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Ⅶ. 원세호님의 지방교회 「인간론」 비판에 대한 재반박(上)

 

1. 서론


이제 원세호님의 '지방교회 주장과 성경적 변증서'(중권) 책자 중 사람관련 진리 비판 재 반박에 이르렀습니다. 삼위일체 주제 때와 마찬가지로 이번 인간론 반박에서도 약간의 서론 글의 필요성을 느낍니다. 독자들이 어느 한 쪽을 두둔하는 선입관을 가진 상태에서는 성경적인 진실을 바로 알기가 어렵습니다. 따라서 독자들은 양측을 대등한 입장에 두고 어떠한 편견도 없이 양쪽 말을 공정하게 듣고 고려하는 단계가 필요합니다. 이런 과정을 거친 후 독자 분들은 자신의 신앙 양심과 믿음을 따라 스스로 판단할 수 있을 것입니다. 아래 글이 독자들의 양측에 대한 객관적인 평가와 성경적인 진리 인식에 다소나마 도움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이번 서론 글에서는 1) 소위 이단을 판단하는 주체는 과연 정통인가? 2) 이단판정의 배경이 되어온 신학은 과연 성경적인가? 3) 원세호님의 지방교회 비판은 공정했는가? 에 대해 개괄적인 검토를 하고자 합니다.


1) 이단을 판단하는 주체는 과연 <정통>인가?


교회 역사상 초기에 이뤄진 교회 공의회의 이단 정죄는 현재까지도 폭넓게 존중되고 있다. 그러나 그 이후에 이뤄진 로마 천주교(카톨릭)의 이단 정죄는 기득권자들의 교권보호와 반대자들 제압용으로 남용되기도 했다. 즉 오늘날 한국 장로교단의 선조랄 수 있는 종교개혁시의 프로테스탄트들은 그 당시의 카톨릭의 관점에서 이단자들이었다. 그러나 정작 그들에게 이단으로 정죄 당한 쪽은 자신들이 참으로 성경진리에서 빗나갔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이러한 이단 정죄가 다수의 힘있는 자들의 횡포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프로테스탄트의 후예 치고 카톨릭이 정통이고 자신들이 크게 잘못된 이단이라고 자책하는 사람이 있는가? 아마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카톨릭이 성경진리가 아닌 자신들의 교리와 빗나간 실행을 기준으로 이단시했다고 믿기 때문이다. 우리는 여기서 성경진리 자체가 아닌 특정 교단교리와 실행에 따른 이단 정죄는 사신 하나님 앞에서 잘못될 수 있음을 본다. 즉 정통을 자처하던 쪽이 도리어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서, 같은 하나님의 자녀들을 임의로 판단하고 정죄한 잘못을 직고하게 될 가능성이 없지 않다(롬14:10-12).


그 동안 한국교계의 이단 판정은 주로 특정 교단 아니면 소위 개별적인 이단 감별사들에 의해 행해져 왔다. 그러면서도 그 동안 이러한 이단판정 주체들에 대한 객관적인 검증 기회는 거의 없었다. 이런 와중에 2002 년에 예장 통합 측 총회가 소위 비중 있는 이단 감별사 두 명에 대해 비성경적 내지는 이단성이 있다고 연구 발표한 것은 가히 충격적이었다. 이처럼 사전 검증이 충분치 않았던 이단 감별 주체들의 이단 정죄 사례를 편의상 세 가지만 제시해 보겠다.


(1) 최삼경 목사의 경우


예장 통합 측 2002년 87차 총회는 같은 교단 소속 최삼경 목사에 대해 아래와 같은 충격적인 연구보고서를 공식 채택했다(http://www.localchurch.kr/9964).


"최(삼경)목사는 분명 각각의 본질을 가진 '세 영들의 하나님', 곧 세 분 하나님을 주장하고 있으므로 그의 주장은 삼신론적임을 보이고 있다. "삼위일체론에서 '페르소나'를 '영'으로 표현하는 것은 잘못...삼위하나님을 세 영들의 하나님으로 표현하는 것은 삼위일체론에서는 적절하지 못하다. 그러므로 "하나님도 한 인격으로 한 영...아들 하나님도 한 인격으로 한 영...성령 하나님도 한 인격으로 한 영이시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세 영들의 하나님이다"라는 (최삼경 목사의) 주장은 삼신론의 근거가 될 수 있으며 결국 세 하나님이 되어 우리가 믿고 고백하는 아타나시우스 신조와 상충된다".


통합 교단이 정치적인 면을 감안하여 최삼경 목사에 대해 어떻게 "발표"했는가는 그렇게 중요하지 않다. 정식으로 총회의 위임을 받아 연구된 위 이단대책위 연구보고서 내용이 중요하다. 위 보고서는 최목사의 핵심신앙에 치명적인 문제가 있음을 단적으로 말해주고 있다. 조직신학에 대한 기본 상식과 바른 신앙 양심이 있다면, 누구도 위 연구 보고서를 보고도 최 목사의 핵심신앙에 문제가 없다고 말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이처럼 삼신론 이단 교리의 그늘아래 있는 사람이 한국교계를 대표하는 이단 판정의 일에 오랫동안 관여해 온 것은 매우 안타깝고도 불행한 일이다. 이에 대해 한 교계신문은 최 삼경 목사를 암시하는 다음과 같은 내용을 보도하기도 했다.


"한국교회가 1884년 선교이후 백주년이 되던 1984년까지 공교회가 이단으로 정죄한 인사는 불과 5-6명에 지나지 않았다. 그나마 그들 가운데 일부는 복권되거나 재평가되어 이단이 아니었음이 확인되었다. 그런데 1980년 중반이후 한국교계에 이상한 이단 감별사 한 사람이 등장, 그에 의해 이단으로 정죄된 인물은 10여년 사이에 줄잡아 30여명에 이른다. 그가 예장통합측이라는 대교단을 업고 벌인 그 이단사냥은 가히 한국교회사에 기록으로 남을만한 일이다... 더욱 놀라운 것은... 그 감별사가 그토록 충성(?)을 다한 그 통합측 교단으로부터 정통성을 의심받고 이단으로 몰리게 되었다는 소식이다. 자신이 정죄한 그 정죄가 부메랑이 되어 자기에게로 되돌아온 셈이다."(http://www.localchurch.kr/1333).


최삼경 목사에 대한 추가적인 항의성 자료에 대해서는 아래 내용을 참고하기 바란다.


http://www.localchurch.kr/10108

http://www.localchurch.kr/974
http://www.localchurch.kr/1004


(2) 전 한국 기독교 침례회 목사였던 원세호님의 경우


원세호님은 현재에도 자신이 한국교계 내에서 이단 감별 분야의 권위자임을 자처하고 있는 듯하다. 그러나 예장 통합 교단은 2002년 87차 총회에서 원세호님을 창조론, 인간론, 삼위일체에 있어서 비 성경적인 이단이라고 정죄했다(http://www.eedan.net/edan1-1.php). 이처럼 대형 교단이 소위 무게 있는 이단감별사를 이단이라고 발표한 것은 이례적인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원세호님은 이미 이보다 약 3년 전에 자신의 소속교단으로부터 2000년 1월 1일자로 목사직이 제명된 바 있다(http://www.eedan.net/edan2-2.php). 그 이후 원세호님은 이제 적어도 형식상으로는 더 이상 목사가 아니다.


원세호님은 이처럼 소속교단에 의해 목사직을 박탈당하고 심지어 소위 장자교단에 의해 이단으로 정죄 된 인사이다. 그럼에도 그가 여전히 자신이 회장으로 있는 조직인 <기이사협의회>를 이용하여 남을 이단 삼단 하도록 묵인하는 것이 과연 바람직한 일인가? 한국 교계 내의 이단 정죄의 공신력을 추락시키고 교회 질서만 어지럽힐 소지는 없는지 묻고 싶다.


(3) 모 교단 신학과 학부 생의 경우


학부 학생일지라도 신학을 연구하고 실습하기 위해 특정 단체를 대상으로 그 교리를 연구검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기본 상식을 벗어나 경솔하게 다른 그리스도인들을 이단으로 정죄하고, 더 나아가 자신들의 어설픈 연구논문을 인터넷을 통해 불특정 다수인에게 유포시키는 것은 지나친 일이다(http://www.whiteon.or.kr/idan/jibang.htm). 그럼에도 이런 일이 버젓이 행해질 수 있는 것이 오늘날 한국 교계 이단 정죄의 현주소이다. 갓 입학한 의대 신입생들에게 생사가 달린 환자 수술을 맡길 수는 없다. 마찬가지로 법대 학생들에게 사형수의 재판을 주재하도록 허락할 수는 없다. 이런 원칙은 신학교 학부 학생들에게도 적용되어야 한다.


이제 이런 <상식을 벗어난 사례 제시> 차원에서 00대학 신학과 학부생들인 김O섭 외 4인의 논문의 결론 부분을 일부 인용 소개하고 간략하게 반박해 보겠다.


"...우리들이 지방교회를 이단으로 규정하는 이유는 크게 두 가지이다. 첫째, 그들의 잘못된 교리이다. 양태론적인 삼위일체 설명과 그리스도가 하나님과 사람이 혼합된 존재라는 설명과 죄에 대한 잘못된 설명들이 두드러진다. 인간의 본질을 삼분설로 나누면서... 둘째, 기존의 교회들을 교파라고 규정하고 교파 = 이단이라고 생각해서...교회론에 대한 문제가 지방교회를 이단으로 규정하는 결정적인 요인이 된다. ...그러나 그들은 소위 경건한 사람들인 것 같다. 확신에 차서 그들의 신앙생활을 한다.(이것은 우리도 배워야 하겠다고 생각하는데) 그들에게 열심이 있고 경건에 힘쓰는 모습들은 높이 평가 할 수 있으나..".


이에 대해 간략하게 반박해 보겠다.


우선 이들의 비판은 대부분 성경에 기초하지 않았다. 대신 자신들이 신학교에서 배운 특정교단 교리에 근거했다. 1) 먼저 계시록 1장의 금등대 설명에 대한 '양태론' 지적은 삼위일체의 경륜적인 방면을 보지 못한 경솔한 판단이다. '상징' 해석상의 이견에 불과하기도 하다 2) '그리스도가 하나님과 사람이 <혼합>된 존재'라는 지적은 레위기 2:4의 성경 용례대로 쓰인 mingling 의 의미를 유티커스의 오류로 이해한 것에 불과하다. 3) 죄에 대한 설명 역시 롬5:12에 대한 충분한 연구 없이 개혁신학의 관점으로 본 것일 뿐이다. 4) 기존의 수많은 분파들로서의 교회들을 교파라고 본다는 지적은 옳다. 그러나 이것은 보편적인 시각이지 지방교회만의 관점이 아니다. 또한 교파는 곧 이단이라고 본다는 단정은 근거가 없다. 결정적인 부분에 논리의 비약이 있는 경우이다.


이처럼 학문적 기초조차 미처 연마되지 못한 학부 신학생들까지도 특정 단체를 공개적으로 이단 삼단 정죄하고 그 자료를 인터넷에 유통시키고 있다. 아울러 대형교단이 공식적으로 이단이라고 정죄한 사람들이 여전히 한국 교계를 대표하는 이단감별사로 활동하도록 허용되고 있다. 이것이 과연 살아 계신 하나님 앞에서 합당한가? 이에 대해 책임 있는 단체들의 엄중한 바로잡음이 있어야 할 것으로 보인다.


2) 이단판정의 기준과 배경이 되어온 신학은 과연 성경적인가?


물론 모든 사람의 신앙은 원칙적으로 66권의 성경본문으로 검증된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성경본문을 어떻게 해석하고 이해하는가에 따라 같은 성경본문을 놓고도 의견이 대립될 수 있다. 원세호님은 자신은 신학을 배제하고 성경만으로 판단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의 비판 글을 보면, 그도 역시 자신의 신학배경을 토대로 성경을 해석하고 인용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그러므로 특정신학을 공부한 사람이 자신의 신학배경을 떠나 성경만을 말한다는 것은 현실성이 없는 말이다. 이러한 원세호님 개인의 신학에 대해서는 이미 앞에서 검증 평가를 한 바 있다. 그러므로 여기서는 더 나아가 한국교계 내에서 대표적인 이단 정죄 기준이 되어 온 교단교리들에 대한 검증을 시도할 것이다.


앞서 본 한 교계신문 기사에 따르면, 한국 교계의 이단 정죄는 초기 백년 동안은 총 5건이 채 안되었다. 그러나 예장 통합교단 소속의 최삼경 목사의 활동 이후 10년 동안 무려 30 여 건의 추가 이단 정죄가 있었다. 물론 여기에 예장 통합교단 교리와 최 목사 개인의 교리적 배경이 이단 정죄 기준이 되었음은 부인할 수 없다. 그렇다면 정통을 자처하는 장로교 통합 측과 장로교인인 최삼경 목사의 교리는 과연 성경적인가 하는 의문을 제기해 보는 것은 불가피한 일이 된다(최목사에 대해서는 앞서 이미 다뤘음으로 여기서는 통합 교단 교리를 평가하고자 한다).


(1) 예장 통합 측 교리를 판단하는 기준- (순수) 개혁신학


한 인터넷 사이트는 신학 자료를 <영국교회(성공회), 카톨릭, 동방정교회, 개신교회>로 분류하고 있다(http://www.utoronto.ca/stmikes/theobook.htm). 이것을 볼 때 개신교회 신학인 소위 <개혁신학>은 많은 신학들 중 일부일 뿐 원칙적으로 개혁신학만이 유일한 정통이라고 하기는 곤란하다. 위 분류에는 세대주의를 표방하는 형제회 신학은 포함되지도 않았다. 이런 점들을 감안하되, 장로교단이 다수 우위를 점유하는 한국 교계의 특성을 감안할 때 1차적으로 <개혁신학>을 예장 통합교단 교리를 판단하는 기준으로 삼고자 한다.


이에 대한 두 가지 전제를 추가로 밝히자면 다음과 같다.


첫째, 일반적으로 <개혁신학>이라고 하더라도 세부적으로 보자면 그 편차가 너무 크다. 즉 유럽을 제외하고 미국 만 보더라도 12개의 각기 다른 개혁주의 교단들이 있다(데이빗 F. 웰스 편집/ 박용규 역, 남부개혁주의 전통과 신정통신학, 도서출판, 엠마오, 1992, 11쪽). 그러므로 개혁신학 중에서도 어느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데, 편의상 예장 통합 측 교리를 판단하는 기준으로 미국 Faith 신학교를 졸업한 김효성 목사의 개혁신학적 관점을 원용하고자 한다(http://www.oldfaith.net/author.htm). 참고로 위 훼이스 신학교는 웨스트민스터 신학교를 세운 메이천 서거 후 매킨타이어가 중심이 되어 세운 성경장로교회 교단 소속 신학교이기도 하다. 따라서 이런 선택에 큰 이의가 없을 줄로 본다.


둘째, 개혁신학 위에 세워진 한국 내 장로교단들의 교리와 실행간의 현실적인 편차이다. 예를 들면, 종교개혁까지 교회는 매일, 혹은 최소한 매주 성찬을 거행하였다. 그러나, 중세 카톨릭의 과도한 성찬집중에 대한 반감으로 일부 개신교회가 성찬을 1년 1-2회로 축소시키고 그것도 형식화되었다. 칼빈은 그러한 축소를 "마귀의 간계"라고 비판하고 최소한 매주 1회 거행되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기독교강요 IV.xvii.46, http://jsrhee.hihome.com/worship.htm). 그럼에도 한국 내 소위 개혁신학을 표방하는 장로교단의 만찬 실행은 칼빈의 가르침과도 큰 차이가 있다. 따라서 개혁신학을 표방하는 교단과 통합측의 <실행상의 차이>는 일단 고려대상이 아니다.


(2) 예장 통합 교단 교리는 자유주의적?


위 훼이스 신학교에서 개혁신학을 배운 김효성 목사는 다음과 같이 자유주의는 이단임을 전제하고 말을 시작하고 있다(http://oldfaith.net/modernch/totalsol.htm).


# "오늘날 전세계적으로 대 교단들이 자유주의화 되었거나 배교(背敎)된 현 상황에서, 성경대로 믿는 목사와 신자는 자유화된 교단들 안에 머물러 있지 말고 거기로부터 분리되어 나와야 한다. 또한 보수교회들은 기독교의 이름으로 행해지는 무분별한 연합활동을 중지하고 마땅히 자유주의자들이나 자유주의적 교단들과 분리해야 한다. 왜냐하면 자유주의 신학은 기독교 역사상 찾아볼 수 없는 가장 무서운 이단이기 때문이다."


이어서 그는 <예장 통합 측 교단은 과연 건전한 교단인가?> 라는 질문을 제기한다. 그후 통합 교단이 <자유주의적>이라는 논리적 근거들을 다음과 같이 조심스럽게 제시하고 있다(http://oldfaith.net/chwtogo/D01-liberalism.htm#예장 통합측 교단은 건전한가).


# "그러면 서울 안에 영락교회, 새문안교회, 연동교회 등이 소속하고 있는 대한예수교장로회 통합측 교단은 과연 건전한 교단인가? 위에 인용한 합동측 총회임원회의 태도에 의하면 통합측 교단은 건전한 교단인 것처럼 여겨진다. 그러나 예장 통합측 신학교는 어떠한가? 그 신학교가 과연 성경적 바른 신학을 보수, 전수하고 자유주의 이단신학을 배격, 비판하고 있는가?"


# "예장 통합측이 자유주의적이라는 몇 가지 상식적, 경험적, 자료적 증거들을 열거해보자. 첫째로, 예장 통합측 신학교인 장로회 신학대학의 학장으로 오랫동안 재직하였던 이종성 박사가 신정통주의자이었다는 것은 한국교계에 잘 알려져 있는 사실이다. '신정통주의'란 성경의 역사적 사건들의 증거를 부정하는 현대 자유주의 신학의 한 파로서 칼 바르트, C. H. 다드, 라인홀드 니이버 등의 신학사상을 가리킨다. 둘째로, 같은 교단에 속한 한철하 박사(아세아연합신학대학원 설립자 및 원장)가 '장로회 신학대학이 신정통주의적이다'고 논평한 적이 있다는 것도 알려져 있는 사실이다. 셋째로, 장로회 신학대학이 성경의 무오성(無誤性)에 대해 부정적으로 가르친다는 것도 잘 알려진 사실이다. 넷째로, 그 신학교가 성경의 처음 다섯 권[모세오경]의 모세저작성을 부정하고 자유주의적인 문서설을 용납하고 또 이사야 40장 이하를 이사야가 쓴 것이 아니고 후대의 어떤 익명의 저자가 썼다는 자유주의 학설을 용납하고 있다는 것도 알려진 사실이다. 자, 우선 이상의 것들이 사실이 아닌가? 다섯째로, 예장 통합측 교단지도자들은, 비록 보수적이라고 알려진 인물들까지도, 오늘날 심히 배교적인 세계교회협의회(WCC)에 적극적으로 참여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다. 그 교단 안에서는 세계교회협의회의 문제점들과 그 단체로부터 탈퇴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이상의 사실들이 예장 통합 측이 자유주의적이라는 것을 충분히 보여주지 않는가?".


# "물론, 통합측의 모든 목사들과 성도들이 자유주의적이라고 말하려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그 교단의 목사양성원인 장로회 신학대학원이 자유주의적이라면, 그리고 그 교단의 지도적 목사들의 다수가 자유주의적이라면, 그 교단은 자유주의적이라는 말이다. 누가 예장 통합측이 성경적으로 건전한 교단이라고 반증하겠는가? 누가 장로회 신학대학원이 자유주의 신학을 배격하고 성경적 신학을 보수하고 전수하고 있다고 말하겠는가? 그러므로 예장 합동 측 같은 보수교단들은 예장 통합 측과의 교류와 교제와 협력을 즉시 중단해야 한다."


김효성 목사는 위에서처럼 같은 장로교단이지만 예장 합동 측을 보수교단으로 예장 통합 측을 <자유주의적> 교단으로 보고 둘은 교리적으로 교제할 수 없는 사이임을 분명히 하고 있다. 그는 이어서 통합측 교단이 표방하는 소위 <신 정통주의>의 두 핵심 인물에 대해 이단사상을 가졌다며 다음과 같이 그 근거를 제시하고 있다.


# "<칼 바르트(Karl Barth)의 이단 사상> : 1) 성경은 무오(無誤)하지 않다고 한다. 2) 성경의 역사적 사건들 전반에 대해 회의적이다. 3) 성경의 천지 창조 기록을 사가(saga)라고 한다. 4) 예수 그리스도의 사건들을 신화라고 한다. 5) 예수 그리스도의 처녀 탄생을 분명히 긍정하지 않는다. 6)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의 역사성을 부정한다. 7) 보편 구원론적 경향이 있다. 8) 몸의 부활을 부정한다. 9) 성경이 윤리의 객관적 규범임을 부정한다(http://oldfaith.net/chwtogo/D01-liberalism.htm)."


# "<루돌프 불트만(Rudolf Bultmann)의 이단 사상> : 1) 성경은 전설과 신화로 가득한 책이라고 한다. 2) 그리스도의 선재(先在)하심을 그노시스 신화로 보려고 한다. 3) 예수 그리스도의 처녀 탄생을 전설로 본다. 4) 예수 그리스도의 성육신(成肉身)을 신화로 본다. 5) 예수 그리스도의 기적들을 전설로 간주한다. 6)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신적 증거들을 부정한다. 7)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의 죽음을 신화적이라고 말한다. 8) 예수 그리스도의 육체적 부활을 전설이라고 말한다. 9)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을 부정한다. 9) 하나님의 나라 개념을 신화적이라고 한다."


위 김효성 목사가 지적한 칼 바르트와 불트만(몰트만)의 사상이 위와 같다면 보통 심각한 문제가 아니다. 소위 근본주의자들이 말하는 5 대 핵심교리 전체에 두루 심각한 문제점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만일 유학 나가서 이러한 이단 사상 소유자에게 배우고 돌아와 그것을 교단신학교에 와서 가르친다면, 그러한 교단 신학은 결코 다른 성도들의 신앙을 판단하는 절대기준이 될 수 없다. 그런 기준으로 남을 이단 삼단 할 수 없다.


장로교 통합 측 교단이 신 정통주의 신학을 기초로 하고 있다면 이는 웨스트민스터 신학교 변증학 교수인 반틸에 의해서도 정죄된다. 반 틸은 <신현대주의> <기독교와 바르트주의> 라는 깊이 있는 신정통주의 비판서를 발표했다. 아울러 그는 이 책에서 <신정통주의가 자유주의(이단사상)라는 사실은 전 생애에 걸쳐 밝혀낼 과제>라고 했다(위 남부개혁주의전통과 신정통신학, 155쪽).


통합교단의 교리적 기초를 이루는 신정통주의가 설사 이단사상은 아니라고 해도 칼 헨리에 의하면 <신실한 신학적인 표준으로서의 역할>을 할 수 없다. 헨리는 자신의 <개신교딜레마> 라는 책에서 '이 운동(신정통주의)의 유익한 국면들을 인식하였으나, 신정통주의가 너무나 많은 자유주의 전제들을 지니고 있다'라고 했다. 그는 구체적인 증거로 '창조에 대한 진화론적인 견해, 성경해석에 대한 고등비판, 계시를 명제론적인 용어(propositional terms)들로 정의하기를 망설이는 면' 등을 지적했다(위 책, 153-154쪽).


따라서 위 내용들을 종합해 볼 때,


그 동안 한국 교계 내에서 지방교회를 포함한 30여 개의 단체와 개인을 이단이라고 정죄한 장로교 통합 측 교리는 같은 장로교 신학자들의 기준으로 볼 때도 문제가 많음이 입증되었다. 즉 통합교단 교리가 <자유주의 적>이라면 김효성 목사 기준에 의하면 통합교단 신학은 <이단적>이다. 그러나 조금 양보해서 <자유주의 요소가 다수 내포된 신 정통주의>라고 하더라도 헨리의 관점에 의하면 통합교단 교리는 <신실한 신학적인 표준>으로서의 역할을 할 수 없다. 이것은 예장 통합 교단의 이단 판정 주체로서의 자격에 심각한 의문을 던지게 하는 결론이 아닐 수 없다.


그렇다면, 통합교단 자체 또는 소위 이단 감별사를 자처한 여타 단체나 개인은 그 동안 <신학표준에 못 미치는 기준>으로 수많은 이단들을 양산해 온 <통합 교단>과 <통합 교단의 이름으로 행해진 과거의 이단 결정들>에 대해 전면적인 재평가를 실시해야 옳다. 이것은 스스로 자기 뼈를 깎는 일처럼 고통스럽겠지만 하나님의 교회의 공의를 세우려면 피할 수 없는 과정으로 보인다.


아울러 개혁신학을 기준으로 볼 때, <기감>과 <기장 교단>도 자유주의적 교단이라는 지적이 있는 만큼, 그 동안 한국 내에서 <어느 어느 교단은 정통교단들>이라는 암묵적인 합의가 있어 온 것도 사실에 맞게 재고되어야 한다(http://oldfaith.net/modernch/6p3.htm).


이러한 점들을 무시한 채 앞으로 누구든지 성경이 아닌 자신들만의 교리기준으로 함부로 이단 삼단 한다면, 이것 역시 로마 카톨릭의 마녀사냥 식 이단 정죄라는 비판을 피하기 어려울 것이다. 이러한 이단 판정은 하나님이 함께 하신 결정이 아님으로 권위도 없다. 오히려 하나를 힘써 지켜야 할 그리스도의 몸의 지체들을 과도하게 격리시켜 불화와 불신만 조장할 가능성이 크다. 이것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봉사가 아니다.


3) 원세호님의 지방교회 비판은 공정했는가?


만일 어떤 사람의 신발과 발의 크기가 다르면 무엇을 기준으로 다른 것을 맞추어야 옳은가?


원세호님의 비판의 대상이 되는 워치만 니와 위트니스 리의 신학은 쉽게 말해 그 동안의 교회 역사상의 정통 신학적 관점의 종합이다. 물론 그 모든 주장 내용이 성경에 근거한다. 즉 하나님의 주권 같은 개혁신학의 핵심교리는 물론 한국 교계 내에서는 낯 설은 속 생명파, 형제회 신학, 동방정교회 신학의 적극적인 면들을 다 포함한다. 그런데 원세호님은 이러한 <큰 발>이 자신이 신학교에서 배운 교리라는 <작은 신발>에 안 들어간다며 신발보다 큰 만큼 남의 발을 정죄하고 잘라내려 하고 있다.


지금이라도 원세호님이 지방교회를 참되게 비판하기 원하면 이렇게 해 보기 바란다. 우선 지방교회측이 워치만 니와 위트니스 리가 가르쳤던 진리들을 다른 신학적인 틀과 비교 평가한 논문들을 실어 왔던 신학잡지인 '확증과 비평'의 지난 8년간의 자료들을 읽기 바란다(http://www.affcrit.com). 만일 시간이나 언어상의 제약이 있어서 이것이 어려우면 최소한 한국복음서원이 펴낸 총 8권의 '신학의 결론 시리즈-하나님, 그리스도, 성령, 믿는이들(1,2), 교회, 왕국, 새 예루살렘'을 두 세 번 읽어야 할 것이다. 이것은 원세호님 이외에 지방교회 진리에 대해 변증 차원에서 연구하고자 하는 다른 사람들도 마찬가지이다.


그러나 아직까지 한국 교계 내에 이 정도라도 지방교회를 연구한 사람은 한 사람도 없다. 다만 시중에 나온 <설교 형식의 책자 몇 권>을 문맥을 무시한 채 떼어 내어 자신들의 기호대로 판단하고, 결정하고, 일방적으로 발표했을 뿐이다. 그러나 이처럼 제대로 된 연구에 근거하지 않는 성급한 판단은 성경이 금하고 있는 거짓증거일 뿐이다(출20:16).


지방교회가 가르치는 진리들 중에는 한국 교계 다수가 아는 것과 다른 부분이 있을 수 있다. 이것은 위에서 보듯이 같은 장로교단인 통합 측과 합동 측 사이에도 마찬가지이다. 합동측과 기장측 사이에도 핵심 진리 이해에 큰 차이가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렇다면 차이가 나면 무조건 상대방이 틀린 것이라고 할 것이 아니라 과연 어느 쪽이 성경적인가를 확인해 보아야 한다. 이것을 간과한 채 일방적으로 상대방을 이단 삼단 하는 것은 부당하다. 지방교회측과 통합 측이 교리 차이가 있을 때 항상 <통합 측 교리>가 정통이라는 가정은 사실이 아니다.


또한 진리가 다르면 그것이 항상 이단성 여부로 이어지는 것도 아니다. 소소한 진리해석상의 이견을 가지고 가혹하게 정죄하지 말아야 한다.


이에 반하는 원세호님의 처신의 한 예로 이분설, 삼분설 대립을 보기로 하자.


원세호님은 자신의 비판 책자에서 지방교회 인간론을 비판했다. 그의 비판의 대부분은 이분설이 맞고 삼분설(혹은 영과 혼)은 틀렸다는 것에 기초하고 있다. 그러나 삼분설 또는 이분설에 대한 주장들은 초대 교부 때부터 참된 성도들 사이에 있어온 이견일 뿐이다. 그러나 삼분설 혹은 이분설은 믿음의 골격을 이루는 진리는 아니다. 따라서 어느 것을 믿든 그것 때문에 구원이 취소되지 않는다. 이단이나 정통을 구분 짓는 잣대도 아니다.


그럼에도 원세호님은 삼분설 지지자들을 '성경을 변질시킨다'느니 '기독교를 미혹하여 파괴하려는 의도'가 있다는 등 경솔하고 과장되게 말했다.


뒤에서 다시 보겠지만, 원세호님 같은 이분설 지지자는 <지식과 이론으로만> 하나님을 알기 쉽다. 그러므로 그들에게 '성경지식'을 말해보라고 하면 시간이 부족할 정도로 할말이 많다. 그러나 최근에 '체험한 주님'을 말해보라고 하면 그들은 별로 할말이 없을 것이다. 이들은 <사람 밖에 계신 하나님>은 잘 알지만 <사람 안에 들어오신 하나님>에 대해서는 별로 체험이 없기 때문이다(http://www.localchurch.kr/1413). 그러나 사도 바울은 '내가 산 것이 아니요...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다'고 했다(갈2:20). 날마다 그리스도를 사는 바울은 당연히 주님에 대해 체험적으로 할 말이 많다. 그렇다면 바울과 원세호님 중 누가 우리의 본인지는 분명하지 않은가.


한편, 하나님을 참되게 체험한 사람은 자신 안에서 날마다 이뤄지는 영적인 싸움을 통해 삼분설을 경험적으로 시인할 수밖에 없다.


즉 사람이 우리 생명이신 주님을 참되게 영접하면, 우리의 영 안에서는 그 즉시 영이신 하나님과의 연합이 이뤄진다(고전6:17). 이러한 거듭남을 체험한 성도는 자신의 깊은 속에 있는 <연합된 영>의 인도와 이를 저지하는 <또 다른 세력>간의 갈등을 날마다 맛본다. 그런데 그 저지세력의 핵심은 우리의 변화되지 못한 '생각'(mind) 또는 생각에서 비롯된 '다른 의견'이다. 바로 여기서 주목할 것은 이 '생각'과 '사람의 영'은 각기 다른 두 가지라는 점이다. 즉 <사람의 생각>은 <사람의 영>(human spirit)도 아니고 그렇다고 <사람의 몸>(human body)도 아니다. 뒤에서 보겠지만 '생각'은 바로 <사람의 혼>(human soul)의 주도적인 부분이다. 이러한 이해는 로마서 8:6 본문을 깊이 연구할 때 더 선명해 진다. 이 점은 다시 언급하겠다.


이상과 같은 서론의 글은 독자들이 원세호님과 지방교회측의 진리공방을 객관적으로 관전하는데 도움이 될 것으로 확신합니다. 아무쪼록 이런 변증을 통해 한국교계 내에 성경을 혼잡시키는 누룩이 제해지고 바른 성경진리가 제시되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2. 원세호님의 지방교회 <인간 창조 목적론> 비판 재반박


원세호님의 연구는 학문적인 글쓰기가 아니다. 입체감이 없다. 다만 비판 상대방의 지엽적인 말꼬리를 잡아 인용하고 그것을 단편적으로 부인하는 식의 글쓰기를 되풀이하고 있다. 사정이 이러함으로 원세호님의 지방교회측 <인간창조 목적론> 비판 글은 세부 항목들을 어떤 체계도 없이 여러 개로 나누어 뒤섞어 놓은 모습이다. 이러한 산만한 내용들을 공통 분모를 근거로 취합 분류해 보면 원세호님의 논지는 크게 다음 두 가지로 요약된다.


첫째는 <하나님이 사람을 창조하시고 사람을 통해 사탄을 포함한 다른 피조물들을 다스리도록 했다>는 주장이 성경근거가 없다는 비판이다. 원세호님은 이런 주장은 '하나님을 무시하고 사탄만을 높여서 성도를 미혹시키는 말'이라고 했다. 과연 그런가?


둘째는 <하나님의 또 다른 방면의 창조 목적이 사람이 하나님을 닮아 하나님을 표현하게 하는 것>이라는 주장이 틀렸다는 것이다. 원세호님은 이런 말은 <마치 사람이 그림을 그리고 그 속에 들어가 있는 것 보다 더 어처구니없는 주장>이라고 했다. 원세호님의 이런 글을 읽고 있으면 그가 생명 되신 아들 하나님(요일5:12)을 참되게 영접한 사람인지조차 의심스러워 진다. 이제 재배열 해 가면서 항목별로 간략하게 비판해 보겠다.


A. 통치권 관련 비판 재 반박


원세호님이 항목을 달리해서 썼지만, 아래 내용들은 그 내용과 논점이 동일하다. 따라서 일괄적으로 묶어 반박하고자 한다. 다만 원세호님의 글 4번과 10번은 편의상 이와 별도로 2)와 3)으로 나누어 각각 반박하겠다. 원세호님이 처음에 글을 쓸 때 이런 식으로 분류하여 체계적으로 썼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있다는 점을 참고로 밝혀 둔다.


1) 원세호님의 비판:


<① 지방파의 '워치만 니'는 하나님께서 하나님 자신의 통치권을 사탄에게 빼앗겼던 것을 도로 빼앗아 그 권리를 사람의 손에 두고자 인간을 지으셔서 사탄이 권리를 못 잡게 하셨다고 주장한다. 한 마디로 말해서 성경의 근거가 없는 거짓이다. 이는 사탄만 높이는 주장이며 인간 창조가 사탄의 억제와 권리 쟁탈 수단이라는 주장이므로 성경을 부인하는 잘못된 창조론이 된다...인간 창조는...인간들이 하나님의 자녀들이 되고 그 인간들 중 하나님의 자녀들이 그 은혜의 영광을 찬미케 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별것도 아닌 사탄(벧전5:8-9; 약4:7)의 권세 빼앗는 것이 창조 목적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크게 변질된 주장이다>


<③ 지방파는 '사람이 사탄의 손에서 이 땅을 탈환치 못하면 창조 목적을 달성 못했다'고 주장한다. 이 땅은 하나님의 것이며 '의인이 땅을 차지함이여' 하셨는데(시37:29), 사탄에게 탈환해야 창조 목적을 달성한다는 주장이 어떻게 성립하는가? 이런 주장은 성경을 변질시키고 사탄만 높이는 것이다. 또한 하나님은 창조해 놓으시고 사탄에게 땅이나 빼앗기는 무능한 분으로 취급하는 망령된 주장이다.>


<② 지방파는 하나님께서 자기 원수를 멸하시려고 피조물 사람을 이용하여 피조물 사탄을 멸하기 원했다는 주장이다....위에 인용한 성경은 영계에서 이미 심판을 받은 사탄이 하늘에서 떨어졌음을 말하며, 이는 예수님이 인간이 되셔서 십자가에서 죽으시기 전의 사건이다.>


<⑦ '워치만 니'는 '하나님이 피조물 사탄 처리를 위하여 피조물 사람을 지으시고'라고 주장한다. 위 주장은 예수님이 인간이 되신 것은 사람을 통한 마귀를 멸하는 방법이라는 주장인 것이다. 그러나 이미 지적한 이사야서14:12-13; 겔28:13-16; 눅10:17-18의 증거에 의해 사탄은 심판자 공의이신 하나님에게 형벌을 받고 지금은 계20:10의 최후의 형벌이 마무리 될 때까지 형벌 계류 중인데...>


<⑨ '워치만 니'는 인간이 타락 후에도 여전히 권위를 갖고 사탄의 권세를 정복하게 하신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러한 것은 이미 벧전5:8-9; 약4:7등에 의하여 물리침 받은 존재인 것이 아닌가. 이미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기신 증거가 요16:33; 고전15:57; 1요5:4-5; 막16:17; 행16:18 등에 나타났고, 이미 사탄의 권세 싸움은 하나님의 형벌 아래 있고, 이미 사탄은 패배를 당했는데 무엇을 크게 생각해서 사탄만 높이는가? 이것은 다른 속셈이 있으니 성경의 변질을 도모하려는 것이다.>


** 반박: 우선 원세호님의 위 주장을 간략하게 요약해 보자.


원세호님은 1) 사람은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은혜의 영광을 찬미하도록 창조되었지 별 것도 아닌 사탄의 권세를 빼앗기 위해 창조되지 않았다. 2) 땅은 하나님 것이고 이미 구약시대에 의인에 의해 차지되었는데 왜 또 차지해야 한다고 하는가? 3) 사탄은 이미 십자가 사건 이전에 하늘에서 떨어졌는데 왜 또 처리할 것이 있다고 하느냐. 4) 사탄은 예수 그리스도가 이미 이기셨고 물리침 받은 존재인데 왜 또 사람이 사탄의 권세를 정복해야 한다고 성경을 변질시키려고 하는가? 라고 말하고 있다.


위 원세호님의 위 주장이 사실이라면, 사람은 사탄에 대항하여 아무 것도 할 필요가 없다. 또한 사탄은 마치 사회와 격리되어 감옥에 갇혀 있다가 사형집행 시 사라질 사형수처럼 한 곳에 결박되어 있고 이 사회에서는 영향력이 조금도 없어야 한다. 과연 그러한가? 그러나 그렇지가 않다. 오히려 정 반대이다. 주변의 현실을 볼 때, 사탄은 여전히 이 세상에서 강력한 힘을 발휘하고 있다. 그러므로 믿는 이들은 믿음으로 힘써 마귀를 대적해야 한다. 이것을 부인하고 망령된 주장이라고 조롱하는 원세호님의 주장이야말로 성경본문과 크게 다른 거짓 가르침이다. 원세호님이 자신의 주장 근거라며 위에서 인용했던 다음과 같은 벧전 5:8-9 말씀이 본인의 잘못된 가르침을 오히려 지적해 주고 있다.


'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와 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 너희는 믿음을 굳게 하여 저를 대적하라...'.


원세호님의 위 주장은 영적 전쟁의 필요성을 부정하고, 삼킬 자를 찾으러 우는 사자처럼 다니는 사탄 앞에 성도들을 무장해제 시키려는 비 성경적인 가르침이다.


이제 지방교회측의 인간 창조 목적과 사탄에 대한 관점을 간략하게 소개해 보겠다.


(1) 인간창조 목적에 대한 소개


워치만 니와 위트니스 리는 창세기 1:26의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대로 지음 받음'이란 말씀을 근거로 <(단체적인)사람이 하나님을 표현하는 것>,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게 하자'를 근거로 <타락한 천사인 사탄을 포함한 피조물을 다스리는 것>을 하나님의 인간 창조 목적으로 본다. 그리고 이러한 두 가지 목적인 하나님을 표현하고 만물을 다스리는 실제는 하나님이 사람으로 오셔서 죽고 부활하신 후 사람인 우리 안에 들어오셔서 우리를 통해 사심으로 성취된다고 믿는다.


그러므로 생명 되신 하나님 자신이 사람 안에 들어오심(골1:27, 롬9:20-21)과 우리의 옛사람이 날마다 부인되고 우리 안에서 그리스도가 살아 나타나시는 생활(갈2:20)을 매우 중요시 한다. 또한 이러한 창조목적의 실현은 우리의 영적 생명의 성숙에 비례함을 잘 알고 있다. 그러므로 어떤 밖의 일이나 노력이 아니라, 하나님의 형상이며 마귀를 이기신 분인 그리스도 자신의 생명과 인격이 우리 안에서 자라고 표현되시기를 갈망한다. 이 모든 것들은 다 전적으로 성경에 근거한다.


독자들이 위와 같은 사전 지식을 가지고 다음 인용 글을 읽는다면 본문이해에 도움이 될 것으로 믿는다.


# "하나님은 왜 우주를 지으셨고 왜 인류를 지으셨는가? ...하나님은 단지 당신에게 평안과 축복과 죄사함과 영생 등등을 주시려는 것만이 아니다. 그분의 중심 사상은 바로 그분 자신을 사람 안으로 역사 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옛 창조와 새 창조 안에서 최종적인 목적은 무엇인가? 그것은 바로 그분 자신을 우리 안으로 역사하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목적이다....그분이 우주를 창조하신 것은 사람으로 그 중심 안에 거하게 하기 위함이며...'(워치만 니, 사역의 재개 메시지 기록(상), 한국복음서원,117쪽).


# "돌은 얼마나 매끄러워지든지 관계없이 여전히 돌이며, 그것의 성분 또한 바뀌지 않는다. 하나님의 사역은 돌에게 생명의 운행을 시작하여 돌의 모난 부분을 없애실 뿐 아니라 그의 본질까지 변화시켜 돌로 진주가 되게 하시는 것이다. ...한 면으로 하나님은 당신으로 말미암아 사역...복음전파...교회로 다스림을 얻을 수 있게 하시며 또 한면으로는 이로 인해 그분 자신을 당신 안으로 더 하신다. 하나님의 목적은 당신의 잘못을 고치려는 것이 아니라 그분 자신을 당신에게 역사하여 그분 자신으로 당신을 충만케 하고, 하루 하루 한 해가 지날수록 그분이 당신 속으로부터 흘러나오도록 하려는 것이다(위 책, 132 쪽).


위 내용을 정리하자면 이렇다.


하나님은 사람을 거룩하고 흠이 없는 하나님의 자녀로 만드시기 위해 사람을 창조하셨다(엡1:4-5). 그렇다면 타락한 사람이 어떻게 하면 거룩하고 흠이 없게 되는가? 그것은 거룩하고 흠 없는 인격이신 그리스도 자신이 생명으로 우리 안에 들어오셔서 날마다 자라시고(증가되시고) 형상을 이뤄가시는 길 밖에 없다(골2:19 원문, 갈4:19). 옛사람의 개선이나 노력은 통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 이 땅에 오신 주님은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고 더 풍성키 얻게 하려 함이라'고 하셨다(요10:10).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사도 된 바울도 주님자신을 풍성한 은혜로 사람들에게 공급함으로 성도들 안에 그리스도의 형상이 이뤄지도록 수고했다(엡3:8, 갈4:19).


이처럼 그리스도가 우리 안에서 역사하신 자연스러운 결과는 1) 사람인 우리를 통해 하나님의 형상이 표현되고 2) 사탄 마귀의 궤계를 포함한 피조물들을 다스리는 권위가 나타난다는 것이다.


(2) 사탄 마귀와 땅에 대한 관점


원세호님은 이 땅은 하나님의 것이고 이미 구약시대부터 의인들에 의해 소유되었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사탄도 이미 하늘에서 떨어졌고 최후 심판만 기다리고 있다고 했다. 원세호님의 이런 말을 들으면 이 땅(세상)에서 사탄의 입지는 전혀 없어야 한다. 그러나 성경은 이와 정 반대로 말한다.


즉 요일5:19은 '또 우리가 아는 것은...온 세상은 악한 자 안에 처해 있고'라고 한다. 마12:26은 '사탄의 왕국'을 말하고 있다. 요일3:10은 '이러므로 (이 세상에서) 하나님의 자녀들과 마귀의 자녀들이 나타나나니'라고 한다. 또 요일3:8은 '죄를 짓는 자는 마귀에게 속하나니 ...하나님의 아들이 나타나신 것은 마귀의 일을 멸하려 함이라'고 한다. 요13:31은 '세상 임금'을 말한다. 마4:8-9에서 마귀는 예수님이 자신에게 경배하면 '천하 만국(all the kingdoms of the world)과 그 영광'을 주겠노라고 흥정했다. 계11:15는 '일곱 째 천사가 나팔을 불매...세상 나라가 우리 주와 그 그리스도의 나라가 되어' 라고 말한다.


위 내용을 종합해 보면, 현재 이 세상의 임금(배후 조종자)은 마귀이다. 그러므로 온 세상은 악한 자인 마귀의 손 안에 있다. 마귀는 자신의 지배아래 있는 소유물들을 미끼로 마귀의 자녀들을 지배하고 있다. 이런 일은 세상 왕국이 주님자신과 이긴 성도들이 공동 왕으로 다스리는 주와 그리스도의 왕국이 도래할 일곱째 나팔이 울려 퍼지는 때까지 계속 될 것임을 말해준다. 그러므로 우리는 주님의 직접적인 통치(왕국)가 하늘에서 뿐 아니라 땅에서도 속히 이뤄지도록 기도해야 한다(마6:10). 이것이 성경이 말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 땅과 관련된 사탄 마귀에 대한 원세호님의 관점은 이에 반대되고 또 뒤죽박죽이다. 원세호님은 사탄이 이미 십자가 사건 전에 하늘에서 떨어졌다고 했다. 그렇다면 어떻게 그가 여전히 공중(the air)에서 권세를 잡고 있으면서 이 땅 위의 불순종의 아들들 가운데 역사 할 수 있는가(엡2:2)? 엡 6 장에서 바울은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을 말한다. 이어서 바울은 성도들에게 마귀를 대적하도록 하나님의 전신 갑주를 입으라고 권면하고 있다. 원세호님 논리대로라면, 이런 사도 바울도 '성경을 변질시키고 별것도 아닌 사탄만 높이는' 자가 된다. 또한 이 땅이 이미 구약시대 때부터 의인들이 차지해 왔다면, '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이라는 말씀(마5:5)은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사탄에 대해서는 뒤에서 다시 상세하게 다룰 것이다. 다만 여기서는 사탄에 관한 지방교회 입장을 설명하는 회복역 성경 각주만을 소개하고자 한다(회복역 각주).


2) <원세호님의 비판: ④ 하나님의 창조 목적이 '한 권세를 잡은 사람을 얻어서 이 땅을 다스리는 것이었다'고 주장한다. 천지를 창조하신 전능자께서 사람을 얻어 이 땅을 다스리게 하고자 성자 하나님을 인간이 되게 하여 통치하시는가? 참으로 당치 않는 웃기는 일이다....예수님이 인간이 되신 목적은 사탄을 멸하고 통치하는 저속한 목적에 있는 것이 아니다...주님의 발자취는 인간을 독생자 예수님의 형상을 본받게 하려고 예지 예정하시고 창세 전에 우리를 택하신 것이다(엡1:4-6).>


** 반박: 우리는 마16:23 에서 하나님의 뜻을 가장 방해하는 것이 사람과 하나된 사탄의 역사임을 본다. 즉 원세호님의 지적대로 인간이 독생자 예수의 형상을 본 받는 하나님의 뜻을 이룸에 있어서 가장 방해하는 것은 사탄의 영향아래 있고 심지어 사탄과 하나된 우리의 옛 자아이다(마16:24). 그러므로 땅을 다스리고 정복하는 문제는 구체적으로 우리의 옛 자아가 처리되는 것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단순히 물질적인 땅을 다스리는 문제만이 아니다.


흑암의 왕국인 사탄의 왕국은 먼저 '강한 자를 결박한 후에야' 그 왕국 안에 있는 세간을 늑탈 할 수 있다'고 성경은 말한다(마12:26, 29). 여기서 세간을 늑탈한다는 것은 마귀의 자녀들인 불신자들에게 복음을 전하여 구원받게 하는 것(요일3:10, 골1:13)을 포함한다. 더 나아가 사탄의 영향으로 높아진 모든 교만한 생각을 굴복시켜 순종케 하는 주님의 징계의 역사도 포함한다(고후10:4-6, 히12:9-10). 이것은 그리스도의 몸을 건축하는 과정이기도 하다(마16:18, 엡4:10-11). 결코 저속한 목적이 아니다.


또한 성경은 인자가 자기 영광으로 모든 천사와 함께 오셔서 자기 영광의 보좌에 앉으실 것과 모든 민족을 그 앞에 모으실 것을 말한다(마25:31-32). 계시록 20:6은 첫째 부활에 참예한 자들이 하나님의 제사장이 되어 천년동안 그리스도와 더불어 왕 노릇 할 것을 언급하고 있다. 원세호님의 눈엔 이런 성경 말씀들이 <참으로 당치 않는 웃기는 일>로 보이는가?


3) <원세호님의 비판: ⑩ '워치만 니'는...하나님이 인간에 주신 치리권은 창1:28-29에서 '땅을 정복하라 생육하고 번성하라...'라고 하셨는데 이 치리권을 빼앗겨서 사탄이 행사하고 있다는 말인가? 둘째 아담이신 예수 그리스도는 치리권 회복을 위하여 오신 것이 아니다. 회복이라 함은 비정상적인 것을 정상으로 바로 잡는 것인데 언제 하나님의 뜻이 실패하신 일이 있는가? 전능하신 여호와께서 실패하시다니 그럴 수 없는 것이다...피조된 인간들을 살려주시는 일을 하시는 것이지 무슨 회복을 하고 치리권을 행사한다는 것인가? 그러므로 지방파는 목적 있는 속임수를 위하여 이러한 주장을 하는 것이라 여겨진다.>


** 반박: 우선 워치만 니의 글을 인용 소개 한 후 반박해 보겠다.


<워치만 니의 주장: ⑩ "하나님은 원래 사람으로 하여금 마땅히 통치권을 갖고 땅을 다스리도록 정하셨지만 애석하게도 사람은 타락해 버렸다. 그러나 결코 첫 사람이 끝났기 때문에 모든 것이 끝나 버린 것은 아니었다. 하나님은 첫 사람(아담)에게서 얻으실 수 없었던 것을 둘째 사람(그리스도)에게서 얻으셨다. 하나님이 정하심은 사람이 통치권을 차지함으로 이 땅을 회복하시려는 것이다. 하나님은 피조된 자(사람)로 피조된 자(사탄)를 처리하도록 정하셨다">(13(거룩하고 흠이 없어라). p.21).


위 워치만 니 주장은 다음과 같은 성경적인 사실을 말하는 것이다.


아담은 피조물을 다스리는 권세를 받았지만 타락함으로 그 권한을 상실했다. 그러므로 로마서 5:17은 '한 사람의 범죄를 인하여 사망이 그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왕노릇 한다'고 말한다. 또한 히2:14는 마귀가 사망의 세력을 잡고 있다고 말한다. 그런데 이어지는 다음 구절은 '타락한 모든 인류가 죽기를 무서워하므로 (마귀에게) 일생에 매여 종노릇 한다'고 말한다. 이것은 첫사람 아담의 후손들에게서 일어나는 부인할 수 없는 사실 아닌가?


그러나 다시 롬5:17 하반절은 '은혜와 의의 선물을 넘치게 받는 자들이 한 분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생명 안에서 왕 노릇 한다고 말한다. 이것이 첫 사람 아담에게서는 얻을 수 없던 것을 둘째 사람인 예수그리스도를 통해 우리가 체험하고 있는 바가 아닌가?


그럼에도 원세호님은 '전능하신 여호와께서 실패하시다니 그럴 수 없다느니' '지방교회가 목적 있는 속임수를 위하여 이러한 주장을 한다느니' 등등의 억지 비난으로 본문의 의도를 호도하고 있다.


이처럼 문맥과 상관없이 토막 토막 끊어내어 자기 마음대로 해석하고 무책임하게 정죄하는 원세호님의 비판 글은 사실을 왜곡시킬 뿐이다. 차라리 독자들은 비판 대상이 된 원저인 '거룩하고 흠이 없어라'(한국복음서원) 책자를 직접 일독하는 것이 더 좋을 것 같다(http://www.kgbr.co.kr/). 이 책의 서문은 이 책이 성경의 네 여인-하와(창세기 2장), 아내(엡 5장), 여인(계 12장), 신부(계21-2장)-에 기초하여 교회에 관한 완전한 조망을 주고 있다고 소개하고 있다. 아래 영어 싸이트를 방문하면 위 책자 전체를 읽어 볼 수 있다. http://www.ministrybooks.org/books.cfm?id=1AAE


B. 하나님을 표현함에 대한 비판 반박


4) <원세호님의 비판: ⑤ '워치만 니'는 창조 목적이 사람이 하나님을 담아 그 분을 살며 그 분을 나타내는 것이라고 주장하나, 피조물 인간이 어떻게 창조주를 '담'는가, '담는게' 무엇인가? 어떤 물건을 그릇 속에 넣는 다는 말이 아닌가? 언젠가는 인간은 죽는다. 그런데 그 속에다 물건 같이 하나님을 담아서 하나님을 살아간다는 것인가?> <⑧ '워치만 니'는 인간은 하나님을 담기 위한 창조물이라고 주장한다...창조주 여호와 하나님이, 만물보다 거짓되고 부패한 인간(신10:14; 느9:6; 시146:6; 사44:24; 롐17:9) 에게 담기신다는 것은 망령된 주장이다. 마치 사람이 그림을 그리고 그 속에 들어가 있는 것 보다 더 어처구니없는 주장이 아닌가?>


** 반박: 성경에서 사람을 그릇으로 표현한 대목은 많다. 이 그릇에 우리는 최고의 가치인 하나님을 담을(모실) 수 있다. 롬9:23-24는 '영광 받기로 예비 된 긍휼의 그릇에 대하여 그 영광의 부요함을 알게 하고자 하셨을지라도 무슨 말하리요 이 그릇은 우리니...' 라고 한다. 딤후2:21는 '누구든지 이런 것에서 자기를 깨끗하게 하면 귀히 쓰는 그릇이 되어 거룩하고 주인의 쓰심에 합당하며' 라고 한다. 주님은 바울을 가리켜 '이 사람은 내 이름을 이방인과 임금들과 이스라엘 자손들 앞에 전하기 위하여 택한 나의 그릇이라'고 하셨다(행9:15). 왜 '나의 종' 또는 '나의 사역자'...라고 안 하시고 <나의 그릇>이라고 하셨을까? 고후 4:7은 '우리가 이 보배를 질그릇에 가졌으니'(we have this treasure in earthen vessels)라고 한다. 그렇다면 질그릇인 우리 안에 담긴 보배는 과연 무엇인가? 우리 안에 생명으로 계시는 <주 하나님 자신>이 보배가 아니겠는가?(회복역 각주).


원세호님은 왜 사람을 묘사할 수 있는 수 많은 단어가 있음에도 성령은 '그릇'이라는 말을 선택하셨는지 묵상해 보기 바란다. 이 글을 읽는 독자들에게 <사람이...질그릇>이라는 말씀에 빛이 있기를 바란다.


덧붙이자면, <창조주 하나님이 사람 안에 들어오시는 것이 망령되고 불가능 한 주장이다>라는 원세호님의 말은 원세호님이 참되게 거듭난 사람이 아닐 가능성을 말해 준다. 이것은 그의 삼신론 이단 사상이 구원론에게 까지 영향을 준 결과이다. 또한 그는 <창조주 하나님이 부패한 인간 안에 담기실 수 없다>고 말했다. 이것은 거룩하신 하나님이 '육신'(요1:14)를 진짜 입었을 리가 없다던 영지주의자들과 도세티스트 이단들과 같은 논리이다. 성경은 우리 안에 계신 하나님을 가르치고 있다(회복역 각주).


5) <원세호님의 비판: ⑥ '위트니스 리'는 창1:26-27의 '창조주께서 복수 대명사를 사용한 것은 창조된 사람이 단체적인 사람이 있음을 의미한다 하고 이것이 하나를 지키기 위한 것이' 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위의 성경 구절의 창조과정 설명에는 ...창조주 하나님이 복수 명사로 사용되었으므로 '우리'라는 일인칭 복수 대명사를 쓰셨고 삼위일체로 예표된 엘로힘 여호와를 나타내 주시는 것이 아닌가? 어떤 의도를 설정하고 성경 근거도 없이 다른 성경을 인용하고 미혹시키고 있다.>


** 반박: 위트니스 리 본문을 직접 인용하고 반박해 보자.


<위트니스 리 주장: "자기의 형상을 따라 창조된 사람을 언급할 때 하나님은 복수 대명사를 사용했다. 이 구절은 하나님에 대해 창조된 한 사람이 단체적인 한 사람이 있음을 의미한다. 하나님의 의도는 많은 사람을 얻은 것이 아니라 단체적인 한 사람을 얻는 것이다. 이것은 하나를 지키기 위한 것이다">(29.(참 하나의 입장) p.14).


위 두 글들을 찬찬히 비교해 보면 원세호님이 완전히 동문서답을 하고 있음이 드러난다. 위트니스 리 본문은 창1:26-27에서 '창조된 사람'이 복수 대명사로 쓰였다는 말을 하고 있다. 이것은 창조된 사람을 '그들'이라고 복수로 받은 다음 내용으로 선명하게 입증된다. '...그(들)로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육축과 온 땅과 ...다스리게 하자 하시고'(and let them have dominion over..). 그런데 이것을 원세호님은 창조주가 복수인 하나님을 말하는 것으로 알아들었다.


6) <원세호님의 비판: ⑪ 위트니스 리는 '하나님의 인간 창조가 단지 생명 있는 호흡뿐이었고 영원한 생명이 없었다. 그래서 하나님이 영원한 생명을 상징하는 생명나무 앞에 두었으나 생명을 취하기 전에 타락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위 말은 거짓이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대로 인간을 만드셨고(창1:26-27), 아름답고 먹기 좋은 나무가 있었던 그 동산에 생명나무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가 아울러 있었기 때문이다. 더욱이 문제가 되는 것은 결국 생명의 호흡만 있는 인간과 생명 있는 인간으로 분류하게 되는 것이므로 거짓이다. 원 창조 시부터 인간은 영원한 생명인 영이 몸에 내재해 있었기 때문이다(마19:4).>


** 반박: 이것 역시 동문서답에 해당된다. 위트니스 리가 위에서 말하는 <영원한 생명>은 우리가 거듭날 때 비로소 안에 들어오시는 <생명 되신 주님 자신>을 가리킨다(요일5:12, 골3:4, 요11:25). 이러한 생명은 창조시의 아담 안에는 안 계셨다. 그리고 원세호님은 지금 <사람의 영>이 <영원한 생명>이라는 놀라운 주장을 하고 있다. 그리고 그 성경 근거로 마19:4를 제시했다. 그러나 마태복음 19:4는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사람을 지으신 이가 본래 저희를 남자와 여자로 만드시고' 라고 되어 있다. 원세호님은 이 구절이 어떻게 <사람의 영이 영원한 생명>이라는 주장의 근거가 될 수 있는지 추가 설명이 필요하다.


'허물과 죄로 죽었던 너희를 살리셨도다'라고 한 엡 2:1은 우리의 사람의 영이 하나님 보시기에 죽었다는 말이다. 이처럼 타락으로 인하여 죽음에 이르는 사람의 영이 어떻게 영원한 생명이 될 수 있는가? 창3:22-23는 '이 사람이...손을 들어 생명 나무 실과를 따 먹고 영생할 까 하노라 하시고 여호와 하나님이 그를 에덴 동산에서 내어 보낸 것'을 기록하고 있다. 원세호님은 이 말이 거짓이라고 주장했다. 성경이 거짓이면 원세호님에겐 무엇이 참인지 묻고 싶다.


이런 말들은 원세호님의 구원론의 핵심개념인 <영원한 생명 이해>에 심각한 하자가 있음을 보여준다.


7) <원세호님의 비판: ⑫ '아담이 생명나무를 먹었다면 모든 후손이 하나가 되었을 것이나 지식의 나무 열매로 분열의 본질이 주입되어 후손이 분열되었다' 고 주장한다. 그러나 위 주장은 잘못되었는데 그것은 하나님의 예지예정(롬8:29)이나 창세 전에 택하신 예정(엡1:4)은 지방파의 위의 사건을 인정하지 않는다.>


** 반박: 믿는 이의 하나는 생명 안에와 성령 안에 있을 때만 가능하다. 요17:11, 21-22, 엡4:3은 이것을 말한다. 포도나무와 가지가 하나될 수 있는 것은 서로 안에 생명이 흐르기 때문이다(요15:4). 그러나 선악과 지식을 서로 주장 할 때 거기는 분열만 있을 뿐 하나가 없다. 고전1:10-13, 3:3, 빌4:2, 2:2-3은 이것을 말한다. 부부사이에서도 서로 자기가 옳다고 하면 싸움만 나고 하나가 깨진다. 그러나 서로 주님 앞에 나아가 회개하고 하나님의 생명과 사랑으로 용서하고 화해 할 때 하나가 회복된다. 영적인 실제를 사는 사람들은 이것을 체험적으로 안다.


이처럼 분명한 <하나와 분열>과 <예지 예정>이나 <창세 전에 택하신 예정>이 무슨 상관이 있는가? 둘은 직접적으로 아무 관련이 없다. 그럼에도 근거도 없이 무조건 틀렸다. 잘못되었다 만을 되풀이하는 것이 진리 변증이라고 생각하면 곤란하다.


8) <원세호님의 비판: ⑬ 위트니스 리는 '...인간을 하나님의 종류라고 하며 그래서 인간은 하나님 종이므로 하나님들이라'고 주장한다...창조주 하나님을 피조물과 대등한 서열로 표현한 것은 신성모독으로 사료되며 더욱이 하나님들이라고 하는 것은 개인적으로는 하나님이 되는 것이니 극히 삼가 하고 겸손해야 할 것이다.> <⑭ 지방파의 거듭나서 하나님 종류에 속한 하나님들이 되는 성경 근거 요3:6절에 하나님들이란 용어가 없고, 성경에는 그런 표현이 없다. 하나님들과 신들과는 전혀 다른 것이다>.


** 반박: <위트니스 리 주장: ⑬ "이 모든 자녀들은 하나님께로부터 난 하나님-사람들임, 하나님의 종류에 속한 하나님들(요3:6하) 하나님의 왕국을 보며 그 안으로 들어감">(27.(하나님 사람의 생활) p.10 ,9-11).


우선 이 진리는 한국 교계 내에는 매우 생소해서 오해의 여지가 많을 줄 안다. 그러므로 용어를 하나 사용하더라도 정확히 인용 소개해야 할 것이다.


한국 교계 내에서는 수원의 합동 신학대학원대학교의 조병수 교수가 이러한 신화를 주제로 설교했다. 금란 교회 김홍도 목사도 이 주제로 설교한 바 있다. 주의 할 것은 지방교회측이 이 진리를 말할 때, 사람이 하나님의 생명과 본성에 참여하나 경배의 대상이 되는 신격(골2:9, 데오테스)은 갖지 않는다고 제한을 가지고 가르친다는 점이다. 그러므로 원세호님은 함부로 '신성 모독' 등의 표현을 사용해서는 안 될 것이다.


http://www.localchurch.kr/922
http://www.localchurch.kr/904
http://www.localchurch.kr/914
http://www.kumnan.com/preaching/preaching.php?method=content1&no=667&start=0


이러한 신화(deification)에 대한 진리는 정통교부로 평가받고 있는 아타나시우스도 가르쳤던 구원론 관련 진리이다. 이에 대해서는 구원론 재 반박 시 별도의 서론 글로 다루려고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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