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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관련 이슈 - 지방교회 비판에 대한 반박

 

이글은 '지방교회 운동, 무엇이 문제인가'라는 안티오크 홈페이지의 글에 대한 반론입니다.


박만수 형제님 안녕하십니까? 저는 캘리포니아의 OOO 교회에서 생활하고 있는 OOO 형제입니다. OOO 교회는 세계 각지에 분포되어 있는 지방교회들 중 하나입니다. 먼저 고운 가루와 누룩이 혼합되고(마13:33, 16:12), 사람의 전통이 성경의 순수한 가르침을 대치(마15:1-9)하는 경향이 짙어 가는 이 시대에 안티오크 등을 중심으로 성경진리를 존중하고 절대시하는 움직임이 한국에서 일어나고 있는 것이 제겐 신선한 충격입니다.


더구나 박 형제님은 성경적인 신약교회가 이 땅에서 재현되는 것을 추구하는 분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 점에 있어서는 저와 일치하는 면이 많습니다. 제게도 이 교단, 저 단체를 전전하며 방황(?)하던 시절이 있었지만, 십여 년 전에 지방교회안에 들어 온 뒤부터는 그 긴 방황을 끝냈습니다. 지금은 참된 교회 생활 안에서 안식과 만족이 있고, 주님이 제게 보여주셨던 하늘에 속한 이상(행26:19)은 갈수록 투명해지고 있습니다.


저는 우연한 기회에 안티오크 홈페이지를 알게 되었고 거기서 지방교회에 대한 박 형제님의 글을 읽게되었습니다. 유감스럽게도 박 형제님이 지방교회에 대해 언급한 많은 부분이 피상적인 관찰과 오해에 근거한 단정들이었고, 심지어 거짓된 내용조차 섞여 있는 것을 보고 놀랐습니다. 기도하는 가운데, 사람에 대한 비난은 주님께 맡기더라도(롬14:10-12) 진리와 실행에 대한 비판은 바로잡는 것이 필요하다(행26:1-2)고 느껴서 이 글을 쓰기로 했습니다. 그러나 우선 안티오크가 무엇을 추구하는 단체인지를 알기 위해 하루 온종일을 투자하여 안티오크 홈페이지에 띄운 모든 글들을 샅샅이 읽어보았습니다. 다음에 언급하는 몇 가지 사항들은 이러한 과정을 거친 후에 제가 느낀 점들입니다.


1. 이단 뉴에이지 란에 지방교회 관련 글을 둔 것에 대해


C 형제님과 L 형제님의 질문에 답하면서, 박 형제님은 형제교회나 지방교회 사람들을 이단으로 보지 않고 오히려 형제로 본다고 했습니다. 그러면서도 무슨 이유에선지 안티오크는 이단 뉴에이지라는 제목 아래 지방교회를 비판하는 글을 두어 마치 지방교회가 이단 또는 뉴에이지 관련 단체처럼 보이게 하고 있습니다. 홈페이지 편집과 다른 단체를 평가하는 것은 안티오크의 자유입니다. 그러나 좀 지나친 느낌을 주는 편집은 지혜로운 방법은 아닌 것 같습니다.


대안을 제시하자면, 이단 뉴에이지 란에는 이단과 뉴에이지 관련 글만을 싣고 지방교회에 대한 글은 창조과학, 카톨릭 등에서처럼 독립된 항목으로 두는 것입니다. 형제교회, 말씀보존학회의 경우처럼 질문 답변 란으로 옮길 수도 있겠지요. 어느 경우든 박 형제님의 글, "지방교회 운동, 무엇이 문제인가?"와 저의 반박문은 함께 편집되기를 희망합니다. 그래야 읽는 분들이 공정한 평가를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2. 성경논쟁에 대하여-회복역 비판에 대한 반박


킹제임스 성경(KJV)이냐 그 외의 성경들이냐의 문제에서, 안티오크는 전자를, 그것도 원문참조가 아닌 영어성경에서 한글로 직역한 것에 최종권위가 있다는 입장을 취하고 있습니다. 또한 박 형제님은 말씀보존학회와는 달리 개역성경도 부족함이 있긴 하지만 읽고 구원받을 수 있는 하나님의 말씀임을 인정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안티오크의 권위역(KJV) 성경을 읽기만 하면 신앙생활은 만사가 OK 라는 식의 인상을 주면서까지 정통성 문제에만 집착할 일은 아니라고 봅니다.


오히려 저를 포함한 추구하는 그리스도인들은 안티오크의 권위역과 그 외의 성경들(말씀보존학회의 KJV을 포함)은 구체적으로 어떤 구절들이 다르며, 그런 구절들이 진리인식과 신앙생활에 구체적으로 어떤 치명적인 문제점을 가져오는가에 관심이 있습니다. 물론 지금까지는 전략적인 차원에서 차별성 자체를 강조할 필요는 있었겠다고 이해는 됩니다. 그러나 앞으로는 안티오크가 앞서 제가 지적한 것들을 정리하여 제시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것도 우월성의 과시가 아닌 하나님의 집 사람들에게 양식을 나눠주는 종의 자세(마24:45)로 말입니다.


그러나 사실 안티오크 측이 그런 자료들을 제시하더라도, 그것이 도움되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이미 영어 KJV를 참고하면서 균형 잡힌 신앙관을 정립한 사람들에겐 별로 새로울 것이 없을 수도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것이 쉽지 않은 작업이었겠다고 생각은 되지만, 안티오크가 한 일은 결국 영어 KJV를 한글로 번역한 것 그 이하도 그 이상도 아니기 때문입니다. 또한 안티오크가 번역한 KJV을 읽더라도 본문해석 문제나, 그 말씀을 통해 생명이신 주님을 접촉할지 아니면 성경지식만 얻고 말지(요5:39-40, 10:10)는 여전히 남아있는 과제들입니다.


어쩌면 이런 점들은 간과한 채 어느 성경이 더 정통인가 만으로 갑론을박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이 곳 미국에서 이제는 귀 측의 성경원문이 되어버린 영어 KJV신봉자들 사이에도 이런 저런 이견으로 많은 다툼이 있습니다. 저는 솔직히 한국에서도 이런 전례가 재연되는 것은 아닌지 우려가 됩니다. 우리는 누구도 나눌 수 없는 그리스도의 몸(고전1:12)을 최종권위의 성경을 가졌다는 명분으로 분열시키는 죄악을 경계해야 합니다.


박 형제님은 지방교회가 소위 알렉산드리아 계열의 회복역을 사용함으로 원뿌리인 모라비안 교회의 성경기초를 떠났다고 비난했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비판은 흑백논리에 빠진 박 형제님의 경솔함만 드러낸 것입니다. 왜냐하면 현재 회복역은 신약만 있고(구약은 번역 중임), KJV는 지방교회 성도들이 가장 많이 애용하는 영어성경 중 하나이기 때문입니다. 제 개인적으로도 10여 년 전부터 영어 KJV 애독자입니다. 최근엔 한글판 KJV도 참고하고 있습니다. 개역성경의 오류를 수정한 것들, 예를 들면 영과 혼과 몸을 원문대로 구분하여 번역한 것 등은 높이 평가될 만 합니다. 그러므로 무조건 형제교회와 지방교회 성도들을 알랙산드리아 사본 계열로 단정지은 채, 자신만 옳다는 식의 주장은 사실과는 거리가 먼 이야기이고, KJV 신봉자들은 너무 극단적이라는 막연한 선입관이 사실이었음을 확인시켜줄 뿐입니다.


사실 위트니스 리의 회복역은 그 서문에서도 언급하고 있듯이 네슬 알란드 26판을 중심으로 하되 거의 모든 헬라어 원문들을 참고했습니다. 원문에 충실한 본문 번역도 번역이지만, 회복역의 가치는 역시 역대로 하나님의 종들을 통해 밝혀진 신성한 계시와 진리해석들을 균형있게 집대성하고 더 발전시킨 각주내용에 있습니다. 저도 이 회복역을 보면서 성경을 보는 눈이 열렸습니다. 회복역은 한마디로 "열린 성경"입니다. 그러므로 회복역 자체만으로도 균형 잡힌 진리 인식에 전혀 문제가 없습니다. 이것을 증명하는 사례를 세 가지만 제시해 보겠습니다.


1) 회복역과 KJV가 같은 경우 : And no one has ascended into heaven, but He who descended out of heaven, the Son of Man, who is in heaven (회복역, 요 3:13). 위 밑줄 친 부분은 개역성경에는 없으나 회복역과 KJV에는 있습니다.


2) 회복역과 KJV의 본문단어가 다르지만 회복역 각주로 인해 같아진 경우 : And confessedly, great is the mystery of godliness : He who was manifested in the flesh(회복역, 딤전3:16). 본문에서 회복역은 He를, KJV는 God을 쓰고 있으나 회복역 각주는 He refers to Christ, who was God manifested in the flesh 라고 함으로써 본문의 He가 God 이심을 밝히고 있습니다.


3) KJV에만 있으나 원문비평가들 사이에 '임의로 삽입되었다, 아니다'라는 논란이 있는 부분 : For there are three who testify, The Spirit and the water and the blood, and the three are unto the one thing(회복역, 요일5:7-8).- KJV은 For there are three that bear record in heaven, the Father, the Word, and the Holy Ghost: and these three are one라고 되어 있는데 밑줄친 부분은 삼위일체를 잘 설명하고 있긴 하지만 논란의 대상이 되고 있는 부분입니다.


회복역은 위 밑줄친 부분은 없지만, 다른 부분의 말씀들(사45:5, 고전 8:4, 창1:26, 벧전 1:2, 히 1:8, 행5: 3-4, 요14:10-11절 등)을 통해 지방교회 성도들은 중 고등부 학생들도 아버지, 아들, 성령 하나님은 분리된 세 하나님들이 아니라, 구별되나 상호 내재하시는 한 분 하나님 즉 삼위일체 하나님을 믿고 있습니다.


결론적으로, 어떤 성경이 더 나은 성경이냐를 가지고 남을 정죄하거나 분열의 요소를 내재하는 것보다는 성경을 통해 생명을 얻고(요5:39-40), 다른 사람들에게 생명을 공급함으로 그리스도의 몸을 건축하는 것이 은사 있는 자들의 할 일(엡4:11-12)이라고 생각합니다.


3. 지방교회의 진리와 실행의 비판에 대한 반박


박 형제님은 지방교회를 비판하는 글에서, 이미 지방교회측이 반박했고 해명했던 사항들에 대해 다른 사람들의 '악의적인 표현'을 그대로 답습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신중하지 못한 태도로 거짓사실을 유포하는 태도는 매우 유감스러운 일입니다. 또한 그리스도인은 신앙(유 3절)을 구성하는 핵심진리와 지엽적인 실행을 혼돈해서도 안 된다고 봅니다. 저는 무익한 변론을 피하기 위해 박 형제님이 문제를 제기한 세세한 항목들에 대해 일일이 반박하지 않겠습니다. 그 대신 충분한 시간을 가지고 워치만 니 형제님 전집과 위트니스 리 형제님의 신구약 66권에 대한 라이프 스타디를 선입관 없는 순수한 마음으로 차분히 읽어보실 것을 박 형제님에게 권면드리고 싶습니다. 그렇게 할 때 많은 오해들이 풀릴 것입니다. 그러나 박 형제님이 잘못 알고 계신 것 중 몇 가지만이라도 여기에서 간단하게 설명드리고 싶습니다.


(1) 기도로 말씀먹기와 주의 이름 부르는 실행에 대해


박 형제님이 "성경적인 실행이라도 각 개인이나 교회별로 실행하는 정도에는 차이가 있다" 라고 지적했다면 독자들에게 더 유익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성경근거가 분명하고 역대로 경건한 성도들이 실행했던 말씀먹기(요6:27-57, 엡6:17-18)나 주의 이름을 부르는 실행(행9:1-14, 21, 롬10:12-13, 고전12:3)을 '이교적 접신방법'이나 '이교도의 주문 외우는 것'과 연결시켜 말씀하신 것은 성경말씀을 정면으로 부인하는 심각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참고로 말씀드리면, 이러한 악의적인 표현은 1970년대 후반, 미국에서 지방교회 성도들의 증가에 두려움을 느낀 한 단체가 쓴 God-Men이라는 책자에서 사용된 근거없는 말들입니다.


그들의 악한 동기에 근거한 '이교적 접신방법' '이교도의 주문' 등의 거짓된 비방들은 일련의 과정을 통해 미합중국 법정과 미국 기독교계를 대표하는 전문가들의 증언에 의해 사실과 다른 거짓말들임이 폭로되었습니다. 자세한 내용들은 한국복음서원이 발간한 '전문가들의 증언', 'God- Men 판결문', '멜튼 박사의 공개서한' 등의 책자들에 잘 소개되어 있습니다.


(2) 양태론과 신인합일설 등에 대하여


박 형제님은 지방교회 성도들이 삼위일체를 양태론적으로 해석한다느니 신인합일설을 믿는다는 등의 사실과 거리가 먼 말들을 하셨습니다. 저는 박 형제님이 이런 말들을 입증할 객관적인 증거와 자신의 신학이 있으신지 궁금합니다. 지방교회측은 그러한 거짓말들의 진원지인, 월간 교회와 신앙 발행인이며 예장(통합)측 전 이단사이비문제상담소장 최삼경 목사님과 공개적인 지상토론을 한 바 있습니다. '교회와 신앙'지를 통한 총 12회(1996. 8월-1998. 5월)의 공개토론을 통해 위와 같은 근거 없는 비방을 포함한 지방교회를 이단시한 모든 항목들은 반박되고 그 거짓됨이 밝혀졌습니다. 이러한 토론내용은 단행본 책자(제목: 누가 이단인가?, 생명나무출판사)로 99년 2월초에 시중에 판매될 예정입니다. 이 책은 지방교회의 진리와 실행을 공정하게 알고 싶어하는 분들에게 매우 유익한 자료가 될 것입니다.


책을 보면 아시겠지만, 한가지 특기할 만한 일은 지방교회를 양태론자라고 공격하던 최삼경 목사님이 공개토론 과정에서 오히려 세 하나님들을 믿는 삼신론자임이 밝혀진 것입니다. 최 목사님은 다른 교단은 물론이고 심지어 예장(통합)측 목회자들에 의해서도 그의 이단성을 지적 받고 있습니다. 저는 누구든지 참된 그리스도인이라면 근거 없는 말로 남을 정죄(출20:16)하기 전에 사실파악에 최선을 다해야 하며 더 나아가서, 생명을 공급하여 그리스도의 몸을 건축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엡5:29, 고전14:4, 벧전4:11).


(3) 지방입장에 대해서


박 형제님은 워치만 니는 분파주의에 대한 대안으로 지방입장론을 조심스럽게 제시했는데, 위트니스 리는 이것을 지나치게 강조함으로 잘못을 범했다고 비판하셨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몰라도 지방교회측 성도들은 박 형제님의 이러한 말로도 형제님의 글이 얼마나 피상적이고 사실과 다른지를 금방 알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워치만 니 형제님이 형제회 교사들의 탁월한 가르침을 높이 평가하면서도 그분들의 분열된 모습을 보고 그 치유책을 찾기 위해 다시 성경으로 돌아가 연구함으로 발견한 진리가 지방입장에 대한 진리이기 때문입니다. 니 형제님은 그후 그의 사역말기까지 일관되게 이 진리를 강조했습니다(교회의 길, 한국복음서원,1988, 7-28쪽). 성경진리라면 끝까지 붙잡고, 성경진리가 아니면(성경에 반대되는 사람의 전통 같은 것) 과감하게 버리는 것이 워치만 니 와 위트니스 리 두 분들이 취한 일관된 태도였습니다. 기독교계가 이 두 종들에 대해 가하는 무고한 비난들은 상당부분이 진리에 대해서는 타협치 않는 두 형제님들의 이러한 단호한 태도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지방입장론은 그리스도의 몸의 분열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는 사람들에게는 오히려 부담스러운 진리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누구든지 주님과 사도 바울처럼 믿는이들의 하나됨(요17: 21-23, 고전1:10-13, 엡4:2-6)을 진지하게 관심하고 또 연구한다면 성경상의 '한 지방에 한 교회' 원칙은 분열을 방지하는 놀라운 하나님의 지혜임을 인정하게 될 것입니다.


박 형제님이 잘못 말한 또 다른 예는 워치만 니 형제님이 '영에 속한 사람'이란 책을 쓴 시기에 관한 것입니다. 박 형제님은 그 시점을 워치만 니의 사역 중단시기라고 했지만, 사실 그 책은 그보다 20년 전인 1920년대 후반 니 형제님의 청년시절에 폐결핵에 걸려 요양 중에 집필한 것입니다. 이처럼 단순한 사실파악조차 제대로 안 된 상태에서 피상적인 관찰과 주관적인 생각 안에서 쓴 비판의 글에 대해 저는 일일이 반박할 가치조차 느끼지 못할 정도입니다.


(4) 사도성에 대하여


박 형제님이 그처럼 심각하게 문제 삼았던 사도성 또는 사도의 임무에 대해서도 그것이 성경의 완성과 함께 끝났다고 보는 견해와 그렇지 않다는 견해가 있을 뿐입니다. 이것은 진리인식상의 차이일 뿐이지 소위 이단성 시비의 대상은 아닙니다. 사도성 문제로 인해 지방교회에 대한 이단시비가 있은 적도 없었고 지방교회가 오류에 빠질 일도 없습니다. 사도성이 성경의 무오성과 맞물려 있다는 박형제님의 주장도 두 견해 중 하나의 관점일 뿐입니다.


지방교회 내에서 사도성은 그 사역이 영적 생명의 성숙에서 오는 풍성한 생명 공급으로 그리스도의 몸을 건축하는지(엡 4:11-12, 고후 11장), 성경 66권에서 이미 완성된 사도들의 가르침(행2:42, 마28:20)과 일치된 가르침인지와 관련하여 이해되며, 저는 이러한 이해가 더 성경적이라고 믿습니다.


사도성에 관해 한가지만 더 말하고 싶습니다. 워치만 니 형제님이 함께 교회생활하던 형제들에 의해 6 년간이나 배척받은 적이 있었다는 박 형제님의 지적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그 6 년이라는 세월동안 니 형제님은 자신에게 영적 분량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또 다른 사역을 시작하지 않고 묵묵히 십자가 안에서 몸의 하나를 지켰습니다. 그 후 사도성 때문이 아니라 약간의 오해로 인해 니 형제님을 배척했던 형제들은 회개하고 워치만 니 형제님의 사역을 다시 받아들였습니다. 이것은 분열을 미워하고 몸의 하나를 소중하게 생각하는 사람들, 참으로 십자가로 자신을 부인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아는 사람들이나 체험할 수 있는 아름다운 간증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5) 소위 사후 제3의 훈련소 비판에 대하여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거듭난 사람들은 그리스도의 심판대(고후5:10) 앞에 섰을 때 상급의 많고 적음은 있을지언정 벌은 없다는 잘못된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즉 믿음의 목표인 혼의 구원(벧전1:9)에 대한 인식이 없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거듭난 다음에 십자가로 자신을 부인(마16:24)하고 생명이 성숙하는 길을 거부하거나 아니면 자아를 살찌우는 종교적 행위(빌3:2-6)에 빠져버립니다. 그러나 이러한 거듭난 믿는이들의 생전의 생활(일)은 그분의 심판날에 낱낱이 심판받고, 상 또는 손해(벌)를 받게 될 것입니다(고전3:10-15, 롬14:10-12). 성경은 구원받은 후 그리스도의 생명이 자라지 않은 사람들은 불을 통과해야 온전한 구원을 받을 것임을 경고하고 있습니다. 마태복음 25장의 두 사례도 같은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그리스도의 심판 후 <불을 통과하는 과정> 또는 <바깥 흑암에 내어 던져져 울며 이를 가는 과정>은 그것을 어떻게 칭하든지 성경이 말하고 있는 사실입니다. 또한 이것은 이미 하나님의 자녀된 자들의 생명의 성숙을 위한(막4:28-29) 하나님의 경륜적인 다루심이지 불신자가 가는 지옥이나 카톨릭의 연옥과는 무관합니다. 저는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자기 마음대로 말하고 행동하는 것은 이러한 진리에 대한 빛이 부족하기 때문이라고 봅니다.


(6) 위트니스 리 형제님이 주님 안에 안식한 후에 주의 회복의 역사에 관하여


전세계 지방교회들은 위트니스 리 형제님이 주님께 가신 뒤에 하나됨 안에서 오히려 더 활발하게 전진하고 있습니다. 이곳 미국에서는 위트니스 리 형제님의 라이프 스타디 육성 메시지(오디오 테입)가 미 전역에서 영어 방송 70개국, 스페인어 방송 98개국, 중국어 방송 20개국 등 188개 방송국에서 매일 또는 매주 30분씩 방송되고 있습니다. 또한 워치만 니와 위트니스 리 형제님들의 책자들은 미국과 유럽의 거의 모든 기독교 서점에서 대환영을 받고 있습니다.


두 형제님들의 사역은 듣는 사람의 귀나 즐겁게 해주는 말들을 선호하는 사람들을 위한 것은 아닙니다. 그것은 영적 생명의 성숙을 통해 그리스도의 몸을 건축함으로 하나님의 뜻(엡1:4-5)을 이루길 갈망하는 사람들을 위한 것입니다. 저는 주님이 온갖 우상과 누룩과 분열이 교회의 간증을 손상시키는 와중에서도 그분의 권익을 절대적으로 위하는 소수의 이기는 자들을 남겨두셨다고 믿습니다. 또한 그분은 친히 그분 자신의 교회를 보호하시고 보양하시며(엡5:29) 건축하심을 믿습니다(마16:18). 우리가 주님의 말씀하심에 절대적으로 순종할 수만 있다면 믿는 이들은 물방울이 만나면 하나 되듯이 자연스럽게 하나가 될 것입니다.


제가 이런 글을 쓴 목적은 박 형제님 본인은 물론 '지방교회 운동, 무엇이 문제인가'라는 박 형제님의 글을 읽었거나 앞으로 읽을 모든 분들에게 지방교회에 대해 공정한 관점을 제공하기 위한 것입니다. 이러한 단편적인 글에 더하여 지방교회에 대해 더 알고 싶으신 분들은 서울교회 홈페이지인 http://www.churchinseoul.or.kr/를 방문하거나 저의 E-Mail로 문의하실 수 있을 것입니다.


박 형제님, 혹시 제가 지금까지 너무 투박하게 말을 풀어 나감으로 표현상의 지나침이 있었다면 용서하십시오. 주님의 은혜가 늘 함께 하시기를 바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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