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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방교회 교회론 신학토론(5)

 

이유진  『비록 루터가 주님께 쓰임받아 천 년이라는 암흑시대를 종결하였지만 그의 사람됨에는 부족함이 있었고, 종교 개혁 운동에서는 논쟁거리를 남겼다. 마르틴 루터는 일찍이 자신을 '거칠고, 광폭하고, 격렬하고, 호전적'이라고 묘사한 바 있다. 말년에 비텐베르크에 있었을 때 그는 불안정하였고, 다른 사람을 공격하기를 좋아했으며, 항상 겸허와 용맹 사이를 오갔다. 루터가 비록 '오직 믿음으로'와 '오직 성경으로'라는 종교 개혁의 중요한 두 기둥을 세웠지만, 그는 "성모 마리아의 노래"에 주(註)를 달면서 마리아를 그리스도의 어머니라고 칭했고, 성모와 성인의 중보기도의 효력을 인정했다.


루터와 츠빙글리의 성찬 논쟁에서도 그의 외고집과 패배를 인정하지 않는 성격을 엿볼 수 있다. 전하는 바에 의하면 루터와 츠빙글리가 대면했을 때, 츠빙글리가 루터에게 악수를 청했으나 루터는 그의 악수를 받지 않았다고 한다. 성찬 의식에 대한 두 사람의 인식이 일치하지 않자, 루터는 화를 내며 협상을 거절하고 탁자 위에 "이는 내 몸이니"라는 성경 구절을 남기고는 나가 버렸다. 이로 인해 종교 개혁에서 성찬 의식이 로마 천주교의 영향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하게 되었다. 이외에도 재침례파를 박해하는 일에서 루터는 그때까지도 자신에게 적대적이었던 천주교와 손을 잡았다. 그 당시 사람들 사이에 회자되던 통속적인 말이 있었는데, 그것은 "침례를 원하는 사람들로 물에 빠져 죽게 하라"는 것이었다. 결국 재침례파의 많은 인도자들이 강물에 익사당하는 참변을 겪었다.


1540년, 루터를 계속 지지해 왔고 츠빙글리와의 성찬 논쟁에서 그에게 협조했던 헤센의 필리프 공(Phillip of Hessen)의 중혼(重婚)은 독일의 종교 개혁 운동에 새로운 풍파를 불러일으켰다. 이 일은 공개적인 반대에 직면하였으나 루터는 필리프와의 사적인 친분으로 인해 그의 중혼에 찬성하였다. 이것에서 볼 수 있는 것은 하나님께서 사용하신 종도 인성의 연약함을 갖고 있다는 점이다. 비록 하나님은 언제나 사람의 연약함을 초월하여 그를 사용하시지만 이러한 개인적인 어려움들은 결국 일에 어려움이 되고, 하나님께서 계속적으로 전진하시는 데 제한이 된다.』 - 2000년 교회사 순례


김홍기  캠프를 마치자 마자 곧 논의에 참여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종교개혁과 마르틴 루터의 긍정적인 면과 부정적인 면에 관한 웟치만 니의 평가를 인용하셨습니다. 웟치만 니의 평가는 매우 흥미롭습니다! 그런데, 이전의 질문에 대한 답을 아직 받지 못했습니다. . . .  제가 드린 이전의 질문은 이것입니다. "이것(종교개혁)이 사탄의 역사입니까? 혹은 아닙니까? Yes 혹은 No로 답변을 해 주세요. 다른 말은 이후에 하기로 합니다. 먼저 분명한 답을 주세요. Yes입니까? No입니까?" 이번에는 다른 사람의 견해를 인용하지 마시고 자신의 견해를 분명히 Yes 아니면 No로 답변해 주십시오!


이유진  저의 견해도 인용해 드린 내용과 같습니다. 종교 개혁은 전체적으로 보면 당연히 사탄의 역사가 아닌 하나님의 역사라고 할 수 있습니다. 카톨릭이라는 상대적인 면에 대한 개혁이기에 더더욱 그렇습니다.


김홍기  종교개혁은 전반적으로 사탄의 역사가 아닌 하나님의 역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종교개혁은 분열입니다! 천주교 내부에 있던 사람들이 복음과 진리 때문에 천주교로부터 분열하여 나온 것입니다. 그러면 위트니스 리의 다음 말에 의하면 종교개혁은 "영적 간음"이 되는 것입니다. 맞습니까? Yes 혹은 No로 답해 주십시오! “모든 교파는 바벨론에 속해 있고, 모든 분열은 바벨의 일부분이다. 천주교와, 개신교파와, 모든 독립 단체들은 혼돈의 상황 안에 있다. 모두가 바벨론에 속해 있다··· 분열은 영적 간음이다”(위트니스 리, 그 영과 몸, 한국복음서원, 1985년, 219페이지).


이유진  분열은 '한 몸'이라는 기준에서 벗어날 때 분열이고 천주교에서의 종교 개혁은 분열 문제는 해결되지 않은 채 이신칭의 등의 몇가지 중요한 진리 항목에서 하나님의 역사가 있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참고로 목사님이 위에서 인용해 주신 글의 앞 단락에 있는 몇 문장을 인용해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그 영(성령)이 있는 몸 안에 있지 않는 한, 여러분은 분열 안에 있는 것이며, 그 영 밖에 있는 한 여러분은 하나 밖에 있는 것이다. 주의 회복 안에서 우리가 생각하고 말하고 행하는 모든 것은 그 영 안에 있어야 한다. 여러분이 영 안에 있지 않다면 여러분은 몸 안에 있다고 말할 수 없다. 몸은 그 영과 하나이며, 그 영은 몸의 실재이다. 여러분이 그 영 안에 있지 않다면 하나 안에 있지 않고 분열 안에 있는 것이다. 주의 회복 안에 있는 모든 사람에게는 회복이 근본적으로, 또 기초적으로 몸의 하나를 회복하는 것이라는 데 대한 분명한 이상이 필요하다.』 - 그 영과 몸


위트니스 리는 그의 말을 듣고 있는 '지방교회 성도들'을 향해 여러분이 그 영 안에 있지 않다면 분열 안에 있다는 말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바벨론이 아니고 천주교와 개신교파 및 모든 독립 단체들만 바벨론이라는 말이 아닙니다. 비록 우리가 주님의 이름 외에 다른 명칭을 갖고 있지 않을지라도 저희 역시 위트니스 리의 말에 의하면 그 영 안에 있지 않은 한 분열이 되고 맙니다.) 이 단락 다음에 목사님이 인용해 주신 부분이 나옵니다.


김홍기  아직도 직답을 하시지 못하고 있습니다. 또한 그 직답을 피하는 근거가 성경적으로 논리적으로 도무지 타당치 않습니다! 그러나 직답을 구하기 위해서 몇 가지 말씀을 드리기를 원합니다.  제시하신 본문을 보면 위트니스 리(추후 WL)가 지방교회 신자들을 위해 한 말은 이것입니다. “그 영(성령)이 있는 몸 안에 있지 않는 한, 여러분은 분열 안에 있는 것이며, 그 영 밖에 있는 한 여러분은 하나 밖에 있는 것이다.” 여기 WL이 말한 바와 같이 성령 밖으로 성도가 나갈 수 있다는 것이 도대체 성경적으로 가능합니까? 그런 사상이 도대체 성경 어디에 있단 말입니까? 지방교회에서 사용하는 성경인 다비 역에는 이런 구절이 있습니까?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리니”(요 14:16). 인용하신 본문에서 WL은 계속 이런 말을 합니다. “그 영 밖에 있는 한 . . . 여러분이 그 영(성령) 안에 있지 않다면 . . .” 성경적 교리를 세우기 위해서는 성경적 근거 위에서 해야 합니다! WL이 한 말이 성경적 근거 위에 있습니까? 있다면 성경 구절을 여기 제시해 주시기 바랍니다. 


이유진  지금 나가봐야 돼서.. (서울에서 온 한 S대 교수 형제님과 식사 약속이 있습니다) 다녀 온 후에 답변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이유진  저녁을 함께 먹으며 교회 생활에 대해, 신앙 생활에 대해 많은 교통을 하고 왔습니다. 그 교수 형제님도 이 토론에 대해 말씀드렸더니 관심을 갖고 한번 들어와 보시겠다고 하네요. 예전에 바로 이 문제에 대해 글도 쓰시고 하신 분입니다.


그리고 질문에 대해 답변을 드렸는데 계속 새로운 질문에 대해 답변을 드려야 되는 상황으로 발전하네요. 핵심은 바벨론 혹은 분열이라는 표현에 대해 단지 외부를 향한 외침만이 아닌 더더욱 내부를 항한 경고의 말이기도 하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인용해 드린 글은 에베소서 4:3을 해석하면서 나온 부분입니다. 즉 평안의 매는 줄로 성령의 하나 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라에 대한 설명을 하는 것입니다.


즉 엡 4:3의 말씀은 성령의 하나가 있지만 우리가 그 앞절에서 말한 "모든 겸손과 온유로 하고 오래 참음으로 사랑 가운데서 서로 용납"하지 못한다면 결국 성령의 하나를 지키지 못하고 분열된 양상으로 나타난다는 것입니다.


참고로 관련된 성경 구절을 하나 더 드리면 엡 6:18에 보면 무시로 성령 안에서 기도하고 라는 말이 나오는데 이 말은 우리가 성령 안에서 기도할 수도 있고 때로는 성령과 무관하게(성령 밖에서) 기도할 수도 있다는 것을 암시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우리 안에 성령이 계시지 않다는 말이 아니고 우리 안에 성령이 계실지라도 우리의 '체험'에서 성령과 무관하게, 성령의 임재를 떠나 기도할 수도 있다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이 문제와 관련해서 문득 스펄전의 이 말이 생각나네요.


"I believe that one reason why the church of God at this present moment has so little influence over the world is because the world has so much influence over the church."


"하나님의 교회가 현재 세상에 대하여 영향을 거의 미치지 못하는 이유는 세상이 교회에 대하여 너무나 많은 영향을 미치고 있기 때문이라고 나는 믿는다."


이유진  그리고 직답을 하지 못하셨다고 하셨는데 천주교는 그리스도의 몸과 관련해서 믿지 않은 이들도 많이 받아들인 일종의 혼합 상태입니다(그리고 참된 믿는 이들을 받아 들이지 못하고 핍박하고 배척한 면에서 보면 분열의 상태입니다. 그 외 비진리적인 면에 대해서는 말할 것도 없습니다). 그러한 상태에서 믿는 이들이 일부 갈려져 나온 것은 믿지 않은 이들을 거의 포함하지 않았다는 면에 대해서는 혼합의 상태에서 전진된 면이 있고, 어찌 되었든 천주교 및 다른 단체(예를 들면 재침례파) 안에 있는 믿는 이들을 포함하지 못한다는 면에 대해서는 여전히 분열의 상태에서 크게 전진된 것이 없는 상태입니다. 다만 전체적으로는 이신칭의 등 진리의 회복과 관련해서는 주님의 큰 역사라고 할 수 있습니다.


김홍기  WL이 한 말 “성령 밖에서”라는 말은 성령의 “체험”과 “임재” 밖에서 라는 뜻으로 이해해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WL은 “여러분이 영 안에 있지 않다면 여러분은 몸 안에 있다고 말할 수 없다” 라고 말을 합니다. WL의 이러한 말과 이유진님의 말을 종합하면, ‘성령의 체험과 임재 안에 있지 않다면 몸 안에 있지 않다’는 말입니다. 이것이 다음의 성경 말씀으로 비추어 볼 때 도대체 성경적으로 가능한 말입니까? “한 성령으로 침례를 받아 한 몸이 되었고 또 다 한 성령을 마시게 하셨느니라”(고전 12:13). 성령 안에서 기도하지 않고 성령 밖에서, 달리 말하면 성령의 “체험”과 “임재” 밖에서 기도하면 그리스도의 몸 밖에 있다고 말할 수 있습니까? 성경은 성도가 성령의 “체험”과 “임재” 밖에 있으면 그리스도의 몸 밖으로 나간다는 가르침을 주고 있습니까? 그런 성경 구절이 있으면 여기 제시해 주시기 바랍니다.


김홍기  또한 “바벨론 혹은 분열이라는 표현에 대해 단지 외부를 향한 외침만이 아닌 . . .” 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결국 WL이 사용한 “분열”이라는 표현은 지방교회를 포함한 ‘다른 그리스도인들을 향해 한 말’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제 직답을 하실 준비가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종교개혁’은 복음과 진리로 인한 ‘분열’입니다. 그런데 WL의 말에 의하면 “분열은 영적 간음”입니다. 따라서 WL에 의하면 종교개혁은 “영적 간음”입니다. 맞습니까? Yes 혹은 No로 답해 주십시오! 제가 인용한 WL의 말에 근거해서 분명하게 Yes 아니면 No로 말씀해 주십시오. 그렇게 해야 모두가 시간을 헛되게 낭비하지 않고 논의를 발전시킬 수 있습니다!


김홍기  또한 “바벨론 혹은 분열이라는 표현에 대해 단지 외부를 향한 외침만이 아닌 . . .” 이라는 이유진님의 진술은 WL 및 지방교회는 다른 그리스도인들을 "바벨론"으로 칭한다는 것을 확증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지방교회의 항변에 대한 응답"이라는 글에 달린 저의 댓글 #27의 질문에 대한 답을 같은 지방교회 신자로서 김바울님을 대신하여 해 주신 것입니다. #27 댓글의 내용은 이렇습니다. "저는 침례교에 국한해서 질문을 드린 것입니다. 이미 말씀드린 바 처럼 Yes 아니면 No로 분명히 말씀해 주십시오. 질문하신 내용은 그 후에 얼마든지 답변해 드리겠습니다. 제가 인용한 WL의 말에 근거해서 분명하게 Yes 아니면 No로 말씀해 주십시오. 그렇게 해야 모두가 시간을 헛되게 낭비하지 않고 논의를 발전시킬 수 있습니다!"


심지어 지방교회를 두둔하는 CRI도 위트니스 리와 지방교회가 다른 그리스도인들을 비방할 때 "바벨론," "영적 음행," "사탄의 조직"이라는 "거칠고," "숨은 뜻이 있는," "유감스러운" 말을 사용하고 있다고 분명히 증언합니다. "CRI admits they have uses “harsh,” “loaded,” and “regrettable” terms against other religious groups, such as “Babylon,” “spiritual fornication,” and “satanic system.”(Norm Geisler and Ron Rhodes, A Response to the Christian Research Journal’s Recent Defense of the “Local Church” Movement, p.4)


김바울  김홍기 목사님이 현재 진행 중인 문제(바벨론, 교파, 음녀, 분열, 조직..) 등에 대해서 조금 더 유연하게 대처하셨으면 하는 아쉬움이 있습니다. 즉 무조건 본인과 본인이 속한 단체를 지칭한 표현이라고 받아들이게 되시면 '사실'도 아니고, 또 성경이나 하나님 앞에 '정죄'될 사안까지 김목사님이 앞장 서서 변호하시는 모양새가 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김바울  우선 1. 바벨론, 음녀 등은 김목사님도 로마 천주교를 향하여 사용하신 표현입니다. 김목사님은 로마 천주교의 어떤 면이 '바벨론, 음녀'에 해당되는지 설명하실 수 있으신지요? 2. 교파, 분열- 김목사님은 본인이 소속된 성서침례교는 '교파'가 아니라고 분명하게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은 '교파'가 소극적인 의미의 표현이고 정당화될 수 없는 것이라는 전제가 있으신 것이 아니었던가요? 교파를 부인하면서 또 다른 면에서 교파를 두둔하시는 모습으로 비쳐지는 것은 상대방에게 다소 혼란스럽게 느껴질 수 있는 것 같습니다. 3. 조직- 이 부분은 천주교 조직처럼 혹은 군대나 회사조직처럼 '인위적이고' 머리이신 그리스도께서 가지신 권위를 '대체'하는 조직을 정죄하는 것일 뿐 '모든 조직'과 '안배'를 정죄하는 것이 아닙니다. 소위 지방 교회들도 장로들을 임명하고, 심지어 교회 조직이라는 책까지 펴내면서 그런 일을 할리가 없습니다. 그러므로...지금처럼 대화를 진행하시기 보다는 좀 더 열린 대화가 필요하지 않을까 합니다. 그래야 그리스도의 몸을 위하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는 대화가 될 것같아서 외람된 몇 마디를 말씀드렸습니다.


김바울  "심지어 지방교회를 두둔하는 CRI도 위트니스 리와 지방교회가 다른 그리스도인들을 비방할 때 "바벨론," "영적 음행," "사탄의 조직"이라는 "거칠고," "숨은 뜻이 있는," "유감스러운" 말을 사용하고 있다고 분명히 증언합니다."----------------이 부분도 CRI 가 증언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노먼 가이슬러가 볼 때 그렇다는 것입니다. 거듭 말씀드리지만, <기독교계 안에 있는 믿는 이들>(persons)을 향하여 그런 말을 하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몸의 유기체성을 제한하고, 그리스도 자신의 충만인 몸의 속성에, 세상적인 요소를 끌여들여 제도화시킨 시스템(System)을 향해 그리 말한 것입니다. 아마도 짐작컨대 김목사님이 로마 천주교를 향하여 '바벨론'이고 '음녀'라고 강하게 질책하시는 것과 유사한 것일 수 있습니다. 김목사님이 천주교 안에 참되게 거듭난 믿는 이들을 향하여 그런 정죄를 하시지는 않으셨으리라고 믿습니다.


김홍기  "지방교회의 항의에 대한 답변"에 제가 게시한 # 32 댓글로 답을 대신합니다.


김바울  질문들이 충첩되다보니 일일이 따라가면서 답변을 드리기가 쉽지가 않습니다. 거듭 말씀드리지만 위트니스 리의 글을 읽으실 때 어느 한 두 마디를 떼어내어 일반화시키거나, 그 배경을 알지 못하는 상태에서 듣는 분의 시각에서 그 말을 이해하면 심각한 오해가 일어날 수 있습니다.


일단 위트니스 리가 생각하는 성경적인 교회관은 이것입니다. 1. 교회는 그리스도를 생명으로 모셔드린 사람들 안에서의 그리스도 자신의 충만이다(엡1:23). 그리고 그 몸은 각지에 사는 모든 거듭난 믿는 이들을 다 포함하는 개념으로서 그 지방(그 지역)에 있는 교회라야 성경적인 교회이다(고전1:2).이 두 가지 방면의 잣대를 가지고 위트니스 리의 말을 이해해야 그 본래의 의도를 알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천주교는 그리스도 자신을 생명으로 영접하지 않은 사람도 '세례'를 거쳐 교회구성원으로 가입시킴으로, 교회의 정체성에 흠집을 가할만큼 심각한 혼합 즉 바벨론이 되었습니다. 루터가 이러한 혼합을 대상으로 싸워 성경적인 진리를 회복시킨 것은 '주님의 역사'요 '주님의 회복'이지 결코 정죄의 대상이 아닙니다. 그러나 그 후대가 '루터교단'을 창립하여 참되게 거듭났으나 어떤 진리에 있어서 자신들과 견해를 달리한 사람들을 배척하고 심지어 이단이라로 서로 정죄함으로 결과적으로 '분열'을 가져왔다면, 그것은 몸의 하나릉 위해 기도하신 그 분께 득죄한 것입니다(요7:21). 교파 혹은 분열이 되지 않으려면 그 지역(city)안에 거주하는 <참되게 거듭난 모든 믿는 이들>을 그 지역에 있는 교회의 일원으로 받아야 합니다. 비록 고린도 교회 안에 이견이 있고 문제가 있었지만 그렇다고 따로 나가서 별도의 명칭의 교회 혹은 교단을 설립했다는 기록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고린도 교회는 성경적인 교회입니다. 그런데 만일 어떤 교단이 어떤 이유에서건 그 이름아래 참된 다른 믿는 이들을 배제시키는 교단 실행을 한다면 그것이 곧 그리스도의 몸을 나누는 분열입니다. 이 점은 교단을 나누지도 않고 단지 아무개에 속했다고 했는데도 그것을 '육체에 속한 것' 이고 '영적인 어린아이 짓'이라고 나무란 바울의 태도에서 볼 때 유추해 볼수 있습니다.


김홍기  그래서 이렇게 순수한 교회관을 가진 지방교회가, 또한 이토록 순수하게 그리스도의 몸의 연합을 추구하는 당신들이, 자신들의 순수한 교회관을 자랑하며 뒤로는 성서침례교회 목회자들과 사람들을 빼내어 지방교회로 데려갑니까? 또한 다른 교파의 목회자들과 그리스도인들 역시 빼내어 지방교회로 데려갑니까?


지방교회가 그토록 순수하기에 다음과 같은 말을 하며 다른 그리스도인들을 중상 비방하고 모독하며 매도합니까? "


이유진  위트니스 리는 "몸 안에 있다고 말할 수 없다"고 했는데 김목사님은 이것을 "몸 안에 있지 않다"고 하셨네요. 그리고 관련 성경 구절을 요구하셨고요. 위트니스 리는 지금 에베소서 4:3절을 해석하고 있는 중입니다. 즉 믿는 이들이 이미 '하나'인 것과 그러나 그것을 '지켜야 하는' 것에 대해 말하고 있는 중입니다. 이것은 우리가 몸 안에 있지만 실제로 성령의 충만 안에 있지 않다면 우리가 몸 안에 있을지라도 그렇게 '말할 수 없다'는 말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다른 말로 하면 우리가 교회이지만 우리의 상태가 주님 앞에서 합당하지 않을 때 세상 사람들에게 우리의 실존을 증거할 수 없는 것과도 같습니다.


이유진  그리고 종교 개혁은 천주교가 정통이고 분열이 아닐 때 그곳에서 분리되어 나오는 것이 분열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김목사님은 "‘종교개혁’은 복음과 진리로 인한 ‘분열’입니다."라고 말씀해 주셨는데 그렇다면 천주교를 정통으로 보시는지요?


오늘부터는 휴가 기간에 못한 일들을 좀 해야 돼서 오늘은 여기까지 하겠습니다.


김바울  (김목사님)"그래서 이렇게 순수한 교회관을 가진 지방교회가, 또한 이토록 순수하게 그리스도의 몸의 연합을 추구하는 당신들이, 자신들의 순수한 교회관을 자랑하며 뒤로는 성서침례교회 목회자들과 사람들을 빼내어 지방교회로 데려갑니까?"---------------이 말씀에 대해서 제가 답변을 드려야 할 사안인지 잘 판단이 서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지방 교회' 라는 용어와 '그리스도의 몸의 연합'이라는 단어 사용에 있어서 여전히 오해가 있으신 것같아 조금 설명을 드리고 싶습니다.


1. 지방교회는 거듭 말씀드리지만 'WN, WL'을 추종하는 무리들을 가리키는 말이 아닙니다. 대신에 고린도 교회, 예루살렘 교회처럼 그 지방에 사는 참되게 거듭난 모든 믿는 이들을 지칭하는 말입니다. 이 점은 누차 말씀드렸습니다. 만일 이런 정의를 붙잡으신다면, 말씀하신 부분에 대한 오해가 어느 정도 풀리실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즉 누가 누구를 빼가는 문제라기 보다는, 그것을 진리 혹은 성경적인 실행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그 길을 취하는 문제가 아닐까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원칙적으로 사람이 그 길을 취하든 그렇지 않든 몸의 머리이신 그리스도의 눈에는 거듭난 모든 이들은 그 지방의 교회의 일원입니다. 그들이 특정 교파나 단체의 일원이라는 의식은 주 예수님에게는 없으십니다. 모든 지방 교회들의 주인은 머리이신 그리스도이십니다.


2. '그리스도의 몸의 연합'--이 말도 사람들이 모여서 우리가 하나다 라고 하는 외적인 연합을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런 연합은 언제라도 또 다시 갈라설 수 있습니다. 참된 연합은 우리와 우리의 생명이요 인격되신 그리스도와의 연합을 가리킵니다. 거듭날 때 우리 안에서 이런 연합이 성취되었고(고전6:17), 생각이 새로와 짐으로 새사람을 입는 일에서 전진이 있는 만큼 이 연합은 확대됩니다.(엡4:23-24).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몸의 연합은 영적인 실재의 연합을 전제합니다. 지방 교회측 성도들은 아직 온전히 이루었다고 감히 말할 수 없으나 이러한 목표와 방향을 한번도 포기하거나 바꾼 적이 없습니다.(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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