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교회와 논쟁 중 드러난 최삼경 목사의 삼신론(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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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단감별사 최삼경 목사(빛과소금교회)가 삼신론 논란과 월경잉태 이단사상 등으로 큰 물의를 빚고 있다. 최삼경 목사의 삼신론 논란은 과거 최 목사가 이단으로 정죄한 지방교회와의 지상논쟁 가운데 촉발됐다. 최 목사는 90년대 말 그가 현재 상임이사로 있는 '교회와신앙'에 지방교회와 12차례 이상 신학적인 논쟁을 펼쳤고, 그 과정 가운데 삼신론자임이 들통나 논란이 거세지자 일방적으로 지상논쟁을 접었다. 본지는 당시 최삼경 목사의 삼신론 논란이 어떻게 촉발됐는지 이해를 돕고자 지상논쟁 전문을 개제한다. 마찬가지로 최삼경 목사가 자신에 대한 변론과 반론을 더 원한다면 본지는 언제든지 수용해 독자들에게 전달할 방침이다.
"소개의 글"(1998.7.15.)
이 책은 워치만 니와 위트니스 리의 사역에 관한 진리논쟁을 위해 쓰여진 일련의 기사들로 이루어져 있다. 이 논쟁은 1992년에 최 삼경 목사와 장로교(통합측)에서 발간한 한 권의 책자(제 77차 총회 보고서), 즉 두 분 하나님의 종들의 가르침을 정죄하고, 두 분들이 한국 내의 다른 단체들에게 나쁜 영향을 주었다고 비난함으로서 시작되었다. 처음에 우리는 그 책자의 내용들을 무시했었는데, 이는 그 내용들이 두 분 하나님의 종들의 가르침과 너무나도 거리가 멀고 또한 심히 왜곡된 것들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시간이 지날수록 그 책자의 내용들이 다른 그리스도인들에 의해 마치 사실인 것처럼 재인용되기 시작했다. 그러므로 「각지(지방) 교회들」의 대표자들은 그 책자의 허위성을 바로잡기로 결정했다. 양측은 최 목사가 주관하는 월간지 “교회와 신앙”에 각각 논쟁기사를 게재하기로 합의하였다. 본 토론은 1996년 8월에 시작하여 1998년 5월에 양측의 마지막 기사가 실렸으며, 양측이 각각 6 회씩 기사를 썼다. 이제 양측은 이 열 두 편의 기사들을 각 측이 정한 합당한 표제를 붙여 단행본으로 출간하기로 결정하였다. 또 한 ‘소개의 글’은 양측이 각각 쓰도록 합의하였다.
이 토론 기사들을 단행본으로 출판하는 각지(지방) 교회특의 동기는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으며 진리를 아는 데 이르도록 돕는데 있다(딤전 2:4). 그리스도 안의 믿는 이들로서 우리는 주님을 위해 당하는 핍박과 비방을 기쁨으로 여긴다(마 5:11-12). 그러나 성경은 또한 믿음을 위해 싸우라고 격려하며(유 1:3) “거역하는 자들을 온유함으로 징계할지니 혹 하나님이 저희에게 회개함을 주사 진리를 알게 하실까 하며”(딤후 2:25)라고 말한다. 이 권면의 영 안에서 우리는 본 토론을 사람의 가르침이 아닌 하나님의 말씀에 초점을 맞추려고 노력했다. 우리는 이 글을 읽는 모든 사람들이 하나님의 진리의 말씀을 탐구하고 이 글에 제시된 신앙을 하나님의 진리의 말씀과 비교해 보시기 바란다. 그럴 때 하나님의 왕국은 전진할 것이며 믿는 이들은 축복을 받을 것이다.
그리스도인들 사이의 논쟁은 오래 전부터 있었다. 16 세기의 종교개혁 이후로 활발한논쟁들이 많이 있었다. 그 원칙은 오늘날 본 논쟁의 경우에도 동일하다. 먼저, 주님은 그 분의 진리의 말씀에 대한 더 깊은 이해를 사람에게 주시며 그들은 새로운 이해를 전파하고 실행한다. 그럴 때 기성교회는 역사와 ‘정통’이라는 입장을 내세우며 진리의 새로운 표현을 반대한다. 얼마간의 마찰이 있은 후 기성교회는 그 새로운 단체가 없어지지 않을 것임을 알게 되고, 과거에 반대했던 것들을 전통적인 교회 실행의 일부로 받아들이게 된다. 이것은 최 목사가 대표하는 장로교의 경우에도 정확히 일치한다. 종교개혁 당시 캘빈은 기성교회(로마 천주교)에 의해 이단이며 정통을 벗어났다고 정죄 받았다. 그러나 캘빈과 수 세기 동안 그를 따랐던 사람들은 하나님이 그들의 인도자에게 보여주신 것은 진리라고 말하며 격렬하게 싸워왔다. 이 과정을 통하여 천주교의 전통 안에 묻혀 있던 성경의 많은 진리들이 밝혀졌다.
오늘날도 이 과정이 재연되고 있다. 지금 장로교의 최 목사는 워치만 니와 위트니스 리의 사역에 의해 밝혀진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새로운 이해를 억누르고 정죄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최 목사가 알아야 할 것은, 하나님의 말씀 안에 있는 진리의 새롭고 전진된 이해는 가끔 그리스도의 몸 안에서 마찰이 있다는 것이다. 만일 그렇지 않다면 종교개혁을 할 필요도 없이 개신교는 천주교로 돌아가야 한다. 그러나 최 삼경 목사는 종교 개혁 기간 동안 회복된 진리에 대한 천주교의 반응과 똑같은 반응을 보였다. 최 목사는 소위 “정통‘의 입지를 주장하며 그가 정통이기 때문에 옳고, 옳기 때문에 정통이라는 순환논법 안에서 논쟁했다. 과거의 천주교처럼, 최 목사도 성경적인 기준에 맞지 않는 자신의 믿음을 시험하기 위해 열린 마음으로 성경을 재검증하려고 하지 않는다. 그는 왜 자신의 관점이 ”정통“인가에 대한 자세한 설명을 하지 않으며 또한 자기와 일치하지 않는 모든 사람들을 정죄하는 새로운 교황이 되는 권한을 누구에게 받았는지 밝히기를 거부한다. 이런 태도는, 장로교인들이 서 있는 근거이며 종교개혁의 핵심원칙인 ’오직 성경‘(sola scriptura)에도 어긋난다.
우리는 지금까지 워치만 니와 위트니스 리의 사역에 의해 열린 진리를 강조하는 성경구절들을 제시하고, 그가 이것을 어떻게 해석하는지 검토하고 설명해 줄 것을 최 목사에게 계속해서 요청해 왔다. 만일 우리의 이해가 잘못 되었다면 최 목사는 하나님의 말씀을 사용하여 우리를 바로잡고 빛을 비춰 주어야 한다. 그러나 최 목사는 본문내용이나 우리의 이해와는 거리가 먼 의미를 위트니스 리의 글에 억지로 적용시키기 위해 말도 안되는 논리를 사용했다. 최 목사는 자신이 충분한 연구를 하지 못했음을 인정했으며, 그 결과 스스로 모순이 되는 몇몇 관점들을 우리가 지적하자 그는 자신의 관점을 수정했다. 이런 태도는 그의 편에서 불성실한 일이고 그가 자신의 능력을 과신했음을 보여준 것이다. 그러나 그의 글에서 가장 실망스러운 면은 그가 소위 “정통”이기 때문에 우리를 정죄하는 것이 정당하다고 고집스럽게 주장하면서도 최 목사는 자기 믿음의 성경적인 근거를 대지 못했다는 것이다. 우리는 그가 우리의 믿음을 검증하듯이 우리도 그의 믿음을 검증하였다. 그 결과 우리는 최 목사가 삼신론적이고 이단적인 삼위일체론을 가르친다는 유감스런 결론에 이르렀다. 우리가 이 결론을 폭로한 이래 한국내의 일부 사람들도 이것에 동조했다.
최 목사의 반대는 그가 소위 “신인합일주의‘라고 칭하는 것의 주변에서 맴도는 것처럼 보인다. 이것은 사람 안에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목표와 그 목표를 성취하기 위한 하나님의 경륜에 대한 최 목사의 근본적인 무지를 보여준다. 만일 최 목사가 ‘하나님의 정하신 뜻’(the whole counsel of God, 행 2:23)이란 말씀을 이해한다면, ‘하나님과 사람의 연합’에 대한 위트니스 리의 가르침을 정죄하지 않을 것이다.
사도 바울은 그의 사역이 “측량할 수 없는 그리스도의 풍성을 이방인에게 전하게 하시고 영원부터 하나님 속에 감취었던 비밀의 경륜이 어떠한 것을 드러내게 하려 하심이라 이는 이제 교회로 말미암아...(비밀)을 ...알게 하려 하는 것이라”(엡3:8-10)고 했다. 여기서 바울은 그의 사역의 목표를 분명하게 말했는데, 그것은 다음의 두 가지를 알게 하는 것이다.
첫째는 복음 자체이신 그리스도의 측량할 수 없는 풍성이고, 둘째는 하나님에 의해 감취어졌지만 이제 교회를 통해 알려진 비밀이 그것이다.
이 비밀은 그것의 성취를 위해 경륜 또는 계획을 갖는다. 신약에서의 이 두 가지 중심적인 주제들은 그리스도인 생활의 내용들로서 모든 그리스도인들에 의해 이해되어야만 한다. 최 목사의 글은 그가 이 두 가지의 주제들에 대한 이해가 부족함을 보여준다.
바울 사역의 첫 번째 주제는 그리스도의 측량할 수 없는 풍성을 복음으로 전파하는 것이다. 최 목사는 구속주와 구주로서의 그리스도에 대한 장로교인적인 이해는 가졌는지 모르지만 그리스도의 측량할 수 없는 풍성에 대한 체험에는 낯설은 것처럼 보인다. 그리스도의 풍성은 우리 안에 살아 계신 그리스도(골1:27)와 우리의 매일의 구원 안에서 우리에게 부요하신 그리스도(롬10:12)에 대한 주관적인 지식과 체험을 가리킨다. 최 목사는 믿는 우리들 안에 그리스도가 살아 계심을 인정해야 하며, 그렇지 않다면 그는 버리운 자로 정죄될 것이다(고후 13:5). 성경은 그리스도가 또한 우리 안에서 자라시며(엡4:13-16), 형상을 이루시며(갈4:19), 우리의 생명과 생활이 되심(골3:4, 빌1:21)을 계시하는 데까지 전진한다. 이러한 그리스도의 측량할 수 없는 풍성을 맛 본 믿는 이는 결코 그러한 값진 체험을 “신인합일주의”라고 비방할 수 없다. 최 목사는 왜 이러한 풍성들에 대한 위트니스 리의 사역을 성경과는 거리가 먼 이상한 학설이라고 왜곡시키는가? 우리는 최 목사가 이러한 체험들을 정상적인 그리스도인의 생활로서 인정하는지를 보기 위해 그에게 여러 차례 상세한 질문들을 던졌지만 그는 답변하기를 거절했다. 우리는 최 목사가 이러한 체험이 없든지 아니면 논쟁에서 이기기 위해 의도적으로 하나님의 진리를 억압하고 있다는 결론에 도달할 수 밖에 없다. 우리는 누가 내주하시는 그리스도를 소개하는 합당한 사역을 가졌는지 스스로 판단해 보도록 모든 독자들에게 호소한 바 있는 데, 이는 최 삼경 목사가 아니라 바로 위트니스 리인 것이다. 그리스도에 대한 주관적인 체험을 부인하는 최 목사가 제시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추상적인 신학이론에 대한 신학적인 논쟁들 뿐이다. 우리는 독자들에게 이 문제에 대하여 96년 10월 호, 97년 3월 호, 97년 9월 호 기사에서 우리가 최 목사에게 제기했던 질문들을 주의 깊게 살펴볼 것과 이러한 질문들에 대한 최 목사의 무반응을 주목하여 줄 것을 요청한다. 그렇게 한다면 독자들 스스로 판단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우리는 최 삼경 목사와 모든 독자들이 그리스도의 생명 안에서 ‘더욱’ 구원(롬5:10)될 수 있기를 진심으로 희망한다.
바울의 사역 안에서 두 번째의 주된 주제는 만세로부터 감취어온 비밀과 이 비밀을 성취하기 위한 하나님의 경륜 또는 계획에 대한 계시이다. 간단하게 말하면 이 비밀은, 이 땅에서 주님을 표현하고 대표하는(마 16:18) 주님의 몸(교회)이 되고, 장래에 주님의 신부가 되도록 (계21:2, 9-10) 모든 믿는 이들 안에 살고 표현되시는(골1:27) 그리스도이시다. 이것이 바로 창세로부터 감추어 졌으나 신약의 사도들에 의해 밝혀진 하나님의 의도이다. 하나님은 사람을 포함한 천지 만물을 이 뜻을 이루기 위해 창조하셨다. 하나님은 이 계획을 수행하기 위해 많은 일들을 하셨는데 성경은 이 계획을 「하나님의 경륜」이라고 부른다(엡1:9, 3:2,9, 딤전1:4). 하나님은 다만 사람을 구속한 다음 죽은 후에 하늘에 데려가기 위해 사람을 창조하지 않으셨다. 이런 피상적인 이해는 믿는 이들로 하여금 구원의 참된 의미를 모르게 했으며 하나님의 목표를 이루는 데 방해가 되었다. 최 목사의 장로교 신학은 하나님의 구원의 목표를 무시하고 있다. 최 목사는 하나님의 구원의 목표를 보지 못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그 목표를 이루기 위해 거치신 주요 과정들을 합당하게 이해할 수 없다. 그 결과 최 목사는 삼일 하나님, 사람의 본성, 하나님의 구원의 본질, 그리고 교회의 합당한 출현에 대한 안목이 부족하게 되었다. 바울의 말에 의하면 최목사는 진리에 관하여 빗나갔다(딤후 2:18). 이런 상태는 그가 위트니스 리를 비판하는 그 분야에 해당하는 성경을 정직하게 연구함으로써 치료될 수 있다.
하나님의 삼일성에 관하여 최 목사는, 위트니스 리가 ‘변형된 양태론’을 가르침으로 이단이라고 주장한다. 신학의 역사를 연구하는 것은 복잡한 일이며 대다수 믿는 이들에게는 불가능한 일이다. 따라서 최 목사의 글을 읽는 독자들은, 최 목사가 많은 공부를 했고 이런 복잡한 주제를 이해할 수 있으므로 자신들은 그저 최 목사의 말을 믿기만 하면 된다고 생각할 것이다. 이것이 교회 안에서 평신도를 지배하는 성직자에 대한 논쟁의 뿌리이다. 그러나 성경은 모든 믿는 이들이 직접 이해할 수 있도록 분명하고 간단하다. 이런 말은 최 목사의 직업에는 위협적이지만 그리스도의 몸을 건축하기 위해서는 이미 알려진 사실이다. 하나님에 관하여 성경은 ‘셋’의 면과 ‘하나’의 면을 모두 보여 준다. 그러므로 삼(three) 일(one) 하나님이라는 단어는 성경의 가르침을 그대로 표현한 것이다. 역사적으로 볼 때, 한 방면을 무시하고 다른 방면을 지나치게 강조함으로써 잘못된 일이 있었다. 성경과 동일한 말을 하려면 우리는 두 방면 모두를 인정해야 한다. 워치만 니와 위트니스 리는 분명하고 절대적으로 두 방면을 인정하며, 성경에서 말씀하신 그대로 믿는 데 있어서 균형 잡혀 있다. 메시지를 전할 때 어떤 전파자라도 한 방면 또는 다른 방면을 강조할 수 있으며 또한 어느 한 방면을 설명하기 위해 예를 들 수 있다. 그런 부분을 본래의 문맥에서 따로 분리시키면 얼마든지 오해 받을 수 있다. 예를 들면, 성 어거스틴은 삼일성에 관한 그의 가르침이 한 때는 이 방면에서, 어느 때는 다른 방면에서 잘못되었다고 정죄 받았다. 그러나 공정한 학자라면 그가 삼일성에 관한 합당한 가르침의 근원이라고 생각한다. 동일하게 위트니스 리도 문맥에서 분리된 단락이나 예를 사용하여 정죄 받고 있다. 최 목사의 불공정한 비판은 시간의 심판과 참된 학자 앞에 서지 못할 것이다.
우리 측이 위트니스 리가 인용한 성경구절들을 제시하며 삼일성의 이해에 관한 그의 공헌에 대해 토론하려고 했으나 최 목사가 이런 기회를 거절한 것은 애석한 일이다. 예를 들면, 위트니스 리는 그리스도께서 땅에서 인생을 사는 동안 아버지께서 아들과 함께, 심지어 아들 안에 계셨다고 분명하게 말하는 구절이 요한복음에 여섯 구절이 있음을 지적한다(요8:16, 29, 14:10-11, 20, 17:21). 셋이 서로 안에 상호내주(상호내재)하는 사실은 삼일 하나님을 아는 데 있어서 중요한 전진이다. 이것은 우리가 하나님의 셋과 하나의 방면을 어떻게 이해하는가를 결정하는 관건이며 이것이 교회의 하나됨을 가져온다(요 17:21-22). 만일 최 목사가 이것에 동의하지 않는다면 그는 이 구절들을 어떻게 해석하는지 직접 밝혀야 할 것이다. 이 구절들에 근거하여 우리는, 셋은 구별되지만 서로 안에 거하시므로 분리되지 않는다고 말한다. 그러나 최 목사는 이것을 ‘변형된 양태론’이라고 말하며 성경근거를 전혀 대지 않은 채 정죄했다. 그는 자신의 전통적인 이해에 따라 계속 말하기를, 분리되고 구별되는 ‘셋’이 있다고 했다. 성경에 의한 우리의 대답은, 만일 ‘셋’이 분리된다면 이미 말한 진리에 어긋나며 ‘세 하나님들’이 된다. 이것이 최 목사가 가르치는 삼신론의 이단이지만 위트니스 리를 향한 그의 정죄 아래 감추어져 있다. 이런 결론에 대한 최 목사의 유일한 대답은 그가 소위 ‘정통’이기 때문에 이단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는 자신이 그렇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성경을 무시하며 자신이 믿는 모든 것이 소위 정통이라고 상상하고 있다. 이것은 그리스도인의 합당한 태도가 아니며 더구나 남의 잘못을 찾아내는 사람의 태도는 더욱 아닌 것이다.
같은 방식으로 최 목사는, 하나님이 삼일이시기 때문에 사람 안에 들어오실 수 있으며 그 안에 살 수 있다는 사실을 조롱한다. 이 방면을 설명하기 위해 위트니스 리는, 수박이 잘라져서 쥬스가 되어 사람 안에 들어온다는 비유를 사용했다. 그분은 십자가 위에서 잘라졌으며 죽음과 부활의 과정을 거쳐 생명 주는 영이 되어(고전 15:45) 사람 안에 들어오셨다. 이 비유는 하나님의 경륜의 한 방면만을 설명한 것인데 최 목사는, 수박 하나님이 쥬스 하나님이 되었으므로 우리가 하늘에 갈 때 하늘에는 하나님이 안 계실 것이라고 말하며 위트니스 리의 수박비유를 정죄했다. (주:율법주의자들은 삼일하나님에 대한 비유자체를 경건하지 않다고 본다) 그러므로 이러한 최 목사의 태도와 의견은 너무나 지나친 언어도단이다. 한가지 예를 가지고 이단 운운하는 결론에 도달할 정도로 어리석은 독자가 천 명 중 한 명이나 있다고 생각하는가! 최 목사는 과연 위트니스 리가 하나님을 수박 하나님이라고 믿는다고 생각하는가? 이것은 우리의 지성과 독자들에 대한 모욕이다. 위트니스 리는 성경에 근거한 분명한 많은 말로 자신의 신앙을 밝혔다. 위트니스 리를 왜곡하기 위해 단편적인 예를 사용한 것은 완전히 무지하든가 아니면 악한 의도가 있는 것이다.
사람의 본성 또한 최 목사가 오해하고 있다. 성경은 분명하고도 일관성 있게 사람이 영과 혼과 몸의 세 부분으로 되어 있음을 가르친다(한국에 있는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이 진리를 믿고 있다). 이런 구조는 영이신 하나님이 사람의 영 안에 들어오시기 위한 것이다. 이것은 사도들과 초대 교부들의 가르침이다. 교회가 사람에게 영적 차원이 없다고 생각하는 이교도들을 따르게 된 것은 세상철학이 출현한 이 후부터이다. 그러나 최 목사는 사람에게 두 부분만 있다고 주장한다. 이것을 증명하기 위해서 그는 사람의 세 부분을 지속적으로 말하는 헬라어에 대한 몇 개의 예외 적인 구절들을 발견했다. 그리고 그는 그 몇 개의 예외 구절들을 사용하여 성경의 분명한 가르침을 무시했다! 이것이 공정한 것인가? 더욱이 기가 막힌 사실은 그가 사람 안에 있는 영을 부인함으로써 하나님이 사람 안에 거하며, 모든 영적 풍성들을 전달하기 위해 창조하신 그 수단을 부인한 것이다! 그렇다면 사람은 하나님 없이 이 세상에 살면서 스스로 노력하여 선한 일을 하고, 도움을 구하는 기도를 멀리 계신 하나님께 드리는 천연적인 기관 안에 남아 있게 된다. 이것이 비록 최 목사의 신앙 생활 태도이지만 이것은 성경에 있는 것도 아니며, 우리의 영적 누림을 위한 그리스도의 측량할 수 없는 풍성을 체험함에 따른 것도 아니다. 최 목사처럼 믿는 것은 사람을 공허함과 인간적 약함에 따른 절망 안으로 인도할 뿐이다. 이것은 바울이 말한 건전한 가르침이 아니다(딤전 1:10, 딤후 1:13).
이러한 예를 통하여 우리는, 사람과 관련된 하나님의 경륜에 대한 이상의 부족이 얼마나 최 목사로 하여금 위트니스 리의 가르침을 오해케 하고 그 가르침을 다른 사람들에게 왜곡시키고 있는가를 알 수 있다. 우리는 과거처럼 최 목사의 잡지에 각각 세 번의 글을 싣는 추가토론을 계획하고 있으며 이 내용도 단행본으로 출판할 계획이다. 사려 깊은 독자들은 왜 우리가 추가토론을 함으로써 더 왜곡 당하려 하는지를 물을지도 모른다. 그 이유는 간단하다. 우리는 추구하는 모든 분들에게 하나님의 경륜에 관한 진리를 분명하게 제시하기를 원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신실하고 정직한 많은 독자들이 이 글들을 읽으리라고 믿는다. 이것은 성경에 기초한 그리스도의 풍성을 독자들에게 공급할 것이다. 최 목사의 모든 말은 우리의 확증된 말에 의해 점검될 것이다. 우리는 독자들의 비교를 환영한다. 우리는 많은 분들이 어떻게 그리스도인의 생활을 할 것인지에 대해 분명한 결론에 이르도록 도울 것이며, 우리처럼 워치만 니와 위트니스 리의 사역 안에서 풍성한 공급을 발견하게 될 것을 확신한다. 두 분 하나님의 종들의 저술들은 많은 서점 또는 모든 각지(지방) 교회들을 통해 구입할 수 있다. 하나님께서 모든 독자들을 축복하사 하나님의 약속하신 모든 진리에 이르게 하시기 바란다. 아멘.
1998. 7.15
캘리포니아, 플러톤에서. 다니엘 토울(Daniel Towle)
출처 : 믿음을 위한 싸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