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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방교회의 구원관은?

칼빈주의는 은혜로 주어지는 선물인 구원을 신자는 수용적으로 받는 것을 말하지만 알미니언주의는 결과적인 효력을 지니는 결단주의를 주장합니다 한편 구원의 확신을 부인하는 알미니언주의와는 달리 칼빈주의는 구원의 확신을 주장합니다

흥미롭게도 구원파는 알미니언주의에서 주장하는 인간적 결단을 구원의 증거로 인정하면서도 반대로 칼빈주의의 구원의 확신을 내세우는 일관성 없는 혼합된 견해를 내세웁니다 보다 더 흥미로운 사실은 개신교의 전도 폭발훈련 내용과 심지어 개혁교회를 표방하는 김남준 목사의 열린교회등에서 마저도 흔히 사용하는 CCC의 사영리 전도지에서도 구원파와 마찬가지로 이러한 혼합된 교리를 사용합니다

이렇게 구원에 있어 하나님 편에서의 단독적 주권을 부인하고 신자 편에서의 구원의 긴장을 없애는 한국 교회를 장악한 왜곡된 구원론을 일컬어 최근 한 저자는 아르뱅주의라고 이름을 붙이기도 했습니다

지방교회 신자들도 실제적 적용에서 이와 유사한 구원관을 갖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므로 지방교회 구성원의 다수인 구원파 신자들이 거부감 없이 흡수된 것으로 사료됩니다 지방교회 신자간에 신앙적 행함에서 실재가 없다는 자책이 많은 이유는 이러한 혼합된 구원론 때문일 것 입니다 물론 아르뱅주의에 물든 다른 교단도 해당됩니다만 회복을 부르짖기에 신앙적 실재가 없는 분위기는 더 현저하게 신학적 공백과 이중성으로 보여집니다

지방교회등의 이런 식의 복음은 그리 기쁘지도 그리 두렵지도 않은 복음을 만들어 냅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구원은 받되 소위 이기는 자는 아니어서 바깥 어두운 곳에 대부분 가게 되는 그다지 기쁘지도 그다지 두렵지도 않은 복음을 전하고 있습니다

참고) 마태복음에서 슬피 울며 이를 갊이라는 표현은 6차례 사용을 통해 불못과 외식하는 자의 율 즉 지옥 과 함께 등장하는 표현이므로 명백히 지옥에 쓰입니다 그런데도 지방교회가 이 바깥 어두운 곳을 상급이 없는 신자가 가는 제3의 장소를 설정하는 것은 바로 영적인 그리스도인과 육적인 그리스도인을 구분하는 개념을 만드는 것입니다 이는 성령의 사역을 신자의 노력에 의한 인간의 결단에 기준하게 되며 자아가 죽는 것에 있어서도 용어상으로는 내주하는 영이 하시지만 결국은 성화 자체가 신자에게 달려있는 반펠라기우스적으로 흐르게 될 뿐입니다

성화에 있어서도 경건주의 계열에서는 신인협력설을 대외적으로 내세우므로 비록 성경적은 아닐지라도 겉과 속이 같습니다 그러나 워치만니가 영향 받은 속생명파를 비롯한 정적주의 계열에서는 실제로는 신인협력설이지만 표방하는 언어가 단동설적으로 들리므로 언어 자체에 스스로 현혹되게 됩니다 결국 자아를 부인하지 못하여 이기거나 성화되지 못한 책임은 자기에게 갈 뿐입니다 생명에 있어서도 내적 느낌이 아닌 외적 말씀으로 돌아가는 것을 강조해야 합니다

참된 신자는 심지어 생각을 영에 두지 않는 순간에도 그 순종 여부와 상관없이 여전히 지속적으로 성령의 지배와 통치하에 있습니다 그러므로 참된 신자는 이러한 상태를 불신자와 달리 매우 고통스럽게 느낍니다 따라서 거듭났지만 일시적으로 순종하지 않는 신자일지라도 성령은 통치하시며 일단 거듭난 신자를 영화롭게 될때까지 성화시키시므로 이들은 결코 영적이지 않은 상태나 육적인 그리스도인이 될 수 없는 영에 속한 그리스도인 입니다 모든 참된 신자는 영적인 그리스도인이며 순종하지 않을 때 괴로우므로 회개하게 됩니다 정통 신학은 육적인 그리스도인을 허용하지 않으며 그들을 처음 부터 거듭나지 않은 유사 그리스도인으로 봅니다

이러한 신학적 정의가 바로 설 때 비로소 단독적으로 구원의 전 과정을 혼자서 완성하시는 하나님의 주권이 설명되며 인간이 갈 수 없는 좁은 길을 오직 은혜로 가는 신자의 구원, 도저히 이길 수 없는 죄를 압도적으로 이기는 복음이 기쁜 소식으로 택하신 자에게 전달 됩니다 잘못된 구원론은 오류가 있는 종말론을 초래하는데 이르며 영적인 그리스도인과 육적인 그리스도인으로의 분류 자체가 결론적으로 여러차례에 걸친 휴거를 주장하는 부분 휴거설로 연결됩니다

논란이 많았던 지방교회의 삼위일체에 대한 내용은 이미 오랜 기간을 걸쳐 현대까지 유지 되어온 이레나이우스 아타나시우스 계열의 동방 정교회 신학과 같으므로 그리 새로울것이 없으며 위트니스 리 개인의 새롭게 계시된 최고봉의 진리로 지방 교회 신자들이 오해하지 않길 바랍니다 다만 안셀무스나 터툴리안 계열의 서방교회 신학에만 익숙한 지방교회와 개신교 일반 신앙인들에게 새롭거나 이질적으로 느껴질 뿐 입니다 사실 서방교회에서 사용하는 그리스도와의 연합이 동방교회 식의 하나님-사람보다 적용면에서 더 적절한 표현이기도 합니다 용어 선택으로 인해 삼위 가운데 성부 하나님에 대한 두려움과 경외심이 자칫 강조되지 않거나 오해 될 때 그 신학이 비록 양태론이 아니라 할지라도 일반 신자의 적용에서는 결국 그렇게 되기 때문입니다

서울 교회를 비롯해서 홈페이지에 LSM 로고를 붙여 놓는 이상 한명의 현대판 사도가 쓴 교리를 읽는 집단만을 지방 교회로 인정하며 아닌 경우에는 교제안에 있지 않다는 명목으로 지방 교회로 인정하지 않는 교단주의에 다름 아니므로 지방 입장 주장에 대해서도 당초 워치만니의 취지에서 멀어진 이율 배반적인 형태로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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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58

PROVIDENCE 작성자 2014.05.16. 14:55
새예루살렘
칼빈 신학교도 자유주의 물결 속에 있습니다 미시건주 그랜드 래피드에서 유학중인 분의 최근 증언도 일치합니다 한국의 통합격인 미국 PCA 교단 자체가 그렇습니다 OPC는 숫자가 너무 적습니다
PROVIDENCE 작성자 2014.05.16. 15:56
새예루살렘
개혁주의 대표 신학자의 책을 추천하라면 분야마다 다르겠지만 구원론은 마이클 호튼을 추천합니다 국내 신학자 글은 글쎄요 기회 비용이 크다고만 말씀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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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예루살렘 2014.05.14. 09:29
아시는지 모르지만 삼각지 구원파 창시자인 권신찬 목사님은 장로교 목사 출신이십니다. 그후에 유병언 씨등에 의해 딕욕 선교사의 가르침이 추가되었지요.
PROVIDENCE 작성자 2014.05.14. 10:28
새예루살렘
아시는지 모르지만 영혼육의 구원론을 따로 강조하며 워치만니의 삼분설에 강하게 영향받은 쪽이 구원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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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예루살렘 2014.05.15. 01:19
새예루살렘
사실 일이 터지고 여론의 주목을 받아서 그렇지 어디 구원파만 문제가 있을까요? 오늘날 정통신학을 지지한다고 하고 소위 정통교회라고 하는 분들이 대부분 장로교인분들인데, 그분들이 오늘날 한국교계의 세속화와 온갖 부도덕한 일들에 연루되어 수 많은 성도들이 교회로부터 등을 돌리게 한 장본인들이지요. 이런 현상이 예수님의 속죄로 의인되었으면 일단 무조건 천국은 간다는 칼빈의 성도의 견인 교리의 후유증이라고 하면 너무 지나친 것일까요?
PROVIDENCE 작성자 2014.05.15. 13:52
새예루살렘
장로교와 개신교의 상태를 변호할 목적이 없습니다 여기 글을 쓰는 이유는 회복이라고 부르짖는 단체의 신학을 논하기 위합니다 성도의 견인 교리의 오용은 신자가 아닌 사람을 신자라고 하고 교회가 아닌 무리를 교회로 자칭하게 하여 거짓 교회를 낳고 교회의 이름을 더럽힙니다 지나치다고 하시는 것은 오늘날 교회와 관련된 문제의 핵심을 놓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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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리자 2014.05.14. 17:39
최근 세월호 문제로 글 제목이 오해를 불러일으킬 여지가 있어서 글 전체 내용을 고려해서 위와 같이 수정했습니다. 충분히 이해하시리라 생각합니다.
PROVIDENCE 작성자 2014.05.14. 17:56
관리자
네 열독률이 떨어지겠지만 수용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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