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티븐 형제님의 질문에 대해서 간략하게 제가 이해한 바를 적어보겠습니다.
그후 아직 해결되지 않은 부분이 있으면 좀 더 교통을 이어갈 수 있을 것입니다.
1.워치만니 형제님도 건축에 대한 계시를 보셨는지요?
‘건축’이란 말은 개역성경에는 단 한번 발견됩니다.
‘내가...남의 터 위에는 건축하지 아니하려 함이라’(롬15:20)
그외에 대부분은 ‘짓다’ 혹은 ‘세우다’ 등으로 번역되었습니다. 주 예수님께서 ‘네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마16:18)라는 말씀이 대표적입니다. 그렇다면 ‘교회가 건축된다’(혹은 세워진다)라는 말의 의미는 무엇일까요?
그것은 사람(혹은 인성) 안에 하나님(혹은 신성)이 들어오셔서 연합되시는 것을 말합니다.
따라서 건축= 신성과 인성의 연합 혹은 건축=사람 안에서의 신성한 생명의
자람이라고 할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원 질문으로 돌아가서 워치만 니 형제님이 ‘연합’ 혹은 ‘생명의 성장’에 대한 계시를 보았는가?
답변은 당연히 ‘그렇습니다’가 되겠지요.
2.교회 건축은 주님이 하시는 것으로 아는데 우리도
건축한다고 할 수 있는지?
매우 좋은 질문입니다. 위에서 보듯이 건축은 주님이 하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분이 우리 안에서 우리를 통하여 건축하십니다.
성경근거는 고전 14:4입니다.
이 역시 개역성경은 ‘예언하는 사람은 교회의 덕을 세우나니’라고 되어 있지만
원문에는 ‘덕’이란 말이
없습니다. 따라서 ‘신언하는 사람은 교회를 건축하나니’가 원문의 바른 의미입니다.
신언은 주님께서 우리 안에서 말씀하시는 것을 우리가 받아 말하는 것이지요.
교회는 주님의 즉각적인 말씀을 사람들이 믿음으로 받아드림으로 건축됩니다.
이 일에 믿는 이들이 참여하는 것입니다.
3.워치만니 전집에서는 라오디게아 교회(주님은 교회 문밖에 계심)의 모습이 마지막 교회들의 모습이라고 하는데 우리가 하나님의 뜻을
거슬러 건축하고 새길 실행해서 빌라델비아로 회복할
수 있는지?
원칙적으로 마지막 교회들의 모습은 라오디게아 교회만 아니라, 두아디라
교회(변절한 교회), 사데 교회(종교 개혁의 교회), 빌다델피아 교회(회복된 교회)
그리고 라오디게아 교회(타락한 교회) 이렇게
네 유형이 거의 끝까지 함께 가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거스리는 것과 건축 혹은 새길 실행은 양립할 수 없는 개념입니다. 건축이 하나님의 뜻이고, 그 연합을 특정 성직자들만이 아니라 모든 믿는 이들이 체험하고 또
확대하도록 하는 것이 새길 실행이니까요.
4.심판이 임박하여 미지근함을 떠나 이기는 자가
되어야 하는데 생명의 체험도 없는 미지근한 이들과 계속 건축이라는 구호?와 가르침이 있어야 하는지? 주님은 교회 밖으로 나가셨는데...
이기는 자는 교회 안에서 건축의 실재를 경험하고 있는 자들을 가리킵니다. 미지근한 자들이나 생명의 체험이 없는 자들은 그처럼 깨어 있는 소수를 바라보면서 그들이 가야할 목표를 거듭 상기하게 되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이기는 자였지만 홀로 떠나 주님께 가기를 바라지 않고 남아 있으면서 그렇지 못한 자들 앞에 본을 보이고, 생명으로 목양함으로써 주님의 몸이 건축되도록 자신의 분깃과 위임에 충실했습니다. 이것이 우리
모두의 본입니다.
5.성막의 예표에 의거 교회를 건축한다고 했는데..이미 건축된 일곱교회에 대하여 일곱편지를 통해 책망과 칭찬의 평가가 정확히 내려지고
우리의 행동지침 또한 명확한 계시로 주어 졌는데, 아직도 구약의
예표에 너무 많은 시간을 소모하며 건축 건축... 시간을 허비하는지?
구약을 포함한 모든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계시록
2-3장의 언급이 귀하지만, 교회 건축의 자세한 식양과 내용에 대한 예표는 출애굽기
등 구약에 있는 말씀들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또한 구약을 다루더라도 상당 부분이 신약의 말씀과 연계되고 또 그것을 구체적으로 실천할 수 있는 길이 제시되고 있습니다. 마음을 열고 개요에서 언급된 수 많은 말씀들을 읽고 또 먹는다면 성경 66권이 다 우리의 영의
양식이요 생명과 빛을 공급하는 원천임을 체험하시게 될 것입니다.
6.일곱편지에 대한 니형제님의 메세지는 위트니스
리 형제님의 실행과 완전 반대라고 할 정도로 노선이 다른데 선견자와 계승자가 맞는지요?
구체적으로 어떤 점이 다른지요?
워치만 니 형제님이 보신 것은 1)그리스도가 하나님의 경륜의 중심성과 우주성이시고,
2) 그분의 확대가 곧 그리스도의 몸이며, 3) 이 그리스도의 몸의 최종 완성이
새 예루살렘이고, 4) 그외의 것들은 다 지엽적인 것이다. 4) 이
계시를 실행하기 위해서는 지방 입장이 필요하고, 성직자 제도를 버리고 모든 지체들이 기능을 발휘하는 것이
필요하다. 라는 것이지요. 이 점에 있어서 니 형제님은 계시는 보셨지만
실행에 있어서는 리 형제님 때에 와서 더 많이 구체화 되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제가 회복에 온지 3년 되었는데 최근 40일 정도 취침시간외에 모든 시간을 투자하여 추구한 결과 나온 생명의 느낌인데 너무
잘 못 가고 있는게 아닌가 해서 문의 드립니다.
그동안 추구하시느라고 수고 많이 하셨습니다.
한 가지 권면드리고 싶은 것은 우리가 아무리 추구를 많이 해도 생명의 분량만큼만 참되게 소화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영적인 실재는 마치 고시 공부하듯이 추구만 많이 한다고 얻어지지는 않습니다.
빛이 비취는 만큼 우리의 존재와 옛 사고 방식, 옛 생활 방식에서 십자가로
제해지는 체험이 따라야 합니다. 이것은 시간을 필요로 합니다.
그러므로 정상적인 생활을 해 나가시면서 말씀과 사역의 메시지를 지금처럼 꾸준히 추구하시고, 안의 그 영의 음성도 귀를 기울이시고, 지금처럼 몸 안의 지체들과 교통하고 점검 받으시면서
은혜 안에서 자라가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