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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에서 계속 이어지는 답변입니다.


청신호:
“성경은 계속해서 우리에게 하나님이 삼이일(三而一)이심을 보여 준다. 하나님은 과거에 육신을 입고 그리스도가 되셨다. 이제 그리스도는 성령을 입고 있다. 하나님,그리스도,  성령은 모두 한 분이다. 육신을 입은 그리스도는 여러 면으로 제한을 받았지만 성령을 입은 그리스도는 지금 어디에든지 계신다. 290쪽


여기서는  육신을 입지 않으신 성부 하나님이 계시는 점이 흐려져 있습니다.  성부하나님은 육신을 안 입으셨는데 마치 삼위 하나님 전부가 육신을 입으시고, 삼위 전부가 성령이 되신 듯, 즉 일위 일체처럼 묘사되어 있다고 보여 집니다.


가령 내가 당신에게 이런 말을 한다 하자.


어떤 사람이 시청 앞에서 방금 택시를 세웠다. 는 운전사에게 오 달러를 지불하고 그를 이곳까지 데려와 달라고 했다. 는 도착해서 방으로 들어와 여러분 모두가 여기 앉아 있는 것을 보고 말씀을 전하기 시작했다.”  그러면 그와 나는 무슨 관계인가? 말할 것도 없이 그가 나이고, 내가 그이다. 단지 같은 분을 다른 방법으로 표현한 것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요 14:18절에 있는 “나”는 요 14:17절의 ‘저’ 와 같은 분이다. 주님은 아버지에게 구하고, 아버지는 보혜사를 여러분 가운데 보낼 것이다. 성령,곧  이 보혜사는 여러분 안에 거할 그리스도 자신이다. 296쪽


아들 하나님과 성령 하나님의 구분 없이 아들이 부활후에는 성령이 되셨다고 하는 의미 같습니다. 아닌지요? 이것은 아들과 성령님의 인격을 하나로 보는 것 아닙니까?


언젠가 나는 그리스도가 성령 안에 있는 것에 관하여 개봉에 있는 한 친구와 이야기를 했다. 그때 우연히 내가 아는 외국인 여자가 나를 찾아왔다. 그녀는 나에게 인사를 하고 나와 악수를 하려고 장갑을 벗으려 했다. 나는 그녀를 말리면서, “장갑을 벗지 않아도 괜찮아요.”라고 발했다. 나는 장갑을 끼고 있는 그녀의 손을 잡고 몸을 돌이켜 친구에게 이렇게 물었다. “내가 장갑을 잡고 있는 건가, 손을 잡고 있는 건가? 자네는 내가 이분의 장갑을 쥐고 있다고 말할지 모르지만 사실은 이분의 손을 잡고 있는 걸세. 그리스도와 성령의 관계는 바로 이와 똑같은 것일세. 자네가 밖으로 성령을 쥐고 있을 때 안으로는 그리스도를 소유하고 있는 것이네. 성령을 영접하는 것은 곧 그리스도를 영접하는 것일세.” 297쪽


그리스도와 성령은 분리할 수 없는 하나이다. 성령은 예수 안에 있고 예수는 성령 안에 있다. 298쪽


그리스도가 우리에게 성령으로 오셨다....이제 그리스도는 영의 형태를 취하셨다. 299


워치만 니 선생님은 성자 그리스도께서 영의 형태를 취하신 모습이 곧 성령이다라는 설명 같습니다. “



새예루살렘: 이번 역시 총괄적인 해명을 드린 후, 구체적인 질문 항목들에 대해서는 워치만 니 책자 전후문맥을 감안하면서 설명을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첫째, 과연 어느 위격이 육신을 입으신 것인가? 하는 문제에 대해 워치만 니와 청신호 님 사이에 약간의 견해 차이가 있는 것이 이런 쟁점을 야기시키는 것으로 생각됩니다. 과연 성부는 육신을 입으신 성자와 분리되어 저 하늘에만 남아 계시고 지상 사역 시의 아들 하나님 안에는 안 계셨는가 하는 부분은 심각한 재고의 여지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성경에서 육신을 입으신 주체는 당연히 아들 하나님이시지만(갈 4:4), 이 제 2격 성자는 성부와 성령이 구별되나 분리되지 않게 상호내주 하시는 온전한 하나님(다른 두 위격들이 제외된 1/3 하나님이 아니라)이시라는 것이 성경의 기록이자 사상이기 때문입니다. 이런 이유로 로레인 뵈트너 같은 개혁 신학자들도 ‘마태복음 6장의 주기도문에 나오는 하늘에 계신 아버지는 배타적으로 제 1격만을 가리키지 않는다. 삼일 하나님이 여기서의 우리의 아버지이시다’라고 말한 것이지요.


성부께서 성자와 상호내주 하심으로 두 위격들은 심지어 성육신하실 때나 그 이후로도 각각 분리되어 한 분은 저 하늘에 다른 한 분은 이 땅에 계신 것이 아니라 영원히 서로 안에 거하신다는 것을 전제로 말씀하고 있는 성경 본문들을 일부만 소개드리면 다음과 같습니다.


1) 지상 사역 시 예수님께서 빌립에게, “내가 아버지 안에 있고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신다”(요14:10-11)고 말씀하신 것
2) 예수님께서 바리새인들 그리고 그분의 제자들에게 “내가 혼자 있는 것이 아니라 나를 보내신 아버지께서 나와 함께 계신다”고 세 번이나 말씀하신 것(요 8:16, 29, 16:32).
3) 누구든지 예수님을 사랑하면 “우리(예수님과 아버지)가 그에게 가서 그와 함께 거처를 정할 것”이라고 말씀하신 것(요 14:23)
4) “아들을 부인하는 사람마다 아버지 또한 없으며, 아들을 시인하는 사람은 아버지 또한 있다”고 말씀하신 것(요일 2:23).
5) 그날(부활의 날)에는 “내가 어비지 안에 있고, 여러분이 내 안에 있으며, 내가 여러분 안에 있는 것을 여러분이 알 것이다”라고 말씀하신 것(요 14:20).
6) 데살로니가 사람들의 교회가 “하나님 아버지 안에 와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which is in God the Father and in the Lord Jesus) 있다”고 말씀한 것(살전 1:1)


위와 같은 본문들은 개혁 신학처럼 성부를 저 멀리 하늘에 따로 계시게 하는 교리로는 이해하기도 또 설명하기도 쉽지 않은 구절들입니다. 그러다 보니 뒤에서 보겠지만 요한복음 14장 본문이 말하고 있는 것을 심각하게 왜곡시키는 결과를 빚기도 하지요.


둘째, 거듭 말씀드리지만 워치만 니와 위트니스 리 글에서 쓰인 개별 위격적 표현(하나님, 그리스도, 성령 등)은 해당 위격을 가리키면서도 동시에 다른 두 위격들이 포함된 온전한 하나님을 의미한다는 점을 다시 한번 상기시켜 드리고 싶습니다. 따라서 이런 상황에서는 소위 1격이 2격이 되어 더 이상 1격은 존재하지 않고, 또 2격은 3격이 되어 더 이상 1, 2격은 존재하지 않고 오직 3격만 남게 되는 전형적인 양태론 공식은 전혀 해당되지도 않고 그런 의미가 결코 아니라는 점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이제 이 두 가지 기본 전제를 토대로 구체적인 지적 사항들에 대해 해명을 드려보도록 하겠습니다.


청신호: “성경은 계속해서 우리에게 하나님이 삼이일(三而一)이심을 보여 준다. 하나님은 과거에 육신을 입고 그리스도가 되셨다. 이제 그리스도는 성령을 입고 있다. 하나님,그리스도,  성령은 모두 한 분이다. 육신을 입은 그리스도는 여러 면으로 제한을 받았지만 성령을 입은 그리스도는 지금 어디에든지 계신다.” 290쪽

성부하나님은 육신을 안 입으셨는데 마치 삼위 하나님 전부가 육신을 입으시고, 삼위 전부가 성령이 되신 듯, 즉 일위 일체처럼 묘사되어 있다고 보여 집니다.”



새 예루살렘: 위에서 설명드린 것처럼, 지상 사역 시 아들 하나님 안에는 성부 하나님도 계셨습니다. 두 위격이 각각 한 분은 저 하늘에 남아 계시고 다른 한 분만 이 땅에 육신을 입고 계신 것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주 예수님은 “나를 보내신 아버지(경륜적으로 보내신 분과 보냄을 받은 분이 각각 구별됨)가 나와 함께 계신다(삼위는 구별은 되시지만 어떤 상황에 의해서도 각각 분리되어 계실 수가 없음)”(요8:16)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더 놀라운 것은 성자 하나님께서 지상에 계시는 그 순간에도 그분은 아버지 품 속에 계시고(요1:18 동사 시제가 현재임. 즉 품속에 계셨던(was)이 아니라 품속에 계신(is) 임) 또한 하늘에도 계십니다(요3:13, 킹제임스 성경은 ‘하늘에서 내려온 자 곧 하늘에 있는 사람의 아들…even the Son of man which is in heaven)이라고 말함. 그러나 개역 성경에는 which is in heaven이 생략됨).


그렇다고 이것을 일위일체라고 말하면 곤란합니다. 왜냐하면 성부가 성자가 되고 성자가 성령이 되어 한 위격만 계신 것이 아니라, <구별되나 분리되지 않으시는 성부, 성자, 성령> 즉 한 신격(일위(一位)가 아니라)이 구원의 경륜을 거치신 과정이기 때문입니다. 물론 이런 설명이 한국에서 개혁신학을 공부하신 분들에게는 매우 낯설고 이질적으로 들리실 수 있음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이 성경이 말하고 있는 삼위일체이고, 이런 관점을 가져야 비로소 성경 여러 곳의 난해 구절들이 풀립니다 특히 그리스도의 내주와 지금 우리 안에 사시는 그 그리스도를 전파하여 각 사람을 온전케 하고, 그분 자신으로 충만된 몸된 교회를 세우는, 사도 바울이 전한 신약 경륜의 핵심 내용이 우리의 체험이 될 수 있습니다(골 1:27-29, 엡 1:23).


거듭 말씀드리지만 우리 안에 성령만 아니라 성자와 성부를 포함한 온전하신 하나님께서 생명으로 내주하신다는 성경의 핵심 진리를 바르게 설명하지 못하는 교리는 진지한 재고가 필요합니다.




청신호: 가령 내가 당신에게 이런 말을 한다 하자.어떤 사람이 …그와 나는 무슨 관계인가? 말할 것도 없이 그가 나이고, 내가 그이다. 단지 같은 분을 다른 방법으로 표현한 것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요 14:18절에 있는 “나”는 요 14:17절의 ‘저’ 와 같은 분이다. 주님은 아버지에게 구하고, 아버지는 보혜사를 여러분 가운데 보낼 것이다. 성령, 곧  이 보혜사는 여러분 안에 거할 그리스도 자신이다.   296쪽


아들 하나님과 성령 하나님의 구분 없이 아들이 부활후에는 성령이 되셨다고 하는 의미 같습니다. 아닌지요? 이것은 아들과 성령님의 인격을 하나로 보는 것 아닙니까?



새 예루살렘: 전후 문맥에서 위 내용은 요한복음 14장 17-18절을 설명하는 대목입니다. 이 단락의 소제목도 “두 대명사”입니다. 즉 17절이 그분은 실재의 영이십니다. … 그분께서 여러분과 함께 거하시고, 여러분 안에 계실 것이기 때문입니다”라고 말할 때 그분은 “아버지에게서 나오시는 실재의 영”(요 15:26)을 가리킵니다. 그런데 바로 이어지는 18절은 “나는 여러분을 고아처럼 버려두지 않을 것입니다. 나는 여러분에게 돌아옵니다”. 라고 하고, 또 바로 이어서 19-20절은 ”잠시 후면 세상은 나를 더 이상 보지 못하겠지만, 여러분은 나를 볼 것인데, …그 날에는 …내가 여러분 안에 있는 것을 여러분이 알 것입니다”라고 말씀하므로, 보혜사 성령만이 아니라 (구별되나 분리할 수 없는) 부활하신 그리스도 자신도 함께 우리 안에 오실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보혜사 성령’ 따로 ‘부활하신 그리스도’ 따로 영접하였는가?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가 주님을 영접했으면 그것이 곧 성령을 받는 것이라는 것이 개혁신학 측의 입장이고 또한 워치만 니와 위트니스 리의 견해입니다. 물론 주님 영접 후에 제 2의 축복으로 성령을 따로 받아야 한다는 오순절 계통의 주장은 잘못된 것이고 주 예수님과 성령을 동시에 받았다고 보는 이것이 성경적입니다(고전 12:13 참조).


워치만 니는 이런 이해를 바탕으로 우리가 영접한 그 분이 부활하신 그리스도이시기도 하고 성령이시기도 하다는 말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그리스도와 성령의 인격(위격)을 같은 것으로 보는 것이 아닙니다. 왜 그런지는 위 총론 부분에서 상세하게 설명을 드렸습니다.


(참고로 대부분의 사람들은 위 요한복음 14장에서 보혜사 성령이 오신다는 말은 즉각 실행된 것으로 해석하지만, 18절의 ‘나는 여러분에게 돌아옵니다’라는 말씀을 장차 재림 때를 가리킨다고 오해합니다. 그러나 이 말씀과 이어지는 “잠시 후면”이라는 말씀은 부활 때를 가리키고, 20절의 ‘그 날’도 부활의 날을 말하는 것입니다. 18-20절이 말하는 시점은 같은 것입니다. 즉 하나님의 관점에서 볼 때 우리는 그리스도께서 살아 나실 때 함께 살아났고, 그분 안에서 함께 일으켜졌고, 그분과 함께 하늘의 영역에 앉게 된 것입니다(엡 2:5-6). 이 부분은 현재의 논점과 직접 관련된 것은 아님으로 이런 일이 있었다는 점만 일단 언급해 두고 싶습니다.)




청신호: “언젠가 나는 그리스도가 성령 안에 있는 것에 관하여 개봉에 있는 한 친구와 이야기를 했다. …나는 장갑을 끼고 있는 그녀의 손을 잡고 몸을 돌이켜 친구에게 이렇게 물었다. “내가 장갑을 잡고 있는 건가, 손을 잡고 있는 건가? 자네는 내가 이분의 장갑을 쥐고 있다고 말할지 모르지만 사실은 이분의 손을 잡고 있는 걸세. 그리스도와 성령의 관계는 바로 이와 똑같은 것일세. 자네가 밖으로 성령을 쥐고 있을 때 안으로는 그리스도를 소유하고 있는 것이네. 성령을 영접하는 것은 곧 그리스도를 영접하는 것일세.” 297쪽


그리스도와 성령은 분리할 수 없는 하나이다. 성령은 예수 안에 있고 예수는 성령 안에 있다. 298쪽


그리스도가 우리에게 성령으로 오셨다. ... 이제 그리스도는 영의 형태를 취하셨다. 299


워치만 니 선생님은 성자 그리스도께서 영의 형태를 취하신 모습이 곧 성령이다라는 설명 같습니다.“



새 예루살렘: 위 워치만 니의 설명은 위 인용문 시작 부분처럼, “그리스도가 성령 안에 있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두 위격의 구별을 전제한 것이고, 또한 삼위의 상호내를 근거로 말한 것입니다.


특히 “이제 그리스도는 영의 형태를 취하셨다”라는 표현은 육신을 입으셨던 그리스도께서 부활 후에는 ‘영의 형태’ 즉 문을 닫고 있어도 들어 오실 수 있고, 때로는 보이셨다가 안 보이시는 존재, 즉 그분의 죽을 인성이 영화롭게 된 인성 다시 말해서 더 이상 죽지 않을 인성(계 1:18 참조)을 입으셨다는 의미가 내포된 표현입니다(‘마지막 아담은 생명 주는 영이 되셨다는 고전 15:45 참조). 


따라서 지적하신 대로 ‘2격이 3격이 되셨다’는 말이 아닙니다. 인용하신 299쪽에 있는 다음과 같은 워치만 니의 말이 그것을 증명해 주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제 그리스도는 영의 형태를 취하셨다. 그분은 자유롭게 우리 안으로 들어올 수 있다. 그분은 이제 성령 안에 있기 때문에 우리는 그분을 영접할 수 있다.”


끝으로 한 가지 말씀드릴 것은 한국어 번역에서 “그리스도가 우리에게 성령으로 오셨다”라는 부분은 원문에 따르면 ‘그분(그리스도)이 우리에게 성령 안에서 오셨다’라고 해야 하고, “이제 그리스도는 ‘영의 형태’를 취하셨다” 라는 부분도 제 3격 성령을 가리키기 보다는 ‘영적인 형태’(a spiritual form)를 입으셨다는 의미입니다. 그런데 번역을 거치면서 저자의 의도와 달리 오해 할 수 있는 표현이 있었음을 인정합니다.


참고로 해당 영어 원문은 다음과 같습니다.


“Christ died and rose for us. But if He had not come to us in the Holy Spirit, salvation could not be accomplished. Christ could not be joined to us. He would be like the old tutor of mine, only wishing that somehow He could get inside of me. … But now Christ has taken on a spiritual form”(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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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새예루살렘 2018.11.01 08:32
    참고로 워치만 니와 위트니스 리의 저서 내용들(영문)은 https://www.ministrybooks.org/index.cfm에 가셔서 제목과 단락을 찾아 들어가시면 본문 확인이 가능합니다.
  • ?
    청신호 2018.11.02 21:44

    삼위일체에서 설명에서

    개혁 신학자들 중에는 구별되는 [삼위]를 강조하니 사실 삼신론자는 아닌데 삼신론자라는 오해를 받는 경우가 있고 지방교회측은 신격 개념으로 상호내주/온전한 하나님을 신격/하나됨을 강조하니 여증인은 아닌데 양태론/일위일체론이라는 비판이 움트는 것 같습니다. 돌지 않은 이상 개혁신학 목회자들 중에는 성육신하신 성자들 두고 하나님 1/3이 육신을 입었다고 할 자는 없을 것입니다. 삼위 각각은 동등하게 완전한 영원한 하나님이라는 고백을 하기 때문입니다. 1/3일 하나님이라는 표현 자체가 불구하나님이라는 경망스런 단어가 아닐런지요?


    토론을 지켜 보며 느끼는 것은 사람의 구성요소도 속칭 이분설과 삼분설이 있는데 전자라고 주장하는 자가 있고 후자로 생각하는 사람이 있고, 또 구원론에 같은 이신칭의를 믿으면서도 믿음과 행위를 놓고도 전자를 강조하는 자가 있고 후자를 강조하는 자가 있음을 아실 겁니다. 


     지방교회가 왜 [일삼 하나님]이 아니라, [삼일 하나님]이라고 하는지 감이 잡힙니다. 즉 삼위일체중 뒤의 것, 즉 상호내주성 즉 일() 아주 강조하는 의미가 있다고 보여집니다. [과연 성부는 육신을 입으신 성자와 분리되어저 하늘에만 남아 계시고 지상 사역시의 아들 하나님 안에는 안 계셨는가하셨는데 그렇다고 볼 수 없겠지요감히 삼차원 세상의 인간의 말로는 설명이 안되는 5-6 차원 방식?으로 함께 하셨다는 것은 예수님도 아버지와 동일하신 하나님이라는 점을 보아것으로 짐작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개혁 신학의 성육신 이해를 [성부를 저 멀리 하늘에 따로 계시게 하는 교리]라고 하셨는데 그런 뉘앙스? 어느집단이나 일부 소수가 있을 런지 몰라도 대다수는 아니라고 봅니다.  

    [개별 위격적 표현(하나님, 그리스도, 성령 등)은 해당 위격을 가리키면서도 동시에 다른 두 위격들이 포함된 온전한 하나님을 의미한다]는 관점을 가져야 비로소 성경 여러 곳의 난해 구절들이 풀린다고 하시고, 그렇지 않으면 [우리 안에 성령만 아니라 성자와 성부를 포함한 온전하신 하나님께서 생명으로 내주하신다는 성경의 핵심 진리를 바르게 설명하지 못]한다고 하셨는데 삼위일체 하나님에서 [일체]성으로 충분히 인식이 가능하다고 봅니다. 다소 생소한 단어 경륜적 삼위일체 개념을 보니 다소 화되어 있다는 지적은 일리가 있는 것은 분명합니다. 그러나 이 설명을 얼핏 들으면 열이면 아홉은 양태론적이라는 것은 피할 수 없어 보입니다.


    갓난 아이들 겨드랑에 체온 재는 40도 눈금만 그려진 온도계로 포항제철 수천도의 쇳물 온도를 잴 수 없듯이 우리에게 영으로 오시어 거듭나게 하시고 감동을 주시는 분이 분이 2위이신 그리스도의 영인지 3위이신 성령이신지 과연 누가 콕 짚어 분간하겠습니까?  주님이 내 맘에 오신 것은  하나님이 오신 것이라고 할 수 있고 성부 성자도 하나님이시니 삼위일체 하나님 내 안에 오신 것이 분명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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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3 지방 교회측은 반펠라기우스주의를 따르는가? 4 새예루살렘 2016.01.30 107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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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1 지방교회 교회론 신학토론(7) 관리자 2015.08.24 94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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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8 지방교회 교회론 신학토론(4) 관리자 2015.08.19 9793
237 지방교회 교회론 신학토론(3) 관리자 2015.08.15 93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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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3 지방교회-기독론 및 기타 주제에 대해 5 관리자 2015.04.13 11827
232 지방교회-사하심에 대해(4) 관리자 2015.04.13 99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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