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섭리님께 질문이 있습니다(1)

갈라디아 교회 성도들은 그리스도를 떠나서 “은혜에서 떨어진 상태”에서 율법준수(할례)를 통해 의롭게 되려고 하다가 바울에게 책망을 당했습니다(갈5:4). 섭리님은 이 성경기록을 어떻게 이해하십니까? 처음부터 거듭나지 못한 것인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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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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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예루살렘 작성자 2014.05.24. 01:52
섭리님은 존 맥아더의 주재권적 구원론이 가장 성경적인 구원론이다 라는 확신이 있는 분같습니다. 그리고 그 기준으로 성경을 해석하시는 분으로 파악됩니다. 그러나 제가 볼 때는 핵심적인 몇 가지에 의심이 있습니다. 우선 참되게 구원받으면 '항상 믿음 안에 있다'는 가정에 대한 반론으로 위 질문을 재차 드립니다. 이미 아래 글에서 질문드렸는데, 반응이 없으셔서 별도 글로 가져와 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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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예루살렘 작성자 2014.05.24. 02:00
새예루살렘
참고로 위 본문을 조금 넓게 인용소개해 보겠습니다. " 할례를 받는 각 사람에게 내가 다시 증언합니다. 그는 율법 전체를 지킬 의무가 있는 사람입니다. '율법으로 의롭게 되려는 여러분'은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져 쓸모없게 된 것이며, 은혜에서 떨어져 나간 것입니다. 여러분은 잘 달려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누가 여러분을 방해하여 '진리를 믿지 못하게 하고' 순종하지 못하게 하였습니까?"(갈5:3-4,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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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예루살렘 작성자 2014.05.24. 02:03
새예루살렘
위 글에서 갈라디아에 사는 참된 거듭난 믿는이들이, 1. '은혜에서 떨어져 나가게 된 상태', 2. '진리를 믿지 못하게 된 상태'는 누구의 책임일까요? 3. 가만 놔두어도 하나님이 다 하신다면 왜 바울은 중간에 끼어 들어 이런 긴 권면을 해야하는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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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예루살렘 작성자 2014.05.24. 02:11
새예루살렘
오늘날 한국교계 내에는 참되게 거듭난 하나님의 자녀들이 전혀 없다고 할수 없습니다. 인터넷 상에서 나누는 대화를 지켜보노라면 분명히 거듭난 주 안의 형제임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어떤 면이 부족하고 치우치고 어느 정도 오류가 있고 삶속에서 영적 실패의 면이 느껴지는 이들이 대부분입니다. 그래도 추구한다는 사람들이 이 정도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은 언제 이들을 '맏아들의 형상을 온전히 본 받은' 이기는 자들로 만드실까요? 1. 현재의 모습이 이기는 자의 모습이 아닌 것은 너무나 분명합니다. 2. 그렇다면 죽는 바로 그 순식간에 이기는 자가 된다? 그렇다면 거듭난 후 빨리 죽는 것이 이기는 자가 되는 지름길이라는 명백한 모순이 생기고 맙니다. 개혁 신학은 이에 대하여 답을 주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야말로 What 만 있고 How, When 이 현저히 부족합니다. 이 부족을 누군가는 보충해야 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성경은 이 모든 것을 너무나 선명하게 말씀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PROVIDENCE 2014.05.24. 16:37
균형잡힌 성경적 지지를 받는 '주 되심 구원론'에 대한 심각한 오해 입니다. 신자는 거듭난 이후에도 칭의의 은혜에서 결코 멀어질 수 없지만, 거룩케 하는 은혜에 대해서는 여전히 그러나 일시적으로 멀어질 수 있습니다.

본문은 성도의 안전과 무관한 내용으로 율법과 은혜를 비교하는 구절입니다. 성경을 해석할 때 컨택스트를 놓치면 중대한 오류를 범할 수 있습니다. 본 내용은 매우 일반적인 의미에서 율법을 은혜와 섞으려 한다면 은혜로 부터 떨어진다는 원칙을 얘기하면서, 매우 폭넓은 신학적 관점에서 전개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많은 다른 구절을 통해 매우 중요하게 다루는 성도의 안전에 관한 내용은 여기에서는 이슈가 아닙니다. 중심은 은혜와 율법을 섞으면 은혜를 치워버리게 된다는 내용입니다.

은혜 앞에 나아올 때마다 은혜는 언제나 있으며 스스로 율법을 더한다면 은혜로 부터 떨어진다는 원칙에 대한 것이며, 만약 공로를 더한 다면 그리스도의 은헤의 효럭은 상실 된다는 뜻입니다. 2절을 봐도 그와 동일한 내용이 나오는 문맥임을 알 수 있습니다. 당신은 끊겼으며 당신은 은혜로 부터 멀어진 것이며, 율법을 섞는 것은 자신을 율법하에 두는 것입니다. 그리스도는 그를 위해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그는 그리스도로 부터 잘려나가게 됩니다. 그리스도는 은혜의 영역안에만 존재 하시기 때문입니다.

본 구절의 적용은 두 가지 경우에 가능합니다.

첫 번째, 배교자의 경우 입니다. 가령 어떤 한 과거 사도 시대에 살았던 유대인이 은혜에 노출 되었고 그가 징조와 기적과 능력을 통해 복음을 확인 했다고 가정해 보겠습니다. 성령이 사도안에 역사하는 것을 보고 이것이 신성한 것임을 알았으며 분명한 복음을 들었습시다. 이 순간에 복음은 그를 기다립니다. 그리고 그는 은혜에 나아가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복음의 근처에 왔습니다. 그 때 하나님의 유대인 모세 이후로 내내 있어온 전능하시고 거룩하신 하나님의 율법을 값없는 것으로 대체했다는 게 쉽게 받아들여 지지 않을 수 있습니다. 이 때 그는 배교를 택할 수 있습니다. 히브리서 6장 4절과 상통하는 내용으로서 복음의 증거를 보고도 거부하는 길로 들어서며 이럴 때 하나님이 허락하신 모든 증거를 보았지만 거절했으므로 더 이상 기회가 없게 되는 것 입니다.

두 번째, 신자의 경우 입니다. 그는 여전히 칭의의 은혜안에 있지만 여전히 성화시키는 은혜로 부터 멀어질 수 있습니다. 물론 입니다. 신자에게는 이러한 가능성이 언제나 일상에 존재합니다.
PROVIDENCE 2014.05.24. 17:58
반복적인 내용을 계속 써야 되는 이유에 대해서 쓰면서도 잘 모르겠네요. 이해를 못하셔서 그러시는 건지 제대로 안 읽으셔서 인지 아마도 인터넷에서 주되심 구원에 관한 잘못된 오해들을 사실인양 읽으셔서 마치 이인규씨가 지방교회에 대해 계속 이단이라는 선입견을 갖고 있듯이 그러신 것 같네요 그런 여러 비슷한 현상이 돌고 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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