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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이 한국개혁신학을 대변하는 입장인가(4)-사람 안에 내주하시는 위격문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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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기록에는 사람의 이성으로 이해하지 못할 부분이 많다. 예를 들어, 요한 복음1:14 에서 보듯이 무한하신 하나님이 왜소한 인간의 몸을 입고 성육신 하신 것은 기적적인 사실이다. 또한 예수님의 처녀탄생(마1:18-21) 역시 과학이나 인간 이성으로 설명이 불가능한 역사적인 사실이다. 만일 누구든지 어떤 연유에서건 이러한 성경적인 사실을 부인하면 그는 바른 신앙을 가진 것이 아니다. 이처럼 인간의 이성으로는 충분히 설명할 수 없으나 믿음으로 받아야 할 진리 중에 <하나님의 사람 안의 내주 하심(신비한 연합)>이 있다.

 

이러한 <하나님과 사람의 신비한 연합>은 그리스도인 생활의 시작(거듭남)과 연속(생명의 성숙)에 관련되고, 특히 구원론과 관련된 <핵심 진리> 중 하나이다. 따라서 이 진리를 성경본문과 다르게 가르치는 사람을 우리는 비 성경적임 또는 이단이라고 판단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유감스럽게도 한국 개혁 신학계에서 비중 있는 위치에 있는 두 신학자가 이 주제에 대해 정 반대의 주장을 펼치고 있어 과연 한국 개혁신학을 대변하는 입장이 무엇인가가 문제가 되고 있다.

 

즉 현 성경신학 대학원 원장인 차영배 박사는 <성부 하나님과 성자 하나님은 사람 안에 들어오실 수 없고 오직 성령 하나님만 사람 안에 계신다>라고 주장한다. 이에 반해 총신대학교 신약학 교수인 권성수 박사는 요14:23 을 인용하며 <사람 안에는 성령뿐 아니라 성부와 성자 하나님도 계신다>라고 주장한다. 즉 우리 안에 성령님만 계시는지 아니면 성부 성자 성령님 모두가 계시는지에 대해서 두 신학자 간에 현격한 차이가 있다. 두 분 다 현재 장로교단 소속 유력한 신학교에서 장차 목회자가 될 후학을 지도하고 있는 비중 있는 신학자들이다. 따라서 한국 개혁신학을 대표할 만한 신학자들은 이 두 분 중 과연 누구의 주장이 자신들의 신학을 대변하는지에 대한 선명한 입장 정리가 시급히 있어야 할 것으로 보인다.

 

1. 권성수 박사의 주장 - <성부, 성자, 성령 모두>가 예수 믿는 사람 안에 거하신다.

 

참고로, 권성수 박사님은 총신대 신학대학원 졸업 후 웨스트민스터 신학교에서 신약학 및 성경 해석학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현재는 총신대 목회신학대학원 신약학 교수로 재직중이다. 아래 내용은 그의 저서 중 도서출판 횃불이 발간한 <로마서 강해(로마서 1-8장)> (1996년)에서 인용한 것이다.

 

"(인용시작) 그리고 10절에 "그리스도께서 너희 안에 계시면"이라는 표현도 있습니다. 이것을 정리하면 성령은 하나님의 영이면서 동시에 그리스도의 영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진정으로 예수를 믿는 사람이라면 그 안에는 성령이 거하십니다. ...성령은 그리스도의 영이면서 동시에 하나님의 영입니다. 그리고 성령이 거하신다는 것은 말을 바꾸면 그리스도가 거하신다는 말입니다. 신비적인 연합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리스도의 영이 거하는 것을 그리스도가 거한다고 말할 수 있기 때문에, 하나님의 영이 거하는 것을 하나님이 거한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이 말을 정확히 하기 위해서 요한복음 14:23절을 보십시오.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사람이 나를 사랑하면 내 말을 지키리니 내 아버지께서 저를 사랑하실 것이요 우리가 저에게 와서 거처를 저와 함께 하리라." <<여기서 '우리가'라는 말은 성부와 성자를 말하는 것이고 성부와 성자가 우리와 함께 사신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표현을 쓰는 문맥은 14:16절을 보면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리니 저는 진리의 영이라 세상은 능히 저를 받지 못하나니 이는 저를 보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함이라 그러나 너희는 저를 아나니 저희는 너와 함께 거하심이요 또 너희 속에 계시겠음이라"는 것입니다. <<이 말씀을 놓고 우리가 내릴 수 있는 결론은 예수님을 믿는 사람에게는 성부, 성자, 성령이 거하신다고 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 믿는 사람을 가리켜서 하나님의 성전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신비적인 연합을 가리키는 것입니다"(405쪽).

 

"10-11절에는 "또 그리스도께서 너희 안에 계시면 몸은 죄로 인하여 죽은 것이나 영은 의를 인하여 산 것이니라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의 영이 너희 안에 거하시면 그리스도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가 너희 안에 거하시는 그의 영으로 말미암아 너희 죽을 몸도 살리시리라"고 되어 있습니다. <<우리 안에 성부가 거한다고 할 수도 있고 성자가 거한다고 할 수도 있고 성령이 거한다고 할 수도 있는데>>, 이것은 하나님과 우리가 신비적인 연합을 하고 있다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406쪽)(인용 끝).

 

위 내용에서 권성수 교수는 '예수께서, 내 아버지께' 또는 '내가 아버지께' 등 삼위의 1격과 2격을 지칭하는 요14:23, 요14:16 본문을 인용함으로, 1격인 성부와 2격인 성자가 3격인 성령과 함께 사람 안에 거하심을 선명하게 말하고 있다. 참고로 권성수 박사는 위 인용문 바로 직전에서 하나님이 사람 안에서 거하심은 <그냥 왔다가 가시는 것이 아니고 아주 사시는 것>이라고 정의를 내리고 있다. 이 말에 따르면 성부, 성자, 성령님 모두가 필요할 때만 왔다가 가시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성전인 거듭난 성도들 안에 현재 살고 계신다.

 

2. 차영배 박사 주장 - <성부, 성자는 아니고, 성령만> 예수 믿는 사람 안에 거하신다.

 

참고로 차영배 박사님은 고려신학교, 화란 Kampen 신학대학원을 졸업 후 총신대학 학장을 거쳐 현재 성경신학 대학원장으로 재직중이다. 아래 내용은 월간 교회와 신앙(발행인: 최삼경) 2001년 10월 호에 실린 창간 8주년 기념 삼위일체특집에 기고한 차영배 박사의 논문에서 인용한 것이다.

 

"(인용시작) 우리 안에 내주하시는 그리스도는 바로 성육신 되신 분이다" 라는 명제는 옳지 않다. 왜냐하면 주 예수는 부활하셔서 승천하사 지금 하나님 우편에 계시기 때문이고, 우리 안에 內住하시는 분은 주 예수께서 보내주신 성령이기 때문이다. 주님은 우리 마음 속에 갇혀 계시는 분이 아니다. ...성령의 내주는 곧 주 예수께서 내주 하시는 것과 조금도 다름이 없다. <<성령의 내주로써 충분하기 때문에 주 예수께서 우리 속에 내주 하실 필요가 없다. 그는 재림 때까지 하나님 아버지의 우편에 계신다는 것이 사도신경이다>>. 따라서 주 예수는 우리 안에서 갇혀 계시는 분이 아니기 때문에 제한받으실까 염려할 필요는 없다"(122쪽).

 

"2-7. 성부와 성자가 아니라, 성령께서 내주하심:... 영(靈)은 우리 안에 내주 할 수 있다는 생각은 옳다. 그러나 삼위 하나님을 모두 같은 영으로 생각하는 것은 옳지 않다. 하나님 아버지는 영이시지만, 우리 안에 들어오실 수 있는 영은 아니고, 오직 그에게서 나오시는 영 곧 성령이 우리 안에 내주하신다. <<만약 성부께서 우리 안에 들어오시면, 우리는 이미 죽어버린다.>> 어떻게 성부 하나님이 우리 안에 들어오실 수 있는 것처럼 감히 생각할 수 있는가! 참으로 어이없는 일이다. 이것은 성부 하나님이 어떠한 분이심을 전혀 모르는 무지에서 나온 것이라 아니할 수 없다. 하나님의 영광이 시내산에 임재 했을 때,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까이 오지 못하도록 하셨다: “모세가 하나님을 맞으려고 백성을 거느리고 진에서 나오매, 그들이 산 기슭에 섰더니, 시내산에 연기가 자욱하니 여호와께서 불 가운데서 거기 강림하심이라. 그 연기가 옹기점 연기 같이 떠오르고 온 산이 크게 진동하며, 나팔 소리가 점점 커질 때에 모세가 말한즉 하나님이 음성으로 대답하시더라. 여호와께서 시내산 곧 그 산꼭대기에 강림하시고 그리로 모세를 부르시니!, 모세가 올라 가매,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내려가서 백성을 신칙하라. 백성이 돌파하고 나 여호와께로 와서 보려고 하다가 많이 죽을까 하노라. 또 여호와께 가까이 하는 제사장들로 그 몸을 성결히 하게 하라. 나 여호와가 그들을 돌격할까 하노라"(출 19:17~22)."(124쪽).

 

"<<성자 하나님께서도 우리 안에 들어오실 수 있는 분이 아니다>>. 그는 몸과 영혼이 있는 분이심과 동시에 하나님의 아들이시다. 사도요한은 밧모섬에서 주 예수의 영광스러운 모습을 보고, 그 앞에 엎드려져 죽은 자같이 되었다: "내가 볼 때에 그 발 앞에 엎드러져 죽은 자같이 되매, 그가 오른손을 내게 얹고 가라사대, 두려워 말라! 나는 처음이요, 나중이니" 라고 하셨음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124쪽)(인용끝).


위 내용에서 차영배 박사는 출애굽기 19장을 근거로 성부가 사람 안에 들어오면 사람은 죽어버린다는 논리를 펴고 있다. 즉 성부는 사람 안에 구조적으로 절대로 들어올 수 없다는 것이다. 또한 성령이 내주하심으로 성자도 우리 안에 오실 필요도 없고, 올 수도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러한 내용은 출애굽기 24장에서 언약의 피에 힘입어 이스라엘의 존귀한 자들이 출애굽기 19장의 바로 그 하나님을 보고 먹고 마셨다는 말씀(11절), 고린도 후서 5:19의 '하나님(성부)이 그리스도 안에 계시사'(God was in Christ)라는 말씀, 골1:27의 '이 비밀은 너희 안에 계신 그리스도시니'라는 말씀, 갈2:20의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는 말씀들과 함께 놓고 판단해야 할 것이다.

 

위 차영배 박사의 주장은 삼위의 1격과 2격을 3격과 <분리시켜서> 생각하는 면이 있고, 사람의 생명되신 아들 하나님(요일5:12)을 <사람 밖에 묶어두는> 논리 구조를 가지고 있는 것이 특징으로 보인다.

 

이제 국내의 두 분의 저명한 개혁 신학자들 간의 이러한 두 가지 대조적인 주장들에 대해 한국개혁신학계를 대표하는 신학자들을 향하여 우리는 다음과 같은 질문들을 던질 수 있을 것이다.

 

1. 한국 개혁신학계는 차영배 박사의 주장처럼 성부와 성자는 아니고 성령만 사람 안에 계신다고 믿는가 아니면 권성수 박사의 주장처럼 요14:23등에 근거하여 성부, 성자, 성령님을 포함한 온전한 하나님이 그분의 성전인 사람 안에 거하신다고 믿는가?

 

2. 만일 권성수 교수의 주장을 지지한다면 삼위 중 1, 2격을 3격과 분리시키는 차영배 박사의 주장은 삼신론 이단 사상이 아닌가?

 

3. 만일 차영배 박사의 주장을 지지한다면,

 

1) 그리스도의 직접적인 내주를 말씀하고 있는 골1:27, 롬8:10, 고후13:5, 갈2:20, 4:19를 어떻게 설명할 수 있는가? 만일 차영배 박사의 주장대로 성령이 내주한 것이 그리스도가 내주한 것이라면 성경본문이 말하는 '그리스도'라는 표현을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 즉 제 3격인 성령을 '그리스도'라고 부를 수 있는가? 아니면 통상적인 이해처럼 제 2격 아들 하나님 만이 그리스도인가?

 

2) '아들이 있는 자에게는 생명이 있고 하나님의 아들이 없는 자에게는 생명이 없다'는 요일5:12에 근거하여 사람 안에 아들은 없고 성령만 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을 <생명 없는 자들>로 판단해도 좋은가? 아니면 성령이 곧 아들 하나님이라고 할 것인가?

 

3) '...예수 그리스도가 너희 안에 계신 줄을 너희가 스스로 알지 못하느냐 그렇지 않으면 너희가 버리운 자니라'라는 고후 13:5에 근거하여 '예수 그리스도'는 사람 안에 안 계시고 성령만 계신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을 <버리운 자들>(아도키모스, 96b- 시험에 합격치 못한, 거절된(사람들))로 간주해도 좋은가?

 

4) 만일 <성부와 성자의 실체>는 사람 밖의 저 하늘에 계시지만, 성령은 곧 그리스도의 영이요 하나님의 영임으로 이를 근거로 성령뿐 아니라 성부 성자가 사람 안에 계신다고 말할 수도 있다고 한다면 <사람 밖의 성부, 성자>와 <사람 안의 성부 성자>는 무엇이 다르고 무엇이 같은가? 우리는 두 종류의 성부, 성자를 믿는가?

 

5) 차영배 박사의 아버지의 영은 아들의 영과 성령과는 다른 영이라는 주장은 삼위가 각기 다른 세 영들이라는 말인데 이것이 신약과 개혁신학계의 정설인가 아니면 이설인가?

 

6) 삼위중 1격과 2격을 사람 밖에 두고 3격만 사람 안에 계신다고 믿는다면 아버지가 내 안에 내가 아버지 안에 계신다는 요14:11의 삼위간의 상호내재를 어떻게 이해하고 설명할 것인가?

 

7)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다는'는 요1:12에서 그 이름은 누구의 이름이며, 영접하는 것은 구체적으로 무엇을 영접하는 것인가?


이러한 질문들에 대한 한국 개혁 신학계를 대표하는 신학자들의 책임 있는 답변은 한국 교계의 삼위일체에 대한 인식을 한 차원 높이는 기회가 될 것으로 본다. 아울러 한국 장로교단의 공식 삼위일체관이 과연 무엇인지를 제 3자들이 바로 파악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되리라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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