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의 상 집회에는 하나님 앞에 어떤 순서도 없음

by 관리자 posted Jun 24,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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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의 상 집회에는 순서가 없음


어떤 지방에 있는 책임 형제들은 주님의 상 집회에서 항상 앞에 앉는다. 성경에서 우리는 이것을 발견할 수 없다. 주님의 상 집회에는 형제들만 있을 뿐 책임 형제들은 없다. 책임 형제들이 앞에 앉는다면, 그것은 주로 광고를 하기에 편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는 책임 형제들이 자신들에게 주님의 상 집회를 인도할 책임이 있다는 관념을 가지고 있을까 봐 두렵다.


우리는 주님의 상 집회에서 아무도 인도를 해서는 안 된다는 것에 분명해야 한다. 엄밀히 말해서, 주님의 상 집회에는 특별한 좌석 배치가 없어야 한다. 예를 들어, 어떤 때에는 내가 집회에서 앞에 앉지만, 또 다른 때에는 어린 형제와 함께 앉는다. 이렇게 하면 성도들은 주님의 상에 특별한 좌석이 없다는 인상을 갖는다. 나는 하나님의 노예이자 그들의 형제일 뿐이다.


성도들은 반드시 주님의 상 집회에는 특별한 자리가 없다는 것에 분명해져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지금부터 십년 후에는 모든 장로들이 앞줄에 앉아 자신들이 집회를 인도하고 있다고 생각할 것이다. 모든 책임 형제들은 사람들이 세운 특별한 순서가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사람들이 세운 모든 질서는 잘못된 것이다. 영국의 조지 뮐러(George Mueller) 형제는 주님의 상 집회에서 항상 뒤에 앉았다. 그것은 매우 좋았지만, 어떤 사람들은 그것이 너무 지나치다는 인상을 가졌을 수도 있다.


우리는 주님의 상에 올 때, 누가 앞에 앉아야 하고 누가 뒤에 앉아야 한다는 관념을 가져서는 안 된다. 갓 구원받은 새 신자들은 구원받은 지 더 오래된 이들과 함께 앞에 앉아야 한다. 예를 들어, 가정에 네 자녀가 있으면 식사 시간에 막내는 항상 아버지 곁에 앉으려고 할 것이다. 이것이 가정에서의 순서이다. 떡을 떼는 것도 가정의 일이므로, 같은 순서를 따라야 한다.


성도들을 대치하지 않음


대만에 있는 교회들에서는 주님의 상 집회나 기도 집회나 교통 집회에서 집회를 시작하고 마치는 것을 책임 형제들이 한다. 집회가 시작될 때, 거의 매번 책임 형제들 중 한 사람이 찬송을 고르면 나머지 모든 사람들이 함께 찬송한다. 거의 알아차릴 수 없을 정도이지만, 책임 형제들만 제사장들인 것 같다. 그러나 신약 시대에는 우리 모두가 제사장들이다. 모든 교회들 안에 있는 성도들은 이것에 관해 분명해야 한다.


동역자들과 장로들과 가정 집회의 책임 형제들은 성도들의 제사장의 기능을 대치하지 않도록, 주님의 상 집회와 기도 집회와 교통 집회가 시작될 때 찬송을 고르기를 피해야 한다. 이 외에도 그들은 성도들을 위해 집회를 마치지 말아야 한다. 우리 가운데에는 '대치하지 않는' 분위기가 있어야 한다. 모든 성도들이 집회에 참여하고 기능을 발휘해야 한다. 우리 가운데서 인도하는 이들은 성도들을 대신하여 제사장들로서 섬김으로써 형제자매들의 영을 무가치하게 만들어서는 안 된다. 부디 주님께서 교회들에게 긍휼을 베푸시어, 인도하는 이들만이 집회를 시작하고 끝내는 데 책임을 지지 않고 모든 성도들이 기능을 발휘하기 바란다.


모든 지방에서 책임 형제들은 집회가 시작될 때, 찬송을 고르는 데 있어서 성도들을 대치하는 것을 피해야 한다. 누구든지 그 영의 움직임에 따라 찬송을 고를 수 있다. 이 문제에 있어서는 자매들도 예외가 아니다. 자매들도 그 영의 움직임에 따라 기도하고 찬송할 수 있다. 책임 형제들만 집회를 시작하고 마치는 이들이 되어서는 안 된다.


책임 형제들은 교회의 행정에 있어서 책임을 지는 이들, 즉 교회를 관리하는 데 있어서 인도하는 이들이다. 그러나 주님의 상 집회에서는 모든 성도들이 주님 앞에 함께 모인다. 그뿐만 아니라 떡과 잔을 축복하는 것도 책임 형제들만 독점해서는 안 된다. 오히려 책임 형제들은 갓 구원받은 이들을 온전하게 하여 떡과 잔을 축복하게 해야 한다. 예를 들어, 우리는 어제 구원받고 침례 받은 형제를 온전하게 하는 일을 시작하여, 그가 주님의 상 집회에서 떡과 잔을 축복하고 성도들에게 나누어 주게 할 수 있다.


아버지가 막내 아이에게 가족의 모든 사람에게 사탕을 나누어 주라고 시킨다면, 달콤한 느낌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아버지가 맏아들에게 사탕을 나누어 주라고 시킨다면, 그 느낌은 그다지 달콤하지 않을 것이다. 주님의 만찬에서 주님은 그분의 제자들에게 “받아서 드십시오. ... 여러분은 다 이것을 마시십시오.”(마 26:26-27)라고 말씀하셨다. 여기에 베드로가 앞에 있었다는 기록이 없다. 따라서 특별히 주님의 상 집회에서 우리에게는 정해진 순서가 있어서는 안 된다. 주님의 상 집회가 끝날 때 책임 형제가 일어서서 교회의 움직임에 관한 광고를 할 수는 있다. 주님의 상 집회를 할 때에는 책임 형제들이 없다. 모두가 형제이다.


우리가 이 문제에 있어서 분명하지 않다면, 집회는 좋은 시작을 갖지 못할 것이다. 모든 형제자매들은 책임 형제들이 제일 먼저 찬송을 고르고 기도해야 한다고 생각하면서 책임 형제들에게 초점을 맞출 것이다. 이것은 집회의 영을 꺼뜨릴 것이다. 우리는 주님의 상 집회에서 하나님 앞에 어떤 순서도 없다. 우리는 집회에 오기 전에 반드시 주님과의 교통 안으로 들어가야 하고, 집회에서 반드시 영의 느낌을 만지고 그 영의 감동에 따라 찬송을 골라야 한다. 찬송을 부른 후에는 우리 모두가 기도하거나 간증하거나 말해야 한다.


위트니스 리
[주님의 상 집회와 생명의 추구를 위한 지침, 제2장 집회에서의 인도, 한국복음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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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harvester 2017.06.28 12:11
     매주 맞이하는 주의상 집회에 대한 매우 적절한 말씀을 읽으며 작은 생각 하나가 떠올라 적습니다. 답안지를 들고 시험문제까지 친절하게 풀어주거나 바로 고쳐주는 친절한 일들을 우리는 많이 합니다. 좋은 교사라면 결코 하지 않을 행동이죠. 영적인 근육(?)이 생기기도 전에 마치 수학공식처럼 외워서 적용하게 해버리면 시험은 백점 맞을 수 있지만 생명의 성장은 요원하게 됩니다. 리 형제님의 멧세지들은 답안지나 마찬가지입니다. 이것을 어떻게 적용하느냐에 따라 우리는 지체들을 삶아 익히려는 우를 범할 수도 그렇지 않을 수도 있게 됩니다. - [특별히 인도하는 형제들은 이 문제에 있어서 반드시 시간을 들여야 한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그들의 일은 무의미하게 될 것이다. 인도하는 어떤 형제들은 그들의 손에 청사진이 있다고 말하지만, 얼마 후에는 추진하려고 했던 일이 죽게 되고 육체가 가득하게 된다. (중략) 그보다 그들은 성도들과의 동역 안에서 청사진을 만들어야 한다. 설령 우리에게 정확한 청사진이 있다 할지라도 우리의 길이나 방법이 옳지 않을 수도 있다.(중략) 그것은 일단 우리가 주님의 일을 만지면, 반드시 우리의 육체를 거절하고 처리하기를 배워야 한다는 것이다.] [주님의 상 집회와 생명의 추구를 위한 지침, 제2장 집회에서의 인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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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관리자 2017.06.28 23:44
    가끔 아이를 가르치면서 그러지 말아야 하는데 답을 먼저 말해주고 싶은 유혹을 많이 받습니다. ^^; 그럴 때 아이는 스스로 생각하는 힘을 갖지 못하게 되어 문제를 푼 것 같은데 함께 답을 찾아간 것이 아닌 제가 대신 찾아 준 것이죠. ^^ 조금 늦더라도 아이와 함께 아이가 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는 것이 좋은 교사라는 것을 깨닫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제가 알고 있는 것을 말해주고 싶은 육체의 유혹을 거절하는 것이 필요한 것 같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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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관리자 2017.06.28 23:48
    영적인 영역에서도 이와 비슷한 상황이 얼마나 많을지.. 그 영의 인도를 따라 하나 하나 그분의 인격 안에서 하는 것을 배우게 하소서 좋은 동반자로, 좋은 교사로, 다만 앞서 가는 사람이 아닌 함께 전진하는 사람으로.. 함께 청사진을 그려가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