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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 7:39 ‘그영이 아직 계시지 않았다’(2)

 

3) ‘그영이 아직 계시지 않았다’ 해석 가지 견해

 

 

해당 본문(Spirit was not yet) 대한 해석은 크게  , 1) “구약 시대나 예수님 당시에도 성령은 있었으나 오순절 이후의 성령과는  정도에 있어서 차이’가 있다”고 보는 관점과 2) 어떤 특정시점 전에는 존재하지 않다가 특정시점 후에 존재하는 어떤 영을 가리킨다 보는 관점이 있습니다차례로 소개해 보겠습니다.

 

 

(1) 변종길 교수님 등의 견해

 

 

현재 고려신학 대학원에서 신약학을 가르치는 변종길 교수께서는  주제로 1992년에 네덜란드 깜뻔 개혁 신학대학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습니다그리고  논문은 ‘성령과 구속사' (개혁주의 신행협회, 2006)라는 제목으로 한국어로도 번역 출판되었습니다그런데 같은 깜뻔 신학대학에서 공부한 천안대학교 기독교학부 김병국 교수님은 자신의 논문 에서  논문 내용을 다룬  있습니다 김병국 교수께서는  교수님의 논문을 다음과 같이  가지로 요약했습니다.

(중략)

 

그리고  교수께서는 자신의 논문에서 “많은 주석가들은 (필자가  바로는 모든 주석가들은 부분을 ‘성령의 역사의 정도’의 차이로 해석한다”고 전제하고이어서   가지 요점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비평합니다.

 

 

첫째와 둘째의 지적은 성령의 역사의 정도 혹은  양태에 관한 것이다 오순절 이후의 성령의 역사는  이전의 역사와는 다르게 매우 강하고 독특할 것이라는 점이다그러나 이것은 39절에 대한 설명으로는 미흡하다“성령이 아직 저희에게 계시지 아니하시더라”라는 표현은 존재론적 차이를 말하는 것이지 어떤 정도나 양태의 차이를 말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셋째와 넷째 설명은 오순절 이후의 성령이  이전의 성령에 비해 어떤 존재론적인 차이가 있을 것임을 암시한다 차이의 핵심은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이다.( 논문집, 142).

 

 

(2) 앤드류 머레이 등의 견해

 

화란 개혁교회 총회장을 역임한  있고 그가  경건 서적이 국내에도 여러  번역 소개된  있는 앤드류 머레이도 요한복음 7:37-39 대하여 자신의 견해를 밝힌  있습니다 그는 자신의 저서인 ‘그리스도의 영’(the Spirit of Christ)(기독교문서 선교회, 1999)  5 ‘영광 받으신 예수님의 영’에서  주제를 다룹니다중요한 관련 부분들을 이곳에 소개드려 보겠습니다.

 

 

먼저 앤드류 머레이는 7:39 성경원문에 대해서는  ‘저희에게’라는 삽입문구를 뺴는 것이 오히려 원문을 바로 이해하는 비결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소개시 번역상의 미묘한 차이를 감안하여 영어원문과 저의 개인 번역을 함께 제시하겠습니다영어 원문은 Andrew Murray, The Spirit of Christ(C. L. C., 1985(1978 초판참조)

 

 

“The Holy Spirit was not yet; because Jesus was not yet glorified. The expression‎‍: the Spirit was not yet, has appeared strange, and so the word given has been inserted. But the expression‎‍, if accepted as it stands, may guide us into the true understanding of the real significance of the Spirit’s not coming until Jesus was glorified (pp.37-38).

 

 

"예수님께서 아직 영광을 받지 못하셔서 성령께서 아직 계시지 않았다그영께서 아직 계시지 않았다 라는 표현은 매우 기이해 보인다그래서 '저희에게라는 말이 삽입되었다그러나  표현은 원문 그대로 읽는 것이 예수님이 영광받으시고  후에 그영께서 임하시라는 말의 참된 의미를 바르게 이해하게  준다."(41p).

 

 

또한 앤드류 머레이는 7:39에서 언급된 영을 지금까지 존재하지 않았던 그의 표현을  빌리자면 “하나님-사람(神人)    하나님의 영이시자  사람의 영”으로 보고  분께서 예수님께서 영광받기 전에는  계셨다 라고 이해 했습니다아마도 그는 7:39 난제를 ‘정도의 문제’가 아닌 ‘존재의 문제’로 접근한 최초의 개혁 신학자로 보입니다.

 

 

We have seen that God has given a twofold revelation of himself: first as God in the Old Testament, then as Father in the New. We know how the Son, who had from eternity been with the Father, entered upon a new stage of existence when He became flesh. When returned to heaven, He was still only begotten Son of God, and yet not altogether the same. For He was now also, as Son of Man, the first begotten from the dead, clothed with that glorified humanity which He had perfected and sanctified for himself. Likewise, the Spirit of God poured out at Pentecost was indeed something new.” (p.38)

 

 

“우리는 하나님께서 자신을 이중적으로 계시하셨음을 본다먼저는 구약에서 하나님으로그리고 신약에서 아버지로 계시하신 것이다또한 우리는 영원부터 아버지와 함께 계셔  아들께서 육신되셨을  어떻게 새로운 존재의 단계에 들어가셨는지를 안다.  아들께서 하늘로 되돌아 가셨을  그분은 여전히 하나님의 독생자이셨지만예전과 같은 존재는 아니셨다왜냐하면 그분은 지금 또한 죽은 자들 중에 먼저 나신 인자로서 그분 자신을 위하여 온전케 되고 거룩케  영광스러운 인성을  입으셨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오순절에 부어지신 하나님의 영께서도 실상은  새로운 존재이셨다

 

 

When poured out at Pentecost, He came as the Spirit of the glorified Jesus, the Spirit of the incarnate, crucified and exalted Christ, the bearer and communicator to us not of the life of God such as, but of that as it had been interwoven into human nature in the person of Christ Jesus. It is in this capacity especially, that He bears the name of Holy Spirit, for it is as the indwelling one that God is holy.”(p.38)

 

 

“오순절에 부어지셨을  그분은 영광받으신 예수님의  육체가 되시고십자가에  박히시고높이 올려지신 그리스도의 영으로 임하셨다그분은 원래 그대로의 하나님의 생명이 아니라 이제는 그리스도 예수님의 인격 안에서 인간 본성과 서로 긴밀하게 결합된 하나님의 생명을 지니고 계시면서 우리에게 전달해 주는 분이 되신 것이다그분꼐서 성령이라는 이름을 가지시는 것은 특별히 이런 능력 지니게 되심에 의해서이다왜냐하면 내주하시는 그분께서 하나님으로서 거룩한 분이시기 때문이다.

 

 

And of this Spirit, as he dwelt in Jesus in the flesh and can dwell in us in the flesh too, it is distinctly and literally true; the Holy Spirit not yet. The Spirit of the glorified Jesus, the Son of man become the Son of God-He could not be until Jesus was glorified. This thought opens up to us further the reason why it is not the Spirit of God as such, but the Spirit of Jesus, that could be sent to dwell in us....”(P.38)

 

 

“그리고 육신을 입으신 예수님 안에 거하셨던 것처럼 육신을 입은 우리 안에도 거하실  있는  영에 관하여성령께서 아직 계시지 않았다고 하는 것은 분명히 글자 그대로 사실이다사람의 아들이 하나님의 아들이  분이신 영광 받으신 예수님의 영은 그분께서 영광받으시기 전까지는 계실  없었다. 이러한 사상은  보내심을 받아 우리 안에 거하시는 분이 단지 하나님의 영이 아니라 예수님의 영이신지의 이유를  고찰해 볼수 있는 길을 열어준다…”

 

 

And the Holy Spirit could come down as the Spirit of the God-man-most really the Spirit of God, and yet as truly the spirit of man. He could come down as the Spirit of the glorified Jesus to be in each one who believes in Jesus, the Spirit of His personal life and His personal presence, and at the same time the spirit of the personal life of believer.”(p. 40).

 

 

성령은 ‘하나님-사람(神人) 영’   하나님의 영이시자   사람의 영으로서 임하실  있었다. 그분은 영광받으신 예수의   그분의 인격적인 생명의 영이요 그분의 인격적인 임재이자 동시에 믿는 이의 인격적인 생명의 영으로 오셔서 예수님을 믿는  사람 안에 계실  있게 되셨다.

 

 

 발췌문들을 근거로 우리는 7:39 ‘그영(성령) 아직 계시지 않았다’ 라는 본문에 대한 앤드류 머레이의 관점을 다음  가지로 압축할  있을 것입니다.

 

 

(1) 앤드류 머레이는 7:39 ‘그영이 아직 계시지 않았다’를  예수님이 영광받으시기 전에는 <하나님-사람의 > 아직 계시지 않았다는 의미로 이해했다이것은 < 3 성령> 믿는 이들 안에  계셨다는 의미라고   변종길 교수의 주장과 차별화 된다.

 

 

(2) 그는 믿는 우리가 주님을 믿었을  받은 영이  ‘하나님-사람의 영’이라고 말한다.

 

 

(3) 그는   ‘하나님-사람의 영’을 간혹 ‘성령’이라고 불렀다. 그러나  의도가 무엇이었는지는 확실치 않다다만 7:39 본문을 ‘성령’으로 표시한 KJV 번역을 존중하되 성령(the Spirit)  바로  ‘하나님-사람의 영’(the Spirit of God and man)이다 라고 ‘해석’ 했을 수는 있다.

 

 

이어서 요한복음7:39 그영을 존재의 차원에서 접근한   명의 신학자인 S. H. Hooke   논문 The Spirit was not yet  부분 일부를 번역 소개 하겠습니다.

 

 

(자료출처영국 캠브리지 저어널  New Testament Studies 1963 7월호(vol.9) pp. 372-380.  http://journals.cambridge.org/action/displayIssue?jid=NTS&volumeId=9&issueId=04&iid=3339368# )

 

 

“바울의  가지 언급이 요한복음 7 39절의 명백한 역설을 이해하도록 빛을 비춰준다첫째는 고린도 전서 15 45절인데거기서 그는 창세기 2 7절을 염두에 두고  “마지막 아담은  혼이  것같이 마지막 아담은 생명주는 영이 되었다”고 함으로  창조와  창조를 대비 시킨다두번 째는 “지금 주님은 그영이시니”라고  고린도 후서 3 17절이다.

 

 

바울은 처음 언급에서 부활하신 주님께서 들어가셨던 삶의 양식(the mode of life) 창조의 일부가  믿는 이들 안으로 주어지실  있는(can be imparted) 분임을 선언한다이어서 그는  번째 언급에서 요한의 말처럼 예수께서 영광 받으시기 전까지는 가능하지 않았으나 지금은  창조 안에서 운행하실  있음을 단언한다.

 

 

우리는 이스라엘 역사 속에서 선지자들의 행동을 지시하시고 말씀을 불어 넣으시는 야훼의 산발적인 활동에 대해 말해 왔다그러나 사람의 아들께서 원래 계시던 하늘로 휴거되시고 마지막 아담이 생명주는 영이 되시기 전까지는  (the Spirit) 께서 믿는 이들 안에 들어 오셔서 그들의 생명이 되시고 또한 바울이 말한 것처럼 ‘예수의 생명이 우리의 죽을 육체에 나타나게 하려 함이라’(고후4:11)함과 같은  예수의 생명을 믿는이 안에 산출하는 일은 결코 있을  없었다그러므로 그영(the Spirit) 주어짐이 가능하기 전에신성한 경륜 안에서 예수님께서 영광 받으신 결과로 새로운 어떤 (a new thing) 존재하게 되었을 필요가 있었다.

 

 

(이하 부터는 영어원문과 개인번역을 함께 소개해 보겠습니다)

 

 

The Eternal had entered into Time and in the order of time-experience it could be said that the Incarnated Word has assumed a new form of existence in becoming a life-giving Spirit, and that, correspondingly, the Spirit had assumed a new mode of existence in virtue of which he could become the life by which the whole of the new creation lived with the life of him who is the beginning of the creation of God.(379-380)

 

 

영원하신 분이 시간 안으로 들어 오셨다그리고 시간-경험의 질서 안에서 그것은 이렇게 표현될  있다 육체가 되신 말씀께서 생명주는 영이 되심으로 새로운 존재 양식을 가지셨다같은 맥락에서 성령께서는 새로운 존재양식을 가지게 되셨다.그것에 의해 그분은  창조 전체가 하나님의 창조의 시작이신 (예수님) 생명을 지니고 살수 있도록  창조의 생명이 되실  있었다.

 

 

이상에서 보았듯이 S. H. 후크는 요한복음 7:39 “그영이 아직 계시지 않았다”를 고전 15:45 (생명주는 ), 고후3:17(주는 영이시니) 연관지어 설명합니다 그는 성육신 하신 말씀께서 (부활 생명 주는 영이 되셨고바로  영이 ‘새로운 존재 양태’로 믿는이들 안에서 예수의 생명이 되신 분임을 암시합니다. 이런 관점은  틀에서   앤드류 머레이의 견해와 같은 맥락이라고 할수 있습니다.

 

 

결론적으로,

 

 

요한복음 7:39 ‘그영이 아직 계시지 않았다’ 에서 언급된 영이 누구이신가 하는 문제는 바로  영이 주님을 믿을  “믿는 이들이 받을 영”이라는 점에서 주목할만 합니다.

 

 

지금까지는  영을 원문에 없는 ‘저희에게’(given)라는 말을 번역시 삽입한   3 성령께서 믿는 이들 안에  계신다는 의미로 이해해 왔습니다그러나 이런 견해는 듣기에는 그럴듯 하지만 사본 상의 근거가 희박합니다또한 이런 해석은  김병국 교수님의 지적처럼 ‘그영 (성령) 아직 계시지 않았다’는 본문이 ‘성령의 역사의 정도의 차이’가 아닌 ‘어떤 존재’가 없었다는 점을 전달하고 있다는 점을 간과하는 약점이 있습니다게다가  견해는 영이  계신 이유로 본문이 제시하고 있는 ‘예수께서 아직 영광을 받지 않은 것’에 대한 설명에 있어 설득력이 다소 떨어집니다.

 

 

따라서 우리는 이런 견해보다는 비록 우리의 천연적인 관념에는 생소한 듯하나 성경본문에 충실한  다른 해석에 귀를 기울여 볼만 합니다.

 

 

그것은 The Spirit was not yet (그영이 아직 계시지 않았다) 본문을 있는 그대로 읽어 여기서 사도 요한이 말하고 있는  영은 어떤 시점(예를 들어 예수께서 영광받으신 시점인 부활시점전에는 존재하지 않았다고 보는 것입니다그리고 그것을 부활  새롭게 존재하게  고전 15: 45 생명주는 영과 연관지어 설명하는 방식입니다이것은 철저하게 성경본문에 충실한 해석 이라는 점에서 추구하는 믿는 이들에게 매우 설득력 있게 다가오는 것이 사실입니다.

 

 

이런 전제가 옳다면우리는  7:39  영을 ‘하나님-사람(神人) 영’(복합적인 )으로  앤드류 머레이의 관점을 3 성령만의 내주로 보는 관점을 대치하는 대안으로 진지하게 고려해  근거를 가집니다또한 그것은 부활하신 그리스도 자신이신 생명주는 (고전15:45) 우리 안에 내주하시는 것이 됨으로 우리는 ‘내게 사는 것이 그리스도니’ (1:21)라고 고백했던 사도 바울과 동일한 믿음의 고백과 삶의 간증을 가질 기초를 소유하게 합니다거듭난 이후 우리의 믿음 생활은  순간 내가 아니요 우리 안에 내주하시는 그리스도꼐서 사시는  입니다.()

 

 

 

추신 구절은 ‘제 3격이신 성령 자체가 존재하지 않았다’ 거나 또는 ‘존재론적인 삼위일체 방면에 있어서  2(아들)  3(성령) 되셨다’는 주장 근거가   없습니다또한 제가 아는   곳에서 누구도 그런 주장을 하지 않습니다따라서  구절의 바른 의미를 함께 검토할  이런  가지 문제로  이상의  필요한 논란이 없기를 희망합니다아울러 위에서 다뤘던 우리가 영접한 그리스도와 보혜사 성령과의 관계소위 “안에”(in) 의미부활하신 예수님의 인성의 내주 여부 등은 여전히 추가 연구가 필요합니다.

 

 

 

  • 첫댓글 20.06.16 04:26

    성령이 내 안에 임하면
    하나님 아버지와 아들이 내 안에 있는것을
    성령의 감동으로 알려 주지요
    이러한 믿음은 사람이 연구해서 될 일이 아니고
    성령의 역사로 스스로 알게 되지요

    답글
  • 20.06.17 00:26

    오솔길따라 님의 글에 두손들고 박수로 적극 동의, 아멘입니다!

    언약면에서 하나님을 대적하는 쓰레기 인간들의 연구는
    하나님을 갈기 갈기 찟어 자기들의 입맛대로 주장합니다.

    성령의 임재와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아야 합니다.

    성령의 인도를 받는 자는 율법아래있지 않습니다.

    십계명, 모세율법이 폐하지 않았다는 자들이 율법아래있는 자들입니다!!!

    쓰레기 같은 신학자들의 서적을 불태우지 않으면, 답이 앖습니다.

    답글
  • 20.06.16 12:15


    주어를 틀렸습니다.

    하나님과 아들이 내 안에 있은 것이 아니고


    내가 그 안에 있어야 합니다.


    예수님을 내 안에 접어넣지 말고..


    내가 그 안에 들어가야 합니다

    디모데후서 1 : 9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사 거룩하신 부르심으로 부르심은 우리의 행위대로 하심이 아니요 오직 자기 뜻과 영원한 때 전부터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에게 주신 은혜대로 하심이라

    데살로니가후서 1 : 12
    우리 하나님과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대로 우리 주 예수의 이름이 너희 가운데서 영광을 얻으시고 너희도 그 안에서 영광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


    에베소서 2 : 22
    너희도 성령 안에서 하나님의 거하실 처소가 되기 위하여 예수 안에서 함께 지어져 가느니라


    에베소서 3 : 6
    이는 이방인들이 복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후사가 되고 함께 지체가 되고 함께 약속에 참여하는 자가 됨이라


    에베소서 3 : 11
    곧 영원부터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예정하신 뜻대로 하신 것이라


    에베소서 3 : 12
    우리가 그 안에서 그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담대함과 하나님께 당당히 나아감을 얻느니라


     

    답글
  • 20.06.16 12:17


    안에서라는 것은 몸 속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속해 있다 . 구속되었다.

    우리가 그 분에 있어야 하는 겁니다.

    내가 너희 안에 . 너희가 내 안에................ 함께


    이런 표현입니다.


    예수님을 내 속에 집어 넣지 말고

    예수님 안에 들어가세요..

     

    답글
  • 20.06.16 06:13

    귀한 글 질 읽었습니다.

    답글
  • 20.06.16 12:29

    쓰레기같은 주장입니다

    그 아들께서 하늘로 되돌아 가셨을 때 그분은 여전히 하나님의 독생자이셨지만, 예전과 같은 존재는 아니셨다. 왜냐하면 그분은 지금 또한 죽은 자들 중에 먼저 나신 인자로서 그분 자신을 위하여 온전케 되고 거룩케 된 영광스러운 인성을 옷 입으셨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오순절에 부어지신 하나님의 영께서도 실상은 새로운 존재이셨다


    이땅에서는 인성이지만

    하늘에서는 신성

    예수님이 승천하는 것에 대하여 영광을 받았다는 것은 하나님만이 영광을 받는 것이죠.?

    영광을 받으셨다는 거은 하나님의 신분으로 돌아가셨고

    그래서 하나님의 우편에 앉으시는 겁니다.

    보좌에 앉으시는 겁니다.

    하나님의 보좌..


    => 오순절에 부어지신 하나님의 영께서도 실상은 새로운 존재이셨다

    하나님의 영이 성령님이신데. 새로운 존재가 또 있어요?


    삼위일체가 아니고 사위일체가 되는 건가??







     

    답글
  • 20.06.16 12:55

    @나그네1004 글을 하나를 쓰더라도 이런 글 좀 써 보소.
    얼마나 깊고, 자세하고, 폭도 넓고 말이지. .
    그래야 설득력도 있고,
    영양가도 있지...

    안 그렇소?
    그래서 귀한 글이라고 했소이다.
    내용은 둘째 치고라도...
    정성과 땀이 보이쟎소?

    답글
  • 20.06.16 11:09

    고민과 함께 연구를 심도 있게 하셨네요.
    요7:39절은 성령님이 맞습니다. 복잡하게 생각할게 없습니다.
    주 예수님과 관련지어 볼 수 있는 성령의 이름과 호칭들이 있습니다. 아버지와 관련된 이름과 호칭이 있는거죠
    다음은 예수님과 관련된 성령님의 호칭들입니다.

    1. 그리스도의 영 - 롬 8:9; 벧전 1:11

    2. 그분의 아들의 영 - 갈 4:6

    3. 예수 그리스도의 영 - 빌 1:19

    답글
  • 20.06.16 12:19



    보혜사성령이 아들의영?
    어머니가 아들이라구?

    성령훼방죄가 두렵지도 않은가?

    한가정에도 아버지 어머니 아들 딸
    이있는거여~

    하늘에계신 하나님의 형상대로
    만들어진 피조물이 남자와 여자임

    "성령으로 난것은 영이니라"

    성령께서 낳으신 영이 아들의영임~

    그러므로 보혜사 성령은 아들이
    될수없음

    아들을 증거하시는 분이 보혜사신데
    보혜사가 아들이 된다는것이
    상식적으로 말이 안되잔소?

    안그려?

    현재까지 밝혀진 바로는 개교회
    대부분이 사이비이단이며
    큰성바빌론입니다


     

    답글
  • 20.06.16 12:48

    @주님내안에 님은 자면서도 아들?... 어머니?...그럼 하나님 아내?
    아니니 아니지... Then what?
    what?...what?
    그러면서 관계 따지고 촌수 따지면서 잠꼬대하실 듯...ㅋㅋ



     

    답글
  • 20.06.16 13:32

    @갈렙
    사이비 바알예언자들은 죽고나면
    바로 후회할 겁니다

    프리메이슨 선교사들이 세운
    개교회들은 열매가 없습니다

    가라지씨를 받았기 때문입니다

    거듭남이 뭔지 부활이뭔지 몰라~
    사람들이만든 삼위일체 교리를 믿어~
    하나님말씀은 듣기싫어 ~

    자기들 배를위해 십일조 끌어들이고
    여자목사를세워 ~

    교인하나 만들려고 바다건너가서
    기어코 지옥자식으로 만드는자들

    서기관과 바리세인들이 바로
    여러분들입니다~



     

    답글
  • 20.06.16 12:54


    조금 복잡하게 보이는데요,
    성령은 아버지의 영이 근원입니다.
    아버지께로부터 나왔다는 것입니다.

    당연히 성령님은 한 분이구요,
    성령님은 보내신 분의 뜻을 따라 행하시기에
    구약에서는 <아버지의 영>으로 계셨구요,

    신약에서는 아버지께서 아들에게 위임했다고
    보는 것이 요14-16장의 큰 흐름과 일치합니다.

    또한 계시록 2-5장에 나오는 성령의 출처 역시
    하나님의 영으로 예수님의 권세아래 존재합니다.

    논란이 되는 요7:39절의 성령은,
    아직 구속이 완료되지 않는 상태에서
    아버지께서 아들에게 위임하지 않았다는
    뜻으로 간단하게 해석하고 싶습니다.

    수고하셨습니다.

    답글
  • 20.06.16 13:37


    뭐도 모르면서 혼자 결론내는 센스는
    가히 일품이네~

    그럼 또다른 보혜사는 뭘까요?

    또다른 아버지야?..

    앞에서는 아들의영이라며?

    앙태론에다가 각종 잡종이론을
    막섞어서 짬뽕을 만드네?

    섞는거 좋아하는 여자있는디~
    음녀이세벨이라구 ~




     

    답글
  • 20.06.16 13:57

    @오은환
    신학자들이 쓴 소설책들 불로
    태워버리시고~

    다시 시작하길 바람니다~

    회개하시고 진리의성령이 가르쳐주신
    진리안에 거하길 바람니다 ~

    참고로 한국개교회는 진리의 성령이
    안계시기 때문에 교단이 여러개로
    나뉘었고 믿음도 교단마다
    틀린것입니다

     

    답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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