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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의 회복―개혁전의 역사(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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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의 회복―개혁전의 역사(2)

 

 

E. 개혁의 선구자들과 현재의 회복

 

1. 요한 위클리프(John Wycliff) 주후 1324-1384


요한 위클리프의 가장 주목할 만한 업적은 처음으로 성경 전체를 영어로 번역한 것입니다(주후 1382). 이는 단지 학자들을 위한 번역이 아니라 그 전까지 주님의 말씀을 읽을 수 없었던 평범한 영국 사람들을 위한 번역이었습니다. 위클리프는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신성한 성경은 사람들의 재산이며 아무도 왜곡할 수 없는 것이다...그리스도와 사도들은 성경을 사람들에게 친숙한 방식으로 알림으로 세상을 개종했다...내 온 마음을 다해 기도하는 것은 이 책에 담겨진 것들을 통해 우리 모두가 함께 영생에 이르는 것이다.


밀러는 이 번역의 영향을 지적했습니다.


배우지 못한 시민들과 군인들과 하류 계급층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가져온 결과는 사람의 능력으로 예상할 수 있는 것을 뛰어 넘는다. 생각은 빛비춤 받았고 혼은 구원을 얻었으며 하나님은 영화롭게 되셨다.


밀러는 위클리프 자신에게 임한 이 번역의 일의 결과에 대해 언급했습니다.


...하지만 그는 이제 그 자신을 천배나 더 풍성하게 하는 일에 관련되어 있다. 그러나 그는 더욱 전적으로 거룩한 말씀에만 관련되어 있다. 그가 성경에 정통하게 되었을 때 로마 교회의 거짓 교리들을 거절할 수 있었다. 성직자 제도의 외적 악습들을 보는 것과 그분의 말씀의 교리 안에서 하나님의 생각을 보는 것은 매우 다르다.


로마 교회가 하나님의 말씀으로부터 얼마나 멀어졌는지를 보았기에, 위클리프는 강하게 그 실행들을 반대했습니다. 그는 교황이나 공회들이나 어느 공의회의 결의도 교회의 권위가 될 수 없고 단지 하나님의 말씀만이 교회의 권위라고 강조했습니다.


브로드벤트는 말씀의 본질과 그 해석에 대한 위클리프의 관점을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 혹은 아버지의 유언이나 성약이다; 하나님과 그분의 말씀은 하나이다. 그리스도는 그분의 율법인 거룩한 성경의 저자이고, 그분 자신이 성경 안에 계시며, 성경을 모르는 것은 그분을 모르는 것이다...신학 박사들은 우리를 위해 해석할 능력을 가질 수 없지만 성령은 그리스도가 사도들에게 성경을 열어 준 것처럼 성경의 의미를 우리에게 가르쳐 준다.


2. 요한 후스(John Huss) 주후 1370-1415


요한 후스는 오늘날의 서 체코슬로바키아인 보헤미아에서 태어났습니다. 그 당시에 그는 위클리프의 책망과 가르침들을 유명하게 만들었습니다. 후스에게 감사하며 루터가 그에 대하여 말하길, “우리는 알게 모르게 다 후스인들이다.”라고 했습니다.


허튼(Hutton)은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그는 그리스도가 교회의 유일한 참 머리이시라고 선포했으며 교황이 진리를 가르치지 않는 한 교황을 따를 수 없다고 말했다. 교회가 아니라 성경이 믿음의 유일한 기준이며 교황은 하늘의 열쇠를 가지고 있지 않으며 사람은 믿음과 회개를 통하여 오직 하나님으로부터만 죄사함을 받으며 성자들이 행했다고 소문이 난 기적들은 다 거짓이며 사람들을 속여 면죄부를 판 성직자들은 그리스도의 종이 아니라 사탄의 종이라고 했다. 성경의 새로운 번역판을 출판했으며 성경공부를 대중화시켰다. 그는 생명의 순수함을 더욱 요구하였고 불순한 성직자들을 비난했으며 그들에게는 성찬을 주기에 합당하지 않다고 선포했다. 그는 국가적인 영웅이 되었으며 사람들의 우상이었다. 교황의 사자(使者)들이 면죄부가 가득한 커다란 상자들을 가지고 프라하에 왔을 때, 후스는 그것들을 경멸했다. 그는, “누가 반대로 말할지 보자. 교황이나 주교나 신부가 ‘내가 너의 죄를 용서하노라, 내가 너를 지옥의 고통으로 부터 자유롭게 하노라’고 말하는데 이는 헛되고 여러분들을 돕지 못한다. 내가 다시 말하거니와 하나님 한 분만이 그리스도를 통해 죄를 사하실 수 있다.”라고 했다. 그의 말은 사람들 사이에서 열광을 일으켰다. 그는 마을에서 사람들에게 전파했다. 그는 사람들이 예전에 성경에 대해 설명하는 것을 들은 적이 없는 것처럼 성경을 설명해 주었고 성경을 사랑하고 성경을 읽도록 가르쳤고 마치 장군이 군인들을 격려하듯 보헤미아 사람들에게 그들의 마음에 있는 마귀와 거짓과 거짓행세 하는 자들에 대항하여 정면으로 대담하게 싸우도록 하였고 하나님의 말씀 위에 서서 교황과 그 추종자들에게 도전하게 했다.


한 면으로 카톨릭 교회에 대한 그의 강한 태도와 다른 한 면으로는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그의 확고한 주장으로 콘스탄스 공의회(Council of Constance)에 소환되어 그가 믿는 것들에 대하여 증언해야 했습니다. 비록 그가 희망 있고 틀림없는 길을 걸어왔지만, 공의회에서 유죄판결을 받고 화형에 처해졌습니다.


3. 피터 첼쉬즈키(Peter Cheltschizki) 주후 1390-1452


피티 첼쉬즈키 혹은 첼칙의 피터(Peter of Chelcic)는 위클리프와 후스의 영향을 받았습니다. 허튼(Hutton)은 “그를 후스를 따르는 이들 중 하나라고 한다면 대부분의 후스를 따르는 이들처럼 그도 성경 위에 섰고 그것이 그의 능력의 비결이었다”라고 말했습니다. 첼칙의 피터는 연합 형제회 혹은 보헤미안 형제회의 의견과 계획의 출처로서 그 형제회의 학문의 창시자였습니다.


그가 1440년에 쓴 믿음의 그물이란 책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아무도 성경 안에서 다른 것을 찾지 않지만 마지막에 온 우리는 태초의 것들을 보려하고 하나님이 허락하시는 한 그것들로 돌아가길 원한다. 우리는 마치 불이나 타버린 집에 와서 원래의 모양을 찾으려고 하는 사람들과 같다. 폐허가 된 것들이 온갖 종류의 것들과 함께 뒤덮이어 많은 이들이 이러한 생성이 기초인줄 알고 “이것이 기초다” “모두가 가야할 길이 이 길이다”라고 말하며 다른 이들도 그들을 따라한다. 그렇게 생성된 것 안에서 기초를 찾았다고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참된 기초와 많이 다를 뿐 아니라 반대된다. 이러면 조사하기가 더 힘들어지는데 그것은 만약 모든 사람들이 “폐허 속에서 옛 기초를 찾을 수 없다”라고 말한다면, 느헤미야와 스룹바벨이 성전의 파괴 후에 그리했던 것처럼 많은 이들이 파고들어 조사하여 그 위에 참된 건축의 일을 시작할 터이기 때문이다. 오랫동안 무너져 있던 영적 폐허들을 복구하고 이전 상태로 되돌리기는 쉽지 않은데 이는 예수 그리스도 외에는 또 다른 기초석이 없지만 많은 이들이 다른 신들에게 가서 그 신들의 기초를 세워서이다.


같은 책에서 계속해서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나는 사도들이 전파한 어느 곳에서나 모든 이들이 믿었다고는 말하지 않겠지만 하나님이 택하신 몇몇은 여기 저기서 조금씩 믿었다. 사도 시대의 믿는이들의 교회는 마을이나 동네나 지역에 따라 이름지어졌고 한 믿음을 가진 믿는이들의 교회들이나 회중이었다...그들은 믿음의 교제 안에서 연합되었고 영적인 것들과 하나님의 말씀 안에서 서로 서로 교통을 가졌던 지방의 모임에서 함께 모였다. 그러한 믿음의 교제와 영적인 것들이 부합하여 그들은 믿는이들의 교회들이라 불리웠다.


허튼으로부터 우리는 로마 교회에 대한 피터 첼쉬즈키의 견해를 알 수 있습니다.


(피터 첼쉬즈키)는 노골적으로 교회와 국가간의 관계는 이 형편없는 세상에서 일어나는 모든 악한 일들의 뿌리라고 말했다. 그가 말하길, “그 때부터”, 콘스탄틴 대제 때부터 교회와 로마제국이 혼합되어, “그 때부터 이 두 세력들, 황제와 교황의 세력들이 합쳐져 그들의 불순한 목적들을 위해 교회와 기독교계 안에서 모든 것들을 이용했고 신학자들과 교수들과 신부들은 황제의 총독으로 그들의 안전을 황제에게 구했고 모든 것을 통치하기 위해 전쟁을 일으켰다.”


만약 피터가 채찍으로 로마 교회를 때렸다면 신부들은 전갈들로 때렸다. 그는 “큰집에 앉아 있는 명예로운 사람들, 아름다운 망토를 입고 있는 자주빛 사람들, 높은 모자들, 살찐 배들”을 미워했다.


그는 계속해서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그들은 예수를 세상을 위한 달콤한 양념으로 준비해 세상이 예수와 그의 무거운 십자가의 모양을 띄지 않고 예수가 세상의 형상을 이루게 하며 그분을 기름보다 더 부드럽게 하여 모든 상처를 위로하여 폭력범과 강도와 살인자와 간음하는 자들이 하늘나라에 쉽게 들어오게 한다.”


4. 보헤미아 연합 형제회(United Brethren in Bohemia) 주후 1457-1621


보헤미아 연합 형제회는(고대 형제회 혹은 고대 연합 형제회로 알려져 있기도 함) 1457년 3월 1일 보헤미아의 쿤왈드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스스로 “그리스도의 율법의 형제 자매들”이라 불렀던 이들은 심하게 핍박을 받았고 많은 이들은 무자비하게 살해되었습니다. 그들의 찬송가는 카톨릭 교회 밖에서 출판된 최초의 찬송가였습니다. 헬라어와 히브리어 원어를 번역해 그들의 언어로 성경을 만들었습니다. 크랄리츠(Kralitz) 성경이라 불리는 이 번역본은 1593년 출판되었습니다. 연합 형제회는 성경에 관하여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우리는 신약의 말씀을 논쟁하지 않고 그대로 받아들인다.”


그들은 일반적으로 “갱부(坑夫)”라 불렸는데 이는 그때 그들이 핍박을 피해 갱이나 동굴에 살았기 때문입니다. 허튼은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그러나 한 순간도 그들은 희망을 잃지 않았다. 왕이 그들을 짓밟으려 생각하던 바로 그 순간에도 사실상 그들은 매일 숫자가 증가했다. 그들의 횃불이 숲속의 어두움에서 빛을 낸 것처럼 그들의 순수한 삶도 음울한 사람들 사이에서 빛을 비추었다. 그들의 유일한 무기는 글이었다. 그들은 결코 보복하거나 반란을 일으키거나 방어하려 무장하거나 무력에 호소하지 않았다. 한 쪽 뺨을 맞으면 다른 쪽 뺨도 내어 주었고 왕이 창피해서 그들을 내버려 둘 때까지 악평을 호평으로 바꾸었다. 그는 그러한 핍박이 영적 생명을 진압할 수 없음을 잘 알고 있었다.


허튼은 계속해서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루터의 시대 전에 보헤미아에서 형제회 교회가 그렇게 빛날 수 있었던 건 그들의 교리 때문이 아니라 그들의 삶이었고 그들의 이론이 아니라 그들의 실행이었고 그들의 의견이 아니라 그들의 훈련이었다. 그러한 훈련이 없었다면 핵없는 껍질만이 있었을 것이다.


5. 카스퍼 반 슈벵크벨트(Kasper Von Schwenckfeld) 주후 1489-1561


슈벵크벨트와 그를 따르던 이들은 카톨릭과 루터교와 재침례교와 개혁 교회들로부터 떨어져서 모였습니다. 그들은 그리스도와 교회에 관하여 많이 보았습니다. 루푸스 존스는 16세기와 17세기의 영적 개혁가들이라는 그의 책에서 슈벵크벨트를 뛰어나게 평가했습니다.


그리스도인의 믿음을 회복하고 정결케 하고 다시 말하던 거대한 일을 하던 16세기의 모든 개혁가 중에서 아무도 생활과 성격에서 그보다 뛰어난 사람이 없었고 미신과 전통을 걸러내고 도덕적이고 영적인 실제 안에 근거한 기독교를 사람들의 생활 속으로 가져오는 임무에 실레지아(Silesian)의 귀족인 카스퍼 슈벵크벨트보다 더 단호하게 자신을 드린 사람이 없었다.


존스는 또한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그의 초기 글에서조차도 그는 참된 종교의 영성과 살아있고 독창적인 신성한 말씀의 개인적인 체험의 중요성을 강조했다....그는 “영의 깊은 부분에 도달하고” 마음을 새롭게 하고 믿는이들 안에서 한 새 사람을 산출하는 그리스도 안에서의 믿음과 그분에 대한 감사를 간청했다...


존스는 구원에 관한 슈벵크벨트의 믿음을 다음과 같이 설명했습니다:


과정―극히 중대한 과정이기에―은 체험의 영역 안에서 처음부터 끝까지이다. 생명주는 영이신 십자가에 못 박히고 부활하고 영화롭게된 하나님-사람 안에 있는 믿음을 사용함으로 높은 곳에 있는 참된 능력이 혼 안으로 흘러 들어온다. “공기와 같은” 어떤 것, 높은 영적 세계의 질서에 존재적으로 속한 어떠한 것이 살아있고 새롭게 되고 조직적인 능력으로 신성하게 주어진 세포질로서 사람 안으로 들어온다. 이레니우스와 마찬가지로 슈벵크벨트에게도 구원은 “실제의 구속”, 죽을 수밖에 없는 사람의 “신화”(deification), 불멸의 본성의 실제의 형성, 비밀스러운 아담-그리스도인 새로운 영적 족속의 창시자이자 머리를 통한 흐름 한 가운데 있는 생명-에너지를 통한 원래대로의 인성의 회복이다.


이렇게 들어오는 영적 능력과 생명-본체로 수령인의 온 인격은 영향을 받는다. 부어지는 원기를 회복시키는 에너지는 혼과 몸을 둘 다 변화시킨다. 하나님의 내적이고 영원한 말씀은 육신이 되어 사람의 내적 본성 위에 작용해 믿는이가 영적이고 신성하고 하늘에 속한 것으로 바뀌고 하나님의 성육신한 말씀인 예수 그리스도와 같다.


존스는 계속해서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육체가 되신 똑같은 생명주는 영이시고 사람 안에서 새 창조를 산출하시는 이 말씀은 거듭난 이들 안에서 영속하는 내적인 교사가 되셨다. 사실상 하나님 자신은 생명과 영과 빛으로서 사람의 혼의 본체 위에 역사하고 계시는데 먼저는 사람 안에 새 창조를 형성하는 생명-씨앗으로 하시고 그 후에는 순종하는 혼을 모든 진리 안으로 이끌고 그리스도의 형상과 신장 안으로 온전케 하는 영원히 목양하고 가르치는 영으로서 하신다.


존스에게서 우리는 슈벵크벨트가 성경 해석에 관하여 무엇을 가르쳤는지를 배울 수 있습니다:


“만약 사람이 영적인 것들을 이해하고 알고 합당하게 판단한다면 신성한 빛을 성경에 가져오고 글자에 영을 가져오고 그림에 진리를 가져오고 주인을 그 피조물에 가져와야만 한다...요컨대, 성경을 이해하기 위해서 사람은 반드시 새 사람, 하나님의 사람이 되어야 하고 성경을 주신 그리스도 안에 있어야만 한다.”


그리고 다시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생명의 영적 실제들은 성경 문단들을 힘들게 쌓아 올리거나 정교한 신학 변증이나 신성한 말씀의 박식한 해석으로 생기는 것이 아니다. 이러한 영적 실제들은 사람의 영과 신성한 영-하나님의 내적 영적 말씀의 직접적인 관계를 통해서만 우리에게 실제가 되고 효능이 있다. “진리를 보는 이는 하나님을 눈을 가져야만 한다.”


존스는 슈벵크벨트가 믿음에 대해 말한 것을 다음과 같이 인용하고 바꾸어 말했습니다:


“참된 믿음은 성령을 통해 하나님이 주신 은혜와 무상의 선물이다. 하나님의 영생으로부터 온 것이며 하나님 자신과 같은 본질과 본체이다.” 사실상 하나님의 영원한 말씀은 우리 삶의 내적 영역 안에서 소리가 나고 살아났다.


존스는 개혁가의 눈으로 본 교회에 대하여 설명했습니다:


생명주는 영의 역사를 통해 체험의 왕국에 들어가는 각 혼마다 이 시대의 보이지 않게 확장되는 교회 안으로 건축되며 신성한 머리의 기관이 되는 “은사”를 받는다.


참된 의미에서 교회는 그리스도의 뼈중의 뼈이며 살중의 살이고 그분의 피로 생기가 있으며 그분의 참된 임재로 힘이 있으며 천연적인 인간 생명이 식물보다 높은 것처럼 훨씬 높은 신성하고 하늘에 속한 생명―세상―질서를 계시하고 전시하는 유기체로 형성된다.


존스는 거듭남과 먹는 것에 대하여 놀랄만한 것들을 기록했습니다.


십자가에 못 박히시고 부활하고 영화롭게 된 그리스도―창조된 아담―의 인격 안의 믿음을 통해, 썩지 않고 생명을 주는 본체가 혼 안으로 들어와 혼을 변형시킨다. 신성하고 하늘에 속한 세상으로부터 온 것, 그리스도의 영화(靈化, spiritualized)되고 영화롭게 된(glorified) 본성의 무언가가 사람의 영의 실제의 음식이 되고 그 음식을 통해 사람은 하나님-사람과 같은 본성에 참여한다. 한 두 번이 아니라 지속적인 체험으로, 혼은 이러한 영광스러운 영적 새로움의 음식―이러한 그리스도를 먹고 마심―을 분배받는다.


마지막으로, 존스는 슈벵크벨트를 따르는 이들의 집회를 묘사했습니다.


아우크스부르크[서독]의 공공 기록은 슈벵크벨트의 생애 동안 조용하고 영적인 경배자들의 비범한 단체가 그 도시에 살았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들의 인도자들은 천한 직업을 갖고 있던 사람들-그들이 성공적이거나 인정받는 종교를 따르는데 기뻐했다 할지라도 시나 교회의 관리들이 관심을 갖지 않았을 이들이다. 슈벵크벨트의 글로 영향을 받은 이들은 “작은 집회”―모든 면에서 17세기의 퀘이커 교도와 같음―를 그들의 집에서 형성했는데 돌아가면서 모이며 성식을 버리고 함양을 위해 대중적인 말씀전파 대신 하나님을 기다렸다. 그들의 집회에서 슈벵크벨트의 책과 서신들을 읽고 다른 슈벵크벨트를 따르는 그룹에 편지를 써서 주고받고 그들의 집회에서 읽었다. 그들은 그들의 영이 이해할 수 없는 것들과 하나님의 말씀의 내적 사역에서 직접적으로 나오지 않은 것같은 종교적인 실행은 어떠한 것이든 거절했다. 결국에는 사람들이 그들을 발견하여 그들의 인도자들을 추방하고 책을 태우고 스스로 “고요히 영적인 자들”이라 부르던 작은 집회를 무자비하게 박멸했다. 이러한 공동체들은 여러 곳에서 형성되어 조국에서 내적 신앙심을 계속해서 길렀고 1734년에는 핍박으로 유린되어 펜실바니아로 이주해 오늘날까지 그들의 공동 생활을 계속하고 있다.(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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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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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예루살렘 2014.08.15. 01:09
주의 회복..이라는 말이 역사성을 가진 단어임을 알게 하는 귀한 자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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