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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V. 원세호님의 지방교회 「기독론」 비판에 대한 재반박(下)

 

6. 원세호님의 지방교회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양태론적 주장>비판에 대한 재반박


앞에서도 여러 번 지적했듯이 원세호님의 비판은 체계가 없다. 같은 내용이 계속 중복된다. 어떤 특정 제목을 달아 반박하지만 정작 내용은 그 제목과 상관없는 것도 많다. 이번 항목도 예외가 아니다. 그러나 일단 독자들의 비교 분별을 위해 원세호님의 각 비판 항목들을 열거하고, 그에 대한 반박 글을 차례로 쓰도록 하겠다. 이런 과정에서 내용이 유사하면 한 데 묶을 것임을 미리 말해둔다. 이번에는 원세호님의 글을 먼저 소개하겠다. 그리고 위트니스 리의 글은 필요하면 반박 글에서 필요 부분만을 인용하는 형식으로 소개하고자 한다.


1) <원세호님 비판: ① '이제 예수는 영이시다 그는 공기와 같은 신선한 분이시다. 우리는 오, 주여, 또는 아멘 할렐루야를 외칠 때 모든 풍성을 공급하는 생명 주는 호흡으로 받아들게 된다'라고 '워치만 니'는 주장했다. 이 주장은... 이전에 이미 인간의 영 안에 들어와 모든 것이 되었다고 하였으면서 오 주여 할 때 받아들인다 함은 전후가 모순인 주장이다. 또한 위의 주장은 성경 근거가 없는 거짓된 주장이다.>


** 반박: 위트니스 리는 <① "우리가 그를 믿을 때 그는 영으로서 우리의 가장 깊은 곳인 영 안에서 들어와 우리의 생명과 모든 것이 되셨다... 우리가 오 주여, 또는 아멘 또는 할렐루야하고 외칠 때 우리는 그를 모든 풍성을 공급하는 생명 주는 호흡으로 받아들이게 된다">(22(정상적인 교회 생활). p. 33, 하 4-1)고 한다.


이에 대한 원세호님의 비판 요지는 '주님이 이미 우리 영 안에 계신다고 하면서 오 주여 할 때 뭘 또 주님이 우리 안에 들어온다고 하느냐'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주님이 우리의 깊은 속에 있는 영 안에 생명으로 영접되신 후, <영으로부터 혼으로, 다시 혼으로부터 몸으로 자라가시는 것>을 모르기 때문에 하는 말이다. 주님을 영접할 때 주 예수님은 '하나님의 씨'(요일3:9)로서 영 안에 들어와 우리의 영과 연합되신다(고전6:17). 그 다음엔 우리의 믿음의 동역을 통해 우리의 영으로부터 혼을 포함한 마음(heart)으로 그분의 거처를 확대하신다(엡3:17, 갈4:19). 이런 생명의 자람의 결과, 우리는 우리의 영과 혼은 물론 우리의 몸까지 그분의 영광으로 흠뻑 적셔지게 될 것이다(빌3:21, 히2:10). 이것이 신약성경이 계시하는 믿는 이들의 생명성숙의 과정이요(막4:26-29), 구원의 과정이다(롬5:10, 요3:6, 벧전1:9원문, 롬12:2, 롬8:23, 빌2:12, 롬13:11, 히2:10).


하나님 스스로는 더 이상의 자람이 필요 없는 완전한 분이시다. 그러나 성경은 주님이 그분 자신을 우리에게 생명으로 주시고 더욱 풍성하게 주신다고 말한다(요10:10하). 그렇다면 이토록 계속 더해지는 생명의 증가가 우리 안에서 어디서 어떻게 이뤄지느냐 하는 문제이다. 엡1:23, 막4:26-29, 고전3:6-7, 엡2:21(원문은 동사가 '아욱사노'(837)로서 '자란다'(grow)임), 롬8:10, 6, 11, 벧전2:5 등은 <생명의 자람>이 <사람의 영 안에서 혼으로 그리고 다시 혼으로부터 몸으로> 이어짐을 말해준다.


원세호님은 무엇보다도 성경이 말하는 <생명>(조에) 자체에 대한 깊은 인식이 먼저 필요한 것 같다. 한국복음서원 발간 <생명의 인식> <생명의 체험>등의 생명 관련 책자에 대한 일독을 권하고 싶다(http://mall.kgbr.co.kr/). 또한 다음과 같은 자료들도 참고하기 바란다(https://www.localchurch.kr/1087), (The Experience of Christ as Life for the Building Up of the Church).


2) <원세호님의 비판: ② '그 분은 십자가로 가셨고 거기서 죽으셨다. 그 분은 '부활 안으로' 들어가셨다 라고 주장하는 지방파의 주장은 잘못되었다. 예수님은 부활 안으로 들어가신 것이 아니라 죽음 상태에서 다시 살아난 부활을 하신 것이지 부활 안으로 들어갔다는 것은 거짓 말이다. ...성경 어느 곳에도 부활 안(헨)에는 없는 주장이다. 부활 안에 들어갔다는 말은 거짓 말이며...특히 예수 그리스도는 생명 주는 영으로 사신 하나님이라 주장하므로 예수 = 생명 주는 재림하신 하나님(성령)이 되는 것이다.>


** 반박: 이것은 예수님이 부활하셨을 뿐 아니라(롬1:4), <부활 자체>이심을 모르는 무지에서 나온 비판이다. 주님은 <나는 부활이요(I am the resurrection)>라고 하셨다(요11:25). 주님 자신이 부활이시다. 더 나아가 성경은 주님이 부활하실 때 허물로 죽은 우리도 함께 죽음에서 일으켜져서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하늘에 앉히셨다고 말한다(엡2:5-6). 그러므로 성경이 말하는 <부활>은 다만 예수님이 죽었다가 살아나셨다는 <역사적인 사건>만이 아니다. 이에 더하여 부활은 <인격>이시고 더 나아가 <우리도 포함된 하나의 영적인 영역>이기도 하다. 요14:19-20은 부활이 하나의 영역임을 말해 준다. 이것을 이해한다면 썩어질 <예수님의 인성>이 하나님의 신성한 능력으로 인해 사망의 권세를 이기고 부활하신 것을 부활 (영역)안으로 들어갔다고 표현해도 큰 잘못이 없음을 알게 될 것이다.


이러한 <부활 영역> 안으로 들어가는 체험은 주님의 인성 뿐아니라 심지어 오늘날 우리도 맛 볼 수 있다. 원세호님과 독자들은 빌3:10, 고전15:31, 롬8:6을 함께 두고 잘 묵상해 보기 바란다. 원세호님은 주 예수님이 부활 후 생명주는 영으로 우리 안에 오신 것을 가리켜 '재림' 운운함으로 독자들을 주님의 다시 오심인 재림(행1:11)과 혼동시키지 말기 바란다. 이것은 핵심에서 벗어난 비판이다. 물론 지방교회측 가르침도 아니다.


3) <원세호님의 비판: ③ 요한복음 20:22절을 '거룩한 공기를 받으라'고 주장하며, 기독교 성경은 "...숨을 내 쉬며 가라사대 성령을 받으라"고 되어 있는데, 거룩한 공기를 받으라'라는 식으로 둘 다 맞는다고 거짓을 말한다. 성령은 신격을 말하고 공기는 자연 현상물이 아닌가? 하나님이신 성령님을 무형의 피조물에 비하시키는 해석은 신성 모독한 적용으로 아주 잘못 되었다.>


** 반박: 먼저 이에 대한 위트니스 리의 본문을 소개하고 반박해 보겠다.


<위트니스 리의 주장: ③ "요한복음 20장 22절에는「거룩한 공기를 받으라」고 쓰여있다. 이 헬라어 단어 뉴마는 영이나 호흡으로 번역할 수 있다. 거룩한 영을 받아라 혹은 거룩한 호흡을 받으라고 말하는 것은 둘 다 맞는 말이다. 오늘날 그 영은 우리의 호흡이다. 이 호흡은 예수이시며 성육신 된 말씀으로 십자가로 가시고 부활 안에 들어가시고 하늘에 승천하신 분이다. 그 후 그 분은 생명 주는 영으로서 우리에게 되돌아 오셨다"(28.(생명의 메시지) p. 27, 하 1-5줄).>


무엇보다도 원세호님은 자신의 말을 임의로 첨가하여 다른 사람의 글을 인용하는 일을 삼가기 바란다. 위트니스 리는 "...거룩한 영'(성령)을 받으라 혹은 거룩한 [호흡]을 받으라...는 둘 다 맞는다" 고 하고 있다. 그런데 원세호님은 이것을 "...거룩한 [공기]를 받으라 ...는 둘 다 맞는다"라고 함으로 <호흡>을 <공기>로 임의로 고쳐서 인용하고 있다. 또한 요20:22의 본문이 '거룩한 공기를 받으라' 라고 쓰여 있다는 대목도 위트니스 리가 그 단어원문이 (프)뉴마 임을 알고 있고 이 단어가 '영' 또는 '호흡'으로 번역될 수 있다고 했음으로 크게 문제 삼을 일도 아니다. 결정적인 것은 회복 역 성경은 위 요20:22 을 '...He breathed into them and said to them, Receive the Holy Spirit'로 잘 번역하고 있다는 점이다(회복역 본문). 그러므로 충분한 연구도 없이 단어 표현 하나를 붙들고 신성모독 운운하며 과장되게 반응하지 말기 바란다.


4) <원세호님의 비판: ④ 그 분은 보혜사로서 돌아와 그들 안에 계시겠다는 약속을 성취하셨다는 지방파의 주장에서 그 분은 예수 그리스도이시고 보혜사로 오신 것은 성령으로 오셨으니 예수 그리스도=보혜사 성령인 것이다. 성경 요한복음 14:16은 또 다른 보혜사라 하여 예수님과 종류가 다른 존재를 의미하며 예수 자신을 의미하지 않는다.> <(22) 예수는 부활 안에서 또 다른 보혜사가 되셨다는 주장이다. ...육신으로 보혜사였던 그리스도께서 또 다른 보혜사가 되셨다는 주장은 육신의 보혜사 예수 = 또 다른 보혜사 성령이 되신다. 큰 잘못이다. 그 이유는 요14:16의 또 '다른'이란 은 ... 종류의 차이에 다른, 같은 것이 아닌 다른 이란 뜻이다....그러나 잘못된 것은 예수 보혜사=성령 다른 보혜사이므로 거짓된 주장이 된다.>


** 반박: 우선 위트니스 리 본문을 인용하고 뒤에서 반박하겠다.


<위트니스 리: ④ "그 분은 보혜사로서 돌아와 그들 안에 계시겠다는 그 분의 약속을 성취 하셨다"(28.(생명의 메시지). 121 , 하 1).> <(22) "그 분은 육신 안에서 보혜사이셨지만 부활 안에서 그 영이 되셔서 또 다른 보혜사가 되셨다. 이 영이 실제의 영이신데 그리스도의 실제이다. 그 분이 실제의 그리스도, 실제의 예수다"(11.(그영) p. 21, 16-19).>


우선 위 원세호님의 <보혜사 예수=또 다른 보혜사 성령> 이란 말만 들으면 양태론 주장처럼 들릴 수 있다. 그러나 이것 역시 <구별된 삼위가 상호내재 하시는 한 분 하나님>이란 본질적인 하나님의 존재형태를 전제로 읽고 이해해야 한다. 즉 <보혜사 예수>라고 할 때 그 안에 구별된 삼위가 다 계신 '예수'이며, <또 다른 보혜사 성령>이라고 할 때도 그 안에 구별된 삼위(아버지, 아들, 성령)가 다 계신 '성령'이신 것이다. 그러므로 인용 원문 전후문맥에서 보면 위트니스 리는 위 요14:16-17, 15:26, 16:13, 15 본문을 말하면서 아울러 삼위일체 진리를 상세하게 다뤄주고 있음을 원세호님도 인정할 것이다(그영, 18-22쪽). 그럼에도 이처럼 특정 문장만 떼어내서 비판하면 무슨 큰 문제나 있는 것처럼 보일 수 있다.


<보혜사>와 <또 다른 보혜사>를 언급하는 요한 복음 14장은 이해하기가 쉽지 않은 말씀이다.


즉 요14:16은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하시리라'고 말한다. 17절은 이어서 '...저는 너희와 함께 거하심이요 또 너희 속에 계신다'고 하고 바로 이어서 18절은 '내가 너희를 고아와 같이 버려두지 아니하고 너희에게로 오리라'고 했다. 그 다음 19절은 '조금 있으면..너희는 나를 보리니..이는 내가 살았고'라고 한다. 이어서 20절은 아버지, 아들, 우리가 서로 안에 거하는 상호내재를 말하고, 23절은 아버지와 아들이 주님을 사랑하는 사람들 안에 오셔서 거처를 정하시겠다는 약속의 말씀이 있다. 그 이후에도 28절은 '내가 갔다가 너희에게 온다 하는 말을 너희가 들었나니..'라고 말함으로 전체 문맥은 보혜사로서 현재 말씀하시는 주 예수님이 곧 다시 오셔서 우리 안에 거처를 정하시겠다는 것이다.


만일 이 다시 오심을 주님의 재림으로 해석하면 그 사람은 지금 생명 되신 주 예수님이 아직 안 계신 고아요 생명 되신 아들 하나님이 그 안에 아직은 없게 된다(요일5:11). 더구나 성령님 안에 예수님은 안 계신다고 원세호님처럼 삼위를 분리시켜 믿으면 더욱 그렇다.


따라서 <보혜사> 또 <다른 보혜사>는 고전15:45의 <마지막 아담>과 <생명주는 영>과 대비되는 개념으로 위트니스 리처럼 이해하는 것이 더 본문 문맥에 합당하다. 이 주제는 '지금 주는 영이시니' 라는 고후 3:17의 말씀을 제대로 이해하는 것과 관련이 있다(회복역 각주).


5) <원세호님의 비판: ⑤ 예수님은 하나님, 구속자, 구원자, 주, 주인, 아버지이시고, 주는 영이시다 라고 주장하면 예수=하나님=아버지=영이 된다.> <⑥ '만유를 포함한 성령인 그 분 자신을 마시도록 하신다' 라고 지방파가 주장하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성령이라 거짓을 증거하는 것이다.> <⑦ '공기 같은 영이신 그리스도가 믿는 이들을 거듭나게 하기 위해' 라고 지방파가 주장한다. 그러나 거듭나게 하는 역사는 성령님의 역사임은 요3:3-6절이 그 증거인데, 예수 그리스도께서 거듭나게 한다니 예수 그리스도=성령 (그 영, 하나님)이 되니 거짓이다.>


** 반박: 이 부분도 <위트니스 리의 본문>을 우선 인용하고 반박해 보겠다.


<위트니스 리 주장: ⑤ "그 분은 우리의 하나님, 우리의 구속자, 우리의 구원자, 우리의 주, 우리의 주인, 우리의 아버지이시다. 그 분은 만유를 포함한 생명 주는 영이시다"(28.(생명의 메시지) p. 133, 하 1-3).> <⑥ "모든 믿는 이들은 공기 같은 그리스도 안에서 한 몸 안으로 침례 받음. 그리스도는 모든 믿는 이들이 공기 같은 그리스도이신 그 분 자신 안에서 한 몸 안으로 침례 받아 만유를 포함한 성령인 그 분 자신을 마시도록 하신다. 이렇게 하여 그 분은 그들의 생명 공급이 되시며 그들은 그들의 생명 분배를 누린다(고전12:13)"(31 (하나님의 경륜과 분배하심). p. 87, 4-7줄).> <⑦ "공기 같은 영이신 그리스도가 믿는 이들을 거듭나게 하기 위해 하나님의 맏아들과 생명 주는 영이 되어 우주적인 하나의 큰 출산 안에서 그들을 그 분과 함께 하나님의 많은 아들들로 만드실..."(39.(그 책임을 이행하는가?) p. 26, 3-5).>


우선 하나님의 아들이신 주 예수님이 <우리의 구속자, 우리의 구원자, 우리의 주, 우리의 주인> 이라는 말은 문제가 없다. 그리고 주님이 <우리의 아버지이시다>라는 표현은 이사야 9:6의 '한 아들...영존하시는 아버지라' 본문 그대로이다. <그 분은 만유를 포함한 생명 주는 영이시다>라는 표현도 고전 15:45의 '마지막 아담은 생명주는 영이 되었나니' 와 고후3:17의 '주는 영이시니'라는 성경 본문에 근거한 표현이다. 그럼에도 원세호님이 이 사실을 부인하면 자신이 바로 성경을 부인하는 장본인임을 알아야 한다.


또한 믿는 이들을 거듭나게 하는 분은 성령이지 주 예수님이 아니라는 원세호님의 주장도 비성경적이다. 원세호님이 거듭남의 근거구절로 인용한 요3:3-6 본문은 'Holy Spirit'(성령)이 아닌 'The Spirit'(그영)이다. 여기서 '그 영'은 원세호님의 오해처럼 아버지와 아들 하나님은 제외된 제 3격 성령만이 아니다. 오히려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님이 구별되시게 상호 내재하시는 분으로서 인간이 되셨다가 죽고 부활하심으로 생명 주는 영이 되신 바로 그분을 말하는 것이다(고전15:45). 거듭남은 생명 되신 하나님의 아들이 우리의 영 안에 들어오셔서 우리 영과 한 영으로 연합되신 것이다(고전6:17). 그렇다면 어떻게 아들 하나님을 제외시키고 성령의 역사만으로 거듭남을 말할 수 있는가?


원세호님은 '거듭남' 같은 가장 기본적인 진리인식 조차 오해가 있는 것 같다. 거듭남에 대해 좀 더 자세하게 알기 원하는 독자들은 http://www.regenerated.or.kr/life/index.html 를 참조해 보기 바란다.


6) <원세호님의 비판: ⑧ '양자강 물에 목욕하고 차를 마시는 것과 같이 우리는 영을 감싸고 영은 우리를 감싼다'는 주장은 크게 잘못된 것이다. 그 이유는 예수는 물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리스도와 성도가 몸에 거할 때는 그리스도와 '따로' 거한다고 성경이 증거 하므로 양자강 물 마시듯 한다는 것은 거짓 주장이 된다(고후5:6).>


** 반박: 원세호님은 국어문법중 하나인 '직유법'을 잘 이해할 수 있으면 좋을 것 같다. 이것은 A와 B가 특징적으로 유사성이 있다는 것이지, A=B 라는 말이 아니다. <마치..와 같다>고 했지 <예수님은 곧 양자강 물 아니면 차 물이다> 라고 한 것이 아니지 않는가? 그리고 성경 어디에 그리스도와 성도가 몸 안에 거할 때 '따로' 거한다고 되어 있는가? 원세호님이 인용한 고후 5:6에서 바울이 말한 '몸'은 그의 육신의 몸을 가리키는 것이며 에베소서 1:23이 말하는 그리스도의 비밀한 몸 곧 교회를 가리키는 것이 아니다. 이것은 고후 5:1에서 자신의 몸을 무너질 '땅에 있는 장막 집'이라고 한 것과 함께 놓고 보면 더욱 분명해진다. 우리의 육신의 몸은 무너질 수 있으되 부활 안에 있는 '그리스도의 몸'은 누구도 무너뜨릴 수도 없고 이길 수도 없음을 원세호님은 알기 바란다(마16:18). 원세호님은 교회론을 말 할 때도 <건물교회>라는 표현을 쓰더니, 이제는 무너질 장막에 불과한 바울의 육신의 몸을 그리스도의 몸으로 오해하고 있다. 이것은 원세호님의 교회론에 심각한 결함이 있다는 것을 증명한다.


성경이 계시하는 그리스도의 몸과 그 안에서의 주님과 성도들의 관계는 원세호님의 오해처럼 따로 떨어진 것이 아니라 '상호내재 방식'이다. 아직은 우리의 온 존재가 이런 실제 안에 있지는 않다. 그러나 적어도 우리의 거듭난 영은 주님과 상호내재의 실제 안에 있다. 이에 대해서 요14:20, 고전6:17 본문을 참조하기 바란다.


7) <원세호님의 비판: ⑨ 영이신 그리스도 그 분은 7배나 강화된 영 성령이 되셨다함은 그리스도 영 = 성령이라는 주장으로 크게 잘못 되었다.>


** 반박: 원세호님은 영 이야기만 나오면 무조건 그것이 성령만을 가리킨다고 오해하고 있다. 그러나 그렇지가 않다. 만일 고전15:45 의 '생명 주는 영'을 아들과 아버지는 제외된 제 3격 성령이라고 <원세호님 식>대로 이해한다면 큰 문제가 생긴다. 즉 마지막 아담(2격) =성령(3격)이 되어 삼위 양식론이 되고 만다. 그러나 위트니스 리는 '그 영'을 삼신론적으로 이해하지 않는다. <구원의 경륜을 위해 역사하시는 아버지, 아들, 성령>은 한 위격을 따로 언급할 때에도 각기 다른 두 위격이 구별되나 분리되지 않는 방식으로 상호 내재하시는 온전한 하나님이시다. 원세호님은 이 말 뜻이 무엇인지 차분히 연구해 볼 필요가 있다.


성경에 '칠배로 강화 된 영'이란 표현은 물론 없다. 그러나 계시록에도 적어도 네 차례에 걸쳐서 <일곱 영>(seven Spirits)이란 표현이 나온다(계1:4, 3:1, 4:5, 5:6). 그렇다면 이 영은 어떤 영인가? 일곱 분의 성령이 계시다는 말은 물론 아닐 것이다. 어떤 단체는 이것을 이사야 11:2를 근거로 설명하나 계시록 전체 문맥과 맞지 않는 해석 방식이다. 그렇다면 가장 안전한 것은 일곱이라는 숫자를 존재가 아닌 기능이 강화된 것으로 해석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칠배로 (기능이) 강화된' <영>이란 말을 하는 것이다. 위트니스 리는 이러한 내용을 그의 계시록 1:4 각주 5를 포함한 'seven Spirits' 주석에서 상세하게 설명하고 있다(회복역 각주). 원세호님은 위트니스 리 원문에는 '..칠배로 강화된 영' 뒤에 <성령>이란 말이 없음에도 임의로 추가한 후 <그리스도 영 = 성령이라는 주장한다>고 정죄 하고 있다. 임의로 내용을 변개 하지 말라. 위트니스 리가 성령이라 하지 않고 단순히 그 영이라고 한 데에는 다 이유가 있다.


<위트니스 리: ⑨ "그 분의 유기적인 구원을 강화하기 위해 영이신 그 분은 칠 배로 강화된 영이 되셨다"(39(그 책임을 이행하는가. p. 39, 12-13)>.


8) <원세호님의 비판: ⑩ '예수 그리스도는 로마서 9:5절대로 세세에 찬양 받으실 하나님이다. 그리고 온 우주에는 오직 한 하나님이 계신다(사45:5; 고전8:4; 딤전2:5)등 성경이 증거 한다' 라고 지방파가 증거 하는데 그것은 잘못 알고 있는 것이다...사 45:5절은 여호와 외에 다른 신들이 없다는 것이며... 고전8:6절은 아버지 하나님이 한 분이란 교훈 증거이며 딤전2:5은 성부 하나님이 한 분이라는 뜻이며 성자 하나님이 한 분이 아니란 뜻이 아니다. 그러므로 지방파의 주장은 그리스도 = 성부 = 그 영 성령이라는 것이 된다.>


** 반박: 원세호님은 주 예수님이 하나님이신 사실(롬9:5)과 우주 안에 오직 한 분 하나님이 계심을 부인하는가? 바울은 성부 하나님이 두분 또는 세분이시라고 믿는 사람이 있을까봐 고전 8:6, 딤전 2:5에서 <성부는 한 분>이시라고 말한 것이 아니다. 원세호님의 주장 요지가 분명하지 않다. 먼저 위트니스 리의 주장을 소개하고 원세호님이 오해하는 부분을 해명해 보겠다.


<위트니스 리 주장: ⑩ "첫째로 성경은 우리에게 그리스도가 온전한 하나님이라는 것을 말한다. 로마서 9장 5절은 '그리스도는 만물 위에 계셔 세세에 찬양을 받으실 하나님이시니라'고 말한다. 온 우주에는 오직 한 하나님이 계신다(사45:5; 고전8:4; 딤전2:5). 이 유일한 하나님은 참되시며 진실하시며, 살아 계신다. 그리스도 자신이 바로 이 하나님이시다. 그리스도는 온전한 하나님이시다. 단지 하나님의 일부가 아니다">(16.(그리스도를 체험하는 비결) p. 8, 하, 1-3 ; p. 9, 1-3).


위 내용에서 위트니스 리가 롬 9:5를 근거로 그리스도가 온전한 하나님이심을 말한 것은 성경적이다. 오직 여호와의 증인들만 이것을 반대한다. 또한 우주 안에 한 분 하나님이 계심도 성경적 사실이다. 다만 삼신론자들만 이것을 반대한다. 그들에겐 하나님이 세분이다. 그래서 삼신론이다. 그러나 사45:5, 고전8:4, 딤전2:5 등은 하나님은 한 분이심을 증거하고 있다.


아마도 원세호님의 오해는 <그리스도 자신이 바로 이 하나님이시다.>에 있는 것 같다. 그러나 이 말씀도 전혀 문제될 것이 없다. 왜냐하면 '그리스도는 하나님이시다' 라고 할 때 아버지, 성령님도 구별되나 분리되지 않게 그 그리스도 안에 상호내재 하신다고 이해함으로 다른 두 위격을 배제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만일 <우리에게는 한 하나님 곧 아버지가 계시니> 라는 고전8:6의 말씀을 '아버지만 하나님이시다' 그러므로 '아들이나 성령은 하나님이 아니다'라는 의미로 이해하면 문제가 심각해 진다. 또는 <아들과 성령과 아버지는 각각 다른 세분 하나님들이시다>. 그런데 고전8:6은 이 중에서 특히 <아버지가 한 하나님이시다 라는 의미다>라고 생각한다면, 이것이야말로 삼신론 이단 사상이다. 원세호님은 지금 자신이 이러한 삼신론에 빠져 있지 않은지 깊이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9) <원세호님의 비판: ⑪ 요일 2:23은 '아들을 부인하는 자에게는 아버지가 없되 아들을 시인하는 자들에게는 아버지가 있느니라'이며 아들을 갖고 아버지를 갖는다는 말은 큰 잘못된 표현이다. 주님과 성부께서 있으심은 계심이요, 갖는다는 것은 물건 취급하는 주장이므로 잘못되었으며 아들=아버지로 주장함은 더욱 큰 과오이다.> <⑬ 아들이신 예수님이 아버지와 하나이심을 주장한다. 이는 예수 = 아버지인 것이 된다.>


** 반박: 위트니스 리는 다만 요일 2:23과 요10:30 성경 본문 그대로 말하고 있다. 그리고 '갖는다'는 말도 영어의 'have'라는 단어를 어떻게 한국어로 번역할 것인가의 문제일 뿐이다. 만일 원세호님 기준대로라면 <...아버지도 있느니라>고 번역한 요일2:23의 개역성경 번역도 문제가 된다. 왜냐하면 원세호님 식으로 말하자면 <아버지께서도 계십니다>라고 경어체를 썼어야 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원세호님은 말투에 집착하느라고 정작 성경본문 내용은 크게 오해하고 있다. 위 본문은 원세호님의 해석처럼 <예수 =아버지>라는 말이 아니다. 요일2:22이나 요10:30 본문은 <아버지와 아들이 구별은 되나 분리되실 수 없도록 상호 내재하신 분>임을 보여준다. 그러므로 아들을 부인하면 아버지도 없고 아들을 시인하면 아버지도 있다는 말이다. 그러나 삼위를 분리시키는 원세호님 식 신론에 의하면 위 말씀은 말이 안 된다. 성경은 '나와 아버지는 하나이니라'라고 말씀하시는 예수님을 유대인들이 돌로 치려고 했다고 말한다(요10:30-31). 왜냐하면 유대인들도 이 말을 원세호님처럼 <예수 =아버지>라는 의미로 착각했기 때문이다. 하나님에 대한 무지가 피조물이 돌을 들어 창조주를 향하여 치려는 장면을 연출한 것이다.


10) <원세호님의 비판: ⑫ 생명 주는 영이신 그리스도는 인간 영 안에 있다 라고 할 때 생명 주는 영은 성령이며(롬8:2) 그리스도가 그 영이므로 생명 주는 성령=그리스도라는 주장이 된다.> <⑭ '성령이신 하나님의 영은 고난 당하고 예수의 영과 영광 받으신 그리스도의 영'이라고 주장함은 성령 = 예수 그리스도 라는 것으로 성경을 폐하는 주장이다.> <⑮ 예수 그리스도가 생명 주는 영이고 이것은 성경의 순수한 말씀이라고 주장하지만 결국 예수 그리스도 = 생명 주는 영 곧 성령이라는 주장이 된다.> <(16) '하나님의 영은 그리스도의 영이며 복합된 영이다' 라는 지방파의 주장은 하나님의 영(성령)= 그리스도의 영이라는 거짓 주장이다.>


** 반박: 우선 위트니스 리의 본문을 소개하고 재 반박 또는 해명을 해 보겠다.


<위트니스 리 주장: ⑫ "동시에 생명 주는 영이신 그리스도는 우리의 영 안에 있다. 이 두 영은 한 영으로 연합했다. 이것은 가장 비밀하고 놀라운 일이다....>(16.(그리스도를 체험하는 비결) p. 66). <⑭ "오늘날 성령이신 하나님의 영은 고난을 당하신 예수의 영과 영광을 받으신 그리스도의 영이다">(32.(주의 회복) p. 39). <⑮ "많은 사람들이 구속 자이신 예수그리스도가 죽음과 부활을 통해 생명 주는 영이 되셨다는 것을 결코 생각해 본적이 없다. 이것은 나의 해석이 아니라...성경...말씀을 인용한 것이다">(32(주의 회복). p. 40). <(16) "오늘날 하나님의 영은...복합된 영이다. 이제 이 복합된 영 속에는 신성-하나님, 인성-사람, 인생, 그리스도의 만유를 포함한 죽음, 부활의 능력을 지닌 부활이 있다. 이러한 모든 요소들은 이 복합된 영 안에 있다">(32(주의 회복). p.44,).


이제 위 주장들에 대한 성경 근거들을 제시해 보겠다.


첫째로, <생명주는 영이 그리스도다>라는 말은 고전15:45하, <이 분이 우리 영 안에 있다>, <두 영은 한 영으로 연합했다>는 말은 딤후4:22, 고전6:17에 근거한다.


둘째로, <성령이신 하나님의 영>은 롬8:2, <이 영은 곧 예수의 영이요 그리스도의 영>이란 말은 빌1:19에 근거한다. 롬8:9-11을 이러한 영들을 <서로 바꾸어 쓸 수 있는 용어>로 함께 언급하고 있다. 만일 예수의 영, 그리스도의 영, 성령, 하나님의 영, 예수 그리스도의 영, 일곱 영, 그 영 등이 우리 안에서 따로 따로 계신다면 얼마나 혼란스러울 것인가? 물론 이러한 여러 영들을 따로 따로 영접한 사람도 없다. 우리는 다만 부활하신 주 예수님 즉 생명주는 영을 우리의 구주와 생명으로 영접한다. 이 만유를 포함한 생명 주는 영 안에 여러 가지 이름으로 불리는 영이 포함된 것이다. 이와 달리 각각 분리된 여러 영들이 우리 안에 여기 저기 계신다는 발상은 비 성경적이다. 고전15:45 의 <생명주는 영>은 <한 분 하나님의 신격(구별된 삼위인 아버지, 아들, 성령을 다 포함한) + 신성 + 영화롭게 된 예수의 인성>의 의미로 '복합적인 영'이라고 부르기도 한다(요1:14, 7:39, 고전15:44-45, 요3:6). (회복역 각주).


셋째로, <구속자이신 예수 그리스도가 죽음과 부활을 통해 생명주는 영이 되셨다>는 말은 고전15:45 본문 내용 그대로의 표현이다. 물론 예수님이 구주로 오셨다는 근거는 마1:21 이다. 이처럼 위트니스 리의 주장들은 성경에 근거한 주장들이다. 다만 삼위의 세 위격을 각각 분리된 세 하나님들로 보는 원세호님의 삼신론 사상이 본인과 독자들을 혼동에 빠뜨리고 있는 것이다. 안타까운 일이다.


11) <원세호님의 비판: (17)... 그(위트니스 리)는 아버지가 아들의 이름으로 나타난 것이라 요1:18절을 제시했으나, 아버지와 독생하신 하나님은 구별된 인격체로 나타나 있으므로 그 주장은 거짓이며, 아버지가 아들 안에서 몸을 입었다는 증거로 성경 요1:1절을 제시...말씀은 성부 하나님과 다른 분...적용이 잘못되었다. 그리고 사9:6절을 인용하여 아버지는 아들이라고 불린다는 것은 잘못 되었다. 아들은 아들로서 아버지이시며 성부 하나님 아버지가 아닌 것이다. 아들과 성부와 '하나'라고 요10:30절을 인용했으나 이는 서로 다른 존재이며 관계가 하나인 것을 성경은 증거한다. 그러므로 아들 그리스도=성부 하나님이라는 주장이므로 신론이 크게 잘못되었다.>


** 반박: 먼저 위트니스 리의 본문을 소개하고 원세호님의 주장을 반박해 보겠다.


<위트니스 리 주장: (17) "그 분의 경륜의 역사를 통하여 하나님은 자신이 사람에게 실체가 되기 위하여 그 분의 아들, 즉 삼일성의 두 번째 인격 안에 자신을 넣으셨다. 아버지의 모든 충만은 아들 안에 거하시며(골1:19;2:9) 아들로 나타나셨다(요1:18). 모든 것으로 무한량 한 공급이 되시는 아버지는 아들 안에서 몸을 입고 나타나셨다. 알 수 없는 하나님이 이제 하나님의 말씀인 그리스도 안에 나타나셨다(요1:1). 보이지 않는 하나님이 하나님의 형상인 그리스도 안에 나타나신 바 되었다(골1:15). 그러므로 아들과 아버지는 하나요(요10:30), 아들과 아버지라고 불리운다(사9:6).>(7.(하나님의 경륜) p. 13, 1-10).


위 위트니스 리의 말은 모두 아버지와 아들이 각각의 인격임을 전제한다. 다만 두 인격들이 아버지가 아들 안에 계시는 식으로 상호내재 하심을 말한다. 그러므로 원세호님이 이것을 <아들 그리스도 = 성부 하나님>라고 본 것은 잘못된 것이다. 원세호님은 '삼위가 서로 안에 계신다'는 말만 나오면 이것을 '아버지=아들=성령'이라는 말로 받아들인다. 이것은 구별된 삼위의 상호내재 개념을 고려하지 않은 오해이다. 그러나 <아버지가 아들 안에 거하신다>(요14:11) 거나 <나와 아버지는 하나이다>(요10:30)라는 성경 말씀은 <삼위가 구별 없는 동일체가 된다>는 말이 아니다. 삼위는 구별되나 분리되지 않는 상태이심으로 하나이시라는 말이다. 이것을 잘못이라고 한다면 성경이 잘못된 것이 되고 만다. 물론 그렇게 말씀하신 주님이 비 진리를 말씀하신 것이 된다.


이런 기본적인 이해만 갖고 있다면, <아들은... 영존하시는 아버지시다> 라는 사9:6, (아버지를 포함한) <신격의 모든 충만이 육체 안에 거하신다>는 골2:9, <아들과 아버지가 하나이시라>는 요10:30 라는 성경 본문 말씀을 있는 그대로 읽고 이해할 수 있다. 위트니스 리의 위 주장은 누구보다 성경적이다. 오히려 이러한 성경 말씀을 왜곡하는 원세호님에게 문제가 많다.


12) <원세호님의 비판: (18) '아버지께서 아들 안에, 아버지와 아들이 그 영 안에 계시며 그 영은 성령이다' 라는 주장이다. 여기에 잘못은 '안에' 있다는 것을 관계로 보지 않고 실제로 안에 계신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성부 아버지는 성자이고 성자는 성령이 되는 것이니 잘못 된 것이다.> <(19) '성자 주님은 성령으로 우리 안에 들어오셨다' 라고 주장한다. 이것은 성자 주님=성령이시니 크게 잘못되었다(7(하나님의 경륜). p.166, 5-9줄).>


** 반박: 원세호님은 예수님이 지상 사역 시 <내가 아버지 안에 아버지가 내 안에 계신다>(요14:11)라고 하신 말씀을, <실존재>로서의 아들과 아버지는 땅(아들)과 하늘(아버지)만큼 멀리 분리되어 계시지만, <관계>에서만 그렇다고 본다는 말이다. 이것은 삼위의 존재가 하늘과 땅이란 물리적인 공간의 차이로 인하여 분리될 수도 있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본질이 영이신 삼위는 영원히 분리되지 않으신다. 눈에 보이는 예수님의 육신으로 인하여 삼위가 분리되지도 않으신다. 원세호님의 사상은 <아빠>와 <엄마>와 <딸아이>가 한국에 함께 살다가 딸이 미국으로 유학가 있고 부모는 한국에 남아 있지만 한가족이라는 관계에 있어서 여전히 셋이 서로 안에 있다는 말이다. 이것이야말로 각각 분리된 세 하나님들을 믿는 삼신론 사상이다. 성경이나 건전한 신학자들은 절대로 이러한 원세호님 식의 삼위일체관을 지지하지 않는다. 이러한 원세호님식 사고방식은 '나와 아버지는 하나'라는 요10:30 내용을 '뜻과 목적 안에서 하나' 라고 해석하는 여호와의 증인들의 시각과 궤를 같이 한다.


원세호님이 인용한 <성자 주님은 성령으로 우리 안에 들어오셨다>라는 말도 삼위의 2격이 3격이 되어(더 이상 2격은 존재하지 않고) 우리 안에 들어오셨다는 말이 아니다. 위 '성자'는 고전15:45의 '마지막 아담'에 해당된다면, '성령'은 '생명주는 영'에 해당되는 말이다. 또한 누차 말하지만 <마지막 아담>은 다만 제 2격만이 아니다. 마지막 아담은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이 구별되나 상호내재 하심으로 분리되지 않으시는 온전한 하나님이 아들 안에서 육신을 입으신 분이시다. 마찬가지로 <생명주는 영>도 이러한 마지막 아담 자신이시나 다만 부활 전의 몸(인성)이 부활 후 영화롭게 된 몸(인성)으로 변형되신 차이만 있으신 그런 분이라는 것이다(빌3:21). 오늘 날 우리 안에 생명으로 들어오신 주님은 이처럼 매우 비밀한 분이다(골3:4, 1:27). 원세호님도 이제는 자신의 삼신론 사상에서 벗어나서 영적 눈이 열려 이러한 비밀을 볼 수 있기 바란다.


13) <원세호님의 비판: (20) '로마서 8:2절의 생명의 성령은 공기 같은 그리스도이다' 라는 주장...잘못이다. 그 이유는 로마서 8:2절에서 말하고 있는 것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관계) '생명의 성령의 법'이며...그러므로 지방파의 주장은 그리스도=생명의 성령이 된다.> <( 21) 요한복음 14:6절에서 그들은 '예수님은 생명의 영...실제의 영'이라고 주장한다. 이러한 주장은 요14:6절의 근거를 잘못 적용한 것이며...지방파는 그리스도 = 생명의 영 그 영으로 주장하는 것이다.>


** 반박: (더 이상의 반박이 필요 없는 부분이지만) 역시 위트니스 리의 원문을 소개하고 반박해 보겠다.


<위트니스 리 주장: (20) "생명의 영은 그 분의 믿는 이들에게 부활 안에서 신성한 생명의 그 영이신 공기 같은 그리스도이명의 영이라는 용어는 신약에서 단 한 번- 롬8장2절에서- 사용된다. 그 영을 생명 주는 영일 뿐 아니라 생명의 영이다. 생명의 영은 생명의 실체인데 이 영이 신성한 생명의 요소를 담고 있기 때문이다">(11(그영). p. 20). <(21) "주 예수님은 요한복음 14장6절에서 그 분이 길이요 실제요 생명이시라고 말씀하셨다. 이것은 우리에게 생명과 실제가 관련된다는 것을 보여 준다. 실제는 생명이고 생명은 실제이다. 우리의 존재의 실제는 인간의 생명이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실제는 신성한 생명이다. 생명의 영은 실제의 영이다"(11(그영). p. 21).>


앞에서도 지적했지만 위트니스 리가 말하는 '그영'(The Spirit)은 삼위 중 아버지와 아들은 제외시킨 제 3격인 성령만이 아니다. 그럼에도 원세호님은 <그영>하면 아버지와 아들은 제외된 성령만(1/3 하나님)을 가리킨다고 생각함으로 자꾸 같은 의문에 빠지는 것이다. 이것은 삼신론 사상이 주는 폐해이다.


위 위트니스 리의 말의 요점은 두 가지이다. 첫째는 생명주는 영(고전15:45) =그 영(요3:6)= 생명의 영(롬8:2)이라는 것이다. 여기서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생명주는 영>이 구별된 삼위가 상호내재 하시는 온전한 삼위 하나님과 영화롭게 된 예수님의 인성(빌3:21)이 포함된 <복합적인 영>이라는 것이다. 둘째는 <내가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고 한 요14:6과 <실제(진리)의 영>을 말하는 요16:13, 15:26, 14:16-17을 함께 볼 때 실제의 영이 그 영이고 또한 그리스도의 실제이기도 하다는 것이다. 만일 이와 달리 <그영>과 <우리 생명 되신 주님>을 각각 떨어진 다른 분이라고 믿으면, 우리 안에 두 인격 중 한 분은 안 계시거나 계시더라도 각각 떨어져 계신다는 오류에 빠지고 만다. 이런 오류는 성령론, 기독론, 교회론, 구원론 모두에 심각한 영향을 미치게 된다.


14) <원세호님의 비판: (23)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 세 분 모두가 승천 안에서 완전히 완결되었다' 주장하는 것은 아버지=아들=성령 완결이 아닌가? 말들의 실수가 무서운 범죄임을 알아야 한다>.


** 반박: <완결 되었다>는 말은 하나님께 무슨 부족함이 있어서 어떤 것이 있은 후 비로소 완결되었다는 말이 아니다. '완결되었다'는 말은 <예수님의 인성>과 관련이 있다. 아버지나 아들이나 성령 하나님의 신성과는 무관하다. 즉 주님이 부활하시기 전에는 <영화롭게 된 사람의 인성을 포함한 영>은 존재하지 않았다. 요7:39 원문은 이것을 말하는 것이다. 그러나 주님이 부활(승천)하신 후의 모습인 <생명 주는 영> 안에는 영화롭게 된 예수의 인성도 포함되게 되었다. 그러므로 우리가 영접한 주님이신 생명 주는 영은 예수님의 신성은 물론 영화롭게 된 인성도 포함된 복합적인 영이시다. 다시 말해 우리는 <하나님-사람>이신 주 예수님을 생명으로 영접한 것이다. 다만 성령만이거나 인성은 벗어버린 다만 하나님의 아들만이 아닌 것이다. 성경은 <생명의 영>(롬8:2), <예수 그리스도의 영>(빌1:19), <그 영>(계22:17), <일곱 영>(계1:4)이라고 부르지만 이는 모두 우리 안에 생명으로 오신 부활하신 주 예수님 즉 생명 주는 영을 가리키는 것이다.


개혁신학자로서는 앤드류 머레이가 이러한 깊은 진리를 보았다. 그리고 그의 저서인 '그리스도의 영'(서울: 기독교문서선교회, 1993년) 제 5장에서 상세하게 다루고 있다. 앤드류 머레이는 우리 안에 영으로 오신 주 예수님을 이렇게 말하고 있다.


<...그리고 그리스도가 우리를 대신하여 자기 안에 새로운 거룩한 인간성을 완성하심으로 전에는 결코 존재하지 않았던 것 -인간적이면서도 동시에 신적인 생명을 이제 전해 받을 수 있게 되었다..그래서 성령은 신인(하나님 사람)의 영-참으로 하나님의 영이면서 마찬가지로 인간의 영으로서 임하실 수 있었다>(위 책, 43쪽).


원세호님은 자신 안에 들어오신 주 예수님(요일5:11, 골3:4)이 여전히 영화롭게 된 인성을 가지신 분이라고 참으로 믿는가? 아니면 다만 인성은 없고 하나님으로만 자신 안에 들어오셨다고 믿는가? 아니면 자신 안에 주 예수님의 실존체는 안 계시고 성령님만 계신다고 믿는가? 만일 두 번째나 세 번째 질문에 '예'(yes) 라고 한다면 원세호님은 성경에 근거한 하나님의 자녀는 아니다. <우리 안에 영접된 분이 과연 누구이신가> 하는 이런 질문은 매우 중요하다. 이런 질문은 답변자의 삼위일체론, 기독론, 성령론, 구원론이 성경적인지 아닌지를 쉽게 판단할 수 있게 한다(https://www.localchurch.kr/1500 참조).


15) <원세호님의 비판: (24) '삼일 하나님의 흐름은 근원이신 아버지, 과정이신 아들, 흐름이신 그 영이다' 라는 주장은 성경에 합당치 않다. 그 이유는 과정이신 예수가 성경에 없다는 것이며 흐름이신 그 영 성령이 성경에 없다는 것이다. 그리고 삼일 하나님은 아버지 = 과정 아들 = 그 영이 되므로 크게 잘못된 것이다>.


** 반박: 성경은 <생수의 근원이신 여호와 하나님 아버지>(렘2:13), <깨진 신령한 반석이신 그리스도>(고전10:3-4, 요4:14), <마실 수 있는 물이신 그영>(고전12:13, 요7:39)을 말한다(https://www.localchurch.kr/1144). 이것은 구원의 경륜을 이루는 관점임으로 존재론적으로 아버지=아들=성령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다. 이 부분 역시 앞에서 여러 번 다룬 것이다.


16) <원세호님의 비판 : (25) 지방파의 체험은 '예수를 부를 때에 그 영 성령이 온다. 그 이유는 예수님이 그 영 성령이기 때문'이라고 주장하나 근본적으로 잘못되었다. 성경은 성령과 그리스도, 성령님과 성부는 서로 다른 실존임을 증거하며... 예수= 성령 그 영이라고 주장하는 지방파는 크게 잘못하고 있다.> <(26) '오순절에 내려오신 분은...부활 승천 보좌에 앉아서 주가 되신 그 분이다' 라고 주장한다. 이는 '승천한 예수 그리스도=오순절에 내려온 성령이다' ...비성경적이며 심각한 과오이다.>


** 반박: 원세호님의 삼위는 서로 다른 실존체라는 주장은 삼위가 구별된다는 의미라면 옳다. 그러나 지금처럼 세 사람의 관계처럼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을 분리시키는 것은 이단사상이다(https://www.localchurch.kr/1407 참조). 만일 원세호님처럼 삼위를 갑, 을, 병 세 사람같이 분리시켜버리면, 성령의 실존체를 영접해도 아들과 아버지의 실존체는 그 사람 안에 안 계신다. 만일 아들의 실존체를 영접했으면, 성령과 아버지의 실존체는 그 사람 안에 안 계신다. 과연 이것이 성경의 가르침인가? 아니다. 요14:23은 주님을 사랑하고 말씀을 지키는 사람 안에 우리 즉 아버지와 아들의 실존체가 와서 거처를 저와 함께 하신다고 하신다. 성경은 반복해서 성령의 내주를 증거 한다. 그렇다면 참된 믿는 이 안에는 아버지, 아들, 성령의 세 실존체가 계심이 틀림없다.


그러나 원세호님 식이라면 이 셋은 각각 세 번 영접 되셔야 하며, 우리 안에서 각기 다른 곳에 따로 계셔야 한다. 그러나 이것은 성경의 가르침이 아니다. 삼위의 상호내재 하심을 양태론으로 잘못 정죄하다 보면 위와 같이 더 이상한 이단에 빠지고 만다.


다시 지적하거니와 이것은 <삼위는 구별되나 분리되지 않으심>, <삼위는 영원히 상호내재 하심> 같은 기본적인 진리인식 개념이 가려져 있는데서 오는 혼돈이다.


이어서 원세호님은 위에서도 원문에는 없는 '성령'이란 말을 임의로 추가했다. 그리고 <지방파의 체험은 '예수를 부를 때에 그 영 성령이 온다. 그 이유는 예수님이 그 영 성령이기 때문'이다>라고 주장한다고 말하고 있다. 그러나 아래의 위트니스 리 원문엔 그냥 <예수를 부를 때 그 영이 온다>라고 되어 있다. <성령>이란 말이 없다. 원세호님은 왜 이런 부끄러운 일을 자꾸 하는가?


<위트니스 리 주장: (25) "우리는 또한 체험에 의해 우리가 오 주 예수여! 하고 부를 때마다 그 영을 영접한다는 것을 안다. 우리가 예수의 이름을 부를지라도 오시는 분은 바로 그 영이시다....">(3.(성경의 핵심) p. 138, 6-14).


17) <원세호님의 비판: (27) '하나님=영이다. 삼일성의 마지막 분=그 영이다. 구속자 = 생명 주는 영(성령)이다' 라고 주장한다. 이것이 무엇인지 알고 있는가? 성경을 변질시키고 거짓 증거 하는 것이다.>


** 반박: 원세호님은 왜 원문에 없는 성령을 생명주는 영 뒤에 괄호로 묶어 첨부하는가? <하나님이 영이심>은 요4:24에 근거한 말이다. 구원의 경륜에 있어서 우리 안에 도달하신 <삼일성의 마지막 분이 그 영>이란 말은 요7:39, 고전15:45에 근거한 말이다. 이것은 얕은 진리가 아니다. 원세호님은 요7:39의 'the Spirit was not yet, because Jesus had not yet been glorified' 라는 본문을 깊이 연구해 보기 바란다. 지방교회측의 자료를 보기 원하면 다음 각주를 참조할 수 있다(회복역 각주). 마지막 아담인 <구속주가 부활 후 생명주는 영이 되셨다>는 것은 고전15:45에 근거한 말이다. 한 가지 주의할 점은 여기서 <생명주는 영>은 아버지, 아들은 제외시킨 다만 제3격 성령만을 가리키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것은 이미 누차 설명했다. 독자들은 아래 위트니스 리 원문에는 원세호님이 추가한 "(성령)"이란 말이 없음을 눈여겨보기 바란다.


<위트니스 리 주장: (27) "첫째로 하나님은 영이시다. 둘째로 삼일성의 마지막 분이 그 영이다. 셋째로 구속자가 생명 주는 영이 되셨다. 그러므로 오늘 날 우리의 하나님은 종결적이고도 만유를 포함한 그 영이시다">(47.(교회 -그영의 복사판) p. 17, 10-13줄).

 


7. 원세호님의 지방교회 <그리스도에 대한 이상한 주장들> 비판 재반박


원세호님은 지방교회의 그리스도에 대한 이상한 주장들을 비판한다고 했다. 그러나 전혀 이상한 주장이 아니다. 다만 원세호님의 피상적인 이해 또는 오해로 인해 <이상하게 보일 뿐>이다. 아래에서 보겠지만 지방교회의 그리스도에 대한 주장은 매우 균형 잡혀 있고 지극히 성경적이다. 오히려 원세호님이 삼위의 아버지, 아들, 성령님을 아버지, 어머니, 아이같은 분리된 세 사람처럼 오해함으로 정상적인 글이 이상하게 보일 뿐이다. 즉 원세호님에게 깊이 적셔져 있는 삼위를 분리시키는 삼신론 사상이 문제일 뿐이다.


1) 위트니스 리 주장: <① "말씀과 영, 영과 믿음, 믿음과 그리스도를 분리시키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이 네 가지는 다 하나이다. 이 우주 안에 하나님이 계신다. 하나님이 말씀하실 때 우리는 말씀을 듣는다. 우리가 말씀을 들을 때 그 영이 우리 안으로 주입되어 믿음이 되는데 믿음은 그리스도 자신이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전파하는 것을 들을 때 그로 인해 믿음이 우리 안에 산출된다. 우리의 체험에서 말씀은 그 영이 되어 그 영은 살아있는 믿음이며 이 믿음은 그리스도이다. 교회 집회에서 합당하게 말하는 것은 항상 이런 식으로 믿음이 산출된다"(16.(그리스도를 체험하는 비결) p. 101, 8-15).>


<원세호님의 비판: ① '믿음은 그리스도 자신이다. 말씀은 그 영이 되어 그 영은 살아 있는 믿음이며 믿음은 그리스도' 라고 주장한다. 독자 여러분 믿음이 무엇이가? 믿음이란 (피스토스) 또는 (피스티스)이다. 이 뜻은, '피스토스' 는 형용사로서 믿을만한, 충성스러운 이며, '피스티스'는 명사로 믿음, 신뢰, 신실성, 신빙성, 확신이다. 이 믿음은 하나님의 선물인 것인데(엡2:8), 어떻게 하나님이시며 창조주이신 그리스도께서 믿음인가? 세상이 웃을 일이 아닌가?>


** 반박: 원세호님과 그 문하생들은 그 문맥 안에서 저자의 의도가 어떠한지는 상관하지 않는다. 오직 <세상이 웃을 일이 아닌가?> 라고 제시할 만한 표현들을 의도적으로 찾아낸다. 위 원세호님의 인용글 만 본다면 위트니스 리와 지방교회 성도들은 '믿음'이 뭔지도 모르고 이상한 말만 하는 단체로 보일 만 하다. 그러나 사실은 어떠한가?


이제 원세호님 인용 글 바로 앞에 있는 믿음에 대한 위트니스 리의 일반적인 관점을 소개해 보겠다.


<과거에 우리는 신약에 있는 믿음에 두 방면, 즉 객관적인 방면과 주관적인 방면이 있다는 것을 지적했다. 믿음의 객과적인 측면은 우리가 믿는 대상을 포함한다. 주관적인 믿음은 우리가 믿는 행위, 혹은 우리가 믿을 수 있는 능력을 언급한다. 비록 이런 구분이 도움을 줄지 모르나 갈라디아서 3장 2절과 5절에 있는 믿음의 의미를 알도록 돕는 데는 부족하다. 이 구절들에 있는 믿음의 의미를 이해하려면 우리는 섬세한 영적인 체험을 필요로 한다...믿음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것으로부터 온다...>(위트니스 리, 그리스도를 체험하는 비결(서울:한국복음서원, 100쪽)).


위 내용을 볼 때 위트니스 리는 원세호님이 조롱하는 태도로 말하고 있는 '믿음의 정의'를 모르지 않는다. 그러나 갈 3:2, 5 등에서 나오는 믿음의 더 깊은 의미를 체험적으로 인식하고 적용하는 문제를 다루고 있는 것이다. 위트니스 리의 '믿음'에 대한 인식에 대해서는 다음 회복역 각주를 참조하기 바란다(회복역 각주).


위에서 보듯이 위트니스 리는 일반적인 의미의 '믿음'을 충분히 정의하고 있다. 그리고 믿음에 대한 더 깊고 체험적인 의미를 말하고 있다. 그럼에도 원세호님은 의도적으로 '들어서 이상할 부분만' 인용하고 있다. 이것은 독자들을 기만하는 것이 아닌가? 원세호님은 문하생들이 뽑아준 위 <이상한 내용>만 읽었을 뿐 원 책자 앞 뒤 내용은 못 읽었을 수도 있다. 만일 그렇다면 적어도 원세호님에게 악의는 없다고 하겠다. 그러나 원세호님은 어찌하든지 저자의 의도를 책자 본문의 흐름대로 반영하지 못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앞으로는 지금 같은 <다이제스트 판 식의 연구 방식>은 버리기 바란다. 이것은 신중하지도 못하고 성의도 없는 연구 방식이다. 본인이 직접 비판 대상 책자의 모든 내용을 읽고 양심가운데 참으로 문제가 있는 것만을 다뤄주기 바란다.


2) 위트니스 리 주장: <② "계시록22:13에서 주님은 계속하여 그 분이 처음이자 마지막이요 시작과 끝이라고 선포하셨다. 이것은 그 분이 만유를 포함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 분은 헬라어 알파벳의 스물 두 글자 모두이시며 이 알파벳을 구성하고 있는 모든 글자이시다. 더 나아가 그 분은 모든 단어들로 구성된 각 문장이다. 더욱이 그 분은 모든 문장들로 구성된 작문이시다. 결국 작문 전체가 다름 아닌 그리스도이시다. 그리스도는 만유를 포함한다">(16. (그리스도를 체험하는 비결)p. 18, 5-11).


<원세호님의 비판: ② '계시록 22:13절에서 처음이자 마지막이요 시작과 끝이라고 하셨다. 이것은 헬라문자 22문자 모두이고 단어들로 구성된 각 문장이고 작문이다. 작문 전체가 다름 아닌 그리스도' 라는 주장이다. 이것은 'A 와 Ω = 히랍 문자 22자 = 각 문장 = 작문 = 그리스도'라는 주장이니 무엇이 잘못됐는지 확실하지 아니한가?... 이런 주장에 기독교인들은 경성을 해야 한다.>


** 반박: 이 역시 원세호님의 문하생들이 뽑아 준 <작품>으로 보인다. 원세호님의 15 명의 문하생들이 각자에게 할당 된 책을 읽어 가다가 저자의 의도나 문맥과 상관없이 <이상하게 보이는 이런 표현들>을 추려 낸 것이다. 그러나 위 문장내용이 위트니스 리가 문자 그대로 <히랍 문자 22자 = 각 문장 = 작문 = 그리스도>라는 말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님은 상식이 있는 사람은 다 안다.


위트니스 리는 위 단락을 처음 시작하는 서문에서 <...성경은 그리스도를 묘사하기 위해 인간의 언어를 사용한다. 비록 그분이 비밀하고 신성하고 영적일지라도 성경은 우리에게 그분이 누구인가를 말하기 위해 인간의 언어를 사용한다> 라고 적고 있다(위 책, 8쪽). 그 다음에 성경에서 그리스도를 묘사하는 표현들을 계속 나열하고 설명해 나가다가 계시록 22장 13절에 도달한 것이다. 그리고 그는 <나는 알파와 오메가요, 처음과 나중이요, 시작과 끝이라>하신 주님의 말씀을 인용하고 이 본문을 해설한 것이다. 주님이 친히 자신이 알파와 오메가라고 하신 것은 주님이 진짜 히랍 글자라는 뜻이 아니다. 또는 주님이 진짜 처음 글자와 맨 마지막 글자라는 의미도 아니다. 그렇다면 이런 문장의 흐름을 따라 위트니스 리가 <주님이 각 단어요, 문장이요, 작문이다>라고 했다면 주님이 글자 그대로의 단어, 문장, 작문을 가리키지 않는다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그럼에도 원세호님은 이것을 원래 의도와 다르게 왜곡시켜 말한 다음 <이런 주장에 기독교인들은 경성을 해야 한다>고 까지 말하고 있다. 이것이 한국 교계에서 이단을 감별한다는 사람의 이단연구 내용이라면 매우 실망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3) 위트니스 리 주장: <③ "그리스도는 부활 안에서 사시고 우리 안에서 사신다. 이것은 요 14:19 과 갈 2:20 에 분명히 계시되어 있다"(16.(위 같은 책) p. 87, 하1-2 ).>


<원세호님의 비판: ③ 예수님이 부활 안에서 사신다고 인용한 성경 요14:19절에는 '부활 안에서'가 없다. 그리고 갈라디아서 2:20절에는 '부활 안에서'가 계시되어 있지 않다. 예수님은 부활하신 것이지 부활 안으로 들어가신 것이 아니다. 성경을 바르게 확인하라.>


** 이 점도 이미 앞에서 다뤘다. 부활에 대해서 성경은 <부활 사건>(롬1:4), <부활이라는 인격>(요11:25), 믿는이들도 포함된 <부활 영역>(요14:20, 엡2:5-6)을 말한다. 요한 복음 14:19는 주님이 죽었다가 사시고 우리도 살 것을 말한 다음, 바로 이어서 "그 날에는 내가 아버지 안에, 너희가 내 안에, 내가 너희 안에 있는 것을 너희가 알리라" 라고 말함으로 <주님이 성육신 때 입으셨던 인성까지도> <부활영역 안에> 거하심을 말씀하신다. 에베소서 2:5-6은 주님이 부활하실 때 우리도 함께 부활했음을 말하고 있다. 이것이 성경이 말하는 부활이다.


4) <원세호님의 결론적인 비판 : 이상으로 연구된 기독론적 지방파의 주장은 비성경적이며 거짓되고 크게 잘못 되었으며 신학적으로는 철저한 양태론적 양식적 주장으로 성경을 변조하거나 변질시키고 있는 것이다. ...기독교 지도자들은 서적으로 미혹 받지 말도록 하고 죄를 자복 해야 할 것이다...이상은 지방파에서 예수 그리스도에 대하여 주장하는 것의 지극히 적은 부분일 뿐이다. 그러나 이 정도로 기독론에 대하여 정확하게 확인될 수 있다. 기독교인들은 이런 자료에도 불구하고 '그러면 어떠냐'라고 하는 자가 있다면 그런 자는 구원을 확인해야 할 사람이라는 것을 명심하라.>


** 반박: 기독론 반박 글을 마감하면서 원세호님에게 깊이 실망했음을 밝히지 않을 수 없다. 1) 우선 원세호님은 초기자료 수집과 분석 단계를 검증 안된 자신의 문하생들의 판단에 전적으로 맡김으로 전체적인 <사실파악>에 실패했다. 2) 또한 원세호님은 삼위의 상호내재와 경륜적인 삼위일체에 대해 무지함으로 삼위의 셋을 분리시키는 삼신론 사상을 자신의 <판단기준>으로 삼았다. 3) 고후5:6의 바울의 육신의 몸을 그리스도의 몸으로 오해하여 그러한 <자신의 성경본문 이해>로 상대의 성경적인 주장도 거짓이라며 비판하고 있다. 이런 비판은 결국 <그리스도와 그리스도의 몸의 지체들은 따로 떨어져 있다>는 비 성경적인 주장에 스스로 빠지게 했다. 4) 비판 대상에 대한 깊이 있는 분석보다도 번역상의 표현 같은 피상적인 것들에 집착하고 트집잡음으로 경솔하고 가벼운 사람이라는 인상만 독자들에게 남겼다. 5) 비판 주제가 여기 저기 흩어져 있고 중복된 것이 많아 학문적인 체계나 논리가 별로 없다.


이런 정도의 역량의 소유자에게 한국 교계 이단 연구라는 막중한 소임이 오랫동안 맡겨져 온 것은 한국 교계나 본인이나 그 동안 원세호님에게 이단 정죄 받은 대상에게 매우 불행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우리 모두에게 어린양의 보혈이 필요하다(요일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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