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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르침에 있어서 centralized 된 중심부의 영향력 행사를 통해 unity 가 아닌 uniformity 획일화된 성경적 이해를 oneness 로 오해하는 교단화된 지방(지방적 자치는 사라진)교회는 성경에 나오지 않는 대부분의 신자가 쫓겨나 고통 당하는 곳을 만들어 내기 위해 심판 관련 구절을 자의적으로 해석하고 있습니다

신자에게 하나님은 완전히 사랑의 하나님이십니다. 왜냐하면 그 높은 수준의 신자에게 필요한 그 공의를, '오직 은혜'를 통한 속죄의 보혈과 '오직 은혜'로 대신하여 통과하신 십자가의 완전한 죽음과, '오직 은혜'로 주어지는 부활 생명으로 거져 주시기 때문입니다.

이제 복음 앞에서 신자가 두렵고 떨리는 대상은 하나님 자신이신 이 '은혜'를 하찮게 여기거나 이 '은혜'를 취하는 것에 뒤쳐지는 것에 대한 두려움 입니다.

그러나 지금 말씀하시는 소위 지방교회식 "하나님을 두려워 하는 복음" 은 매우 반펠라기우스 적(인간의 공적이 결과적으로 작용) 입니다.

로마서 14장 10절의 심판대와 그 전후 문맥에서의 분위기를 인용하셨는 데 컨텍스트를 완전히 정말 완전히 놓치신 듯 합니다. 앞 부분은 로마 교회에서 율법적인 유대인과 이방 종교를 믿던 이교도 회심자들이 약한 자들로 묘사되며 복음의 완전한 자유를 누리는 자들을 강한 자들로 설정하며 양자간의 용납을 설명하고 있는 내용입니다.

다시 설명 드리지만, "왜 그대는 형제를 판단합니까" "왜 그대의 형제를 업신여깁니까" 라는 말은 로마 교회의 당시의 율법에 얽매인 유대인 그리스도인 들과 이교에 물들어 있던 자들과 같은 연약한 형제들에 대해 없신 여기지 말라는 내용입니다.

이 내용은 무슨 심각한 분위기라고 오해하시나 봅니다. 그러나 사실 그 반대입니다. 4절의 내용에서 "남의 하인을 판단하는 너는 누구뇨 그 섰는 것이나 넘어지는 것이 제 주인에게 있으매 저가 <세움을 받으리니> 이는 저를 세우시는 권능이 주꼐 있음이니라" 약한 자들 모두 주의 종이므로 세움을 받는 다는 은혜의 내용입니다.

이러한 컨택스트가 뒤에 하나님의 심판대를 언급하는 것이 신자에게 벌 주는 심판대라는 것과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심각한 분위기라구요? 설명드립니다.

로마서 14장 11절 "기록되었으되 주꼐서 가라사대 내가 살았노니 모든 무릎이 내게 꿇을 것이요 모든 혀가 하나님께 자백하리라 하였느라" 구절은 아래의 이사야 45장 23절을 인용한 구절입니다.

"내가 나를 두고 맹세하기를 나의 입에서 의로운 말이 나갔은즉 돌아오지 아니 하나니 내게 모든 무플이 꿇겠고 모든 혀가 맹약하리라 하였노라"

위 이사야서의 또 한번의 인용은 빌립보서 2장 10절에도 나옵니다. "하늘에 있는 자들과 땅에 있는 자들과 아래 있는 자들로 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에 꿇게 하시고"

본문에서 심판이라는 단어의 앞뒤 문맥이 심각하여 상급 뿐 아니라 벌주는 것이라는 근거로 제기하셨는데 그 정확한 해답은 13절에 나옵니다. 무릎 꿇을 자들인데 감히 '하나님 노릇' 하지 마라는 겁니다. 그런 것은 신성 모독적이라는 뜻입니다. 지금까지 설명드린대로 컨텍스트를 놓치시거나 성경의 평행한 구절을 놓치면 자의적 해석이 되어 버려서 말씀하신 것과 같은 중대한 신학적 오류를 낳게 됩니다.

물론 이 심판은 말씀하신 대로 아래의 고린도후서 3장 12절~15절과 같은 심판입니다.

"만일 누구든지 금이나 은이나 보석이나 나무나 풀이나 짚으로 이 터 위에 세우면 각 사람의 공적이 나타날 터인데 그 날이 공적을 밝히리니 이는 불로 나타내고 그 불이 각 사람의 공적이 어떠한 것을 시험할 것임이라 만일 누구든지 그 위에 세운 공적이 그대로 있으면 상을 받고 누구든지 그 공적이 불타면 해를 받으리니 그러나 자신은 구원을 받되 불 가운데서 받은 것 같으리라"

그러나 본문의 해석은 명확합니다. 불은 인간적인 재능이나 노력 같은 것 즉 은혜로 주어진 하나님께 속한 것이 아니면 불타 없어지고 그 속에서 구원을 받는 다는 뜻입니다. 너무나 명확합니다. '공적'이 어떠한 것임을 시험한다고 분명히 명시하고 있는데도 자의적으로 해석하지 않기 원합니다. 이는 상급에 대한 것입니다. 또 다시 죄를 거론하여 그리스도의 보혈의 효력과 완전성을 상쇄기켜 버리며 신자에게 벌을 주는 것이 아닙니다. 그리고 그런 복음은 은혜도 기쁜 소식도 아닙니다.

언약신학의 한계 말씀하셨는데 저도 일부 공감합니다. 어떤 면에선 대체 신학이요, 종말론이 약한 신학이요, 경륜이 빠진 신학이라서 교회론 마저 바로 설 수 없는 신학으로 흐릅니다. 그러나 저는 분명히 말씀 드렸듯이 언약신학과 세대주의의 장점을 수용합니다. 그리고 더 연구하셔야 할 것은 그렇게 약점이 많은 언약 신학도 구원론 하나는 지방 교회 보다 훨씬 더 견고하다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교만하지 말아야 하는 것입니다.

생명의 성장 부분은 윤리적으로 설명하는 교파만 보셔서 그렇습니다. 그건 율법주의에 불과합니다. 맞습니다. 생명이 자라고 그리스도의 몸을 건축하는 것이 핵심입니다. 그러나 설명과 적용이 다르다고 진작에 말씀 드렸습니다. 그 적용이 틀렸기에 지방교회의 신앙적 실제는 나타나지 않는다고 스스로도 교회의 상태에 대해 자책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계시록에 나오는 새예루살렘은 천년왕국을 통과하여 최종 영화의 단계로서 완성될 것입니다. 그러나 개인의 죄사함과 거듭남이 적용되는 신자가 누구인지가 정확히 정의되어야 참다운 교회의 범위가 설정되어 이 교회가 참다운 새예루살렘의 이전 단계로서 그 아름다움을 주목하게 할 수 있습니다 계속해서 제가 속하고 싶지 않은 타락한 거짓 교회들에 대해서 비판하시는 것으로 논리를 전개해 나가십니다. 아니라고 말씀 드렸는데 다시 하시고 계신것을 보면 지방교회적 신념으로 외부인에 대한 사고가 고착되신 듯도 합니다.

완전한 기쁨 속에만 머물고 있냐고 질문하셨지요? 네 율법이 아닌 자발적인 종말론적 흥분을 맛보는 완전한 복음의 기쁨을 맛보지만 여전히 완전한 죄인의 상태 동시에 머물고 있습니다.

2분설자들도 성경이 이 영혼을 하나님과 가까운 것으로 묘사할때는 영이라는 단어를 더 높은 빈도로 사용하는 것을 다 인정합니다. 다만 날카롭게 인위적으로 분리할 때 큰 오류가 발생한다는 내용입니다. 그리고말씀하신 내용에서 조심하셔야 될 것은 그 영안의 실재는 바깥의 말씀을 통에 내주하시게 된다는 사실입니다. 말씀을 선포하고 타인에게 행할 때 느낌은 살아나지만 내적 느낌 만을 주목할 때 느낌은 약해지고 결국은 사라지게 될 것이라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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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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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리자 2014.05.20. 12:58
"LSM 신학"이란 부분도 수정을 부탁드립니다. LSM은 단지 출판사일 뿐입니다. 가령 조용기 목사의 신학을 "서울서적 신학"이라고 부르는 것과 비슷한 경우입니다.
PROVIDENCE 작성자 2014.05.20. 13:27
관리자
수정해 드렸습니다 계속 마음에 안드시겠지만 토론의 일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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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리자 2014.05.20. 13:48
관리자
토론 외적인 것이 언급되다 보면 본질에서 벗어나게 되는 경우를 많이 보아 왔습니다. 그리고 가능한한 글의 제목도 더 축약되고 압축되어야 더 효과적으로 제시되는 면도 있습니다. 이 점은 요청 드리는 것은 아니니까 참고로 하시고요. (제목 수정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
PROVIDENCE 작성자 2014.05.20. 17:02
관리자
네 잘 알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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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예루살렘 2014.05.21. 03:24
섭리님은 로마서 14장의 문맥을 바로 파악하고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로마서 14장이 지금 중요시 하고 있는 것은 그리스도의 몸의 같은 지체들로서 어느 한쪽이 믿음이 약하다고 하여 판단하고 심지어 배척함으로 몸 안에 분열과 반목을 가져오는 문제를 다루는 것입니다. 이미 지체되었지만 먹는 문제, 날을 지키는 문제에 있어서 이견이 있더라도 한 몸 안에서 사랑과 인내로 감싸주고 보호해야지, 작은 교리적 실행적인 차이로 다른 형제를 멸망케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14장 1절, 15절, 19절, 20절 등을 자세히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은 지금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를 건축하고 계십니다. 그러나 눈이 멀어 작은 이견과 차이점때문에 몸으로 세워지고 건축되어져야 할 다른 지체를 넘어지게 하고 멸망케 하는 것은 하나님 보시기에 가장 큰 죄악 중에 하나입니다. 그야말로 실족케 하는 자에게 화가 있습니다. 몸의 건축의 시각으로 나와 다른 연약한 믿음을 가진 그러나 참되게 거듭난 지체들을 받으라는 권먼이 로마서 14장의 핵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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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예루살렘 2014.05.21. 03:25
새예루살렘
이런 몸의 건축에 대한 이상이 있다면, 그것을 거스르는 판단과 정죄가 얼마나 중한 죄악이며 심판대 앞에서 엄중한 심판의 대상인지가 피부로 다가오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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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예루살렘 2014.05.21. 03:31
새예루살렘
고린도 전서 3장의 '불을 통과한 구원'도 상급을 언급하는 것인지요? 만일 그러하다면 섭리님은 이 땅 위에서 우리가 통과하는 고난의 과정이 무엇인지를 아직 충분히 체험하지 못하신 것입니다. 그리스도 이외의 모든 것들이 주관적인 십자가의 체험가운데 부인되는 그 불이 우리 존재 안에 깊숙히 그리고 우리가 소유한 모든 것들 안에 파고 들어와 태워지는 체험은 워치만 니와 위트니스 리 형제님의 책들에서 자세히 묘사되고 있습니다. 죄들의 처리, 세상의 처리, 자아의 처리, 마음의 처리, 양심의 처리, 생각의 처리, 감정의 처리, 의지의 처리, 영의 처리...이런 단어들이 담고 있는 영적인 빛과 실재를 아신다면 아마도 고전3장 15절을 보시는 시각이 달라지실 것입니다. 계시록의 일곱눈과 일곱 등불에 대한 주관적인 체험이 있을 때 이 구절이 비로소 열릴 수 있습니다.
PROVIDENCE 작성자 2014.05.21. 17:15
새예루살렘
제가 로마서 14장이 어느 한쪽이 믿음이 약하다고 하여 판단하고 심지어 배척함으로 몸 안에 분열과 반목을 가져로오는 문제를 다루는 것이라는 같은 취지에서 유대인, 이방인 그리스도인에 대한 배척을 소개하며 말씀 드렸는데 제가 드린 말씀을 안 읽으시나 보네요.

이걸 다시 반복하시면서 몸의 건축에 대한 이상을 거스르고 판단과 정죄가 얼마나 중한 죄악이며 심판대 앞에서 엄중한 심판의 대상인지가 피부로 다가오게 될 것 이라고 감히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은 지방 교회에 대한 토론과 문제 제기 자체에 대해 무시 무시한 저주를 하시고 계시는 겁니다. 그래서 이 토론방은 어느새 저주의 방이 되고 있습니다. 구원파는 돈으로 하지만 이렇게 지방교회는 '하나'와 '생명'이라는 명목하에 철저한 배타성으로 진행되고 있습니다.
PROVIDENCE 작성자 2014.05.21. 17:27
새예루살렘
네 좋습니다. 이 땅에서 신자도 훈련을 통과합니다. 그러나 훈련 성적이 안 좋은 사람들이 대다수이라서 그들을 바깥 어두운 곳에 집어 넣고 풀무불(지옥)과 똑 같은 표현이 적용되는 수준으로 울며 이를 갈게 하는 것은 훈련이 아닙니다. 이건 징벌입니다.

지방교회의 교리는 훈련을 얘기하는 것 같지만 막상 성경의 인용 구절은 징벌 수준의 울며 이를 가는 것입니다. 사랑의 하나님이 그런 분입니까? 지옥에 쓰는 표현을 신자에게 쓰는 그런 분이신지 답변 바랍니다.

제가 글 쓰시는 분보다 충분히 체험했는지 체험하지 못했는지 어떻게 아시는 지 궁금합니다. 아무 것도 판단하지 마라는 구절은 이런 주관적인 사항에 적용되는 것이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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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예루살렘 2014.05.21. 03:34
섭리님의 글 제목달기가 섭리님의 숨겨진 의도를 그대로 드러내고 있는 것은 아닌지요? 왜 그런 식의 제목을 고집하십니까? 순수하게 진리항목에 대해서 토론하시기를 부탁드립니다.
PROVIDENCE 작성자 2014.05.21. 19:06
새예루살렘
설마 그 기라성 같은 신학자들이 어리석게 완벽한 신자가 행위를 보이기 시작하는 시점 부터를 거듭난 순간이라고 정하는 오류를 범했겠습니까? 이 정도면 정말 초보적인 의문과 답변이 오가는 겁니다. 그래서 먼저 열려있는 마음으로 칼빈주의든 주 되심 구원이든 공부를 하시고 겸손히 의견을 개진하셔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참고로 이런 얘기를 하는 저는 최소한 워치만니나 위트니스리 책을 상당 부분 읽고 지방교회 관련 글들을 다독하면서 쓰고 있는 겁니다. 그런 자세가 없으셨고 없으시면서 감히 알미니언과 칼빈주의를 통합한다고 일갈하셨을때는 솔직히 말씀드려 실소를 금할 길이 없었습니다.
PROVIDENCE 작성자 2014.05.21. 19:07
새예루살렘
상대방의 의도에 대해 순수한 눈을 회복하시고 바라봐 주시기 바랍니다. 이미 명확히 저의 의도를 말씀드렸는데 다시 한번 의심하시는 건 그간 상처가 그도의 경계심으로 바뀐 걸로 보입니다. 온라인 상에 여러 군데에 국내 지도자중 한분인 유동근 목사님의 전향과 애너하임 장로들의 단체적으로 위트니스 리 가르침에 대해 반대한 경우나 5대호 일대에 지방 교회는 LSM 에 대한 의견 불일치를 문제 삼아 지방 입장에 있지만 인정하지 않고 있는 여러 사건들이 있더군요. 뉴욕을 포함한 그 외 일부 교회들도 LSM에 대한 거리감이 있다는 얘기도 있네요. 이런 상황에서 지방 입장은 어떠한 의미가 되는 걸까요? 자 다 떠나서 위에서 언급한 분 중에 한 분도 저는 일면식이 없을 뿐 아나리 저는 위의 문제와 어떤 관련도 없는 사람이니 오해마시기 바랍니다. 이 문제가 지방 교회가 주장하는 지방 입장의 아킬레스 건으로 보이네요. 감추려고만 하지 마시고 엄연히 발생한 사건에 대해 지방 입장과 어떤 식으로 토론토에 지방 교회가 2개가 있을 수 있으며 모순되지 않게 적용될 수 있는지 설명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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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예루살렘 2014.05.21. 03:42
"(섭리)그러나 개인의 죄사함과 거듭남이 적용되는 신자가 누구인지가 정확히 정의되어야 참다운 교회의 범위가 설정되어..." --이런 언급은 소위 말하는 '지방 교회'가 무엇인지도 이해하지 못하신 표현일 뿐입니다. 교회란 참되게 거듭난 모든 사람들이 그 지역(지방)을 단위로 불리는 호칭입니다. 섭리님이 모 신학교 나오신 목사님이 담임하시는 교회를 나가신다고 하셨지요. 그러나 그 교회 범위야 말로 모호한 것입니다. 성경에는 그런 교회가 없습니다. 구성원은 참된 신자이실 수 있지만 그 신자들을 특정하는 교회범위가 비성경적이라는 것입니다. 주제권 구원론은 거듭난 신자들 확실히 하려는 의도는 좋지만, 참되게 거듭난 성도들까지도 거듭난 증거가 아직 나타나지 않았다고 해서 불신자 취급 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러나 생명을 받았다고 하면 그후에도 계속 목양하며 생명을 더욱 받도록 도울 때 처음에는 이 사람이 거듭난 사람이 맞나 싶을 정도로 변화된 모습을 보기 어렵다가도 어느 계기로 진리의 빛이 밝아져 세상을 처리하고 변화되는 경우를 많이 봅니다. 주재권 구원론은 그 사람은 바로 그 때 거듭난 것이라고 말하고 싶으시겠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그런 식이라면 고린도교회 성도들은 불신자여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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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예루살렘 2014.05.21. 03:43
새예루살렘
참되게 거듭난 주 안의 어린아기들인 '육적인 그리스도인들'을 부정하는 것을 주재권구원론의 장점으로 생각하신다면 그 장점이 바로 성경적인 기준으로 볼 때 가장 큰 단점이 될수 있습니다.
PROVIDENCE 작성자 2014.05.21. 19:27
새예루살렘
저는 개인적으로 워치만니의 지방 입장에 찬성합니다. 그러나 현재 지방 교회 모델이 그와 동일하다고는 생각하지 않으며 차라리 브레드린 교회가 도시 영역의 제한에는 실패했을 지언정 여전히 중앙 집권적이지 않고 더 지방적이라고 생각합니다.

주재권 구원이 신자가 변화되는 시점 부터를 거듭난 시기라고 보지 않습니다. 고린도 전서에 나와 있는 모습들은 지위적으로는 영적이지만 실제적으로는 육적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참 된 신자는 지속적으로 자라지 않을 수 없다는 뜻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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