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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방교회 측이 사용하는 신언에 관하여



청신호님과의 공개적인 질문 답변이 이 지면을 통해 이뤄지고 있습니다. 먼저는 몇 차례에 걸쳐 삼위일체 관련 교제가 있었습니다. 완전한 공감대는 아니더라도 최소한 지방교회 측이 삼위일체와 관련하여 ‘무엇’을 그리고 ‘왜’ 그렇게 말하고 있는지는 청신호님께서 이해하신 것으로 보입니다. 이번에는 다음 주제인 ‘신언’에 관한 아래 질문에 대해 간략하게 정리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청신호님: “나중에 기회가 되면 신언이라는 말이 보편타당하고 적당한지 왜 굳이 그렇게 번역을 했는지 설명 부탁 드립니다.”



새 예루살렘: 청신호 님은 ‘신언’이라는 용어를 사용하는 특별한 이유가 있는지를 질문하신 것으로 이해하고, 그에 대한 답변을 먼저 드리겠습니다. 그 후에 왜 지방교회 측이 교계의 일반적 실행인 <1인 목회자 설교 형태>가 아니고 <가능하면 참석자들 모두가 ‘설교’(신언)하는 실행>을 하는지에 대해 간략히 해명드리고 싶습니다. 왜냐하면 지방교회 측 예배(집회)를 처음 접하는 분들은 이러한 예배 형태가 흔히 주변에서 보아오던 것과 완전히 다른 모습을 보고 약간의 이질적인 느낌을 받는 경우가 종종 있기 때문입니다.



1. 신약성경 회복역(한글)이 개역 성경의 ‘예언’을 ‘신언’으로 번역한 이유:


간단히 말씀드리면, 한글 회복역 성경이 개역 성경과 달리 ‘예언’을 ‘신언’으로 고쳐 번역한 일차적인 이유는 해당 단어를 중국어 회복역 성경이 ‘申言’이라고 번역한 것을 한국어로 음역했기 때문입니다.



2. 고전 14장에 나오는 ‘프롭헤튜오’(4395)에 대한 “보편타당한” 번역은 무엇인가?


1) 성경 본문: 먼저 이 단어는 현재 우리가 검토하고자 하는 고린도전서 14장에서만 9회(고전 14:1, 3-6, 22, 24, 31, 39) 사용되었습니다. 관련 본문을 차례로 소개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사랑을 추구하십시오. ... 영적인 은사들을 간절히 사모하되, 특별히 신언을 하도록 하십시오(1).


-그러나 신언하는 사람은 사람들에게 건축하고 격려하며 위로하는 말을 합니다(3) 다른 언어(방언)로 말하는 사람은 자신을 건축하지만, 신언하는 사람은 교회를 건축합니다(4). 나는 여러분 모두가 다른 언어들로 말하기를 원하지만, 더 원하는 것은 신언하는 것입니다. … 신언하는 사람이 다른 언어들로 말하는 사람보다 더 큰 것입니다(5). 그러므로 형제님들, 내가 여러분에게 가서 단지 다른 언어들로 말하고 계시나 지식이나 신언이나 가르침으로 말하지 않는다면, 여러분에게 무슨 유익이 되겠습니까?(6)


-그러나 신언은 믿지 않는 사람들을 위한 표적이 아니라, 믿는 사람들을 위한 표적입니다(22).


-그러나 모든 사람이 신언하고 있는데, 어떤 믿지 않는 사람이… 들어온다면, 그는 모든 사람에게 책망을 받고 모든 사람에게 판단을 받아 그 마음에 숨은 것이 드러나게 됩니다(24-25 상).


-왜냐하면 여러분 모두가 한 사람씩 신언할 수 있는데, 이렇게 함으로써 모든 사람이 배우고 모든 사람이 격려를 받게 되기 때문입니다(31).


-그러므로 나의 형제님들, 신언하기를 간절히 사모하십시오(39).


2) 다른 한글 번역본들의 번역 사례: 아래에서 보듯이 위 ‘프롭헤튜오’(4395)를 대부분의 한글 번역본들은 ‘예언’으로 번역했습니다. 예외적으로 ‘대언’ 혹은 ‘말씀을 받아서 전하는 사람’ 그리고 ‘신언’으로 번역했습니다.


-개역, 개정 개역, 새번역, 현대인의 성경, 한글 킹제임스: 예언


-킹제임스 흠정역: 대언


-공동번역: 말씀을 받아서 전하는 사람


-신약성경 회복역: 신언(申言)


이처럼 ‘예언’만이 아니라 다르게 번역한 역본들이 존재하는 것은 개역 성경과 다른 그 자체가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니며, 영어 성경처럼 한글 성경들에도 번역의 다양성이 허용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습니다.


3) 각 번역본들에 대한 타당성 검토


(1) 개역 성경을 비롯한 여러 성경이 이 단어를 예언이라고 번역한 것은 해당 헬라어 단어가 ‘전에’ 혹은 ‘앞에’라는 의미를 가진 ‘프로’(4253)와 ‘말을 하다’라는 뜻을 가진 ‘훼미(5346)의 합성어이므로 ‘미리 말한다’는 의미의 한자어인 ‘예언’(豫言)으로 번역한 것은 타당한 근거를 갖습니다.


다만, 고린도전서 14장에서의 용례는 물론이고, 구약의 선지서인 이사야서나 예레미야서가 글자 그대로 단지 장래 일을 미리 말한 내용만이 아니라 그렇지 않은 부분도 상당히 많으므로 독자들에게 의미 전달에 있어서 혼란을 줄 여지가 있습니다. 실제로 한국어를 말하는 사람들에게 ‘예언’의 의미는 ‘2020년에 한국에 전쟁이 난다더라’ 혹은 예전의 다미 선교회가 앞으로 다가올 특정 날짜로 주님의 재림을 예언한 것처럼 주로 장래 일을 미리 말하는 것으로 굳어져 있지요. 최근에 한국교계에서 문제가 되고 있는 소위 신사도 운동의 예언 부분도 이러한 연장에서 오는 일종의 후유증일 수 있습니다.


뒤에서 다루겠지만 고린도전서 14장이 말하는 ‘프롭헤튜오’(4395)가 꼭 장래 일을 미리 말하는 것이 아님은 분명합니다. 따라서 이처럼 오해될 수 있는 번역은 보다 나은 번역이 있다면 재고할 여지가 있습니다. 이 점은 한국 교계에서 존경 받는 주경 신학자였던 박윤선 박사의 아래 자료에서도 확인됩니다.


"예언이라는 말에 대해 오늘날 많은 신자들이 오해하고 있다. ... 이 말의 헬라 원어를 바로 번역하자면 '대신 말하는 것' 즉 '대언'이다. ... 출애굽기 7장1절에서 보면,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시기를, "네 형 아론은 네 대언자가 되리니"란 말씀이 있는데 아론은 모세를 대신하여 말하는 대변자라는 것이다. …" 교회시대의 예언에 대해 잠깐 생각해 보자! 사도시대 이후, 성령님의 대언집인 성경이 완성된 이후의 시대가 교회시대인데, 이 시대의 대언 사역은 성경을 풀어 설교하는 것이다"(옥한흠 편집, 현대교회와 성령운동, 도서출판 엠마오, 1992, 65-66, 75쪽)."


(2) 킹제임스 흠정역(정동수 역)이 이 단어를 대언이라고 번역한 것도 일면 타당한 면이 있습니다. 왜냐하면 출애굽기 7장에서 “네 형 아론은 네 대언자가 되리니”(1절) 라고 한 것은 대언자인 아론은 자기 말이 아니라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하신 그 말을 모세로부터 들어서 백성에게 전달한 말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대언’은 그 근원이 여호와 하나님이심을 상기시켜 주는 면에서는 좋은 번역입니다.


한 가지 흠은 이 번역의 장점이 곧 단점이 된 것인데, 고린도전서 14장이 말하는 ‘신언’은 구약의 경우처럼 수동성만 있는 것이 아니라 말하는 사람 본인의 적극적인 추구와 준비의 필요성을 내포한 개념인데 ‘대언’은 이 개념을 충분히 담아내지 못하고 있습니다. 즉 고린도전서 14장은 “대언하기를사모하라”(desire...that ye may prophesy)(1절)고 했고, “너희(교회 구성원)가 다 한 사람씩 대언해야 하기 때문이다”(31절)하고 말하고 있는 것이 그 근거입니다.


(3) 공동번역말씀을 받아서 전하는 사람으로 번역한 것은 위 정동수 역이 사용한 ‘대언’을 한글로 풀어 표현한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이 역시 ‘대언’이 갖는 수동성의 한계를 넘기 어려워 보입니다.


(4) 지방교회 측의 신언(申言)의 의미: 일단 한자어 그대로는 펼 ‘신’ 말씀 ‘언’이니까 ‘말씀을 편다’라는 뜻입니다.


회복역 성경 고린도전서 14장 1절 해당 각주는 “신언하는 것은 주님을 위해 말하고 주님을 말해 내는 것, 즉 그리스도를 사람들에게 공급하는 것으로서 교회 집회의 주된 요소이다. 따라서 신언하려면 신성한 생명이 신언의 내용으로 채워져야 한다. 사랑은 신성한 생명을 체험하는 가장 뛰어난 길이며, 교회 건축을 위해 신성한 생명을 신언의 은사의 내용이 되게 하는 가장 뛰어난 길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사랑을 추구해야 할 뿐 아니라 더 큰 이 은사를 간절히 사모해야 한다.”고 되어 있습니다. 4절의 해당 각주도 유사하게 “신언하는 것, 곧 주님을 말해 내는 것은 성도들 개인을 건축할 뿐 아니라 교회를 건축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참고로 위트니스 리는 신언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신언하는 것은 주님을 위해 말하고 주님을 말해내고 주님을 다른 사람들 안으로 말하는 것, 다시 말해 그리스도를 사람들의 존재 안으로 사역하는 것이다. 이것은 그리스도의 분배이다. …신언하는 것은 하나님을 위해 말하고 하나님의 신탁(oracle)을 갖는 것이다. … 고린도 전서 14장에서 있는 신언은 예견(예언)의 의미를 갖고 있지 않다. …신언하는 것은 신성하게 말하는 것이며, 하나님과 관계된 무언가를 말하는 것이며, 하나님에 속한 무언가를 말하는 것이며, 하나님을 말해내는 것이다. 신언하는 것은 그리스도를 다른 사람들 안으로 말해내는 것이다.”(위트니스 리, 교회건축을 위한 뛰어난 은사, 한국복음서원, 1990, 29-30쪽).


(5) 위 내용들을 토대로 종합적인 평가를 하자면, 개역 성경의 ‘예언’은 원문에는 충실한 번역이긴 하나, 예언(장래 일을 미리 말하다)이 통상적으로 전달하는 개념이 고린도전서 14장이 말하는 ‘프롭헤튜오’(4395)의 바른 의미를 전달하기에는 한계가 있는 단점이 있습니다. 또한 흠정역과 공동번역의 ‘대언’ 혹은 ‘말씀을 받아 전하는 사람’은 출애굽기의 아론의 예에서처럼 하나님 자신이 말씀의 근원이심을 알리는 장점은 있으나, 이처럼 수동적인 면이 강조되다 보면 고린도전서 14장이 전달하는, 말하는 사람 본인의 능동성 그리고 말씀 추구와 준비가 필요한 방면을 담을 수 없는 약점이 있습니다.


반면에 ‘말씀을 펼친다’ 혹은 ‘(말씀이신) 그리스도를 다른 이 안으로 말해 낸다 또는 분배한다’는 의미로 쓰여지는 신언은 위 ‘예언’ ‘대언’(말씀을 받아서 전함)의 한계를 극복할 수 있어 하나의 대안이 될 수 있습니다.


특히 (방언은 자기를 세우지만), 사람이 그리스도를 생명으로 말해 내는 것을 의미하는 “신언이 교회를 건축한다”(고전 14:4)는 말씀은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건축하겠다’(마 16:18),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 함이라’(요 10:10)와 같은 말씀이 구체적으로는 신언하는 자들을 통해서 성취 된다는 사실을 밝혀주는 놀라운 구절입니다(신언 즉 ‘προφητεύω’의 원문이 가지는 다양한 의미에 대해서는 https://biblehub.com/greek/4395.htm 를 참조).



3. 지방교회 측이 1인 설교를 의지하지 않고 모든 성도들이 신언하는 집회형태를 취하는 이유


거의 모든 지방교회들이 주일 예배를 기존의 다수의 실행처럼 1인 설교자에 의지하지 않고 구성원들 모두가 자신들이 추구하여 준비한 말씀을 가지고 와서(물론 전체 주제와 개요가 주어짐) 약 1-3분 정도씩 말하는 식으로 실행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매주 특정 설교자 한 사람이 동일한 청중을 향해 설교하는 실행이 신약 성경에는 발견되지 않는것이 일차적인 이유입니다(사도행전 20:7-12의 경우는 “바울은 그 이틑날 떠나야 했으므로”라는 말씀이 오늘날의 담임 목사 설교와 다름을 말해 줌).


그러나 더 큰 이유는 성경의 모든 말씀들은 이 땅에서 성취되어야 하는데, 특히 모든 이들이 신언하여 교회를 건축한다는 말씀(고전 14:4, 26, 31)이 그러합니다. 워치만 니는 1937년에 이것을 처음 보았고, 1948년에 가진 자체 훈련에서는 “교회 집회에서 한 사람이 말하고 나머지 사람이 듣는 실행을 우리가 더 지속할 필요가 없다는 것을 더욱 강하게 강조”했습니다(위트니스 리, 교회건축을 위한 뛰어난 은사, 28쪽).


그러나 마땅한 대안이 없어서 기존의 실행을 그대로 이어 오다가 현재와 같은 대전환을 가지게 된 것은 1980년 대 초반입니다. 그로부터 약 30이 지난 현재는 밖의 형식에 있어서는 전 세계 거의 모든 지방교회들이 “여러분 모두가 한 사람씩 신언할 수 있는데, 이렇게 함으로써 모든 사람이 배우고 모든 사람이 격려를 받게 되기 때문입니다(For you can all prophesy one by one that all may learn and all may be encouraged)라는 말씀을 실천하고 있습니다(고전 14:31).


그러나 위와 같이 비록 형식의 전환은 이뤘지만 신언의 내용에 있어서는 아직도 더 온전케 되어야 할 부분이 많습니다. 따라서 각지 지방교회 형편에 따라 성도들을 신언에 있어서 온전케 하는 구체적인 자료들을 제공하고 있는데, 그 중 한 책자에 소개된 내용의 일부를 소개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신언의 몇 가지 첨가된 원칙(XV을 보라)


1. 그리스도를 우리의 신언의 중심과 요소로 삼음으로써
2. 모든 말을 성경 구절을 근거로 삼아 하기를 힘씀으로써
3. 즉각적이고도 신선한 빛비춤과 이상과 구변을 앙망함으로써
4. 우리의 말함 안에서 주님의 말씀하심을 신뢰함으로써
5. 주님의 기름부음을 따름으로써
6. 그 영으로 강건해짐으로써
7. 적절한 시간에 신언할 준비를 함으로써
8. 다른 사람이 신언하기를 마치기를 기다림으로써
9. 집회의 흐름과 분위기를 주의하기를 힘씀으로써
10. 좋은 연결과 합당한 순서를 지킴으로써
11. 말하는 동안 내내 영을 사용함으로써
12. 너무 크거나 작게 말하지 않음으로써
13. 너무 늦거나 빠르게 말하지 않음으로써
14. 긴 말을 피함으로써-다른 사람이 말할 시간을 남겨 줌
15. 모든 단어를 정확하게 말함으로써
16. 세속적인 이야기나 예화나 비유를 언급하기를 피함으로써
17. 성경적이라 하더라도 단지 교리를 말하기를 피함으로써
18. 성경에 대한 자유롭고 그릇된 해석을 피함으로써
19. 영적인 무게가 없는 책에서 인용하기를 피함으로써
20. 어떤 천연적인 어떤 것도 말하기를 피함으로써
21. 다른 사람들과 다투거나 경쟁하기를 피함으로써
22. 다른 사람들을 들추어내기를 피함으로써
23. 화내면서 말하기를 피함으로써
24. 어떤 종류의 논쟁이나 다툼이나 다른 사람의 말을 경시하기를 피함으로써
25. 가능한 다른 사람의 이름을 언급하기를 피함으로써


(위트니스 리, 교회집회에서 신언함, 한국복음서원, 58-60쪽).



결론적으로, 고린도전서 14장이 말하는 ‘프롭헤튜오’(4395) 개념은 이것을 통해 마태복음 16장에서 주님께서 말씀하신 교회가 건축이 되고(18절), 성도들이 배우고, 격려받고, 위로받고 때로는 책망받도록 빛과 생명이신 그리스도를 말씀 안에 담아 말해내는 것이어야 합니다. 또한 이것은 구약에서 당나귀가 사람의 말을 하는 것처럼 외부로부터 일방적이고 기적적으로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말하는 본인이 사모하고 준비하는 적극적이고 능동적인 방면이 내포된 개념입니다. 이러한 전후 문맥을 고려한 개념으로 개역 성경의 ‘예언’, 흠정역과 공동번역의 ‘대언’(말씀을 받아 말함)은 한계가 있기에, 신약성경 회복역은 <말씀을 펼친다> 혹은 <‘말씀이신 그리스도’(계 19:13)를 말해 낸다>는 의미로 ‘신언’(申言)이라는 용어를 쓰고 있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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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새예루살렘 2018.11.07 12:09
    고전 14장이 말하는 것처럼 모든 성도들이 주일 예배 설교를 준비해 오는 실행이 정착되면 담임 목사님들이 매주 주일 설교를 준비해야 하는 짐이 덜어질 수 있습니다.

    아울러 성도들도 귀만 가지고 목사님 설교를 통해 소위 은혜 받으러 가는 수동적인 입장에서 벗어나 성경 말씀을 직접 추구하고 기도로 신언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온전케 될 기회를 얻게 될 것입니다.

    이것은 결국 말틴 루터가 말했던 만인제사장 제도(벧전 2: 9)를 실제화 하는 결과를 가져올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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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새예루살렘 2018.11.07 12:19

    오해를 피하기 위하여 한 가지 밝힐 것은 소위 지방 교회들 안에도 한 사람이 말하는 집회가 아주 없는 것은 아니라는 점입니다.

    예를 들어, 매주 수요일에 있는 애나하임 전시간 훈련 센타 수업은 위트니스 리의 동역자들이 전하는데, 누구나 들을 수 있도록 개방되어 있고 비디오 테입으로 만들어져 전 세계 지방 교회들이 시청 가능합니다. 1년에 두번 씩 있는 여름 겨울 특별 집회의 경우에도 여러 동역자들이 한 사람이 1시간 이상 씩 돌아가면서 메시지를 전하는 식으로 진행됩니다. 이처럼 1인이 일방통행 식으로 메시지를 전하는 집회 방식을 <사역 집회>라고 부릅니다. 사도행전 20장에서 바울이 한밤중까지 전했던 집회는 일종의 사역집회에 해당합니다.


    그외에 매 주일 집회를 신언의 방식으로 한 사람씩 말하여 상호성이 있는 집회를 <교회 집회>라고 부릅니다. 초기 교회에서 각 가정에서 매주 혹은 매일 모였던 모임은 이러한 상호성이 있는 집회였습니다. 그렇지 않고 지금처럼 베드로 야보고 등 소수 사역자가 집집마다 모였던 모임에 가서 설교를 해야 했다면 수 만 명의 성도가 있던 예루살렘에 있는 교회는 지금과 같은 1인 설교에 의존하는 방식은 구조적으로 불가능 합니다. 대신에 각 성도들이 성만찬과 함께 사도들의 가르침과 교통에 근거하여 자신이 누리고 체험한 그리스도를 분량껏 말하는 식의 말씀 교제가 있고 또 기도가 있는 식의 주일 예배를 드린 것입니다(행 2: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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