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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 탐방(19) - 나사렛

첨부 6

 

이스라엘 탐방(19) - 나사렛

 

 

나사렛


눅4장 16절 - 회당에 들어가 말씀을 펴셨다. 회당에서 7명중 6명은 모세오경을 읽고 1명은 신언서를 읽는데 마지막에 주 예수님이 신언서를 읽었다. 예수님은 나사렛 사람이라 불리웠는데 이것은 멸시받는 땅에서 나왔다는 것이다. 주예수님은 사시는 것은 하나님-사람처럼 사셨지만 봉사는 노예처럼 하셨다. 사람들이 예수님을 낭떨어지에 밀어넣으려고 했던 곳으로 추정되는 곳에 가보았다. 나사렛은 박해와 관련된 장소였다. 복음이 가는 곳마다 박해가 있다. 주의 회복이 가는 곳마다 박해가 있다.


라이프 스타디 막 41번


LS 41번을 교통하겠다. 지난 2천년 동안 새사람을 산출하는데 항상 핍박이 왔다. 복음과 박해는 병행된다. 하나님의 경륜에 대한 사탄의 공격이 있지만 결국 하나님의 뜻대로 될 것이다. 지난 19세기 동안 네 마리의 말들이 함께 달려왔다. 북한에서 복음을 전하려면 박해를 받게 된다.


로마제국시대 박해가 있었다. 우리는 지금까지 종교와 세상으로부터 박해를 받아왔다. 이 시대 마지막 사내아이가 태어날 때 산고의 고통이 심해질 것이고 박해는 점점 더 심해질 것이다. 그러나 2천년 전에 여자의 씨가 뱀의 머리를 깬 것처럼 그리스도께서 적그리스도를 깰 것이다.


주 예수님은 회당을 이용해서 항상 말씀하셨다.


회당은 다섯 가지 기능이 있다.


1) 경전을 보관하는 곳
2) 어린이에게 율법을 가르치는 곳
3) 마을에 제반 사항을 의론하는 곳
4) 마을에 문제가 있을 때 판결하는 곳
5) 안식일에 경전을 읽는 곳
7명이 경전 읽음(6명은 모세오경 1명 신언서)
예수님이 7번째 읽음


(마 2:23) 나사렛이라는 동네에서 살았는데, 이것은 신언자들을 통해 “그분은 나사렛 사람이라고 불리실 것이다.”라고 하신 말씀을 이루시기 위한 것이었다.


(눅 1:26-27) 그 후 여섯째 달에 천사 가브리엘이 하나님에게서 보냄받아 나사렛이라는 갈릴리의 한 동네에 가서,


(27) 다윗 가문에 속한 요셉이라는 사람과 약혼한 처녀에게 이르렀는데, 그 처녀의 이름은 마리아였다.


(요 1:46) 그러자 나다나엘이 그에게 “나사렛에서 무슨 선한 것이 나올 수 있겠습니까?”라고 하니, 빌립이 그에게 말하였다. “와서 보십시오.”


(행 22:8) 그래서 내가 '주님, 누구십니까?'라고 하니, 주님께서 나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네가 박해하는 나사렛 사람 예수다.'


마2:23절의 신언자들이라는 복수 형태의 단어는 이것이 어떤 특정한 예언이 아니라, 시편 22편 6절부터 7절까지에 있는 것과 같은 여러 예언들의 의미를 요약한 것임을 가리킨다. 나사렛 사람이라는 칭호는 이사야 11장 1절에서 히브리어로 네체르인 가지를 가리킨다. 그 절에서 그리스도를 상징하는 가지는 다윗의 아버지인 이새의 그루터기에서 나온 한 싹이다. 예수님께서 태어나실 무렵에 다윗의 보좌는 무너져 있었다. 이것은 다윗 왕가의 줄기가 끊어져 있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제 이새의 그루터기에서 한 싹이 새로 돋아나, 이새의 뿌리에서부터 자라났다. 이 싹은 비천한 상황에서 싹트고 자라났다. 예수님은 인정받고 존경받는 왕가에서 태어나지 않으셨고, 예루살렘과 같은 유명한 성에서 성장하지도 않으셨다. 오히려 그분은 가난한 가정에서 나시어 멸시받는 동네에서 성장하셨다. 이 모든 것이 그분을 나사렛 사람, 한 가지가 되시게 했다. 이 한 가지는 우람한 나무의 높은 가지가 아니라, 이새의 그루터기에서 나온, 보잘것 없어 보이는 한 싹이었다.


갈릴리

 

(막 1:91) - 갈릴리는 이방인의 갈리리로 불리었고 존경받지 못하는 지역, 곧 멸시받는 지역이었으며, 나사렛은 이 멸시받는 지역에 있는 멸시받는 동네였다(요 1:46). 하나님의 겸허한 노예는 이러한 근원에서 자라셨고 이러한 근원에서 나오셨다.


열두 광주리 가득히 10권 메시지 7


우리의 주님은 12세 때 부모님을 따라 절기를 지키기 위하여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셨다. 절기를 마치자 부모는 집으로 돌아왔으나 그분이 여전히 예루살렘에 머물러 있는 것을 몰랐다. 얼마 후 그의 부모는 그분을 찾으러 예루살렘에 돌아왔다. 사흘이 지나서 그분을 성전에서 만났다. 그 모친은 "얘야, 왜 우리에게 이렇게 하였느냐? 아버지와 내가 너를 얼마나 애타게 찾았는지 모른다."고 말했다. 주님은 "당신은 내가 하나님의 뜻을 따라 행하여야 하는지를 모르십니까?"라고 대답하지 않았다. 주님의 대답은 이러했다. "내가 마땅히 내 아버지의 일 가운데 있어야 하는 줄을 알지 못하셨습니까?". 여기에서 우리는 주님에게 버터와 꿀이 있었음을 볼 수 있다. 주님은 열 두 살 때에도 아버지를 알았다. 그분에게는 하늘에 속한 버터와 꿀이 있었다. 그분은 가장 기름지고 가장 달콤한 것을 얻었기 때문에 하나님의 뜻 안에서 생활하셨던 것이다. 만약 우리였다면 아마 이렇게 말했을 것이다. "당신들이나 나사렛에 돌아가서 목수의 일을 하고 집안 일을 하십시오. 나는 안 가고 성전에 있겠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주님은 그렇게 하지 않으셨다. 주님은 답변을 하고 간증을 하고 나서 한가지로 내려가서 나사렛에 이르러 순종하셨다. 그분이 어려운 것을 택할 수 있는 것은 하나님께서 가장 기름지고 가장 달콤한 것을 그분으로 하여금 맛보게 하셨기 때문이다. 마리아는 세상에서 아주 좋은 여인이자 생각이 좁은 여인이다. 세상에서는 좋은 사람일수록 어떤 것을 쉽게 이해하지 못한다. 사복음서를 읽어 보면 마리아가 늘 주님을 괴롭게 한 사람인 것을 알 수 있다. 남의 집에 술이 모자랐을 때 그녀는 저희에게 포도주가 없다고 말했고, 주님께서 많은 사람에게 도(道)를 가르칠 때 사람을 보내어 그분과 말하려고 했다. 그러나 성경의 기록은 "예수님은 부모와 함께 내려가셨다. 그리고 나사렛에 돌아오셔서 부모에게 복종하시며 지내셨고……" 로 되어 있다(눅 2:51). 이것이 주님의 선택하심이다. 이것은 사람이 하기 어려운 일이다. 주님은 집으로 돌아가지 않고 성전 안에 남아 있는 것을 택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분은 기꺼이 돌아가는 것을 택하고 생각이 좁고 깨닫지 못하는 마리아와 함께 거하셨다. 주님은 버터와 꿀을 먹었기 때문에 사람으로서 감당하기 어려운 것을 선택할 수 있었다.


Ⅰ. 위치 및 지형


A. 갈릴리 하부 지방의 이스르엘 평야 북쪽에 속한 나사렛은 예루살렘 북쪽으로 91km, 갈릴리 바닷가 디베랴 남서쪽으로 19km지점에 있다. 나사렛 마을은 해발 375m의 고지대 언덕 위에 있는 사방이 작은 산으로 둘러싸인 골짜기이다. 팔레스타인의 중요한 무역로들이 근처에 있지만 높은 언덕으로 삼면이 둘러싸여 있어 고립된 형태를 띄고 있다.


B. 나사렛의 기후는 지중해의 영향으로 여름엔 덥고 건조하며 겨울엔 시원하고 비가 잦다. 우기는 10월부터 5월초까지이며 11월의 강우량이 가장 높다.


C. A.D. 1세기경 갈릴리는 주로 이방의 지배를 받던 곳이어서 구약에서는 갈릴리 지방을 이방의 갈릴리(사 9:1)라며 무시했다. 그래서 갈릴리 지방 사람들이 예루살렘으로 순례여행을 했지만(요 4:45) 엄격한 정통파인 예루살렘의 유대인들에게 멸시를 받았다. 그런데 그러한 갈릴리에서도 이름조차 잘 거론되지 않았던 곳이 나사렛이다. 나사렛이라는 이름은 구약 성경에서, 1세기 역사가인 요세푸스의 기록에서, 더 나아가 탈무드에서도 단 한마디도 언급되지 않는다. 그만큼 나사렛은 이스라엘 역사에서 예수님이 나타나기 전까지는 전혀 알려져 있지 않은 약 150명 정도가 옹기종기 모여 살고 있는 작은 시골동네에 불과하였다. 이는 요한복음 1:46에서 나다나엘이 "나사렛에서 무슨 선한 것이 나올 수 있겠습니까?"라고 말한 것에서도 알 수 있다.


D. 하지만 나사렛의 상황은 처녀 마리아가 그리스도를 잉태한 이후 바뀌기 시작했다. 베들레헴에서 예수님을 낳은 마리아는 남편 요셉과 나사렛으로 돌아와 생활을 시작하였고, 예수님은 그분의 사역을 시작하시기 전까지 30년 동안을 이곳에서 목수의 아들로 지내셨다. 예수님의 탄생 이후로 예수님을 소개할 때 나사렛 사람 예수라고 표현 할 정도로 나사렛은 유명한 동네가 되었고, 지금도 히브리어로 그리스도인을 가리킬 때 나쯔리라는 말을 사용한다.


E. 나사렛은 고대에 스블론 영토 안에 위치하고 있었지만(사 9:1, 마 4:13-16) 구약성경에서는 나사렛을 제외한 갈릴리 지방의 많은 도시만 언급될 뿐이다. 고고학적 근거에 의하면 철기시대, 즉 B.C. 1000년경 후부터 나사렛이라 불리게 된 그 장소에 작은 농경마을이 자리 잡았을 것이라고 추측한다. 그리고 B.C. 200년대부터는 유대인들이 마을을 이루고 살았던 것으로 전해진다. 또한 헬레니즘 시대 말기에서부터 로마 시대까지 유대인들이 사용했던 묘석을 보면 분명히 A.D. 1세기에 나사렛에 작은 유다 마을이 존재했음을 알 수 있다.


F. 현대에 이르러서 나사렛은 이스라엘의 북쪽 지역에서 가장 큰 도시가 되었다. 현재 거의 2만여 명이나 되는 유대인들이 살고 있고, 그들과 함께 예수님을 믿는 4만 5천 명 가량의 아랍인들이 살고 있는데, 그들 중 많은 이들은 성지순례를 위한 관광객을 상대로 하는 상인들이다. 도시 주변에 유대인들이 거주하는 아파트는 마치 아랍인의 거주지구를 포위하듯이 세워져 있어서, 이스라엘 민족과 아랍 민족 간의 복잡한 문제를 잠시나마 엿볼 수 있다.


Ⅱ. 유적지 및 관광지


A. 수태 고지 교회(Church of the Annunciation) - 마리아가 가브리엘로부터 예수의 수태를 계시 받은 동굴 위에 세워진 교회이다(눅 1:31-32). A.D. 4세기에 콘스탄티누스 대제에 의해 이곳에 최초로 교회가 지어졌고, 이후에 파괴되었다가 A.D. 11세기, 십자군에 의해 재건되어 수많은 순례객들이 방문하였다. 현재 자리잡고 있는 교회는 1969년에 신축된 것이다. 시대를 막론하고 이곳은 세계 기독교 성지 중 가장 중요한 장소로 여겨졌다. 교회 가운데에는 제단이 있고, 그 뒤에는 마리아가 예수의 수태를 고지 받았다는 동굴이 있다. 교회 바닥은 모자이크로 처리되어 있고, 원뿔 모양의 천장을 통해 제단까지 빛이 비췬다. 2층에는 세계 각국으로부터 기증된 마리아와 예수님의 그림이 걸려 있다.


B. 성 요셉 교회(The Church of St. Joseph) - 예수님께서 요셉과 함께 목수일을 하며 살던 곳이라고 전해지던 장소에 세워진 교회이다(마 13:55). 현재의 교회는 십자군 시대의 교회 터 위에 1914년에 세워진 것이다. 교회 건물 밑에는 비잔틴 시대의 곡식 저장창고와 지하 예배당이 있다.


C. 유대 회당 교회(The Synagogue Church) - 유대 회당 교회는 카사노바 길(Casa Nova St)의 작은 거리인 슈크(Suk, 아랍인 시장)에 있는 교회로 그리스 정교회가 관리하고 있다. 이 교회는 누가복음 4:16 - 21에서 예수님께서 안식일에 유대교의 회당에서 구약 성경 이사야서의 메시아에 관한 부분을 낭독하시면서 스스로가 메시아임을 밝힌 장소로 등장한다. 전승에 따르면 이곳은 로마시대로부터 이곳에 위치하고 있었는데, A.D. 570년 한 이탈리아인이 이 회당을 방문했을 때 그는 예수님께서 읽으셨던 성경과 앉아 계셨던 의자가 그때까지도 그곳에 있었다고 묘사했다. 그러나 고고학적 발굴 결과 이 건물은 A.D. 6세기경의 건축물로 판명되었다. 십자군 시대(A.D. 12세기) 때에 이 터 위에 교회가 세워졌고, 현재에 이르러 멜카이트 그리스 정교회(Melkite Greek Orthodox)의 관리 아래 기도 장소로 사용되고 있다.


D. 낭떠러지 산(Mt. Precipice) - 나사렛은 갈릴리 지방에서 가장 큰 도시로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인 해발 375m의 분지이다. 비록 나사렛이 능선에 세워지지는 않았으나 서쪽으로는 낭떠러지가 몇 군데 존재한다. 누가복음 4:29 - 30에 의하면 예수님께서 나사렛 유대 회당에서 말씀을 전하자 이에 분노한 유대인들이 "들고일어나, 예수님을 동네 밖으로 밀어내어 그 동네가 세워진 언덕의 벼랑까지 끌고 가서 그 아래로 밀쳐 버리려 하였지만, 예수님은 그들의 한가운데를 뚫고 가 버리셨다." 전승에 따르면 이 낭떠러지 산이 나사렛 사람들이 예수님을 밀쳐 버리려 했던 그 벼랑이 있는 산이다.


E. 성 가브리엘 교회(St. Gabriel Greek Orthodox Church) - 가브리엘이 마리아에게 예수님의 잉태를 계시한 것을 기념하여 그리스 정교회가 세운 건물이다. 비잔틴 시대 때부터 교회가 있어 왔고 현재의 교회는 1767년에 세워진 것이다. 이 교회는 내부에 있는 샘을 중심으로 그 위에 건물을 세웠다. 그리스 정교회에서는 마리아가 천사를 만난 장소가 그녀의 집이 아니라 우물가였다고 믿는다. 그래서 그리스 정교회에서는 이곳을 수태고지 교회로 여기고 있다. 지금도 교회 내부의 샘에서 물이 흘러나와 남쪽 '마리아의 우물'로 흘러 간다(사진5. 성 가브리엘 교회 참조).

 

F. 마리아의 우물(Mary's Spring) - 처녀의 샘이라고도 불리는 이 우물은, 마리아가 물을 길어 올리던 우물로 현재는 성 가브리엘 교회의 벽 구멍을 통하여 물을 받게 되어 있다. 이 우물의 수원은 성 가브리엘 교회 지하의 샘에서 시작된다. 지금의 건축물은 1862년에 세워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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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이 타셨던 나귀새끼가 이런 정도였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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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 당시 드셨던 빵을 점심 때 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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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사렛 사람들이 예수님을 낭떨어지로 데려가 밀쳐서 떨어뜨릴려고 했턴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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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 수태를 기념하는 교회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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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사렛 낭떨어지 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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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사렛 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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