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Ⅱ. 원세호님의 지방교회 「교회관」 비판에 대한 재반박(下)

 

9. 원세호님의 <교회와 예배> 비판에 대한 재반박


자질 즉 신학에 대한 학문적인 기초훈련과 검증과정이 의심스러운 소위 자칭 이단전문가들의 특징은 <무엇이 아니다, 틀렸다>는 말만 할 줄 알뿐 <성경적인 원칙과 옳은 것은 무엇인가>하는 대안 제시가 없다는 것이다. 유감스럽게도 원세호님에게서도 이런 특징이 발견된다. 가끔 제시된 판단기준이나 성경근거도 읽어보면 자의적인 것이 많다. 특정교단 교리가 투영된 것도 있다. 어떤 것은 해당 주제와 전혀 관련도 없다. 이처럼 절대기준이 아니고 상대기준에 불과한 자기 관점(특정 교단교리 포함)을 토대로 소수 개인이 주동이 되어 함부로 이단 삼단 단정 짓고 공개적으로 발표하여 기정사실화 하는 행습은 이제 한국교계 내에서 사라져야 할 것이다. 이런 어설픈 단정은 하나님의 교회 권위만 실추시킬 뿐이다.


원세호님은 지방교회측의 예배관이 비 성경적이라고 했다.


그러나 그는 무엇이 성경적인 예배인가에 대해서는 꿀 먹은 벙어리다. 다만 <강단 예배>가 성경적이라고 했다. 강단이 있어야 하느냐 마느냐 하는 예배 형식만으로 이단 삼단 할 수 있는가? 없다. 원세호님은 <소위 강단 예배가 일반적으로 행해졌다>는 성경근거로 히브리서 10:25을 제시했다. 그러나 해당 성경본문에는 강단예배에 대한 언급이 전무하다. 그냥 모이기를 힘쓰라는 권면 뿐이다. 독자들도 직접 해당 성경 본문을 읽어보고 소위 이단전문가로서의 원세호님의 자질을 스스로 판단해 보기 바란다.


원세호님의 또 다른 잘못된 예배관 중 하나는 '예배당에 앉아서 강단 위에서 선포되는 말씀을 듣는 시간만을 예배'로 규정함으로 성도들이 생활 가운데 주님을 예배하는 삶의 중요성을 상대적으로 무시한 것이다. 원세호님 같은 이런 비성경적인 예배관이 예배당 안에서는 거룩한 신자처럼 앉아 있다가 예배당을 나오자 마자 세속적인 생활방식으로 돌아가는 이중 신자들을 양산한 것이다. 이것은 우리가 예배당에 모일 필요가 없다는 말이 아니다.


이제 우리는 그렇다면 과연 무엇이 성경적인 예배인지, 어떻게 예배해야 하는지, 그리고 예배는 꼭 강단 예배여야 하고 이를 부인하면 원세호님 말처럼 기존 기독교계를 파괴하는 것인지를 살펴보기로 하자.


1) 무엇이 성경적인 예배인가?


우리는 이 문제에 대한 해답을 요한복음 4장에서 예수님과 사마리아 여인 사이에 나눈 대화를 통해 얻을 수 있다.


주님은 '여자여 내 말을 믿으라 이 산에서도 말고 예루살렘에서도 말고 너희가 아버지께 예배할 때가 이르리라. 너희는 알지 못하는 것을 예배하고 우리는 아는 것을 예배하노니 ...아버지께 참으로 예배하는 자들은 영과 실제 안에서 예배할 때가 오나니...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는 영과 실제 안에서(in spirit and in truth) 예배할 지니라'(요4:21-24)라고 말씀하셨다.


위 말씀에서 언급된 '예배'(worship)라는 단어의 원문은 '프로스퀴네오(4352)로서 '입 맞추다' 또는 "나아가서 손에 입 맞추는 것"이란 의미가 들어 있다. 즉 예배의 의미는 <(거룩한) 접촉의 개념>을 내포한다. 그렇다면 누구와 누구의 접촉인가? <영이신 하나님과 (사람의) 영 안에서 진리 안에 있는 사람>과의 접촉이다. 이러한 접촉이 예배의 핵심이다. 이것이 성경적인 예배를 정의하는 요4:24의 요점이다. 물론 이러한 예배시에는 통상 성경 말씀의 선포와 찬양과 기도와 성도간의 교제가 포함된다. 주님과의 참된 접촉이 없기 때문에 어떤 사람은 예배시간 중에 그냥 무덤덤 하기만 하다. 그러나 어떤 사람은 예배 중에 눈물이 주르르 흐르거나, 마음에 진한 감동이 오거나, 말씀이 갑자기 깨달아지거나, 오랜 기도제목에 대한 응답을 받거나, 오랫동안 미워하던 사람에 대한 미운 마음이 눈 녹듯이 사라지는 체험을 하기도 한다. 그가 영 안에서 영이신 하나님을 접촉했기 때문이다.


이런 바른 예배관을 기준으로 본다면 아래의 위트니스 리의 예배관은 성경적이고, 이것을 비판한 원세호님의 주장이 오히려 크게 잘못되었다.


<위트니스 리의 예배관: ① "주님은 우리가 그 분을 먹고 마셔서 그분을 살고 확대하기를 원하신다. 요한복음 4장에서 주 예수님은 경배에 관한 사마리아 여인의 질문에 답하셨다. 합당한 경배는 우리의 영으로 영이신 하나님을 접촉함으로써 생수를 마시는 그 영이다(14; 23-24). 그 분을 먹고 마심으로써 우리는 그 분을 살고 확대한다...우리는 그 분을 먹고 마실 때 우리는 아버지께 참된 경배를 드린다. 이것이 그 분을 즐겁게 한다. 이것이 우리 생명이신 그리스도를 체험하는 것이다"(10.(삼일 하나님) p. 89, 5-11줄)... ③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영과 실제로 예배할 지니라고 말한다. 합당한 예배는 우리의 영 안에 그 영을 예배하는 것이다"(28.(생명의 메시지) p. 119, 11-12줄).>


<원세호님의 주장: ③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영과 실제로 예배할 지니라고 했으므로 예배란 영 안에서 그 영을 예배하는 것이라'는 주장은 크게 잘못되었다.>


2) 어떻게 예배해야 하는가?


신명기 12장을 보면, 구약에서는 누구든지 하나님이 정하신 특정 장소인 예루살렘에 가야 예배할 수 있었다(5, 11절). 그러나 요한복음 4장 등에서 주님은 신약의 예배는 이 산이나 저 예루살렘 등 장소 문제가 아니라고 하신다. 이어서 예배의 핵심은 영이신 하나님을 참되게 접촉하는 실제를 갖는 것임을 지적하신다. 즉 참된 예배는 영이신 하나님과 영과 진리 안에 있는 사람의 접촉(만남)이다. 하나님은 영이심으로 시간과 공간의 제한을 받지 않으신다. 따라서 어떤 특정한 장소, 특정한 시간, 특정한 형식이 구비되었을 때만 예배를 받으시는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예배당 등의 특정 장소, 강대상 등의 특정 형식을 갖춰야 예배라는 생각은 옳지 않다(이에 대해 http://magazine.wheel.or.kr/book/2001-10/25.html 를 보시오. 또한 다시 강조하지만, 이것은 정기적인 예배모임이 필요 없다는 말이 아니다).


참고로 다른 신학자들이 말하는 신약 초대교회 때의 예배 모습을 소개해 보겠다.


(1) '예배의 방법에 대해서도 성경은 또한 꽤 분명하게 밝혀 줍니다. ...그런데 그 형태는 오늘날의 관습적인 예배 형태와는 놀라울 만치 달랐습니다. 예배의 주된 목적은 (만찬) 떡을 뗌으로 주님을 기념하는 것이었음이 분명합니다. 많은 성경들은 그리스도인들의 집에서 그러한 단순한 집회를 가짐으로 주님을 기념했던 것을 강조합니다...떡을 떼며 잔을 마심으로 주님을 단순히 기념하는 예배가 있었습니다(고전11:23-26).(Arthur P. Stanley, The Epistles of st. Paul to the Corinthians(London:John Murray, 1882), p.279).


(2) '초기시대의 그리스도인 교회예배는 만찬이 중심이었다'(Joseph Cullen Ayer, Jr., A Source Book for Ancient Church History(New York: Charles Scribner's Sons, 1948), p32)


(3) '성경에 나타난 예배모습은 성령께서 자유롭게 인도함으로 아버지와 아들 하나님께 찬양과 예배를 드리도록 하는 열린 모임이었다...그 만찬을 떼기 전이나 후에 신언(prophecy) 이나 가르침, 기도 그리고 방언 등과 같은 다른 은사들을 행하는 시간이 많이 있었던 것처럼 보입니다...초기 교회들에게는 사도 바울이 인간의 몸에 비유한 것과 같은 기능들이 있었습니다...심지어 말씀으로 덕을 세우는 것도 배타적으로 어떤 한 사람에게만 국한되지 않았다. 어느 누구든지 내적으로 말씀증거에 대한 내적인 부르심을 느꼈다면 (예배)모임에서 말씀을 증거 할 수 있었다'(도날드 L. 노비(장세학 옮김), 신약교회의 조직(서울: 전도출판사, 1994) 39-40쪽).


위 내용들을 종합해 볼 때, 신약 교회 내에서의 예배모습은 만찬예배 중심이었으며, 성령의 인도를 따라 모든 성도들이 은사와 분량을 따라 기능을 발휘하는 형태였지, 원세호님의 거짓 주장처럼 한 특정된 인도자만 매주 설교하고 다른 성도들은 귀만 가지고 와서 듣는 형식이 아니었다. 물론 외부 설교자가 방문했을 때는 소위 강단예배 형식을 취했을 수도 있다. 그러나 이것이 신약교회 예배의 주된 모습이라는 주장, 이런 예배 형태를 따르지 않으면 <기독교계로부터 상처받은 것을 계획적으로 보복하거나 기독교 교회들을 파괴하려는 것> 이라는 원세호님의 주장은 너무 무책임한 상식 이하의 말이다.


3) 지역교회 예배는 꼭 강단 예배여야 하는가?


무엇이 원세호님이 말하는 <강단예배>인가? 그것은 수백 명이 모였든 수 천명이 모였든 예배 시 강대상 앞에 선 한 사람만 말하고 나머지는 다 듣는 형태의 예배를 말한다. 성경에는 외부에서 사역자가 특정 지역 교회를 방문했을 경우 예외적으로 이런 예배를 드릴 수 있음을 보여준다(행20:7). 그러나 지역 교회가 매주 마다 이런 형태의 예배를 가진 기록은 성경엔 없다. 오히려 성경과 교회 역사는 지역교회 예배형식은 상호성이 있고 성령님의 인도를 따라 반응하는 자유스러운(그러면서도 질서가 있는) 예배 형태였음을 증거한다.


고전 14장은 '너희는 다 모든 사람으로 배우게 하고 권면을 받게 하기 위하여 하나씩 하나씩 말(prophesy)을 할 수 있다고 한다'(31절). 특히 '전체 교회가 한 장소에 함께 모였다면'(If therefore the whole church be come together into one place)이라고 한 고전14:23은 이 곳의 구절들이 교회가 함께 모일 때의 예배모습을 묘사한 것임을 보여 준다. 물론 이런 형태의 예배가 만찬 예배와 함께 어우러졌음은 앞에서 인용 글을 통해 지적했다.


앞에서 인용했던 스텐리(Stanley)의 연구는 <사도시대의 초기 그리스도인 교회들은 후세와 같지 않았고 반드시 집례를 주관하는 어떤 정해진 성직자 계급에 의해 통제되지는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고 증언한다(위 책, 277쪽). 또한 교회 역사가인 필립샤프는 그의 명저인 'History of the Christian Church' 에서 <(감독이 장로 위의 계급이라는 이그나티우스의 소위 변질된) 감독제도는 교회들 사이에서 점점 더 널리 퍼지게 되었고 사도적인 가르침은 더욱 더 사라져 갔습니다. 2세기 중반에는 신약 성경의 모형을 고수하는 교회는 불과 몇 개만 남았습니다.>라고 증언한다(위 책, 498쪽).


따라서 이런 모든 정황들을 고려할 때, 원세호님이 지적한 유적지에서 발견되는 강대상 흔적은 신약 교회가 성경과 초대교회의 성경의 모형으로부터 변질되기 시작한 2세기 중반 이후의 것임이 틀림없다. 따라서 그런 유적만으로 강대상 예배가 성경적인 예배 모습이라고 말할 수 없다.


결론적으로, 오늘날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만찬 예배가 소홀히 취급되고, 매주 한 사람만 고정적으로 강대상 앞에서 길게 설교하는 형태의 예배모습>은 성경에서 발견되는 지역교회의 예배형태는 아니다. 오히려 고린도 전서 14장의 예배 형태가 성경적인 지역교회 예배 모습이다. 따라서 원세호님은 자기주장을 성경을 근거로 입증하는데 실패했다.


4) 먹고 마시는 문제를 검토함.


<원세호님 주장: ① '주님을 인간이 먹고 마시고 그 분을 살고 확대하기를 주님이 원하신다'나 '그 분을 먹고 마실 때 아버지께 경배하는 것이다' 라고 주장하는 것은 참으로 괴상한 주장이다. 예수님은 창조주 하나님이신데 인간이 먹고 마신 데서야 되겠는가? 잘못된 해석이다.>


원세호님은 자기 생각만 집착하여 예수님 말씀을 부인하는 무서운 죄를 범하고 있다. 요한복음을 보면 예수님이 <내가 생명의 떡이다. 이 떡을 먹는 자는 영원히 살리라>(요6:48, 58, 60)고 하자 제자들이 <이 말이 어렵다>고 했다. 그렇다. 주님을 먹고 성령을 마신다는 말씀은 성경에 분명한 근거가 있으되 이해하기 어려운 심오한 진리이다. 그러나 원세호님 착각처럼 괴상한 것이거나 잘못된 해석은 아니다.


만일 이에 대해 이의가 있으면 원세호님은 <나를 먹는 그 사람도 나로 인하여 살리라>(요6:57)라고 하신 예수님께 직접 '주님, 그 말은 괴상하고 잘못된 말입니다'라고 항의하기 바란다. 또한 <'우리가 ...종이나 자유자나 다 한 성령으로 침례를 받아 한 몸이 되었고 또 다 한 성령을 마시게 하셨느니라>(고전12:13) 라고 한 사도 바울을 나무라기 바란다. <생명 주는 영이신 주님을 참되게 먹고 마시는 것>을 모르면, 자기를 부인하고 그리스도를 사는 참된 교회생활은 거의 없다(요6:57, 갈2:20). 오직 현대판 율법사와 서기관과 바리새인이 되어 주님과 <주님의 참된 제자들>을 판단하고 정죄할 뿐이다.

 


10. 원세호님의 <교육과 죄와 교회와의 관계> 비판에 대한 재반박


말과 글은 처음부터 끝까지 모두 들어야 오해가 없다. 그런데 만일 앞뒤 자른 채 중간만 떼어 낸다면 어떤 정당한 사람의 말이나 글로도 크게 잘못된 듯한 부정적인 의미전달이 충분히 가능하다. 원세호님은 <지방교회 때문에 곤경에 빠진 예장 통합 측 총회장들의 명예를 회복시켜 주기 위해서> 자신이 이런 책자를 내었다고 공개적으로 말하고 있다. 독자들은 그가 지방교회 진리는 무조건 틀렸고 무조건 비 성경적이다 라는 말로 비판 책자 전체를 가득 채운 뒤에는 이러한 숨은 이유가 있었음을 바로 알아야 한다.


참되게 지방교회 교회론에 관심 있는 분들은 원세호님의 책자 같은 <불순한 의도로 가위질한 다이제스트 판>보다는 워치만 니와 위트니스 리의 원문을 직접 읽으면 유익하다. 이 주제와 관련해서 원세호님이 사용한 책인 <주의 회복>(한국복음서원)은 총 78쪽에 불과한 얇은 책이다. 책 가격도 저렴하니 직접 읽고 판단해 보라. 이 외에도 <교회생활의 특수성, 일반성, 실행성> <교회의 길> <교회의 정통> 같은 책자들도 지방교회측의 교회론을 객관적으로 파악하는데 매우 도움이 될 것이다.


이제 원세호님의 왜곡된 비판을 반박해 보기로 하겠다.


1) 원세호님은 지방교회가 마치 교육(가르침)을 부정하는 것처럼 왜곡시키지 말라.


<원세호님 주장: ① '교회생활은 교육으로 될 수 없다. 오직 한 가지 주의 이름을 부름으로써 복합적인 그 영을 접촉하는 것에 의한다. 그리고 날마다 그 분의 이름을 불러야 한다. 이것이 우리의 삶이다'(32(주의 회복). p. 54, 12-16줄). 이것은 잘못된 습관이며 교회생활 방법이다. 교회는 성도들의 모임이며 그 기능은 예배, 교육, 친교, 전도, 진리수호의 5대 기능을 순종으로 수행하므로 교회 생활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성경은 구원과 관계하여 주의 이름을 불렀지 '오 주 예수여!' 하며 반복한 역사가 없다.>


반박: (1) 우선 지방교회는 성도들의 교육을 부인하지 않는다.


오히려 지방교회 안에는 다양한 소그룹 형태의 성경공부가 많다. 성경에 가르치라는 명령이 있는 한(마28:20), 교회 안에서 성경 공부와 교육은 필요하다. 이 점에 오해가 없어야 한다. 그러나 위 인용문이 말하는 것은 <생명의 공급은 없는> '교리교육'은 사람을 자라게 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대신에 <복합적인 영을 지속적으로 접촉하고 만남>으로 사람은 변화도 되고 생명이 자랄 수 있다는 것이다. 거듭남, 생명의 성숙 등은 생명과 영이신 주님을 접촉함으로 가능하다. 참된 교회생활은 그 영(the Spirit)을 따라 살고(갈5:16), 그 영을 마시고(고전12:13), 그 영으로 충만(엡5:18) 됨으로 그리스도가 우리를 통해 사시고 나타나는 생활이다. 이런 생활은 교리 공부만으로는 잘 안 된다는 것이 많은 이들의 체험이다. 원칙적으로 교회생활은 <사람인 우리가 그리스도를 사는 생활>이다(갈2:20, 롬12장, 고전12장).


(2) 주의 이름을 부르는 실행도 지속적인 것이지 한 번 부르고 끝이 아니다.


사울이 회심 전에 주의 제자들을 핍박하러 찾으러 다녔다. 그런데 그는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들을 잡으러 다녔다고 성경은 말한다. 원세호님은 사도행전 9:1-2, 13-14, 21을 주의 깊게 읽어 보라. 이것은 구원받을 때 뿐 아니라 그후에도 제자들이 지속적으로 주의 이름을 불렀음을 보여 준다. 순교시의 스테반(행7:59)이나 성경 끝에서 사도 요한(계22:20)도 이미 구원받은 자이지만 <주 예수'(Lord Jesus)여> 하고 소리 높여 부르짖었다. 이런 성경증거들은 원세호님 주장이 잘못된 것임을 보여 주는 것이다. 원세호님도 자신을 메마르게 하는 교리와 논쟁에서 벗어나 <예수는 주시라>고 깊은 속에서부터 참되게 고백해 보라. 이것이 자신에게 구원의 우물물이 될 것이다(사12:3-4). 또한 예수를 주라고 고백할 때마다 달콤한 임재와 그분의 부요함(rich)을 체험케 될 것이다(롬10:12).


오해하지 말라. 위트니스 리가 '주의 이름 부름'이 주님을 접촉하는 유일한 길이라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 말씀 읽기, 기도, 전도, 예배 등을 통해서도 주님을 만날 수 있다. 그러나 생활 중에 가장 손쉽고 간단하게 실행할 수 있는 것이 '주님의 이름을 부르는 것'이라는 말이다. 초대 교회 성도들은 주의 이름을 부르면 잡혀가는 환경 속에서도 주의 이름을 불렀다(행9: 9:1-2, 13-14, 21). <주님의 이름을 부르는 것>(http://callingonthelord.chch.kr/)을 작은 일로 멸시하지 말기 바란다.


2) 원세호님 교회론에 의하면, 그리스도의 몸에도 죄가 있는가?


<원세호님 주장: ② 워치만 니의 주장 중에 '교회는 결코 실패하지도 아니했으며 범죄하지도 아니했으며 타락하지도 아니했다. 우리는 은혜로 구원받은 죄인의 무리에 불과하다. 따라서 말씀의 물로 씻음이 필요하다' 라고 주장했으나 크게 잘못된 주장이다. 그 이유는...지상의 교회는 어느 것이든지 죄가 있고 자백하고 의롭게 성장하여 가는 것이다.>


반박: 교회가 범죄하지 않았다는 말은 교회를 고전6:17의 <주와 합하여 한 영인 바로 그 상태>로 보고 한 말이다. 만일 이 연합된 영(신비적 연합) 자체에도 죄가 있다고 본다면 원세호님은 하나님도 죄가 있다는 주장을 하는 것이 된다. 워치만 니는 우리 안에 있는 교회의 실제인 신비적인 연합은 죄가 없지만, 우리의 육신은 여전히 말씀의 물로 씻겨질 흠이 있고 자백해야 할 것이 있다는 것이다. 이것은 요일3:9, 고전6:17, 엡5:26-27에 근거한 전혀 성경적인 주장이다. 원세호님의 정확하지 않은 교회관이 자신을 혼돈에 빠지게 할 뿐이다.


3) 원세호님은 말꼬리나 잡는 식의 유치한 비판을 중단하기 바란다.


에베소서 5:26-27은 이미 거듭난 사람도 여전히 변화 받지 못한 부분에 대해서는 말씀 안에 있는 물로 씻어 낼 필요가 있음을 말하고 있다. 티(spot)나 주름(wrinkle)이나 흠(blemish)이 <그리스도에게서 나오지 아니한 부분(부품?)들>이며 말씀 안에 있는 물로 씻겨져야 할 대상이다. 이것은 성경 말씀 그대로이며 원세호님도 이것을 부인하지 못할 것이다. 그렇다면 무엇이 어처구니가 없다는 말인가? 누가 교회를 <부품처리 공장>이라고 했는가?


그리고 <부품>으로 번역된 부분은 원문을 보면 다음과 같다.


"Before the Lord, the meaning of the church being cleansed by the washing of water is that the life of Christ deals with every <part> that is not out of Christ. The natural life and all that is not out of Christ must be purged away."(http://www.ministrybooks.org/ Chapter:3, Glorious Church, The, by Watchman Nee)


그리고 한국복음서원에서 번역한 한글 번역은 다음과 같다.


"교회가 주님 앞에서 물로 씻음받음으로 정결케 된다는 것은 곧 그리스도의 생명이 그리스도에게서 나오지 않은 <부분>을 처리하신다는 뜻이다. 천연적인 생명과 그리스도에게서 나오지 않은 것은 모두 정결케 되어야 하고, 이 때 비로소 거룩하게 된다."(거룩하고 흠이 없어라 p. 65)


원세호님이 참고한 번역은 한국복음서원 측에서 번역한 것이 아니다(참고로 원세호님이 인용한 번역은 생명의 말씀사에서 발행된 것이고 번역자는 주관준님으로 되어 있다). 아무튼 이런 사소한 것을 오해하여 <교회는 부품처리 공장이 아니다>라는 식으로 비아냥거리는 것은 글쓴이의 의도와 원래의 문맥을 왜곡시키는 것으로 옳지 않다. 원세호님은 좀 더 품위를 가지고 비판하고 변증할 수 있기 바란다.


그리고 원세호님은 <죄 사함으로 깨끗하게 되는 것은 1요1:8-10절에 의함 뿐>이라고 함으로 요일1:7의 <보혈에 의한 죄 씻음>과 엡5:26-27의 <말씀 안에 있는 물에 의한 씻음>을 혼동하고 있다. 전자는 죄의 결과를 씻는 것이지만, 후자는 죄들을 짓는 근원인 우리 옛사람의 존재 자체를 씻어 거룩케 하는 것이다. 원세호님은 이 둘의 차이를 잘 구별하여 연구해 보기 바란다.

 


11. 원세호님의 <교회의 영광스런 상태> 비판과 재반박


원세호님은 자신의 변증내용에서 도대체 무슨 말을 하는지를 모를 정도로 횡설수설하고 있다. 엡 4-5장과 고후 11:2, 계19:7-9, 21:2, 9-10 을 볼 때에 <교회>는 현재 존재하는 실체이다. 또한 구성원들인 성도들의 생명의 성숙을 통해 계속 자라가고 있다. 그리고 그 결국은 그리스도의 몸이 건축되고 어린양의 신부가 단장되는 것이다. 즉 에베소서의 관점에 의하면 <교회의 영광스런 상태>는 <교회가 티나 주름잡힌 것이나 흠이 없이 온전히 거룩해진 것>이다(엡5:27). 또한 고후11:2와 계시록19:7-9, 21:2, 9-10의 관점으로는 교회의 영광스런 상태는 <교회가 옳은 행실을 의미하는 빛나고 깨끗한 세마포를 입어 마치 신부가 남편을 위하여 단장한 것 같은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이 된 것>이다.


이것이 성경이 계시하는 교회가 온전히 지어진 모습이요, 우리의 장래 모습이다. 여기에 무엇이 잘못되고 무엇이 틀렸다는 말인가? 잘못이 없다. 매우 성경적이다.


1) <원세호님 주장: ① '신부로서의 교회'라는 지방교회 주장이 잘못되었으며 교회는 성도들의 모임으로서 하나님의 경륜의 시한이 찰 때에 들림 받게 될 것이다(고전15:51-58, 계21:9; 22:17).>


반박: 동문서답 식 비판이다. 고후11:2, 계19:7-8, 21:2, 9-10, 엡5:31-32에 의하면, 교회인 성도들 자신이 한 남편인 어린양의 신부이다. <신부가 교회>라는 말이 무엇이 잘못인가? 그렇다면 원세호님이 생각하기에 계19:7-8이 말하는 어린양의 신부는 과연 무엇인가? 신부로서의 교회와 그것이 들림 받는 것은 둘 다 진리이다. 교회는 어린양의 신부이며 성경이 정한 때에 들림 받게 되기도 한다. 원세호님은 잘 모르는 진리에 대해서는 차라리 침묵하는 것이 지혜로운 처신임을 알기 바란다.


2) <원세호님 주장: ③ 교회가 오늘 있는 것이고 미래의 일이라고 말하는 것은 비성경적이며 절대로 잘못된 것이라고 말하는 거짓은 절대로 잘못된 말이다.>


반박: 지금 무슨 말을 하려는 것인가? 원세호님 본인은 자신의 말을 이해할 수 있는가? 워치만 니는 <교회의 현재성>을 강조하여 말한 것이다. 이것은 현재는 교회이나 장래는 교회가 사라진다는 말이 아니다. 착각하지 말아야 한다.


3) <원세호님 주장: 성경적 변증을 보면서 지방교회가...고도한 비성경적인 것으로 그 신자들을 속임을 알 수 있었다. 더욱이 기독교의 모든 제도를 부인하고...허튼 말을 했는지 발견하였다. 지방파 교회는...반대로 기독교를 무시하고 파괴하려는 행동을 서슴지 않는 것으로 사료된다. 이러한 변증은 기존 건전 기독교의 공익을 위한 비판이며 비난이 아닌 성경적 변증이다.>


반박: 원세호님의 변증은 성경적인 변증이 아니다. 그 변증내용의 조잡함, 말이 안 되는 논리구성, 엉터리 성경근거 제시는 이 소위 변증 책자 저자 이름 뒤에 박사라는 호칭을 붙이기엔 너무나 창피한 것이었다. 그리고 원세호님은 <성경과 주님 자신>을 위하여 변호하지 않았다. 대신에 스스로의 고백처럼 장로교 통합 측 등에게 아부하며 통합 측 총회장을 위해 이 책을 썼다. 또한 원세호님은 책을 쓰는 과정에서 당사자들 스스로는 개혁의 대상으로 생각하는 <현실교회의 상태와 실행>을 절대기준 삼고 성경진리는 도리어 부정하고 조롱하는 죄를 범했다. 즉 원세호님은 <기독교>를 세우려고 <교회>를 파괴하고 있는 것이다.


원세호님 스스로 이런 엉터리 변증책자가 <건전 기독교의 공익>을 위했다고 착각하는 것은 좋다. 그러나 사실은 그렇지 않다는 것을 조만간 깨닫는 날이 있기 바란다.


원세호님은 시간이 날 때 장로교단 출신 소장파 신학자로서 제 살과 뼈를 깎는 심정으로 한국 교회의 실상과 문제점을 지적하고 대안을 제시한 <개혁 &개혁>(정성욱, 부흥과 개혁사, 1999)이란 책자를 한 번 읽어보기 바란다. 이런 책자야말로 저자가 <한국 교회들의 공익>을 위해 하나님 앞에서 쓴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이에 비교하면 원세호님의 소위 <지방교회 주장과 성경적 변증서>는 '건전 기독교의 공익'과는 한참 거리가 멀다. 공익을 위하기는커녕 오히려 교회의 머리와 그분의 몸인 주 안의 신실한 성도들을 함부로 이단 삼단하며 정죄하고 조롱하고 업신여겼다. <현대판 바리새인>의 죄를 범하고 있는 것이다.


이에 대한 객관적인 증거는 많다.


먼저는 2000년 1월 1일자로 자신의 소속교단이었던 기침교단으로부터 목사직을 제명 당한 것이다. 또한 같은 교단에 의해 <사이비>로 내 몰린 것이다. 더 나아가 자신이 그토록 편애하던 장로교 통합 교단으로부터 2002년 9월 제 87회 총회에서 이단으로 공식 정죄 당한 것이다. 통합교단은 더 나아가 <원세호씨의 그릇 주장에 동조하는 일이 없도록 각 교회에게 숙지시켜 주기 바란다>는 내용까지 채택했다. 원세호님은 자신이 인정하는 소위 공 교단들로부터 공개적으로 격리 당한 것이다. 원세호님은 이런 환경들을 다만 억울하다고만 생각해서는 안 될 것이다. 대신에 자신을 대단한 사람으로 생각하는 착각에서 벗어나서 이런 환경을 주권적으로 안배하신 하나님의 능하신 손길 아래 겸손해야 할 것이다(벧전5:6). 그리고 혹 만에 하나 지방교회의 경우와 같이 통합측이나 기타 교단의 결정이 틀렸을 수도 있다. 그럴 경우 무고한 이단 정죄로 어려움을 당하고 있는 사람들의 고통을 이번 기회에 깊이 있게 이해할 수 있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


4) <원세호님 주장: 교회론이 이토록 비 성경적일 때 다른 교리는 어떨까? 호기심이 간다. 이와 같은 것을 확인하고 보니 통합 측이나 고신 측이나 합동측 교단들이 이단으로 규정하는데는 큰 이유가 있음을 발견한다.>


반박: 독자들이 지금까지 지켜보았듯이 지방교회의 교회론은 매우 성경적이다. 오히려 원세호님의 교회론이 <건물교회>를 주장하는 등 비 성경적이고 이단적이다.


합동교단은 정식으로 지방교회를 이단 규정한 사실이 없음을 원세호님은 바로 알아야 한다. 다만 장로교 통합 측과 고신 측이 최삼경 목사와 전용복 목사의 주장을 토대로 <성경이 아니라 장로교단 교리를 기준으로> 성급하고 경솔한 결정을 했을 뿐이다. 지방교회 측은 이것을 충분히 반박 또는 해명했다(https://www.localchurch.kr/1004, https://www.localchurch.kr/1165, https://www.localchurch.kr/815). 이런 상대적인 기준에 기초한 어느 일방의 판단은 다만 상대방의 주장일 뿐 결코 공식적이고 최종적인 것이 아니다. 이것은 폭넓게 공신력을 가졌던 교회 역사상의 각종 <공의회의 이단결정>과는 전혀 다른 것이다. 서로가 자신들의 관점과 교리로 서로를 판단할 수 있는 것이다.


한 예로 지방교회를 양태론이라고 함부로 정죄하며 통합측이 이단결정을 내리도록 도운 최삼경 목사가 지방교회측과의 공개토론 이후 자신의 소속교단에 의해 신론과 성령론에 있어서 이단성 내지는 비 성경적인 교리를 가졌다고 공식 정죄되었다. 이에 대해 관심이 있는 독자들은 첨부하는 통합 측 이단대책위원회 연구보고서 내용을 직접 참고하기 바란다(https://www.localchurch.kr/9563).


한편, 이단연구가를 자처하며 남을 이단 삼단 비판만 하던 원세호님 본인은 어떤가?


1) 목사직 박탈: 우선 앞서 지적한 것처럼 원세호님은 소속 교단이던 기독교 한국 침례회로부터 2000. 1. 1.자로 목사직을 제명 당했다. 또한 이에 불복하여 세상법정에 제기했던 소송은 같은 해 3월에 담당 판사에 의해 기각 당했다(http://www.eedan.net/edan2-3.php 을 보라). 따라서 기침교단의 원세호씨의 목사제명은 어느 모로 보나 확정되었고, 원세호님은 적어도 2000년 1월 1일 이후부터는 더 이상 목사가 아니다. 이 내용은 이미 신문에도 공개된 것임으로 본인도 이 엄연한 사실을 부인하지 못할 것이다.


2) 이단 및 사이비로 정죄 됨: 원세호님은 예장 통합 측으로부터는 <접촉을 금하는 비 성경적인 이단>으로, 소속교단이었던 기침교단으로부터는 <사이비>로 정죄되었다.


부흥타임즈 2002년 9월 28일자는 예장 통합교단 연구보고서를 인용하여 예장 통합 측 이단대책위원회가 <원세호목사에 대해 "원세호씨의 신학(창조론, 인간론, 삼위일체론 등)은 비성경적이며 이단적 주장임이 드러나 향 후 원세호씨의 그릇 주장에 동조하는 일이 없도록 각 교회에 숙지시켜 줄 것"을 총회에 보고서를 제출, 역시 만장일치로 가결되었다고 밝혔다.>고 보도하고 있다. 원세호님은 예장 통합 측에 의해 만장일치로 이단이 된 것이다.


또한 침례신문 2000년 2월 22일자도 <기독교한국침례회 이단사이비대책위원회 위원장 김인봉> 명의로 원세호님에 대해서 행해진 다음과 같이 결의내용을 보도했다.


<"사이비" 원세호·원문호는 2000년1월1일부로 기독교 한국침례회(기침)에서 제명되었으며, 따라서 침례교단에서 목사로서의 모든 권리가 상실된 자이다. 본 이단대책위원회는 소위 교회와 이단이라는 잡지는 해 교단 잡지로 규정하였으며, 소위 자칭 세계적이라는 기독교이단사이비연구대책협의회라는 단체는 인정치 않으며 무수한 질의에 대하여는 대답할 가치가 없는 것으로 본다...>


독자들은 본 결의문이 원세호 씨를 <사이비>라고 부르고 있음을 주목해 보기 바란다.


<몇몇이 모여 「기독교이단사이비연구대책협의회」라는 단체 간판을 달고는 건전한 보수교단을 상대로 경거망동하는 우를 더 이상 범치 말기를 경고한다. 따라서 기독교한국침례회에 소속된 목회자들은 이러한 『교회와 이단』잡지나 「기독교이단사이비연구대책협의회」라는 단체의 인쇄물을 쓰레기 정도로 취급하고 우편물은 반송할 것을 권고하는 바이며, 더 이상 구독하거나, 광고를 게재하거나, 여타의 방법으로 도움을 주지 말 것을 권고한다.>


본 결의문은 현재 지방교회측으로부터 강력한 항의를 받고 있는 <지방교회의 주장과 성경적 변증서>라는 책자를 포함 「기독교이단사이비연구대책협의회」라는 단체의 (모든) 인쇄물을 쓰레기 정도로 취급하라"고 권고하고 있다.


<...또한 원세호는 타인의 말과 성령의 세미한 음성을 듣고, 교단을 향하여, 형제를 향하여 독기 서린 붓을 휘두른 과오를 회개하는 지혜가 있기 바란다. 그리하여 노년을 하나님이 보시기에 아름답게 마무리하고 사역을 마치기 바란다.">


원세호님은 그 동안 도에 지나치게 무리한 이단 정죄로 한국 교계에 지속적으로 물의를 일으켜 왔다. 또한 자신이 소속했던 교단 총회장을 포함하여 애매한 사람들을 사이비니 이단이니 삼단이니 하며 정죄 하는 과정에서 많은 적들을 만들어 내었다. 그 결과 이젠 사이버 공간에서 그를 공개적으로 반대하고 대적하는 <안티 원세호 홈페이지> 까지 생기는 지경에 이르렀다. 관심이 있는 분들은 원세호님의 <이단관련 자료>, <목사직 제명 관련 자료>, <재판관련 자료들>을 모아 놓은 안티 사이트인 http://www.eedan.net/ 를 직접 방문해 보기 바란다. 물론 이 싸이트는 지방교회측과는 아무 관련도 없다.


이제 원세호님의 교회론 비판에 대한 장문에 걸친 재 반박을 마무리 할 때가 되었다. 아래와 같은 하나님의 엄중하고도 사랑 어린 말씀을 인용함으로 이 글을 마무리하고자 한다. 원세호님도 지금처럼 충분한 연구 없이 남을 경솔하게 정죄하고 판단하는 길을 이젠 접고, 주님으로부터 은혜를 얻는 겸손한 길을 가기를 축복한다.


'서로 겸손으로 허리를 동이라. 하나님이 교만한 자를 대적하시되 겸손한 자에게는 은혜를 주시느니라'(벧전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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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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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예루살렘 2014.01.01. 04:31
원세호님은 이미 고인이 된 분입니다.
살아 생전에 본인이 한 말이 장차 심판대 앞에설 때
자신을 판단하는 근거가 될 것을 알았다면 이처럼 경솔하게 참된 믿는 이들을
거짓정죄하는 기록을 남기기는 않았을 것입니다.
안타까운 일입니다. 또한 우리 모두가 동일한 약함에 빠지는 일이 없도록
타산지석으로 삼아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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