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을 나눠 볼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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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이 비취는 곳에 (May 자매의 간증)

 

빛이 비취는 곳에

(May 자매의 간증)

 

 

2005년 뉴질랜드 훈련에서는 부부가 같이 생활하게 했으므로(센타 옆에 숙소가..) 훈련 중 저희는 연수를 갖게 되었고 그리하여 훈련을 지속하기 어렵게 되어 2006년 초에 연수를 낳기 위해 제 부모님이 계시는 한국 대전으로 오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친정 부모님의 집에서 함께 살게 되었습니다. 연수는 할아버지, 할머니, 왕할머니의 사랑까지 듬뿍 받으며 잘 자랐습니다.

 

그러던 중 2008년 연수가 세살 되던 해에 유진 형제가 서울전시간훈련에 가게 되었습니다. 주님은 그분의 은혜와 돌보심으로 뉴질랜드 부모님께서 2010년 4월까지 한 달에 50만원씩을 지원해 주시게 하시므로 저희로 생활을 할 수 있게 하셨습니다.

 

2010년 연수가 만 36개월이 되었을 즈음에 정부의 지원으로 저희가 적은 금액을 지불하고 거의 무상으로 어린이집에 갈 수 있게 되었고 연수가 어린이집에 가 있는 10시부터 4시 사이에 저는 파트타임으로 하루 4시간 아르바이트를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저로 말할 것 같으면...^^ 그 당시 29세.. 대학 졸업 후 바로 훈련에 갔고 훈련 졸업 후 바로 결혼을 해서 뉴질랜드에 가서 살았고 결혼하자마자 아이가 생기는 바람에 저는 그 흔한 운전면허증이나 컴퓨터 관련 자격증 하나 가진 것이 없었습니다. 제가 할 수 있는 일은 몸을 써서 할 수 있는 일이었습니다(또 그 일이 제게는 잘 맞고요^^).

 

아르바이트 자리를 찾기 위해 알바사이트들을 뒤져서 집 근처에 제가 할 수 있는 일을 찾게 되었습니다. 맞벌이 부부의 자녀, 이제 막 초등학교 1학년이 된 여자아이의 학교에 가서 아이를 집에 데리고 와 간식을 주고 학원에 데려다 주고 데리고 오고 그 집의 청소와 세탁, 저녁 반찬을 만들어 주는 일이었습니다. 반찬을 만드는 것은 결혼 후 몇 년 간 제가 해오던 일이었기에 제가 할 수 있는 일이었고 똘망똘망하고 야무진 귀여운 아이와 시간을 보내는 것은 제게 즐거운 일이었습니다. 종종 초등학교 교사인 아이의 어머니는 제게 이 젊은 나이에 왜 이런 일을 하는지 다른 일을 찾아 보는 게 어떻냐며 저를 안타까워 하시면서도 동생처럼 챙겨 주셨고.. 한달 일하고 받는 월급은 생활하기에 어려움이 있었기 때문에 주급으로 받기를 원한다는 저의 편의도 봐주시고 비교적 큰 어려움 없이 생활하게 하셨습니다.^^

 

그 이후의 몇 번의 아르바이트가 더 있었는데 과자포장일, 쇼핑몰포장일, 청소, 어린이블럭체험방, 식당보조, 써빙 등 그렇게 길진 않았지만 2~3년의 아르바이트는 제게서 여러 찬양들이 나올 수 있는 배경이 되어 주었습니다. 주님께서 특별히 안배해 주신 은혜의 시간들이라고 생각합니다...

 

부부가 의사인 집에서 청소를 하면서... 제 자신의 상황이 슬퍼질 땐.. 주님의 고난과 비교하면 아무 것도 아니라는 생각에 주님과 울면서 대화하며 흥얼거리며 나온 찬양..

 

연수가 어릴 때 처음으로 쿠키런이라는 게임을 제 휴대폰으로 하다가 뭣도 모르고 금인가 보석을 산게 결제가 되어 버려서 40만원인가를 내야하는 상황에서 아이에게 또 이 상황에(결국은 주님께^^) 화내고 원망하는 중에 나온 ‘빛이 비취는 곳에’라는 찬양...(결국엔 네이버에서 이와 같은 사례가 많다며 지불하지 않아도 되게 잘 해결되었습니다..감사^^)(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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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1

뵈뵈 24분 전22:16
한 곡 한 곡이
눈물바카골짜기 통과할때마다
주님이 주신 선물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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