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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방 교회측의 열 처녀 비유 해석(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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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방 교회측의 열 처녀 비유 해석(3)



# 믿는 이들에 대한 신약의 또 하나의 상징은 처녀들이다. 마태복음 25장 1절은 “그때에 천국은 마치 등을 들고 신랑을 맞으러 나간 열 처녀와 같다 하리니”라고 말한다. 처녀들은 생명의 방면에서 본 믿는 이들을 나타낸다. 왕국 백성들인 믿는 이들은 어두운 시대에 주님의 간증(등불)을 짊어지고 주님을 맞으러 나간 정결한 처녀들과 같다. 이것을 위해 그들은 하나님의 영의 내주하심 뿐 아니라 충만을 필요로 한다. 처녀라는 것은 역사, 봉사, 활동의 문제가 아니라 생명의 문제이다. 더욱이 우리는 처녀들일 뿐 아니라 정결하고 순결한 처녀들이다. 처녀라는 것은 우리가 행한 것 또는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절대적으로 우리의 어떠함의 문제이다. (신약의 결론 믿는 이들Ⅰ 10장, 124쪽)


'처녀들은 생명의 방면에서 본 믿는 이들을 나타낸다. 왕국 백성들인 믿는 이들은 어두운 시대에 주님의 간증(등불)을 짊어지고 주님을 맞으러 나간 정결한 처녀들과 같다. 이것을 위해 그들은 하나님의 영의 내주하심뿐 아니라 충만을 필요로 한다'라는 말을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 바울도 고린도의 믿는 이들에게 “내가 너희를 정결한 처녀로 한 남편인 그리스도께 드리려고 중매함이로다”(고후 11:2)라고 말할 수 있었다. 더욱이 계시록 21장 2절은 새 예루살렘을 “신부가 남편을 위하여 단장한 것 같더라”고 묘사한다. 이것은 우리가 총체적인 처녀인 새 예루살렘에 참여하려면 우리 자신들이 주님을 사랑하고 그분을 기다리는 처녀들이 되어야 한다는 것을 가리킨다(위 책).


# 많은 때 우리는 영과 혼과 몸을 가리키는 동일한 중심을 가진 세 개의 원으로 다이어그램을 사용했다. 그 중심에 있는 영은 생각, 감정, 의지로 구성된 혼으로 둘러싸여 있다. 성경은 혼의 그 세 부분에 영의 한 부분인 양심을 더하여 마음(heart)으로 여긴다. 마음은 혼과 매우 비슷하지만, 그것이 영의 한 부분인 양심을 포함하고 있으므로 보다 큰 어떤 것이다. 우리가 구원받았을 때 주님은 우리 영 안으로 오셨다. 그러나 주님은 우리 혼 안으로, 즉 우리 생각, 감정, 의지 안으로는 그렇게 많이 확장되지 못하셨다. … 그분은 우리 영이라는 작은 부분에 갇혀 계신다. 그러나 적어도 그분은 우리 안으로 오셨으며, 우리를 비추셨고, 우리 영은 이제 등으로서 불타고 있다. (신약의 결론 왕국 31장, 312-313쪽)


# 우리가 구원받기 전에 우리 영은 어두웠고 죽어 있었다(엡 2:1,5). 우리에게는 우리 영에 대한 지각이 없었으며 우리 안에 그런 것이 없는 것 같았다. 우리가 복음을 들었을 때, 우리가 복음의 말씀을 읽었을 때, 무엇인가가 우리 속을 비추었으며 우리는 빛 비춤을 받았다. 이러한 빛이 우리 속 깊이 들어왔으므로 우리는 회개하고 주님의 이름을 불렀다. 즉시 우리 안에서 무엇인가가 살아났으며 타오르고 빛나기 시작했다. 우리는 우리 깊은 속에서 무엇인가가 살아 있고 불타며 빛난다는 지각을 가졌다. 이것은 하나님의 영이 우리를 비추고 우리를 살리기 위하여 우리 영으로 오셨음을 뜻한다(요 3:6)(위 책).


# 비록 여러분의 `영이 살아났다 할지라도 나는 여러분의 생각이 주님으로 적셔지지 않고 여러분의 감정이 주님으로 침투되지 않았을까 염려된다.…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그들의 불타는 등을 갖고 있지만, 많은 사람이 그들의 그릇에 기름을 예비하고자 하는 갈망이나 의도를 갖고 있지 않다. 그들은 구원을 받았고 그들 안에 주님을 소유하고 있다. 비록 그들의 영이 불타고 있다 할지라도 그들은 평강 중에 있지 않다. 그들은 기름이 부족하기 때문에 여전히 어떤 문제를 가지고 있다. 그들은 그들의 등에 불타는 약간의 기름을 가지고 있지만, 그들 존재의 모든 속 부분 안에―그들의 생각, 감정, 의지, 및 양심 안에―여분의 기름을 가지고 있지 않다. 그들이 등 안에 기름을 가지고 있지만, 그들의 혼 안에서 여전히 커다란 문제를 가지고 있다는 것은 얼마나 놀라운가. 그들의 영 안에는 주님이 계시지만 그들의 혼 안에는 그렇지 않다(위 책).


# 문제가 없을 것이라고 어떻게 말할 수 있는가? 여러분이 영원을 위한 구원은 받았기 때문에 구원에 관하여는 여러분에게 문제가 없을 것이다. 그러나 여러분은 혼인 잔치에서의 여러분의 몫을 잃어버릴 수도 있다. 혼인 잔치가 여러분을 기다리고 있으며, 여러분이 그것을 잃느냐 얻느냐는 여러분이 지혜로우냐 어리석으냐에 달려 있다. 다른 말로 하면 그것은 여러분이 기꺼이 대가를 지불하느냐에 달려 있다. 여러분이 지금 대가를 지불한다면, 여러분은 그날 상을 얻게 될 것이다. 여러분이 오늘 대가를 지불한다면 그날 상을 얻을 것이지만, 그날에는 여러분이 대가를 지불할지라도 상을 얻지 못할 것이다.


# 그것은 학교에 다니는 학생과 매우 비슷하다. 여러분이 공부를 잘하여 과정을 이수한다면, 여러분은 졸업할 때 상을 받을 것이다. 여러분이 공부를 잘하지 못한다면, 여러분은 낙제하고 졸업하지 못할 것이다. 그럴 때 여러분은 여러분이 낙제한 그 과정을 보충해야 할 것이다. 여러분이 구원받은 한 여러분에게 문제가 없다고 생각지 말라. 여러분이 거듭났을지라도 여러분에게는 여전히 변화됨이 필요하다.


즉 혼인 잔치에 참여하는 문제는 지옥 가고 안 가고 등의 죽고 사는 일이 아니라 졸업시 상을 받거나 낙제하는 보상과 징계의 문제인 것입니다. 계속 보겠습니다.


# 지혜로와서 여러분이 죽기 전에 변화되는 것이 더 좋다. 주님께 이렇게 말씀드리라. “주여, 나는 당신의 오심을 기다립니다. 당신이 지체하신다면 주여 내가 죽기 전에 변화되도록 나를 도우소서. 나는 변화되지 않은 채 죽기를 원치 않습니다”. 변화된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변화된다는 것은 당신의 모든 속 부분이 주님으로 충만되는 것이며, 삼일 하나님의 여분의 몫으로 적셔지는 것이다. (신약의 결론 왕국 31장, 317쪽)


# 우리 모두는 거듭나서 지금 변화의 과정 중에 있다. 우리가 얼마나 많이 변화되는가는 우리가 얼마나 큰 대가를 지불하는가에 달려 있다. 우리가 기꺼이 대가를 지불하고자 한다면, 주님은 분명히 우리를 적시고 채우실 것이며, 우리는 그릇 안에 예비된 여분의 기름을 갖게 될 것이고 그분의 다시 오심을 위해 자신을 예비할 것이다. (신약의 결론 왕국 31장, 318쪽)


# 마태복음 25장 1-13절을 보면, 우리는 깨어 있는 것이 성령으로 충만히 채워지는 것임을 볼 수 있다. 우리가 온종일 채워져 있지 않다면, 깨어 있지 못할 것이다. 이것은 진지하게 생각할 일이다. … 우리는 이것이 회복임을 깨달아야 한다. 구원받은 믿는 이로서, 우리는 그 영으로 채워져서 항상 깨어 있는 사람들이 되어야 한다. 매일 우리의 등이 불타고 매일 우리의 존재인 혼이 여분의 성령으로 채워져야 한다. 이 영은 적시는 영이며, 우리는 이 영이 우리의 영에서부터 우리의 혼에 이르고, 심지어는 관통하여 우리의 전 존재를 적시도록 허락해 드려야 한다. 그럴 때 우리는 확실히 깨어 있는 사람들이 될 것이며, 그분의 다시 오심을 위해 우리 자신을 예비하게 될 것이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주님 앞에서 두 가지 신분을 갖고 있다. 우리는 생명에 있어서 처녀들이고, 주님을 위한 일에 있어서는 노예들이다. 우리는 반드시 생명에 있어서 깨어 있어야 하고 봉사에 있어서 신실하여 주님이 다시 오실 때 예비된 자들이 되어야 한다.


# 만약 우리가 주님의 오늘날의 움직이심에 진지하다면, 우리는 매일 아침 마땅히 그 영으로 채워져야 한다. 우리는 우리의 죄들을 자백해야 하며, 또한 대가를 지불해야 한다.  우리 영 안에 오신 그 영은 값없이 주어졌지만, 우리의 전 존재, 특별히 우리의 혼을 채우고 적시는 영은 거저 주어지는 것이 아니다. 이것은 당신이 대가를 지불함으로 사야 하는 것이다. (주님의 현재의 움직이심을 실행하는 길, 영문판 104-105쪽)


'우리 영 안에 오신 그 영은 값없이 주어졌지만, 우리의 전 존재, 특별히 우리의 혼을 채우고 적시는 영은 거저 주어지는 것이 아니다.'라는 말을 주목해야 합니다. 즉 영의 거듭남은 주님의 은혜로 값없이 얻는 구원이지만 우리의 생각, 감정, 의지가 변화를 받기 위해서는 '자기를 부인함' (마16:24)과 '그리스도를 얻음'(빌3:8)의 대가를 지불해야 하는 것입니다. 계속 보겠습니다.


# '그분과 같이 들어가는 것은 주님이 임하시는 동안 부활한 믿는 이들이 공중으로 휴거되는 것을 언급한다(살전 4:17). 10절에 있는 혼인 잔치는 어린양의 혼인 만찬(계 19:9)인데, 그것은 그분이 오시는 동안, 즉 그분이 임하시는 동안 공중에서 베풀어질 것이다(살전 4:17). 그것은 왕국이 나타나기 전에 예비된 믿는 이들, 즉 죽기 전에 성령의 충만으로 준비되었던 믿는 이들에게 주는, 주님과 함께 누리는 상으로서 베풀어질 것이다. 예비된 자들이 신랑과 함께 혼인 잔치에 들어간 뒤에는 문이 닫힌다. 이것은 구원의 문이 아니라 주님의 혼인 잔치를 누리는 누림 안으로 들어가는 문이다.


그렇습니다. 혼인 잔치의 문은 구원의 문이 아니라 주님의 혼인 잔치를 누리는 누림 안으로 들어가는 문인 것입니다.


# 그들이 주님께 문을 열어달라고 청했을 때, 주님은 “내가 너희를 알지 못한다”고 말씀하셨다. 여기서 알지 못한다 함은 누가복음 13장 25절과 요한복음 1장 26절, 31절, 8장 19절에서처럼 인정하지 않고 시인하지 않는다는 것을 가리킨다. 미련한 처녀들은 등에 불을 켰었고, 주님을 맞으려고 나갔고, 죽었고 부활했고 휴거되었지만, 성령의 충만을 위해 대가를 지불하는 데 있어서는 늦었다. 이로 인해 주님은 그들이 그분의 혼인 잔치에 참예하는 것을 인정하거나 승인하지 않으실 것이다. 그들은 시대적으로는 이 상(賞)을 놓쳤지만, 구원은 영원히 잃지 않는다. 그들에게 알지 못하노라고 말씀하실 때 주님은 “나는 너희를 좋게 여기지도 않고 너희를 인정하지도 않는다. 그리고 나는 너희가 땅 위에서 생활했던 방식을 인정하지도 않는다. 또 너희가 너무 늦게 온 것도 인정해 줄 수 없다.”라고 말씀하신다. 이렇게 해서 그들은 왕국 잔치의 누림에서 거절된다. (마태복음 라이프 스타디 메시지 64, 745-747쪽)


# 나는 기름을 사기 위해 여러 가지 방식으로 나의 혼을 처리해야 했다. 어떤 사람과 농담할 수 있을 만하다고 생각되는 때에 몇 마디 농담을 한 뒤에는, 정죄함이 있었다. 나는 대리석 조각이 아니라 살아 있는 사람이다. 살아 있는 모든 사람은 자기의 의견을 갖고 있다. 하지만 많은 때 나의 의견을 표현하려 했으나, 기름을 사는 것에 의해 제재를 받았다. 많은 때 이러한 관점이 나의 매일의 생활에 영향을 주었다. 아내와 말다툼하면서 더 많은 영을 얻을 수 있는가? 어떤 특별한 곳에 가면서 더 많은 영을 얻을 수 있는가? 어떤 곳에 가고자 할지라도, 내 안에서는 평강이 없다. 요점은 바로 우리의 매일 매일이 각 방면에서 기름을 얻는 하루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 우리는 아침에 일어나는 시간부터 기도해야 한다. “주여, 깨어 있음에서 빗나가게 하는 어떤 일도, 기름을 사는 것이 아닌 어떤 일도 행하기를 원치 않습니다. 언제나 어떤 경우에나 기름을 사기 원합니다. 그렇지 않다면 저는 시간을 낭비하게 될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의 기도와 우리의 태도가 되어야 한다. 많은 날 저녁 때에 나는 나의 모든 시간이 영 안에 있지는 않은 것에 대해 뉘우쳤다. (주님의 현재의 움직이심을 실행하는 길, 영문판 136-137쪽)


다음은 '깨어 있는다는 것'(마25:13)이 구체적으로 무엇을 의미하는 지를 말하고 있는 부분입니다.


# 깨어 있다는 것은 다만 그분의 오심을 주의한다는 것을 뜻하지 않는다. 깨어 있다는 것은 당신이 기름을 구입함으로 자신을 예비하는 것이다. 매일 우리는 약간의 기름을 사야 한다. 우리의 영적인 변화는 매일의 문제이며 일생이 걸리는 문제이다. 매일 조금씩 축적됨이 있어야 하며, 우리 존재에 얼마의 기름이 더해져야 한다. 우리는 매일 매 순간 기름을 사기 위해 자신을 훈련하는 이러한 합당한 훈련 가운데 있지 않았다. 갓난아이는 매일 매일 먹음으로써 소년이 된다. 이 소년은 그가 먹고 소화시킨 모든 음식들의 축적, 조성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가 신랑의 혼인 잔치에 들어갈 수 있도록 휴거 될 자격을 갖추려면 긴 시간 동안 영적 기름을 축적하는 과정을 통과해야 한다. 그리스도인이 된 시간부터 당신은 매일 매일 당신의 그릇에 기름을 사서 담아야 한다.


# 그리스도인의 생활은 텔레비전을 보는 것, 신문을 읽는 것, 운동 경기하러 가는 것 혹은 세상 오락에 빠지는 것에 관해 규제하는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또한 다만 어떤 것이 성경적인가 아닌가에 관한 문제가 아니다. 그리스도인의 생활은 우리가 기름을 사느냐의 문제이다. 당신은 기도하지 않지만, 텔레비젼은 본다. 기도하지 않지만, 신문은 읽는다. 또, 기도하지는 않지만 운동은 한다. 당신의 매일의 생활 가운데에는 많은 ‘않지만’이 있다. 당신은 이유 없이 그냥 기도하지 않는다. 당신은 죄 된 것은 어떤 것도 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이 열 처녀의 비유가 보여 주는 것은 우리가 얼마나 많은 죄를 범했는가에 따라 주님이 우리를 심판하시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그릇에 얼마나 많은 기름을 갖고 있는가에 따라 심판하신다는 것이다. 우리의 영 안에, 등 안에 성령을 받아들이는 것은 대가를 지불하지 않고 받아들이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의 혼을 적시는 그 영을 얻는 것은 값없이 주어지는 것이 아니다. 당신의 혼을 적시는 성령을 얻고자 한다면, 당신은 반드시 혼을 처리함으로써 대가를 지불해야 한다.


# 신약에서 깨어 있음은 기도라는 말로 요약할 수 있다. 에베소서 6장 18절은 우리가 기도에 깨어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우리는 기도 생활을 위해 주의하며 깨어 있을 필요가 있다. 18절에서 “이를 위하여 깨어”라는 말은 앞의 기도와 간구를 가리킨다. 기도하는 것 외에는 기름을 얻을 다른 길이 없다. 만약 기도하지 않는다면, 이것은 당신이 기름을 사기 위한 대가를 지불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기도를 통해 우리는 더 많은 영을 받아들인다. 기도할 때마다 우리는 기도 안에서 어느 정도의 그 영을 더 얻었다는 깊은 느낌을 갖는다. 다른 많은 일들을 위해 시간을 보내는 것보다는 기도하는 데 우리의 시간을 드리는 것이 기름을 얻기 위해 대가를 지불하는 것이다. (주님의 현재의 움직이심을 실행하는 길, 영문판 135-137쪽).


'신약에서 깨어 있음은 기도라는 말로 요약할 수 있다'는 말이 중요합니다.


# 때가 악하므로 우리는 반드시 시간을 아껴야 한다. 이 악한 시대(갈 1:4, 헬라어 원문)는 매일 매일이 우리 시간을 파괴하고, 손상시키고, 망쳐 놓는 유독한 것들로 가득 찬 악한 날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반드시 모든 가능한 기회를 붙잡음으로 시간을 아끼기 위해 지혜롭게 행해야 한다. 모든 기회를 붙잡지 않는다면 우리의 시간은 낭비될 것이며, 많은 악한 것들이 우리를 미혹하고 좌절시키기 위해 들어올 것이다. 우리는 전화 통화하거나 편지나 방문객들에 의해서도 미혹될 수 있다. 우리가 주님의 임재를 누리고 있을 때 갑자기 소극적인 전화 통화로 말미암아 공격받을 수 있다. 세월이 악하기 때문에 우리는 반드시 모든 기회를 활용할 수 있도록 깨어 있어야 한다.


# 술 취하는 것(18절)은 육체 안에서 충만케 되는 것이고, 반면에 우리의 거듭난 영 안에서 충만케 되는 것은 하나님의 충만에 이르기까지(3:19), 그리스도로 충만케 되는 것이다(1:23). 육체 안에서 술 취하는 것은 우리를 방탕하게 만들지만 하나님의 충만에 이르기까지 그리스도로 충만케 되는 것은 말하고, 노래하고, 시로 찬미하고, 하나님께 감사하며, 서로서로 복종함에 있어서 우리를 그분으로 넘쳐흐르게 한다. 날마다 우리는 영 안에서 그리스도의 풍성으로 충만케 되어야 한다. (에베소서 라이프 스타디 메시지 51, 469-470쪽)


# 마태복음 25장은 예수 그리스도를 처음으로 받아들이는 문제를 다루는 것도 아니며, 성령이 그분의 종에게 임하여 그들로 영적인 은사를 얻게 하는 문제를 다루는 것도 아니다. 그것은 그릇 안에 여분의 기름의 문제로서 … 그 영의 끊임없는 기묘한 공급으로 말미암아 빛이 유지되게 하는 것을 말한다.


# 나는 우리의 중점으로 돌아가서 다시 한번 말하는데, 미련한 자와 슬기로운 자의 차이는 단지 이 점에 있다. 당신이 만일 슬기로운 사람이라면 조금 더 일찍 이 풍성을 추구할 것이지만, 만일 미련한 자라면 나중으로 미룰 것이다. 우리 가운데 어떤 사람은 부모요 또 어떤 사람은 자녀이다. 우리는 우리의 자녀들이 성격에 있어서 조금 다른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어떤 자녀는 즉시 순종하나 어떤 자녀는 미룸으로 순종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만일 진실로 이와 같은 상황에서 당신이 충분히 강하지 못하여 그에게 순종을 회피할 여지를 준다면, 사실상 순종하기를 미루던 그 자녀가 슬기로와 보인다. 왜냐하면 그는 미루기만 하면 아무 일도 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만일 당신의 말이 운명적이고 피할 수 없는 것이어서 결국 반드시 순종해야 하는 것이라면, 그 즉시 순종한 자녀가 당연히 더 슬기로운 사람인 것이다.


# 우리는 하나님의 뜻을 분명히 알아야 한다. 하나님의 말씀이 만일 별것 아니라면 당신이 회피하려고 생각하는 것이 그리 어리석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변치 않는 분이시고 변치 않는 뜻을 가지셨으므로 우리는 마땅히 슬기로운 사람이 되어 세월을 아껴야 한다. 가장 중요한 것은 그릇 안에 여분의 기름을 공급함으로 “하나님의 모든 충만하신 것으로 충만하게”(엡 3:19) 되는 것이다.


# 이 비유가 우리의 모든 문제에 해답을 주지는 않는다. 성경은 미련한 자가 어떻게 기름을 사는지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다. 하나님은 성경의 어떤 구절에서도 그분이 결국 그분의 모든 자녀들을 성숙한 단계로 이끌도록 어떤 진일보적인 절차를 취하신다고 말씀하지 않으셨다. 이것은 우리가 관심할 바가 아니다. 우리가 여기서 관심하는 것은 처음 익은 열매이다. 우리는 다만 전진하도록 자극을 받을 뿐, 전진하지 않을 경우 발생하게 될 일을 추측하는 것이 아니다.


# 당신이 회피하거나 도망한다면 성숙될 수 있는 길은 없다. 회피한다면 성숙의 대가를 지불해야 한다. 그러나 지혜는 시간과 관련이 있다. 슬기로운 사람은 세월을 아낀다. 나의 만년필에 잉크가 가득 차 있어 내가 언제든지 쓸 수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슬기로운 사람은 주님과 합하여 하나님이 필요로 하는 것을 그분께 드리고 합당한 그릇이 되어 언제든지 그분이 쓰시게 한다.


# 사람이 영적인 일을 깨닫고 주님을 따라 전진하기 시작할 때에 나는 마음속에서 이러한 것을 느낀다. “아 그들이 오 년 일찍 이 일을 보았더라면!” 우리가 전진할지라도 시간은 너무도 짧으므로 이 같은 간절함이 필요하다. 이것은 우리가 무엇을 얻는가의 문제가 아니라, 현재 주님이 반드시 무엇을 얻으셔야 하는가의 문제임을 기억해야 한다. 오늘날 주님은 잘 예비된 그릇을 얻기를 원하신다. 왜 그런가? “왜냐하면 이 세대가 악하기 때문이다”(엡 5:16). 오늘날 일반적인 그리스도인 가운데의 상황은 급박하다. 그러나 우리는 이 사실을 볼 수 있기를 바란다! (워치만 니 전집 39권, 좌행참 4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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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1

몰라요 2017.05.04. 11:05
기름을 준비하느것은 내가 하는게 아님을 배우는 겁니다
그러나 그 여정은 나의 열심과 노력에 여정이 선행되는겁니다 그것이 미련한 5처녀입니다 그 미련함으로 기름은 내가 사오는 노력이 아니라 기름이 예비된 지혜로운 5처녀입니다 그 지혜는 나의 지혜가 아닌 하나님의 지혜입니다 우리가 어찌 지혜로운지요 우린 그 지혜로 기름을 살수있다는 어리석음 그 지혜로 율법을 섬기고 구원자른 본다하여 참인 예수를 죽인자입니다 우리의 지혜로는 안됨을 배우는겁니다 그래서 그 지혜로 헛됨을 배우고 통해 은혜를 경험하는겁니다 그래서 천국은 미련한 5처녀 율법을 통해 헛됨음 배우고 지혜로운 5으로 채우는 완성의 의미가 있는겁니다
그게 무엇인지 깨어라 입니다 모르면 자는겁니다
참고로 열처녀 다 잤다니까요
그런데 그런데 기름을 준비한 5처녀만 데려간겁니다
그건 창세전 예비한 하나님이 주권적으로 선택한겁니다

열심을 내자라는것엔 동의합니다 그 신분을 알았다면 최선을 다해 신부가 신랑을 맞이 하는 꽃단장을 해야지요
그러나 하나님은 그것과 무관하게 은혜로 맞이하는겁니다
어느 아마존 밀림의 1등미인이 꽃단장을 해봐야
김태희만하겠습니까?

그러나 그 신부의 위치에선 최선을 다해보는겁니다
그러나 그 결과값에 신랑이 택하는건 아니라는겁니다
성령의기름의 부족유무가 아니라 여정의 문제이지
부족하면 잔치에 못가는게 아닙니다
잔치에 참여하는건 주인이 예복을 준비해서 들어가는거지
자기가 이태리장인이 한땀한땀 만든거 입고와도 잔치못오는겁니다
그게 드레스코드입니다
그거 배우는겁니다 그게 구원받은자들이 격는 여정입니다
왜냐면 난 이제 할수있다고 해보겠다고 노력하는데
이게 반대로 수고와 노력 이수를 해보겠다고 혹여 잔치에 참여못할까 전전긍긍하고 심지어 남을 평가한다니까요
오히려 순종이 무엇인지 배우는건데 충성이 과해 따지는 형국입니다
구원의 여정은 자기힘을 빼는겁니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게 아니라 먼저는 그분이 어떤분이지를 알고 내 처음자리를 알아가는겁니다
그러면 자연스럽게 나오는겁니다
나 구원받지 못해도 할말이 없는자구나까지 내려가는겁니다
구원이 따로있고 왕국이 따로있는게 아닙니다
구원이 곧 왕국에 참여한 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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