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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인규식 삼위일체'는 '인격 안에 인격이 없다'식 삼위일체입니다. 다른 말로 하면, '아버지 인격은 하늘에 계시고, 성령 인격은 비둘기처럼 내려오시고, 아들 인격은 침례의 물 위에서 올라오되, 각 인격 안에 인격이 없는 (분리된) 삼위일체'입니다. 또한 '이인규식 상호내재'는 빌1:30 본문에서 보듯이 사도 바울과 빌립보 성도들처럼 각각 "장소적으로 떨어져 있지만" 같은 마음, 같은 목적 안에서 서로 간에 영적 교류를 갖는 식의 상호내재입니다. 이것이 이인규님이 '나는 세 구별된 인격을 믿고, 상호내재를 믿는다'고 말해온 것의 실상입니다. 이것은 명백한 삼신론 사상입니다. 성경적인 삼위일체가 "결코" 아닙니다. '영이신 하나님'(요4:24)을 '육신을 가진 사람'(인격)처럼 생각하는 발상이 이런 치명적인 이단사상이 나오게 된 원인입니다.


이제 저는 위와 같은 '이인규식 삼신론사상'이 성경은 물론 정통신학자들의 관점과 크게 다름을 재차 증명할 것입니다. 그리고 끝 부분에 이인규님이 위트니스 리의 글을 오해하신 것의 일부를 바로 잡고 삼위일체론의 추가적인 연구의 필요성에 대해 언급할 것입니다.


1. 성경이 말하는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


이에 대한 많은 관련 구절들이 있을 것입니다. 그 중에서 저는 요한복음 8장, 14장, 요한 일서 2장을 통해 '영원토록 구별되시지만 상호내재 하심으로 결코 분리되지 않으시는 아버지와 아들 하나님의 관계'를 설명해 보겠습니다.


1) 요한복음 8장에서의 아버지와 아들 하나님


16 만일 내가 판단하여도 내 판단이 참되니 이는 내가 혼자 있는 것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이가 나와 함께 계심이라 17 너희 율법에도 두 사람의 증거가 참되다 기록하였으니 18 내가 나를 위하여 증거하는 자가 되고 나를 보내신 아버지도 나를 위하여 증거하시느니라 19 이에 저희가 묻되 네 아버지가 어디 있느냐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너희는 나를 알지 못하고 내 아버지도 알지 못하는도다 나를 알았더면 내 아버지도 알았으리라...21...나의 가는 곳에는 너희가 오지 못하리라 22 유대인들이 가로되 저가 나의 가는 곳에는 너희가 오지 못하리라 하니 저가 자결하려는가


위 말씀들에서 '영의 세계'를 말하는 예수님과 '물질 세계' 안에서 생각하고 말하는 유대인들의 동문서답이 흥미롭습니다. 이인규님도 삼위를 '바울과 빌립보 성도간의 관계'처럼 생각한다는 점에서는 유대인과 유사한 발상을 가지신 분입니다.


우리는 위 말씀에서 먼저 "구별된 둘"로서의 아버지와 아들 하나님을 볼 수 있습니다. 이인규님은 지방교회가 삼위의 구별을 부인한다고 거짓말을 하시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는 성경 그대로를 다 믿습니다. 위 17절이 말한 "두 사람의 증거"에 관한 율법은 신명기19:15 인데, '아무 악이든지 ...두 증인의 입으로나 세 증인의 입으로 그 사건을 확정할 것이며' 라고 말합니다. 위 문맥대로라면 간음한 여인에게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아니하노라'라고 증거하신 이는 예수님 자신과 예수님 안에 상호 내재하신 분인 아버지'인 두분(또는 성령을 포함한 셋)이십니다. 여기서 우리는 둘 또는 셋으로 구별되나 상호내재 하심으로 분리되지 않는 한 분 하나님을 보게 됩니다. 독자들은 하늘에 계신 보내신 분인 아버지가 어떻게 보냄 받은 아들과 함께 있는 것이 가능한지를 의심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성경을 그대로 믿어야 합니다. 성경은 '내가 혼자 있는 것이 아니요'라고 말하고 '나를 보내신 이가 나와 함께 있다'고 말합니다. 반대로 예수님은 이 땅에 계시는 동안 여전히 아버지 품속에 계셨고(요1:18), 하늘에 계셨습니다(요3:13 영어본문). 이처럼 삼위는 상호내재 하심으로 결코 분리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 존재에 있어서 영원토록 구별됨을 상실치 않으십니다. 만일 아버지가 실제 인격은 하늘에 남에 계시고 인격은 없는 편재성으로만 예수님 안에 계신다고 본다면 그것은 '두 증인'이라는 본문 말씀(17절)에 어긋납니다. 또한 만일 아버지의 인격도 예수님 안에 계셨다고 한다면 그 동안 주장해 왔던 '인격 안에 인격은 없다'는 '이인규식 삼위일체'가 허구였음을 증명합니다.


요한복음 8장을 계속 보겠습니다.


23...너희는 이 세상에 속하였고 나는 이 세상에 속하지 아니하였느니라 24 이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말하기를 너희가 너희 죄 가운데 죽으리라 하였노라 너희가 만일 내가 인 줄 (that I Am (he)) 믿지 아니하면 너희 죄 가운데 죽으리라 25 저희가 말하되 네가 누구냐 예수께서 가라사대 나는 처음부터 너희에게 말하여 온 자니라 26 ...나를 보내신 이가 참되시매 내가 그에게 들은 것을 세상에 말하노라 하시되 ... 28 이에 예수께서 가라사대 너희는 인자를 든 후에 내가 인 줄(that I Am)을 알고 ...29 나를 보내신 이가 나와 함께 하시도다 내가 항상 그의 기뻐하시는 일을 행하므로 나를 혼자 두지 아니하셨느니라 57 유대인들이 가로되 네가 아직 오십도 못되었는데 아브라함을 보았느냐 58 예수께서 가라사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아브라함이 나기 전부터 내가 있느니라(Before Abraham was, I AM)하시니 59 저희가 돌로 치려 하거늘...


위 말씀은 '예수가 누구냐'라는 질문에 대해 예수가 출3:14에서 모세의 질문에 대해 'I AM THAT I AM'이라고 말씀하셨던 바로 그분임을 계시합니다. 칼빈도 '모세와 선지자들이 부른 여호와 하나님이 바로 하나님의 아들을 가리킨다는 사도들의 증거에 근거하여 성부와 성자는 다른 신일 수 없다'고 말하고 있습니다(차영배, 신론, 228, 247쪽). 이 땅에 오셨던 예수님은 '처음부터 말해온 바로 그분이십니다(25절). 빈센트도 그의 'Word Studies of the NT II'(Hendrickson) p.170 에서 위 'THAT I AM'을 '이제는 나 곧 내가 그인 줄 알라 나와 함께 하는 신이 없도다 내가 죽이기도 하며 살리기도 하며 상하게도 하며 낫게도 하나니 내 손에서 능히 건질 자 없도다' 라고 한 신32:39를 연결하여 설명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한가지 유의할 것은 개역 성경은 '내가 그인 줄'이라고 번역되었으나 원문에는 '그'(이태릭체)라는 말이 없다는 것입니다. 즉 원문대로 읽으면 '예수는 THAT I AM'이십니다(요8:24, 28, 58, 13:19). 여호와의 증인들은 '예수=여호와'를 믿지 않음으로 바로 위 말씀에 근거하여 그들의 죄 가운데서 죽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위 말씀은 삼위의 위격간의 구별을 무시한다는 말입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여전히 예수님은 자신을 보내신 아버지와 보냄 받은 자신을 구별하여 말하고 계십니다. 아버지도 여호와, 아들도 여호와, 성령도 여호와 하나님이시지만 우리는 세 여호와 하나님들이 있다고 말하면 안 됩니다. 이 셋은 구별됨을 잃지 않은 비밀한 방식으로 상호 내재하심으로 결코 분리되지 않는 한 여호와 하나님이시라고 말해야 합니다. 이것이 성경이 계시하는 균형 잡힌 삼위일체입니다. 그러나 이인규님은 사실상 각각 분리된 세 여호와 하나님들(인격 안에 인격이 없는)을 고집하고 계십니다. 비 성경적인 사상입니다.


2) 요한복음 14장에서의 아버지와 아들 하나님


7 너희가 나를 알았더면 내 아버지를 알았으리로다 이제부터는 너희가 그를 알았고 또 보았느니라 8 빌립이 가로되 주여 아버지를 우리에게 보여 주옵소서 그리하면 족하겠나이다 9 예수께서 가라사대 빌립아 내가 이렇게 오래 너희와 함께 있으되 네가 나를 알지 못하느냐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거늘 어찌하여 아버지를 보이라 하느냐 10 나는 아버지 안에 있고 아버지는 내 안에 계신 것을 네가 믿지 아니하느냐 내가 너희에게 이른 말이 스스로 하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셔 그의 일을 하시는 것이라 11 내가 아버지 안에 있고 아버지는 내 안에 계심을 믿으라 그렇지 못하겠거든 행하는 그 일을 인하여 나를 믿으라 12. ... 이는 내가 아버지께로 감이라


위 말씀은 아버지가 예수님 안에 계신다(10-11절)고 하기도 하고 예수님이 아버지께 가기도 한다(12절)고 말합니다. 신학적으로 말을 하자면 아버지와 아들은 본질적으로 영원히 서로 안에 거하시나 구원의 경륜을 위해서는 아버지가 아들을 보내시기도 하고 아들이 아버지께 가시기도 합니다. 둘 다 성경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둘 다 다만 아멘하고 믿어야 합니다. 위 말씀은 이인규님의 이단사상처럼 '인격 안에 인격이 없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셔 그의 일을 하신다(10절)'고 말합니다. 아버지의 일을 하시는 어떤 능력만 예수 안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아버지 자신"이 예수 안에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구별되나 분리되지 않는 비밀한 방식으로 계십니다. 아래에서 보겠지만 역대로 상호내주를 언급하는 거의 모든 정통교부들은 자신들의 주장을 이 요14:10-11에 근거했습니다. 우리는 오픈 성경 주석이 다 성경에 부합하다고 보면 안 될 것입니다.


위 말씀들에 대한 위트니스 리의 주석을 소개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심지어 지금 이 순간까지도 여기에 있는 주님의 말씀은 하나의 비밀로 남아 있다. 그 말씀은 무슨 뜻인가? 한편으로 그 말씀은 아버지와 아들이 하나라는 것이고, 다른 한편으로는 그분들이 여전히 둘이라는 것이다. 만일 당신이 어떻게 그럴 수 있느냐고 내게 묻는다면, 나는 이렇게 말할 것이다. "나는 모릅니다. 내가 오직 아는 것은 한편으로는 아버지와 아들은 하나이며, 만일 당신이 한 분을 보았다면 그 두 분은 하나이기 때문에 당신은 다른 한 분마저도 본 셈이라는 것입니다. 아버지는 아들 안에 계십니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그분들은 여전히 둘입니다." 이것이 바로 삼일 하나님의 비밀이다.


여기서 나는 하나의 경고를 하겠다. 즉 아버지와 아들이 "분리된" 두신이라고 결코 생각하지 말라는 것이다. 그것은 이단이다. 우리에게는 세 하나님이 없다. 우리에게는 유일한 한 분의 삼일 하나님―아버지와 아들과 영이 계신다. ...비록 우리가 말하거나 이해하는데 있어서 때때로 인격이라는 용어를 사용하지만 우리는 이 용어를 강조함으로써 삼신론이 될 정도로 너무 멀리 나아가지 말아야 한다"(요한복음 라이프 스타디 II(보급판), 51-52쪽).


위 위트니스 리의 증언은 그 동안 이인규님이 '한 인격만을 믿는다' '세 인격이라는 말만해도 삼신론이라고 한다'는 주장이 거짓이었음을 폭로시켜 주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위트니스 리는 위격간의 상호내재와 한 분됨을 말하기도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그분들은 여전히 둘입니다'라고 말함으로 성경이 '나'라든지 '아버지'라고 함으로 구별된 위격을 말함을 부인하지 않고 있습니다. 또한 위트니스 리도 '인격'이라는 말을 사용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다만 이인규님처럼 '세 하나님들' '세 인격들'의 의미로 지나치게 해석하여 삼신론 이단이 되지는 말라는 충고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인규님은 '아'와 '어'를 구별할 줄 아셔야 합니다.


3) 요한일서 2장에서의 아버지와 아들 하나님


22 거짓말하는 자가 누구뇨 예수께서 그리스도이심을 부인하는 자가 아니냐 아버지와 아들을 부인하는 그가 적 그리스도니 23 아들을 부인하는 자에게는 또한 아버지가 없으되 아들을 시인하는 자에게는 아버지도 있느니라 24 너희는 처음부터 들은 것을 너희 안에 거하게 하라 처음부터 들은 것이 너희 안에 거하면 너희가 아들 안과 아버지 안에 거하느니라 25 그가 우리에게 약속하신 약속이 이것이니 곧 영원한 생명이니라


위 말씀 역시 한편으로는 엄연히 둘로 구별된 아들과 아버지를 말씀하시면서 다른 한 편으로 이 분들이 분리할 수 없는 한 분임을 계시합니다(요일2:22, 요10:30, 사9:6). 우리는 두 방면을 다 성경 그대로 믿어야 합니다. 한 방면을 지나치게 강조하여 다른 방면의 말씀을 무시하면 안 됩니다.


특히 25절에서 '영원한 생명'을 약속하신 '그'(He)라는 단수 대명사가 누구인지를 아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문맥에 의하면 이분은 아들만도 아니고 아버지만도 아닙니다. 오히려 바로 앞 구절에 근거하여 상호내재하시는 아들과 아버지 두 분 다 이시라고 해석해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단수 대명사입니다. 왜냐하면 그 둘은 또한 한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위 구절에서의 또 다른 요점은 우리가 받은 영생은 "아들하나님 자신"이시라는 점입니다(요3:15, 4;14, 6:40, 47, 10:10, 11:25, 17:2-3, 요일1:2). 그러나 이 영생은 이인규식 삼위일체의 가르침처럼 아버지와 성령 인격이 제외된 불완전한 생명이 아닙니다. 아버지와 성령 인격이 구별됨을 상실치 않으신 채 비밀스럽게 상호내재 하시는 아들 하나님 즉 온전한 하나님의 생명입니다(요일4:15-16, 요14:23).


위에서 보았듯이 성경에서 계시된 아들과 아버지 하나님은 '이인규식 세 하나님들'이 아닙니다. 그것은 제가 일관되게 말해 왔듯이 세 위격이 구별됨을 잃지 않는 방식으로 비밀스럽게 상호 내재하시는 한 분 하나님이십니다. 아들 인격을 생명으로 영접하면 상호 내재하시는 아버지 인격, 성령 인격도 한 분 하나님으로 영접할 수 있는 영원토록 구별되나 분리되지 않는 그런 분이십니다. 이 비밀을 우리는 머리로 이해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지나치게 체계화하지 않고 다만 모든 성경 말씀을 믿음으로 아멘 합니다. 이것이 저를 포함해서 전세계 모든 지방교회 성도들이 믿는 정통교회 삼위일체입니다.


2. 정통교부들의 상호내재 개념


'이인규님의 상호내재' 개념 역시 그의 삼신론 사상의 요약인 '인격 안에 인격이 없다'는 기초 위에 세워졌습니다. 여기서 한 가지 분명히 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이인규님이 그 동안 자신의 상호내재 개념의 성경근거로 제시한 '너희에게도 같은 싸움이 있으니 너희가 내 안에서 본 바요 이제도 내 안에서 듣는 바라'라는 빌1:30은 삼위일체의 상호내재와는 직접 관련이 없는 구절이라는 점입니다. 이외에 이인규님은 오픈 성경 주석을 인용했지만 검증이 필요한 자료일 뿐입니다. 또한 그 동안 반복해서 인용하셨던 신학자들 자료들은 인격이 셋으로 구별된다는 점을 언급했을 뿐 직접적으로 '인격 안에 인격이 없다는 이인규식 상호내재'를 지지하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이처럼 '인격 안에 인격이 없다'는 자신의 주장을 지지하는 확정적인 자료제시 없이 오히려 전통적으로 정통교부들 사이에 인정되어온 상호내재 개념인 '페리코레시스'를 양태론 요소가 있다고 비판하고 있습니다.


이제 이인규식 상호내재가 정통인지 이인규님이 양태론 요소가 있다고 비판하고 있는 다음과 같은 정통 교부들의 상호내재가 정통인지는 독자들의 판단에 맞깁니다. 대립되는 둘 (이인규, 정통교부들)중 하나는 가짜입니다. 아래 인용문은 모두 칼빈대학교 조직신학 교수인 김석환 박사의 박사학위논문인 '교부들의 삼위일체론'(서울: 기독교문서선교회, 2001년)에서 인용한 것입니다.


1) 캅바도키아 교부들의 상호내재 개념:


'캅바도키아 교부들은 후대에 '페리코레시스'라는 이름으로 설명된 이론을 체계화했다. 즉 각 위격 간에 한 동일실체가 전부 다 들어 있다. 각 위격 상호간에, 또 위격과 실체간에 공동내재성(immanence) 또는 상호상통성이 있다. 두 위격이나 세 위격을 합하더라도 다른 한 위격보다 결코 더 크지 않다. ...그 성경적인 근거는 요한복음 14:10의 말씀이었다(29쪽). 독자들은 위 내용이 각 위격 상호간과 위격과 실체간의 공동내재성을 모두 말하고 있는 점을 유의해서 보시기 바랍니다.


2) 아나타시우스의 상호내재 개념:


'우리는 하나님께서 삼위일체를 통해 한 분이심을 고백한다. 이와 관련하여 요한복음 14;10의 '나는 아버지 안에 있고, 아버지는 내 안에 계신 것을 네가 믿지 아니하느냐?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셔 그의 일을 하시는 것이라'는 말씀에 대하여 아타나시우스는 일곱 번 이상씩이나 설명하면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어떻게 하나가 다른 것 안에 포함될 수 있으며, 또 그 다른 것이 그 하나 안에 포함될 수 있는가? 또는 도대체 어떻게 더 크신 아버지가 더 작으신 아들 안에 포함될 수 있으신가? 또는 우리에 관하여 기록된바, '우리가 그 안에서 살며 기동하며 또 우리의 존재를 갖느니라(행17:28)는 말씀을 생각할 때, 만일 아들께서 아버지 안에 계시다면 이 얼마나 놀라운 일인가?(112-113쪽). 아타나시우스는 또 위와 관련하여 '성 삼위일체의 제 2격은 ...한 부분이 아니라 전체적인 하나님(Whole or entire God)이시다' 라고 말하고 있고(114쪽), '성자의 존재가 성부에게서 오시는 것과 마찬가지로 성부 안에 계심을 안다'고도 말합니다(115쪽).


아타나시우스가 현재 살아 있다면 이인규님에 의해 성부 고난설을 믿고 양태론을 믿는 이단으로 낙인찍히기에 꼭 들어맞는 말을 했습니다. 과연 누가 이단사설을 믿고 있습니까?


3) 불(Bull) 주교의 상호내재 개념:


'셋이 서로가 서로 안에 거하시고, 말하자면 서로가 서로에게 흘러 들어가시며 서로를 관통하신다'(Defensio Fidei Nicaenae II, 9. 23)(250쪽). 김석환 박사는 불 주교의 이와 같은 상호내재 개념을 삼신론을 비롯한 이단들의 교리에 효과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정리된 이론체계로 설명하는 연장에서 소개하고 있습니다. 천주교학자라고 멸시하는 이인규님과는 대조됩니다.


4) 아우구스티누스의 상호내재 개념 :


'최고의 삼위일체의 경우에는 하나가 셋을 합한 것만 하며, 둘을 합해도 하나보다 더하지 않다. 그리고 그들은 각각 자체가 무한하시다. 그래서 하나 하나가 다른 하나 하나 안에 계시며, 모든 이 안에 계시다. 또 모든 이가 모든 이 안에 계시며, 모든 이가 한 이 안에 계시다'(299쪽). 위 책 어디에도 위 개념이 양태론이라는 지적이 없습니다. 오히려 김석환 박사는 이것을 '단일성과 삼위성에 대해서 설명하면서 각 위격이―본성이 아니라 위격을 말하고 있습니다(필자 주)상호 다른 위격 안에 내재하심을 진술한다'고 해설하고 있습니다(325쪽). 이인규님 눈에는 각각 "분리되지 않은 모든 것"이 양태론처럼 보일 뿐입니다. 그러나 그러한 "분리"의 기준이 바로 삼신론입니다.


5) 다메섹 요한의 상호내재 개념:


'...각 위격은 다른 위격 안에서...존재를 가지신다'(300쪽).


이외에 교부는 아니지만 칼 바르트의 상호내재 개념: '신적 존재 양태들(the divine modes of being)이 상호간에 서로 서로를 완전하게 조건지으며 스며들어서 하나가 항상 다른 둘 안에 계신다'(300쪽).


위에서 본 것처럼 캅바도키아 교부들, 아타나시우스, 아우구스티누스, 다메섹 요한 등 정통교회 삼위일체 수립에 공헌한 정통교부들의 상호내재 개념과 '인격 안에 인격은 없다'는 이인규님의 상호내재 개념은 다릅니다. 우리는 스스로 평신도라고 소개하는 일개 감리교 권사에 불과한 이인규님을 정통으로 만들기 위해 위와 같이 오랜 교회역사를 거쳐 오면서 검증된 정통 신학자들을 이단으로 만들 수 없습니다. 오히려 그 반대가 더 설득력이 있습니다.


3. 이인규님의 '기도하시는 분, 기도를 들으시는 분'에 대한 비판을 재반박함


위 내용에 대해서는 이미 지난 9편에서 충분한 설명을 드렸습니다. 오늘은 위트니스 리의 해석을 지지하는 장로교 신학자의 견해를 소개함으로 이인규님이 얼마나 단편적인 신학지식으로 피상적인 비판을 하고 계신지를 드러낼 것입니다.


장로교 계통인 프린스턴 신학교를 졸업한 Loraine Boettner는 자신이 쓴 책에서


'One Substance, Three Persons 라는 소제목 아래 '우리와 주님의 기도를 받으시는 아버지가 삼위의 첫 번째 위격만인 아버지가 아니라 한 분 하나님이신 세 인격 전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위트니스 리가 아들 하나님은 기도하시는 분이실 뿐 아니라 기도를 듣는 분이라고 말한 것은 위와 동일한 맥락에서 한 말이지 이인규님의 지적처럼 위격의 혼동을 의미하는 것이 결코 아닙니다. 사실 누구든지 구별되시지만 분리되지 않는 삼위의 관점에서 이 말을 들으면 충분히 공감할 수 있는 성경적인 가르침입니다. 이제 영어원문을 그대로 인용 소개해 보겠습니다.


Since the three Persons of Trinity possess the same identical, numerical substance or essence, and since the attributes are inherent in and inseparable from the substance or essence, it follows that all of the Divine attributes must be possessed alike by each of the three Persons and that the three persons must be consubstantial co-equal and co-eternal. Each is truly God, exercising the same power, partaking equally of the Divine glory, and entitled to the same worship. When the word "Father" is used in our prayers, as for example in the Lord's prayer, it does not refer exclusively to the first person of the Trinity, but to the three Persons as one God. The Triune God is our Father('Studies In Theology', Presbyterian and Reformed Publishing Co., 1947, p107).


저자는 이어서 성경에서 삼위일체의 위격을 가리키는 용어로 쓰이는 "I, Thou, He, Him"가 "삼위의 각각"을 가리킬 뿐 아니라 "세 인격으로 구성된 삼일 하나님"을 가리킨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어서 그는 삼위는 이인규님 주장처럼 세 사람(워싱턴, 제퍼슨, 프랭클린)처럼 각기 떨어져 계신 분이 아니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원문을 직접 인용해 보겠습니다.


The singular pronouns I, Thou, He and Him are applied to each of the three persons; yet these same singular pronoun's are applied to the Triune God who is composed of these three persons. Hence too much stress must not be laid on the mere term. The Father, Son and Holy Spirit can be distinguished, but they cannot be separated ...They do not merely exist alongside of each other, as did Washington, Jefferson and Franklin."(p109).


이인규님처럼 하나만 알고 둘을 모르거나 알더라도 섣불리 아는 사람이 사실은 제일 위험합니다. 겸손히 자신을 낮추지 않는다면 자신이 대단한 사람이라고 착각하는 병이 주님 오실 때까지 지속될 것입니다. 겸손하여 하나님의 은혜를 입으시기 바랍니다.


4. 삼위일체 이론에 대한 더 깊은 연구의 필요성


많은 분들이 삼위일체 이론이 정교하게 정립되었고 더 이상 연구할 것이 없다고 생각하십니다. 그러나 그렇지가 않습니다. 특히 한국교계 내에서는 더 많은 문제점과 숙제들을 갖고 있습니다. 저는 이 토론에서 많이 신세를 진 김석환 박사의 박사학위 논문에서 이 방면에 대한 지적들을 여기에 인용 소개해 보겠습니다.


1) 호모우시우스'의 정확한 의미:


'세 위격 한 본질(실체)'이라는 소위 정통 삼위일체의 명제에서 '본질(실체)의 단일성'을 가리키는 '호모우시우스의 정확한 의미'가 무엇인지에 대해서 아직도 학자들 간에 이견이 있습니다. 김석환 박사는 '호모우시우스'가 '숫자적인 단일성'을 의미하는지 아니면 '유적 단일성'을 의미하는지에 대한 논쟁이 지금도 개혁주의 교회 안에서 끊이지 않고 있다고 하면서 '반틸'과 '고든 클락'의 논박을 예로 들고 있습니다(위 김석환, 146-147, 344-345쪽).


2) 신격(Godhead)과 위격들, 신격과 본질간의 관계:


그 동안의 삼위일체 연구는 주로 위격과 본질(실체)의 구별, 관계설정, 개념정의 등에 집중되어 왔습니다. 그러나 골2:9이 말하는 한 신격(데오테스)과 세 위격들 간의 관계, 본질과의 관계에 대한 연구는 거의 전무합니다. 심지어 닛사의 그레고리가 구분한 신성과 신격의 용어 구별 조차도 대부분의 사람들에겐 생소합니다(241-242쪽).


3) 삼위일체 관련 용어들의 확정:


김석환 박사는 자신의 논문에서 '우시아'를 본질이나 본성이 아니라 '실체'로 번역하는 이유를 설명하고 있습니다(위 책, 28-29쪽). 또한 더 나아가서 히1:3의 휘포스타시스를 '본체'라고 번역했고 이를 장로교 총회헌법도 따라 사용한 점, Godhead 를 기준 없이 신성 또는 신격으로 혼용한 점, '한 하나님'을 '동일한 유개념'으로 파악하는 입장등이 문제가 있다고 지적합니다(340-341쪽). 이분은 대안으로서 한국교회가 '삼위일체 전문용어의 번역에 관한 원칙'을 정하고 '전문심사위원회'를 구성하여 구체적인 검토작업을 펼칠 것을 주장하고 있습니다.


위에다가 저는 다음 두 가지를 추가하고 싶습니다.


4) 본질적인 삼위일체와 경륜적인 삼위일체:


이종성 박사는 거의 대부분의 초대교부들이 이 두 방면의 삼위일체를 함께 지지했으며, 둘 중 하나만을 강조하고 다른 하나를 무시하면 이단적인 견해가 될 위험성이 있다고 경고하고 있습니다(이종성, 삼위이체론, 643쪽).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최삼경 목사나 이인규님은 똑같이 이러한 두 방면의 관점에서 접근하는 삼위일체 개념에 익숙하지 않으십니다. 다행히 한국개혁신학회가 소개하고 있는 이승구님의 소논문 '존재론적 삼위일체와 경륜적 삼위일체의 관계'에 대한 개혁주의적인 입장에 대한 글(http://theologia.kr/zeroboard/zboard.php?id=intro&page=1&sn1=&divpage=1&category=15&sn=off&ss=on&sc=on&select_arrange=headnum&desc=asc&no=1063&PHPSESSID=243cdcc4f5259eafc5fccb810fd38830)은 이 방면에 대한 새로운 관심을 불러일으키고 있습니다.


5) 성경본문 중심의 삼위일체 해석 전통 수립:


지금까지 신학교육은 삼위일체에 대한 조직신학적인 접근이 대부분이었습니다. 이것은 전반적인 뼈대를 세워준다는 점에 있어서는 어느 정도 공헌을 했는지는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구체적인 성경본문에서 그 신학체계가 어떻게 대입되고 해석되는지에 대한 연구는 한국교계에 크게 미흡합니다. 그러나 대조적으로 위트니스 리의 삼위일체 접근 방식은 철저하게 성경 본문 중심입니다. 그의 삼위일체론 연구인 신약의 결론―하나님, 그리스도, 성령―책자 약 1900 쪽은 거의 대부분이 성경본문에 대한 해설로 이뤄져 있습니다. 물론 정통 교부들의 관점을 포함하여 교회 역사상 논의되어 왔던 제반 삼위일체론 관련 학설들을 감안한 해석입니다.


삼위일체 토론을 마무리하면서 저는 이렇게 결론을 내리겠습니다.


성경엔 삼위를 먹고 마시라는 말씀이 많이 있습니다. '내가 곧 생명의 떡이로라 나를 먹으라'(요6:48, 57)' '누구든지 목마른 자는 내게로 와서 마시라...믿는 자의 받을 성령을 가리며 말씀하신 것이라'(요7:37, 39)' '우리가 ...한 몸이 되었고...또 다 한 성령을 마시게 하셨느니라'(고전12:13) 등이 그것입니다. 삼위일체 하나님은 마치 우리 앞에 차려진 밥상과 같습니다. 차려진 음식을 알고 음미하며 먹으면 제일 좋습니다. 그러나 조직적이고 체계적으로 음식을 분석해서 그 모든 것을 알았다고 하더라도 정작 음식을 먹지는 않는다면 그것은 제일 어리석은 것입니다.


우리 주님은 양으로 생명을 얻고 더 풍성히 얻게 하도록 이 땅에 오셨고(요10:10) 또 생명주는 영이 되셨습니다(고전15:45). 이 분을 우리는 날마다 주관적으로 체험해야 합니다. 사도 바울처럼 매일의 생활에서 자신이 부인되고 생명되신 그리스도를 살아야 합니다(갈2:20). 이것이 삼위일체를 추구하고 토론하는 목적입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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