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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복역 성경을 통한 조명 - “믿는 사람들이 받을 그 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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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복역 성경을 통한 조명 - “믿는 사람들이 받을 그 영”

 


믿는 이들이 믿을 때 영접한 분은 삼위 하나님 중 어느 위격이신가? 이런 질문은 구원론에 해당하며, 구원에 관한 지극히 기초적인 질문일 수 있다. 그런데도 이것에 대해 성경에 근거하여 명쾌하게 답변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는지는 의문이다. 왜냐하면 이 질문은 구원론 관련 성경 본문들에 대한 충분한 지식은 물론이고 정통 삼위일체론에 대한 바른 이해가 있어야 답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한국 교계 안에서 구원론에 대한 논의는 주로 칭의론에 집중되고, 정작 매일의 구원(빌1:19-21)에 있어서 핵심 요소인, ‘주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이 받을 영’에 대해서는 깊은 논의가 거의 없었던 것 같다[1]. 우리는 이번 글에서, 요한복음 7장 37절부터 39절이 말하는 “믿는 사람들이 받을 그 영”에 대하여 신약성경 회복역과 그 각주들을 통해 살펴보고자 한다.

 


그 영께서 아직 계시지 않음


요한복음 7장 37절과 38절에서 주 예수님은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나에게로 와서 마시십시오. 나를 믿는 사람은 성경에서 말한 대로 그의 가장 깊은 곳에서 생수의 강들이 흘러나올 것입니다.”라고 말씀하셨다. 이어서 39절은 “이것은 예수님을 믿은 사람들이 받을 그 영에 대해 말씀하신 것이다. 예수님께서 아직 영광스럽게 되지 않으셨기 때문에, 영께서 아직 계시지 않았다.”라고 말씀한다. 그렇다면 이 단락이 말하는 그 영은 과연 어떤 분이고, 언제부터 존재하시게 된 것일까?


신약성경 회복역은 요한복음 7장 39절 해당 각주에서 ‘그 영’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적고 있다.


요7:39 각주1(그 영): 하나님의 영은 태초부터 계셨지만(창1:1-2), 그리스도의 영(롬8:9)이시며 예수 그리스도의 영(빌1:19)이신 그 영은 주 예수님께서 이 말씀을 하실 때 아직 계시지 않았다. 왜냐하면 아직 그분께서 영광스럽게 되지 않으셨기 때문이었다. 예수님은 부활하셨을 때에 영광스럽게 되셨다(눅24:26).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후에 하나님의 영은, 육체가 되시어 십자가에 못 박히시고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영이 되셨으므로, 그리스도는 부활하신 날 저녁에 제자들 안으로 그 영을 불어넣으셨다(요20:22). 지금 그 영은 그리스도께서 죽으시기 전에 약속하신 ‘또 다른 보혜사’, 곧 ‘실재의 영’이시다(요14:16-17). 그 영께서 하나님의 영이셨을 때에 그분께는 다만 신성한 요소만 있었다. 그리스도께서 육체가 되시고 십자가에 못 박히시고 부활하시어 그분께서 예수 그리스도의 영이 되신 후, 그 영은 그리스도께서 육체가 되시고 십자가에 못 박히시고 부활하신 것의 모든 본질과 실재를 가진 신성한 요소와 사람의 요소를 다 가지셨다. 그러므로 지금 그 영은 우리가 받아들이기 위한 생수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모든 것을 포함하신 영이시다(요7:38-39).


위 각주 내용은 검토해야 할 몇 가지 쟁점들을 포함하고 있다. 우선 위 성경 본문이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이 받을 “그 영께서 아직 계시지 않았다”(the Spirit was not yet)라고 할 때, 이 영은 언뜻 생각하는 것처럼 삼위일체의 제 3격이신 ‘성령’을 가리키지 않는다. 왜냐하면 성령은 곧 하나님이시며(행5:3-4), 또한 그분은 영원하신 분(히9:14)이시기 때문에 존재하지 않은 기간이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2].


만일 요한복음 7장 39절이 말하는 ‘그 영’이 제 3격이신 성령이 아니라면, 그 영은 과연 누구이신가? 우리는 이 문제에 대한 답을 얻기 위해 우리가 믿을 때 누구를 영접한 것인지를 언급하는 또 다른 성경 본문의 도움이 필요할 수 있다. 먼저 요한복음 1장 12절은 “그분을 영접하는 사람들, 곧 그분의 이름을 믿는 모든 사람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위를 주셨다”라고 말씀한다. 전후 문맥을 살펴볼 때, 여기서 우리가 영접한 ‘그분’은 바로 직전 구절의 “자기 땅에 오셨으나 그분의 백성은 영접하지 않았던”(11절) 주 예수 그리스도이심을 알 수 있다. 이 점은 사도 요한이 “하나님의 아들이 있는 사람에게는 생명이 있고”(요일5:12상)라고 말씀한 것으로도 재차 확증된다. 즉 우리가 믿을 때 영접한 분은 주 예수 그리스도, 곧 하나님의 아들이시다.


이러한 하나님의 아들 주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 안에 영접되시려고 두 번의 ‘되심’(became)을 거치셨다. 먼저는 ‘말씀이 육체가 되셨고’(요1:14), 이어서 ‘마지막 아담이 생명 주는 영이 되셨다’(고전15:45하).

 


말씀이 육체가 되신 분(요1:14)


사도 요한은 주 예수님을 가리켜, “말씀께서 육체가 되시어 우리 가운데 장막을 치시니, 은혜와 실재가 충만하였다.”라고 말한다(요1:14하). ‘육체’에 대한 회복역 성경 각주는 다음과 같다.


요1:14 각주2(육체): 로마서 8장 3절은 비록 이 육체가 죄의 육체였지만, 죄의 육체의 모양만 있었을 뿐 육체의 죄는 없었다는 것을 가리킨다. 이러한 육체가 되신 분께서 바로 말씀이시고, 이 말씀은 하나님, 곧 완전하신 삼일 하나님이셨다(요1:1). 말씀께서 육체가 되셨다는 것은 삼일 하나님께서 죄 있는 사람의 모양을 가지신, 육체의 사람이 되셨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렇게 하심으로 하나님은 죄 있는 사람 안에 들어오셔서 죄 있는 사람과 하나 되셨다. 그러나 그분께는 죄 있는 사람의 모양만 있으셨을 뿐 죄는 없으셨다. 그리하여 그분은 죄 없으신 하나님-사람, 곧 완전하신 하나님이시자 온전하신 사람으로서 두 본성, 곧 신성한 본성과 사람의 본성을 소유하셨다. 그분의 두 본성이 연합되어 하나님-사람을 산출했지만, 그 두 본성의 개별적인 특성은 여전히 구별되며, 그 두 본성이 혼합되어 제삼의 본성을 산출하지 않았다. 오히려 신성한 본성이 사람의 본성 안에 있었고 사람의 본성을 통하여 표현되었는데, 여기에 은혜(사람이 누린 하나님)와 실재(사람이 얻은 하나님)가 충만하였다. 이런 방법으로 보이지 아니하시는 하나님께서 표현되심으로, 사람들은 하나님의 신약 경륜을 이루기 위하여 그분을 그들의 생명으로 얻고 누릴 수 있었다.


그렇다면 ‘말씀이 육체가 되었다.’라고 할 때, 여기서 ‘말씀’은 구체적으로 누구이신가? 우리는 “그러나 때가 찼을 때, 하나님께서 그분의 아들을 보내시어 여자에게서 나게 하시고”(갈4:4)라는 말씀을 근거로, 이 ‘육체 되신 분은 일차적으로 제 2격이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라고 이해한다. 그러나 이 성자 하나님은 성부, 성령과 ‘분리되신’ 1/3 하나님이 아니시다. 대신에 그분은 다른 두 위격들과 ‘구별’은 되나 ‘분리’되지 않게 상호 내재하시는 삼일 하나님, 즉 온전하신 하나님이시다(요14:10-11). 위 각주에서 ‘말씀’을 “완전하신 삼일 하나님”이라고 한 것은 같은 취지의 아래 요한복음 1장 1절의 해당 각주들에 따른 것이다.


요1:1 각주4(말씀): 말씀께서 하나님이시라는 것은 하나님의 위격이 단순하지 않다는 것을 암시한다. 그분은 삼일(triune)이시다.


요1:1 각주5(하나님): 다만 아들 하나님만이 아니라 완전하신 삼일 하나님을 가리킨다.


이 점은 그분의 육체되심을 묘사한 또 다른 성경 본문인 “신격의 모든 충만이 몸을 지니신 그리스도 안에 거합니다.”(골2:9)라는 말씀과 해당 각주 내용에서도 재차 확인된다.


골2:9 각주3(몸을 지니신): 여기서 ‘몸을 지니신’은 직역하면 ‘몸으로’이다. 이것은 그리스도께서 인성 안에서 입으신 물질적인 몸을 가리키며, 신격의 모든 충만이 사람의 몸을 가지신 그리스도 안에 거한다는 것을 나타낸다. 그리스도께서 육체가 되시기 전에는 신격의 충만이 영원한 말씀이신 그분 안에 거했지만, 몸을 지니신 그분 안에 거하지는 않았다. 그리스도께서 육체가 되셨을 때부터, 즉 사람의 몸을 입으셨을 때부터 신격의 충만은 몸을 지니신 그분 안에 거하기 시작했다. 또한 신격의 충만은 그분의 영광스럽게 된 몸(빌3:21) 안에 지금뿐만 아니라 영원토록 거한다.


이상에서 보듯이 ‘말씀이신 하나님께서 육체가 되신 것’은 일부 비판자들의 오해처럼 성부가 성자가 되셨다(양태론)는 말이 아니다. 대신에 그것은 삼위 전체가 포함된 개념으로서의 ‘한 신격’(Godhead, 데오테스, 2320)이 아들 하나님 안에서 육체가 되신 것(인성을 입으신 것)을 말한다.

 


마지막 아담이 생명 주시는 영이 되신 분


그렇다면 그분의 두 번째 되심인 “마지막 아담은 생명 주시는 영이 되셨나니”(고전15:45하)와 요한복음 7장 39절에서 그 영이 존재하시게 되는 조건이었던 “예수님께서 영광을 받으시는 것”은 과연 어떤 관련이 있을까? 해당 각주는 이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말한다.


고전15:45 각주1(생명 주는 영): 아담은 창조로 말미암아 산 혼이 되어 혼적인 몸을 갖게 되었다. 그리스도는 부활로 말미암아 생명 주시는 영이 되어 영적인 몸을 갖게 되셨다. 산 혼인 아담은 타고난 사람이고, 생명 주시는 영이신 그리스도는 부활하신 분이다. 먼저 그리스도는 육체 되심 안에서 구속을 이루기 위해 육체가 되셨다(요1:14, 29). 그런 다음 그분은 부활 안에서 생명을 분배하시기 위해(요10:1하) 생명 주시는 영이 되셨다. 육체 되심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는 아담과 같이 혼적인 몸을 가지셨다. 부활로 말미암아 그분은 영적인 몸을 갖고 계신다. 그분의 혼적인 몸은 부활로 말미암아 영적인 몸이 되었다. 그분은 이제 부활 안에서 영적인 몸을 가지신 생명 주시는 영으로서 믿는 이들이 받아들일 수 있도록 준비되어 있으시다. 우리가 그리스도 안으로 믿어 들어갈 때 그분은 우리 영 안에 들어오시며, 우리는 생명 주시는 영이신 그분과 연결된다. 따라서 우리는 그분과 한 영이 된다(고전6:17). 우리 영은 살아났으며 그분과 함께 부활했다. 결국 우리의 현재의 혼적인 몸은 그분의 몸과 같이 부활 안에서 영적인 몸이 될 것이다(고전15:52-54, 빌3:21).


위 본문에서 언급된 ‘마지막 아담’(고전15:45)은 바로 ‘말씀이 육체가 되신 분’(요1:14)이시다. 즉 ‘마지막 아담’은 단지 성자만이 아니라 아들 안에서 구별되시나 분리되지 않게 상호 내주하시는 삼위의 하나님이자[3] 참 사람이시다. 또한 ‘생명 주시는 영’은 바로 이 분의 부활 후의 모습이다. ‘마지막 아담’은 ‘죽을 수 있는 인성’(요19:30)을 지니셨지만, 이 분이 부활을 거치실 때 그 인성은 영원히 ‘죽지 않을 인성’(계1:18)이 되셨고, 이 부활한 인성이 생명 주시는 영 안에 포함되었다. 따라서 그 영은 단지 제 3격 성령만이 아니며,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삼위 전체 그리고 그분의 부활한 인성이 포함되신[4] ‘복합적인 영[5]’(‘예수 그리스도의 영’, 빌1:19)이시다.


우리는 믿을 때 부활하신 그리스도, 즉 생명 주시는 영이신 그 영을 우리 영 안에 영접함으로 거듭난다(요3:6). 이러한 그 영(the Spirit)(요7:39)은 주 예수님께서 영광 받으시기 전, 즉 그분의 부활 전에는 존재하지 않으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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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고려신학대학원 원장을 역임한 변종길 박사의 박사학위 논문을 출판한 <성령과 구속사>(개혁주의신행협회, 2006)가 이 주제를 다루고 있으나, 이 주제가 한국 교계 내에서 공론화된 적은 없다.


[2] 이러한 난제를 해결하려고 킹제임스 성경은 ‘given’, 개역성경은 ‘저희에게’라는 원문에 없는 말을 임의로 추가했지만, 오히려 이것은 바른 본문 이해에 혼동을 주게 되었다.


[3] 이처럼 삼위 중 어느 한 위격이 다른 두 위격들을 포함한 완전한 하나님이시라는 사상은 정통 개혁 신학자인 로레인 뵈트너가 마태복음 6장의 주기도문에 나오는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가 배타적으로 제 1격만을 가리키지 않고, “삼일 하나님이 우리 아버지이시다”(The Triune God is our Father)라고 말한 것에서도 볼 수 있다(Loraine Boettner, Studies in Theology (Phillipsburg, NJ: The Presbyterian and Reformed Publishing Company, 1947), p. 107).


[4] 앤드류 머레이(Andrew Murray)도 요한복음 7장 39절이 말하는 그 영을 “신인(神人)의 영-참 하나님의 영이자 인간의 영”이라고 보았다(앤드류 머레이, 그리스도의 영, 기독교문서선교회, 2000, 43쪽).


[5] 이 ‘복합적인 영’은 출애굽기 30장에서 언급된 신성을 상징하는 ‘감람기름’ 한 힌과 죽고 부활한 인성을 상징하는 ‘네 향품’(몰약, 육계, 창포, 계피)으로 만들어진 복합적인 ‘관유’로 예표 되었다. 형제회 신학자인 C. A. Coates 는 이 네 가지 향품에 관하여 다음과 같이 말했다. “그것들은 그리스도의 영 안에 너무나 완전하게 혼합되어 있고 조화로운 은혜의 모든 형태들을 나타낸다. The “best spices” represent all those features of grace which were so perfectly blended and harmonized in the Spirit of Christ.”(C. A. Coates, Outline of Exodus, 190-1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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