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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방 교회들은 '신약의 결론'(하나님, 그리스도, 성령) 책자에서 성경 전체에 계시된 '삼위일체'에 대해 자세히 다뤘습니다. 그 총 분량만도 1900쪽에 달합니다. 누구든 참되게 상대방의 말을 이해하기 원하면 마음을 비우고 선입관 없이 책을 읽어야 합니다. 그리고 쓰여진 전체 내용으로 판단해야 합니다.


그러나 이인규님은 이런 기본이 안 되어 있습니다. 이인규님은 '지방 교회들은 양태론'이라는 선입관이 꽉차 있으십니다.


그러므로 이분은 책을 읽어도 다른 것은 안중에 없고 삼신론 기준으로 만든 '양태론 틀'에 맞는 말만을 찾아냅니다. 그것도 앞 뒤 잘라내고 오해될 부분만 떼어낸 것입니다. 더구나 이인규님이 이렇게 찾아내어 이 토론에 사용한 내용은 다 합쳐도 2-3페이지가 안 됩니다. 이처럼 총 1900쪽 중에서 문맥을 무시하고 떼어낸 몇 줄로 저자의 사상전체를 단정함은 옳지 못합니다. 이것이 바로 "비전문가들"의 한계입니다. 제대로 배운 신학자라면 이인규님처럼 행동하지 않습니다. 이제 이런 말꼬투리 잡는 식 이단 정죄는 끝나야 합니다. 과거로 족합니다.


이번 글에서 제가 중점을 두고 다룰 삼위일체의 경륜적인 면은 그것만으로 2-30회의 별도의 토론이 필요한 방대한 주제입니다. 저희는 고후3:17, 고전15:45 등 이 방면만을 집중적으로 다룬 수백 쪽 분량의 자료들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 자료들은 다 학술논문 형식으로 쓰여졌고 수년에 걸쳐 미국 교계 신학자들과 목회자들에게 공개적으로 발표된 것들입니다. 그 일부가 저희들의 '확증과 비평' 영어 사이트에 올려져 있습니다. 그러나 저는 이인규님과의 토론에서는 이 주제에 대한 '최소한의 설명만'을 할 것입니다. 좀더 심도 있는 토론은 그만한 자격 있는 분이 나타날 때를 기다리는 수밖에 없습니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습니다.


이인규님 같은 분과의 토론은 무한한 인내를 요구합니다. 그것은 토론내용 자체가 벅차서가 아닙니다. 상식적인 대화가 안 되는 데서 오는 답답함입니다. 토론 핵심을 벗어난 답변, 자신의 오해와 왜곡과 실수를 오히려 남에게 떠넘겨 비난하는 식의 토론 전개는 상대방을 피곤하게 합니다. 이인규님의 이런 토론 태도는 이곳에서 다른 분들과 진행되었던 토론에서도 발견됩니다. 독자들은 '지방교회 토론방' 검색에서 '김종수'를 '전체게시판'에서 '약속'을 각각 쳐 넣으시면 두 분이 이인규님과 그리스도의 신성과 죽음에 대해, 예배당 건물이 성전이라는 주장에 대해 각각 나눈 글들이 뜰 것입니다. 그리고 상식이 통하지 않는 생생한 현장을 보실 수 있을 것입니다. 이인규님은 자신이 신학을 아는 평신도라고 착각하시는 것은 좋습니다. 그러나 빛이 있어서 자기 한계를 보실 수 있다면 더욱 좋습니다. 저는 경륜 방면을 다루기 전에 잠시 이인규님의 삼신론을 재차 다루겠습니다.


1. 이미 깊어진 고질병 같은 이인규님의 삼신론 이단사상


이인규님의 삼신론 사상은 '인격 안에는 인격이 없다'는 말로 요약됩니다. 이 말은 아버지, 아들, 성령 삼위가 '세 하나님들' 또는 '세 사람들' 처럼 존재하시되 같은 목적, 같은 사랑, 같은 믿음을 가짐으로 하나(한 분)됨을 유지한다는 것입니다. 즉 아버지, 아들, 성령 하나님은 빌1:30이 보여주듯 로마에 있던 사도 바울과 빌립보에 사는 성도들처럼 "떨어져 있지만"(인격 안에 인격이 없지만) 같은 믿음, 같은 사랑, 같은 목적 안에서 서로 상호 내재하신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한 가지 쟁점은 '세 하나님들' 또는 "로마 감옥에 갇힌 바울"과 "빌립보 지방에 사는 성도들"을 저는 "분리"로 보나 이인규님은 이것이 분리가 아니라고 우기고 있다는 점입니다. 그러므로 같은 목적, 같은 사랑, 같은 믿음 안에서 상호교류를 갖는 "세 하나님들" 또는 "세 사람들" 또는 "한 부부를 이루는 남편과 아내"사이 같은 삼위의 관계를 저처럼 삼신론이 되어버리는 "분리"로 볼 것인지 아니면 이인규님 주장처럼 허용되는 "구별"로 볼 것인지에 대해 서로 간에 이견이 있는 것입니다.


저는 삼위인 아버지, 아들, 성령을 장신대 김명용 교수 주장을 따라 '세 하나님들'로 보거나 사도 바울과 빌립보 성도들 같은 '세 사람들'로 보는 이인규님의 주장이 왜 허용되어서는 안 되는 이단 사상인지를 1) 정황증거 제시와 2) 직접비판을 통해 증명해 보겠습니다. 한 가지 분명히 할 것은 저는 이인규님 개인을 판단하지 토론이 다 끝나가도록 정의도 못 내리시는 소위 '정통교회' 자체를 판단할 이유가 없습니다.


이인규님은 정통교회 대표가 아닙니다.


1) 정황증거


지금 소개하는 자료는 제가 아는 지방 교회들 형제님에게 얻는 것입니다. 그 형제님은 김명용 교수가 월간 목회와 신학에 '하나님이 한 분이라는 말은 성부 하나님을 말할 때는 옳지만 삼위일체를 말할 때는 잘못된 것이다. 삼위는 세분 하나님이라고 해야 한다'는 취지의 논문을 올린 것을 보고 인터넷을 통해 김 교수 주장을 반박하는 글을 썼습니다. 아래 내용은 그 글을 보고 미국에 사는 어떤 한국 분이 보내온 이 메일 내용입니다.


"제가 김(OO) 교수의 글에 답변을 길게 썼는데 효과 있게 한국에 발표하려면 어느 잡지가 합당할지 알려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이름, 주소, 전화, 이 메일, 편집장 성함, 기관 이름, 성향 등). 제가 외국에서 삼십여 년 살다가 보니 한국 형편을 전혀 모르고 있습니다. 그러나 김 교수의 실수는 수정되어야 합니다. 한국 문화는 신학자들이 이런 경우 글을 쓰지 않는 모양입니다. 실력도 문제가 되겠지만, 원수 만들지 말자는 정서가 강한 모양입니다. 그리고 글을 한 번 쓰면 벌떼처럼 감정으로 덤벼드는 것도 피곤한 일입니다. 김 교수의 글에 답변으로 쓴 제 글은 제가 20때와 30때 초에 미국에서 알려진 신학대학원에서 교부 신학을 강의하던 자료를 근거로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한국에 있는 신학교 친구들의 만류로 이 분의 글은 끝내 소개되지 못한 모양입니다. 틀렸지만 이의가 없으므로 맞는 것처럼 보이는 경우입니다.


이인규님은 '하나님이 한 분이라는 것은 명확한 성경의 계시이다. ...어떤 사람들은 아버지가 한 하나님, 아들도 한 하나님, 성령도 한 하나님으로서 세 하나님이 단체적으로 한 하나님이 된다고 한다'라고 한 윗트니스 리 말에 대해 '전통적인 삼위일체를 부정하는 주장'이라고 했습니다. 또한 이인규님은 위 삼위가 세 하나님들이라는 김명용 교수의 말이 틀린 것이 없다고도 했습니다. 이것은 이인규님도 '삼위를 세 하나님(들)'로 보고 있음을 확증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반복해서 강조하건대, 우리는 삼위를 구별하되 이인규님, 김명용 교수처럼 '세 하나님(들)'이라고 말할 수 없으며 말해서도 안됩니다. 그것은 삼신론입니다. 성경적인 삼위일체가 아닙니다.


이것은 조금 다른 이야기입니다.


원OO 목사께 배운 한 목사님은 저와의 토론에서 삼위일체의 삼위를 '남편과 아내처럼 분리되나 한 부부인 개념'으로 주장했습니다. 제가 이것을 분리된 삼신론이라고 비판하자 그분은 한 2개월 이상을 침묵하다가 스스로 토론을 중단했습니다. 신학한 분 답게 자기 주장에 문제가 있음을 잘 분별하신 결과입니다.


최OO 목사도 지방 교회들과의 토론에서 겟세마네 동산에 기도하시던 예수님 안에 아버지와 성령 하나님이 안 계시다고 주장했습니다. 지방 교회들은 이것을 삼신론이라고 지적했습니다. 통합 측 북노회도 정식으로 이 부분을 문제 삼았습니다. 그러자 교계신문에 보도된 대로 최 목사가 이단상담 소장직을 물러나는 것으로 그 사건은 무마되었습니다. 이 점은 박정식 총회장의 교계신문과의 인터뷰에서도 확인되었습니다. 만일 위 주장이 삼신론이 아니고 이인규님 주장처럼 정통 삼위일체라면 통합 측 총회관계자나 최 목사 본인이 그와 같이 해결할 이유가 없습니다.


삼위는 분명히 구별되어야 합니다.


그러나 구별된 삼위를 '세 하나님(들)'이라고 하거나 '바울과 빌립보 성도들 사이'처럼 보거나 '남편과 아내사이'처럼 보는 것은 삼신론 이단입니다. 허용될 수 없는 사상입니다. 그것은 삼위의 '구별'에서 지나친 '분리'이기 때문입니다. 신학을 제대로 한 분들은 양심 안에서 이것을 압니다. 다만 신학을 안 하신 이인규님 같은 분들이 자신의 인간적인 생각에 삼위가 '세 하나님(또는 세 사람들)식'으로 계시면서 같은 목적과 믿음과 사랑 안에서만 서로 상호 내재하신다고 착각하고 계실 뿐입니다. 만일 웨인 그루뎀이나 필립 사프가 삼위를 '세 하나님들'이라고 말한다면 그들도 문제가 있습니다.


2) 직접비판


이인규님은 '인격'은 '상호 관계적인 면에서 구별되는 person'이고 '편재'는 '그 인격에 대해서 공간적으로 제한을 할 수가 없다'는 의미라고 하셨습니다. 즉 그 인격이 무한히 확장되어 산이든 강이든 심지어 카바레 건물 어디든 계시다는 주장입니다. 그런데 이인규님은 '인격 안에는 인격이 없다'는 말도 하십니다. 그것은 아들인격은 어디든지 다 계시나 아버지와 성령 인격 안에는 "안 계시고" 아버지 인격도 성령과 아들 인격 안에는 "안 계시며" 성령 인격도 두 다른 인격들 안에는 "안 계신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이처럼 하나님이 "특정 인격 안에는 안 계신다"는 말과 하나님은 "어디든지 다 계신다(편재)"라는 말은 양립할 수 없는 말입니다. 둘 중 하나는 거짓입니다. 참 이상합니다. 정작 긴밀히 한분 됨을 이뤄야 할 삼위 자체 안에는 "안 계시고" 지옥이든 불신자 속이든 그 어떤 곳에는 하나님이 편재하신다는 주장은 앞뒤가 안 맞습니다. 이것은 삼위를 분리된 세 사람들처럼 착각하는 이단사상을 고집하는 사람만이 생각할 수 있는 괴상한 이론입니다. 애석하게도 이러한 이단사상이 이인규님 존재 깊숙이 물들어 있습니다. 그래서 "그렇지 않다"는 한 두 번의 권면 만으로는 쉽게 치료될 수 없는 고질병이라는 것입니다.


이러한 이인규님의 삼신론은 다음과 같이 '우리 안에 들어오신 하나님이 누구신가'에 초점을 맞추어 보면 더 선명하게 드러납니다.


(1) 이인규식 삼위일체에 따르면 '성령 인격'은 '아들 인격'이 아니며, 성령 인격을 영접한 사람 안에는 승천 후 하늘 보좌에 남아계신 아들 인격 자체는 없습니다. 따라서 요11:25, 요일5:11-12, 골3:4 이 말하는 "생명"(아들 인격)은 하늘에 올라가서 아들 인격을 직접 만나 뵐 때까지는 저 멀리 하늘에만 계실 뿐입니다. 따라서 이런 거짓 가르침을 따르면 이 땅에 있는 사람들은 결코 성경이 말하는 "생명"을 영접할 수 없습니다. 그저 겉모양만 그리스도인들인 가라지들만 만들어 낼뿐입니다(마13:25). 즉 이인규식 삼신론 이단 사상은 구조적으로 생명되신 아들인 그리스도와 사람들을 하늘과 땅만큼 떨어뜨려 놓습니다. 독자들은 이 점을 잘 생각해 보시면 저의 비판에 공감하실 것입니다. 그리고 이인규식 삼위일체가 얼마나 무서운 독소가 있는 것인지도 보게 되실 것입니다.


(2) 이인규님은 아들 인격 자체는 하늘에만 계시지만 편재성으로는 이 땅위의 사람들 안에 계신다고 변명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 경우도 사람 가까이 편재로 오신 예수님(신성만)은 하늘에 계신 아들 인격(하나님 사람, 신성 인성)과는 다른 예수가 되어 버립니다. 이처럼 이인규식 이단 삼위일체론은 다른 예수를 영접케 하는 것으로 끝맺습니다. 끝이 다릅니다.


(3) 이인규님 주장에 의하면, 우리 안에 계신 그리스도는 아들 인격 자체는 제외된 그리스도입니다. 즉 편재성으로만 계신 이상한 그리스도가 될 것입니다. 이런 논리로는 하늘에서 들려오는 '사울아 사울아 네가 왜 "나"를 핍박하느냐 ...나는 네가 핍박하는 예수라'라는 말씀을 영원히 풀 수 없습니다(행9:4-5). 이것은 이인규님의 교회론에도 치명적인 문제가 있다는 증거입니다.


이인규님의 '인격 안에 인격이 없고, 바울과 빌립보 성도들이 사실상 떨어져 있으면서 같은 목적, 사랑, 믿음 안에서만 상호내재 하는 것처럼 삼위가 계신다는 사상'은 위에서 보듯이 치명적인 이단사상입니다. 성경을 왜곡시킨 주장입니다. 삼위가 같은 목적, 같은 사랑, 같은 믿음을 가짐으로 한 분이라는 이인규식 삼위일체는 아래의 정통 삼위일체 이론과 분명히 다릅니다.


즉 이인규님은 인격은 제외한 편재성 또는 믿음, 사랑, 목적간의 상호내재를 주장하나 아래 정통신학자들은 위격 간의 구별되나 분리되지 않는 상호내재를 말합니다. 둘은 동쪽과 서쪽처럼 다른 것입니다.


-거룩한 삼위일체의 위격들은 분리할 수 있는 개체들이 아니다. 각각은 나머지 둘을 포함하며, 각각의 오심은 나머지 둘의 오심이다』(아우구스트스 스트롱, Systematic Theology (Phila delphia: The Judson Press, 1912) p 333). 각각의 위격의 오심은 나머지 둘의 오심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인규님 같은 엉뚱한 상호내재가 아닙니다.


-상호내재는 세 위격들의 상호내주를 의미하고, 그들이 하나 안에 있는 것처럼 하나가 다른 둘 안에도 변함없이 있는 것이다(George Bull 성공회 주교, Defense of the Nicene Creed, Oxford, 1851). 이인규님 잘 보세요. 위 말은 세 위격들의 상호내주를 말하고 있습니다.


-성부는 전적으로 성자 안에 있고 성자는 전적으로 성부 안에 있다는 사실은...(칼빈, 기독교 강요1권, p169, 성문). 성부가 "전적으로" 성자 안에 있다고 하지 않습니까.

 

-웨슬리는 성부, 성자, 성령, 각자가 지니고 있는 고유의 인격성을 강조하며, 삼위의 상호내재를 주장한다. 이와 같은 상호내재의 속성에 의해서 성부, 성자, 성령은 서로 분리되지 않으면서 서로 구별이 된다. 이로서 하나님은 성부, 성자, 성령으로서 구별될지라도 서로 분리되거나 떨어지거나 나뉘어지지 않는 '단일성'을 갖게된다(협성대학교 김영선 교수). 이처럼 정통 삼위일체는 삼위의 고유한 인격성을 강조하되, 삼위간의 상호내재를 통해 구별되나 분리됨 없는 단일성을 갖는 것이지요.


-또한 아우구스티누스는 단일성과 삼위성을 논하면서 위격들의 '상호내주'의 관점에서의 삼위일체성을 다음과 같이 진술한다. '...그들은 각각 자체가 무한하시다. 그래서 하나 하나가 다른 하나 하나 안에 계시며, 모든 이 안에 계시다. 또 모든 이가 모든 이 안에 계시며, 모든 이가 한 이 안에 계시다'(김석환, 위 책 299쪽). 역시 위격들의 상호내주를 말합니다.


-"우리는 한 하나님을 세 품격과 만나며 그 하나의 품격에서 다른 두 품격과 함께 만난다. 각 품격은 서로 혼합되거나 혼돈 되지 않으면서도 서로 완전히 분리될 수 없다(한국기독교장로회 신앙고백선언(1972년) '하나의 품격(인격)에서 다른 두 품격(인격)과 함께 만난다'는 말은 이인규님 기준으로는 양태론이 됩니다. 담대하게 말해 보세요.

 

위 신앙을 고백하는 장로교가 양태론 이단입니까 아닙니까?


2. 본질적인 삼위일체와 경륜적인 삼위일체


초대교회 정통 교부들은 삼위일체를 본질적(내재적)인 방면과 경륜(경세)적인 방면으로 구분했습니다. 성경이 계시하는 삼위일체는 "이 두 가지를 함께 취해야" 온전히 이해할 수 있다는 인식은 매우 중요합니다. 그러나 한국교계는 '경륜적인 방면의 삼위일체'에 대해서는 매우 낯선 것 같습니다. 실제로 차영배 박사의 신론, 뻘콥의 조직신학(고영민 번역), 하문호님의 기초교의학 등에는 이에 대해 아예 언급이 없습니다. 박형룡 박사 신론에는 단 열 줄의 언급만 있습니다(206쪽). 다행히 이종성 박사의 삼위일체론에 다양한 내용이 소개되어 있습니다. 따라서 저는 이종성 박사 저서를 중심으로 소개해 보겠습니다.


1) 본질적인 삼위일체론 - 내재적 삼위일체(Immanent Trinity)라고도 합니다.


그 의미는 삼위일체 하나님은 영원 전부터 영원 후까지 아버지, 아들, 성령 하나님이 위격(인격, 페르소나)간에 서로 안에 상호 내재함으로 영원히 구별은 되나 분리할 수 없는 독특한 존재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삼위간의 내재적인 관계'에 대한 정의입니다. 이러한 삼위의 위격 간의 상호내재 상태는 사람의 구원을 위한 전 과정에서도 결코 손상되지 않는다는 점을 아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종성 박사는 삼위간의 교제관계를 깊이 이해하고 강조한 것은 동방의 3대 신학자와 아우구스티누스라고 말합니다(이종성, 삼위일체론, 259쪽). 또한 이미 소개 드린 대로 아우구스티누스의 삼위의 내적관계성의 특징은 (1) 세 위격의 동등성 (2) 각기 완전성 (3) 신성 안에 일체의 분리가 없음 (4) 그 셋(위격)은 함께 서로 내재함 등입니다(260쪽). 이인규님은 (4)을 오해함으로 삼신론자 입니다.


2) 경륜적인 삼위일체론 - 경세적 삼위일체(Economic Trinity)라고도 합니다.


그 의미는 삼위일체를 구원사적인 관점에서 이해하는 것인데, 아버지 하나님은 절대자로서 구원의 계획자(엡1:3-6), 아들은 구원의 조건을 성취하는 자(엡1:7-12), 성령을 구원을 완결(적용)하는 자(엡1:13-14)로 보는 것입니다. 이것은 삼위일체 하나님의 하나님 이외의 대외적인 세계와 사람들과의 관계를 강조합니다. 또한 하나님의 존재 자체보다는 기능과 사역을 강조합니다. 이 이론은 초대교회 성도들이 가지고 있었던 현실적인 신관을 반영한 것입니다. 이레니우스, 힙폴리투스, 터툴리아누스 등 그 당시 지도적 위치에 있던 대다수 교부들이 지지했습니다(이종성, 256-257쪽).


앞서도 언급했지만 성경이 계시하는 정통 삼위일체는 위 두 가지를 함께 취하는 것입니다. 삼위일체론 논증의 최종주자로 평가받기도 하는 아우구스티누스나 캅바도키아 3대 교부들도 이러한 균형 잡힌 관점을 가졌고(261쪽), 삼위일체론의 현대적인 이해에 큰 공헌을 한 것으로 평가받는 칼 바르트 또한 그러합니다. 누구든지 본질적인 방면을 무시하고 경륜적인 면만을 말하면 양태론이 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러나 두 방면을 다 말하는 사람들은 결코 양태론자들이 될 수 없습니다. 위트니스 리가 이런 경우입니다. 그런데 이인규님은 위트니스 리 글 중에서 다른 쪽의 글은 철저하게 무시하고 어느 한쪽의 글만을 추려내어 문맥과 다르게 왜곡시켜 말함으로 억지로 양태론을 만들려고 애쓰고 계신 것입니다. 그러나 그런 식으로라면 정통교부로 평가받는 그 누구도 이단이 안 될 사람이 없습니다. 필립 샤프는 이점을 그의 책 '그리스도인 교회역사'에서 다음과 같이 증언해 주고 있습니다.


'Many passages of the Nicene Fathers have unquestionably a tritheistic sound, but are neutralized by others which by themselves may bear a Sabellian [modalistic] construction; so that their position must be regarded as midway between these two extreames(Philip Schaff, History of the Christian Church, Vol. III, Erman's, p674).


위 내용의 요지는 니케아 교부등의 글들은 삼신론적인 인상이 있지만 다른 방면에서 양태론 구조를 가짐으로 서로 상쇄되어 두 극단 사이에서 중립적인 위치를 가졌다는 것입니다. 한편 사벨리우스는 세 위격 간의 구별되나 분리되지 않은 방식으로 상호내재 하신다는 본질인 방면을 무시하고 구원을 위한 삼위의 기능을 강조하는 경륜적인 면만을 치우치게 강조함으로 결국 양태론으로 드러난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것은 삼위의 본질적인 면과 경륜적인 면을 함께 말하는 위트니스 리와는 전혀 다른 경우인 것입니다.


3. 경륜적인 방면과 관련된 성경구절들에 대한 해석


우리가 성경을 해석할 때 각기 다른 관점인 본질적인 방면과 경륜적인 방면을 하나의 통일된 사고체계로 통합하려고 하면 혼란에 빠집니다. 또한 이인규님처럼 경륜적인 방면(구원역사)의 말씀을 본질적인 방면(존재)의 말씀으로 취할 때 스스로 모순에 빠집니다. 우리는 이 점을 조심해야 합니다. 이인규님은 삼위는 마태복음 3장에서 나타난 것처럼 여기 저기 떨어져 계신다는 사상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제가 예수님 위에 비둘기처럼 내려오셨던 성령은 그 다음에 언제 어떻게 다시 하늘로 올라가셨느냐고 질문했습니다. 아직 이에 대한 답변이 없습니다. 또한 신약 서신서는 도처에서 믿는 이들 안에 인격체로 사시는 그리스도를 말합니다. 더 나아가 믿는 이가 바울처럼 자기를 부인하고 생명 되신 그리스도를 사는 것이 신앙생활의 핵심이라고 강조합니다(갈2:20, 빌1:21). 그러나 삼위가 각각 나누어진 이인규식 삼위일체 구조체계로는 하늘 보좌에 계신 육신 입은 아들 인격이신 그리스도가 사람 가까이 오실 길이 없습니다. 경륜적인 방면의 삼위일체를 존재적으로 빈틈없이 체계화하고 그 틀에 맞지 않는 것들을 가혹하게 비판하다가 자신의 그물에 스스로 걸려든 셈입니다.


사실 사람의 구원과 관련해서 기록된 성경구절들은 사람의 머리로 다 이해할 수 없습니다. 모순되는 듯한 곳도 많습니다. 이것을 사람의 머리로 체계화하지 말고 다만 아멘 하고 믿는 것이 제일 안전합니다. 하루만 사는 하루살이는 20 대가 되어 결혼하게 되었다는 사람의 말을 이해할 수 없습니다. 하루살이가 사람의 모든 존재와 활동을 체계화하여 모순 없이 파악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미친 짓입니다. 우리는 성경에서 하나님의 아들이 육신을 입었다고 하면 아멘 해야 합니다.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았다고 하면 또 아멘해야 합니다. 마태복음 3장에서 예수님은 물위에, 성령은 공중에, 아버지는 하늘에 있다고 하면 아멘 하면 됩니다. 아들이 있는 자에게 생명이 있다고 하면 아멘 해야 합니다. 아버지 하나님이 예수님 안에 계시고 하늘에도 있다고 하면 아멘해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 안에도 계시고 하늘 보좌에도 계시다고 하면 아멘해야 합니다(롬8:10, 34). 이러한 관점을 갖는다면 아래 구절들에 대해서도 전혀 문제될 것이 없습니다.


1) 이사야 9:6 '이는 한 아기가 우리에게 났고 한 아들을 우리에게 주신 바 되었는데...그 이름은 전능하신 하나님이라 영존하시는 아버지라' 이 말씀에 대해 다만 아멘으로 받습니다. 위 말씀에서는 "우리에게" 라는 구절이 중요합니다. 즉 위 말씀은 삼위일체의 존재방면이 아니라 경륜적인 방면의 말씀인 것입니다. 이것을 존재적인 방면으로 받아들여 위격의 혼동이 있을까봐 본문의 문맥을 무시하며 다르게 해석할 필요가 없습니다. 존재에 있어서 삼위는 영원히 구별되는 분이십니다. 이 구절에 대한 이인규님의 해석은 본문을 왜곡시키는 해석입니다. 이 구절에 대한 좀더 깊은 해석을 보기 원하시는 분들은 한국복음서원 발행의 '진리의 변호와 확증' 25-48쪽에 소개된 '어떠한 이단인가-두 신성한 아버지, 두 생명 주는 영, 세 하나님'과 '장로훈련 III 이상을 실행하는 길' 53-60쪽을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2) 고후3:17 '주는 영이시니 주의 영이 계신 곳에는 자유함이 있느니라' 이 말씀에도 아멘입니다. 주는 영이십니다. 이 부분도 우리의 마음에 편지를 쓰시는 내주 하시는 하나님의 영에 관한 글이므로 경륜적인 방면의 말씀입니다. 이 영을 성령으로 해석하든지 부활하신 그리스도로 해석하든지 영원히 구별된 상태로 상호내재 하시는 삼위일체 하나님의 존재를 손상시키지 않습니다. 이인규님이 자신의 착각에 의해 지방교회측이 1/3위격인 2격 아들이 1/3위격인 3격 성령이 되었다고 가르치는 것으로 오해하니까 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자세한 내용은 위 '이상을 실행하는 길' 60-61쪽을 보시기 바랍니다.


이인규님이 위 말씀에 대해


'이 문장에서의 "프뉴마"는 "성령"이 아니라, 돌로 새긴 의문의 직분에 반대되는 "영적인 직분"의 개념으로 사용되었다고 보여집니다. 즉 프뉴마는 "성령"이 아니라, "영적"인 개념(돌이라는 물질에 반대되는 개념)으로 보는 것이 타당합니다.'라고 해석하신 것은 본문에서 완전히 빗나간 해석입니다.


위 '주는 영'이란 문장에서 영이라는 퓨뉴마를 '인격'이 아닌 '영적인 직분 개념'으로 본 것은 본문을 현저하게 왜곡시키는 해석입니다. 평신도이신 이인규님에게 성경본문에 대한 정확한 해석을 요구하는 것이 무리임을 잘 알고 있습니다. 님의 해석이 틀렸다는 것을 지적하는 선에서 멈추겠습니다.


3) 고전15:45 '첫 사람 아담은 산 혼이 되었다 함과 같이 마지막 아담은 생명 주는 영이 되었나니' 이 말씀 역시 큰 소리로 아멘 합니다. 이점 역시 구원과 관련하여 사람에게 생명을 주는 영을 말함으로 경륜적인 방면의 말씀입니다. 저는 이 생명 주는 영이 아버지와 성령이 구별됨을 손상치 않는 방식으로 상호내재 하시는 부활하신 그리스도임을 밝혔습니다. 그러므로 지방교회측이 이 구절에서 2격이 3격이 되었다고 한다며 양태론이라는 말씀하시는 이인규님의 주장은 비판 근거 자체가 없게 되었습니다.


이 구절과 관련해서 이인규님이 '...예수가 프뉴마가 되었다는 것은 아담과 대조되는 "살려주는 영적 존재"가 되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즉 아담과 예수를 상호대비적인 개념으로 설명하려는 뜻으로 기록되어진 것이며...'라고 한 것은 해석도 아닙니다. 지금 자신은 '살려주는 영적 존재'가 성령이 아니라는 말을 장황하게 하고 있으면서 그러면 그 존재가 누구인지에 대해서는 두리뭉실 넘어가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1, 2, 3 중 어느 것이냐를 묻고 있는데 3은 아니고 셋 중에 하나이다 라고 말한다면 그것은 말장난이지 답변을 한 것이 아닙니다.


4. 이인규님이 본문문맥을 무시하고 인용한 부분들에 대한 보충 설명


아래 이인규님이 인용하신 글들은 모두 위트니스 리 형제님이 "경륜적인 방면"의 성경본문들을 해설한 것입니다. 따라서 이 내용만을 따로 떼어 놓고 보면 딱 떨어지는 양태론 주장처럼 보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인규님이나 독자분들이 잊지 말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위트니스 리의 글에서 보이는 경륜적인 방면의 내용들은 "본질적인 방면의 삼위의 영원히 상호구별된 위격들을 손상시키지 않는 전제"하에 쓰여진 내용이라는 것입니다. 앞서 소개드린 것처럼 이것은 초대교부들의 관점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이것을 무시하고 밖에 드러난 경륜적인 방면의 내용들만 가지고 위격간의 혼동이 있다고 지적하면 그 사람 스스로도 모순에 빠져 버립니다.


예를 들어 보겠습니다.


이인규님은 삼위가 각각 구별되게 "존재하신다"는 예로 마태복음 3장의 예수님 침례 장면을 들었습니다. 이 장면 만으로는 성령님은 분명히 예수님 밖에 계십니다. 그러면 그 당시 예수님 안에는 존재적으로 성령님이 안 계셨습니까? 분명히 예수님은 성령으로 잉태된 분입니다. 성령님이 잉태만 시켜 놓고 빠져 나갔다거나 아니면 저 하늘에 성령 인격이 남아 계시면서 편재성으로만 원격조정하듯이 잉태시켜 놓은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그 사람이 이단입니다. 제가 이인규님에게 침례시 내려왔던 성령님이 언제 다시 하늘로 올라가셨느냐고 반복해서 질문했지만 답이 없습니다. 성경의 답은 이것입니다. 예수님 안에 존재적으로 구별됨을 잃지 않은 채 성령님이 상호내재 하시면서 경륜적으로(다른 말로 예수님의 사역을 위해) 성령님이 하늘에서 비둘기처럼 내려 오신 것입니다. 이것이 성경이 계시하는 삼위일체의 양 방면입니다.


성경은 분명히 성령이 예수님 안에도 계시고 하늘에서 내려오시기도 한다고 말합니다. 우리는 둘 다를 믿어야 합니다. 그렇다고 해서 우리는 성령님이 두분이라고 말하면 안 됩니다. 둘이 각각 다른 분이라고 말할 수도 없습니다 이런 모순되는 듯한 사례는 성경 도처에서 발견됩니다. 예수님은 이 땅에 오신 분이지만 여전히 아버지의 품 속에 계신다고 하고 또 하늘에도 여전히 계신다고 말합니다(요1:18, 3:13 원문). 승천하신 예수 그리스도가 하늘 보좌에 계신다고 하면서 같은 장에서 또 이 땅 위에 있는 믿는이들 속에 계신다고 말하기도 합니다(롬8: 34,10). 예수님은 지상사역시 아버지가 자신 안에 계신다고 말씀하시면서 또 하늘에 계신 아버지라고도 말씀 하십니다(요14:11, 마6:9). 우리는 이 두 가지 다가 성경말씀임으로 둘 다를 그대로 믿어야 합니다. 이인규님처럼 아버지의 실제 인격은 하늘에만 계시고 예수님 안에는 인격은 없는 편재성으로만 계신다고 하면 성경본문이 꼬이게 되어 있습니다.


삼위일체는 그야말로 인간의 머리로는 풀 수 없는 신비입니다.


이 신비는 신비대로 놔두고 다만 관련된 모든 성경 말씀에 아멘해야지 그것을 획일적으로 체계화하려다 보면 그 사람 자신도 모순에 빠져 버립니다. 관찰방에서 새벽별님이 지적하신 것처럼 이인규님은 자신이 삼신론 입장에 서 있지 않으면 절대로 균형선에 서 있는 위트니스 리를 양태론으로 만들 수 없습니다.


1) 수증기 비유


이인규님은 1900쪽에 달하는 삼위일체에 대한 다른 부분들의 설명은 거들떠 보지도 않고 이 단 한가지 비유만으로 지방교회의 삼위일체는 '한 실체의 세가지 형태'라고 말했습니다. 이인규님은 매사가 이런 식입니다. 이인규님이 인용한 부분은 다음과 같습니다.


# 마찬가지로 아버지, 아들, 성령은 세 하나님이 아니라 우리가 소유하고 누리기 위한 한 하나님의 세 방면이다. 예를 들어 얼음은 물이 되고 물은 수증기가 된다. 즉 한 실체가 세가지 형태를 띠고 있다. 그 실체가 수증기의 상태에 이를 때에 우리가 호흡하는 데 유용하다. (하나님 297쪽)


위 말은 '(삼위일체)에 대해 '비밀들중의 비밀', '이해할 수는 없지만 누릴 수 있음' 등의 소제목이 보여주듯이 비밀하고 신비하며 이해할 수 없으나 사람들이 "체험"할 수 있는 하나님을 말하는 본문 단락들의 내용 중 일부 글입니다. 특별히 위 이인규님이 인용한 단락은 고후 13:13의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하나님의 사랑과 성령의 교통하심이 너희 무리와 함께 있을지어다'라는 말씀에서 '사랑' '은혜' '교통'을 설명하는 부분입니다. 즉 일반적인 교리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특정 말씀을 해설하고 있는 대목입니다.


위트니스 리는 '아버지의 사랑과 아들의 은혜와 성령의 교통은 세 개의 서로 다른 것이 아니라 우리가 소유하고 누리기 위한 한 가지의 세 단계이다. (그 다음에 위 인용문이 있고) 그러므로 아버지께서 소유하신 모든 것은 다 아들 안에 있으며, 아들이 소유한 모든 것은 성령이 받으며, 성령은 우리가 누릴 수 있도록 그분을 우리 안으로 가져다 준다'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우리의 "체험" 안에서 사랑과 은혜와 교통이 '한 실체의 세방면'이라는 것을 설명하는 문맥입니다. 이인규님은 비겁하게 행동하시면 안됩니다. 위트니스 리는 반복해서 삼위가 영원히 "구별됨을 잃지 않은 방식"으로 상호내재하신다고 여러번 밝혔습니다. 님은 이 말을 함부로 무시합니다. 또 위 인용은 고후 13:13의 사랑(하나님), 은혜(하나님), 교통(하나님)이 우리 안에서 어떻게 체험되는지를 말하는 대목이지 교리를 말한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체험 안에서 세 위격을 나누어 설명하긴 쉽지 않습니다.


이인규님은 자신의 "체험 안에서" 사랑따로, 은혜따로, 교통따로 엄격하게 구별되시면 그것을 성경을 근거로 증명해 보시기 바랍니다. 님의 체험 안에서 어디까지가 하나님의 사랑이고, 어디까지가 그리스도의 은혜이며, 어디까지가 성령의 교통인지 딱 부러지게 구분하여 증명해 주시기 바랍니다. 만일 그렇게 못하면 이인규님도 양태론자입니다. 이인규님같이 말꼬리를 잡고 늘어지는 사람이 있을 것을 위트니스 리는 알았던 모양입니다. 왜나햐면 이인규님이 인용한 수증기 비유 바로 밑에서 위트니스 리는 비밀하신 삼위일체를 물질세계의 예로 설명하는 것에 대해 독자들의 주의를 환기시키는 말을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인규님 이런 모든 앞뒤 문맥을 무시한 채 특정부분만을 떼어내어 왜곡시키는 일은 이제 그만하시기 바랍니다.


다시 말씀드립니다. 위 인용내용은 우리의 체험을 설명한 것이지 교리를 말한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체험에서 하나님은 많은 때 다만 한분으로 다가오심을 누구도 부인 못할 것입니다. 한 하나님을 때로는 사랑으로 때로는 은혜로 때로는 교통으로 체험하고 누리는 것을 위트니스 리는 지적한 것입니다. 이것은 전혀 문제될 것이 없습니다.


2) 기도하시는 분, 들으시는 분


아래 내용은 아버지, 아들, 성령을 토막 내듯 각각 분리된 세 사람들이라고 생각하는 삼신론자들에게는 이상하게 보일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이 땅위에 성육신되어 오신 아들 하나님이 여전히 하늘에 계신 아버지와 구별됨을 잃지 않으신채 하늘에 상호내재 하신다는 비밀한 방면을 고려한다면 전혀 문제가 없습니다. 우리 주님도 우리 안에서 우리와 한 영(고전6:17)되어 기도할 뿐 아니라 또한 하늘 보좌 위에서 아버지와 함께 들으시는 분이 될 수 있습니다. 이 셋을 나눠놓고 보면 우리가 이 땅 위에서 하늘 아버지께 기도하면 아들과 성령님께는 미안해지는 웃지못할 일이 벌어지는 것입니다. 성경이 말하는 삼위일체 하나님은 결코 이런 분이 아닙니다. 이인규 님이 인용한 내용을 소개하고 반박해 보겠습니다.


# 어찌 주님이 기도하시는 아들과 그 기도를 들으시는 아버지가 될 수 없겠는가? 기도하는 것을 듣고 계시는 아버지는 기도하는 아들이시며, 기도하는 아들은 또한 그 기도를 들으시는 아버지이다(신약의 결론. 하나님 323쪽).


간단히 설명하면 위트니스 리는 아들 하나님이 '삼일하나님의 제 2격이실 뿐 아니라, 또한 완전한 하나님이다'라는 관점에서 위 말을 한 것입니다(위 책 321쪽 참조). 또한 본문은 위 말을 하기에 앞서 이 주제에 관련된 출애굽기 3:2-12, 사사기 6:11-24, 13:15-24, 슥12:8, 슥 2:8-12 본문내용을 상세하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성경은 간단한 책이 아닙니다. 삼위일체 하나님도 사람들이 다 이해할 수 없는 면이 있습니다. 만일 이것을 무시하고 모든 성경 본문을 자신의 교리체계로 엄격하게 해석하다보면 성경 본문 자체를 왜곡시키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습니다.


위트니스 리는 위 인용문 뒤에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이 문제를 교리상으로 충분히 설명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우리의 체험에서는 참으로 그렇다. ...그러므로 내 안에서 기도하시는 분은 하늘에서 나의 기도를 들으시는 분이다. 그 둘은 동일하다'. 위트니스 리는 우리의 체험방면에서 위와 같이 말한 것입니다. 체험 안에서 삼위는 종종 한분으로 다가오십니다. 우리 안에 각각 셋으로 따로 떨어진 세 하나님들이 계신 것처럼 생각하는 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이인규님은 이런 잘못된 기준로 함부로 지방교회가 '한 실체 세가지 양태'를 믿는다고 모함하시면 곤란합니다. 말을 함부로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3) 다른 사람들이 위트니스 리에게 한 충고?


이인규님은 마치 위트니스 리가 다른 사람들의 충고를 무시하고 고집스럽게 이단사상을 주장하는 것처럼 왜곡시키고 있습니다. 누구 글이든 문맥을 무시하고 일부만 떼어내어 뒤틀어버리면 흑을 백으로 만들 수도 있는 법입니다. 이인규님이 인용한 본문을 소개하고 반박해 보겠습니다.


'# 어떤 사람들은 나에게 아들이 아버지이고 주님이 그 영이라고 말하지 말라고 충고했다. 그러나.(성령48쪽)'.


이인규님은 자신의 9편글 끝부분과 7편글 첫 장에서 위 말이 성령 48쪽에 있다고 했습니다.그러나 위트니스 리 신약의 결론-성령 48쪽에는 위 말과는 상관없는 찬송가 한편이 소개되어 있을 뿐입니다. 이인규님이 두 차례나 인용한 본문은 48쪽 어디에도 없습니다. 우선 이인규님의 인용이 정확치가 않음을 지적해 둡니다. 그리고 본격적인 반박은 이인규님이 정확한 출처를 제시하면 그때가서 하겠습니다.


그러나 원칙에 있어서 '그들이 충고할수록 나에게는 성경이 말하는 것을 말할 힘이 더 생긴다. 나는 성경에 따라 아들이시고, 사람이 되셨고, 우리 죄를 위하여 십자가에서 돌아가셨고, 죽은 자들 가운데서 부활하신 우리 그리스도가 오늘 아들일 뿐 아니라, 아버지와 그 영이라고 말하는 것이다'라는 말은 아버지와 성령을 제외시킨 그리스도의 개별적인 한 위격의 관점에서 한 말이 아닙니다. 이 말은 아버지와 성령이 구별됨을 상실치 않으신 방식으로 상호내재 하시는 역사상의 예수 그리스도, 즉 육신을 입으셨고, 죽으셨고, 부활 승천하셨고, 우리 안에 생명(생명주는 영)으로 들어오신 그리스도(통일성 안의 그리스도)를 말하는 것입니다. 만일 이것을 부인한다면 그 사람은 자신이 완전한 하나님이 아닌 부분적인 하나님을 영접한 것이 됨으로 더 큰 문제를 불러 일으킬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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