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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은 어떤 식으로 우리 안에 내주하시는지요?(2)

 

이정석 교수님의 관점을 상세하게 밝혀주신 것이 도움이 되었습니다. 아래 교수님이 말씀하신 <삼위일체의 사람 안의 내주방식>을 1) 페리코레시스(상호내주?)와 2) 삼위는 구별되나 분리되지는 않는다는 삼위일체론의 또 다른 특징들과 연관지어 조금 더 자세하게 설명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참고로,  동일주제에 대해서 전 총신대 신약학 교수이셨던 권성수 박사는 본인이 쓰신 '로마서 강해'(도서출판 횃불, 1996) 404-405쪽에서 이렇게 설명하고 계시는군요.


"본문은 하나님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라고 했기 때문에, 이 말을 거꾸로 하면 그리스도인이라면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이 거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인데 그리스도의 영이 거하지 않는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우리 속에 하나님의 영이 거한다는 것은 거기에 사신다는 것입니다. 그냥 왔다가 가는 것이 아니고 아주 사시는 것입니다.


(아홉 줄 중략)


성령은 그리스도의 영이면서 동시에 하나님의 영입니다. 그리고 성령이 거하신다는 것은 말을 바꾸면 그리스도가 거하신다는 말입니다. 신비적인 연합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리스도의 영이 거하는 것을 그리스도가 거한다고 말할 수 있기 때문에, 하나님의 영이 거하는 것을 하나님이 거한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김00 삽입) 위 말은 최삼경 목사님의 세 영들의 하나님 주장에 따르면 성령=그리스도=하나님을 주장하는 양태론 이단사상이 되는 주장이 됩니다**


이 말을 정확히 하기 위해서 요한복음 14:23절을 보십시오.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사람이 나를 사랑하면 내 말을 지키리니 내 아버지께서 저를 사랑하실 것이요 우리가 저에게 와서 거처를 저와 함께 하리라."


여기서 '우리가'라는 말은 성부와 성자를 말하는 것이고 성부와 성자가 우리와 함께 사신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표현을 쓰는 문맥은 14:16절을 보면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리니 저는 진리의 영이라 세상은 능히 저를 받지 못하나니 이는 저를 보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함이라 그러나 너희는 저를 아나니 저희는 너와 함께 거하심이요 또 너희 속에 계시겠음이라"는 것입니다.


이 말씀을 놓고 우리가 내릴 수 있는 결론은 예수님을 믿는 사람에게는 성부, 성자, 성령이 거하신다고 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 믿는 사람을 가리켜서 하나님의 성전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신비적인 연합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정리하여 질문을 드리자면 다음과 같습니다.


1. 위 권성수 박사님은 하나님의 영이신 하나님 (1격), 그리스도의 영이신 그리스도(2격), 성령님(3격)이 모두 우리 안에 계신다고 말합니다. 이런 주장은 성경적인지요?


2. 권 박사님은 성령은 그리스도의 영이며 또한 하나님의 영이고 또한 그리스도의 영은 그리스도, 하나님의 영은 하나님과 같은 말이라고 말합니다. 이런 주장은 성경적인지요?


3. 최삼경 목사의 하나님의 영, 그리스도의 영, 성령은 각기 다른 세 영들(세 인격들)이라는 주장과 위 2번 주장 중 어느 것을 성경적인 삼위일체론이라고 보아야 할런지요?


4. 요14:23에서 예수님이 "우리(성부, 성자?)가...저에게 와서 거처를 저와 함께 하리라." 라고 하신 말씀을 어떻게 보시는지요?


5. 아래 이정석 박사님의 말씀을 '페리코레시스'와 '삼위는 구별되나 분리되지 않는다' 라는 또 다른 삼위일체론의 특징과 연관하여 조금 더 풀어서 설명해 주시면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이정석 교수님) 우리 안에 내주하는 것은 오로지 성령님이며, 성부는 하늘에 계시고 성자도 승천하셔서 지금 하나님 보좌 우편에 계시며 재림시 다시 오시게 될 것입니다.성부와 성자의 임재는 성령의 내주와 같이 존재론적으로 이해하면 안 됩니다."

 

(죄송합니다. 다른 과제로도 매우 바쁘신데 이런 질문들을 드려서...제게는 이 문제가 매우 중요한 터라 실례를 무릅쓰고 재차 질문을 드려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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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석 교수님의 답변


삼위일체를 혼동 없이 명료하게 이해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먼저 성부와 성자, 그리고 성령님이 다른 분이라는 사실을 수용해야 합니다. 성자는 성부와 다른 분입니다. 성육신하여 이 땅에 오신 분은 하늘에 그대로 계시는 성부와 다른 그의 아들입니다. 사람들과 함께 거하시며 하늘을 향하여 성부께 기도 드리고 그의 도움을 간청하셨던 분이 어떻게 같은 분이겠습니까? 성부와 성자가 같은 분이라면 왜 그러하셨으며, 왜 우리에게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 기도하라고 하셨겠습니까?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 달리시며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라고 절규하신 것이 누구를 향한 것이었습니까? 그리고, 부활하여 내가 다시 아버지 집으로 돌아간다고 말씀하신 것은 무슨 의미입니까? 그래서 아버지 보좌 우편에 앉으셨습니다. 성령과 성자도 다른 분입니다. 그는 요17장에서 구속사역을 마친 뒤 승천을 예기하면서, 지상에 있는 성도들을 고아와 같이 버려두지 않고 [다른 보혜사]를 보내시겠다고 하였습니다. 오순절에 강림하신 성령님은 성자가 다시 내려온 것이 아닙니다. 성자는 성부와 함께 그 우편에 계시다가 마지막에 재림하실 것입니다.


우리는 신학적 사변에 몰입됨으로서 방향을 상실하여 순수하고 단순한 사도신경적 신앙을 상실하거나 혼동해서는 안 됩니다. 신학은 신앙을 돕고자 있는 것이지 신앙을 혼돈시키고자 하는 것이 아닙니다. 신앙을 혼란시키고 분열시키는 신학은 그릇된 신학입니다.


따라서, 예수님의 승천과 재림 사이에 우리 가운데 내주하시는 분은 성령님이며 성부나 성자가 아닙니다. 이 점을 분명히 해야 합니다. 이러한 실체적 골격에서 우리를 혼란시킬 수도 있는 상징적이나 영적인 언급들을 이해해야 합니다. 즉, 그리스도가 우리 안에 계시다는 말을 존재론적으로 이해하면 안 되며, 영적으로 이해하여 그리스도를 대신하여 우리를 돌보는 성령님을 통하여 임재한다고 받아들여야 합니다. 성경에 보면 [그리스도가 내 안에, 내가 그리스도 안에]라는 구절이 있는데, 만일 그리스도가 실체적으로 내 안에 거하신다면, 우리도 실체적으로 그리스도 안에 거주해야 하는데, 그럴 수는 없지 않습니까? 성경의 언어들은 모두 인간이 이해할 수 있는 언어들이며, 이는 하나님께서 인간들의 언어용법을 이용하시는 것입니다. 즉, 누구 안에 있다는 표현은 정신적이고 영적인 마음의 문제입니다. 실체로는 그럴 수 없습니다. 예를 들어, 먼 길을 떠나는 친구에게, 네가 어디를 가든지 내가 너와 함께 한다는 사실을 잊지말라고 말한다면, 무슨 뜻입니까? 실제로 같이 가는 것은 아니지만 항상 그 친구를 잊지않고 마음으로 같이 하겠다는 사랑과 결의의 표현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를 떠나 하늘로 승천하시면서 동시에 항상 너희와 함께 하시겠다는 모순같이 보이는 말씀을 하셨는데, 이 말은 내가 실체적으로는 하늘로 올라가서 더 이상 너희와 함께 있을 수 없지만, 내 마음은 영원히 너희와 함께 있을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모순을 결과합니다. 하나님의 편재도 기계론적으로 이해하여 항상 모든 것속에 임재한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그러면 범신론이 됩니다. 하나님은 임재하고 싶은 곳에 임재하시고 떠나고 싶을 때 떠나시는 자유로운 분입니다. 예수님은 인성과 연합되어 영원히 인간이 되셨으며, 따라서 장소적 제한성을 받습니다. 이것은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치르신 그의 큰 희생입니다. 부활이나 승천후에 다시 성육신 이전의 상태로 돌아가는 것이 아닙니다. 따라서,성자는 오로지 성령을 통해서만 임재할 수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칼빈이 성찬론에서 주장한 신학적 근거입니다.


삼위 하나님이 인격적으로 분명히 서로 구별되는 다른 분들이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서로 분리할 수 없다는 신학적 명제가 있습니다. 세 분은 모두 동일한 본질(호모우시아)을 가지고 있습니다. 서로 다른 신성이나 유사한 신성이 아니라 완전히 동일한 신성을 나누어 가지고 있습니다. 이와 같이 동일한 신성의 공유로 인해 삼위 하나님은 서로 다른 신들로 대립하거나 독존하지 않고 공존하며 하나로 활동합니다. 페리코레시스, 엠페리코레시스, 혹은 엔알레로스라고 불리는 신학적 개념은 삼위 하나님이 얼마나 친밀하게 연합되어 있는지를 설명하는데 사용되는데, 서로의 마음을 완전히 이해하고 서로의 마음 속에 깊이 들어가 있으며 서로가 완전히 한 마음이 되어 존재하며 활동한다는 뜻입니다. 만일 이 말이 혼동을 일으켜 세 분의 구별을 무효화시키고 세 분이 동일한 인격이나 존재가 된다고 생각한다면, 이 신학적 개념을 아예 사용하지 않는 편이 낫습니다. 예수님께서 내가 아버지 안에, 아버지가 내 안에 계시다고 하였을 때, 그 때 예수님은 실체적으로 어디에 계셨습니까? 그는 지상에 아버지는 천상에 계셨습니다. 그러면, 무슨 뜻입니까? 아버지와 아들은 너무 사랑하셔서 항상 서로를 돌보고 생각하고 함께 한다는 뜻입니다. 물론, 그 하나됨의 정도는 인간들의 어떤 친밀함도 추종할 수 없는 하나됨입니다.


저는 신학자이지만, 신학의 폐해도 잘 인식하고 있습니다. 처음에는 신학이 좋은 의도를 가지고 성경적 신앙을 보다 더 쉽고 체계적으로 이해하도록 도우려고 시작하였지만, 후에는 오히려 많은 잘못된 신학들이 일어나고 또 신학을 성경 위에 두어 신학이 그 본연의 사명과 분수를 잊어버리고 그리스도인들의 단순하고 아름다운 성경적 신앙을 혼란시키는 결과를 초래한 것은 안타까우며, 그런 신학은 추종하지 말아야 합니다.


권 교수님의 글을 인용하였지만, 그 글만 보고 그의 삼위일체론을 규정할 수 없습니다. 성경신학자들의 언어는 조직신학자들의 언어와 다릅니다. 그 글만 보면 오해할 수도 있으나, 제가 아는 한 권 교수님도 성부와 성자, 그리고 성령님이 서로 다른 분이라고 믿을 것입니다.


두 번에 걸친 문답을 통하여 삼위일체론의 골격을 이해하는데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었기를 바라며, 항상 먼저 전체적 구도를 확립하고, 그런 다음에 불분명하거나 모순같이 보이는 구절들을 이해하려고 한다면 큰 혼란이 없을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올바른 성경 해석의 원리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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