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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이 한국개혁신학을 대변하는 입장인가(1)-고전15:45 해석 문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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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양한 교단들로 이뤄진 성도수가 근 천만 명에 육박하는 한국교계 내에서 칼빈의 개혁신학이 차지하는 비중이 막중한 것이 사실이다. 또한 이 가운데 거의 대부분의 장로교단들은 성경과 함께 웨스트민스터 신조를 신앙의 기준으로 공유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위 신조가 미처 설명하지 못하는 구체적인 성경 구절에 대한 해석이나 실행에 있어서 장로교 신학자들 사이에 크고 작은 이견들이 있다. 이것은 불가피하게 별도의 교단과 신학교 설립을 가져오기도 했다. 믿을만한 기록에 의하면, 미국에는 최소한 12개의 개혁주의 교단들이 있다. 한국에도 별도의 총회를 구성한 크고 작은 장로 교단들은 170 여 개에 이른다.

 

장로교단 자체 내에 이러한 현저한 편차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그 수적 우위에 힘입어 개혁신학이 한국 교계 내에서 정통과 이단을 판별하는 기준으로 활용되어 왔다. 그렇다면 비중 있는 개혁신학자 간에 성경 핵심진리 해석에 이견이 있을 경우 누구의 관점을 정통과 이단을 판단하는 기준으로 삼을 것인가 하는 문제가 대두된다. 물론 이것은 폭넓은 의견수렴 과정을 거쳐서 개혁신학 진영 자체 내에서 해결책을 제시해야 할 사안이다. 이러한 취지에서 한국 개혁신학을 대표하는 분들에게 현재 개혁신학계 내에서 또는 대외적으로 쟁점이 되고 있는 고전15:45의 '생명 주는 영' 이해에 대한 선명한 입장 정립을 정중하게 당부 드려 본다.


1. 차영배 박사와 개핀 박사

 

이 글에서는 개혁 신학계에서 존경받는 위치에 있는 차영배 박사님과 Richard. B. Gaffin, JR 박사님간의 고전15:45의 '생명 주는 영' 이해에 대한 현격한 입장차이를 다루고자 한다.

 

참고로 일반에 공개된 자료에 따르면, 차영배 박사는 고려신학교 본과, 화란 Kampen 개혁신학 대학원을 졸업하고 총신대학 학장을 거쳐 현재 성경신학대학원장으로 재직 중이다. 차 박사는 총신대학 출판부 발행 '삼위일체론', 성령론(구원론 부교재), 신학의 원리 등 다수의 저서가 있다. R. B. Gaffin, JR 박사는 Calvin College, Westminster Theological Seminary 등을 거쳐 현재 모교인 웨스트민스터신학대학에서 조직신학 교수로 재직 중이다. 개핀 박사는 'Perspectives on Pentecost', 'Calvin and the Sabbath' 등의 저서가 있다.


2. 고전15:45의 '생명 주는 영'에 대한 두 분의 관점 소개

 

아래 소개되는 내용은 차영배 박사의 '성령론'(구원론 부교재)(경향문화사, 1994) 책자에 수록된 것이다. 차 박사는 개핀 박사가 1980년대 중반에 내한하여 합동신학교에서 강의했고 복음주의신학회에서 특강을 한 바 있다고 소개함으로 개핀 박사가 한국 개혁신학계와 무관하지 않은 인물임을 밝히고 있다. 아울러 개핀 박사의 성령론에 대한 관점은 한국에 '성령은사론'(권성수 교수 번역)이란 제목으로 번역 출판된 'Perspectives on Pentecost'에서 접할 수 있다고 한다. 차영배 박사는 자신의 성령론 책에서 위 개핀 교수의 책에서 주장된 내용을 요약하여 비평했다. 그후 이 소식을 전해들은 개핀 교수는 차 박사의 비평에 대해 서신을 통해 반응했고 차 박사는 이에 대해 다시 반박 서신을 통해 비판했다. 따라서 양측이 고전15:45의 '생명 주는 영'에 관해서 두 차례씩 주고 받은 주장들을 차례대로 소개해 보겠다.


1) 차영배 박사가 요약한 고전15:45에 대한 개핀 교수 주장

 

'(개핀 박사) 고전 15:45의 "첫사람 아담은 산 영이 되었다 함과 같이 마지막 아담은 살려주는 영이 되었느니라"는 말씀에 근거하여, <개핀은 그리스도와 성령을 동일시하고 있다>. 이것은 삼위 상호간의 본질적이고 영원한 관계를 다루고 있는 것이 아니라 경륜적, 기능적, 종말적 동일시이다...그리스도께서 살려주는 영으로서 교회에 직접 임하신 사건이 바로 오순절 사건이라는 것(p.19), 따라서 성령의 선물은 높아지신 그리스도 자신, 곧 교회 안에 충만하게 역사 하시는 생명을 주는 성령이다(p.28). 그러므로 교회 안에서의 그리스도의 사역과 성령의 사역이 절대적으로 일치한다(p.19)'(차영배, 성령론, 49쪽).


2) 차영배 박사의 위 개핀 교수 주장에 대한 1차 비평

 

'(차영배 박사) ...고전 15장 45절의 "살려 주는 영"은 뼈와 살이 없는 <성령을 가리킨 말이 아니므로, 성령과 동일시될 수 없다>. 이것은 마치 아담이 산 영이 되었다고 해서, 육체가 없는 영만을 가리킨 것이 아님과 같이(창2:7), 그리스도의 부활체가 살려주시는 영이 되었다고 해서, 육체가 제외된 것이 아니다. 따라서 루터의 성찬관에서와 같이 오순절 성령강림 때 부활체가 동재하신 것도 아니다. 혹은 주께서 성령으로 그 모양을 바꾸어 오신 것으로 보면, 아무리 경륜적, 기능적, 종말적 동일시라고 할지라도, 양태론적 이위신론으로 기울어질 위험이 없다고 아니할 수 없다. 성령선물이 높아지신 그리스도 자신이라고 할 수 있는가? 더욱이, 교회 안에서 충만하게 하시는 성령이 곧 그리스도 자신이라고 함은 위격을 혼동할 위험이 크고, 양태론적 색채가 농후하다'(차영배, 성령론, 54쪽).


3) 차영배 박사의 1차 비평에 대한 개핀 박사의 서신을 통한 반박

 

'(개핀 박사) 겨울 방학에 당신의 연구에 큰 유익이 있기를 바란다. 건설적인 비평을 위한 기초적 자료로서 나의 견해를 요약한 부분은 훌륭하게 또 명백하게 집약된 것으로 보이나, 비평의 부분을 읽고 나는 실망했다. 그것은 나의 견해를 잊어버린 듯한 느낌이 들었다. 또 여러번 왜곡된 곳도 있었다... 당신의 비평은 너무 파죽지세로(sweeping) 광범위하여 여기서 일일히 다 취급할 수 없다. 그 대신 나는 근본적인 것을 먼저 지적하고 몇가지 견해를 덧붙이고자 한다....여러 사람의 말에 의하면, 당신은 바빙크의 신학을 높이 평가한다고 들었는데, 바빙크의 신학이 성령론에 관한 당신의 견해와 서로 일치된다고 볼 수 없다....나도 바빙크를 높이 평가하고 또 헤르만 리데르보스(H. Ridderbos) 및 보스(G. Vos)와 함께(워필드는 제외) 바빙크가 나의 입장에 어느 누구보다도 영향을 주었기 때문이다...셋째, 높아지신 그리스도와 교회 안에서 활동하시는 성령은 본체론적, 위격적 혼동이 없이, 기능적으로 단일이라는 것(functional oneness)이다'(차영배, 성령론, 59-60쪽).


4) 개핀 박사 서신에 대한 차영배 박사의 재반박 서신

 

'(차영배 박사) 바빙크가 고후 3:17과 고전15:45을 인용하면서 그리스도와 성령의 기능적 단일성을 진술한 것 같이 보이나, 오순절 성령강림의 단회성을 증거하기 위함이 아니고, 일곱 영을 가지신 주께서 성령을 보내신다는 것, 성령이 본질적으로만이 아니라, 구원의 시대에 상응하여 성부와 성자에게서 나오신다는 것을 강조하는 데 목적이 있었다. 높아지신 주님은 이제 성령을 나누어주실 수 있다는 것, 성부와 성령의 뜻대로 원하시는 자에게 주신다는 것, 이것은 주께서 성령을 성부에게서 보내신다는 것을 증거하기 위함이었다는 것이 바빙크의 의도였다. 더욱이 그는 고전 15:45 에 근거하여 그리스도와 성령의 기능적 단일성을 시도한 것이 아니고, 부활하신 그리스도는 그 몸이 신령하여 살리는 영이 되었다고 했는데, 이것은 다시 살아난 몸이 성령으로 변했다는 것이 아니라, 부활의 몸을 가지신 그리스도 자신이 성령과는 구별된 살리는 영이라는 것이다.

 

교수님께서 기능적 단일성을 강조하신 것은 물론 바빙크와 비슷한 점이 있긴 하나, 위격의 구별을 잊지 않고 강조한 바빙크와는 어딘가 다른 점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고전 15:45에 근거하여 부활하신 주님이 곧 성령이라고 한다면 이것은 양태론적 사상이 아닐 수 없다(차영배, 성령론, 75쪽).


3. 양측의 쟁점 요약 및 기타 참고 사항

 

우선 위 차영배 박사의 성령론 책자에 소개된 쌍방의 불일치 하는 쟁점들은 고전15:45의 '생명 주는 영'에 대한 이견 이외에도 몇 개가 더 있다. 그러나 편의상 여기서는 우리가 관심 하는 '생명 주는 영'에 대한 내용만을 따로 떼어 인용 소개한 것이다. 이 점에 다른 오해가 없기 바란다.


위 인용본문에서 보았듯이, 개핀 교수는 <생명 주는 영>과 관련해서 높아지신 그리스도와 성령을 본체적 위격적인 혼동이 없는 전제아래 기능적으로 동일한 존재로 본다. 그러나 차영배 박사는 이것을 반박하며 이런 주장은 <양태론적인 색채가 농후하다> <양태론적 사상이 아닐 수 없다>라고 못 박는다. 따라서 만일 한국 개혁신학계가 차영배 박사의 주장에 손을 들어준다면, 미국의 개혁신학을 대표하는 현직 웨스트민스터 조직신학자인 개핀 교수는 한국 장로교인들의 눈에는 삼위일체론에 있어서 양태론 이단이 된다. 그리고 미국의 대표적인 개혁교단인 정통장로교단은 교단 직영 신학교에 이단이 조직신학을 가르치도록 허용한 것이 되고 그에게서 배운 제자들은 이단에게서 조직 신학을 배운 것이 될 것이다. 과연 그러한가?

 

(현재 한국 교계 내에는 바로 이 개핀 교수의 관점을 가진 것을 이유로 장로교단들에 의해 양태론 이단으로 정죄되고 있는 단체들이 있음을 참고로 지적해 둔다)


한편 차영배 박사는 개핀 박사의 <교회 안에서 충만하게 하시는 성령이 곧 그리스도 자신>이라는 주장을 철저하게 반대한다. 이것은 그가 <생명이신 그리스도 자신(골3:4)은 성도들 안에 안 계신다>는 주장을 지지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실제로 차영배 박사는 월간 교회와 신앙 2001년 10월 호에 실린 자신의 삼위일체 관련 논문에서 그 특성상 '성부 하나님과 성자 하나님은 우리 안에 들어오실 수 없는 분들'이라고 강하게 주장한 바 있다(122, 124쪽). 즉 출19:17-22를 근거로 성부 하나님이 우리 안에 오시면 우리는 죽어버린다고 하고, 성자 하나님도 몸과 영혼이 있는 분임으로 우리 안에 못 들어오신다는 것이다. 과연 그런가?

 

여기서 만일 한국 개혁신학계가 개핀 교수의 주장을 지지한다면, 차영배 박사의 <그리스도 자신은 교회인 성도들 안에 안 계신다>는 교리를 성경적으로 검증하고 판단하여 공개적으로 입장을 표명 할 책임이 있다.

이 결코 가볍지 않은 주제(고전15:45의 생명 주는 영)에 대한 두 석학 간의 이견에 대한 한국 개혁신학계 전체를 대변하는 공식 입장은 과연 무엇인가?


참고로, 신학지남 1978년 봄호(3월호 통권 180권) 28-39 쪽에 '주는 영이시다'라는 제목으로 발표된 고린도 후서 3:17에 대한 박형용 박사의 논문은, 고후3:17의 '주'는 예수 그리스도를 '영'은 성령을 가리킨다고 함으로 그리스도와 성령을 동일시하고 있다(34쪽). 또한 박형용 박사는 '성령과 그리스도를 동일시하는 것은 본체론적인 의미에서가 아니요 경륜적인 의미로 이해해야 한다'(37쪽)고 함으로 구속의 경륜을 위하여 외견상 위격의 혼동이 있는 듯한 성경 본문 해석에 있어서 위 개핀 교수와 동일한 위치에 서고 있다.

 

따라서 한국 개혁신학계의 개핀 교수의 삼위일체론에 대한 판단은 합동신학대학원대학교 총장으로 재직중인 박형용 박사께도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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