느리들을 구원하셨다. (위트니스 리, 하나님이 정하신 길의 훈련과 실행, 94쪽)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며 너와 네 집이 구원을 얻으리라”(행16:31)는 말씀을 설명한 것입니다. 이처럼 성경에서 온 가족이 구원받는 경우는 이외에도 노아의 가족(창7:1), 유월절에 동참한 가족들(출12:3-4), 창녀 라합의 가족(수2:18-19), 삭개오의 가족(눅19:9), 고넬료의 가족(행11:14), 루디아의 가족(행16:15), 그리스보의 가족(행18:8) 등이 있습니다. 성경 그대로 믿으면 ‘단체구원’ 이단이 된다는 말은 터무니없는 주장일 뿐입니다.


# 영생을 얻는 것은 개인적인 문제이지만, 구원을 얻는 것은 개인적인 문제에 과거 내가 속했던 무리의 문제가 추가된 것이다. (워치만 니, 그리스도인의 50 필수과정1. 1989, 10쪽)


위 내용에서 “과거 내가 속했던 무리”라는 말은 불신자 시절에 함께 했던 세상을 가리킵니다. 우리는 침례를 통해 옛사람을 장사지냄으로(롬6:6, 4) 세상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 하나님이 얻고자 하는 것은 개인이 아니다. 그것은 하나의 과정이지 목적이 아니다. 하나님은 단체적인 것을 원하신다. 하나님의 목적은 하나의 나라요, 하나의 민족이요, 하나의 단체이다. (구약의 예표와 신약의 계시에서 본 하나님의 경륜, 32쪽)


# 한 단체를 얻고자 하신다. 삼일 하나님 그분 자신을 이스라엘 백성들 안으로 역사하게 하시어 그들을 한 무리가 되게 하고, 단체로 하여금 하나님의 거처, 하나님의 집이 되게 하시는 것이다. 신약에 와서 이것을 매우 분명히 볼 수 있다. 이는 곧 성도 개인의 신령함이 아니라 온 교회들이 하나님께 얻은 바 되고 거처가 되는 것이다. 이것이 곧 하나님의 성전이 될 것이다. (구약의 예표와 신약의 계시에서 본 하나님의 경륜, 33쪽)


우리의 구원은 많은 구성원들로 이뤄진 그리스도의 몸의 건축을 위한 것이라는 말입니다. 주님께서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겠다”(마16:18)고 하신 바로 그 교회 건축을 말한 것을, <단체 구원>을 주장하는 이단이라는 식으로 비판하는 것은 몰상식한 것입니다.

 


(이인규님) ”(2) 지방교회는 세상에서 구출되는 것이 구원이라고 한다. 그들은 이 세상에서 구출되는 것이 구원이라고 말한다.


# 성경에서 주의하는 구원은 지옥에서 구출되는 것이 아니라, 세상에서 구출되는 것이다. 왜냐하면 세상이라는 이 단체는 하나님 앞에서 정죄된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스도인의 50 필수과정, 11쪽)


# 이제 우리는 성경에서 구원이라는 단어가 무슨 뜻이고 구원의 대상은 대체 무엇인가를 주의해야 한다. 성경에서 구원은 지옥이 아니라, 세상이다. 영생의 반대편은 멸망이다. 성경은 멸망을 구원의 반대편으로 여기지 않았다. 성경에서 우리에게 보여준 구원은 세상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워치만 니, 그리스도인의 50 필수과정1. 1989, 8쪽)


위에서 말하는 구원은 이미 영생을 얻은 사람이 추가적으로 침례를 통하여 세상에서 나오는 것을 의미합니다. 성경은 베드로가 “이 어그러진 세대에서 구원을 받으라”(행2:40)고 했고, 그의 말을 받아들인 약 3천 명의 사람들이 “침례를 받았다”고 말합니다(41절).


(이인규님) ”이들이 말하는 세상은 기독교를 포함한다. 즉 세상에서 단체로 나오는 것이 구원이라고 한다. 성경은 무엇이라고 말하고 있는가? 종말적으로는 이 세상은 "세상 나라가 우리 주와 그 그리스도의 나라가 되는 곳"(계11:15)이다. 세상이 정죄된 곳이 아니라, 인간이 정죄된 것이다.


세상은 복음의 씨가 뿌려지는 곳(마13:38)이며, 생명주시는 곳(요6:33)이며, 성도들의 죄를 사하여 주시기 위한 곳이며(고후5:19) 하나님은 세상을 사랑하사 독생자를 구주로 보내신 곳이다(요4:14)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하나님이 그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려 하심이 아니요.> 저로 말미암아 <세상이 구원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요3:16-17)”


성경에서 ‘세상’의 의미는 한 가지만이 아닙니다. 예를 들어서, 1) 위에서 이인규님이 인용 소개한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라고 할 때의 ’세상’은 구원이 필요한 불신자들을 가리킵니다. 2) 그러나 성경은 ‘너희는 세상을 사랑하지 말라. 누구라도 세상을 사랑하면, 그 사람 안에는 아버지에 대한 사랑이 없다’고도 말합니다(요일2:15). 여기서 말하는 세상은 세상의 임금(요12:31)인 ‘사탄이 만든 조직적인 체계’를 가리킵니다. 이것들은 우리를 주님에게서 빗나가게 하는데 사용됩니다. 3) 이 세상은 장차 바벨론으로 발전하다가 멸망하고(계18:2), 대신에 주님과 그리스도의 왕국으로 바뀔 것입니다(계11:15). 4) 아울러 베드로와 바울은 ‘어그러지고’ ‘악한’ ‘이 세대’라고 말할 때 그것은 그 당시 주된 종교였던 유대교를 포함합니다(행2:40, 갈1:4, 6:14-15).


이처럼 성경이 말하는 ‘세상’은 1) 불신자, 2) 사탄의 조직체계, 3) 바벨론, 4) 유대교 등 다양한 방면을 포함합니다. 따라서 문맥에 따라 그때 그때 어떤 의미의 세상을 가리키는지 살펴야 합니다. 그럼에도 이인규님은 자신의 부분적인 성경지식으로 또 다른 방면의 성경본문들을 정죄하고 배척하는 오류를 범하고 있습니다.

 


(이인규님) “(3) 구원은 하나님의 일이 아니라 사람의 일이라는 지방교회


지방교회는 구원이 하나님의 사역이 아니라 사람의 일이라고 주장한다.”


이런 말 또한 저자의 의도를 무시한 채 말꼬리만 잡는 식의 왜곡일 뿐입니다.


이인규님이 인용 소개한 위트니스 리 형제님 1차 본문에 대한 간략한 평가


# 그러므로 우리는 사람을 구원하는 일과 하나님의 일을 구별해야 한다. 많은 경우에 사람을 구원하는 일이 반드시 다 하나님의 일은 아니다. 사람을 구원하는 일은 사람의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지만 하나님의 일은 사람으로 하나님이 지으신 만물을 다스리도록 통치권을 차지하게 하려는 것이다. (워치만 니, 거룩하고 흠이 없어라. 14쪽)


위 말은, 하나님은 사람의 어려움을 해결해주는 때도 있으시지만 그것은 하나님의 주된 일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주된 일은 사람으로 하나님이 지으신 만물을 다스리도록 통치권을 차지하게 하려는 것입니다(창1:26). 이인규님은 저자의 의도를 비틀어 왜곡시키는 일을 즉각 중단해야 할 것입니다.


# 타락 때문에 사람에게는 구속이 필요하다. 그러나 구속은 하나님의 목적이 아니다. 구속은 하나님의 목표가 아니다. 구속은 단지 하나님의 회복의 과정이다. 구속은 타락한 사람을 하나님의 목적으로 돌아가게 하는 것이다. (위트니스 리, 사람의 영, 1986, 45쪽)


‘구속’은 하나님의 원래 목적인 ‘아들의 자격’(sonship)을 얻기 위한 과정이라는 설명입니다. 갈라디아서 4:4-5가 이것을 잘 말하고 있습니다. “아들을 보내사…사람들을 구속하심으로써…우리가 아들의 자격(휘오데시아, 5206)을 얻도록 하려는 것입니다.”


# 우리 가운데서 구원이라는 단어를 상당히 많이 사용하고 있으나, 흔히 남용하고 있다. 여러분은 구원 얻는 것과 영생을 얻는 것에는 구분이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영생을 얻는 것은 개인적인 일이지만, 구원을 얻는다는 것은 개인적으로 영생을 얻는 문제일 뿐 아니라 또한 잘못된 무리에서 구원받는 문제이다. (워치만 니, 그리스도인의 50 필수과정 1권, 1989, 10쪽)


위 역시 세상(혹은 세대)으로부터 구원받는 침례를 설명하는 대목입니다. 앞 뒤 문맥을 다 잘라버리고 자기가 만들어 놓은 틀 안에 든 것처럼 보이는 내용만 쏙 뽑아 열거하는 식의 1차 자료 제시방식은 더 교묘한 ‘사실 왜곡’일 뿐입니다.


(이인규님) ”즉 지방교회의 구원론은 일반 기독교의 것이 아니다. 지방교회는 도대체 왜 이런 주장을 하고 있을까? 즉 지방교회만이 구원을 받는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들이 단체구원을 주장하며, 세상에서 나오는 것이 구원이라고 주장하며, 구원이 하나님의 일이 아니라 개인의 일이라고 하는 이유는, 일반기독교에서 나와 지방교회로 와야 한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이런 말은 사실적 근거도 논리도 없는 ‘무익한 말’이자 이웃에 대한 거짓증거입니다(출20:16). 성경은 무익한 말에 대해 훗날 “심판 날에 낱낱이 진술해야 할 것”을 경고합니다(마12:36).


# 여러분은 세상 사람이 구원을 얻는 것은 개인의 행위의 문제가 아님을 기억해야 한다. 세상 사람들이 틀린 것은 그들의 위치가 틀렸기 때문이다....그러므로 구원 얻는 것은 개인의 행위가 어떠한 지의 문제가 아니라, 당신이 속해 있는 그 무리가 잘못이었다는 것이 문제이다. (워치만 니, 그리스도인의 50 필수과정 1, 1989, 10쪽)


위 말 역시 세상에서 나오는 구원인 침례를 설명하는 문맥입니다. 즉 위에서 ‘당신이 속해 있는 그 무리”는 1차적으로 불신자들로 구성된 세상을 가리키며, 2차적으로 유대교와 같이 교리로만 하나님을 알고 참된 거듭남을 경험하지 못한 종교인들(가라지)을 포함합니다.


(이인규님) ”요약하자면 지방교회의 구원론은 기독교와 전혀 다르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세상에 속한 일반교회를 단체로 나와 지방교회로 오는 것이 구원이라는 것이다. 이제 그들은 궁극적이고 종말적인 구원을 부정한다.”


지방교회 구원론은 전적으로 성경에 근거합니다. 지방 교회는 고린도전서 1:2에서 보듯이 ‘고린도라는 지방 안에 사는 모든 거듭난 믿는이들’을 가리키는 개념입니다.


이인규님이 인용 소개한 위트니스 리 형제님 1차 본문에 대한 간략한 평가


# 이 구원은 단지 죄사함이나 하늘에 가려는 소망의 구원만은 아니다. 우리는 장래의 날에 하늘에 가기를 기다릴 필요가 없다. 우리는 이미 하늘에 앉아있다. 이것은 칭의, 혹은 화목케 함의 구원이 아니다. (위트니스 리, 하나님 458쪽)


이 문맥은 에베소서 2장이 말하는 ‘죽은 자들 가운데서 일으켜졌고’(6절), ‘우리를 높이사 하늘에 앉히셨다’(6절)라는 본문을 설명하는 대목입니다. 이것을 앞뒤 자르고 일반화시켜 ‘종말적인 구원’(?)을 부정한다고 비판하는 것은 정직하지 않은 처사입니다. 이 역시 매우 교묘한 사실왜곡입니다.


# 전통적인 그리스도인의 이해로는,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이 아버지에 의해 보내심을 받아 우리 죄들을 위하여 십자가에서 죽으셨다. 그 분은 부활하고 승천하여 하늘에 계시며 그 영이 보내심을 받아 강림하여 우리가 그 분을 믿도록 영감을 불러 넣고 있다. 믿는 이들은 믿었고, 용서받았으며 의롭다함을 받았고 구속되었고 구원을 받았다. 믿는 이들은 또한 거듭났다. 그 다음 죽으면 믿는 이들은 예수께서 요한복음 14장에서 예비하러 가시겠다고 약속하신 곳으로 가게 된다. 이 장소는 그들의 현재 생명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는 그들에게는 전혀 객관적이고 물질적이다. 결국 이러한 해석에 따르면 그 저택은 새 예루살렘, 곧 거룩한 성이 될 것이다. 이것은 모든 믿는이들의 영원한 거처가 될 것이다. 우리는 이런 이해가 전적으로 객관적이며 그 가운데 아무 것도 생명과는 관련이 없다는 것을 볼 수가 있다. 오늘날의 전통적인 많은 신학 안에서 그들은 생명에 대해서는 그다지 많이 말하지 않는다. (새 예루살렘, 166-167 쪽)


전통적인 많은 신학은 주로 교리를 강조하며 생명이신 그리스도를 체험하고 누리는 것을 중점적으로 다루지는 않는 것이 사실입니다. 심지어 장로교단 배경의 모 이단 감별사는 ‘하나님을 누린다’라는 위트니스 리의 말 자체를 이단시하기도 했습니다.


# 죽으면 천당(국)간다는 말은 이교도의 가르침입니다. 사탄이 한 최대의 거짓말 중 하나는 ‘예수 믿고 죽으면 천당(하늘 어디엔가 있는 집) 간다’는 말입니다. 이것은 성경근거가 전혀 없는 거짓말입니다. 그런데도 이런 이교도적인 거짓 사상이 버젓이 그리스도인들 사이에서 가르쳐지고 있다는 사실이 그저 놀라울 뿐입니다. 이런 비성경적인 가르침은 믿음 생활의 초점을 흐리게 하고, 하나님의 구원의 최종 목적을 변질시킴으로 참된 성도들의 생각 속에서 말끔히 씻겨져야 할 누룩인 것입니다. (지방교회 게시판의 글)


# 많은 그리스도인들은 소위 하늘에 속한 저택이라는 것에 대한 미신적인 관념을 붙들고 있는데, 요한복음 14장 3절은 그들이 주 예수께서 그들을 위해 그러한 저택을 예비하시러 하늘로 가셨다고 믿고 있는 근거이다. (새 예루살렘. 205쪽)... 그러한 미신은 여러 세기 동안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일단 믿는 이가 죽으면 그는 즉시 하늘에 속한 저택으로 간다고 전하고 가르쳤던 것이다. 그러나 그들 중 많은 사람들은 또한 이 구절에 따라 하늘에 속한 저택이 완성될 때 주님이 다시 오사, 믿는 이들을 이 저택 안으로 영접할 것이라고 믿고 있다. (위트니스 리, 새 예루살렘, 206쪽)


# 일반적으로 말해서 기독교는 사람들이 죽으면 주 예수를 믿는 한, 그들에게는 어려움이 없을 것이며, 그들이 일단 죽으면 그들은 천당에 갈 것이라고 사람들에게 가르친다. 그러나 여러분이 왕국의 비밀을 안다면 여기에 커다란 문제가 있음을 알게 될 것이다. (위트니스 리, 왕국, 315쪽)


요한복음 14장 2-3절이 말하는 처소를 킹제임스 성경이 ‘맨션’(mansions)이라고 번역함으로, 적지않은 믿는 이들이 저 하늘에 짓고 계신다는 어떤 물질적인 공간(맨션)에 가서 영원히 사는 천국을 꿈꾸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사상은 두 가지 치명적인 허점이 있습니다.


1) 주님께서 승천 하신지가 2천년이 지났는데 무슨 건물이길래 아직도 공사가 안 끝난다는 말입니까? 2) 성경은 장차 주님이 이 땅으로 지상재림 하실 때 휴거된 성도들을 데리고 오실 것을 말씀합니다(살전3:13, 4:14). 이인규님은 이처럼 논리적이지도 성경적이지도 않은 거짓 가르침을 절대 진리로 오해하고 성경적인 가르침을 반대하고 있습니다.


# "왕국이 임하옵시며"라고 기도하는 것은 아마 종교적인 형식에 불과할 것이다. 이런 기도를 수천만의 기독교인들이 천 구백년 이상을 해왔지만, 아직도 왕국은 오지 않는다. (왕국, 190쪽)


# 많은 사람들은 하나님의 왕국이 자동적으로 임하며, 왕국이 나타나기를 기다리는 동안 우리는 잠잘 수가 있다고 생각한다. 여러분이 이런 식으로 받아들인다면, 여러분은 이천년 동안 잠잘 것이며, 왕국은 여전히 오지 않을 것이다. (252쪽)


이 역시 앞뒤 자르고 가져온 심각한 사실왜곡입니다. 이 본문의 문맥은 “우리가 영 안에서 가난하지 않고, 하나님을 향해 우리 마음이 순수하지 않기 떄문에 왕국이 오지 않는다”(189쪽) “우리 안에서 그리스도께서 자라심이 왕국이 오는 것이다”(190쪽)라는 말을 함께 놓고 보면 충분히 이해가 되는 문맥입니다. 이인규님은 매사가 이런 식입니다.


(이인규님) ”여러분은 지방교회의 구원관에 대해서 이러한 증거를 본 적이 있는가? 이들은 기독교가 아니다. 위트니스 리는 지방교회가 기독교와 다르다고 자백한다.”


지방 교회는 고전1:2의 ‘고린도에 있는 하나님의 교회’에서 보듯이, 한 지방에 참된 거듭남을 체험한 모든 믿는 이들을 구성요소로 하는 그 지방에서의 주님의 몸의 표현입니다. 따라서 이것은 밀(참 신자)과 가라지(거짓 신자)가 섞인 ‘기독교’와 구별된 개념입니다.


이인규님이 인용 소개한 위트니스 리 형제님 1차 본문에 대한 간략한 평가


# 오늘날 기독교 안에서 이 문제를 본 사람은 극소수이다. (하나님의 경륜과 하나님-사람의 합당한 삶. 29쪽)


# 오직 소수의 사람들만이 그리스도가 하나님-사람이심을 시인한다, 또 이 소수의 사람들 가운데서도 오늘 우리가 하나님-사람들임을 인정하지 않는 사람들도 있다. (하나님의 경륜과 하나님-사람의 합당한 삶 53쪽)


# 마찬가지로 교회 시대에서 그분은 이러한 이기는 무리들을 기독교 안에서 찾을 수 없었다. 그 분은 오직 그분의 회복 안에서 소수의 이기는 자들을 찾아낼 수 있다. 계시록 14장은 비록 많은 이들이 구원받았지만 이기는 자들은 다만 144,000이라고 말한다. (하나님의 경륜과 하나님-사람의 합당한 삶 67쪽)


# 이것이 무엇인가? 이것은 삼일 하나님이 우리 존재 안으로 분배되시는 것이다. 이것은 "기독교가 아니다". 이것은 삼일 하나님이 "그분 자신"을 우리 존재 안으로 분배하심의 실재이다. (하나님의 경륜 안에 있는 두가지 비밀. 24쪽)


주님 자신을 분배받은 그분의 충만인 몸은 ‘유기체’이며, ‘조직체’인 기독교와 다른 것을 설명한 것입니다.


# 기독교에 속지 말자. 기독교에는 숱한 허사가 많고 특히 교회는 그렇다. 그러나 그런 말들은 거의 실제적이지 못하다. 신약계시에 따르면 교회, 그리스도의 몸은 지역[지방]교회로서 표출된다. 내게 지방교회가 없으면 내 교회가 없는 것이다. 하나님은 그리스도 안에, 그리스도는 교회 안에, 교회는 지방교회 안에서 표현되기 때문이다. (교회와 신앙 2001년 4월호. 미국 지방교회 홈페이지 내용)


위 역시 인터넷 안에 떠다니는 출처불명 자료 중 하나일 뿐입니다. 그러나 ‘교회’(주님 자신의 충만)와 ‘기독교’(밀과 가라지의 혼합)는 차이가 있는 것도 성경이 말하는 바입니다.


(이인규님) ”그런데 이정도의 표현은 그래도 점잖은 표현에 속한다. 이제 여러분은 위트니스 리의 독기 어리고 배타적이고 공격적인 글을 볼 수 있다. 그동안 워치만 니와 위트니스 리의 은혜스러운 글을 보던 그들이 왜 이단인가를 묻던 사람들은 사뭇 놀라게 될 것이다.”


???


이인규님이 인용 소개한 위트니스 리 형제님 1차 본문에 대한 간략한 평가


# 가라지들은 거짓 그리스도인들을 의미한다. 큰 나무는 오늘날의 기독교계를 의미한다. 누룩은 이교도의 모든 관습, 세상적인 것, 죄있는 것, 우상숭배를 의미한다. 여자는 로마 천주교, 심지어 기독교계까지도 의미하며, 악한 자는 사단 자신이다. (왕국, 265쪽)


마태복음 13장을 배경으로 한 해석입니다. 이인규님은 여기서의 ‘누룩’과 ‘하늘의 새’와 ‘여인’을 좋은 의미로 해석합니다. 그러나 아래에서 보겠지만 적지 않은 개신교 신학자들도 이 대목을 로마 천주교와 관련하여 해석합니다. 그러한 역대의 다수의 개신교 신학자들과 달리, 이인규님을 포함한 일부 한국의 이단 감별사들은 로마 천주교를 적극 두둔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 천주교와 개신교 그리고 유대교는 모두 사단의 조직으로서, 하나님의 경륜인 '지방교회'를 해치는 도구로 사용되고 있다." "사단은 그리스도의 몸 안에 모든 분파와 교파 그리고 분리를 일으킴으로써 또 하나의 조치를 취했다… 하나님께서는 요즈음 회복을 위해 운행하고 계시다. 하나님의 회복의 방법은 무엇인가?… 온전한 연합을 통한 회복이다. 이 세가지가 우리 안에서 회복되지 않는 한 우리는 온전하고 만족한 교회생활을 할 수 없다." (교회에 대한 사단의 전략, 1977년 생명의 흐름사 간)"


역시 인터넷에 떠도는 정체불명의 자료이며 특히 번역을 신뢰할 수 없습니다.


# 이 큰 성 바벨론은 무엇인가? 이것은 기독교의 혼합물이다. 큰 성 바벨론은 많은 음행하는 딸들을 거느리고 있는 음녀이다. 로마 카톨릭교회가 어머니이고, 교파 교회들은 그 딸들이다." (Stream Magazine, 1969년 11월호)


출처가 불분명하고 번역(본문 변개)을 신뢰할 수 없습니다.


# 주님이 개신교회권 안???에 있다고 생각지 말라. 그분은 문 바깥에 계시다. 유대교는 사탄적이고, 가톨릭은 마귀적이며, 개신교에는 그리스도가 없다. 그들이 그리스도의 이름을 가르치지만 그분은 거기 계시지 않다. 오늘날 살아 계신 주 예수님이 개신교회 안에 있다고 정말 믿는가? 믿든 안 믿든 주님은 문밖에 계시다고 말씀하신다" (교회와 신앙 2001, 4월호, The Stream magazine, LSM: 76년 11월, 12).


출처가 불명하고 번역(본문 변개)을 신뢰할 수 없습니다.


# 가라지들은 거짓 그리스도인들을 의미한다. 큰 나무는 오늘날의 기독교계를 의미한다. 누룩은 이교도의 모든 관습, 세상적인 것, 죄있는 것, 우상숭배를 의미한다. 여자는 로마 천주교, 심지어 기독교계까지도 의미하며, 악한 자는 사단 자신이다. (왕국, 265쪽)


# 음녀들의 어미는 변절한 교회이므로 그 여자의 딸들인 그 음녀들은 어느 정도 변절한 로마 천주교의 가르침과 실행들과 전통을 붙잡고 있는 기독교 안의 모든 각종 종파들과 단체들임에 틀림없다. 순수한 교회생활에는 변절한 교회로부터 전수한 악이 전혀 없다. (교회, 391쪽)


# 참된 지방 교회들은 순수한 금등대들인 데 반하여, 로마 천주교와 개신교 교파들과 독립단체들을 포함하는 오늘날의 기독교계는 완전히 순수성을 잃은 큰 혼합물이다. 이 혼합물이 큰 바벨론을 구성한다. (교회, 390쪽)


# 계시록 17장 4절과 5절에서 우리는 변절한 기독교계의 참 상황을 본다. 밖의 모습은 단지 전시일 뿐이다. 내적으로 변절한 기독교계는 하나님의 눈에 가증한 것들로 가득 차있다. 그 여자는 우상숭배와 음행으로 가득 차 있어서 극도로 불결하다. 이것이 곧 교회의 타락의 최종완성이다. (교회, 391쪽)


# 계시록 2장 13절에서 주 예수님은 버가모 교회에게 "네가 어디 사는 것을 내가 아노니, 거기는 사단의 보좌가 있는 데라"고 말씀하셨다. 사탄이 거하는 곳은 세상이다. 교회는 세상과의 연합 안으로 들어가서 세상적으로 되었기 때문에 지금은 사탄이 거하는 곳, 즉 세상 안에 거하고 있다. 버가모 교회는 또한 사탄의 보좌가 있는 곳에 거한다. 또다시 이것은 세상을 언급한다. 세상은 사탄의 거처일 뿐 아니라 그가 다스리는 영역이기도 하다. 이제 교회는 세상과 하나 되었을 뿐 아니라, 심지어 사탄과 하나 되었다. 그런 세상적인 교회는 사탄의 사상과 관념과 이론과 행습들로 흠뻑 적셔졌다. (교회, 385쪽)


위 내용들은 마태복음 13장 혹은 계시록 2-3장이 말하는 본문에 대한 위트니스 리의 해석을, 전후 문맥을 무시한 채 떼어낸 자료들로 추측됩니다(일부 영문자료들을 번역한 것은 번역과정과 출처가 불명확해 보임).


아무튼 크게 볼 때 위 내용들은 ‘고운가루’(인성)에 ‘기름’(신성)이 연합된 소제이신 그리스도(레2:4), 혹은 그분의 확대인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 안에 이물질인 ‘누룩’ 을 섞은 것 그리고 ‘가라지’(무늬만 그리스도인인 불신자들)가 섞인 기독교계에 대한 주 예수님의 직접적인 책망을 담은 마 13장, 계 2-3장, 혹은 17장 내용을 해설한 것입니다. 따라서 만일 듣기에 다소 거북한 내용이 있다면 그것은 성경 자체가 말하는 것일 뿐, 위트니스 리에게 그 책임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위와 같이 계 17장의 큰 바벨론 등이 로마 천주교를 가리킨다는 관점은 위트니스 리만이 아니라 다수의 개신교 신학자들 혹은 종교 개혁가들의 견해이기도 했습니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마틴 루터, 요한 칼빈, 매튜 풀리(Matthew Poole), 존 길(John Gill), 존 웨슬리, 알버트 반즈(Albert Barnes), J. D. 다비, 앤드류 밀러(Andrew Miller), 윌리엄 켈리(William Kelly), 찰스 H. 스펄젼(Charles H. Spurgeon), 찰스 호지(Charles Hodge), 존 피터 랑(John Peter Lange), 로버트 고벳(Robert Govett), C. I. 스코필드, 아르노 C. 가이벨라인(Arno C. Gaebelein), 헨리 A. 아이언사이드(H. A. Ironside), 윌리엄 R. 네웰(William R. Newell), C. A. 코우츠(C. A. Coates), 루이스 탈봇(Louis Talbot), W. A. 크리스웰(W. A. Criswell), 레만 스트라우스(Lehmann Strauss), 존 F. 월부드(John F. Walvoord), 도널드 그레이 반하우스(Donald Grey Barnhouse) 등이 유사한 주장을 했습니다.


또한 이러한 로마 천주교의 비성경적이고 혼합적인 요소들이 심지어 개신교 안에도 침투해 들어와 순수한 교회의 간증을 흐리게 한 방면을 지적한 정통 신학자들도 적지 않습니다.


예를 들어, 널리 존경받았던 학자이자 <복음주의 협회>(The Evangelical Foundation) 창시자인 도날드 그레이 반하우스(Donald Grey Barnhouse)도 다음과 같이 말한 바 있습니다.


"[계 17장 5절에 나오는] 이 여자는 창녀들의 어미라 불린다. 어미 창녀가 있고 딸 창녀들이 있다. 역사적으로 볼 때도 이 우상숭배의 기원이 되는 조직은 많은 하부 조직들을 만들어내며 발전해가고 있다. 종교개혁 시기에 활동하던 개신교 주석가들은 언제나 이 큰 창녀가 로마 교회라고 말했다. 성경은 개신교 단체들을 창녀의 딸들에 포함시킨다… 하나님은 오늘날 모든 교파들 안에 참된 증인들을 소유하신다. 그러한 조직 안에 있는 것과 상관없이 그들은 구원받은 사람들이다." (Revelation: An Expository Commentary) (Grand Rapids: Zondervan, 1971, 1982, p 324)


“바벨론은 로마 가톨릭 교회의 예표이다. 성경을 해석할 수 있는 권위를 가진 많은 역사학자들과 학자들이 그렇게 주장했다. 많은 큰 교파들이 이 교회에서 분리되어 나왔고 동시에 어미 교회로부터 많은 전통과 실행을 함께 가지고 나왔다. 많은 교파들이 세상의 입맛과 물질을 추구하면서 어미 교회의 실행을 따르고 있다.” (Walter Lewis Wilson, 윌슨 성경 예표 사전 (Wilson’s Dictionary of Bible Types),  Grand Rapids: Eerdmans, 1957, 1979, 영문 241쪽).


<엉거의 성경사전>(Unger’s Bible Dictionary)도 바벨론이 비단 로마 가톨릭 교회일 뿐 아니라 모든 “변절한 기독교계”라고 말합니다(Chicago: Moody Press, 1957, 1982, 영문 116쪽.)


그 외에 위와 유사한 견해를 밝힌 신학자들은, 로버트 자미슨(Robert Jamieson)과 A. R. 파우셋(A. R. Fausset)과 데이빗 브라운(David Brown)의 <성서 주해 3권-마태복음부터 계시록까지>(Bible Commentary, Volume 3: Matthew—Revelation) (Peabody: Hendrickson Publishers, 2002), 영문 709쪽; 레만 스트라우스(Lehmann Strauss), <계시록> (The Book of the Revelation) (Neptune, NJ: Loizeaux Brothers, 1964), 영문 291쪽; 루이스 탈봇(Louis Talbot),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The Revelation of Jesus Christ), Grand Rapids, MI: Eerdmans, 1946, 영문 199쪽, 201-202쪽, 207쪽) 등이 있습니다.


사람의 눈치를 보느라고 성경의 분명한 가르침을 적당히 호도하는 것은 오히려 하나님의 마음을 상하게 하는 일이며, 진리는 곧게 잘라야하는 바른 주님의 일꾼의 역할을 저버리는 것입니다.


성경은 “그대는 진리의 말씀을 곧게 잘라 내는 부끄러울 것이 없는 일꾼으로서, 하나님께 인정받는 사람으로 자신을 드리도록 힘쓰십시오”라고 명령합니다.


그러나 한 가지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위트니스 리가 성경을 따라 기독교 조직 자체를 반대하는 것이지 그 안의 참된 거듭난 믿는 이들을 비판하고 무시하는 것이 결코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이인규님은 위트니스 리가 교계 내의 참된 구성원들까지 무시하고 모독한다는 인상을 주어 동료 그리스도인들을 의도적으로 선동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거짓입니다.

 


(이인규님) ”그렇다면 지방교회의 주장을 정리하여 보자....여느 이단들이 그러하듯이 이들의 결론은 매우 단순하고 확실하여진다. 그렇다면 지방교회의 구원관, 천국관은 무엇일까? 그들은 그동안 단체구원을 주장하며, 구원은 하나님의 일이 아니라 사람의 일이라고 주장하였다. 또 세상에서 빠져나오는 한 무리가 구원을 얻는 것이라고 하였음을 우리는 앞에서 살펴보았다.


지방교회는 기독교와 전혀 다르다고 주장해 왔으며, 이제 지방교회는 기독교는 사단의 거처이며 사탄의 보좌이고 사탄의 왕국이라고 공격한다. 그렇다면 결론이 무엇인가? 간단하다..... 오직 지방교회가 구원이며 천국이고 왕국이라는 것이다.”


1) 세상과 연합한 교회를 상징하는 ‘버가모 교회’를 가리켜 “나는 네가 거하는 곳을 안다. 그곳은 사탄의 권좌가 있는 곳이다”라고 말씀하신 분은 주 예수님 자신이십니다(계2:13). 위트니스 리가 먼저 한 말이 아닙니다. 2) 지방교회는 그 도시에 사는 거듭난 모든 믿는 이들을 다 포함한 교회개념입니다(계1:11). 성경은 이러한 교회를 ‘금등잔대’로 상징된 영적인 유기체로 묘사합니다(계1:20).


이인규님이 인용 소개한 위트니스 리 형제님 1차 본문에 대한 간략한 평가


# 끝으로 교회의 회복은 왕국생활을 확립하는 것을 포함한다. 이것은 로마서 14장 17절의 바울의 말이 가르키고 있다. '하나님의 나라는 먹는 것과 마시는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 안에서의 의와 평강과 희락이라' 이 구절은 왕국이 교회를 사는 것임을 계시해 준다. (교회, 481쪽)


# 신약의 계시에 따르면 정상적인 교회생활은 왕국생활이다. 우리가 우리 안에 살아계신 하나님의 규율, 즉 천국의 율 아래 생활한다면 우리는 마태복음 5, 6, 7장에 기록된 그런 유형의 생활을 갖게 될 것이다. 우리는 또한 교회 생활 안에서 왕국생활이 실행되게 할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왕국을 교회와 분리시켜서는 안된다. (교회, 218쪽)


(이인규님) ”이들에게 교회 생활은 곧 왕국생활이며, 하나님의 왕국과 교회가 분리되어서는 안된다고 주장한다. 이들에게 천국의 실제적인 생활인 지방교회가 천국의 나타남으로 되어지는 시간은, 기독교계가 불태워지는 시간이라는 것이다.”


# 그러므로 천국의 실제와 외형은 교회와 함께 시작해서 교회와 함께 나아갔다. 천국의 실제와 외형은 교회와 함께 하며 교회에 달려 있다. 한편으로 천국의 실제가 교회 안에 감취어져 있고, 또 한편으로는 천국의 외형이 교회의 외양과 함께 한다. 주 예수님이 다시 오셔서 교회 시대를 끝내실 때 천국의 실제와 외형도 끝날 것이다. 그 때 주 예수님은 천국의 외형, 즉 소위 기독교계를 불태우실 것이다. 동시에 천국의 실제는 천국의 나타남이 될 것이다. (왕국, 667쪽)


# 그 영 안에서 살고 있고 그 영 안에서 행하는 것은 교회생활이며 이 교회생활이 곧 왕국이다. (왕국, 163쪽)


# 우리 모두는 왕국이 무엇인지를 보아야 한다. 그것은 단지 하나의 시대나 영역이 아니다. 왕국은 거듭나고 변화된 사람들의 건축이다. 이 건축은 지방교회 안에서 완성된다. (278쪽)


# 교회는 그 실제로서 천국을 가지고 있다. 이것은 마태복음 16장 19절의 주님의 말씀이 가르키고 있다. "내가 천국 열쇠를 네게 주리니 무엇이든지 네가 땅에서 매는 것은 하늘에서 매일 것이요, 무엇이든지 내가 땅에서 푸는 것은 하늘에서 풀린 것이니라" 여기에서 천국이라는 말은 앞 구절의 교회라는 단어와 서로 바꾸어 사용된다. 이것은 참교회가 이 시대의 천국이라는 강한 증거이다. (교회 39쪽)


# 만일 우리가 주 예수님의 이름을 부르고, 또 이 구절들을 읽는다면, 정확히 같은 것을 보게 될 것이다. 우리는 오늘날 왕국이 참된 교회 생활임을 보게 될 것이다. (왕국, 163쪽)


# 우리는 오직 거듭남으로 하나님의 왕국 안으로 들어간다. 우리가 주 예수를 믿고 그분의 이름을 불렀을 때 신성한 영이 우리 안으로 들어와 우리를 거듭나게 했고, 우리로 하나님의 왕국 안으로 태어나게 했다. (왕국, 25쪽)


# 만일 교회가 왕국이라는 것을 우리 모두가 깨닫는다면 우리의 생활은 크게 바뀔 것이다. (162쪽)


그 전후 문맥을 볼 때, “신약의 계시에 따르면 정상적인 교회생활은 왕국생활이다.”라고 말한 것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습니다. 기독교는 참 신자와 가라지가 혼합되어 있는데 가라지는 추후 불태워질 것이라고 말한 것은 성경 자체입니다.


“둘 다 추수 때까지 함께 자라게 두어라…가라지는 모아 단으로 묶어 불사르고, 밀은 내 곳간에 거두어들이라 할 것이다.”(마13:30).

 


(이인규님) ”정통신학의 천국이란 개념은 무엇인가? 정통신학에서 천국은 크게 세가지의 개념을 갖으며, 이것을 성경을 그대로 정리하고 요약한 것이다.


첫째는, 하나님이 직접 통치하시는 신정정치의 영역적인 개념


둘째는 종말적이며 궁극적이고 장소적인 개념의 실체.


세째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며 순종하는 개인적인 성도로 구성되는 내면적인 의미


지방교회는 오직 세 번째 개념만을 천국이라고 정의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개인적인 성도의 내면적인 의미를 오직 지방교회라고 단정하는 것이다. 이들은 두 번째의 개념을 부정하고 있다. 그러나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믿는다면 부분적으로만 적용시키면 안된다. 성경은 분명히 두 번째의 개념을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역시 간교한 거짓말일 뿐입니다. 지방 교회측은 위 천국 개념을 다 인정합니다. 특히 두번째 장소적 개념의 천국을 지방 교회측은 주님의 재림 후 있게 될 지상에서의 천년왕국으로 말하고 있을 뿐입니다. 왜냐하면 주님은 재림시 성도들을 데리고 이 땅으로 재림한다고 성경이 말하기 때문입니다(살전3:13, 4:14). 이인규님은 이런 분명한 성경의 기록을 부정함으로 양측 사이에 차이가 있는 것입니다.


(이인규님) “여러분에게 "조지래드"라는 신학자의 견해를 하나 소개하려고 한다.


물론 이런 신학적인 소개를 하는 이유는 정통교회의 견해와 지방교회가 어떻게 다른가를 말하기 위함이다. 그는 교회와 하나님 나라의 관계를 잘 설명하고 있다.


1) 교회가 곧 하나님 나라가 아니다.(예수님과 초대기독교인들은 하나님의 나라와 천국이 가까웠다고 설교했지, 교회가 가까웠다고 설교하지 않았으며, 천국복음을 전했지, 교회 복음을 전한다고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행8:12. 19:8. 20:25. 28:23, 31)


2) 하나님의 나라가 교회를 형성한다.(왜냐하면 사람들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면서 교회의 인간적인 교제에 들어가기 때문이다).


3) 교회는 하나님 나라를 증거한다.(왜냐하면 예수님께서는 "이 천국복음이....온 세상에 전파되리니"(마24:14)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이다.


4) 교회는 하나님 나라의 수단이다.(왜냐하면 하나님 나라의 능력을 나타내는 성령은 병든 자를 고치시고 귀신을 쫓아낼 때 제자들을 통해 역사하시기 때문이다. 예수님의 사역에서도 마찬가지이다) (마10:8, 눅10:17)


5) 교회는 하나님 나라의 관리자이다.(왜냐하면 천국의 열쇠가 교회에 주어졌기 때문이다)(마16:19)


물론 교회도 하나님 나라의 일부이지만, 하나님 나라가 곧 교회라고는 할 수가 없다.


참된 교회는 어느 교파나 단체, 혹은 가시적이고 지상에 있는 유형적인 교회를 말하지 않으며, 어느 주장이나 어느 사상만을 가지는 무리가 되어지지 못한다. 다시 말하여 어떤 사상이나 어떤 획일적인 논리를 강조하며, 자신들 외에는 모두 잘못된 교회라고 주장하는 단체가 있다면, 그들은 이단이 분명하며 틀림없는 사이비가 될 것입니다.”


물론 위트니스 리도 교회와 하나님의 왕국(나라)를 동일시 한 것은 로마서 14장 17절이 말하는 범위 내에서 그리한 것인지, 일반적으로 <교회=하나님의 나라>를 말한 것이 아닙니다. 이인규님은 제한된 문맥에서 위트니스 리가 한 말을 앞뒤 자르고 떼어내어 보편적인 원칙처럼 왜곡시키는 오류를 범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매우 간교한 거짓말일 뿐입니다. 하나님의 왕국은 영원 전부터 존재하나 교회는 성령이 사람 안에 내주하기 시작한 때부터 존재함으로 당연히 이 둘은 정확히 같지 않습니다.


(이인규님) ”과연 천국과 하나님 나라가 다른 뜻일까?


마태는 주로 천국(바실레이아 우라노스, Kingdom of Heaven)이라는 용어를 사용하였다. 또 마가와 누가는 주로 하나님 나라(바실레이아 호 데오스, Kingdom of God)이라는 용어를 사용하였다. 그러나 마태, 마가, 누가, 요한을 비롯하여, 모든 성경기자들은 하늘(우라노스, Heaven)라는 단어를 사용하고 있다. 그 개념은 단지 대기권 위라는 장소만을 의미하지 않고, 하나님이 계시는 곳이라는 의미를 잘 설명하여 나타내주고 있다.


다시 말하여 하늘(우라노스, Heaven)이라는 개념은 "하늘, 포괄적인 천상(하나님의 처소)"의 개념으로 사용되고 있다.


그러나 마태는 천국이라는 용어만을 사용한 것이 아니라, 6:33, 12:28, 19:24, 21:31, 21:43등에서는 하나님 나라(바실레이아 호 데오스, Kingdom of God)라는 용어도 함께 사용하고 있는데, 마태가 말하는 천국과 하나님의 나라는 사실상 아무런 차이점이 없다.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부자는 <천국>에 들어가기가 어려우니라. 다시 너희에게 말하노니 약대가 바늘 귀로 들어가는 것이 부자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쉬우니라 하신대"(마19:23-24)


마태와 마가와 누가는 천국과 하나님 나라에 대한 용어를 거의 호환하여 사용하고 있으며, 즉 실제적으로 천국과 하나님 나라의 차이는 없다는 것을 말하여 준다. 또 성경에 의하면 아브라함은 천국, 하나님 나라에 있었다. 그런데 부자와 나사로에 의하면, 죽은 나사로는 아브라함의 품에 있었다. 다시 말하여 나사로는 죽어서 천국, 하나님 나라에 있었다.


마태: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과 함께 <천국>에 앉으려니와(마8:11)


누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과 모든 선지자는 <하나님 나라>에 있고 오직 너희는 밖에 쫓겨난 것을 볼 때에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갊이 있으리라(눅13:28) "그 거지가 죽어 천사들에게 받들려 <아브라함의 품>에 들어가고 부자도 죽어 장사되매"(눅16:22)


또 모든 성경기자들이 사용하는 하늘(우라노스)이라는 용어도 "하나님이 계시는 곳"이란 의미로서 "포괄적인 개념의 천상"을 의미하며, 하나님 나라와 천국이라는 의미와 조금도 다를 것이 없다.”


큰 틀에서 볼 때 ‘천국’(the Kingdom of heavens)은 하나님의 왕국의 일부임으로, 당연히 겹치는 부분도 있지만 정확히 같은 용어가 아닙니다. 그 증거는 예수님이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왔다(마4:17)라고 하실 그 때 이미 하나님 나라(왕국)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있어왔습니다(마21:43, 여러분은 하나님의 왕국을 빼앗길 것이고..). ‘이미 있는 것’(하나님의 왕국), ‘가까이 온 것’(천국)은 동의어가 아닙니다.


(이인규님) ”물론 정통신학에서도 성도들의 몸도 하나님 나라, 천국의 일부가 되어진다. 그 이유는 하나님 나라라는 개념이 하나님의 통치영역을 말하기 때문이다...물론 교회도 하나님 나라 혹은 천국의 일부가 되어질 수 있다. 주님이 가르쳐준 기도와 같이, 하늘에서 이루어지듯이 땅에서도 이루어지게 되는 궁극적으로 임하는 나라로써, 예수님과 함께 도래한 하나님 나라의 시작이기도 하다.


그러나 우리가 죽어서 가는 곳, 하나님 곁, 하나님이 계시는 곳은 당연히 하나님 나라이며 천국이다. 우리의 몸과 교회만이 천국이며, (지방교회의 용어를 빌리자면) 천국의 실제가 된다는 주장은 전혀 비성경적이며 단편적인 주장이 되어진다. 하나님 나라, 천국의 개념을 지방교회는 오직 성도들의 몸으로만 간주하며, 원천적인 개념으로서의 하늘(우라노스)을 제외하는 실수를 범하고 있다. 다시 말하자면, 죽어서 가는 곳은 천국이 아니라는 주장은 분명 틀린다...


- 저희가 이제는 더 나은 본향을 사모하니 곧 하늘에 있는 것이라 그러므로 하나님이 저희 하나님이라 일컬음 받으심을 부끄러워 아니하시고 저희를 위하여 한 성을 예비하셨느니라"(히11:16)


- 또 내가 들으니 하늘에서 음성이 나서 가로되 기록하라. 자금 이후로 <주 안에서 죽는 자들>은 복이 있도다 하시매, 성령이 가라사대 그러하다. 저희 수고를 <그치고 쉬리니>, 이는 저희의 행한 일이 따름이라 하시더라(계14:13)


- 주께서 나를 모든 악한 일에서 건져내시고 또 <그의 천국에 들어가도록> 구원하시리니 그에게 영광이 세세 무궁토록 있을지어다. 아멘(딤후4:13)


- 오직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는지라> 거기로서 구원하는 자 곧 주 예수 그리스도를 기다리노니 그가 만물을 자기에게 복종케 하실 수 있는 자의 역사로 우리의 낮은 몸을 자기 영광의 몸의 형체와 같이 변케 하시리라(빌3:20-21)


지방교회와 같이 우리가 죽어서 가는 곳이 천국이 아니라는 주장은 비성경적인 주장이며, 균형이 잡힌 부분적인 성경관이 아니며, 한 개인의 이상한 성경해석을 그대로 맹종하는 이단이 특징을 보여주고 있다.


우리가 죽어서 가는 곳도 하나님 나라이며 천국이며 하늘이 되어진다. 우리는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처럼 땅에서도 이루어질 것을 기도하여야만 한다.’


위 주장 역시 사실을 왜곡시킨 거짓말일 뿐입니다. 이인규님은 죽어서 가는 곳 즉 낙원을 사람이 영원히 거기서 사는 저 하늘 어디에 있는 장소라고 착각합니다. 이것은 세 가지 치명적인 문제가 있습니다.


1) 낙원은 주 예수님의 경우처럼 부활 전까지 임시로 머무는 공간이지 영원히 거할 곳이 아닙니다. 주님이 죽어서 낙원에 가신 후 지금도 그 안에 계신다고 믿는 것은 큰 착각이고 그분의 부활을 부정하는 것입니다.


2) 성경을 종합해 볼 때 주 예수님께서 죽어서 가셨던 낙원은 저 하늘이 아니라 땅 아래 낮은 곳이었습니다.


“그분께서 올라가셨다는 것은 땅 아래 낮은 곳으로 내려오셨다는 것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엡4:9) “누가 무저갱으로 내려가겠느냐 라고 하지도 마라. 이 말은 그리스도를 죽은 사람들 가운데서 모셔 올리겠다는 뜻입니다.”(롬10:7).


3) 성경은 주님이 지상재림하실 때(행1:11) 성도들을 데리고 오실 것을 말씀합니다. 그러므로 죽어서 하늘 어디에 있는 천국에 가서 영원토록 산다는 이인규님의 종말론은 허구이며 성경의 가르침에 위배됩니다.


그래서 우리 주 예수님께서 그분의 모든 성도들과 함께 오실 때에(살전3:13)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통하여 잠든 이들을 예수님과 함께 데리고 오실 것을 믿기 때문입니다(살전4:14).


(이인규님) ”예수님의 도래와 함께 시작된 나라, 믿는 성도들 자신으로 표현된 내면적인 세계도 물론 하나님 나라며, 천국의 일부이다. 이 땅에 도래한 하나님 나라는 진행적이며 확장적이며 마침내 실체로서 완성되어질 것이다. 예수님의 재림과 함께 하나님께 바쳐지는 완성되는 궁극적인 나라, 새 하늘과 새 땅으로 표현된 새 예루살렘도 물론 하나님 나라이며 천국이다.


"내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많도다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일렀으리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러 가노니, 가서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면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 내가 가는 곳에 그 길을 너희가 알리라. 도마가 가로되 주여 어디로 가시는지 우리가 알지 못하거늘 그 길을 어찌 알겠삽나이까,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요14:2-6)”


위에서 말하는 ‘아버지의 집’은 죽어서 가는 저 하늘 어디에 있는 맨션이 아닙니다. 도대체 무슨 재료로 맨션을 짓길래 말씀만으로도 우주를 지으신 분이 수천년이 지나도 아직도 완성을 못하고 계신다는 말인지요? 이런 발상은 성경적이지도 논리적이지도 않습니다.


물질적인 성전이었던 구약의 아버지의 집과 달리, 신약의 아버지 집은 교회 즉 그리스도의 몸을 말하는 것입니다(딤전3:15, 요14:20, 23). 이 주님의 몸은 아버지의 집이셨던 주님 자신이 죽음과 부활을 통해 확장되신 것입니다(요2:16, 18-21 참조).

 


결론적으로, 이인규님은 자신의 비성경적이고 비논리적인 사상으로 지극히 성경적이고 균형잡힌 지방 교회측의 구원론(종말론 포함)을 함부로 이단시 하는 잘못을 범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러한 지방 교회측의 바른 해명글을 통하여 이인규님의 감긴 눈이 열리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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