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Ⅲ. 원세호님의 지방교회 「성부 신론」 비판에 대한 재반박(上)

 

1. 서론의 글


이 서론에서는 먼저 원세호님이 예장 통합 교단에 의해 2002년에 이단으로 정죄된 사실을 지적할 것입니다. 아울러 원세호님의 신론 중 <하나님들>이란 이단적인 표현의 출처 제시, 하나님을 <하나님들 또는 세분 하나님들>이라고 부를 수 없는 이유, 지방교회의 삼위일체의 핵심개념소개, 한국 교계에서 삼위일체론이 혼란스런 원인 등을 소개하고자 합니다.


또한 본 서론에 이어서 원세호님의 비판책자 순서를 따라 2. <성부 신론>, 3. <성부 아버지와 성자 아들과의 관계>, 4. <성부와 성령 관계>, 5. <송전식 신론>, 6. <성부, 성자, 성령 관계>에 대해 각각 재 반박 할 것입니다.


매우 유감스럽지만, 원세호님의 <지방교회 신론 비판>에 대한 본격적인 재 반박에 앞서 짚고 넘어갈 중대한 사실이 하나 있다.


그것은 장로교 통합 측이 2002. 9월 제 87차 총회에서 원세호님을 삼위일체론 등에서 <비 성경적인 이단>임을 한국교계 앞에 공개 천명한 것이다(http://www.eedan.net/edan1-1.php 자료참조). 원세호님은 틈만 나면 <이단의 배후에는 악령이 있다> <이단은... 교활하고 교만하여 자기만 잘난 것으로 착각한다> 등의 말을 해왔다. 이제 이런 말들이 원세호님 본인에게도 해당된다. 또한 원세호님은 평소에 통합 측의 다른 단체 이단결정에 대해 공신력을 인정해 왔다. 그렇다면 이제 본인에 대한 이번 이단결정도 존중하기 바란다.


바른 판단을 위해 원세호님의 반론도 읽어보았다. 그런데 님의 반론 중 "창조론에서... 2) 창1:1은 태초에 <하나님들>이 천지를 창조...'(여호와의 증인의 정체. p.14)라는 대목에서 <하나님들>이란 표현(http://www.biblicaltruth.co.kr/source/020921_yejangtonghap_anal.htm)은 비 성경적이다. 누구든 하나님을 <하나님들>이라고 할 수 없다. 그것은 삼신론 내지 다신론 이단이다. 창1:1의 '엘로힘'은 복수(삼중수)가 맞다. 그래도 이것을 근거로 <하나님들>이라고 해서는 안 된다. 그것은 비 성경적이고 이단적 신론이다. 뭔가 신론에 큰 착각이 있는 것이다. 삼위일체 하나님을 <아버지 하나님, 아들 하나님, 성령 하나님>이라고 하는 것은 옳다. 그러나 우리는 이것을 근거로 <세분 하나님(들)>이라고 말할 수 없다.


따라서 과거에 얼마나 많은 업적을 쌓은 이단 감별사이든, 어떤 유명 신학대학의 신학 교수이든, 그 누구든 사시고 참되신 하나님을 <하나님들> 또는 <세 분 하나님(들)>이라고 말하면 이단이다. 왜냐하면 아래서 보듯이 성경은 반복해서 <하나님이 한 분>이심을 증거하기 때문이다. 웨스트민스터 신조도 마찬가지로 한 분 하나님을 말한다. 교회 역사상 바른 믿음을 가진 사람으로서 원세호님같이 <하나님들>을 말한 사람은 한 사람도 없었다. 이제 이것을 좀 더 자세히 살펴보겠다.


1) 하나님은 한 분이라는 성경근거


- 시86:10, '당신만 홀로 하나님이시니이다'(2 인칭 단수임).
- 사45:5, '나는 여호와라..나 외에 다른 신이 없느니라'(우리는 여호와라 하지 않음).
- 고전8:4, '하나님은 한 분 밖에 없는 줄 아노라'
- 엡4:6, '하나님도 하나이시니'(one God).
- 딤전2:5, '하나님도 한 분이시요'(For there is one God).
- 약2:19, '네가 하나님은 한 분이신줄을 믿느냐 잘하는도다. 귀신들도 믿고 떠느니라'


누구든지 성경적인 삼위일체론을 고수하려면 우선 이 <하나님이 한 분>이시라는 진리를 견고하게 붙들어야 한다. 이것이 무너지면 즉시로 <뒤죽박죽 삼위일체관>, <다신론 이단 삼위일체관>이 되고 만다. 이 명제가 삼위일체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기초이다. 물론 그 다음엔 <한 분 하나님>에 이어서 <각 구별된 세 위격들>을 함께 말해야 한다. 그러나 여기서 생각이 지나쳐서 '세 위격들'을 '분리된 세 하나님들'이라고 착각하면 삼신론이 된다.


(<성경 본문 자체>가 마치 삼위 간의 위격을 혼동시키는 듯한 내용들이 있다. 즉 이사야 9:6의 <한 아들을...그 이름은 ...영존하시는 아버지라>, 고후3:17의 <(그리스도)주는 그영이시니>(the Lord is the Spirit)가 그것이다. 우리는 이것은 성경본문 그대로 읽고 믿어야 한다. 그러나 위 두 말씀들은 삼위가 <구원의 경륜 관점>에서 그러하다는 의미로 이해해야 한다. 그리고 이러한 성경본문 그대로 말하는 것을 경솔하게 양태론자라고 하면 안 된다. 그것은 성경이 양태론을 가르치고 성경을 말씀하신 하나님 자신이 양태론 이단이라는 말이 되기 때문이다. 삼위일체론은 이처럼 쉽지 않다. 말씀 앞에 다만 아멘 할뿐이다. 이 점은 뒤에서 다시 상세하게 다룰 것이다).


여기서 또 한 가지 분명히 할 것이 있다.


그것은 이런 분명한 말씀들을 근거로 <하나님은 한 분>이라고 선포하면, 이것을 경솔하게 <일신론자>라고 정죄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라는 점이다. 원칙적으로 일신론은 유대교, 회교, 여호와의 증인들처럼 아버지만을 유일한 하나님으로 인정한 것을 가리킨다. 이들은 아들이나 성령님의 하나님 되심(신격)을 부인한다. 따라서 <한 분 하나님>을 믿되 이에 더하여 삼위의 동시존재와 상호내재를 믿는 사람들까지 함부로 일신론자로 정죄하지 말아야 한다.


"http://www.andong-ch.org/technote/read.cgi?board=2002prch&y_number=146 우리가 유일신 하느님을 믿는 것과 삼위일체 되신 하느님을 믿는 것은 크게 다릅니다. 유대교와 이슬람교는 유일신을 믿습니다.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와 성령을 부인합니다. 그래서 기독교는 일찍이 일신론(一神論)을 이단으로 규정하였습니다" (안동교회, 유경재 목사님 설교)


2) 웨스터민스터 신조(1646) 2장 3절


위 신조는 특히 장로교단 계열에서는 정통진리를 분별함에 있어서 성경본문 다음으로 중시된다. 그러므로 한국에서 삼위일체를 이 신조와 다르게 가르치면 이단 될 가능성이 높다. 그런데 유감스럽게도 이단전문가로 알려진 원세호님<하나님들 주장>, 최삼경 목사<세분 하나님(들), 세 영들의 하나님 주장>의 삼위일체관은 위 신조와 다르다. 먼저 신조 <라틴어, 영어 원문>과 <한글 번역본>을 소개하고 말미에서 왜 이 웨스터민스터 신조와 다른 이런 이단감별사들의 삼위일체관이 이단적인지를 뒤에서 자세히 풀어서 입증해 보겠다(https://www.localchurch.kr/1439).


라틴어: In deitatis unitate personae tres sunt unius ejusdemque essentiae, potentiae ac aeternitatis; Deus Pater, Deus Filius, ac Deus Spiritus Sanctus. Pater quidem a nulloest, nec genitus: Spiritus autem Sanctus aeterne procedens a Patre Filioque.


영어: In the unity of the Godhead there be three Persons of one substance, power, and eternity: God the Father, God the Son, and God the Holy Ghost. The Father is of none, neither begotten nor proceeding; the Son is eternal begotten of the Father; the Holy Ghost eternally proceeding from the Father and the Son.


한글: "하나님은 유일무이하시다." 그런데 이 하나님은 동일한 본질과 능력과 영원성을 공유하시고 계시는 3위격이시다. 즉, 하나님 아버지, 아들이신 하나님, 성령이신 하나님이시다(마3:16,17, 28:19, 요일5:7, 고후13:14). 성부는 그 누구로부터 태어나셨거나 그 누구에게서 유래하신 것이 아니다. 성자는 영원 전에 성부에게서 탄생하셨고(요1:14,18), 성령은 영원 전에 아버지와 아들에게서 유래하셨다(요15:26; 갈4:6)(이형기 번역, 한국장로교출판사, 1991년).


(1) '하나님은 유일무이하시다'로 번역된 <the Godhead>(신격)는 골 2:9에서 쓰인 성경용어이다. 이 단어는 원문에서 단수명사이다. 따라서 이것은 <하나님이 한 분>이라는 가장 확실한 성경근거이다. 우리는 골 2:9의 "the Godhead"(단수명사)를 근거로 <하나님들> 또는 <세분 하나님> 또는 <세 영들의 하나님>을 삼신론 이단으로 단호하게 정죄하고 배척한다.


(2) 하나님은 세 인격들(three Persons)이시다. 그러나 여전히 한 분 하나님이시다. 이에 대해서 혹자는 '창1:1의 엘로힘이 <삼중수>'(원세호) 또는 '창1:26에서 하나님이 자신을 가리켜 <우리>'(최삼경)라고 했다며 '하나님들' 또는 '세분 하나님(들)'이라고도 할 수 있다고 했다. 그러나 이것은 큰 착각이다. 성경이 하나님을 복수(삼중수)로 표현한 것은 <하나님들>이 계시기 때문이 아니다. <한 분 하나님 안에 복수의 인격들>이 계시기 때문이다. 위 웨스터민스터 신조 원문도 이 점을 분명히 밝히고 있다.


창 1:26의 <우리>도 <한 분 하나님 안에 계신 세 인격들>을 가리키는 것이지 <세 하나님들>이 있다는 말이 아니다. 그러므로 위 신조에서 언급된 <세 인격들(three Persons)>을 <세 하나님들>로 착각하는 것은 이단사상이다. 즉 위 신조에 의하면 <세 인격들(Persons)>은 <한 신격(Godhead) "안에 있는" 일종의 하부 개념>이지 <세 인격들(Persons) = 세 신격들(three Godheads)>이 아니다. 신격(데오테스)은 우주 안에 단 한 분 뿐이시다. 위 신조 원문은 <한 분 하나님이 계신데 이 분은 하나님 아버지, 아들이신 하나님, 성령이신 하나님>이시라고 말함으로 이점을 잘 표현하고 있다. 또한 이 셋은 영원토록 <구별>되게 존재하시나, 세 하나님들이라고 불릴 만큼 <분리>되지는 않으신다. 이것이 성경적인 삼위일체이다.


(3) 위 신조는 '세 인격들로 이뤄진 한 분 하나님은 <한 동일 본질>(one substance)을 가지신다'고 말한다.


따라서 이것들을 종합해서 말한다면, 성경적인 삼위일체는 <한 신격(the Godhead)(골2:9)>의 한 분 하나님이 <세 인격들(three Persons)>로 계시고 <한 본질(one substance>을 가지심을 믿는 것이다. 즉 <세 인격들, 한 본질>이라는 통상적인 정통 삼위일체 개념에다 골 2:9와 웨스터민스터 신조 2장 3절이 언급하는 <한 신격>(the Godhead, 데오테스(2320)) 개념을 더하여 이해하면 성경적인 삼위일체의 의미가 더 선명해진다. 이런 기준으로 보면 <하나님들> 또는 <세분 하나님들> 또는 <세 영들의 하나님들>은 성경의 가르침이 아님이 더욱 분명해진다. 이것은 진리무장이 덜 된 소위 평신도들을 그럴듯하게 속이고 미혹시키는 <다신론 이단사설>일 뿐이다(https://www.localchurch.kr/1420).


3) 위트니스리의 삼위일체관


위트니스 리의 삼위일체론은 지극히 성경적이다. 이제 이것을 입증하는 위트니스 리가 쓴 총 510쪽의 '신약의 결론-하나님'(서울:한국복음서원, 1991) 책자의 298-311쪽 내용들을 제목만으로 요약하여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1) 셋 모두―아버지, 아들, 영―가 하나님이심(벧전1:2, 엡4:6, 히1:8, 요20:28, 행5:3-4).
(2) 셋 모두 영원하심(사9:6, 히1:11-12, 7;3, 요8:58, 히13;8, 9:14).
(3) 셋 모두가 동시에 존재하시며 양식(modes)으로 있는 것이 아님(마3:16-17, 요14:16-17, 고후13:13, 고전12:4-6, 엡3:14-17).
(4) 셋 모두가 영원히 상호내재하시며 세 분리된 하나님들이 아님(요1:1, 10:30, 14:9-11, 고전15:45, 골2:9).


위트니스 리 뿐 아니라 누구든지 위 내용처럼 믿는 사람은 정통 성경신자이다. 결코 이단이 아니다. 더구나 위 선언처럼 <아버지, 아들, 성령님이 모두 하나님이심을 믿고, 이 셋이 다 영원하시고 상호내재 하심을 믿는 사람>을 <단일신론자>니 <양태론자>니 할 수 없다. 이것은 성경도 모르고 신학도 모르는 사람의 무지의 소치 일뿐이다.


특히 차영배 교수는 위트니스 리가 <거듭난 사람 안에 '아버지, 아들, 성령님 세분 모두가 계신다>고 믿고 가르친다고 스스로 시인했다(월간 교회와 신앙 2001년 10월 호, 131-132쪽). 그렇다면 이 한 마디 말로도 위트니스 리는 양태론자가 아니다. 일신론자도 아니다. 이 대목은 매우 중요하다. 따라서 위트니스 리가 '거듭난 사람 안에 세 인격들 즉 아버지, 아들, 성령 하나님 모두가 계신다'고 말한 본문을 좀 더 넓게 인용 소개해 보겠다.


'성경에서 그영(성령)이 우리 안에 계시고, 그리스도가 우리 안에 계시고, 아버지가 우리 안에 계시다는 것은 분명하며 논쟁의 여지가 없다. 오늘날 세 분 모두가 우리 영 안에 계신다. 우리는 세 분이 분리되어 있고 하나가 아니라는 것을 믿지 않는다... 그러므로 에베소서 3장에서 신격의 세분은 함께 역사하고 우리를 하나님의 모든 충만에 이르도록 충만케 하신다. ...우리는 가끔 세계의 7대 불가사의에 대해서 말하지만...온 우주 가운데 유일한 불가사의는 우리 안에 계신 삼일 하나님이다.'(위트니스 리, 그리스도와 교회의 빛 안에서 본 신약의 개관 2, 한국복음서원, 2000년, 175-176쪽).


위 인용문들에서, 위트니스 리는 1) 아버지, 아들, 성령 세 인격들이 모두 우리 안에 계신다. 2) 아버지, 아들, 성령 세 분이 우리 안에서 각각 분리되어 여기 저기 계신 것은 아니다. 3) 세 인격은 상호내재 하신다. 4) 삼위는 우리 안에서 구별은 되지만 분리되지는 않는 한 분으로 계신다는 것을 말하고 있다.


거듭 말하거니와 이것은 균형 잡힌 성경적인 삼위일체관이지 양태론이 아니다. 유대교 같은 단일신론도 물론 아니다.


교회 역사상 나타난 <양태론>(http://www.carm.org/heresy/modalism.htm)은 <아버지가 아들이 될 때 더 이상 아버지가 없고, 아들이 성령이 될 때 더 이상 아버지 아들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가르치는 이단사상이다(Modalism...In other words, the Father, the Son, and the Holy Spirit never all exist at the same time, only one after another). 그러나 위트니스 리는 이렇게 가르치지 않는다. 누구든지 이런 양태론 사상을 참으로 믿는다면, 그는 결코 위트니스 리처럼 <아버지, 아들, 성령님 세 분 모두가 거듭난 사람 안에 계신다>고 말할 수 없다. 그러나 위트니스 리는 그렇게 믿고 가르친다. 이것을 차영배 교수, 최삼경 목사 같은 비판자들 스스로도 시인했다. 이것만으로도 일부 이단감별사들에 의해 위트니스 리에 대해 부당하게 행해졌던 <양태론자, 일신론자>라는 거짓 정죄는 모두 근거 없는 잘못된 것이었음이 증명된다.


4) 삼위일체 교리가 한국교계에서 이토록 혼란스러운 이유는 무엇인가?


혹자는 이미 <성경적인 삼위일체론>은 분명하게 정립되었다고 말한다. <세 인격, 한 본질>을 가리키는 말이다. 그러나 조금만 깊이 물으면 그 사람 스스로 혼동에 빠지고 만다. 그렇다면 그 원인이 무엇일까? 물론 삼위 하나님 자신이 사람의 머리로 다 알 수 없는 신비임이 제일 큰 이유일 것이다. 그러나 한국 교계 내에는 적어도 다음과 같은 두 가지 실제적인 문제들이 성경이 계시하는 삼위일체를 바로 이해하는데 장애가 되는 것 같다.


(1) <하나님의 구원의 경륜>(딤전1:4, 엡1:4-5, 9, 3:2, 9)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함 : <죄인>을 <하나님의 장성한 아들들>로 만드시려는 하나님의 구원의 경륜은 크게 볼 때 다음 두 가지 요점이 있다.


첫째, 에베소서 1:4-5 은 하나님의 구원계획의 내용을 보여준다. 이 말씀은 '창세 전에...우리를 택하사...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자기의 아들들(휘오데시아(5206))이 되게 하셨으니'라고 말한다. 즉 <거룩하고 흠 없는 하나님의 아들들 얻는 것>이 하나님의 구원의 목표이다. 장차 어디 가는 것이 구원의 목표가 아니다.


둘째, 요한복음 10:10 은 구원 계획의 성취 방법을 계시한다. 즉 이 말씀은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고 함으로 하나님의 구원계획이 궁극적으로 <사람 안에 생명 되신 주 예수님의 지속적인 분배>를 통해 성취됨을 보여 준다. 이런 구원은 신의 초월과 내재가 동시에 있어야만 가능하다. 우리가 얻고 또 얻는 <생명>이 다만 제 2격만이 아니라 상호내재 하시는 삼위 하나님 전체임을 보는 것도 중요하다. 이에 대해서는 골2:9, 고전15:45 본문을 깊이 묵상해 볼 필요가 있다. 거듭난 후 생명을 얻고 더 얻어 우리의 온 존재가 하나님의 장성한 자녀가 되는 것을 목표로 지금도 우리 안에서 소원을 두고 역사하시는 하나님(빌2:12-13)을 보아야 삼위일체를 바로 이해할 수 있다.


(삼위일체를 구원의 경륜에서 보아야 한다는 것과 삼위의 완벽한 상호내재를 말하는 자료로 http://www.kbcg.org/newlife/reading/qa_threeasone.htm 을 참조).


(2) 한국교계에서 삼위일체 이해가 혼잡해진 것은 이단감별사들 탓도 큼: 이들은 자신들의 비 성경적인 삼위일체관으로 이 사람 저 사람을 함부로 삼위일체론이 이단이라고 정죄해 왔다. 그러나 최삼경 목사의 <지상 사역시의 아들 안에는 아버지는 안 계셨다>는 주장은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신다>(요14:10-11)는 예수님의 말씀과 상치된다. 이 기준에 의하면, 예수님 자신도 양태론자이다. 크게 잘못된 기준이다. 삼위 하나님의 <하나>를 마치 <남편과 아내가 부부를 이루는 식의 하나>로 설명하는 원세호님의 소위 <에하드 개념>도 비 성경적이다. 두 사람 주장 다 요14:10-11, 20, 17:21 등에서 예수님이 반복해서 말씀하신 삼위 간의 <상호내재 개념>(페리코레이시스, coinherence)이 빠져 있다. 이처럼 삼위의 셋을 지나치게 강조하면서 그 셋이 여전히 한 분이심을 유지시키는 상호내재를 부인해 버리면 자동적으로 삼신론 이단에 떨어지고 만다. 그러나 이들이 비판하는 위트니스 리는 성경대로 상호내재를 믿는다(http://www.livingstream.com/witness-lee/0870837982_Lexcerpt.html 참조).


요14:10-11, 20, 17:21 등의 성경과 아래 신학자들은 <서로 안에 거하는 하나>식 상호내주를 말하고 있다. 원세호님의 <부부로서의 하나 식>이 아니다.


(1) 어거스틴은 '상호내재'를 <both are in each, and all in each, and each in all, and all in all>로 정의한다(The Works of St. Augustine "On the Trinity", Book VI, p103). (2) George Bull 주교도 <상호내재는 세 위격들의 상호내주를 의미하고, 그들이 하나 안에 있는 것처럼 하나가 다른 둘 안에도 변함없이 있는 것>이라고 한다(Defense of the Nicene Creed, Oxford, 1851). (3) 아우구스트스 스트롱도 <거룩한 삼위일체의 위격들은 분리할 수 있는 개체들이 아니다. 각각은 나머지 둘을 포함하며, 각각의 오심은 나머지 둘의 오심이다>라고 말한다(Systematic Theology(Phila delphia: The Judson Press, 1912) p 333).


이 서론 글은 신학을 하신 분들도 염두에 두고 좀 더 심도 있게 삼위일체관을 다뤘습니다. 그러므로 어떤 분들에게는 다소 내용이 어려울 수 있습니다. 이 점 양해를 구합니다.

 


2. 원세호님의 지방교회 <수박덩이 성부 신론>비판 재반박


이제 이 글을 시작으로 원세호님의 지방교회 신론 비판에 대한 구체적인 재 반박을 시작하고자 한다.


1) 비판자 원세호님은 어떤 사람인가?


어떤 사람의 비평 글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는 비결은 무엇일까? 글 쓴 사람을 먼저 연구해 보는 것도 한 가지 비결일 것이다. 그렇다면 소위 <지방교회 주장과 성경적 변증서>를 쓴 원세호님은 과연 어떤 인물인가? 원세호님이 근 반 평생을 몸담았던 <기독교한국침례회(이단대책위)> 측은 침례신문(2000년 2월 22일자) 보도에서 원세호님을 이렇게 평가하고 있다(http://www.eedan.net/edan2-7.php).


"<원세호가 스스로를 진리의 수호자라고 주장하지만 그의 행위는 하나님의 공의의 기준에도, 사랑의 분량에도 미치지 못하는 것이다. 자신만이 옳다고 강변하며, 자신의 주장을 따르지 않는 자는 교단이건, 개인이건 다 이단자나 사탄의 하수인이라고 모욕하는 것은 지독한 독선에 불과한 것이다... 무릇 글이란 필자의 인격을 나타내는 것이다. 원세호의 공격성 글은 그 문체나, 사용된 단어나, 내용에 있어서 신학적인 글도 아니요, 천박한 자들이나 사용함직한 저질스럽고 무질서하며 혐오스러운 것이다. 그 글들을 계속 게재하는 잡지야말로 또한 한심스러운 것으로써 일고의 가치도 없다>." "<이단이니 교주니 하는 말을 조심해서 사용하고, 어떤 목사를 이단인가하고 묻기 전에 먼저 그의 중심 교리가 성서적인가 비성서적인가를 살피기 바란다>." "<따라서 원세호에 의한 이단성 주장은 신학적 객관성이 결여되어 있다>." "<여러 부분에서 원세호의 주장은 해석학적 문제를 가지고 있다. 사람의 머리와 다리...다 잘라내고는 몸통만 가지고 설명하는 꼴이다. 예를 들면 공자나 석가가 죄를 잘 가르쳐서 운운하면서 마치 예수님을 공자나 석가와 비교하는 죄를 범한...라고 매도하였는데 이러한 잘못은 이단들이나 쓰는 정통 방법이니 원세호는 부디 따르지 말기를 바란다>."


이 신문기사는 <원세호님을 목사에서 제명시킨 사실>, <그가 회장으로 있는 「기독교이단사이비연구대책협의회」라는 단체의 인쇄물을 쓰레기 정도로 취급하라는 권면>의 말도 추가로 소개하고 있다. 이것이 침례교단이 객관적으로 판단하고 공개한 <원세호 관>이다.


이러한 내용을 종합해보면, 원세호님은 1) 스스로 진리 수호자를 자처하지만 그 행위는 그렇지 못함 2) 신학적인 객관성이 결여됨 3) 비판 방법과 해석학에 문제가 있음 4) 글 내용이 지나치게 공격적이고, 천박하고, 무질서하고, 저질스럽고, 혐오스러움 5) 자신만이 옳다고 강변하는 사람임 6) 어떤 사람의 <중심교리>가 성경적인지를 판단하지 않고 지엽적인 것을 물고 늘어짐 의 특징을 가진다.


참으로 놀라운 사실은 <수박덩이 성부 신론 비판 글> 등 지방교회측을 공격하는 그의 글 도처에서 위 기침 교단이 지적한 <원세호님의 인물됨의 특성>이 고스란히 관찰된다는 점이다.


2) 원세호님은 왜 <중심교리>가 아닌 <예화 하나만>을 분석대상으로 삼았는가?


통상적으로 보면, <사이비 이단감별사>들은 어떤 사람의 중심진리가 참으로 성경적인가 아닌가 에는 별로 관심이 없다. 다만 자신들이 이단으로 만들기로 작정한 대상을 일반 평신도들에게 <상종 못할 이단>으로 각인 시킬 어떤 것을 집중적으로 찾아낸다. 즉 이들은 비판 대상자의 말 중에서 <우스꽝스런 대목>, <누가 들어도 말이 안 되는 듯한 대목>을 문맥을 무시하고 골라낸다. 때로는 이곳 저곳의 전혀 다른 것으로 새로운 문장을 만들어 내는 작문도 서슴지 않는다. 실제로 갓맨 책자를 낸 미국의 SCP 라는 이단감별 단체는 무려 9쪽이나 떨어진 두 문장들을 함께 모아 이런 일을 하기도 했다. 그리고는 이런 <감각적이고 자극적인 문장이나 단락들>을 최대한 부풀린다. 그리고 기회 있을 때마다 반복해서 써먹는다. 이런 과정을 통해 이들의 비판대상들은 일반 평신도들에게 <기본상식도 없는 별종들>로 각인 된다.


소위 위트니스 리의 <수박 예화>가 바로 이런 것이다. 이것은 처음에 최삼경 목사가 발굴해 낸 것이다. 이것이 최 목사를 두둔하는 차영배 교수의 글에서 재차 발견되더니 이제 원세호님에게까지 전달된 모양이다.


원세호님은 지방교회의 성부 신론을 비판한다고 했다. 생각해 보라. 이것은 얼마나 비중 있는 주제인가? 그러나 실상은 어떤가? 원세호님의 글은 처음부터 수박으로 시작해서 수박 이야기 하다가 수박으로 끝났다. 심지어는 글 제목부터가 <지방파의 수박덩이 성부 신론>이다. 이것이 한국 공 교단을 위해 진리를 판단한다는 사람의 모습인가? 이처럼 중심 교리를 무시하고 예화 하나를 집중적으로 물고 늘어지는 듯한 이단연구 방식이 합당한가?


위트니스 리는 신론에 대하여 <신약의 결론-하나님>(한국복음서원, 1991)이라는 510 쪽에 달하는 책을 썼다. 삼위일체론에 관련해서 그가 쓴 <그리스도>, <성령> 이란 별도의 책자도 있다. 이것들을 다 합치면 그 내용이 자그마치 1500 쪽이나 된다. 소위 지방교회의 삼위일체관을 연구 비판할 수 있는 좋은 자료인 것이다. 특별히 소위 성부의 인격과 관련하여 위트니스 리는 위 '하나님' 책자에서 약 40쪽에 걸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과 아버지>, <영광의 아버지>, <하늘과 땅에 있는 각 족속의 아버지>, <그리스도의 머리>, <거룩하고 참되신 대주재> 등 39개 항목으로 나누어 상세하게 설명하고 있다(42-80쪽).


물론 여기엔 원세호님이 유일한 비판 대상으로 삼은 <수박덩이 성부>라는 말은 그림자조차 없다. 교리를 다루는 일이기 때문이다. 예화는 설교하는 현장에서 청중의 이해를 돕기 위한 것이다. 말 그대로 예화일 뿐이다. 삼위일체에 대한 예화는 어떤 예화든 비판의 여지가 있다. 그러므로 예화를 가지고 트집을 잡는 듯한 인상을 주는 것은 경박스런 것이다. 예화를 통해 삼위일체 특징 중 어떤 점을 강조하는지 만을 보면 된다(원세호님은 위트니스 리의 강조점을 의도적으로 왜곡시켰다). 이것은 상식적인 말이 아닌가? 한국 교계 내에서 소위 이단 감별한다는 사람들에게 이 만한 여유와 아량을 기대하는 것도 무리인가?


우리는 이제 설교내용을 녹취해서 말꼬투리나 잡고, 사용한 예화나 물고 늘어지는 식의 이단 감별 방식을 마감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더 학문적으로나 인격적으로 덕망이 있고 진리에 대한 균형 잡힌 인식과 조예가 있는 사람들에게 이런 일들을 부탁해야 할 것이다.


3) 무엇이 <수박예화>에서 위트니스 리의 강조점인가?


원세호님이 인용한 수박 예화 출처는 <하나님의 경륜>(한국복음서원, 2002)이란 책자이다. 그렇다면 위트니스 리는 어떤 점을 좀 더 쉽게 이해시키기 위하여 소위 수박 예화를 들었는가? 위트니스 리는 원세호님의 비양심적인 왜곡처럼 <아버지(수박덩이)=아들(수박조각)=성령(수박즙)>라고 하며 <아버지가 아들이고 아들이 성령임을 주장> 하기 위하여 수박 예화를 든 것이 아니다. 위트니스 리는 <하나님 자신이 사람 안에 들어오시는 것>이라는 하나님의 구원의 경륜을 쉽게 이해시키기 위해 수박 예화를 들고 있는 것이다.


혹자는 이렇게 생각할 수 있다. 하나님은 광대하시고 사람은 이렇게 작은데 어떻게 하나님 자신이 정말로 사람 안에 들어오실 수가 있는가 하고... 만일 이런 생각을 하는 사람이 있다면 이 사람은 '수박 예화'가 도움이 된다. 즉 <우리가 수박을 덩이 째 먹지 않는다. 수박은 쪼개지고, 즙이 되어 우리 안에 들어오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상호내재 하심으로 구별되나 분리되지 않으시는 삼위 하나님 전체>가 예수 안에서 육신을 입으시고(골2:9(신격의 모든 충만이 육체로 거하시고), 요1:14), 십자가에서 죽으시고(고전15:3), 성경대로 사흘만에 다시 살아나시고(고전15:4), 마침내 생명주는 영으로서 우리 영 안에 들어오실 수 있다(고전15: 45). 그래서 사람은 이 영을 자신의 존재 깊은 곳에 있는 영 안으로 영접할 수가 있다. 이것이 '주와 합하여 한 영'됨을 체험한 것이다(고전6:17, 요3:6)>라고 말하는 것이다.


소위 수박 비유가 들어 있는 곳은 하나님의 경륜 책자 제 5장(59-72쪽)이며, 그 제목은 <하나님의 세인격과 사람의 세 부분>이다. 즉 이 단락 전체의 내용은 <세 인격을 가지신 하나님이 세 부분(영, 혼, 몸)을 가진 사람 안에 들어가심>을 말하고자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위트니스 리는 이런 자신의 강조점에 대한 이해를 돕도록 수박 비유를 사용했다. 결코 원세호님의 뒤틀린 거짓주장처럼 <아버지=아들=성령을 주장해서 양태론자가 되기 위함>이 아니다. 원세호님은 자신이 미리 만들어 놓은 양태론이라는 맞춤양복에 억지로 위트니스 리를 끼워 넣으려고 했지만 그것은 헛수고이다.


이제 본문을 인용해 보기로 하겠다.


<하나님은 어떤 목적으로 사람을 창조했는가? 하나님은 사람을 그분을 담는 그릇으로 창조하셨다. 나는 '담는 그릇'이란 말을 좋아한다. 왜냐하면 그것은 그릇이란 말보다 더 분명하기 때문이다....우리는 다만 빈 그릇이다(롬9:21, 23, 고후4:7). 하나님은 우리의 유일한 내용이 되기 원하신다. ...담는 그릇으로서 우리 안에 하나님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안된다(61쪽).>


<하나님이 그분 자신을 우리 안에 내용으로 넣으려면 그분이 세인격으로 존재하지 않으면 안된다. 우리는 하나님의 세인격의 비밀을 결코 정확하게 이해할 수 없다...>(62쪽).


<하나님이 그의 경륜을 이루시는 것은 그분의 여러 인격들에 의해 이뤄지기 때문에 우리는 이 문제를 강조한다. 만일 이 여러 인격, 즉 아버지의 인격과 아들의 인격과 성령의 인격이 없다면 하나님은 결코 그분 자신을 우리 안에 넣을 수 없다'>(64쪽).


독자들은 위에서 위트니스 리가 <여러 인격>을 말하고 있음을 주목하기 바란다. 우리는 이것을 <거듭난 사람 안에 세 인격이 모두 계신다>는 말과 <셋은 상호내주한다>는 말을 함께 놓고 위트니스 리의 삼위일체를 판단해야 한다. 바로 위 내용에 이어서 65쪽에서 소위 수박 예화가 등장한다. 계속 인용해 보자.


<① "예를 들어 그것을 설명해 보겠다. 만일 여러분이 수박을 산다면 여러분의 의도는 이 수박을 먹어 소화시키는 것이다. 바꿔 말하자면 여러분의 의도는 이 수박을 여러분 안으로 역사 하게 하는 것이다. 어떻게 이 일이 이루어질 수 있는가? 첫째로 여러분은 수박을 산다. 둘째로 그것을 여러 쪽으로 자른다. 셋째로 이 수박이 여러분의 위로 들어가기 전에 즙이 될 때까지 씹는다. 수박이 조각들이 되고 조각들이 즙이 된다. 그러면 이것들은 각각 다른 세 가지인가, 한가지인가? 나는 이것이야말로 삼일성에 대한 가장 좋은 설명임을 확신한다" (7. P. 65, 9-17줄 ; 위트니스 리 주장).>


<요한복음에서 1장에는 아버지가 계시고, 그 다음 장들에는 아버지의 표현인 아들이 있고, 20장 22절에는 아들의 호흡이 되는 영이 있다. ...하나님 자신인 말씀이 어느 날 사람이 되셔서...결국에는 죽으셨다가 부활하셨다. ...그는 제자들에게 숨을 내쉬며 성령을 받으라고 말씀하셨다. 그 숨이 바로 수박 즙과 같은 성령이다...그러면 요한복음의 끝 부분에서 이 놀라운 분은 어디 계신가? 우리 안에 있는 수박처럼, 주님은 호흡인 성령을 통해 제자들 안에 계신 것이다. 하나님의 경륜은 이 세 인격에 의하여 자신을 우리 안으로 역사 하시는 것이다. 하나님의 이 세 인격은 반드시 필요하다>(66-67쪽).


위에서 보듯이 수박비유의 초점은 <하나님 자신이 사람 안에 들어오심>을 강조하는 것에 있다. 만일 원세호님이 이것에 대해 이의가 있으면 얼마든지 수박비유를 비판 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원세호님도 차영배 박사의 이단적인 주장처럼 <성령만 우리 안에 계시지 아버지나 아들 본인은 우리 안에 안 계시다>고 함으로 삼위의 세 인격 모두가 우리 안에 있다는 수박비유를 반박하라. 그러나 지금처럼 이것을 엉뚱하게 비틀어 왜곡시키지는 말라. 원세호님이 자신을 신학자로 생각한다면 학자의 양심과 품위를 지키기 바란다.


4) 원세호님의 비판에 대한 구체적인 재 반박


이미 다룰 필요가 있는 중점들에 대해서는 충분히 반박했다. 그러나 원세호님의 구체적인 언급들에 대해 추가하여 간략하게 반박해 보겠다.


(1) 원세호님 주장: <이 수박 원리를 하나님에게 적용하면...덩이 수박 성부-아버지는 쪼갠 성자-아들 수박이고 즙 수박은 성령 수박이 된다. 왜냐하면 즙된 수박도 모양만 다르지 덩이였고 쪼갠 수박도 갈라진 모양만 달라졌으나 덩이 수박이다. 그러므로 아버지 = 아들 =그 영이 된다>.


반박: 원세호님은 진리를 가지고 장난하지 말라. 위트니스 리는 <상호 내재하심으로 구별은 되나 분리되지 않으시는 삼위 하나님 전체>가 아들 안에서 성육신하시고, 부활 후에는 생명 주는 영으로 우리 안에 들어오셨음을 말한다. 그러므로 이 점에 대해서 이의가 있으면 자신의 논리로 반박해 보라. 대신에 <...그러므로 아버지 = 아들 = 그 영이 된다.>라는 억지를 써서 무리하게 남에게 양태론자라는 모자를 씌우려고 하지는 말기 바란다. 위트니스 리는 수박비유로 <삼위가 존재에 있어서 아버지 = 아들 = 그 영>이라고 믿지도 않고 그렇게 가르치지도 않는다. 위트니스 리는 <구별된 삼위가 상호내재 하는 방식으로 존재하심>을 믿는다. 원세호님은 <상호내재 개념>을 잘 이해하지 못함으로 이런 오해를 하는 것이다.


(2) 원세호님 주장: <위트니스 리가 과정을 통한 경륜을 설명하는데는 이치가 맞을 듯 하지만 과정을 통한 경륜도 성경에 맞지 않는 주장이고 보면... 이것은 기독교의 성경에 나타난 하나님을 부인하는 주장이 아닌가? 다시 말하면 하나님은 한 분이며 수박덩이 인데 아버지 = 아들 = 그 영이 되는 것이다>.


반박: <경륜적인 삼위일체의 방면>이 성경에 맞지 않는 주장이란 말인가? 참으로 신학을 모르는 소리이다. 누구든지 경륜적인 삼위일체의 방면을 이해하지 못하면 삼위일체를 균형 있게 이해하지 못하게 된다. 예를 들어, 마3:16에서 성령이 비둘기 같이 예수님 위에 임하는 그 순간에 성령은 예수 안에는 안 계셨는가? 또한 요14:10 에서 예수님이 빌립에게 아버지에 대해 설명하는 그 순간에 아버지는 하늘에만 계시고 예수님 안에 안 계셨는가? 만일 이 두 가지 질문에, "예스"(yes)라고 한다면 원세호님은 삼신론 이단자이다. 정답은 예수님 안에도 계시고, 하늘에도 계신다(또는 하늘에서도 내려오셨다)는 것이다. 이 둘 다가 성경의 기록이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지만 위트니스 리는 원세호 식 <아버지 = 아들 = 그 영이 되는 것>을 가르치지 않는다. 함부로 왜곡시키지 말라.


(3) 원세호님 주장: <이런 주장은 성경 신론을 완전히 부인하는 주장이다. 수박 덩어리 아버지 신론은 비진리이며 거짓 주장이며 성부 하나님을 부인하는 주장이다. 그리고 위트니스 리와 그의 추종자들은 예화의 한계라고 변명하지 말라!>


반박: 삼위일체론에 대한 예화에 한계가 참으로 없는가? 정통 신학자로 알려진 어거스틴을 그가 사용한 예화로 삼위일체에 있어서 이단으로 만드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다. 예화만을 가지고 남을 이단이라고 할 수 있는가? 그렇다면 원세호님은 왜 장로교단 교리의 정신적 지주인 어거스틴을 그의 삼위일체 예화로 이단시하지 않는가? 그의 예화가 원세호님이 보기에 빈틈없이 완벽한가? 원세호님은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고 공감이 되고 납득이 가는 진리비판 방식을 연구해 보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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