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을 나눠 볼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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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릴린 유 자매님께서 남편에 관해 하신 증언

 

안녕하세요, 저는 메릴린 유이고, 앤드류 형제님의 아내입니다. 제가 우리 부부가 함께 했던 시간에 관해 조금 말씀 드리겠습니다.

 

앤드류 형제님과 저는 1973년에 엘에이 교회에서 만났습니다. 형제님은 정말 똑똑하고, 재미있는 청년 형제로서 주님을 정말 사랑했습니다. 그 당시에 형제님이 어떤 찬송을 쓰셨는데, 그 가사는 아래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가사는 안내지 참고] 형제님이 학교에 다니실 때, 엘에이에 있는 형제실에서 살았었습니다. 여기 한 가운데서 아이를 품에 앉고 앉아계신 자매님이 보이시나요?[이 안내지에는 사진이 없습니다] 이분은 크리스티나 푼 자매님이십니다. 자매님과 조지 형제님은 아주 큰집에서 이들 형제님들과 함께 사셨습니다.

 

우리는 1979년에 홍콩에서 결혼을 했습니다. 여기에 우리의 사진이있습니다.[이 안내지에는 사진이 없습니다] 우리는 19세기에 지어진 큰집의 꼭대기 층에 살았는데, 다른 신혼부부와 9명의 대학생 형제들과 함께 살았습니다. 앤드류 형제님이 저에게 형제님이 결혼 전에 그곳에서 살았던 것처럼, 같이 살겠냐 아니면 아파트를 얻어서 따로 살겠냐고 물어보았는데, 저는 그렇게 큰 집에서 살아본적이 한번도 없었지만, 그것에 대해 기도하고 또 고려해 본 후,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아, 주님, 제가 한 번 해 보겠습니다. 어쩌면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엘에이에서 조지푼 형제님 집에서 했던 것처럼 될 수도 있겠습니다.”라고. 그리고 그 생활은 정말 좋았습니다. 정말 풍성한 교회 생활이었습니다. 그 다음 해에, 우리는 형제들이 아니라 아홉 명의 대학생 자매들과 함께 살게 되었습니다. 25년 후에, 앤드류 형제님의 항암치료를 위해 다시 홍콩으로 돌아갔을 때, 이전에 우리와 함께 살던 지체들이 우리를 방문했었습니다. 함께 살았던 시간 이후로는 만나거나 대화를 한 적도 없었지만, 그 지체들이 방 안에들어설 때, 정말 어제 보았던 이들을 다시 만나는 것 같았습니다. 저는 우리가 함께 살면서 보냈던 시간으로 인해 너무나 기쁩니다.

 

우리가 결혼했을 때는, 형제님이 전시간으로 봉사할 것이라고는 전혀 생각도 해보지 않았었습니다. 형제님은 저에게 한 번도 전시간으로 섬기길 원하다고 말한 적이 없었는데, 어쩌면 그런 일이 벌어질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전시간으로 섬기게 됐을 때, 형제님은 학생 때부터 형제님들에게 주님을 전시간으로 섬기길 원한다고 말씀드렸던 것을 저에게 설명해 주었습니다. 형제님들께서 남편에게 교육을 더 받아야 한다고 말씀하셔서 남편은 그렇게 했습니다. 그래서 두 개의 석사 학위를 받았고, 박사 학위 프로그램도 일정 부분을 마치고 나서, 다시 형제님들에게 가서 전시간으로 섬기길 원한다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형제님들은 남편에게 직장을 잡아야 한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남편은 직장을 잡았습니다. 우리가 결혼했을 때, 제가 알았던 것은 남편이 컴퓨터 회사에서 일하고 있었고, 주님을 정말 사랑한다는 것이 전부였습니다.

 

홍콩에서 남편은 교회에서 책임을 감당하고 있던 몇몇 젊은 형제님들 중에 한 명이었습니다. 매일 저녁과 주말에 남편은 다른 형제님들처럼 봉사했고, 도시의 여러 집회소들을 다니면서 메시지를 전했습니다.

 

중국이 다시 열리기 시작했던 그 해부터, 남편은 가끔씩 사역을 위해 중국 본토에 방문했습니다. 우리가 결혼한지 두달이 채 지나지 않았을 때, 남편은 중국에 가서 6주 동안 머물면서 훈련을 열었습니다. 당시의 그곳의 사랑스런 믿는 이들은 수년 동안 사역의 말씀이나 심지어 성경 말씀도 볼 수 없었습니다! 그들은 주님의 말씀이 부족한 기근의 상황을 견뎠습니다. 남편이 홍콩으로 돌아온 후에, 그곳의 성도들은 극심한 박해를 받았습니다. 그것은 마치 서머나 교회가 당했던 것과 같았을 것입니다. 그 후로, 저는 남편이 개인적으로 사역을 했던 곳에 있던 성도들이 순교당하거나 투옥된 것을 알았을 때 그 고통을 어떻게 감당했을지 모르겠습니다. 어쩌면, 그것이 제 남편을 슬픔의 사람으로 만들고, 주님처럼 고통을 아는 사람으로 만들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남편은 그것에 대해 한번도 불평하지 않았습니다. 아마도 남편이 불평하지 않은 이유는 저를 덮어주기 위해서였을 수 있습니다. 어쩌면, 그러한 일이 남편에게 동기가 되어 계속 주님을 섬기게 하고 중단하지 않게 했을 수 있습니다.

 

그 당시에는 대규모 다국적 기업들에 다니는 것은 수입도 많고 선망의 직장이었습니다. 남편은 대기업인 필립스 회사에서 입사 제안을 받았는데, 그것에 응했다면 큰 보수를 받았겠지만, 기업 세계의 노예가 되었을 것입니다. 그랬다면 물리적으로 계속해서 저녁과 주말에 교회를 섬기는 것은 불가능했을 것입니다. 그래서, 남편은 소위 보장된 “평생 직장”의 제안을 뿌리쳤습니다. 저는 상관하지 않았습니다. 저는 단지, 남편이 어떻게 자신의 생활을 살아낼 것인지를 잠잠히 지켜 보았습니다. 저희가 첫째 아이를 가진 후에야 남편이 실지로 전시간으로 봉사하도록 부름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1980년대에 타이페이에서 전시간훈련이 시작되었고, 우리도 그곳으로 이사했습니다. 그 훈련을 마친 후에 우리는 미국으로 왔고, 남편은 헬라어 학위를 받기 위해 학교로 갈지 아니면 리빙스트림에서 봉사할지 결정을 내리려고 했습니다. 저는 남편이 조용한 학자의 생활을 기대했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남편은 그것을 잘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남편은 헬라어를 배우지 않았고, 대신에 리빙스트림에서 책임자로 봉사하게 되었습니다. 하루는 제가 “책임자가 되는 것은 어떤 것인가요?”라고 물었더니, “내가 사무실에 가면, 하루 종일 사람들이 그들의 문제를 나에게 말해요, 나는 그것을 해결해 줄 수 없지요. 그럴 때 무슨 말을 할 수 있나요? 사람들은 목양이 필요합니다. 우리 모두에게 필요한 사람은 그곳에서 우리의 문제들에 대해 들어주는 사람입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주님께는 그렇게 할 누군가가 필요했습니다.

 

미국에서 전시간 훈련이 1989년에 시작되었고, 남편도 훈련에서 봉사했습니다. 러시아가 복음을 위해 열렸을 때, 러시아로 가기를 원하는 사람들을 위해 훈련이 있었습니다. 미국과 러시아의 왕래가 증가했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두 명의 러시아 자매님들이 처음으로 애너하임에 방문했으며 그들이 우리의 집에 와서 저녁 식사를 했습니다. 그분들은 유오디아와 순두게와 같다고 누군가가 저에게 말해 주었지만, 저는 그들을 돕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지 어떤 실마리도 없었습니다. 제가 했던 것은 그저 저녁을 준비하고, 남편은 식탁에 앉아서 대화를 이끌었습니다. 분위기는 아주 따뜻했고 사랑스러웠으며 모두가 다 아주 즐거운 시간을 가졌습니다. 결국 남편이 “자매님들은 그리스도인에게 가장 높은 요구가 무언지 아십니까?”라고 말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다 생각해 보았지요. 한 자매님이 “복음 전파입니다!”라고 하자, 남편은 “이 형제님은 그리스도인에게 가장 높은 요구는 서로 하나되는 것입니다”라고 하셨다고 말했습니다.

 

집에서 남편은 제가 많은 실수를 했어도 결코 책망하지 않았고, 저를 목양해 주었습니다. 나는 언제든지 남편에게 가서 나의 문제들에 대해 물어볼 수 있다고 느꼈습니다. 그것이 가장 큰 목양이었습니다. 제가 잊을 수 없습니다. 저에게 이렇게 신실한 목자를 주신 것에 대해 주님께 감사합니다.

 

남편은 또한 역사광이기도 했습니다. 남편은 교회사에서 유럽의 의미 깊은 장소들을 가보기 원했습니다. 그래서 1990년대에 우리는 몇몇 성도들과 함께 밴을 타고 유럽을 여행했습니다. 자녀들은 홈스쿨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아이들과 함께할 수 있었습니다. 그 여행지에는 웨슬리가 구원받은 곳인 알더스게이트, 영국 형제회, 성도들이 순교당한 곳인 겐트성, 루터가 95개 조항을 게시한 곳인 비텐부르그, 모라비아 형제회들이 있던 곳인 헤른후트, 등등입니다.

 

남편은 유럽보다 이스라엘에 훨씬 더 관심이 많았습니다. 우리는 1982년에 처음으로 이스라엘에 다녀왔는데, 남편의 직장과 저의 직장에서 동시에 해외 출장을 가야 해서, 그 기회를 붙잡아 이스라엘에서 일주일을 보냈습니다. 그러한 출장들을 다닐 때 남편은 여러 차례 유럽과 이스라엘을 다녀왔습니다. 2013년에 남편은 청년들을 데리고 이스라엘을 방문했습니다. 그 때 우리는 (주님이) 설교하신 산을 올라가 보았고, 키부츠도 가보고, 가데스 바네아 인근의 젊은 이민자들이 히브리어를 배우기 위한 기숙 학교, 고등학교를 마치고 이스라엘 사회에 적응을 위한 학교 등을 방문하고, 유스 호스텔에 머물면서 매일 아침 신선한 야채들을 제공하는 조식 부페를 먹기도 하고 유물 발굴 체험도 했습니다. 딸이 함께한 팀은 실지로 유물을 발견해서, 정말 좋아했었습니다.

 

남편은 사역을 위해 정말 많이 아시아를 방문했었습니다. 건강이 약해진 후로는 여행을 못했지만 여전히 그레이스 가든에 있는 훈련생들을 방문해서 아침이나 점심 식사를 하면서 교통을 했습니다. 남편은 정말 음악을 사랑했고, 때로는 훈련생들을 우리 집에 초대해서 악기를 연주하도록 부탁하기도 했습니다. 정말 쇠약해졌을 때도, 남편은 여전히 남은 힘을 사용해서 줌으로 형제님들과 집회를 갖고, 참고 도서인, 필립 샤프의 기독 교회사를 중국어로 번역하는 일에 시간을 보냈습니다. 제 교통을 들어 주신 것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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